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2] 사과격차: 추의 세계 리턴즈

아임 드리밍 [Ep. 22] 사과격차: 추의 세계 리턴즈

1: 오프닝

00:00:00-00:04:57

[Music: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 벌써 옛날 옛적인 것만 같은 에피소드 7, “인간포장: 그 이후의 삶”에서 제가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세상이 추처럼 움직인다고. 그때 그 시절의 말을 인용해 보자면, “액션이 있으면 리액션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움직이면 반동이 있어요.”

그다음 에피소드 8, “페디버스: 탈중앙화 맛보기”에서도 같은 맥락의 얘기를 했었습니다. 중앙화와 탈중앙화는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가 간다. 춘추전국 시대와 유럽 영주들의 봉건 시대가 있는 반면, 강력한 왕권과 파시즘의 시대도 있다. 그리고 또 왕권은 지고 평민들의 시대가 오기도 하고, 파시즘의 시대가 지고 민주주의가 대세가 되기도 한다.

저한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생각도 많지만, 이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추의 세계,’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건 없습니다. 큰 추는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고 특히나 요즘처럼 점점 수명이 길어지고, 이제는 뭐, 영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오는 시대에는, 적응을 못 하면 힘들어질 겁니다. 그래서 경향성을 알면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꼭 그 경향성에 맞춰 가야 한다기보다는, 알고 준비하면 좋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게다가 저는 추의 세계가 어느 정도까지 적용이 된다고 생각하냐면은, 인간의 수명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는 게 지금까지의 경향이었는데, 여기에도 추의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이 적용되어, 다시 수명이 짧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 식량난 때문에. 식량의 절대적 양보다도, 질 때문에. 오늘 그래서 이거에 대해 아주 얕게 얘기해볼 텐데, 그걸 또 6층 빌딩과 엮어서 다룰 겁니다. 왜냐하면, 옥상층. 아무리 건물이 높고 층의 개수가 많아도, 단 하나밖에 있을 수가 없는 가장 높은 옥상이라는 곳. 그곳이 아직 비어 있지 않습니까? 거기야말로 그냥 놀릴 수는 없는, 소중한 장소란 말이죠.

이런 것들에 대한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Music FADES OUT.]


2: LA 도심 속 사과

00:04:57-00:14:05

제가 예전에 들은 공포 이야기가 있습니다. 귀신이 나오는 얘기가 아니고요, 에일리언이 나오는 얘기도 아닙니다.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얘기도 아니에요. 여러분? 진짜 공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뭐에 대한 공포 얘기였느냐 하면요, 사과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여러분, 사과 아시죠? 우리는 웬만하면 모두 다 사과를 압니다. 사과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나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특히나 미국에서 사과란 정말 종류가 많습니다. 사과를 그냥 ‘사과’ 하고 사 먹는 사람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과 종류가 따로 있을 정도로 사과 종류가 많고, 사람들이 사과를 많이 먹습니다. 마트에 가면 사과가 종류별로 쫙 있어요. 갈라 사과. 후지 사과. Honeycrisp. Granny Smith. Pink Lady. Ginger Gold. 뭐 별거별거 다 있습니다.

이렇게나 종류도 많고 인기도 많은 사과라서, 미국의 여느 마트에 가도 이 많은 종류 중 하나는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아무리 작고 누추한 마트라도 싱싱한 사과 종류 하나 정도는 제공해 주겠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더라고요. 그게 바로 제가 들은 공포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동네에 사느냐에 따라 사과를 사고 싶어도 못 살 수도 있다는 이야기. 사과가 너무 비싸거나, 싱싱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아예 안 판대요.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대체 뭔 소린가 싶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언제나 여러 종류의 싱싱한 사과가 있었거든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늘 사과를 팔았고, 독일에서도 늘 팔았어요. 이론적으로야 사과가 안 나는 어떤 국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제가 사는 곳 근처에서 사과를 안 판다니, 이게 뭔 소리래?

게다가 그 사실을 내가 몰랐다니? 나의 주변, 그러니까 반경 10마일, 20마일 정도 되는 장소에서 사과가 희귀할 수가 있다는 것을?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제가 몰랐던 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고, 저는 이것에 또 놀랐습니다. 저의 무지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는 데에 놀라는, 또 한 번의 무지를 발휘한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제가 다니던 미국의 고등학교는 온 사방이 트여 있었습니다. 교문이라고 만든 게 뭐가 있긴 한데, 그게 말이 교문이지 현실적으로는 뭐… 그냥 차 들어오는 거 막는 문 정도고요, 아무나 아무렇게나 들어올 수 있게 생긴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근처 다른 동네 고등학교는 담에 유자철선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그 가시 돋친 철선이 맞습니다. 이게 학교 담에 설치되어 있었고, 교문 앞에 금속 탐지기가 있었어요. 애들이 학교에 총 갖고 올까 봐.

그런데 저는 이것도 오래도록 몰랐거든요. 그냥 몰랐습니다.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이 동네들 사이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는데도 몰랐습니다.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넘어갈 때 아스팔트가 새로 깔렸느냐 안 깔렸느냐로 바로 차이가 납니다. 그렇지만 그걸 보고 다른 동네 사람들의 고등학교 구조는 ‘이러이러한 식으로 다를 것이다,’ 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나 달랐던 겁니다. 같은 카운티의 근접한 동네들이 이렇게나 다를 수도 있었고, 저는 그 다른 점이 대체 무엇인지 직접 듣기 전까지는 몰랐다는 거죠. 금속 탐지기처럼 뭐랄까, 즉각적으로 심각한 차이에 대해서도 몰랐는데, 하물며 즉각성이 덜한 것처럼 느껴지는 사과의 유무에 대해서 모르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몇 번 했던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걸 모른다. 그런데 그걸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걸 안다. 어느 정도로 아느냐 하면, 남들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굳이 내가 다닌 고등학교와 저 사람이 다닌 고등학교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비슷했겠거니 생각합니다.

사람은 정보가 따로 주어지지 않았을 때 자기가 아는 적당히 비스무리한 것으로 그 빈 공간을 채운다는 뜻입니다.

이러니까 무슨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금속 탐지기든 유자철선이든. 사과가 있든 없든, 얘기할 일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사는 동네에선, 이렇게나 랜덤하게 서로 다른 점을 얘기할 만큼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집 밖에 나아서 1시간 정도를 걸을 때 마주치는 보행자의 수가 평균적으로 5명 정도입니다. 저는 엘에이 근교에 사는데도 이렇습니다. 제가 무슨… 농사를 짓는 동네라서 논밭이 쫙 펼쳐진, 그런 환경에서 사는 게 아닌데도, 주거 지역이 밀집한 곳에 사는데도, 이렇게나 낯선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단 뜻입니다. 학생들의 하교 시간이라서 체육부 애들이 동네 한 바퀴를 뛰러 나왔을 때 우연히 마주치는 게 아니면, 일반적인 보행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러니. 이런 상황이니. 우리 동네 마트도 차 끌고 가지 않으면 지나칠 일이 없는데, 옆 동네 마트 상황은 알 리가 없죠. 학교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저는 누가 말해줄 때까지 몰랐습니다, 싱싱한 사과가 없는 마트만 있는 동네가 제 근처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걸.


3: 휠체어

00:14:05-00:26:05

[Music: Ego Hunger – Mac A DeMia]

여기서 휠체어가 등장합니다. 휠체어는 참 편리한 도구입니다. 특히나 제가 사는 지방에서는, 스타벅스만 가려고 해도 십 분 이상 차를 끌고 가야 하는 곳이라서, 휠체어가 있으면 정말 좋습니다. 꼭 스타벅스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냥 카페가 그렇게 멀고, 카페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다 멉니다.

그러니 휠체어가 있으면 좋겠죠. 거동이 불편한데 그 먼 거리를 캘리포니아의 땡볕에서 걷는다는 건 지옥일 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본 바로는, 많은 휠체어 이용자들이 전동 휠체어를 탑니다. 그래서 버튼을 누르면, 꽤 넓은 직선 인도를 그걸 타고 쭉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휠체어는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편리할 것 같은데. 그 이용자의 수는 싱싱한 사과를 팔지 않을 것 같은 동네에 훨씬 더 많습니다. 이걸 한 번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보이더라고요. 고등학교에 금속 탐지기가 설치되어 있는 동네. 차도에 아스팔트를 새로 안 까는 동네. 그곳에서 더 많이 보여요, 휠체어가.

이것도 처음에는 놀랍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운 게 놀라운 거더라고요.

왜냐하면. 이 거대한 미국에서. 뉴욕같이 여러 가게가 밀집되어 있지 않은, 말이 도시지 대부분의 장소들이 허허벌판스러운 환경에서. 만약 당장 근처에서 싱싱한 사과를 안 판다면 어떡할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사를 가는 겁니다. 그런데 가장 싱싱한 사과, 가장 싱싱한 즙—뭐 그… 요즘엔 그게 유행이더라고요. 과일을 자를 시간도 없고 즙이 흡수율이 좋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비싼 과일즙을 짜놓은 것을 사 먹는데, 그런 것을 먹으려면 어디로 이사 가야 합니까?

[Music ends.]

엘에이 지역 근처라면, 산타모니카, 이런 데로 갈 겁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조금만 더 싱싱한 과일을 파는 데로 이사 가고 싶더라도, 기하급수적으로 월세가 올라갑니다. 원 베드룸에 2천 불 정도는 그냥 넘깁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여러 사람이 같이 산다고 해도, 쓰리 베드룸에 요즘에 3, 4천 불은 그냥 넘더라고요.

이러니. 이사는 당연히 못 갑니다. 그럴 돈이 있었으면 이미 싱싱한 사과를 파는 동네에서 살았을 겁니다.

그러면, 자, 돈이 없다. 이때 동시에 발생하는 문제가 뭐냐면, 시간도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그 돈을 벌기 위해 노동으로 시간을 채우는 경우가 가장 흔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당장에 돈이 급하면, 자산을 만든다는 건 엄두도 안 나게 됩니다.

돈이 없는데 공장을 짓는다? 건물을 짓는다?

아니면 무형 자산이라도, 예를 들어 글을 쓴다? 디자인을 한다? 음악을 만든다?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무형자산일수록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같잖아요, 무형자산이? 그런데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어간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무형이라서 ‘무’인 것 같지만, 유기체인 우리는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 유형인 것들이 필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의식주가 필요해요.

즉, 이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형자산을 만드는 게 유형자산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도, 식당을 연다고 하거나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대출해주는 거지, 무형자산 만든다고 하는 사람한테 대출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요? 있긴 한가요? 유형이어야 그 사업이 망해도 그 토지, 공장, 기계, 제품을 은행에서 가져갈 수 있으니까, 제가 만약 은행이라면, 무형자산 생산에 초점이 맞춰진 사업에다가 대출 잘 안 해줄 것 같습니다.

무형자산은 말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지, 다른 시각에서 보면 가장 많은 유가 필요한 자산의 형태라고 볼 수도 있는 겁니다. 시간 때문에. 버텨야 하는 시간 때문에.

그러니 가뜩이나 시간이 없다? 그래서 유형자산을 필요로 하는 사업을 벌일 수도 없고, 무형자산은 더더욱 만들기 어렵다? 그러면 뭘 할까요?

노동을 합니다. 미래에도 돈을 벌어다 주거나 시간을 벌어다 주는 자산을 생산하는 노동 말고, 오늘 당장 월급이나 주급이나 일당을 받고, 내일 다시 일하지 않으면 돈이 끊기는 노동.

그러면 시간이 노동에 저당잡히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이렇게나 큰 땅에서 내 근방 3마일 정도에 사과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안 먹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따라 휠체어 이용자 수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물론 여러 이유로 휠체어를 탈 수 있고 제가 그 이유들을 하나하나 다 알 수는 없는데, 어째서 한눈에 보기에도 이용자 수에 차이가 나느냐.

아파진 겁니다. 사과처럼 인기 있고 흔한 과일이 흔하지 않은 동네에 산다는 건 상징적인 거니까요. 사과만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과일도 없고. 야채도 없고. 있는 거라곤 온갖 종류의 패스트푸드점인 겁니다. 휠체어 이용자 수가 많은 동네에는 다른 데보다 더욱 패스트푸드점이 많습니다. 아까 말했던, 그 비싼 주스 즙 짜주는 가게들은 이런 지역에서 자신들의 상품을 비싸게 못 파니까 여기 안 들어갑니다. 비싼 동네로 가서 비싸게 팝니다.

대신 어차피 전국 어디에나 있기에 이 동네에도 지점 하나 더 내도 전혀 상관없는 패스트푸드점들이 들어간다고요.

네. 지난주에 제가 건물이란 건 너무나 거대하고 돈과 시간과 인력 등의 각종 자원이 많이 들어가니까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고 하지 않았었습니까?

식재료도 같은 계열입니다. 식재료도 현실적으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싱싱한 사과 하나 찾으러 20마일 운전해서 가시겠습니까? 10마일이라도? 5마일이라도? 10마일이면 16km입니다. 여기 대중교통 개떡 같아요. 차 꼭 필요합니다. 차를 안 가짐으로 해서 절약할 수 있는 수준의 대중교통이 아닙니다. 시간을 써서 노동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데, 그 시간을 대중교통 기다리는 데에, 그거 타고 돌아돌아 가는 데에 다 날립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다니기 위한 기름값도 요즘 어마어마합니다. 원래도 어마어마하고 최근에 더 심각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잡에 알바까지 하면서 사과든 당근이든 배추든, 그 배도 안 부른 음식들을 먹으려고 당장 1마일이라도 가겠냔 말이죠. 저 같으면 안 갈 것 같습니다. 바로 집 앞에 있는 버거 파는 가게에 가면 거대 버거 하나에 10불이 안 되는데. 그 기름기 좔좔 흐르는, 값싼 간소고기가 올려진 버거를 먹으면 몸에는 안 좋을지라도 배는 든든한데.


4: 세대를 넘나드는 것

00:26:05-00:36:46

[Music: Ocean Breath – Sunny Fruit]

그래서 제가 추의 세계를 언급한 겁니다. 인간의 수명이 마냥 길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명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의 질도 갈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저는 나라에서 모든 걸 다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축은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마냥 나라에서 다 해줘야 한다고 하는 걸 싫어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다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뭐든지 간에 정부한테 해달래. 자기 책임은 하나도 없고. 일 다 벌여놓고서 누구 다른 사람이 책임 좀 지래.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건물이나 식재료 같은 건 어느 정도 정부에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이 어떻게 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들이니까.

바로 근처 동네 고등학생들이 유자철선 친 학교에 다닐 때 저는 그냥 평범한 학교에 다닌 건 그저 제가 운이 좋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단히 부촌에 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과일을 못 먹어서 비타민 C가 부족해서 학업에 지장이 생기는 동네에 산 건 아니었는데, 그것도 왜 그랬는가? 그저 운이 좋았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운이, 물론 모든 사람의 운이 다 평등할 순 없지만, 생리학적 영향을 끼치는 비타민, 미네랄, 이런 것이라든지. 지난주에 말한 햇빛의 영향 같은 것은 왜 더 심각하냐 하면, 유전이 됩니다. 즉, 이사를 해도. 아무리 좋은 데로 가도. 남아 있어요, 그 흔적이.

가끔 보면, 아기가—아직 말도 안 뗀 아기가—비만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 아이들은 부모랑 다니니까 부모와 아기가 함께 보이지 않습니까? 그들이 지금 현재 있는 장소가 어디든지와 상관없이, 그들이 평소에 뭘 먹는지가 보여요.

특히 그 아기의 부모가 산타모니카에서 웃통을 훌훌 벗어 던지고는 비싼 돈 주고 남이 짜준 과일즙 주스를 마시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사과를 먹은 지 일주일 이상이 지났고 비자발적으로 1일1식을 하되, 그 1식이 라지 사이즈 햄버거인 사람들인지, 보입니다. 그리고 무섭게도 그들의 아기한테서도 그게 보여요. 그 아기는 과일즙이든 햄버거든 아직 먹었을 리가 없고, 이유식만 먹을 텐데도, 그게 이미 보인다고요.

저는 무섭습니다. 이것이 현실에서의 공포입니다. 귀신보다 에일리언보다 연쇄살인마보다 더 무서워요. 생후 1년도 안 된 아기들이 벌써 비만인가 아닌가가 갈리고, 그걸로 평생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살 거라고요.

[Music ends.]

이러니까. 오죽하면. 제가 예전에 코스모폴리탄에 나온 기사를 봤었는데. 한… 15년 전인가, 진짜 옛날에. 소셜 미디어도 없고, 유튜브도 없고, 서점이나 마트에 가면 가판대에 잡지가 있는데 그런 게 최대 재미였던 시대.

그때 어떤 기사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어딜 가면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나?’ 코스모폴리탄의 주요 독자층은 이성애자 여자라서 이런 기사가 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주제에 대해 그 기자가 낸 아이디어 중 제가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던 게 이겁니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려면 퇴근 시간에 마트에 가래요. 그때 그곳에 가면 건실한 청년들이 있다.

일단, 굳이 사람이 몰리는 퇴근 시간에 마트에 간다는 건, 직장이 있다는 뜻이래요. 낮에 할 일 없으면 낮에 마트에 갈 텐데, 퇴근 시간밖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때 장을 보는 것이다. 즉, 무직자를 안 만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마트를 간다는 것 자체가 가정적인 남자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남자가 뭘 사는지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몸에 안 좋은 것들을 잔뜩 사는지, 신선한 채소와 과일과 질 높은 고기를 사는지.

그때는 그냥 너무 어이없게 참신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자 말이 정말 일리가 있고, 심지어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트도 어느 동네 마트에 가느냐에 따라 또 갈리는 겁니다. 마트에 엄청난 상징성이 있어요.

그리하여 세대를 넘나드는 빈부격차가 형성됩니다. 계속해서 갈려요. 쌓아둔 부의 양이. 직장의 안정성이. 집 앞에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있었는가, 주말마다 열리는 파머스 마켓이 있었는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 애들이 부모에게서 단순 가난 이상을 물려받습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가난이 단순하다는 게 아니고, 단순한 가난이 있다는 뜻이라는 점입니다. 가난의 한 종류로서, 정말로 돈을 손에 쥐기만 하면 해결되는, 돈을 벌기만 하면 해결되는 단순 가난이 있습니다. 어제 억만장자였던 사람도 오늘 빈털털이가 될 수 있죠, 이론상으로. 그런 단순 가난이 있고, 그것은 이 사람이 다시 돈을 벌면 해결될 일입니다.

그러나 단순 가난 이상의 가난을 물려받을 때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 애들이 지병으로 당뇨며 비만을 물려받는다고요. 이건 그 어떤 억만장자가 와도 해결을 못 해줍니다. 지금 당장 과일과 채소를 사서 과일과 채소가 없는 동네에 무료로 풀어도 해결이 안 됩니다.


5: 그래서 개인

00:36:46-00:44:47

[Music: Never Land – Sunny Fruit]

이렇게 참으로 슬픈 얘기들을 했습니다. 요즘 유가를 보면. 하. 우리 동네에서 사과가 없어지는 날이 올 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유가는 모든 것과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사과가 나면 뭐 합니까? 유통을 해야 하는데.

그러나 여러분? 멸망의 날과 밝은 미래는 세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두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면, 해결이 아니게 됩니다. 그래서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의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유토피아가 저는 사실 디스토피아보다 무섭습니다. 문제가 있는데 없는 척하는 게 유토피아 아닙니까? 애초에 이름이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인데. 모두가 같은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가정을 하지 않고서는 유토피아가 존재 불가합니다. 그러니, 유토피아라는 게 만약 존재한다면, 그건 지옥입니다.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모두가 실제로 다 똑같은 걸 원하는 미친 상황이거나, 사실은 모두가 똑같은 걸 원하지 않는데도 그러는 척을 해야 하는 디스토피아이거나. 특히나 그냥 일반 디스토피아보다 더 무서운 점은 뭐다? 디스토피아라고 말도 못 한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모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해결할 필요도 없지만, 원하는 사람들끼리, 즉, 내 편들의 문제는 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내 편’의 정의는 각자 다르겠죠.

그래서인지, 이 사과 문제, 로컬 식량난을 이겨내 보기 위해 실질적인 일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도 거대 정부가 아닙니다. 미국 정부? 이런 데에 관심이 있었으면 벌써 옛날에 뭘 했겠죠. 캘리포니아 정부?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주정부들? 똑같아요. 심지어 카운티 정부도. 제가 말씀드렸죠, 같은 카운티의 동네끼리도 고등학교 분위기가 그렇게나 차이가 난다고. 사과도 똑같아요.

그러니까 더 작은 차원에서, 아예 정부가 아닌 사람들이 액션을 취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 취했다고 합니다. 마이크로파밍이라는 것을 한대요. 말 그대로, 파밍, 농사인데, 그것을 마이크로, 매우 작은 범위에서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농사를 자신의 뒤뜰에다 하기도 하고, 앞뜰에다 하기도 하지만, 또 어디에다가도 하냐면, 그… 인도를 다니다 보면 중간중간에 식물 심으라고 흙이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여기다가 일반 동네는 나무를 심습니다. 아니면 꽃을 심습니다. 그런데 사과를 안 파는 동네에서 나무나 꽃을 심을까요? 안 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냥 흙밖에 없어요. 그런 자투리땅에다가도 식물을 심자고 하는 움직임이 요 근래 한 십 년? 정도 동안 좀 메인스트림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이들이 그냥 이 일을 하게 두는 겁니다. 지금까지 해결 못 했고 더 다르게 도와줄 거 아니면. 그냥 둬. 왜냐하면 또. 길에다가 먹을 거 심는다고 뭐라뭐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다른 거 심어줄 것도 아니면서.

소송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요. 인도는 정부 땅이니까, 거기서 자란 식물 먹고 잘못돼서 정부에 소송 걸면 심각해지니까.

그러면 인도 옆에 있는 자투리땅을 팔든가. 아니면 지원금을 주든가. 자투리땅보다 좀 큰 땅을 떼어 주든가. 어차피 진짜 일은 이 개인들이 직접 하는데.

아무튼. 어떤 식이든지 간에, 결국 정부보다는 어떤 개인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저는 훨씬 이득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부에서 그냥 돈을 주는 것보다, 지역 농부가 지역 공동체를 위해 이런 농사를 사업화하는 것이 세대를 넘나드는 빈부격차를 이기기에는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는 상황 말고 다른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일을 벌인다는 것은 그 일이 잘되든 안되든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용기입니다. 만약 비타민의 부족으로 인한 건강 문제나 유전적 비만이나 당뇨 같은 신체적 문제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무찔러줄 만큼 강력한 심리적 치료제가 있다면, 바로 그 ‘되든 안 되든 나는 무언가를 하겠다’는 도전 정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Music ends.]


6: 옥상자산

00:44:47-00:53:23

이러한 여러 이유로, 서울시에 있는 6층 아지트 빌딩에 있는 옥상층이란 상당한 자산입니다.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장소예요. 디스토피아에서 한 줄기 빛이 될지도 모릅니다. 온 세상을 다 비춰서 가짜 유토피아를 만들 리는 없어도, 한 줄기 빛은 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날아다니는 집이 있으면 여기 옥상에다가 도킹을 하고 싶었는데, 그 경우에도 그 날아다니는 집에 옥상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집이야말로, 그것의 옥상은 도킹하기 전에는, 예를 들어 제가 바다에 나가 있으면, 햇살이 그냥 쨍쨍 내리쬐겠네요. 그러면 아주 그냥 뭘 심어도 무럭무럭 자라겠네요. 해풍을 받고 자란 깻잎. 이런 걸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일단 집이 날아다니는 일은 언제 생길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일반적인 6층 빌딩의 옥상 얘기를 하겠습니다.

음. 우리는 뭘 먹고살 것인가. 대체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식량 소비가 가능한가.

저는 일단. 가장 키우기 쉬운 야채를 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파, 이런 거. 그리고 이왕이면 옥상뿐만 아니라 6층까지 아지트 멤버들을 위한 마이크로파밍 공간으로 써서 6층의 실내에서는 버섯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최근에 버섯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버섯이 그렇게 몸에 좋다고 합디다. 그리고 제가 버섯을 좋아해요.

버섯 같은 경우에는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건 아니고. 또, 그 외 다른 식물들도 하이드로포닉스가 가능한 경우가 있을 테니까, 이러한 각각의 경우에 따라, 해를 많이 받아야 하는 식물들은 옥상으로. 그렇지 않은 것들은 6층으로. 이렇게 나눠서 소규모로 농사를 지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기는. 고기도 제가 한참 인공 고기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인공 고기의 가장 큰 문제는 이거래요. 고기를 구성하는 물질을 몰라서 고기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고기의 식감을 재현을 아직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인큐베이터처럼 생긴 통 안에서 로봇 팔들이 인공 고기를 구성하는 단백질 덩어리를 들고 그걸 막 움직이고 주무르고 늘리고,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마치 진짜 동물이 살아서 움직이고, 그러므로 해서 육질이라는 게 생기는 것처럼, 식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단백질에다가 그렇게 하는 거래요.

그런데 그것이 아직 너무 좀 별로다. 맛이 없다. 그리고 그 맛이란 게 왜 그… 혀의 미각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라, 후각으로도 느끼고, 고기의 무게. 고기의 질기거나 부드러운 정도. 지방과 단백질의 비율.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말로 설명하라고 하면 뭔지 모르는데, 일단 먹어보면 ‘이것이 진짜 고기다’라고 알 수 있는 기준이 있대요. 그것을 아직 좀… 너무 잘 못 만들어낸다.

그러나, 또 모릅니다. 앞으로 한 십 년이 지나면, 집에서 고기 찍어내는 기계를 하나씩 갖고 있을지. 그러면 단백질이나 지방 같은 것을 토너 형태로 사서 기계에 끼우고, 걔가 인공 고깃덩어리를 열심히 반죽해서 먹게 해주는 거죠.

만약 그런 기계가 생긴다면, 그것도 몇 개 장만해서 6층에다가 넣어야겠습니다. 1층이 ‘음료 제공처’인 것처럼, 6층과 옥상은 ‘먹거리 생산소’ 정도로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렇게 하면 아지트 멤버끼리 삼겹살 파티를 할 때 옥상에서 키운 깻잎, 상추랑 같이 먹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만약 재배량이 좀 된다면 멤버 전용 미니 마트를 운영해도 되고. 심지어 여기서 만약 멤버들이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수익 창출이 될지도 모릅니다. 딸기를 심어서 딸기잼을 만들어서 아지트 딸기잼으로 브랜딩을 해서 판다든지.

하여간에 뭔가 제가… 어… LA지역의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특히나 코비드를 지나면서 식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이유는 이겁니다.

웬만해서는 어느 장소를 벗어날 수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장소가 아무리 슈방구여도 그냥 다른 데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이동성이 떨어지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게다가 코비드로 다른 동네 마트에 가기 더 어려운 상황이 왔었고, 우리 동네 마트는 개떡 같아. 그러면 그냥… 이건 뭐. 문자 그대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는 겁니다.

아, 그리고 식수. 식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아지트 내에 있으면 좋겠다.

하. 저는 평소에도 생각하거든요. 세상의 멸망이 온다면 난 뭘 챙길 것인가. 아지트가 서울에 있으면 세상의 멸망이 올 때 아지트로 가겠죠? 거기 식수와 식량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이걸… 건물을… 사는 건 안 될 것 같고 진짜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건축가는 물론이고 공학자를 모셔서 지어야 할 것 같아요. 생물학. 농업학. 기타 등등.


7: 마무리

00:53:23-00:56:40

[Music: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끝내기 전에 잠깐, 추의 세계가 또 등장합니다. 물물교환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지트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외부인들이 올 때 물물교환을 하는 겁니다.

‘보시게. 우리 아지트에서 난 깻잎일세.’

그러면 저쪽에서도 비슷하게 뭔가 자신들의 아지트스러운 걸 운영하는 방문객이 이러겠죠. ‘빛깔이 곱구려. 자, 그 깻잎과 이 상추를 교환하지.’

그러고 악수하고 헤어지는 겁니다. 아니면 옥상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든지.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저는 재밌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과 이번 에피소드의 녹취록은 제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링크 및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에 관한 링크들을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Music ends.]


전체적 참고 자료

파트 6에 등장하는 버섯 다큐, “Fantastic Fungi”

https://fantasticfungi.com/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2022 한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