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반인반수: 무경계적 공존

[Ep. 10] 반인반수: 무경계적 공존

1: 오프닝

00:00:00-00:03:10

[음악: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은, 우리가 지난 두 에피소드 동안 요즘 기술 얘기를 했으니까, 좀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볼게요.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 존재들!

엄청나죠. 이 신기하고 이상한 존재들에 얽힌 이야기를 해볼 겁니다. 오늘도 역시나 랜덤하게 이 얘기 저 얘기를 할 거고요, 전문성은 없습니다.

아, 그리고요. 11번째 국가, 슬로바키아가 합류했습니다. 슬로바키아 국기가 예쁘더라고요. 삼색 배경의 국기인데, 위에서부터 흰색, 파란색, 빨간색이 층층이 쌓여 있고요. 그 위에, 좌측에 그… 문장 있죠, 가문이나 도시의 상징인 문장. 그것이 방패 모양으로 삼색 배경에 얹어져 있어요. 그런데 자세히 봤더니 그 방패 모양 문장이 또 빨간색, 파란색,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파란 부분이 마치 구름바다처럼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흰색 부분이 구름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멋있게 생겼습니다.

아무튼 슬로바키아, 환영합니다. 그럼, 오늘의 꿈자리 수다, 시작할게요.

[음악 FADE OUT.]


2: 어린이와 무경계성

00:03:10-00:08:58

제가 왜 반인반수에 대해 갑자기 생각하게 됐는지를 먼저 얘기할게요. 사실 반인반수라는 개념 자체는 워낙 고대 때부터 있던 거라, 언제 알게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그러나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을 기반으로 추측해보건대, 저는 아마 어렸을 때, 어린이일 때 처음 그 개념을 접했을 때 그렇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왜 그… 어린이들은 원래가 동물과 인간의 경계뿐만 아니라, 무엇이 생물이고 무엇이 무생물인지에 대한 경계조차 흐릿하지 않습니까? 또한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대할 때, 그것을 염두에 두고 대화를 합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문에 발을 부딪혀서 울면, ‘이 나쁜 문! 때찌때찌!’ 해주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뭔가 문도 살아 있는 것 같고, 햇님과 달님은 의도를 갖고 낮과 밤에 자리를 바꾸는 것 같고, 바닷가에 가면 소라에서 바닷소리가 나는 게 그 소라가 노래를 불러줘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그러한, 어린이들 관점에서 흔히 발생하는 세상에 대한 무경계성이 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아마 제가 반인반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게 이 어린이 시절이었을 거란 말이죠. 이를테면 그림 형제의 동화를 읽었다든지 해서요. 아니면 이랬을 수도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책이나 읽었거든요. 어린이용 책이라고 나온 것만 읽은 게 아니라 아무거나 읽었어요. 그래서 그리스로마 신화든, 다른 신화든, 고대 신화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반인반수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저한테 쇼크였던 건 인간 형상을 한 신들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행동이었지, 반인반수의 존재 자체였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충격이었던 것들은 기억이 잘 나잖아요? 그런데 안 나요. 그러니 별로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충격이 아니었던 거로 추측됩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제가 에피소드2에서 언급했던, 전시 기획자이자 범고래출판사 사장인 저의 친구, 이혜원 씨와 함께 ‘괴물성’이라는 책을 얼마 전에 번역했습니다. 제목이 ‘괴물성’이다 보니, 여기에 각종 경계, 즉, 시대마다 인간인 개체가 넘어선 안 되는 선이라고 규정 지은 한계를 넘는 존재로서의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에 따라, 반인반수도 언급이 돼요.

그런데 여기서 그친 게 아닙니다. 더 최근에 이에 관련된 다른 사건이 있었어요. 반인반수가 잠깐 언급되는 유튜브 비디오를 본 거예요.

그런데 ‘괴물성’ 책에서 다뤄지는 반인반수에 대한 시각과, 이 유튜브 비디오에서 잠시 언급되는 시각이, 경계가 있어야 하는데 경계가 없이 저의 머릿속에 이미 공존하고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오늘 얘기할 건, 정확히는 ‘반인반수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 무경계성에 대한 겁니다. 충돌해야 할 것 같은 개념들이 나의 머릿속에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 그것들이 공존하는데도 나는 미치지 않고 멀쩡히 똑바로 서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3: 중세의 기괴한 종족

00:08:58-00:17:48

[Sound effect: Ilan Post The Night of the Ball Track 1 – Fairy Dreams – Mallets.A1 F Maj – Artlist Original]

‘괴물성’ 책은 반인반수에 대한 책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부제가 ‘시각 문화에서의 인간 괴물’인 만큼, 괴물로 여겨지는 각종 인간상을 다루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중세부터 현대까지를 챕터별로 다루는 거예요.

그런데 반인반수의 존재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개념이기 때문에, 챕터 1부터 등장을 합니다. 챕터 제목이 ‘세상의 끝에 있는 기괴한 이방인들: 기괴한 종족’입니다. ‘기괴한 종족’ 혹은 ‘기괴한 종족들’로 번역한 이 집단은 Monstrous Races라고 영어 원문에는 나와 있습니다. 영국 작가가 쓴 책이에요. Alexa Wright라는 분.

아무튼 기괴한 종족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서구 세계에서 전해져 왔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12세기 말에 아른슈타인의 루난두스라는 독일 수도사가 손 글씨로 쓴 아른슈타인 성경부터 언급을 합니다. 이 성경책에 기괴한 모습을 한 각종 종족들을 묘사하는 그림이 있었던 거죠.

일부는 정말 진정으로 반인반수인 존재들입니다. 이를테면 반은 인간이고 반은 말인 켄타우로스. 혹은 개의 머리를 하고 인간의 몸을 한 시노세팔루스. 그런데 일부는 좀 더 모호해요. 발바닥이 평균보다 엄청 크고 발가락이 다섯 개 이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눈이 어깨에 달려 있는 사람도 있고. 즉 동물과 인간이 섞인 존재는 아니지만, 어쨌든 신체 부위가 ‘정상’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 방식으로 보이는, 이런 존재들도 이 성경책의 그림에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전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중세 유럽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그들 입장에서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살고 있는 존재들로 여겨졌다는 점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뭔가, ‘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죠. 인터넷 지도는커녕 종이 지도도 없던 시절의 사람들이, 자기가 직접 발로 가 보지 않은 지역에 사는 존재들에 대해, 다른 이들의 카더라 통신을 듣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현상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 책을 작년부터 다 번역하고, 인쇄까지 한 시점, 즉 올해에. 올해 초에 제가 유튜브에서 비디오를 하나 본 거예요. 바로 건축가 유현준 님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에 올라 온 영상입니다.

이 분이 건축가이시니까, 동물과 사람이 섞인 존재가 주제 그 자체인 영상을 만드신 건 아니고요, 이 얘기가 잠깐 언급된 영상은 의자에 관한 영상이었어요.

여러분? 제가 이래서 ‘셜록현준’ 같은 채널을 좋아합니다. 저는 건축가가 아니고, 미학 전문가도 아니고, 역사가가 아닙니다. 저는 이야기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대체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연결입니다. 간혹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과학책을 읽거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대학 강의를 듣습니다. 요즘에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 그런 게 엄청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별별 대학들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요. 특히나 초급 강의요.

그런데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때는 대신 무엇을 찾느냐면, 진실을 찾습니다. 여러분? 사실은 진실이 아니에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껏 한 말을 보니, 제가 이 말을 자주 하더라고요. ‘별개예요.’ 사실과 진실은 별개입니다.

장발장이 도둑질을 한 건 사실이고, 장발장이 그렇게 한 이유가 배가 고파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라는 건 진실입니다. 사실보다는 진실이 더 갑론을박의 여지가 많지만, 그래도 진실은 진실입니다.

저는 사실보다는 이러한 진실에 더 관심이 많고, 그래서 이것과 저것을 가져와서 있는지도 몰랐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을 참말로 좋아합니다.

‘셜록현준’을 보면 유현준 님이 건축가의 시점으로 세상을 연결하는 방식을 일부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도 너무 재미있고요.

또한 여러분이 갖고 계신 여러 가지 철학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직업과 취미, 관심사에 따라서요. ‘셜록현준’처럼 특정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콘텐츠를 소비하면, 내 안에서 이미 설립된 철학 중 이상하다고 여겨보지 못한 점을 이상하게 여겨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채널에서 그분이 의자에 대한 영상을 올리셨었는데, 거기에 고대 이집트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옵니다.


4: 이집트의 신

00:17:48-00:28:22

[Music: The Creator of My Heart – Gan Raveh Ensemble]

여러분. 고대 이집트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일단 피라미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모래사막이 떠오르고요. 벽화, 그… 납작한 화풍의 벽화가 떠올라요. 사람들이 입체적으로 걸어 다니지 않고 옆으로 걸어 다닐 것 같은, 납작 화풍의 벽화.

그리고 그 벽화 중에 반드시 뭐가 있죠? 신들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들은 어떻게 생겼나요? 동물과 인간이 섞인 형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바로 이 지점에서 제가 갑자기 ‘괴물성’ 책이 다시 떠오른 거예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잠깐. 여기는 지금 신이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데. “신”이란 건 어쨌든 고귀함, 숭고함 같은 긍정적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인데. 그런데 “괴물성” 책에 나오는 중세의 기괴한 종족은 말 그대로 Monstrous, 괴물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해졌다. 이것은 대체 무슨 차이인가.’

일단 그래서 제가 반인반수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 봤어요.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반인반수: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괴물.’

흔히 ‘짐승’이란 단어에 부정적 가치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이것도 찾아 봤어요. ‘1. 몸에 털이 나고 발이 네 개인 동물. 2. 사람이 아닌 동물을 이르는 말. 3. 매우 잔인하거나 야만적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러니까 짐승이라는 그 단어 자체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짐승에 비유할 때는 부정적인 게 확실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즉, 짐승이 짐승인 것은 허물이 아닌데, 사람은 짐승 같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이 정의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인반수라는 말을 이집트의 신들에게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뭐라고 간단하게 부를 말을 몰라서, 이 에피소드에서는 ‘동물과 인간의 특징이 섞인 신’ 정도로 얘기하겠습니다.

아무튼, ‘셜록현준’ 채널의 의자에 관한 영상에서 이집트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토테미즘 때문이었습니다.

[Music ends.]

토테미즘이란, 인간 부족들이 자신들을 어떤 영적 존재와 친족이라고 여기거나, 그들과 신비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기며, 그러한 영적 존재를 숭배하는 믿음 체계입니다. 여기서 영적 존재란 식물일 때도 있는데, 대개는 그 부족을 보호할 능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셜록현준’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예로 나옵니다. 강한 동물들을 숭배하는 민족들이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이것도 너무 신기하죠. 여기서 유현준 님이 ‘곰을 숭배하는 민족은 대체로 북방 민족. 호랑이를 숭배하는 민족은 대체로 남방 민족’이라고도 말씀을 하시는데, 이거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한국은 하필 건국 신화가 곰과 호랑이 얘기잖아요.

그런데 그 신화에서 곰이 이기죠. 웅녀가 단군의 어머니잖아요. 호랑이는 인간이 되는 과정을 중간에 포기하고 말이죠. 그러고서 곰에서 인간이 된 웅녀는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습니다.

원래가 그… 신화란 건 의미로울 수록 신화적이지 않습니까? 신화야말로 의미의 집합체인데. 이렇게 킹왕 의미로울 수가.

다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건국 신화에 동물이 등장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호랑이와 곰이 건국 신화인 경우가 또 있는지, 이것도 궁금해요.

아시는 분은 저한테 이메일 좀 보내주세요. 저의 홈페이지에 제 연락처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 토테미즘 부족들의 시대가 저물고, 농경 사회가 생기고 피라미드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문명이 꽃피우며,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처럼 높으신 분들만 앉을 수 있었던 귀한 의자의 다리에 동물의 머리를 새겨넣는 트렌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유현준 님은 이것을 ‘동물을 자기가 깔고 앉았다’는 의미로 해석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집트에서는 신들이 동물 머리를 하고 있었단 말이죠. 그렇다면 특정 동물의 특징이 신적이라고 믿기는 했던 것 같은데. 날쌔다든지, 사납다든지, 그런 특징들 말이죠.

그러나 파라오가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신과 연결되기도 하는 동물들의 문양을 깔고 앉을 수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신의 형상에 통합되는 동물들과, 의자에 조각되는 동물들 사이에, 그야말로 ‘클라스 차이’가 있었던 걸까요?

예를 들어, 뭐… 몰라요. 별로 안 멋있는 동물이 뭐가 있나. 나무늘보. 나무늘보는 귀여운데, 멋있진 않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멋있는 동물은 뭐… 표범.

그러면 표범의 머리는 몸은 인간인 신에게 주고, 나무늘보의 머리는 파라오의 의자에 새겼을까요?

혹은 파라오는 신으로 숭배되기도 했었잖습니까. 파라오는 인간 이상인 존재였대요. 그래서 다른 신들도 다스릴 수 있다고 여겨졌던 건지.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사실보다는 진실에 관심이 있단 말이죠. 그리고 제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부분은 이겁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이 기괴한 종족을 이방인이라고, 타자라고, 심지어 열등하다고 생각했다는 정보를 저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받아들였단 말이죠. 또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사람과 동물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신들을 숭배했다는 것 역시 별다른 저항 없이 ‘그럴 수도 있겠다’ 받아들였어요.

이것이 어떻게 둘 다 가능한 것인지.


5: 이해와 존재론적 공포

00:28:22-00:39:04

[Sound effect: The Night of the Bowl Harp – F Maj Full – Phrase – Artlist Original]

충돌하는 듯한 이 두 개념의 공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저의 이론은 시대의 흐름입니다. 인간들이 힘을 갖게 되며, 그러니까 부족 생활에서 농경 사회로 넘어가고, 거기서 또 교회가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며 동물의 위치가 점점 더 떨어지게 된 거죠.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인간 사회가 소위 ‘이성’이라고 불리는 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 더 이상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것이며, 저는 현대인으로서 그 역사의 흐름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예요.

아, 그리고요. 이… ‘자연’이라는 단어 있잖아요. 이 자연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복잡한 단어인지에 대해서도 ‘괴물성’에 잠깐 나옵니다. 잠깐밖에 못 나와요. 왜냐하면 이 단어가 너무 복잡해서 깊게 들어가려면 진짜 책 몇 권을 쓰겠더라고요.

일단 ‘자연’이라고 하면 뭔가… 평화롭고, 목가적이고, 모든 것이 조화로울 것만 같은 종류의 자연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폭풍우, 가뭄, 홍수, 화재와 같이, 겉잡을 수 없이 거친 자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이것이 아무 충돌 없이 공존하고 있어요, 이 두 개념이.

저는 이야기 측면에서 이게 너무 흥미롭거든요. 그리고 이것과 관련해서 ‘장르’라는 개념도 아주 신기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를테면 ‘재앙 영화’, 예를 들어, 좀 옛날 영화지만, ‘해운대.’ 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우리는 알아요. 자연이 어떻게 그려질지.

그러나 또 ‘정글북.’ 이것은 성장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여기에서는 자연이 무섭기도 하지만, 또 모글리를 보듬어주는 부드러운 측면도 있는 환경으로 그려집니다. 그 안에서 또 자연의 대변자들끼리 싸우기도 하고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자연의 양면성이, 이 이야기가 성장 이야기의 특징을 담고 있다는 점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온갖 장르를 통틀어서, 현대 사회에 지친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들도 여러 가지 이야기에 나옵니다.

자연이 하나의 자연이 아닌데도, 우리가 미치지 않고 자연에 대한 각 묘사를 받아들이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저는 바로 이런 측면에서 개념 정의의 충돌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야기란 것은 완전히 무에서 나오려면 너무 시간이 많이 들어요.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인간이 아닌 캐릭터는 인간들이 소비하는 이야기에 잘 없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만약 캐릭터가 인간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인간화되어 나옵니다. 톰과 제리는 인간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죠? 실사 영화에서 개가 등장해도, 개는 인간 관점에서 해석된 개로 나옵니다. 외계인이 나와도 외계인이 너무나 인간과 흡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배가 불룩하고 팔다리가 길쭉한, 괴상하긴 한데 인간과 별로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 외계인 있잖아요.

음… 비교적 최근에 잘 알려진 SF 영화 중에 Arrival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외계인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다 사는, 뭔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존재로 나오는데, 주인공들은 인간입니다. 주인공까지 만약 이렇게나 난해한 외계인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지적 작가 시점? 현대 서사, 특히 현대 서구 서사에서는 엄밀하게는 이 시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얘기들을 한번 관찰해 보세요. 현대 서구 서사는 주인공을 따라가는 서사입니다. 따라서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면 인간인 관객은 흥미를 잃거나 아예 이해를 못 합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너는 네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 이 말이 아주 당연하게 들리는데,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약간… 존재론적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겁니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을 그냥 모를 뿐만 아니라,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What Is It Like to Be a Bat?’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박쥐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가. 그것이 ‘어떠하다’라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인간은 이해할 수 있기나 한가.

이건 어떤 동물을 대입해도 똑같습니다. 돌고래. 돌고래가 그렇게 똑똑하다던데. 그런데 이것도 인간 기준인 겁니다. 돌고래 입장에서는, ‘인간 저놈들이 그나마 좀 똑똑한 애들이라던데.’ 이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 길이 없단 말이죠.

이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게 꽤 스트레스예요.

저는 이런 스트레스를 즐기는 편이긴 합니다. 이런 생각을 안 하고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살기에는 심심해서 살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픽션을 소비하거나 생산할 때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저는 저의 의식을 그 정도로 신뢰하진 않거든요. 오히려 저는 의식의 힘이 약해서 뭘 하더라도 무의식의 영역으로 넘겨버려야, 즉, 습관이 되어야 그 무언가가 실제 세계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픽션 외부에서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고, 그것이 쌓여서 무의식중에 픽션에 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픽션을 너무 의식적으로 해석하면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논픽션적 방식으로 이렇게 줄줄이 사탕을 풀고 있습니다. 논픽션에서는 재밌어요, 저는.

아무튼, 이 공감대라는 개념.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 그리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순되는 부분들. 이게 저한테는 아주 매력적인 주제입니다.


6: 시대와 믿음

00:39:04-00:46:43

[Music: A Countryside Walk – Alan A Craig]

아무튼 다시 시대의 흐름에 따른 동물에 대한 의식 변화로 돌아가 보자면요. 처음에는 이게 당연한 설명이겠거니 했습니다. ‘고대에는 거칠어 보이는 자연에서 살아남는 동물이 위대해 보였다. 따라서 동물과 인간이 섞인 존재는 신처럼 여겨졌다. 파라오는 신과 동급이었기 때문에 의자에 동물 모양을 새겨, 동물을 깔고 앉는다는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세 때는 동물이 더는 그렇게 위대해 보이지 않았고, 따라서 반인반수의 존재들은 변방의 이방인으로 대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위 ‘이성’을 찾아가는 인간 사회라는 서사에 제가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롸잇 나우의 시대에도 동물의 특징을 뭔가… 멋스럽게 취한 자들이 반드시 열등한 취급을 받을 것 같진 않다는 게 이 이론의 1차 문제입니다. 이 ‘멋’이라는 개념도 너무 주관적이라서 난감하긴 한데, ‘멋’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더라도, 예를 들어 날개가 달린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있잖아요. 이들은 멋있다고 여겨지죠. 스파이더맨. 거미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멋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넓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이야기일수록, 자세한 내막은 안 나옵니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뿜어대는 그 손.

[Music ends.]

맨날 타이트한 옷을 입고 있던데, 그러면 손 부분에 구멍이 있나요? 그리고 그 구멍은 크기가 어느 정도이며, 혹시 거기가 아킬레스건처럼 약점은 아닌지. 이런 것들에 대해 자세히 안 나온단 말이죠.

그렇다면 다만 언급되지 않아서 멋있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며, 자세하게 들어갈수록 괴물적으로 여겨지는 건지.

그런데. 모든 신체란 보면 볼수록 괴물적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전에도 말한 것 같아요. 여러분의 얼굴 있죠? 그 매일 거울에서 본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한 1분 정도 거울에서 뚫어져라 쳐다봐 보시면, 얼마나 이상하게 생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잘생기고 못생긴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 얼굴은 엄청나게 복잡해요. 속눈썹 하나하나 하며, 하필 코가 자리하는 위치. 입술의 주름진 부분. 자세히 볼수록 기괴합니다.

아무튼 현대에 와서도 편의성에 따라 동물적 특징이 이렇게나 멋있거나 기괴하다고 해석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동물과 사람의 혼종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만은 않는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이성’이라는 게 대체 뭔가에 대한 의문도 있어요.

왜냐하면, 놀랍게도, ‘괴물성’ 책을 계속 읽다 보면, 고대 사람들보다는 나름대로 좀 더 이성적일 줄 알았던 중세 시대 사람들이 기괴한 종족들의 존재를 진짜로 믿었다는 거예요. 12세기에. 12세기면 고대는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반인반수의 종족이 진짜로 실제로 변방에 산다고 믿었다는 겁니다. ‘카더라 통신’을 듣고 상상력을 발휘한 게 아닌 거예요. 저는 처음에는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상상이 아니라, 정말로 진짜 현상에 대한 제보로 해석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괴물성’ 책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챕터가 계속될 수록 점점 더 현대에 가까워지고, 따라서 사람들이 ‘괴물’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될 것 같았단 말이죠.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한참이 걸려요.

이 책에 <라벤나의 괴물>이라는 게 나옵니다. 얘는 16세기 그림에 등장하는 괴물입니다. 라벤나라는 도시의 괴물이라서 이름이 ‘라벤나의 괴물’인데, 얘 역시 다른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공존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특징들이 공존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남녀가 한 몸에 공존한다든지. 비늘과 날개가 다 달렸다든지.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두고, 그 당시 사람들이 이 괴물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또한 그에 따라 자연의 힘이 점점 인간 사회에 영향력을 덜 행사했는데도 불구하고, 괴물이 실존하다고 믿는 경향은 덜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여기서 또 샛길로 새볼게요. 진짜 특이한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7: 신의 목소리

00:46:43-00:54:27

[Music: The Abstract Journey – Morphlexis]

고대의 사람들은 신을 믿은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Julian Jaynes님이 쓴 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어 제목이 ‘양원제 마음의 해체와 의식의 기원’입니다.

이분은 직업이 심리학자, 심리역사학자, 그리고 의식 이론가라고 해요. 이분의 주장은 뭐냐면요, 인간의 의식이란 게 처음부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아니라, 어떤 시점에 생겨났을 것이며, 그 시점 이전에는 사람들이 진짜로, 레알로다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즉, 우리는 지금 내면의 대화라는 걸 하잖습니까?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혼자 생각을 하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고대의 사람들은 뇌 자체가 달라서, 그러한 내면의 목소리를 신의 목소리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는 이론인 겁니다.

신기하죠? 만약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고대인들도, 중세인들도, 르네상스인들도 동물과 인간의 특성이 섞인 존재가 실재한다고 믿기는 했지만, 그러한 존재들에 얼마나 힘을 부여하는지는 이런… 뇌 구조 차이에서 오는 걸까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여겼던 고대인들만이 이 존재들에 엄청난 힘을 부여하고, 뇌 구조가 달라짐에 따라 점점 더 동물적 특징에 부여하는 막강함이 사그라들고, 오히려 ‘괴물’이라고 명명하게 되고, 호기심의 단계를 넘어서서 혐오에까지 다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을까요?

왜냐하면 16세기에 다다라서는 <라벤나의 괴물> 같은 존재들에 대해 확실히 혐오의 정서가 생겨나거든요. 심지어 ‘괴물성’ 책에 나온 인용 문구들에 따르면, 무신론자들과 동물들이 수간을 해서 반인반수인 괴물이 탄생한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러니인 겁니다. 반인반수인 괴물이 ‘나쁘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이 탄생한 배경에 동물과 인간이 수간하는 것이 언급이 되어 있다니.

동물과 인간이 섞인 존재가 신으로 숭배받을 당시에는, 그 신만이 동물이자 인간이었던 것이지, 일반 인간이 어떻게 좀 수간을 해서 신을 낳는다는 생각은 안 했단 말이죠. 그런데 르네상스에 와서는 누구나 동물과 수간을 하면 반인반수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던 겁니다. 이것이 안 좋다고,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면서도 가능성이 실재한다고 보았던 거예요.

그리고 ‘괴물성’의 4장에 가면 프릭 쇼 시대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 시대는 르네상스 이후의 시대이고, 사진 기술이 발명되던 시대입니다.

[Music ends.]

이때 ‘괴물’이라고, ‘freak’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전시하는 형태의 엔터테인먼트가 유행이었는데, 이렇게 전시된 프릭들 중에서는 개처럼 온몸에 털이 나고 개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프릭으로 전시되어 돈을 버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사람들이 이들을 보려고 실제로 돈을 냈다고 해요.

여기까지의 시대 흐름 트렌드를 보면, 혹시 르네상스 시대가 인간과 동물이 섞일 수도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던 마지막 시대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만큼 가장 반인반수에 대한 혐오가 가장 심했던 것인가.

왜냐하면 프릭 쇼의 시대 때도 ‘괴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 정서는 있었지만, 오히려 ‘나의 눈으로 보는 이 존재가 나와는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위해 프릭 쇼가 유행했던 것 같거든요. ‘내가 저자를 지금 보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어떻게 나일 수 있겠는가.’ 이 멘탈리티가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괴물을 보고 있는 한, 괴물과 나 사이에는 거리가 있고, 나는 안전하다고. 따라서 괴물은 어쩌면 내 자리의 안전함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게끔 해주는 도구이고, 그래서 나는 괴물을 혐오하면서도 사실은 그 존재에 의존하고 고마워하기까지 해야 하는 거라고.

그냥 제 추측입니다, 이건. 프릭 쇼 시대 사람이 이렇게 상세히 자신의 감정을 서술해놓은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8: 현대의 동물

00:54:27-00:58:38

[Sound effect: The Night of the Bowl Harp – F Major Singular Ascent – Artlist Original]

현대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사람 몸에 털이 많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배척하진 않습니다. 아까 말했던 슈퍼히어로물도 있거니와. 왜, 울버린 같은.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도, 동물적 특징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인간을 개개인이 배척할 순 있으나, 사회 차원에서 그자가 괴물이라고 이등 시민 취급을 하진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동물과 수간해서 털이 생긴 거라고 해석하는 경우는 현대 사회에서는 없는 것 같아요.

또한 반인반수가 아닌 완전히 동물인 존재들에 대한 태도도, 현대에는 인간이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만약 고대의 토테미즘 부족들이 봤다면, 무엄하다고 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중세인들이 봤다면 비웃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물적 특징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 또 아니에요. 오컬트 영화 같은 걸 보면 악마에 빙의된 자의 몸에 털이 나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바로 이런 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 이 에피소드에서 말한 이 모든 것에 관심이 없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지구 인구의 99%는 될 것 같단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직감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픽션에서 ‘털’이라는 것이 악마적 특성의 현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 내지는 사실입니다. 이 기저에는 어떤 진실이 깔려 있을 텐데.

현실, 사실은 이렇습니다. 현대에 어떤 컬트가 있어서, 그들이 동물/인간 하이브리드를 신으로 모셨다는 이야기를 써도 독자들은 믿을 겁니다. 그런데 똑같이 현대에 어떤 마을이 있는데, 반인반수인 아이가 태어나자 그것이 불길하다고 여겨 아이를 죽여버린 이야기를 써도 독자들은 믿을 겁니다.

동물과 인간이 섞였다는 그 사실보다 그 주변 요소들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괴물성’ 책에서도 계속해서 작가가 말을 합니다. ‘괴물’이란 것은 정해져 있는 시각적 형태도, 심지어 비시각적 형태도 아니라고. ‘괴물’이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해석에 달린 거라고.

그것이 아마 진실에 가장 가까운 것 같습니다. ‘괴물’은 내 안에 있는 거란 것.


9: 특이 취향자를 위한 ‘괴물성’

00:58:38-01:06:00

[Music: Is Leroy on It – Southside Aces]

여러분? ‘괴물성’ 책 재밌어요.

여러분이 저의 이런 랜덤한 썰을 좋아하신다면, ‘괴물성’도 좋아하실 겁니다. 물론 이 작가분은 저보다 훨씬 두서 있게, 계획 있게 책을 쓰셨는데, 여러분이 저처럼 연결고리를 찾는 걸 좋아하시면, 제가 이번 에피소드에서 말한 거의 천 배, 정말로 천 배는 찾을 수 있어요, 이 책 하나로. 엄청 굿딜이죠?

종이책은 이미 나왔고요, 전자책은 나올 예정이라서 오늘은 종이책 얘기를 집중적으로 할게요. 전자책 얘기는… 다음 시즌 에피소드 1. 시즌 2 에피소드 1에서 정리해서 언급을 하겠습니다. 4월이 되겠네요. 그리고 시즌 일정도, 어… 시즌별로 에피소드를 12개씩 하는 것이 지금의 계획입니다. 그 사이에 한 달 정도 쉬고요. 이 일정은 이번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 에피소드 12에서 안내해드릴게요.

아무튼 ‘괴물성’ 종이책은요, 범고래출판사 사장님, 이혜원 씨, 우리 혜원이 친구가 직접 책을 부쳐드립니다. 구매 양식이 있어요. 그것을 작성하시면 혜원이 친구가 부쳐드리는 겁니다.

[Music ends.]

네. 여러분. 혜원이 친구. 좋은 사장님이에요. 사장님 좋아요. 그리고 저희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생긴 단어가 있어요. 한땀주의. 네. 저희는 한탕주의가 아니에요. 한땀주의이고,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이렇게 한땀한땀 책들을 번역해나갈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장인 정신으로다가. 할 겁니다.

아무튼 이 구매 양식에 있는 기본 선택 사항 중에서는 한국 내에서만 배송이 가능하답니다.

종이책을 사면 제일 좋은 것은, 메릭의 얼굴이 표지에 있습니다. 여러분? 조셉 메릭. 코끼리맨을 아십니까? 아마 데이비드 린치 님의 영화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텐데, 그 실존 인물, 조셉 메릭이 표지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너무나 세련됐어요. 쇼노츠에 링크된 책 표지를 한번 봐보세요. 우리 혜원이 친구가 이 사진을 표지에 쓰자고 했는데, 역시 우리 혜원이 친구 센스가 너무 좋지 않습니까?

괴물성 표지
메릭이 얼굴이 들어간 ‘괴물성’ 책.

메릭이가… 이것을 번역하다 보니 메릭이한테 정이 들어가지고, 메릭이가 얼굴이며 몸이 부풀어 오르는 곰팡이성 병이 있었대요. 그래서 공공장소에 갈 때는 얼굴에 보자기 같이 생긴 것을 쓰고 다녔어요. 그런데 한쪽 눈에만 그 부풀어 오른 피부가 없어가지고, 그쪽에만 구멍을 뚫어서,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표지 사진이… 참 슬프기도 한 동시에, 세련됐습니다. 패션지 사진 같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괴물’이라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고, 메릭의 강렬한 눈빛만 보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그렇게 가리고 다니면서, 눈만 내놓고 다니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길 바랐을 것 같단 말이죠. 그러니까, 자신의 껍데기 말고, 자신을.

이 메릭이에 대한 이야기가 챕터 5입니다. 메릭이는 자기만의 챕터가 있어요. 그리고 좀 더 현대에 가까운 시대가 배경이기 때문에, 더욱 더 뭔가… 이 메릭이의 상황은 지금도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 메릭이 얼굴이 있는 종이책을 들고 다니시면, 2022년 핫템, ‘괴물성’ 책의 소유자로서, 혹시 길에서 다른 ‘괴물성’ 소유자를 마주치면, ‘저기 혹시, 코끼리맨을 아십니까?’ 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여러분, 7화에서 얘기했었죠? 인간 포장. 그중에서 이 ‘괴물성’ 책을 시크하게 들고 다니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투자입니다. 그 어떤 명품보다 있어 보이고, 심지어 실제로 있어요.

여러분? 봄이 되기 전에 투자하셔서 벚꽃 피는 계절에 메릭이와 함께 ‘괴물성’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10: 마무리

01:06:00-01:08:14

[음악: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오랜만에 상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얘기를 해서 재밌었습니다. 역시 무경계성이란 인생에 흥미로움을 더해줍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그리고,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음악 끝.]


모든 링크


♥️ ‘괴물성’ ♥️

http://orcabooks.co.kr/monstrosity-괴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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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한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