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연말연시: 그런데 연말에 좀 치중

1: 오프닝

00:00:00-00:02:30

[음악: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아직 두 번째 에피소드라서 살짝 다시 설명을 드리자면요, 이 팟캐스트는 제가 조용한 목소리로 혼자 쇼를 하는 팟캐스트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잠이 안 올 때 남의 딴생각을 들으면 자기 자신의 딴생각을 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따라서 뇌가 쉴 수 있어지고, 따라서 졸려지고 잠이 든다는 저의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경험에서만 비롯된 이론입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고, 연말연시이기 때문에 한아임의 정체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볼까 해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는, 그리고 그 얘기를 한 뒤로는, 아시다시피, 얘기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랜덤성. 그것이 남의 딴생각의 핵심입니다. 아임 드리밍은 랜덤성을 지향합니다.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음악 fade out.]


2: 크리스마스 좋으다!

00:02:30-00:10:00

네, 여러분. 크리스마스예요.

이걸 듣고 계신 여러분은 잠 못 드는 중이실지 모르나, 그렇지만 그래도 벗뜨, 크리스마스입니다. 저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어서 눈은커녕 뭐 한국에 비하면 따뜻합니다만, 여기는 집을 나무로 지어요. 지진 때문에 그런데, 그래서 나무로 지은 집 안에 있으면 춥습니다.

제가 예전에 미국 중부에 살았을 때는 겨울 기후가 한국 못지않게 추웠습니다. 거기는 집을 벽돌로 짓습니다. 그런데 난방을 틀지 않을 경우, 제가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나무집에서 느끼는 추위와 그때 그 벽돌집에서 느꼈던 추위가 흡사합니다.

난방을 안 트는 이유는, 여기는 또 온돌바닥이 아니잖아요. 요즘에 짓는 집들은 온돌이 있기도 하긴 하던데. 이쪽 세계 사람들도 이제 좋은 걸 알아가지고. 그런데 옛날에 지은 집들은 온돌이 없고, 공기만 뜨거워지고 건조해집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난방을 안 합니다.

아무튼, 한국에 계신 분들은 눈을 보셨을 것 같습니다. 눈이 아주 많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눈 때문은 아니고 대체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좋아합니다. 남의 생일이야 저와 상관이 없어서, 그런 이유로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 저는 제 생일도 별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가 고른 날은 당연히 아니고, 심지어 우리 엄마 아빠가 고른 날도 아니라서요.

그렇지만, 거리에 익숙한 캐롤이 울리고 계피향이 나는 걸 좋아합니다. 여기는 ‘거리’랄 만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지만, 가게 같은 데를 들어가면 계피 냄새가 풍깁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처럼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정도로 음악과 관련이 있는 연휴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새해. Thanksgiving. Independence Day. Labor Day. 플레이리스트 안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 크리스마스를 전혀 안 종교적인 이유로, 음악 때문에 좋아합니다.

[음악: O Christmas Tree – Bob Hart]

음악이 가져다주는 뭔가… 순간이동성 기능? 그게 좋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작년과 재작년과 10년 전과 20년 전의, 물론 당연히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존재했던 크리스마스들을 한 번에 다 다시 겪는 느낌이랄까. 크리스마스란 뭔가… 현재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고 그런 느낌? 그런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들을 듣다 보면, 참 재밌어요. 이렇게 전통적으로 오래 가는 노래가 있는 경우도 드물잖아요. 작년에 유행한 게 올해도 유행하고, 심지어 삼십 년 전 유행하던 것이 지금도 유행해서 할아버지랑 애기랑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게 크리스마스 노래죠.

그러다가 간간이 새로운 다크호스들이 치고 들어오는데, 그 치고 들어오는 다크호스들이 다음 해 플레이리스트에도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걸 보는 맛이 있습니다.

[음악이 조금 더 나오다가 끝난다.]

궁금한 건, 정말 오래된 노래들 중에 탈락되는 노래도 있느냐 없느냐예요. 이건 뭐랄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기억을 하고 있지 않는 한 확인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10년 전 유행했던 노래가 지금도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들에 들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막연하게 궁금하기만 하고 확인은 못 합니다. 스포티파이나 유튜브 측에서는 데이터를 갖고 있겠지만 저는 없으니까, 그냥 궁금해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또 요즘엔 무한대로 콘텐츠가 누적되니까, 그냥 플레이리스트가 점점 길어져서, 노래를 셔플로 돌렸을 때 같은 노래가 등장하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리는, 뭐 그런 현상만 일어나는 것일지도 몰라요. 노래가 아주 많아져서 같은 노래가 조명은 덜 받지만,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지도 않는 거죠.

시야? 이럴 때 뭐라고 하나요…

청야?

듣는 범위를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3: 산타 이자는

00:10:00-00:17:06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Mallets, F maj, lullaby, phrase – Artlist Original]

아무튼,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상한 것도 많죠. 많은데, 특히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여긴 건, 산타할아버지라는 개념이에요.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웬 노인이 붉은 옷을 입고서는, 내 생일도 자기 생일도 아닌 제삼자의 생일을 기념해서 굴뚝을 통해 우리 집에 들어오는데, 뭘 훔치는 게 아니라 놓고 간다는 이유로 그걸 좋아해야 한다고?

이 무슨…

심지어 산타 얘는 내가 원했던 거를 주지도 않아요.

저는 어렸을 때 포켓몬에 나오는 루기아를 타고 날아다니거나 빨리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산타는 루기아를 주지도 않았고요. 저를 호그와트 아니면 우리 지역 학교에도 입학시켜주지 못했어요. 우리 엄마만 루기아 포켓몬 카드를 매우 비마법적인 방법으로 제 신발 안에 넣고 갔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거기서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12월 6일이 세인트 니콜라스 데이라서 그때 신발을 집 밖에 놓아둬요. 아침에 일어나면 그 안에 선물이 있는 건데, 루기아가 든 포켓몬 볼? 그걸 뭐라고 불렀더라? 그냥 포켓볼인가? 아무튼 그게 없고 루기아 카드가 있었어요. 그리고 무능한 산타 내지는 무능한 니콜라스 대신에 우리 엄마가 미안해했습니다. 진짜 루기아를 못 주는 바람에.

우리 엄마는 왜 남의 집에 맘대로 들락날락거린다고 소문난 산타나 니콜라스 때문에 이런 부담을 가져야 되냐, 이 말이죠. 심지어 우리 엄마는 1년 365일 극도로 높은 선물 성공률을 자랑하는데, 산타랑 니콜라스 얘네는 뭔데 자기네가 선물을 준다는 컨셉으로 유명해진 건지, 참 미스테리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요맘때쯤 생각나는 사진이 있어요. 아주 어렸을 때, 유치원 때 찍은 사진인데, 산타가 저를 안고 있는데 제가 얼굴을 피하는 사진이거든요. 제가 이 사진을 녹취록에 넣어둘게요. 저의 현재 모습은 공개할 계획이 없지만, 옛날 얼굴이 궁금하시면 쇼노츠에 있는 보관소 녹취록 링크로 들어가셔서 보시면 됩니다.

산타가 싫은 한아임 어린이.

아무튼 이 사진이… 이게 웃기기도 한데, 사실 좀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이게 제가 생각하는 그로테스크함이에요. 진짜 그로테스크한 건, 피 튀기고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로테스크한 건, 유치원에서, 싫다는 애한테, 산타 할아버지를 좋아해야 한다고 주입시킨다는 거예요.

산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그 아저씨야 이상한 사람이 아닐 수 있죠. 저야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그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어린애들한테 다가갈 권리가 주어지고, 애들더러 그걸 좋아하라고 한 거예요. 심지어 저는 그 당시에 싫었는데, 저 말고도 여러 애들이, 왜 또 산타 무서워하기도 하잖아요?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무서워하는 사람 있을 거예요. 마치 삐에로 무서워하듯이 말이죠.

아무튼 그래서 싫어하는데도, 유치원에서 날더러 가서 저 아저씨를 안으라는 거야.

변태 같습니다. 애가 산타를 좋아하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산타를 좋아해야 한다니. 그건 안 되죠.

여러분, 어린이들에게 선물 주는 아저씨를 따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선물 주는 아줌마도 안 되고, 언니 오빠, 삼촌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갓 난 동생도, 하여간 수상하다고.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내돈내산이 최고고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산타는 어차피 못 준다. 세인트 니콜라스도 못 줘요.

그냥 크리스마스면 거리에 풍기는 쿠키 냄새를 맡는 게 제일 안전…

아… 그것도 위험한가?

쿠키 냄새에 뭔 약물이 들어있을 줄 알고. 그쵸? 세상 참 험합니다.


4: 3인과 회사

00:17:06-00:26:02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Harp, F major, singular ascent – Artlist Original]

제가 이렇게 저의 유치원 시절과 호그와트에 루기아를 타고 가고 싶다는 장대했던 꿈에 대해 잘 말을 하는 것 같아도, 한아임, 그리고 제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 사이의 연결고리를 직접적으로 밝힌 사람들은 직계 가족 외에 딱 세 명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뭔가를 하는 거에 대해 말을 더 한다고 그 뭔가를 더 많이 하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실제로 그 뭔가를 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힘을 빼서 그렇게 되는 건지, 말을 함으로써 그 뭔가를 실제로 했다는 착각에 빠지는 건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경험상 그렇습니다. 백날 말해봐야 실제로 행할 시간만 줄어듭니다.

그리고 행할 시간을 최대화하고 말할 시간을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가 행하려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겁니다. 제 경우에는 이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하지도 않을 일을 한다고 해놓고서 나중에 시간 없어서 못 한다고 변명하는 일이 좀 줄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나면 뭘 하겠다고 하는 대신에 그 ‘뭘’을 실제로 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저는 별로 의지력이 세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합니다. 의지 없이도 일을 할 확률을 높이려고요.

그런 이유로, 저를 아는 사람들 중 한 명은 저와 지금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같이 이걸 할 거니까 저를 모를 수가 없다는 역시나 간단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단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짧게 부를 때는 제가 모그타라고 부르는 이 프로젝트가 무엇인지는 이따가 다시 언급을 하기로 할게요. 왜냐하면 이건 연말연시 에피소드고, 제가 올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게 이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얘를 빼놓을 수가 없거든요.

아무튼 제가 정체를 밝힌, 아니, 정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밝히게 된 원인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닌 이 친구는 저의 아름다운 친구, 전시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이혜원이라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제 정체를 아는 사람은 활동명 ‘오막’으로 음악을 하며 살고 계신 분인데, 이분은 제 머릿속에… 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어요. 실제로 그런지는 몰라요. 왜냐면 일단 제가 미국에 있고 이 친구는 한국에 있거든요. 직접 만난 지는 몇 년 됐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모두 2020년에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여행을 자유로이 못 다닙니다. 여행 계획 세워서 갈 때 되면 정책이 바뀌어요. 그래서 계획을 안 합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만난 지 오래됐고, 연락을 간간이 하지만 또 별로 내용이 없고. 사실 뭐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아는데.

아무튼 제 머릿속에서는 이분이 되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산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면요, 제가 저번 에피소드에서 말했던 지옥의 고속도로 [파트 3] 에서 라디오 채널을 돌려가며 로드 레이지를 겪고 있었던 당시, 또 그전에는 다른 동네에서 회사에 다니면서 ‘이렇게 계속 살 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당시, 이 친구는 영화를 전공하고 있었거든요. 그게 저는 너무 신기한 거예요.

회사에서는요, 베스트케이스 시나리오를 예측하기가 쉬워요. 다만 그 예측 시나리오대로 될지 안 될지를 모를 뿐이죠. 회사에 다니면은 가장 가까운 미래에 베스트 케이스 시나리오에서 내가 무엇이 되냐면, 내 상사가 돼요. 나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나의 상사를 보면 돼요. 물론 당연히 이런저런 차이가 있겠지만, 큰 틀에서 내가 갈 길은 위로 가는 거예요. 상사의 자리로.

그다음에는 그 상사의 상사가 되겠죠, 일이 잘 풀리면. 그게 아니면 옆 회사로 옮겨가서 거기서 상사를 하든가.

이렇게 회사 생활을 하면 ‘나의 최선의 상황’이란 게 보이잖아요. 표면상일 뿐이더라도. 그래서 제가 회사 다닐 때 이렇게 주변을 봐봤어요. 나의 최선은 뭔가. 다 잘될 경우 내 미래는 뭔가. 그랬더니 상사들이. 뭐, 돈도 있고, 차도 있고, 집도 있는데,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게 너무 싫던 때에 이 오막 친구가 영화 전공을 한다고 하니까 너무 신기했어요. ‘아니, 영화를 전공을 하다니! 회사에 다니는 데 필요한 공부를 안 하고 영화를 전공하다니, 왕킹 용감한 애구나!’

이런 생각이 있는데, 자주 만나질 않으니까, 실제로는 뭐 하고 다니는지 저도 모릅니다.

세 번째로 제 정체를 직접 밝힌 분은, 아까 그 첫 번째 친구, 이혜원 기획자와 공통적으로 아는 친구인데요. 이혜원 기획자와 함께하는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에 관한 소식을 전하다가 저의 필명을 알게 된 친구입니다. 이분은 활동명을 쓰지 않으시니까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이 세 분 외에는 제가 직접 정체를 밝힌 친구가 더 없습니다. 언젠가 혹시 이분들을 게스트로 모실지? 아니면 아무래도 조용히 떠들려면 혼자 떠들어야 하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5: 스포티파이 뮤직 + 토크

00:26:02-00:33:27

[음악: Christmas Brought Me You – Instrumental Version – Michael Shynes]

노래 좋죠? 크리스마스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 말고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틀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이런 것 때문에 제가 처음에 팟캐스트를 계획할 때 쓸까 했던 기능이 스포티파이의 뮤직 플러스 토크 기능이었어요.

이게 뭐냐면요. 제가 대형 방송국 피디도 아니고, 돈도 별로 없고, 어마어마한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발로 뛸 시간도 없는데, 스포티파이 라이브러리에 있는 모든 노래를 마음대로 팟캐스트에 넣을 수 있는 기능이에요.

지금 아마 한국에는 아직 안 들어간 기능이지만, 한국에 스포티파이가 들어간 것 자체가 얼마 안 됐으니까 차차 이 기능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앞으로 스포티파이가 추가할 여러 기능 또한 한국에서 제공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거 너무 좋지 않나요? 누구나 라디오 DJ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런데 제가 결국에는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 기능을 쓰려면, 노래 라이센스가 스포티파이 내부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팟캐스트를 노래 있는 상태로 다른 플랫폼에다 올릴 순 없거든요. 애플, 구글, 이런 데다 못 올리는 거죠. 스포티파이에만 올릴 수 있는 거예요.

또한 스포티파이 유료 계정이 없는 사람들은 노래를 다 들을 수 없습니다. 아티스트들한테 돈을 줘야 되니까요. 그래서 무료 계정만 있는 사람들한테는 노래가 30초 나온다고 해요.

이런 제한에다가 얹어서, 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서 이 기능을 완전히 full로 쓸 능력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안 썼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현 시스템 내에서 당연한 제한들을 고려하더라도. 돈 없고 시간 없고 라이센스계에 아는 사람이 없어도 노래를 자유로이 집어넣을 수 있다니.

여러분, 지금은 단군 이래 크리에이터로 살기에 가장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그리고 크리에이터라고 함은 꼭 풀타임으로 창작을 하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라, 뭐든지 간에 취미로, 그냥 재미 삼아 시작해보기에 이 세상에 지금만큼 좋았던 시절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 끝난다.]

글 배우기도 힘들었던 시절을 지나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서, 이쪽 세계, 그러니까 미국이나 한국 등 인터넷이 잘 연결되어 있는 국가들에서는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하나씩 손에 쥐고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천 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혼자서 할 수 있어요.

날씨도 예측해요.

방구석에 앉아서 지구 반대편 교통 상황도 알아요.

여러분. 100년 전 사람이 보기에 우리는 신에 가깝습니다.

아무튼, 음악 전문가분들은. 뮤직 플러스 토크 기능이 한국에서 시작되자마자. 한번 때를 노려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기다리는 게 별로라면.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한테 같이 팟캐스트 하자고 제안해 보세요. 지금 이 기능이 제공되는 국가 리스트가 엄청 길어요. 일본도 있거든요? 브라질. 영국. 등등.

제가 스포티파이한테 이 기능에 대해서 뭘 물어봤을 때는 답변도 엄청 빨랐어요.

저는 뭘 물어봤냐면. ‘나는 미국에 사는 미국 국적자인데, 한국어로 팟캐스트를 만들고 뮤직 플러스 토크 기능을 쓰면, 한국에 사는 한국인 유저들이 그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어?’라고 물어봤고. 그쪽에서 실시간 채팅으로 대답해줬습니다.

‘응, 들을 수 있어. 뮤직 플러스 토크 기능을 쓰려면 크리에이터는 우리가 올린 국가 리스트에 살아야 하는데, 유저 쪽에서는, 아무 나라에나 있어도 돼.’

그래서 이 기능을 쓰는 데에 국적이 중요한 건지, 거주지가 중요한 건지, 둘 다 중요한 건지를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런데 조건에 부합하는 코호스트가 있으면 팟캐스트는 같이 할 수 있는 거니까, 궁금하신 분들은 스포티파이 측에 물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이런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 혹시나 한국에 이 기능이 더 빨리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라디오 디제이가 될 수 있다니. 저는 이 기능이 정말 왕킹짱이라고 생각합니다.


6: 계속되는 스포티파이홀릭과 돈

00:33:27-00:42:02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Harp, F maj, full phrase – Artlist Original]

그리고 스포티파이가 비디오 팟캐스팅 기능도 차차 더 많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오픈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유튜브를 하시던 분들 중에서도 토크쇼 형태를 진행하고 계셨던 분들은 스포티파이 입주도 수월해지실 것 같아요.

이 비디오 팟캐스팅 기능도 다른 데에서는 없거나 밀고 있지 않은 기능인데, 스포티파이는 이제 시작하더라고요.

게다가 유튜브에다가도 비디오 팟캐스트 이미 많이 올리잖아요. 이 두 군데, 스포티파이랑 유튜브에만 올려도 전 세계 커버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튜브는 이미 비디오계에서는 1인자고, 저는 스포티파이가 오디오계, 그리고 오디오 위주 비디오계에서 세계 1인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둘 다를 할 수 있다? 그러면 뭐. 왕킹짱이죠.

그리고 저번 에피소드에서 잠깐 말했던 것과 비슷하게, [파트 9]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는 걸 쥐여주면 시장에서 이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돈 버는 사람들이 생기자 그 많은 사람들은 유튜브와 운명을 같이하게 된 것이고. 스포티파이도 이제 더욱더. 뮤지션들은 물론이고 오디오 팟캐스터, 비디오 팟캐스터까지. 그것도 글로벌하게. 나가려고 하나 봐요.

어쩌다 보니, 저번 주부터 스포티파이 광고를 하려는 건가 싶으시겠지만, 그들은 저에게 돈을 주지 않고요, 저는 그냥 평범한 주주입니다. 대주주 아니고요. 그냥 수많은 주주들 중 하나예요.

주주라서 스포티파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스포티파이를 좋아해서 주주입니다.

미국은 워낙 사회 차원에서 주식 투자를 장려하기 때문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주식을 했습니다. 입사를 하면 401(k) 등등 은퇴 계좌를 회사 측에서 베네핏 패키지의 일부로 열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매칭이라는 걸 해주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제 월급의 5%를 이 은퇴 계좌에 넣으면 회사 측에서 그중 3%까지는 풀 매칭을 해주겠다고 하는 거죠. 그리고 5%까지는 절반 매칭. 이런 식으로. 이건 회사마다 다르고,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지만 만약 이런 제도가 회사에 있다면. 이걸 이용하면 그냥 돈이 생기는 거잖아요. 원래 월급에다 얹어서. 요지는 나라 차원에서, 회사 차원에서 워낙 주식을 장려하기 때문에 주식을 하는 것이 미국에선 상당히 일반적이라는 점입니다.

간혹 주식을 하면 패가망신하는 줄 아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배경 설명을 드립니다. 저는 만 22살엔가 대학을 졸업했는데, 대학생 때부터 주식을 했고, 패가망신 안 했어요. 들으시다시피, 아주 잘 살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가 재밌습니다. 돈 얘기도 돈 얘기인데, 일반적으로 401(k) 같은 건 드라마 같은 데도 안 나오잖아요. 그리고 한국어는 한국에서 쓰이기 때문에, 한국과 다른 점이 있으면 저는 한국 상황에 맞게 설명을 매번 할 생각입니다.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아까 언급했던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는요, 한국에서 카카오톡으로 세금을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경악을 했습니다. 이런 첨단이라니. 너무 첨단이라서. 저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리고 이런 건 어디 무슨 드라마에도 안 나오잖아요. 갑자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보는데 작중 캐릭터가 ‘아, 나 카카오톡으로 세금 내야 돼.’ 안 그런단 말이죠. 그러니까 어쩌다 이렇게 얘기에서 언급되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영영. 이걸 제가 검색할 리도 없잖아요. ‘한국에서는 세금을 어떻게 내나.’ 검색 안 한단 말이죠.

그래서 401(k) 같은 얘기도. 검색 안 하고 관심도 없는 얘기. 이런 거 앞으로도 할 예정입니다.

아무튼 미국인들은 주식을 많이 하는데, 저금을 잘 안 하죠. 제가 저번에 봤던 통계로는…… 자세한 게 기억 안 나는데 뭔가 충격적인 숫자였어요. 미국인의 40%가 당장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400불이 없다? 뭐 그 정도로 충격적인 수치였어요. 저 퍼센트는 확실히 수십 퍼센트 단위였고, 돈의 단위는 확실히 500불 이하였거든요. 그러니까 진짜 신기하죠. 미국인들은 현금을 잘 안 갖고 있어요.

저는 다행히 한국의 저금 정신과, 또 전쟁 및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의 독일의 절약 정신, 그 둘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저금도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이 팟캐스트에서는 돈 얘기가 나올 수도 있어요. 돈. 주식. 세계 시장. 저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저한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는 선에서나마 관심을 갖습니다.

혹시, 설마 그러시진 않겠지만, 돈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시면, 그 돈을 저에게 주세요. 제가 잘 쓰고 여러분을 깨끗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돈 좋아하시는 분들은, 내년에는 꼭, 올해보다 훨씬 더 많이 벌고, 적게 일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7: 아임의 탄생

00:42:02-00:50:16

[음악: Christmas Is Coming – Instrumental Version – The Delegates]

아까부터 얘기하던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는 뭐냐면요. 저의 정체를 아는 첫 번째 친구인 이혜원 기획자랑 하는 프로젝트라고 말씀드렸는데. 우리 혜원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지금 이 팟캐스트도 없고, 한아임은 부캐도 아니었을 거예요.

네. 지난번 에피소드에 이어 다시 한 번 설명 드립니다. 한아임은 법적 실명이 아니고요. 필명입니다. 그리고 부캐입니다.

일단 부캐, 캐릭터려면 캐릭터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취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한아임은 그전까지 영어 필명이 쓴 영어 글을 번역하는 데만 썼습니다. 그래서 캐릭터가 아니었어요.

취향이라 함은.

한아임은 이상한 걸 발견하는 걸 좋아하고, 제가 가진 페르소나 중에 그나마 제일 외향적입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다른 페르소나로는 인스타그램? 말도 안 되지. 페이스북 가뜩이나 싫은데.

아무튼 이런 특성은 제가 정해서 생긴 게 아니고요. 혜원이 친구랑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를 하면서 생긴 특성이에요.

[음악이 끝난다.]

어느 날, 더 정확하게는 2021년 3월에 혜원이랑 통화를 하게 됐어요. 이때 혜원이가 ‘뭔가’를 하자고 했고, 저는 ‘그래, 뭔가를 하자’라고 했어요. ‘뭔가’가 뭔지 서로 모른 채 같이 뭔가를 하기로 했고요. 나중에 가서야 그것이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라는 프로젝트 형태를 띠게 됐어요. 우리 혜원이 친구의 공이 아주 컸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 우리가 일상이라고 받아들이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그로테스크한 것들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라서 이름이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예요. 그걸 지금까지 같이 하고 있어요.

바다를 건너는 여행을 계획하기에는 불안정한 요소가 너무 많아서 저는 계속 미국에 있었고요. 7월 정도부터 혜원이 친구랑 같이 시작한 웹사이트에 저는 소설 연재를 했었습니다. 마지막 편이 12월 중순쯤 올라갔어요. 제목이 ‘유랑 화가’인데. [모그타 마무리 후, 내년부터 여기에 있을 예정.] 마녀 나오고. 피 나오고. 막 그렇습니다. 슬래셔는 아니고요.

그리고 우리 혜원이 친구는 같은 기간 동안 전시에 참여하시는 여러 아티스트분들에 대한 글을 올렸어요. 지금은 모든 것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간 시점입니다. 혜원이 친구는 12월 중순부터 서울의 space xx라는 곳에서, 지금까지 몇 달 동안 소개했던 아티스트분들과 함께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로테스크. 제가 오막 친구한테 그로테스크를 얘기했더니 오막 친구는 첫 반응이 ‘무섭다’였어요. 오막 친구, 여러분?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좋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곡이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다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중 제가 부른 노래가 있기 때문에, 한번 맞혀 보세요. 저의 또 다른 활동명이 무엇인지.

네. 한아임 이름으로 노래한 게 아니라, 그때는 한아임이 부캐가 안 될 줄 알고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복잡하죠? 네. 하지만 제 목소리는 하나예요.

노래를 다 들으시면, 아니면 인스타그램에서 제가 올렸던 걸 봤던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아무튼 노래를 들으시면 제 또 다른 이름이 뭔지 맞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막 친구의 노래를 들어보시면 분위기가 느껴지실 텐데, 아마도, 저도 사실 그 친구를 잘 모릅니다만, 아마도 그는 좀 따뜻한 도시 남자인가 봐요. 일단 음악 스타일은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친구는 그로테스크가 좀 무섭다는 반응이었는데, 저는 또 그 반응을 듣고 놀랐어요.

그로테스크가 무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섭다는 이미지가 있다는 건 아는데, 실제로 무서워하는 경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안 한 거죠.

그래서인지 혜원이 친구랑 저는 그로테스크라는 주제 아래에 6개월이 넘도록 뭔가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혜원이 친구는 모르겠는데, 제가 생각하는 그로테스크는 정말 소소한 거거든요. 뭐 기괴한 괴물, 귀신, 이런 것도 그로테스크할 수 있지만, 정말 소소한 것도 그로테스크라고 생각하는 거죠. 아까 그 산타처럼.


8: 우주 상수

00:50:16-00:55:05

[효과음: Classic Recalls – Playful Glockenspiel Chime – Selkor Studio]

또 다른 예는 이런 거예요. 이 팟캐스트가 12월 17일에 시작했어요. 이 날짜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저는 제 생일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그런데도 이 팟캐스트 시작하는 날짜를 너무나 12월 17일에 맞추고 싶었어요.

왜인지 아세요?

우주 상수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저는 뭐, 우주에 대해서도 모르고 상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요. 우주 상수라는 게 있다는데, 그게 137이래요. 그게 의미롭다고 그러더라고요. 과학적 설명이 있겠지만, 저는 잘은 모릅니다.

저는 그냥 그런 걸 들으면 ‘오, 의미로와? 멋있다. 137. 음, 그래.’ 이러거든요.

그런데 그러다가 ‘아, 그러면, 이게 1년에 13월까지가 있으면, 13월 7일에 하면 좋겠다,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할 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면, ‘1월 37일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없잖아요, 13월 7일이나 1월 37일이.

그래서 꼼수를 생각해낸 게. 12월 17일입니다.

상상이 잘 안 가시죠?

그런데 여러분? 12를 써보세요. 그리고 그 아랫줄에다가 17을 쓰되, 약간 빗겨서 쓰는 거예요. 얼마나 빗겨 쓰냐면요, 12의 1의 자리 숫자인 2와, 17의 10의 자리 숫자인 1이 같은 세로줄에 오게요. 그러면 1과 2를 더하면 3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12의 10의 자리 숫자인 1이 남죠? 걔는 그대로 내려와요.

그러고 17의 1의 자리 숫자인 7이 남죠? 걔도 그대로 내려와요.

그러면 1, 3, 7이죠! 137을 만들 수 있군!

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소소한 그로테스크함입니다. 생일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팟캐스트 시작하는 날짜 12월 17일은 신경 쓴다고? 뭐 이딴 사람이 다 있어.

이런 요상한 저라서, 그리고 혜원이 친구는 혜원이 친구의 방식대로 그로테스크를 탐구하는 것을 좋아해서, 우리 프로젝트의 이름이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가 되었어요.

이 에피소드가 나올 때쯤이면 이미 전시를 한 지 1주일이 지났을 시점입니다. Space XX. 거기서 전시를 하고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대요.

아무튼, 세 사람. 이혜원, 오막, 그리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세 번째 친구.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이 세 사람에게는 한아임의 정체를 직접적으로 밝혔습니다. 연말연시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언급을 해봤습니다.


9: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00:55:05-01:06:55

[음악: O Christmas Tree – Will Taylor]

크리스마스인 지금, 그리고 월요일에는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전시가 휴관입니다. 저는 좀 궁금합니다. 휴관인 상태의 전시장은 어떤 모습일지. 이것은 여름인 바다보다 겨울인 바다가 궁금하고 좋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공간.

사람으로 채워졌었고 채워질 예정인데 잠시 안 채워진 상태의 공간.

사전 정의를 찾아봤더니, 그중 하나가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요 사전 정의로 쓰이는 것 같아요. ‘영역,’ ‘세계’를 뜻하는 말.

혜원이 친구가 전시로 공간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 전시의 키워드 중 하나가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서울시 한복판에 쌀 창고가 있다는 거 아세요? 저는 이걸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를 혜원이 친구랑 같이 하면서 알게 됐어요. 서울시에 쌀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다는 거야. 그게 비상시에 국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 비축을 하는 장소래요.

그런데 심지어, 우리 혜원이 친구 말을 인용해 볼게요. “강남구 수서동 광수산 남측에 자리하고 있으며, 교회와 사찰, 그리고 사당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의미심장한 종교” 대통학적… “대통합적 장소이다. 심지어 그 바깥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어린이집, 초/중/고등학교, 삼성서울병원, 전주이씨 광평대군묘역이 감아 돌고 있어 생로병사를 바로 옆에서 마주하는 흔하지 않은 입지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이 장소는 민간인의 접근이 제한된 정부 관리 시설이다.”

이게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여기에 제가 좋아하는 이상한 요소들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장소를 갖고 모든 장르의 얘기를 다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정부 비리에 대한 스릴러 되죠.

갑자기 귀신 나오는 공포물 되죠.

심지어 귀신 말고 약간 드라마 ‘구해줘’ 느낌 있죠? 무서운 컬트 얘기. 그것도 되죠.

[크리스마스 노래 끝]

태어나고 죽는 얘기 나오는 가족 드라마. 일일 드라마 되죠.

사극 되죠.

아주 그냥. 이곳은. 뭐에 연결시켜도 다 연결될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노래까지 까니까 정말 더욱 이상한 장소로 들립니다.

전시에서는요, 스터프 디자인이라는 팀이 요 장소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종교대통합의 장소에서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아세요?

가상화폐랑 뻥튀기까지 연결돼요.

저는 이런 걸 너무 좋아합니다. 끝도 없이 줄줄이 이어지는 거. 그래서 이 팟캐스트도 이렇게 랜덤한 것인데, 이 스터프 디자인 팀 분들이 쌀창고를 보고 이렇게 연결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너무 재밌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그로테스크예요. 무서운 것만이 그로테스크인 게 아니라, 도처에, 주변에, 평상시에 널려 있는 것들이 새롭게 보일 수 있는 것이 그로테스크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저번 에피소드에서 말했던, [파트 10] 나의 얼굴을 거울에서 매일 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느껴지는 이질감 같은 거요.

아무튼요, 재밌습니다. 아마 이 팟캐스트의 이런 랜덤적 요소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전시를 좋아하실 겁니다. 이 팟캐스트에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라는 틀이 있지만 그 안에서는 내용이 어디로 튈지 모르듯이, 모그타 전시도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이되, 상당히 다채로워요.

모그타 전시에 참여하시는 다른 작가분들은 나미라 작가님, 박도환 작가님, 그리고 오선영 작가님이신데요.

나미라 작가님은 샤머니즘 키워드 아래에 전시에 참여하십니다. 이분 작품이, 저 같은 경우에는 참 좋아하는 뭔가 트리피한 귀신, 빙의, 대대로 내려오는 어떤 미스테리한 것. 그런 분위기고요.

박도환 작가님이 북한 OS, 무려 ‘붉은별’이라고 엄청 강력크하게 이름 붙여진 OS로 작업을 하셨습니다. 전시를 시작한 지 지금 1주일이 지나서,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이미 방문하신 분들이 현장감 있게 붉은별 체험 스토리를 올려주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어이없게도.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어이가 없지 않다는 게 어이없게도.

붉은별이라는 이 북한 OS에서 김정은이랑 김정일 이름을 치면 자동 볼드 처리가 된대요. 진짜 너무 기괴하지 않나요?

북한 프로그래머들이 이걸 따로 코딩했을 생각을 하니, 그리고 뭐 북한말로, ‘간나들, 빨랑빨랑 코딩하지 않간!’ 이러면서 재촉했을 생각을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코딩’이란 말 안 쓰나?

코딩을 뭐라고 부를까요? 북한말로? 암호화…는 아닐 건데. 음.

언젠가 한번 제가 번역 일로 북한 음성 파일을 들을 일이 있었는데, 이때 정말이지 단 한 마디도 북한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번역가들도 북한말을 못 알아들었어요. 물론 음질이 안 좋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드라마 같은 데서 나오는 것보다 말이 너무나 빨랐고. 그냥 완전히 다른 나라 말 같더라고요, 억양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북한의 모든 지역 언어가 이렇게 남한과 다른 양상을 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같은 언어 같은데 같은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처럼. 가족이 가족 같은데 정말… 가-족같을 때가 있잖아요? 그리고 엄밀히는 가족이 아닌데 더 가족 같은 경우도 있고. 그런 뒤섞인 단어가 ‘가족’이란 단어인데, 모그타 전시에 오선영 작가님이 ‘가족’이라는 키워드로 참여하시고, 퍼포먼스를 하십니다.

가족 식사 장면인데요, 여러분, 이 식탁 위에 엄청난 스케일의 무언가가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분위기를 더 그로테스크하게 합니다. 그것과, 가족 식사란 것은 늘상 벌어지거나, 늘상 벌어진다고 생각되는 행위라는 점.

그러니까 그로테스크란, 정해진 무언가가 아니라 조합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비교되는 다른 무언가. 무언가와 비벼져야 그로테스크가 성립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상한 거 좋아하시는 분들. 그로테스크한 거 무서워하지 않으시는 분들. 이 연말연시에 한번 전시에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시는 무료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가셔서, 우리 일상생활에 숨어 있는 별로 무섭지 않은, 전혀 물지 않는, 신기하고 재밌기까지 한 그로테스크를 한번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10: 연말 마무리

01:06:55-01:10:13

[음악: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에피소드 이름이 연말연시인데. 연시에 관해서는 아마 다음 에피소드에서 할 말이 좀 있을 것 같아서, 그때 더 자세히 얘기할게요. 이번 에피소드가 너무 길어져서요.

아무튼, 올해 저는 정말. 혜원이 친구 덕분에 매우 생산적인 한 해였고,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합니다. 2022년에는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각종 기술적 발전들이 드디어 상용화될 거라던데. 과연 그럴지. 이제 천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는 게 아니라 만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는 날이 오게 될지. 그러면 혹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잠 못 자던 사람들이 편히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부활할 수 있게 될지 자못 궁금합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아까 말한 저의 어릴 적 산타 거부 장면을 거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원하는 것을 이루시는 2021년이셨길 바라며, 연말 에피소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음악 끝까지 계속되다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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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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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한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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