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메뉴판.

기숙사 다이닝 홀 배경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식당 메뉴판 꿈에서 드러났다. 이 두 꿈은 불과 1주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꾸게 됐는데, 식당 메뉴판에서도 ‘어마어마한 선택지’가 핵심이었던 것이다.

분명 내 손에 들린 메뉴판은 얇았다. 그냥 겉보기에는, 몇 장 휙휙 넘기면 끝나는, 평범한, 코팅된, 그런 메뉴판이었단 말이지. 그런데 왜인지, 넘겨도 넘겨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 계속 넘겨도 계속 메뉴가 나왔다. 그래서 나는 앞서 본 메뉴명을 까먹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 메뉴를 찾으려 하다가, 그 메뉴가 나오지 않아서 우왕좌왕했다.

이상하게,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창피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나의 주문을 기다리는 웨이터도, 참을성이 있고 없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나의 상황을 당연시하는 듯했다.

결국 나는 Old fashioned (내가 별달리 다른 생각이 안 나면 늘 마시는 칵테일)을 주문하고, 메뉴 중 그야말로 ‘아무거나’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냥 마침 펼친 페이지에 있는 무언가를.

그런데 웃긴 건, 나는 바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내 뒤, 2인용 식탁에 앉았던 어떤 손님이 나한테 이런 식의 말을 했다. ‘계산 잘 하는지 확인하라’고.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식당 측에서 금액을 과하게 지불하라고 하는지, 아니면 심지어 덜 지불하라고 하는지를 확인하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그 손님도, 뭔가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든지, 아니면 나 엿 먹이려고 그랬다든지, 식당을 엿 먹이려고 그런 말을 했다든지, 한 게 아니라, 재밌어 하는 것 같았다, 내 상황을. 그리고 나는 그 손님의 말에도 화 나거나 짜증 나거나 창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마침내 나온 음식은 잘라놓은 돈까스 같은 거였는데, 양이 적았다. 근데, 내가 지불한(지불할) 금액이 얼마인지 모르니, ‘양이 적다’는 게 이것이 애피타이저여서 적은 것인지, 일반 요리 가격에 비해 양이 적은 것인지, 그건 알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돈까스가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약간 식은? 그런 느낌), 나는 그것에 대해서도 화, 짜증, 수치, 후회 등등의 감정이 밀려오지 않았다. 좋지도 않았다. 그냥 ‘아하, 이것이 내가 주문한 것이로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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