고막사람 005_시간이 흐르는 걸 모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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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여친 말고, 고막남친 말고, 그냥 고막사람 둘이 고막을 울리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다 건넌 펜팔.
[✍️ by 🐳프로듀서 오막 x 🍊작가 한아임]
💌 매달 1일, 15일에 발송 💌

오막아,

너는 꼭 오막에 있는 그 홈스테이 집을 사게 될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목표 같다. 검색해 봤더니, 오막에 있는 쓰리 베드룸 투 배스 집값이 엘에이 지역에 있는 같은 크기 집값의 1/4에서 1/3 정도다. 서울 집값에 비교해도 비슷하다. 그러니 오막이 오막에서 사는 건 상당히 실현 가능한 목표다.

구글 지도상으로는, 오막에서 14~16시간 차를 타고 내려가면 샌프란시스코다. 네가 저번 편지에 샌프란시스코와 관련된 노래를 보내주기도 했고, 조만간 한 친구가 그 근처에서 지낼 계획이라고 소식을 전하기도 해서, 나도 최근에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내년쯤이면 여행하는 데에 귀찮은 규정은 다 없어지고,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정말로 샌프란시스코로 간다면, 그때 오막의 소울 여친인 줄리 런던 언니의 음악을 다시 들어보겠다. 특히, 그 지방의 비와 더위를 둘 다 피하려면 봄이 좋다길래, 나는 4월을 틈타 볼 작정이다.

근데, 사실 비가 좀 와도 괜찮긴 해. 나는 비를 자주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물의 기숙사인 슬리데린 출신이지 후후… 최근에 팟캐스트 때문에 다시 테스트했을 때는 래번클로우던데, 그래도 한번 슬리데린은 영원한 슬리데린이지.

후플푸프는 좋겠다. 같은 지하라도 호빗 월드스러운 지하라서. 우리의 지하는 말 그대로 던전이다. 대왕오징어와 친한 나는, 이왕 샌프란시스코에서 분위기 잡을 거면 아예 비를 보러 2, 3월에 가는 게 나을지도?

아무튼, 비가 온다면 차가운 슬리데린인은 처음에는 가볍게 이런 걸 듣겠지. 

Seong-Jin Cho – Prelude in D flat major Op. 28 No. 15 (third stage)

빗방울 전주곡이다. 이름답게 빗방울의 리듬을 담아서 그런지, 아무리 멜로디가 따스해도 차가운 느낌이 든다. 게다가 피아노 자체가 왠지 좀 차가운 습성이 있지 않간? (이런 말투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게 되는 건지 알 수 없다.)

이런 ‘차갑다’는 느낌이 그저 내 상상인 건지, 실제로 뭔가 객관적 기반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 현악기는 따뜻하고 피아노는 차갑다. 마치 소고기는 따뜻한 기운이고 돼지고기는 찬 기운인 것처럼! G♯은 날카롭고 A♭은 뭉툭하지!

편지를 교환하며 음악 외, 소리 전반에 대한 이런 느낌적 느낌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막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고막을 두드리는 건 음악도 있지만, 모든 종류의 소리가 있지 않냐.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우리 집의 1마일 반경에는 기찻길이 있다.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기차는 간간이 뭔가를 싣고 길게길게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우리 동네의 일부를 관통해 지나간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건널목 근처에 있는 모든 차량, 동물, 그리고 사람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기관사가 낮이든 밤이든 기적을 울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냥 이렇게 울린다.

뚜— 뚜— 뚜—

그러면 그 모노톤을 들은 나는 그냥, ‘아, 지나가는군,’ 정도만 생각하고 만다. 사실 이제 생각조차 안 할 때가 더 많다.

그런데 저번 날 밤에는, 어떤 기관사가 이런 리듬을 만들어 내더라.

뚜룹두룹뚜— 뚜룹두룹뚜—

별게 아니었는데, 나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날 밤 그 기관사는 5분 정도에 걸쳐서, 기차가 저 멀리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저런 식으로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때 이전에도, 그때 이후로도, 저런 리듬이 다시 들린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기관사는 임시직원이었는지?
아니면 그날 유독 기분이 좋아서 모노톤이 아닌 리듬을 만들어냈는지?
심심해서 그랬는지?
이제는 안 심심한지?
혹시 소리가 유독 시끄럽다고 항의한 사람들이 있어서 이제는 리듬을 안 만드는 건지?

왜냐하면, 기적 소리 자체야 더 시끄러워졌을 리가 없지만, 그 기관사가 리듬을 부여함으로써 더 잘 들리는 효과는 정말로 있었거든. 그냥 지나칠 모노톤이었는데, 리듬이 생김으로써 선명하게 들렸단 말이지.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소리의 신비다. 

이런 비슷한 상황이 또 있다.

Joy to the World with Lyrics | Christmas Carol & Song

한국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로 알려진 이 노래의 맨 처음 부분 음계는 무려, 그저, 단순히, ‘도시라솔파미레도’다. 거기다 리듬을 붙이니 몰라볼 (몰라들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 생긴다. 처음에 엄마가 이걸 말해줬을 때 나는 너무 충격이었다.

소리는 정신 차리는 만큼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리듬은 음악에 너무 중요한 것 같다. 음정만 갖고서는 음악이 성립되지 않는 듯하다. 적어도 리듬에 대한 결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있거나 없거나. 그저 우연이 아닌 어떤 일정성이.

가끔 막연하게 궁금하다. 인간이 가장 처음 만든 음악은 북과 같은 형태의 타악기를 사용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목소리로 부른 노래였을까? 정확히 어디서 음악이 시작한다고 봐야 하나? 의도를 갖고 ‘공연’을 하면 음악인 건가?

이러나저러나 음악은 시간을 담는 도구였을 것 같다. 내가 옛날 옛적의 인간이었다면, 그 용도로 쓰려고 음악을 시작했을 거다. 

여기서 잠깐. 요즘에 너무나 실용주의가 기세를 부리니, ‘도구’라고 하면 거부 반응을 갖기도 하는 모양이더라. 영어권 인터넷에는 이런 웃픈 말이 유행한 지 한참 됐다:

Be useless, so they can’t use you.

이렇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무용해지려고도 하고, 일부러 무용한 것을 찾는다고도 하던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무용이 목적성을 갖자마자 바로 그 무용은 유용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극실용주의자다. 쓸모가 없기란 정말 힘들다. 만약 어떤 것이 정말 쓸모가 없다면 진짜 심각하게 상상이 안 가는 상황이다. 웬만해서는 쓸모없는 게 없다.

물론 나한테 쓸모없는 거야 있다. 그리고 나한테 쓸모없는 걸 쓰라고 우기면 어이가 없다. 그러나 나 하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쓸모없는 무언가가 존재하기란 어렵다.

갑자기 이 말을 왜 하냐면, 나는 쓸모 있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쓸모 있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모든 아름다움은 쓸모가 있다.
여유도 쓸모가 있다.
음악도 쓸모가 있다.

심지어 여러 쓸모가 있다.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일부러 울적해지려고 듣기도 하고, 전에 우리가 말했듯이 타임머신 기능을 갖기도 하고, 계절별로 골라 듣기도 좋다.
(그런데 왜 ‘쓸모없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있고, ‘쓸모있다’는 없는가? 이런 자잘한 띄어쓰기 구분, 참 쓸모없다…)

그리고 나에게 음악의 가장 큰 목적은 시간을 담는 도구라는 점이다.
신기한 건 이거다. 음악은 시간을 잊는 데에 쓸 수도 있고, 시간을 보내는 데에 쓸 수도 있다.

비트가 있고 없고에서 이 차이가 갈린다.

비트가 아예 없는 atmospheric 장르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싶을 때 듣고, 비트가 있는 음악은 시간이 감을 알고 싶을 때 듣는다. 그 중에서도 거의 비트밖에 없는, 거의 순수한 상태의 시간 담개(?)로서의 음악을 들을 때가 있다. 이런 음악은 부분부분을 들으면 ‘소리’라고 불러도 될 정도인데, 그 부분부분들이 함께, 순서대로, 즉 일정한 비트를 형성함으로써 ‘음악’이 된다.

최근에 발견한 좋은 예시는 이것이다.

Daisuke Tanabe – Cat Steps (Full Album)

반드시 꼭 EP 전체를 순서대로 듣는 것을 강추한다. 순서에 이유가 있는 거 같다. 이 자체가 내가 음악에서 좋아하는 요소 중 하나다. 한 곡 내에서도 처음 중간 끝의 이유가 있고, 곡들이 세트를 형성한다면 그 내에서도 큰 처음 중간 끝이 있는 것.

일단 사람 목소리가 없는 것에서 시작하다가 있기도 하다. (조금 호러주의.)
게다가 EP 제목이 Cat Steps인 걸 보면 한 단계씩 밟아간단 뜻인가?
그러다가 EP 내 곡 중 하나는 제목이 s 없이 소문자로 ‘cat step’이다.

왜 그런 건가요, 다이스케 센세이? 깊은 뜻이 있습니까?

마지막 노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 송 같다. 나가는 관객들에게 ‘안녕히 가십쇼’ 하는 느낌. 이랏샤이마세의 반대말이 있다면 그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앨범 커버가 너무 예쁘다. 이런 광묘(미친 고양이)를 커버에다가 넣으면 누가 클릭을 안 하냐고… 광묘는 잽싸게 클릭하고 보는 거지, 암…

나는 이렇게 멜로디가 거의 없는 음악을 꽤 듣는다. 그러면 시간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흐른다.

음악을 목적에 따라 듣는 것은 온몸이 허할 때 소울 푸드를 먹고, 속이 더부룩할 때 가볍게 요구르트와 과일을 먹는 것과 흡사하다. ‘그냥’ 듣는 음악도 그 ‘그냥’이라는 이유가 있으니, 음악이 유용하지 않을 때가 없다.

그러니 옛날 옛적에 원시인이 갑자기 ‘시간’이란 것의 거대한 무게를 느끼게 됐을 때, 그때 음악을 의식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을 것 같다. 그 시간의 무게를 잊거나, 그것을 잘 담아서 흘려보내기 위해서. 다른 형태의 예술보다 음악은 시간과의 관계성이 높으니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에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시간’이 뭔지 모르는 듯한 존재들은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혹은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고래들은 ‘노래’를 한다고 한다. 그들은 시간이 뭔지 알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비트가 있는 음악을 만드는지 궁금하다. 비트가 없는 노래는 부르는 것 같던데, 타악기도 쓸까?

아무튼, 이것은 멜로디와 시간 흐름이 적당히 섞인 곡이다:

Four Tet – LA Trance

참말로 좋지 뭐야. 2017년 노래라는데 지금 들어도 좋다. 소리가 한 겹씩 쌓여 가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다. 처음 중간 끝이 있고, 중간에 살짝 쉬어가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앞뒤가 생기고, 또 시간이 흐른다. 음악을 듣지 않았으면 무거웠을 시간이 소화 가능한 단위로 변모한다.

‘객관적으로 새것’인 것보다 ‘나한테 새것’인 게 더 임팩트 있다. 책이든 영화든 전부 그렇다. 사람들의 시간은 제각각으로 흐르니까. 그런데 요즘, 특히 음악 측면에서 ‘나한테 새것’인 것들을 잘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이미 찾은 것들을 잘 정리해둘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요즘에 기록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내가 한 기록을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는데도 기록을 하는 이유는, 기록을 하지 않을 때 삶이 걷잡을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실질적으로는 그저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 같으나, 어차피 나만 내 인생을 사는 거기 때문에 내 느낌이 제일 중요하다. 내 템포, 내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시 안 들여다볼 머릿구석이더라도 일단 정리를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거기에는 음정을 예쁘게 오선지에 올려, 마디를 나눠서 시간의 무게를 덜어주는 음악이 도움이 된다.

유용한 것들은 아름답다.
나도 유용했으면 좋겠다.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그거다.

나는 이제 삼겹살을 구우러 간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다. 그것은 쓸모 있다.

– 고기를 종류별로 다 사랑하는 아임이. –

소고기 좋아요 돼지고기 좋아요 물고기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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