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 블루오션: 집합의 조우

아임 드리밍 [Ep. 12] 블루오션: 집합의 조우

1: 오프닝

00:00:00-00:03:23

[Music: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은 이번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하는 날입니다. 시즌 1, 오늘 끝나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듣기만 해도 희망찬 단어, 블루 오션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블루 오션의 정의는 investopia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블루 오션은 사업 분야에서 쓰이는 단어인데, 2005년에 만들어졌고, 혁신가들의 길을 막는 경쟁자가 별로 없거나 진입 장벽이 낮은 신생 시장을 일컫는다. 이 단어는 새롭거나 알려지지 않은 산업이나 혁신이 일어나면 나타나게 되는, 시장에서의 선택지와 기회가 드넓은 ‘빈 대양’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INSEAD? I, N, S, E, A, D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님과 러네이 모본 님이 창안하셨다고 합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넓고 광활한 푸른 바다에서 경쟁자 없이 평화롭게 지낸다는 의미’로 요약하기도 하네요. 희망찬 단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이것저것 랜덤한 얘기를 할 예정이고, 이 과정에서 폭력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혹시 폭력에 대해 듣는 게 싫으신 분들은 오늘 에피소드를 듣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언급됩니다. 배고픔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Music FADES OUT.]


2: 구기 종목과 오래달리기

00:03:23-00:09:06

여러분. 저는 운동을 대체로 못하고, 관심이 없습니다. 특히 구기 종목에서 공이 움직이면, 그리고 그것을 여러 사람이 쫓아다니면, 멘붕이 오기 시작합니다. 아니 왜? 공은 가만히 있는데 그걸 차고, 손으로 던지고, 막대기로 까고, 그러는 것인지. 그러고 공은 또 쉴 틈도 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차이고, 던져지고, 까입니다. 축구, 농구, 하키, 탁구, 테니스, 거의 모든 구기 종목이 이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불쌍한 공. 한 번 맞는 것도 아니고 계속 맞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시작할 때 공이 가만히 있는 종목은 괜찮습니다. 잘한다는 건 아니고요, 다만 엄두가 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골프와 당구가 포함됩니다. 공을 내가 치지만, 치기 시작할 때는 공이 가만히 있잖습니까? 그리고 공은 한 번 보내면 쭉쭉 앞으로 가거나, 벽에 부딪혀서 튕겨 다니다가 구멍으로 쏙 들어갑니다. 불쌍한 공에게 쉴 틈이 있어요. 게다가 이것들은 혼자 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이런 종목의 경우, 잘하지는 못해도 괜찮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

그러나 더 괜찮은 건 공이 아예 없는 종목입니다. 나 혼자 내 몸으로 하는 운동. 여기에는 수영, 요가, 달리기, 걷기가 포함됩니다. 이러한 운동들 역시 제가 잘한다고 할 순 없어요. 그런데 얘네는 하려면 합니다.

이 특징 때문인지, 저는 구기 종목을 잘한 기억은 없고, 어렸을 적, 600명 정도의 학생이 참여했던 오래달리기 대회에서 전교 10위권에 든 적이 있습니다.

600명 중 10위면 상위 1.7프로입니다. 이것이 제가 태어나서 운동으로 제일 잘해본 결과물이었습니다. 1.7프로면 킹 괜찮잖아요. 아주 좋은 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걸로 인하여 제가 달리기를 잘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600명의 참여 학생이 출발선을 떠나긴 했는데, 그중 95%가 끝까지 안 달렸기 때문입니다.

600명 중 95%면 570명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달리기 실력으로 보자면 30명 중에서 10위권에 든 겁니다. 갑자기 성적이 확 안 좋아지죠. 상위 1.7프로가 아니라, 그냥 상위 33프로에 든 겁니다.

학생들이 안 달렸어요.

당연합니다. 이 오래달리기를 학교에서 한 게 아니라 학교 바깥에서, 무슨 사생대회 하는 날이었나? 그런 날에 했는데, 날씨도 좋고 학교 밖이고 하니까 학생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놀러 다녔던 것 같습니다.

오래달리기는, 말 그대로 오래 달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시간이 아까울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사람들도 시간이 없습니다. 어리다고 시간이 더 많지 않습니다. 날씨 좋은 소풍 날에 갑자기 랜덤하게 위에서 시키는 오래달리기가 시간이 아깝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건 대체로 당연합니다.

그런데 저는 왜 참여했냐면요.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안 달리길래.


3: 가지 않은 길

00:09:06-00:12:10

[음악: Cycle – Lane King]

로버트 프로스트라는 시인의 시 중, 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거의… 미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시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가르치고, 누구나 다 아는 시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님은 미국 시인이고, 1963년에 사망하셨습니다.

시를 쇼노츠에 링크를 해둘 테니,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내용이 있는 시를 좋아합니다. 아무리 단어가 아름다워도, 조각조각이 아름다워도, 혼자 떠 있는 아름다운 단어의 나열을 읽을 거면 사전을 읽지, 시를 읽지 않습니다. 이 시는 제가 느끼기에 내용이 있고, 간결합니다. 제 취향입니다.

[음악 끝.]

이 시는 한국에서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용이 제목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숲을 산책하는데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더라. 그런데 두 길을 다 갈 순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덜 택한 길로 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 좋게 풀렸다.

이런 내용입니다. [추가 해석은 녹취록의 가장 하단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블루 오션을 주제로 한 이유가, ‘가지 않은 길’로 가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인가? 남들은 오래달리기를 안 할 때 우리는 하라고?

그것은 아닙니다. 이 오래달리기 경험이 제가 가장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게 느꼈던 블루 오션의 순간이 맞긴 하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저의 생각은 그보다 덜 물리적이고 덜 눈에 보이는 종류의 것입니다.


4: 레드 오션

00:12:10-00:18:49

[음악: Whimsical – Jon Gegelman]

그런데 일단, 물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레드 오션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레드 오션의 위키 설명을 보면 이렇습니다. ‘경쟁자가 많아 포화상태가 된 시장/산업을 ‘서로 치고받고 싸우느라 핏빛이 된 바다’에 빗댔다.’

그런데 시장/산업이 아니라도, 레드 오션인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번 주에 얘기한 브랜드란 단어처럼, 비즈니스와 마케팅 개념이라고 나온 것들 중 그냥 실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단어가 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포화, 치고받고 싸우는 것, 핏빛. 이건 비단 비즈니스와 마케팅에서만 벌어지는 현상들은 아닙니다.

아무튼, 저는 당시에 오래 달릴 때를 빼고는, 대체로 남들이 하라는 걸 했습니다. 예를 들면,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이게… 아, 누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해서 한 게 아니라, 살려고 했어요.

당시에 학교에서 직업이 교사인 자들이 공부 못하는 애들을 너무나 괴롭혔고, 부모가 가정 사정으로 인해 애한테 신경을 못 써주면 또 괴롭히고, 애들 앞에서 담배 피우는 건 기본이고, 애들 만지고, 수업 시간에 별 성적 헛소리까지 했습니다. 학생을 때릴 때는 대걸레가 부러질 정도로 때린 경우도 있습니다.

[음악 끝.]

이러면 제가 무슨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시대에 학교에 다닌 줄 아실 수도 있는데, 아닙니다. 이 학교는 21세기에 존재하던 학교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뭐, 교장이 화장실에 몰카를 달아도 징역 2년이면 된다고 하네요.

아무튼 여기가 레드 오션이었습니다. 일단 다른 데로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공부하는 게 유리하길래 공부를 했습니다. 최고 성적은 600명 중 전교 5위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걸로 자기 방어 효과를 톡톡히 봤기 때문에 유용했지만, 지금은 심히 무의미한 숫자입니다.

이, 미래에는 무의미해질, 당장에만 유용한 도구에 아주 많은 에너지를 쓰던 상황에서 어느 날 오래달리기를 한 겁니다.

아무도 없더라고요. 95%가 출발선에서 출발만 하고 안 달렸으니까. 달리는 길이 생각난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 길이 시적으로 아름답고, 뭐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달렸어요. 아무… 오랜만에 아무도 없길래.

그리고 상을 타고서도, 그 자체로 대단히 좋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안 달려서 제가 순위권에 든 것뿐이란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난 지금, 당시 한 것 중에 제일 잘한 일을 꼽으라면, 이 오래달리기가 포함이 됩니다. 말 그대로의 레드 오션에서 겪었던 거의 유일한 말 그대로의 블루 오션.

자기방어 용도가 아니라, 상 타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고, 끝까지 뭔가를 한 가장 최초의 기억이 이거거든요. 오래달리기.

그런데 아까는 블루 오션이 이렇게 물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한아임이 말하는 블루 오션이란 뭐란 말인가?

음. 저는 진짜 블루 오션은 이 표면적 블루 오션과 표면적 레드 오션,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건들이 겹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집합 말입니다.


5: 그리 가는 길

00:18:49-00:25:37

[음악: Cupcake – Tom Goldstein]

교집합이 아닌 집합에 대해 먼저 얘기를 해봅시다.

사회에서 ‘가지 않은 길’의 반대. ‘모두가 가려고 하는 길’은 대체로 교집합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집합입니다. 뭐 하나를 잘해서 블루 오션까지 올라가는 전략.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겁니다. 공부를 해라. 공부를 잘해라. 진입 장벽이 당연히 높습니다. 레드 오션이에요. 남들도 다 공부하려고 하니까요. 그러나. 이 장벽을 일단 넘어서, 대학을 가서, 검사든 변호사든 의사든 돼라. 그러면 신세계가 열린다. 그곳이 블루 오션이다.

이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의사든 검사든 변호사든, 그것이 되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의사 검사 변호사, 가 될 겁니다. 그러면 신세계가 열리겠죠, 다른 사람들은 잘 못 가는 곳이니까.

또한, 일단 높은 진입 장벽을 넘어야 진입 장벽이 없는 듯한 블루 오션에 갈 수 있다는 것 역시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냥 태어났는데 기회 하나 잘 잡아서 어쩌다 보니 뭔가를 잘하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공부든, 축구든, 달리기든, 노래든, 춤이든. 없어요.

또한, 그냥 태어났는데 기회 하나 잘 잡아서 사업을 했는데… 어… 그 사업이 잘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유지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쉽다면, 금방 다른 누구도 눈치 채고 시장에 뛰어들 겁니다.

[음악 끝.]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단 한 가지의 무언가로 블루 오션까지 가려면, 가는 데에, 머무르는 데에, 그리고 그곳이 레드 오션으로 변모함에 따라 적응하는 데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들어갑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단 하나의 기준에 따라 잘해보려고 하면, 그 끝에 이론적으로는 블루 오션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다다르는 과정까지는, 또한 거기에 모두가 다다르지는 못하는 게 포인트이기 때문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 점차 더 확실해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레드 오션으로 보이게 됩니다.

내가 축구를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해서, 그걸로 남들이 범접도 못하는 블루 오션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서 위인이 되는 것도 너무 힘들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아무 노력도 없이 남들이 눈치 못 챈 블루 오션을 발견하는 것도 힘듭니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다가 잘되는 건, 사실 진입 장벽이 최고로 제일 높은 분야입니다. 정말 확률이 낮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한 가지만 잘해서 블루 오션까지 가기가 너무 힘든데도 불구하고, 21세기 초반까지는 이 힘든 전략이 최고의 전략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매스컴, 말 그대로 mass communication, 이 mass, 떼. 떼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대세였습니다. 공공 라디오. 공영 방송. 케이블 티비조차도.

이런 상황에서는, 레드든 블루든 최대한 큰 바다, 큰 집합에 들어가서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어떤가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팟캐스트. 우리 손바닥에 쥐고 있는 이 스마트폰, 이거. 중세 시대 사람들이 봤으면 우리를 신으로 숭배하게끔 했을 그 도구. 우리한테 그게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집합조차 집합들이 겹친 부분이라는 점을 의식하면, 제 생각엔 여기에 블루 오션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6: 교집합

00:25:37-00:31:38

[음악: Want to Dance? – Scene 3 – Maya Belsitzman & Matan Ephrat]

저번 주에 잠깐 오스카 와일드 님을 언급했습니다. 그분이 한 명언이 있습니다.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taken.

이 말을 다차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오스카 와일드 이분은, 워낙 말을 재밌게 하십니다. ‘너 자신으로 살아라. 그것이 가장 유리하다.’ 뭐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저번주에 ‘남들 T.O. 다 찼다’고 번역한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Everyone else is taken.” 자리가 찼다는 거죠.

일단 이렇게 재밌고요. 1차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오래달리기를 해봐라, 겠죠? 남들 안 달리니까 해봐라. 표면적 블루 오션으로 가라.

그런데 아까 말했듯이, 표면적 블루 오션은 사실은 정말… 정말 레드 오션입니다. 한 가지를 잘하는 거.

내지는, 표면적 블루 오션은 저의 오래달리기 경험만큼 좀… 무용해요. 그것이 저한테 유용한 이유는 다른 게 너무 레드 오션이었던 때에 느꼈던 블루 오션이라서 그런 거지, 그 자체로, 지금 이 나이에 오래달리기로 블루 오션을 찾는다는 건, 어… 어렵습니다. 그게 더 레드 오션이에요.

그러나, 2차적으로 오스카 와일드 님의 말을 해석해보자면, 교집합으로 가라는 겁니다.

[음악 끝.]

거주 환경, 노동 시장, 연애 시장, 결혼 시장, 하여간에 인간 시장이 다 레드 오션인데, 그 와중에, 그 레드 오션조차도 겹치고 겹치고 겹치면, 무엇을 선택해 겹치느냐에 따라 더 레드 오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블루 오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집합을 찾는 건데, 이때, 그냥 ‘나’라는 사람, 생물학적으로 유일한 DNA를 갖고 있는 사람을 보고 교집합에 있다고 제가 지칭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집합도 교집합도 아니고, 개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속해 있는 집합들 여럿을 발견해 내고, 그것들을 겹친 결과가 교집합입니다. 이 교집합에는, 나 혼자만 있어도, 세상과 접점이 많습니다. 오히려, 나 혼자만 있게끔 겹친 교집합일수록 접점이 많아요. 즉, 세세할 수록 접점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냥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거주자인 것으로는 접점이 세 개밖에 없습니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심지어 접점이 세 개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네요. 집합에 속한 점점 작아지는 집합들이니까요.

그런데 여기다가, 취미. 뭐. 영화 보기.

또 여기다가, 좋아하는 색깔. 파란색.

또 여기다가, 부먹이냐 찍먹이냐.

이렇게 얹기 시작하면, 점점 더 교집합에는 나 혼자만 있게 되면서도, 신기하게도,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주민이기만 했던 때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접점이 생기게 됩니다. 이 지구상에 영화 좋아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파란색 좋아하는 사람. 그 중 부먹인 사람, 찍먹인 사람.

여기, 이것들의 교집합이 제가 생각하는, 진입 장벽이 낮은데 놀랍게도 나 빼고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블루 오션입니다.

가장 세밀하고, 가장 접점이 많은 곳.

나만 갈 길인데도, 내가 간다는 걸 수많은 사람이 목격할 수 있는 길.


7: 일기장과 라면

00:31:38-00:42:15

[음악: Organism – Roie Shpigler]

인터넷에서 보이는 댓글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일기는 일기장에.’ 입니다. 이 댓글러가 목격한 인터넷 세상의 무언가가 혼자 일기장에나 써서 비밀로 간직할 정도로 무가치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일단, 일기가 무가치한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자기가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기로 한 것이 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남이 봐주든 말든, 그것은 그 자체로 존재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소설을 썼어도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면 일기입니다. 픽션이 가미된 일기. 또한 세상에서 제일 어마어마한 영화를 만들었어도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면, 그 효과가 집에서 라면 끓여 먹는 유튜브 브이로그보다 못합니다.

그 영화가 무가치하진 않지만, 효과가 유튜브에 올린 브이로그보다 못하단 겁니다. 나만 알고 있는 것과,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의 파급력 차이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파급력이 있어야 좋다는 게 아닙니다. 파급력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현재, 어마어마한 소설이든, 대단한 영화든, 원래는 일기라고 불릴 글이든, 집에서 라면 끓여 먹는 브이로그든, 그것을 일단 만들었으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일기는 일기장에’라고 주장하는 사이에, 또 다른 누군가는 집에서 라면 끓여 먹는 브이로그로, 누군가가 깔보는 바로 그것으로 공감을 사고, 파급력을 늘립니다. 파급력을 늘리려고 올린 게 아니더라도 파급력은 늘어납니다. 돈을 안 벌어도 늘어나요.

애초에, ‘일기는 일기장에’라고 쓰는 이자를 보십시오. 이자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는데, 이자는 자신이 일기장에 쓰라고 비웃는 그 내용에 댓글을 닮으로써 겨우 자신의 존재를 피력했습니다.

[음악 끝.]

이것이 이자가 일기라고 비웃는 이 내용이 파급력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게다가, 라면 끓여 먹는 브이로그 하나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집합을 알아낼 수 있죠? 저를 예로 들어볼게요.

[보글보글 효과: kitchen prep – hot water boiling bubbling – kolyakolis]

일단 저는 진라면 매운맛을 먹습니다. 가끔 삼양라면이나 안성탕면도 먹는데, 기본은 진라면이고요, 신라면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대개는 계란을 넣어 먹습니다. 이때 계란을 휘적휘적 푸는 게 아니라 그냥 수란처럼 익히는데, 그러면 계란이 약간 보푸라기? 보풀보풀하게 풀어져 나와서 저절로 좀 휘적거리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그냥 둡니다. 그러면 국물이 맛있어져요. 만두국을 끓일 때, 일부러라도 만두 한두 개는 옆구리를 터뜨려 주면 국물이 왕짱 맛있어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그리고 제가 예전에는 수프 분말을 다 넣지 않았어요. 왠지 그냥…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언젠가부터인가, 3년은 된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그딴 식으로 라면을 먹을 거면 차라리 먹지 말자. 뭐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라는 생각이 들어서, 수프를 다 넣습니다. 킹 맛있어요.

이… 라면 면발이라는 것이… 수프의 짠 정도에 따라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것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프를 다 넣기로 한 것.

그리고, 라면을 전에는 냄비에 두고 먹었거든요? 냄비에서 덜어 먹는 맛도 쏠쏠해서요. 그런데 요즘에는 큰 그릇에 한꺼번에 부어서 먹습니다. 그냥 그렇게 습관이 바뀌었어요.

또한 저는 늘 나무젓가락을 씁니다. 직업병입니다. 타이핑을 많이 하다 보니, 쇠젓가락은 손가락이 너무 아파요. 얇고 무겁고, 여러분? 쇠젓가락 쓰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는 거 사실입니까? 제가 확인은 안 해봤는데 그런 카더라가 있더라고요.

저는 나무젓가락을, 모든 음식을 먹을 때 나무젓가락을 쓰는데, 일회용 젓가락이 아니고 가정용 나무젓가락으로 나온 걸 씁니다. 여러 번 쓸 수 있는 거요.

이 나무젓가락을 오른손에, 그리고 숟가락을 왼손에 잡은 상태로, 라면을 몇 가닥 숟가락에 얹어서 입에 넣습니다.

네. 저는 그렇게 라면을 먹습니다.

[보글보글 효과 끝.]

자. 어떠십니까? 여러분이 제 얼굴을 모르시지만, 한아임이 라면을 어떻게 먹는지 알기 전과 후가 같습니까?

아마… 안 같을 겁니다.

라면 먹는 습관은 참말로 별게 아닌데, 누가 뭘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 아는 것은, 아는 사람에게도 힘이고, 알리는 사람에게도 힘입니다. 집합 구성원은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라면에 달걀을 넣어 드신다면, 라면에 달걀을 넣어 먹는 자들의 모임에 한아임이 합류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을 온 세상에,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알렸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라면에 달걀을 안 넣어 드시더라도, 자신이 분명화되는 느낌이 있지 않나요? 저는 그렇던데. 저 사람과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가면서 나 자신이 분명해집니다.

저는 이 집합의 동등함. 공통점이든 차이점이든, 알리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자신이 선명해진다는 점 때문에, 라면 끓여 먹는 브이로그가, 그리고 누군가는 ‘일기는 일기장에’라고 말하는 내용도, 일단 세상에 내놓으면 파급력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파급력을 예전에 비해 비교적 쉽게 쟁취할 수 있는 시대가 되자, 누가 시킬 필요도 없이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속하는 집합들을 세상에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딴 걸 누가 봐’ ‘누가 들어’라고 주장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그냥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접점을 만들 뿐만 아니라 돈도 법니다. 저는 그게 유튜브, 인플루언서 문화, 아이폰 이후의 크리에이터 문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현상이, 다음 세대 기술들이 오면서, 더 짙어지고, 깊어지고, 뚜렷해질 거라고 봅니다.

딥 페이크의 시대입니다. 사람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거, 정말 좀 있으면 일도 아니게 됩니다. 진짜 사람. 수많은 집합에 속해 있을 오가닉한 무언가. 그야말로 유기농 인간. 그건 대체하기 힘들 겁니다. 인공 지능 딥 페이크들이 그들의 역사라고 불리울 만한 걸 쓸 때까지는요.


8: 떼 아닌 집합

00:42:15-00:54:22

[음악: Whimsical – G-Yerro]

이 팟캐스트는 저만 있는 교집합을 형성하는 집합들에 속해 계신 분들을 위한 팟캐스트입니다. 불면증. 특이 취향자. 블루 오션. 집합들의 접점으로 인하여 타인이 목격할 수 있는 길.

그래서 랜덤한 별별 것들이 나옵니다.

이 길을 가기로 한 게, 팟캐스트를 하기로 한 게, 제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길로 갈 수 있었던 건 아까 그 말 그대로의 레드 오션 때문입니다. 그때가 제가 떼에 속했던 피크 시절이었고, 그때 이후로 저는 떼를 벗어나는 방법을 갈구했습니다.

이 팟캐스트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에서 팟캐스트가 더는 잘 안 된다는 얘기를 꽤 들었습니다. 지인들한테도 들었고, 한국어권 검색 결과도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어… 팟캐스트가 엄청 커지면 좋긴 하겠지만, 별로 많이 안 듣는다길래 더 좋더라고요. 아, 들을 사람만 듣겠구나. 이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 끝.]

게다가 희한하게도, 나중에야 영어권에서 제가 찾은 통계는 이거였습니다. 한국만큼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 나라가 없다고. Statista 통계에 따르면, 팟캐스트를 지난 한 달간 들은 적 있는 사람의 비율이 한국은 58%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이 사람들이 팟캐스트를 얼마나 많이, 자주 듣는지는 포함이 되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팟캐스트가 망했다고 하기엔…

네. 이것은 말 그대로의 비즈니스와 마케팅 개념적 블루 오션 같습니다. 저처럼 떼를 피해 오신 분들 말고도, 어… 떼는 아니고, 자신의 집합을 구축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블루 오션 같습니다.

이 단어들을 좀 구분해 볼게요.

제가 말하는 떼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레밍 떼. 범죄를 저지르고도 위에서 시켜서 했다고 말하는 떼입니다.

참고로 레밍은 죄가 없고, 디즈니의 사기극이었다고 하는데, 이… 디즈니가 이걸 만들었대요, 레밍들이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씬. 이 레밍 낭떠러지 씬, 서로 떠밀어서 다 같이 죽는 씬이 너무 극적이었던 나머지, 그것이 누명으로 밝혀지고 나서도 레밍들은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회자되는 거라고 합니다. 이쯤되면 그냥 상징적 의미라서… 저는 레밍 떼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그냥 여럿이 모여 있다고 해서 떼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각자 같이’가 핵심 같습니다. 좀. 낭떠러지가 앞에 있으면 생각을 해서. 제각기 갈 길을 갈 수 있으면, 제 생각에는 레밍 떼가 아닙니다.

그냥 도시에 산다고 해서 떼가 아니고. 그냥 어떤 직종이라고 해서 떼인 건 아닙니다.

이러한, 그저 여럿이 모여 있을 뿐인 도시 생활, 직종, 취미 등은 그냥 집합의 수학적 개념입니다. 위키피디아 상에는 이렇게 나와 있네요. ‘별개의 원소들의 모임.’ 오, 아예 개념에 ‘별개’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명확한 기준에 의하여 주어진 서로 다른 대상들이 모여 이루는 새로운 대상이다.’

오… 아름답다. 진짜로 ‘각자 같이’네요? ‘각자 같이’ 이거… alone together. 제가 너무 좋아하는 개념인데. 진짜 딱 집합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집합입니다. 아임 드리밍을 마주친 자들의 집합. 그리고 그 사이에 청취자님들의 거주 국가 리스트에 많은 국가들이 합류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청취자가 많은 순에서 적은 순서대로 한국, 미국, 베트남, 슬로바키아, 브라질, 스웨덴, 일본, 캐나다, 영국, 폴란드, 독일, 인도, 호주, 대만, 덴마크, 인도네시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이 있고, 이에 따라 18개국으로 아임 드리밍 시즌 1을 마무리합니다.

시즌1 마무리 기념 스샷. ♥️ 청취자가 많은 순에서 적은 순입니다. 검은 솔리드 박스로 가린 부분은 청취자 % 수치인데, 왠지 전체 공개하면 프라이버시 침해인가? 싶어서 속 편하려고 가렸습니다.

저는 이렇게 규모가 작은데 이렇게 다채로운 국가 분배를 그 어디에서도 처음 봤습니다. 지금 세상에 200개 정도의 국가가 있는데,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중 18개 국가에 거주하는 분들이 아임 드리밍 팟캐스트를 마주치셨다니. 에피소드를 여럿 들으신 분들도 계실 거고, 듣다 만 분들도 계실 텐데, 이러나저러나, 우연히라도 18개국은 신기합니다.

그리고, 유튜브에 댓글 남겨주신 윤 땡땡 님, 감사드립니다. 어… 실명을 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아가지고, 윤 모 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유튜브의 여러 구석구석 중에 제가 black screen village라고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영상 사이트로 알려져 있는 유튜브에 와서는 black screen을 검색해서, 영상을 보는 게 아니라 오디오를 들으며 잠잘 때 듣는 용도로 쓰는 유저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목이며 썸네일에 죄다 black screen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영상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하고 있는 팟캐스트들을 별 기대 없이 올렸습니다. 암만 그래도 비디오 콘텐츠에 묻힐 확률이 높지 않나 예상을 하면서요.

그런데 윤 땡땡 님께서, 원래는 스포티파이에서 들으시는데 유튜브에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디오계가 앞으로 몇 년간 더 팽창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 내 통계를 보면,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에 비해 어리고, 교육을 많이 받았으며, 심지어 돈이 많대요. 이것에 대한 이유를 추측한 이론 중에는 ‘바쁜 능력자들이 영상 볼 시간 없어서, 책 읽을 시간도 없어서 팟캐스트를 듣는다’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한 통계는 보지 못했는데, 오디오계가 당분간은 죽기는커녕 팽창하지 않을까 싶고, 또한 그 안에서 팟캐스트계도, 유료화 옵션은 점점 더 많아지기만 하는데, 과연 죽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스포티파이가 유료화 시스템을 만들고 있거든요. 지금은 베타인가 알파 테스트 중인데, 언젠가는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열릴 예정인 이 시스템은,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유료 구독자들을 데려올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여기다가 픽션 오디오를 넣고 싶어요. 저의 Vault를 구독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스포티파이의 이런 전략은 애플에서 벌이는 일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애플은 늘 그렇듯 자기 생태계에 있는 것들은 자기중심적으로 돌립니다. 애플을 통해서 구독을 해야만 해요. 결제도 돈 더 떼어 가고. 이것 때문에 게임 디벨로퍼들이 많이 힘들어 하던데.

그런데 스포티파이는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하고, 저는,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Vault 얘기가 나왔는데, 2월 말에 구조 개혁이 완료되었습니다. 팟캐스트 청취자 거주지 통계가 엄청나게 국제적인 가운데, 제가 영어로 쓴 거랑 한국어로 쓴 거를 한 군데에서 다 읽을 수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와서 말입니다. 또한, 교집합을 더 많이 드러냈더니 제가 참말로 편하고 기부니가 좋길래. 다 합쳤습니다.

그래서 뉴스레터가 영어와 한국어 두 개 합쳐서 나갑니다. 뉴스레터는 팟캐스트처럼 긴 게 아니라서 가능해요. 제가 이런 식으로 이개국어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분을 한 분 발견했습니다. IT 업계 분이신 것 같은데, 영어와 중국어로 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사명감을 갖고 하시는 것 같던데, 저는 또 사명감이 있다고 하면… 일단 좋습니다. Kevin Xu 님의 뉴스레터, Interconnected입니다.


9: 시즌 2 안내

00:54:22-00:58:28

[음악: Creme Brulee – Ziv Moran]

시즌 1은 이번 에피소드로 끝나는데, 저는 4월 22일에 시즌 2로 돌아올 겁니다.

이것이 어떤 패턴이냐면요, 18주가 하나의 움큼인 패턴입니다. 그 움큼 안에 12와 6이 있습니다. 12 더하기 6은 18. 12는 12주 동안 시즌인 것. 6은 6주 동안 비시즌인 것을 나타냅니다. 합쳐서 18.

우주 상수를 좋아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18, 12, 6 느낌이 좋습니다. 나누기에 좋아요.

심지어,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이 에피소드가 나가는 날이 3월 4일인데, 4월 22일과 3월 4일 사이의 간격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49일입니다.

두둥. 49는 무섭고도 의미로운 숫자가 아닙니까? 49재. 거기다 7 곱하기 7. 완전히 다시 태어난다는 얘기인지.

뭔가 이야기를 붙이면 기억하기가 쉽습니다.

[음악 끝.]

아무튼, 시즌제를 선택함으로써, 팟캐스트를 더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아웃이 안 오니까요.

또한, 시간이 흘러야 할 수 있는 얘기들을 다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지금, 화성에 간다. 에이아이 집사를 가정집에 고용한다. 에이아이 내레이션. 에이아이 번역. 메타버스.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곧 옵니다, 얘네들.

그리고, 요즘 기술이 아닌 것도 요즘 것들이 변함에 따라 새로운 시각들이 반드시 생길 겁니다. 귀신. 미신. 괴물. 납량특집. 꿈. 도플갱어. 기타 등등.

에이아이 로봇이 집사인 세계에서 우리가 다룰 도플갱어의 의미는 지금 현재 도플갱어가 의미하는 바와 확연하게 다를 겁니다. 앞으로 변할 세상에 대해 얘기하려면 총 기간을 늘리고 그 사이사이에 비시즌을 갖는 게 유리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4월 22일에 풀 에피소드와 함께 돌아옵니다. 다음 주에는 이번 에피소드를 안 들으셨거나 새로 합류하시는 분들을 위해, 아주 짤막한, 안내 에피소드만 올릴 겁니다.

그런데 풀 에피소드는 4월 22일에 온다는 점.


10: 마무리

00:58:28-01:02:51

[Music: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하고 같기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왜냐?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블루 오션인 각자의 교집합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곳에서 잠시 저의 교집합과 마주치는 집합 공간으로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시 아임 드리밍의 이번 시즌에 등장했던 음악이 궁금하셨던 분들은, 제가 만든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서 그것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내에서는 Artlist라는 곳에서 음악을 라이센스를 하고 있고요, 그것은 스포티파이랑은 별개인데, Artlist로 라이센스한 이 팟캐스트 내의 음악이든, 스포티파이를 통해서든, 뮤지션들이 돈을 법니다.

아무튼 시즌 음악 외에도, 제가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걸 좋아해서 소설마다 그걸 하나씩 만들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제 프로필에 가셔서 구경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우리랑 집합이 겹치는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지금 녹음 시점은,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 째입니다. 이 일의 원인과 결과를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사기꾼들이 판을 치기도 하는데, 포츈지에서 나온 기사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부금을 받고 있는 단체들의 목록인 기사인데, 여기에 나온 단체들은 진짜인지 아닌지의 확인 과정을 거쳤을 거라고 생각되어, 링크를 하겠습니다. 가능하신 분들은 기부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장 내일 폭력이 멈춘다 하더라도, 지금껏 벌어진 일 때문에 한참을 계속해서 지원이 필요할 겁니다.

저는 이 목록에 있는 단체들 중 International Medical Corps라는 곳에다 기부를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부디 건강하고 안전하게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Music ends.]


모든 링크


로버트 프로스트 님의 The Road Not Taken에 대한 추가 해석

제 생각에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대한 적절한 번역은 아래 링크에 나온 의미 대로입니다. 중립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 보다는, ‘좋은 쪽으로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여겨집니다.

https://www.macmillandictionary.com/us/dictionary/american/make-a-difference

이유는 이렇습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두 길에 대한 화자의 의견이 좀 왔다 갔다 합니다. “just as fair”처럼 두 길이 동일하게 좋아 보인다는 표현이 있다가, 바로 다음 줄에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이라며 ‘이쪽과 저쪽이 다른가?’ 긴가민가해 합니다.

그러다가 또 저기 저쪽은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비슷하게 닳아 있었다, 라고도 합니다. 그러고는 다음 줄에서도 “equally lay”라고, 동등하게 길이 놓여 있었다고 하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라고 말을 합니다. 마치 내내 두 길 사이의 차이가 확연했던 것처럼요.

이 와중에, 시의 가장 처음 부분에는 “아쉽게도 두 길을 다 걸으면서도 한 명의 여행자일 수는 없기에”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따라서 이 시에 대한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아쉽게도 두 길을 다 걸으면서도 한 인간인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어서, 긴가민가하며 사실은 비슷한 둘 중 하나의 길로 가고, 간 길보다는 가지 않은 길을 돌이켜 생각하며 ‘한숨’은 쉬되, 결국엔 자신이 한 선택이 중립보다는 살짝 더 좋지 않았나, 하고 해석하게 되는 인간미(?)를 유머 있게 표현한 것.

네, 저는 여기에 유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유머가 없고서야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 왔다 갔다 할 수가 있나 싶어서요.

아무튼, 이 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엄밀히는 기억 수정 같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부분의 번역이 중립인 것보다는 ‘내가 옳은 선택을 했다’는 뉘앙스인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그러나 기억 수정이 벌어졌든 벌어지지 않았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서 좋았다’고 화자가 결론을 내린 듯하니, 독자가 받아들이는 메시지 또한 간단하게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 가면 잘되는 경우도 있다’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스럽게 되는 현상.)

결국 인간은, 아무리 남들도 수백 번 갔던 길이라도 자신은 하나의 삶밖에 살 수 없기에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라…) 닳고 닳은 길이라도 실제로 본인이 가기 전까진 닳지 않은 길만큼 불확실해 보입니다. 따라서 닳은 길이든 안 닳은 길이든, 그 길을 실제로 걸은 뒤, 뒤돌아보며 자신이 실제보다 좀 더 용감했다고 여긴들 뭔 대수랴 싶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하든 읽고 싶은 대로 읽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면 됩니다. 이 시가 뭘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번역이 필요 없는 영어권 내에서도 해석이 다양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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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한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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