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 서열탈출: 어린이와 어른이들

[Ep. 14] 서열탈출: 어린이와 어른이들

1: 오프닝

00:00:00-00:03:04

[Music: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 좀 있으면 5월입니다. 완연한 봄이에요.

그리고 5월에는 각종 날들이 있습니다. 그중 제가 이번 에피소드에서 다루고 싶은 날은 어린이날입니다. 또한,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와 관련된 존재인 어른에 대해서도 얘기할 거예요.

그런데 한아임이 한아임인지라, 샤방샤방, 우리는 자라나는 새싹들이다. 그런 얘기를 할 리가 없습니다. 이거 그런 팟캐스트 아닙니다. 암울한 건 아니지만 샤방샤방하진 않아요.

특히 오늘 에피소드 같은 경우에는, 어린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안타깝게도 좀 좋지 않은 케이스가 언급될 겁니다. 특히나, 온라인에서 아주 신종 수법으로 애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그 위험을 알려드리고자 언급을 할 겁니다. 아마 오늘의 가장 슬픈 얘기는 그 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 범죄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그 외에는, 안 슬픈 얘기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Music FADES OUT.]


2: 90년대생이 벌써 옛날에 왔다

00:03:04-00:08:54

세상 사람들이 즐겨 쓰는 문구중에 ‘땡땡년대생이 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임홍택 님이 지으신 책, ‘90년대생이 온다’로부터 처음에 시작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강렬한 제목입니다. 아주 그냥. 오는 게 느껴져요. 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우르르 오는 소리가. 저는 책을 읽진 않았습니다만, 제목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일단 그 어떤 년대생들이 와도 다 쓸 수 있는 유용한 문구라서, 그때마다 이 책을 언급하게 되지 않습니까? 너무 좋은 마케팅 아닙니까?

2000년대생이 와도 이 책이 언급되고.

2010년대생이 와도 이 책이 언급돼요.

앞으로 영원히, 각종 년대생들이 올 때마다 이 제목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가 이 제목을 살짝 변형해서 우리가 시즌1에서 얘기했던 토픽이랑 잠깐 연결해볼게요. 제가 이 사실을 깨닫고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가지고.

여러분. 90년대생 중에서도 90년대 초반생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벌써 온 지 한참 됐단 말이죠. 인간 사회에서 이들은 온 지 한참 됐어요. 1999년생은 지금 만 23세니까 아직 완전히 왔다고 하기엔 좀 이른데, 90년대 초반생들은 한참 됐다고요.

그런데도 10년이란 세월이 길어서 90년의 시작부터 99년의 끝까지가 90년대생들의 시대이니까, 같이 뭉뚱그려지는데. 인간 사회가 아닌 곳에서도 온 지 한참 된 90년 초반의 무언가가 마치 이제서야 왔다는 듯 취급받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블록체인이 생각보다 꽤 연배가 있더라고요. 신기술인 것 같은 블록체인은 사실은 성인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좀 상용화? 내지는 알려지게 된 게 2008년에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서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어요. 위키피디아가 다 맞진 않지만, 설마 이건 맞겠죠, 이 날짜는? 아무튼 그런데 investopia에 따르면 블록체인이 태어난 건 1991년, 연구 프로젝트로서라고 해요. 그러니까 91년생이 만 17세 정도, 즉 성인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2008년에 세상에 데뷔를 했는데, 그로부터 또 십 년 이상이 흘러서 이제 2022년에 완전 성인, 진짜 사회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기억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이제 제법 메인스트림에서 논해지고 있잖아요. 쓰이기도 하고.

우리 체인이가. 벌써 그렇게 됐지 뭐야. 다 큰 으른이 됐지 뭐야. 이런 상태라서, 블록체인이 근 몇 년간 더욱 주목받았던 게 우연이라든지 너무 늦었다든지 너무 일렀다든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체인이는 만 31세잖아요? 충분히 이제 사회의, 뭐랄까, 경험이 좀 쌓인 신인이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더욱 많이 논해지는 게 아닌가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3: ‘어린이’의 정의

00:08:54-00:11:08

[Music: Happy to Be Happy – Dapun]

그건 그렇고요 여러분.

방정환 님이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에 정의할 때, ‘인생의 3분의 1이 어린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카더라가 인터넷에 떠돌았던 적이 있는데, 어느 기사에 따르면, 방정환재단 측에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정환 님이 어린이를 이렇게 정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카더라가 약간은 일리가 있지 않나요? 인생의 3분의 1이 어린이다. 왜냐하면, 평균 수명이 40세, 아니면 60세였던 시대와 어떻게 지금 시대가 같겠습니까?

그런데 또 제가 어딘가에서 이런 주장도 들었습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가장 장수하는 사람들의 그 장수량(?)이 늘어서가 아니라, 영유아 사망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즉, 옛날 옛적,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에도 80세, 90세, 100세까지 사는 사람들은 있었는데, 다만 너무 어린 아기들이 많이 죽어서 평균 수명으로 계산을 하면 마치 인구 전체는 대략 40세에 사망하는 것처럼 보여졌다는 겁니다.

[Music ends.]


4: 2010년대생이 온다

00:11:08-00:19:32

아무튼. 아까 블록체인, 우리 체인이가 90년대생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탈중앙화 에피소드를 할 때 체인이와 함께 언급했던 다른 기술이 있죠. 바로, 탱글.

탱글이는 체인이보다 나중에 나온 기술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얼마나 나중에 나왔는지를 보면 놀랍습니다. IOTA라는 value transfer protocol이 탱글을 쓰는데, 그것이 2015년에 만들어졌대요.

네. 여러분? 우리 체인이, 90년대생은 온 지 한참 됐어요. 하, 언제 오기 시작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옛날옛적부터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웬걸. 우리 탱글이가. 2015년생이라니.

여러분? 2010년대생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들이, 아, 진짜로 이제서야 막 오고 있는 애들입니다. 또한, 사람 2010년대생들도 진짜로 지금 막 오고 계십니다.

아무튼, 오늘날의 어린이들. 봅시다. 한 기사에 따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린이날을 맞아 나온 2021년 기사예요. 2022년 기사도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어린이날보다 좀 이전에 녹음을 하고 있는 관계로 그냥 2021년 걸 쓰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 이유는, 이 기사가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 관한 조사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집단적 장래 희망이 1년 사이에 엄청 많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웅진씽크빅은 5월 어린이날을 앞두고 4~16세 어린이 및 초등·중학생 회원 4만17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래희망 선호도 조사’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2021년 4월 29일을 말하는 겁니다.

‘응답자의 27.3%가 장래희망으로 유튜버와 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가수 또는 배우(16.9%) △선생님(10.9%) △요리사(10.3%) △운동선수(8.8%) △과학자(8%)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정의가 광범위합니다. 왜냐하면, 가수 또는 배우가 콘텐츠 크리에이터죠. 요리사도. 운동선수도. 콘텐츠를 안 크리에이트하는 직업은 요즘에 거의 없습니다. ‘유튜버와 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이 기사에는 나와 있는데, 저는 이것이 지금 당장의 순간의 이미지일 뿐이라고 생각하고요. 엄밀한 의미에서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유튜브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걸 게이트키퍼들이 막았을 뿐이지. 이제는 더욱더 아무도 못 막는 시대가 올 거고, 그러면 뭐든지 마케팅이나 PR 등이 얽힌 경우에는 다 콘텐츠가 될 겁니다. 그래서 요리사도 운동선수도 과학자도 가수도 배우도 콘텐츠를 만듭니다. 워낙에 창작을 하는 직업들이니까요.

그리고 또한, 혹시 콘텐츠를 안 만드는, 즉,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닿는 면이 전혀 없는 삶을 살지라도, 제 추측으로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갖가지 형태의 일을 병행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대학 졸업 이후 마케팅, 번역,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 다닐 때 클라이언트를 위해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지금 저를 위해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직업’이라는 게 대체 뭔지. ‘장래 희망’은 또 뭔지. 근대의 정의가 더는 부합하지 않는 시대에 이것들을 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기업에서 정해주는 직책, 아니면 통계에 잡히는 직종보다는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꼭지점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삶을 정의하는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계속 이야기하는 자로 살 건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계속 달라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 달라짐은 대체가 아니라 추가의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해요.

즉, 글을 쓰다가 오디오로 오로지 말만 하다가 영상 매체로 오로지 촬영만 하는 게 아니라, 글도 쓰고 오디오도 하고 영상도 하게 될 거고, 메타버스에도 가고 화성도 갈 겁니다.

지금도 글도 쓰고 마케팅도 하고 아주 작은 스케일에서의 코딩…은 많이 안 하고 있는데 코드를 수정하는 정도고요. 출판도 하고 글 편집과 오디오 편집, 전부 다. 하고 있어요. 앞으로 10년 후에는 더 많은 다양한 일을 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왜냐하면 기술이 좋아지니까요. 천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는 게 너무 가능하니까요.


5: 어린 사회인

00:19:32-00:26:28

[Music: Chocolate Factory – Petro A]

‘장래 희망’이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좀 있으면 죽을 단어가 아닌가 싶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열 몇 살짜리인 어떤 분들은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들에게는 ‘장래 희망’이란 말이 아예 성립이 안 되지 않나요? 이미 사회의 일부인데 ‘장래’라니. 또한, ‘희망’이라니.

물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제가 자주 하는 말이, ‘나는 커서 무엇무엇이 될 거야’ 이렇게 말을 하는데, 아, 뭐, 수명이 하도 길어가지고, 제가 정말 무슨 특이한 사고가 나거나, 희안한 병에 걸려서 억울하게 단명하지 않으면, 저는 4분의 1백년을, 아니, 4분의 1백년에서 반백년이라는 그 사이 어딘가에 저의 나이가 있는데, 그거는, 어… 50년은 더 살 거란 말이죠. 그러면 커서 뭐가 될지, 지금도 생각을 하기는 해요. 장래라는 것에 대하여.

네. 그렇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기관 같은 데에서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볼 때 쓰는 의미에서의 장래 희망은 아닙니다. 장래가 있으니까 희망하는 게 있을 뿐이지, ‘장래 희망’ 해서 딱 무슨 하나의 직업군을 꿈꾸고 그런 건 저는 아니거든요.

[Music ends.]

게다가 이 어린이들이, 참, 벌써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장래 희망? 음. 모르겠습니다.

정말, 학교와 사회가 분리되던 시대에나 통하는 말이 ‘장래 희망’ 같아요. 요즘에는 학교를 졸업해도 절대 교육이 끝나지 않잖아요. 대학을 졸업했든 대학원을 졸업했든 박사 학위가 100개든, 그걸 땄다고 그만 배워도 된다고 생각하면 도태될 것 같습니다.

그런 시대이기 때문인지, 이미 사회생활을 하는 열 몇 살짜리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이 엄격한 시스템 속에 들어가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온라인 세계에서 사회생활을 하시는데,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놀랍지 않습니까? 이 열 몇 살이신 분들이 로블록스 이런 데서 게임을 만든대요.

로블록스란, 어, 게임 플랫폼인데요, 여기에는 뭔가, ‘한 판 게임을 하자’는 형식의 게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사회 비슷한 것을 구성할 수도 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누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룰을 따라야지만 되는 게 아니라, 룰을 자기가 직접 만들 수도 있고, 룰이라 할 것도 없는, 뭔가 미션을 깨는 목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로블록스 안에서 회사 회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로블록스 안에서 콘서트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미. 뭘 만들고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하는 열 몇 살짜리들이 있다니.

하. 저는. 라떼는 이 나이 때. 어. 저는 남이 만들어 놓은 게임을 하고. 남이 써 놓은 책을 읽고.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아빠 차 타고 놀러 다녔습니다. 학교 너머에서 뭔가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걸 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뭔가를 내놓을 자신감이 있다는 게 저는 너무나 고무고무하고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뭘 내놓았을 때 다른 사람들이 쓴다는 것 자체가 퀄리티가 좋았다는 뜻이잖아요. 우리가 보통 이 세상에서 뭔가를 소비할 때, 창작자의 상태를 감안해서 씁니까?

저는 안 그렇습니다. 그냥 좋아서 쓰는 겁니다. 비슷하게, 이 열 몇 살짜리분들이 게임을 만들어서 누군가가 쓴다면, 좋아서 쓰는 것이지, ‘와, 열 몇 살밖에 안 되는 사람이 만들었으니까 별로라도 써야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이렇게 뭘 해보는 게 고무고무하다. 멋있다. 왕킹짱이다.


6: 로블록스는 괜찮은가

00:26:28-00:39:32

[Music: British News Team – Lance Conrad]

그런데 로블록스라는 이 특정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얘기들은 좀 걱정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혹시 이걸 듣고 계시는 분들 중에,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만드는 자녀를 둔 분이 계시면, 그 자녀와 협업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대로 알아보시기를 적극 권장드립니다.

왜냐하면요.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범죄를 분명히 해야 조심을 하니까요.

자. 로블록스라는 기업이 직접 리드한 일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상품과 서비스 내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성추행, 어린이 게임 아이템 암시장, 심지어 어린이 도박에 관한 제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생기는 것까지는 로블록스 측에서도 참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블록스가 도구를 줬는데 유저들 중 몇몇이 그 도구들로 불법 행위를 하고 다닌다고 하면, 로블록스가 그걸 일일이 다 감시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로블록스가 문제인 것으로 보이는 점, 첫 번째는 이겁니다.

어린이 성추행, 어린이 게임 아이템 암시장, 어린이 도박에 관해 취재하고 이것에 대해 제보하는 사람들을 로블록스 측에서 간혹 고소하더라고요. 혹은, 협박을 합니다. 네 발언을 삭제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Music ends.]

그런데 여기까지도, 오케이. 로블록스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마치 로블록스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처럼 뉘앙스를 풍기는 취재자나 제보자가 있다면 그걸 막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로블록스가 여기서 또 한 단계 더 나간다는 겁니다. 이런 취재자나 제보자를 협박 및 고소를 하더니. 접습니다. 굳이 협박 및 고소를 해놓고, 그냥 접는다고요.

특히나 미국은 소송의 왕국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로블록스가, 그런 기업이 정말 잘못한 게 없거나,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개인 몇을 상대로 소송을 질질 끌어서 집안을 거덜 내는 게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말. 탈탈. 탈탈탈 털어서.

그런데 그렇게 상대를 탈탈 털 만한 사이즈의 로블록스가 왜 그만뒀을까? 협박만으로. 혹은 고소까지 해놓고서.

거기다 추가로, 또 이상한 점. 유튜브나 레딧 커뮤니티에서 로블록스 유저들과 디벨로퍼들이 얘기하는 거랑 ‘뉴스’라고 나온 기사랑 너무 다른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로블록스가 소송을 이겼다 졌다에 대해서조차 서로 해석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런 소송은 누가 누구를 살해해가지고 이 사람이 죄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정도’라는 개념이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A가 B에게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고 법정에서 결론이 나긴 났는데, 이 손해배상금의 양을 두고, 또 항소가 없다는 점을 두고 A에게 승리이냐 패배이냐를 두고 왈가왈부를 하는 거죠.

너어어어어무 이상합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로블록스 비리에 대한 영상 하나를 링크하겠습니다. 4개월 전쯤, 2021년 12월에 올라온 영상이고, 2022년 4월 현재 5.4 million views가 있어요. 540만 뷰 정도가 있습니다.

저는 이 영상의 내용을 보고 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입니다. 이 저널리스트들이 너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지라, 만약 이들이 아무 근거 없이 그냥 이런 영상과 이런 의견을 지속적으로 올린 거라면, 로블록스가 소송을 안 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협박만 했다고? 유튜브 측에서는 영상을 내리려고 하지 않았고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사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험 요소들 때문에 제가 항상 탈중앙화 탈중앙화거리는 겁니다. 1차적으로, 로블록스 같은 데서 메타버스를 중앙화시킨다고 상상해보세요. 어린이 성추행, 어린이 게임 아이템 암시장, 심지어 어린이 도박에 대한 이 제보들이, 전부 다 사실은 아닐지라도 만약에 10분의 1만 사실이어도 매우 위험합니다. 여기 말고 갈 데가 아무 데도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2차적으로는, 중앙화된 언론에서 이런 범죄, 혹은 범죄의 가능성에 대해 취재하고 발표하는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지금도 로블록스는 소송을 이용해서 저널리스트들을 협박하고 있는데, 언론이 중앙화되면 오죽할까요?

3차적으로, 이것은 어린이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정말로 어린이를 데리고 이런 짓을 하거나, 이런 짓을 하는 유저들을 그냥 보고만 있는 회사라면, 어른을 데리고는 범법 행위를 못 하겠습니까?

실제로, 이 링크한 영상에 어른도 나와요. 이상한 사람들이랑 엮여서 일을 하다가 로블록스를 떠나서 Unity를 공부하신다던가? 네. 유니티 관련 영상도 링크할게요.

제가 미래에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가, 이거 얘기를 했었나?

저는 이 세상의 창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람하고도 협업을 하겠지만, 사람이 없어서, 없어도 창작물을 내놓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감독이면, 영화 감독이면, 사람 배우 없이도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게 될 거고, 배우는 인간 작가와 협업하지 않고도 AI가 쓴 작품에 출현할 수 있게 될 거고, 기타 등등, 뭐든지 뭔가 사람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되었던 모든 것이 꼭 그렇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이 찍는 사진들. 뭐, 그것의 퀄리티가 좋다 나쁘다 논할 수 있겠지만, 10년 전에 비하여 평균적인 인간이 찍는 사진의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높아지고, 그것을 하기 위하여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그것과 흡사하게 언제나 인간을 위한 자리는 있겠지만, 반드시 인간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이 점점 늘어날 거라고 보는데, 유니티가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 관련 영상, 유니티 관련 영상을 링크한 걸 보시면, 진짜, 이걸… 이게 사람이 아니래요. 여기에 나오는 이 얼굴이. 사람이 아니고 만든 얼굴이래요.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

그래서 사람성이 더 가치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인스타그램의 그 쉬운, 재밌는 사진 찍기 기능이 없었다면 인플루언서 문화가 나왔을 수 없었을 것처럼, 이런 유니티 같은 새로운 기술들로 인하여 기술적 지식이 없어서, 그리고 특히나 기술적 지식을 쌓을 시간과 돈과 뭐, 양육 환경과, 그런 요소들이 없어서 도저히 창작을 할 수 없었을 사람들이 더 많이 창작을 하게 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무고무하다고 생각해요. 할 일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그것을 다 하고 죽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가 로블록스에 관하여 링크한 이 유튜브 채널이 People Make Games라는 채널이라서 인디 게임 및 게임 전반에 대한 다른 영상들도 많습니다. 게임 분야에 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각종 제보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으나, 혹시 인터넷 세계 전반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자녀를 두신 분들, 혹은 본인이 직접 개발을 하려는 분들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7: 태어나진 자

00:39:32-00:49:05

[Music: Birth of Paradise – Alchemorph]

여러분? 우리 중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제발 낳아달라고 부탁할 만한 상태의 존재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없었으니까요.

아무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서 그런지, 어린이들을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보호는커녕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과거에는 더 많았죠.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등장한 건 인류 역사상 비교적 최근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하찮게 다뤄지지 않았습니까. 어린이를 그냥 일손으로 낳고, 부모를 부양시키기 위해 낳고, 결혼 과정에서 팔거나 결혼이 아닌 시장을 통해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이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가 세례를 받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든지.

반면 어린이가 다만 어린이라서 그들을 다른 나이대의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좋아한다 함은 성적으로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어린이에게는 뭔가 어른에게는 없는 발랄함과 순수성이 있고, 선함이 있다고 여기는 경우. 따라서 어른들이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경우.

저는 이 그룹은 아닙니다. 어린이가 발랄하고 순수하고 선하다고 여기는 그룹이 아니에요.

그러나 저는 어린이가 어린이이기 때문에 더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그 주된 이유가 이겁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다 똑같은데, 태어난 지 비교적 얼마 안 된 자들은 태어난 지 좀 된 자들보다 이 세상이 쇼크일 것 같아서.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Music ends.]

제가 어렸을 때, 네다섯 살인가, 이때 세수를 하다가 펑펑 운 적이 있습니다. 아주 선명한 기억 중 하나입니다. 왜 울었냐면요. 세수를 하긴 해야겠는데, 그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하수구로 들어가서 바다로 떠내려가면 물고기가 죽을 테니까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억이 이렇게 선명하다는 건, 이전까지는 물고기를 생각하며 불쌍해하고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이후에도 별로 물고기를 생각하며 불쌍해하고 무서워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물고기의 죽음을 서러워하던 아이는 불과 몇 년 후, 회를 엄청 잘 먹는 아이로 자라납니다.

이 일화가 좀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합니다. 이거에 대해 제가 별로 생각을 안 하다가 로블록스에 얽힌 이야기들을 최근에 들으며 결론짓게 된 게 있습니다.

더 정확히는, 아까 제가 얘기한 그 로블록스 관련 영상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는 어린이가 인터뷰를 하는, 목소리만 나오는 인터뷰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애는 안 우는데 내가 울어.

이 세상의 수많은 어린이들에게는 쇼크의 순간들이란 게 옵니다. 그걸 자각할 수도 있고 자각 못 할 수도 있고, 순간엔 자각했지만 나중엔 까먹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쇼크는 물고기 때문에 세수를 못 하겠다는 것처럼 좀 웃플 수도 있고, 어떤 건 성추행처럼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쇼크들을 막진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쇼크들 다음에는 받아들임의 단계가 있습니다.

저야 물고기의 불쌍함에 대해 잊어버리고, 아주 가증스럽게 회를 먹으며 세수를 잘만 하는 인간이 됐지만, 성추행이라니, 이건 대체 웬 말입니까?

그 열 몇 살짜리가 얼마나 호기심도 많고, 추진력도 있고, 야망도 있고, 에너지도 있고, 사람들한테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코딩을 해서 게임을 만들고 했을 텐데, 그 애한테 이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라고 하면. 그 모든 행동력에 대한 대가가 그냥 받아들이는 거면.

안 됩니다.

어른이 이런 일을 당해도 활력을 잃고, 하던 일을 그만둘 판에, 애가 이런 일을 당하고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면, 이 애는 인생의 너무 초반부터 너무 심각한 쇼크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아줌마가. 변호사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디벨로퍼도 아니라서 다른 건 못 해주는데. 그래도 이런 얘기를 듣고도 가만히 숨만 쉬면서 살기에는 쪽이 팔려서 팟캐스트에서 얘기라도 하고 있는 거예요. 누군가는 이걸 들을 거고, 누군가는 녹취록으로 검색해서 들어올 겁니다. 이 아줌마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은 여기까지예요.


8: 호칭과 존중

00:49:05-01:01:09

[Music: The Circus Is in Town! – Russo]

아무튼, 어린이날. 어린이들은 날이 있어요. 그리고 어른이들도 이 기회에 어른이들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네, 사실, 우리는 다 함께 죽어가는 상황입니다.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팟캐스트에서 언급하는 모든 사람들의 호칭을 다 ‘님’으로 통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일각에서 트렌드가, 세계적으로, 불필요하게 상대를 높여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알바생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격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알바님이 기분 나쁠까 봐 그렇게 한대요.

그런데 님을 붙이든 안 붙이든 알바라는 단어가… 제가 알기로는 욕이 아니거든요?

물론 알바 혹은 알바님이라고 부르면 이상하니까, ‘저기요’ 아니면 ‘여기요’ 이렇게 불렀겠죠. 그런데 그렇게 부르는 게 사장이 아닌 사람을 사장이라고 부르는 것보단 앞뒤가 맞지 않나요?

비슷하게, 요즘 미국의 일각에서는 아무나, 정말로 아무나가 자기가 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차라리 개그였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닙니다. 진심으로 자기가 퀸인 줄 알아요.

그런데, 퀸이 아닌 평민이면 기분이 나빠야 합니까? 오히려 평민이 평민임을 자랑스러워해야 그게 이 퀸주의자들이 원한다고 주장하는 평등한 세상일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모두가 평민인 대신 모두가 퀸이라고, 전혀 불가능한 말을 합니다. 무조건 자기는 퀸이고, 뭐, 남자면 킹이고.

공작이면 어떻습니까? 백작이면? 남작이면?

뭐, 어디까지 거짓말을 해줘야, 거짓말로만 충족시킬 수 있는 가짜 셀프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 그걸 자기는 유지하고 싶다 하더라도, 나는 왜 도와야 하는 건지.

이것이 대체 무슨 현상인지.

[Music ends.]

음… 저는 사장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을 사장이라고 도저히 못 부르겠습니다. 어색하게 손을 훠이훠이 흔들지라도, 사장이라고는 못 불러요.

그리고 왕국은커녕 본인 소유 웹사이트 하나도 없는 사람들을 퀸이든 킹이든, 못 부릅니다. 왕국을 가져오면 불러줄 수 있어요.

‘나에게 왕국을 가져오라! 그러면 자네를 왕이라 불러줄 테니!’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멘붕이 와서. 잠깐 이상한 걸 따라 해봤습니다.

아무튼 ‘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씨’가 좋습니다. 이것이 언제부터 하대의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이상한 존댓말… ‘여기로 가실게요.’ 이런 말. 그런 말이 태어나던 시대부터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막… 존댓말이 뭔지를 몰라서 물건에다가 존댓말 붙이는 거. 제가 이… 사물 존칭이란 것에 대해 검색해봤더니 나무위키에 진짜 기상천외한 예시가 나옵니다.

‘고객님, 주문하신 피자 나오셨습니다.’

꺄아아아아아 너무 싫어!!!

이러한, 존중이라고 일컬어지긴 하나, 전혀 아무 근거도 없는 발언들을 제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과 비슷한 시점에 ‘씨’라는 단어가 하대의 의미를 담는 단어로 전락하게 된 것으로 추측을 해봅니다.

아무튼 그런데 여기 이 위키페이지에… 해결법에… 하소서체를 쓰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고객님, 피자 나왔사옵나이다.’ 심지어… ‘고객님, 피자 모셔 가세요.’

꺄아아아아아!

물고기 때문에 슬퍼할 때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슬픈 순간일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야. 아니었어.

아… 진짜… 이게 그러니까, 업체들에서 왜 이렇게까지 어이없는 존칭을 고려하는지는 알겠어요. 안 쓰면 항의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업체 딴에는 시간이라는 자원을 절약하고 직원들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총체적 난국입니다.

빠른 트렌드에 적응하는 기업일수록,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기업일수록 존댓말 문화가 있는 국가에서도 닉네임까지 지어 가며, 심지어 존대를 생략해 가며 서로 이름만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건 한국에서도 그렇고. 독일도 요즘 많이 이렇더라고요. 제가 살 때는 그래도 기본형이 존대였는데. 요즘에는 특히나 IT 기업 쪽에서는 고객한테 보내는 이메일도 다 du 더라고요. 반말. you. 제가 고객인데, 저한테 고객님 어쩌고저쩌고. 이런 어투가 아예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님’ 괜찮고요. ‘씨’ 매우 괜찮습니다. 또한, 이름만 부르는 것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80살이든 10살이든, 이름만 불러도 돼요. ‘아임.’ 이렇게.

반말은 저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괜찮은데, 이건 두 사람 이상이 섞여 있으면 복잡해집니다. 무슨 빠른년생만 섞여 있어도 한참을 그걸 정리하고 있으니. 80살이랑 저랑 10살이랑 반말 정리하고 있으면 오죽 쓸데없이 시간이 많이 걸리겠어요.

그러니까 존대는 유지하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80살이든 10살이든, 저랑 다 같이 존대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 제가 여러 사람이랑 얘기해야 하는 일을 벌인다면 닉네임을 짓자고 할 것 같아요. 그러면 80살 할머니가 닉네임이 ‘어여쁜 별뿅뿅’이고 10살 아이가 닉네임이 ‘왕킹짱 슈방구’면 할머니랑 아이랑 서로 존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여쁜 별뿅뿅’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왕킹짱 슈방구’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다 같이 존댓말하는 겁니다. 그래야 무슨 얘기를 하지. 아까 한참 말했잖아요. 어떤 열 살짜리들이 벌써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이분들이 어린이입니까 어른이입니까? 알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이건 압니다. 나이는 신체의 발달과 노화를 짐작하는 데 말고는 별로 쓸모가 없는 개념입니다. 생각하고 그다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기분은 복잡한 존칭을 쓰느냐 마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저를 부른 다음에 할 그 말, 실제 내용, 거기에 달려 있겠죠.

그리고 제 피자의 기분도 복잡한 존칭에 달려 있지 않아요. 제가 피자 얘한테 물어봤는데, 얘는 진짜 확실히 상관없대요. 얘는 반말 해도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 피자는, 나오시지 않습니다. 제 피자는 언제나 그냥 나와요. 피자니까!


9: 마무리

01:01:09-01:04:27

[Music: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가 직접 만나게 된다면, 호칭을 정리할 시간에 내용이 있는 대화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몇 살이든, 부디 여러분의 삶에 피자에 존칭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린이든 어른이든, 5월 5일은 숫자가 딱 맞아서 기부니가 좋으니까, 축하해요.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제가 글 쓰는 것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Raw Depiction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됩니다. 영어랑 한국어가 같이 있는 뉴스레터입니다. 제가 영어랑 한국어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Music ends.]


+++ 00:35:10 부분 정정 +++ 로블록스를 떠나 유니티를 공부하신다고 한 분은 어른이 아니라, 사건 당시에도 지금도 10대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분 외에, 어른들도 피해자/증인으로 엮여 있는 것은 맞는 듯합니다. (목소리/현재 하는 일 등 상황 설명으로 보아 어른 같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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