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드리밍 [Ep.23] 작명옵션: 자칫하기 이전부터 생각해볼 것](https://aimdreaming.imaginariumkim.com/wp-content/uploads/2022/06/23_아임-드리밍-커버-1792x1792.jpg)
1: 오프닝
00:00:00-00:03:28
[Music: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 혹시 박사장님을 아십니까?
박사장님은 본명이 박사장이신 건 아니고요, 활동명이라고 해야 하나, 별명이 박사장님이십니다. 이분은 김구라 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김구라 님과 함께 골프를 치십니다. 본명은 박노준 님이시고, 본업은 포시즌 대표이시라고 네이버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분 얘기를 하는 이유는 골프나 유튜브 때문이 아니고요, 이분이 바로 서울시에 건물을 갖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측면에서 저의 롤모델이신 것 같습니다. 정확한 소유권 측면에서 이 건물을 갖고 계시는지는 모릅니다. 개인 소유인지, 공동 소유인지, 회사 소유인지, 몰라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이 이 건물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게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리고 서울시에 건물주는 많을 텐데 하필이면 이분 얘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건물의 이름 때문입니다.
검색을 하면 진짜로다가 네이버 지도에 나오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박사장님의 이 건물의 이름이 뭐게요?
바로. ‘박사장빌딩’입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저는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Music FADES OUT.]
2: 사람 이름과 언어
00:03:28-00:09:26
각 문화권마다 건물에다가 이름을 짓는 트렌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권에서는 건물에 사람 이름을 참 많이 넣어요.
엘에이 지역에만 해도, Griffith Observatory가 그리피스 J. 그리피스 님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네. 사람 이름이 그리피스 J. 그리피스래요. 어쩌다 성이랑 이름이 같게 되었는지. 한국 이름으로 치면 김 J. 김인 거 아닙니까?
박 J. 박.
송 J. 송.
정 J. 정. 신기합니다.
아무튼 그리고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월트 디즈니 님의 이름을 땄습니다.
그다음 예시는 Getty Center. J. Paul Getty 님의 이름을 땄습니다.
물론, 사람 이름이 아닌 단체의 이름을 딴 건물들도 많습니다.
Dodger Stadium, Dolby Theatre, Los Angeles City Hall. 기타 등등.
그런데, 단체 이름 자체가 영어권에서는 그냥 사람 이름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이나 이름을 따서 단체 이름을 많이 지어요. 예를 들자면, Randy’s Donuts. 이 경우에는 가게 이름도 랜디네 도넛이고, 사람들이 부르는 건물 이름도 랜디네 도넛입니다.
이렇게 ‘누구누구의 무엇무엇’ 방식으로 사업체의 이름을 짓는 것, 혹은 ‘무엇무엇’을 아예 빼고 ‘누구누구의’만 가게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냥 아무 예시나 만들어 보자면, Jamie’s. Charlie’s. Miller’s. 이런 식으로.
즉, 그 누구누구가 무엇무엇을 가졌는지가 별로 안 중요할 정도로, 가지는 행위를 하는 자가 누구냐가 더 조명을 받습니다.
한국어권에서는 잘 없는 일입니다. 적용해보자면, 철수네. 영희네. 김가네.
어, 김가네는 있네요. 김가네.
그리고 한국에 김앤장이 있죠. 김가네와 김앤장. 둘 다 사람 이름을 딴 단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에도 사람 이름을 딴 단체와 건물이 있긴 하지만. 그 빈도수가 영어권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예외라고 봐도 될 만한 경우는 누구누구의 생가인 경우입니다.
생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난 집.’ 그러나 대개는 그 사람이 죽은 이후에 생가를 생가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이때 이름을 굳이 따로 붙이지 않고, 그 죽은 사람의 이름을 쓰는 것이죠. 그 사람 때문에 그 집이 의미를 갖게 된 거니까, 따로 이름을 짓지 않는 게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가인 경우를 제외하면… 건물 이름은 물론이고, 단체 이름도 그렇고, 사람 이름이 들어간 경우가 한국에서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아시아권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각 국가 간의 분리가 극명한 것 같아서, 아시아권이라고 말하기에 무리가 있을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그것도 신기하지 않나요?
유럽은 통치자가 다른 나라 사람과 결혼하는 게 흔했잖아요. 그래서 ‘나의 나라’라는 개념이 물론 있지만, 워낙 많이 섞여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나 네덜란드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지금도 외국어를 몇 개 국어씩 하기도 하는데.
반면 미국은 정반대입니다. 미국인들은 너무 많은 경우에 미국어밖에 할 줄을 몰라요. 네. 진짜로다가 미국어인 줄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English라고 부르는데도, 그게 왜 American이 아니고 English인지를 모른다. 영어가 아니라 미국어인 줄 아는 경우가 있다.
3: 갑자기 영국 왕 얘기
00:09:26-00:13:37
[Music: Paris – Serge Quadrado]
아무튼 그런데 유럽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유럽은 진짜 언어가 훨씬 다양하다는 말이죠. 심지어 옛날의 영국의 왕들 중에 영어를 못 하는 왕들도 있었대요. 예를 들어, King Richard the Lionheart 님. 이름이 멋있는 사자왕 리처드 님이 그랬다고 합니다. 거의 평생을 프랑스에 살았고, 영어는 거의 못 했대요. 일단, 셋째 아들이라 왕권을 물려받지 않을 거라고 다들 생각했었다고 하네요. 혹시 첫째 아들이었으면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웠을 건지. 음.
그리고 리처드는 11살에 어머니에게서 프랑스의 공작 영지를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리처드를 자식들 중에 유독 좋아했대요. 그리고 리처드도 어머니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한테는 별로 애정이 없었대요.
그러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리처드가 왕이 됐고, 리처드는 자기가 왕이 된 나라로 갈 생각은 별로 안 하고, 십자군 전쟁에 나섰다고 합니다.
리처드가 10년간 영국의 통치자였는데, 그 기간 동안 6개월을 영국에 있었대요. 십자군 전쟁에 나설 때가 아니면 그냥 프랑스에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이, 백성들이 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대요. 자신들 나라의 왕이 자신들의 말을 못 하는 것에 대해서. 평민들이 글을 못 쓰는 경우는 워낙 전 세계적으로 흔했지만, 단순히 그런 경우인 게 아니라, 즉, 문자만 쓰고 안 쓰고의 차이가 아니라, 아예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데도 그것 때문에 왕을 끌어내려야 한다든지, 하는 사회 풍조는 없었나 봅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의 왕조들이 프랑스어를 궁정 언어로 쓰기도 했었으니, 왕가에서 본토 언어를 쓰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나 봅니다.
[Music ends.]
4: 자리
00:13:37-00:19:09
아무튼, 리처드네 왕가는 그렇다 치고, 건물 이름에 대한 건 왜 그런 걸까. 왜 영어권에서는 사람 이름을 건물에다가 붙이기도 하고 단체에다 쓰기도 하는데, 한국어권에서는 잘 안 그럴까.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이론은, 뭐, 뻔한 겁니다. 영어권은 개인이 소중하다는 성향이 더 강하니까, 굳이 창립자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지어서 단체에다가 붙이지 않는 경우가 꽤 있고, 건물 이름도 그냥 돈 준 사람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돈 준 사람이 돈을 준 것에 대해 티를 안 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겸손이라는 개념이 영어권에도 물론 있지만, 돈 있는 티를 안 내는 것이 겸손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돈이 있어서 쓰겠다는 거랑 겸손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죠.
실제로 영어권에서 하는 모금 활동 중에는 기부금을 받는 대가로 벤치나 나무에 이름을 붙이게 해주는 활동이 있습니다. 공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 이름이 붙은 벤치가 있어요.
이것이 뭔가… 왜 좋은 걸까요? 이런 모금 활동이 워낙 영어권에서 많이 퍼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거지, 생각해 보면 돌아다니다가 아무나 앉는 벤치에다가 왜 자기 이름이 붙으면 좋은지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왜냐하면, 아무나 앉는다고 하면 제게 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옛적, 제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SAT 학원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에세이를 가르쳐 주는 강사가 있었습니다. 에세이 수업이다 보니까 한 클래스당 학생이 몇 명 없었어요. 두세 명이었나?
아무튼 그랬는데, 학생 중 한 명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의자가 여러 개 줄줄이 비어 있는 것만 보면 눕는 거예요, 얘가. 제가 요즘에 지향하는 와식 생활을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실천한 학생이었던 거죠. 그 학생은 강사가 들어오기 전, 후, 그리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정말 쉴 새 없이, 쉬지 않고 누워 있었습니다. 에세이 수업이라 학생 수도 얼마 안 되니까, 비어 있는 의자가 많았고, 따라서 누울 곳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 어느 날, 에세이 강사가 씩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너, 지금 네가 머리를 대고 누워 있는 그 자리에 대고 몇 명이 방귀를 뀌고 갔는지 아냐고.
그러자 그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라.
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방귀는 죄가 없고, 방귀 뀌는 사람도 죄가 없고, 의자에 앉아서 좀 방귀를 뀐다고 해서 그 분자가 의자에 박혀 있을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는 그 자리에 머리를 대고 눕든 발을 대고 눕든 별로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그러한 의자, 혹은 벤치, 기타 등등에 자기 이름이 붙으면 뭐가 좋은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기부를 하면, 딱히 뭐 다른 줄 게 없잖아요. 왜냐하면, 기부니까, 판매가 아니라서 딱히 줄 게 없으니까, 영어권 사람들에게 소중한 편인 이름, 그것을 벤치에다가 붙여준다. 신기하다.
나무에다가 붙이는 건 좀 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좀 멋있기도 하고.
5: 건물 작명
00:19:09-00:25:16
[Music: What Makes Us Human – Attila Erdelyi]
아무튼. 이러저러한 여러 트렌드 때문에 저는 한국어권에서 박사장님처럼 사람 이름을 이렇게 정직하게 따서 건물에 붙인 경우는 잘 못 본 것 같습니다. 본명이 아니라 활동명을 딴 박사장빌딩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서 제가 찾아봤습니다. 이런 경우가 또 있나. 그랬더니 있긴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카이스트에 정문술 빌딩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2006년 기사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대전지역에서는 대표적인 기부 빌딩으로 지난 2003년 10월 준공한 KAIST `정문술 빌딩’을 꼽을 수 있다. 정문술 빌딩은 미래산업 정문술(鄭文述) 전 회장이 IT와 BT간 융합기술 분야 고급 인력을 양성해 달라며 KAIST에 기부한 300억원 가운데 11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11층에 연면적 9천여㎡ 규모로 지은 건물이다.”
몇 가지 다른 예시로, 김대중 도서관, 그리고 고려대의 김승유 강의실, 박현주 라운지 등이 등장합니다.
즉, 정말로 사람의 이름, 본명을 쓴 건물이며 강의실이 있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동일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서울대는 고 이병철 삼성회장의 호를 딴 호암관이 캠퍼스 안에 자리하고 있고 최근에는 태성고무화학 창업자인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이 회사를 매각한 자금을 전자도서관 건립을 위해 기증해 `신양학술정보관’을 개관했다.”
즉, 이병철 삼성회장은 이병철관이라고 건물을 짓지 않고, 호암관이라고 지었다는 겁니다.
또한,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은 정석규학술정보관을 개관하지 않고 ‘신양학술정보관’을 개관한 거죠.
그런데 이 기사에서는 이렇게 호와 단체 이름을 따서 지은 건물명도 사람의 본명과 같은 개념인 것으로 묶더라고요. 일단 사람과 관련된 무언가가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것이 호의 형태를 취하거나, 기업의 이름을 취한다 하더라도.
왜냐하면, 이 기사에서는 메인 포인트가 이것입니다.
“최근 충남대가 기부자의 법명을 딴 `정심화국제문화회관’의 명칭을 변경키로 한 가운데 국내 곳곳에서 기부자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보편화되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충남대가 이 당시에 원래는 ‘정심화국제문화회관’이었던 건물을 ‘국제문화회관’으로 변경키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원래 있던 이름조차 떼어 버리려고 하는 경우가 있으니, 원래 이름이 사람 이름이든, 호이든, 단체 이름이든, 그것들을 다 합쳐서, 기부자를 기리는 이름을 아예 안 쓰는 경우를 좀 나무라고 있는 기사 같습니다.
이제는 15년 정도 지난 기사이지만, 어쨌든 한국어권에서는 영어권에서보다 기부자가 전면에 드러나는 건물 작명이 흔치는 않은 것 같다. 여기에는 ‘국내 곳곳에서 기부자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나오지만, 그게, 이름을 쓰는 경우가 얼마나 흔치 않느냐 하면, 호만 건물 이름에 붙여도, 심지어 기업명만 건물 이름에 붙여도, 기부자와 관련된 것으로 치고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충남대가 이름을 변경하지 않기로 했나 봅니다. 지금은 검색하면 정심화국제문화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나옵니다.
[Music ends.]
6: 브랜드와 사람
00:25:16-00:27:41
그러면 앞으로의 건물명들은 어떻게 될까.
일단, 예전에 비해 영어권의 거대 기업에 한해서는 사람 이름은 물론이고 사람 자체가 조금 뒤로 물러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애플.
애플은 스티브 잡스 시절에는 뭔가… 신화? 거의 정말 신적인 신화를 지닌 창립자를 데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고, 아니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영어권에서 예전에 비해 너무 창립자 혹은 CEO가 전면으로 나서면 위험한 때라고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전면에 나섰을 때 리스크가 예전보다 커진 것 같고, 사람이 아닌 브랜드가 전면에 나섰을 때 얻는 것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는 것에 더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소비자들이 절대 인간, 뭐랄까, 미국의 영웅적 사업가라는 신화에 회의감을 느껴서일 수도 있고.
기업들이 워낙 거대해져서 예전보다 지켜야할 게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따라서 기업들이 CEO조차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만들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왜냐하면, 사회가 PC적으로, political correctness를 따지면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를 더 거세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실상이야 어떻든 CEO조차 대체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끔 하지 않으면 기업이 무너지니까.
7: 작은 기업, 큰 기업
00:27:41-00:34:31
[Music: Our Human Connection – Marshall Usinger]
그런데 이건 확실히 거대 기업에 한한 경향성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기업일수록, 그 마케팅을 보면, 창립자를 더 강조합니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업계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쓰던 Fathom analytics라는, 구글 애널리틱스의 대체품인 소프트웨어? 그런 게 있는데.
Fathom의 특징이 있잖아요? 상품적 특징. 구글 애널리틱스와는 달리 GDPR 법을 전부 다 준수한다. 쿠키 노티스를 웹사이트에 달 필요가 없다. 간단하다. 유저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다. 기타 등등.
그런데 그 대신에 Fathom은 돈을 내야 하거든요. 구글 애널리틱스는 공짜고.
그러면 Fathom은, 제가 보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냐면, 거의 그… 철학인 겁니다. 이쯤 되면, 지금 현재 2022년에 빅 테크에다가 데이터를 넘기느냐 안 넘기느냐는 철학입니다. 삶의 방식이에요.
그래서 Fathom이든, 비슷한 애널리틱스 프로그램인 Plausible이든, 이런 소프드웨어적 회사들의 소셜 미디어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시면, 창립자가 꽤 앞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창립자들의 얼굴이 나오면서 그 얼굴을 보고 상품을 사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창립자들 이름이 딱 나오고, 그들의 개인 소셜 미디어 계정까지 나오고, 그들의 철학이 나옵니다. 단순히 상품만 파는 건 작은 기업일수록 요즘에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 이유 중 하나로는, 예전에 비해 온 세계 사람들이 만들어진 무언가의 뒤에 있는 창작자에게 관심을 더 갖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경향성은 소규모 사업일수록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애플 컴퓨터 하나 만드는 데에 수천수만 명이 달라붙는 건 다들 아니까, 그 수천수만을 다 알려는 욕구는 없지만, Fathom 같은 경우는 두 명이서 하거든요? 그러면 그 두 명 정도는 알고 싶은 겁니다.
[Music ends.]
그리고 또 다른 예로 Vellum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원클릭으로 전자책 epub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이거 만든 사람들도 두 명입니다. 브래드와 브래드. 둘 다 이름이 브래드예요. 둘 다 픽사에서 일하다가 그거 관두고 벨룸을 만들었고, 영어권 출판계에서, 저작권 안 뺏기고 자기가 자기 것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브래드와 브래드를 꽤 많이 압니다. 포럼에도 있고, 팟캐스트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이메일 보내면 두 브래드 중 하나가 답장을 해줍니다. 제가 메타데이터에 코리안을 언어로 넣게 해달라고 했더니 넣어줬어요. 친절해요. 브래드와 브래드. 그러나 둘 다 브래드라서 뭔 브래드가 답장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흔히 사회에서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 유튜버나 틱토커들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하게, 뮤지션이든, 소설가든, 화가든, 기업인이든, 운동선수든,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예전보다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물론 그 관심의 결이 좀 다릅니다. 유튜버나 틱토커에게 갖는 관심의 결과 Fathom을 만든 두 사람에게 갖는 관심의 결이. 그러나 그래도, 관심이 있단 말이죠.
8: IT 창립자 덕질
00:34:31-00:43:37
[Music: Dark Matter – NRTHRN]
예를 들어 저는 최근에 Web Monetization을 상용화하려고 하는 Stefan Thomas 님을 덕질했습니다. 네. 마일드한 아이돌 덕질과 흡사합니다. 다만 직종이 아이돌이 아니라 IT 창립자다. 지난달에 이분이 나오는 영상 보는 데에 스무 시간은 쓴 것 같아요. 저한테는 스무 시간이면 꽤 많은 시간인데, 왜 이 시간을 써 가며 덕질을 했냐면요, 큰 기업이 아닌 작은 기업의 상품을 일부러 찾아서 쓰는 제 선택은 철학적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걸 만든 사람들이 알고 싶고, 그 사람들이 정말 자기들이 말하는 대로 사는지 궁금해요.
지금 Web Monetization 얘기를 하면, 이 전 세계에 그것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만 명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 수가 너무나 적습니다. 저처럼 테크니컬 지식이 없이 외부자로서 온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아주 아주 작은 퍼센트인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누군가로 하여금 이미 존재하는 가장 편하고 값싼 대기업의 방식이 아닌, 새롭고 돌아가야 하고 아직은 좀 불편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을 한번 시도해 보게 하려면 창립자가 전면에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제가 테크니컬한 건 몰라도 Stefan Thomas 님이 이런 일을 하려고 한다는 건 알 수 있잖아요.
지금 이 사람, 그리고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가려는 세상의 비전은, 와우, 정말 어마어마해요. 이게 상용화되면 드디어 광고주의 체계가 무너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Stefan Thomas 님을 열심히 덕질했다. 이분 말도 잘하시고, 어… 귀여우세요.
아무튼, 이 세상에 생산되는 것들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니까, 생산물 뒤의 생산자에게 주목한다면 필터링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생깁니다. 예를 들어, 비건이신 분들이 비건 치즈를 구매할 때, 비건 치즈를 만들기만 하는 기업의 상품보다는, 기업인 본인이 자신이 비건이며 비건 치즈를 소비한다고 하는 기업의 상품을 훨씬 더 구매하고 싶을 것 같거든요.
이렇게 작은 사업체들의 경우에는 사람이 더 강조되고 있지만, 대기업들은 점점 더 사람성을 후퇴시키는 쪽으로 가는 듯 보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이제 죽었습니다. 팀 쿡은, 지금도 뭐, 팀 쿡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알긴 알 테지만, 스티브 잡스 정도의 신화는 없습니다. 그러한 신격화가 동반되지 않는 사람이라 팀 쿡을 고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는 이제 빌 게이츠가 아닌 사티아 나델라고, 빌 게이츠는 기술고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뒤로 조금 물러났습니다.
리처드 브랜슨 같은 사람도 예전 시대 사람이잖아요. 1950년생이십니다. 지금 우리 2010년대생들이 오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 예전 세대들이 세웠던 스타일의 영어권 기업들, 그때 당시 유행했던, 가장 강했던 마케팅 방식에 부합한 강한 CEO상의 기업들은 이제는 조금… 그 경향성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이 기업들이 신생 기업들이었어서 강한 CEO상이 통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제는 신생이든 오래됐든이 기준이라기보다는, 기업의 사이즈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 아무리 오래돼도 사람들을 전혀 통제할 수가 없는 구조의 시스템들이 있고, 애초부터 통제하려고 디자인된 시스템들이 있습니다. 후자에 대한 반감을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태어난 신생기업이라도 후자 같은 시스템을 밀고 들어오면 안 좋아할 것 같아요.
[Music ends.]
여기에 대한 크나큰 예외가 일론 머스크입니다. 미국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크기의 기업 중에서 대장이 이 정도로 전면에 나와 있는 경우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데, 테슬라는 오히려 점점 더 전면으로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일론 머스크가 한마디 할 때마다 리스크도 많지만, 이 경우에는 얻는 점도 많은 것 같아요. 일론 머스크가 앞으로 나와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도 제 생각에는 일론이 아까 말한 그… 철학. 그걸 파는 일을 일부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옛날에 애플이 철학을 팔았듯이.
테슬라는 차를 파는 듯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철학을 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것들의 집합체로서 만들어지는 나는 누구인가.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른 여러 사업체들을 통해 그걸 팔고 있습니다. 비전을. 그래서 전면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리스크 대비 얻는 게 실질적으로 있으니까.
그러나, 마찬가지로 CEO가 전면으로 나와 있는데, 테슬라와는 다르게 전혀 좋은 점이 없고 오히려 그로써 손해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기업이 페이스북입니다.
페이스북하고 마크 저커버그를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데, 마크는 왜 이렇게… 마크는 왜 이렇게 서커버그인가.
9: 성공 대비
00:43:37-00:50:40
[Music: With You – Philip Logan]
아무튼 세상이 전반적인 마케팅 및 브랜딩에 있어서 완전히 중립적인 무언가와 완전히 주관적인 개인 사이의 밸런스를 찾으려고 하는 듯한 가운데.
박사장님이 박사장빌딩을 갖고 계시다. 빌딩 이름을 잘 지으신 것이 아닌가. 본명은 아니되, 사람성이 너무 떨어지는 중립적인 이름도 아니고.
무엇보다 너무나, 사람들이 잘 안 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멋있습니다.
그렇다면 한아임은 빌딩을 갖는다면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결론이 안 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빌딩 짓는 일이라는 것이 안 일어날 확률이 더 높은 일이긴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미리 해놓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반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는데, ‘자칫하면 부자가 된다.’ 이게 그런데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빚을 져서 일을 벌인 게 아니라면, 그 일이 잘못됐을 때 삶의 방식에 대한 임팩트는 0에 가깝습니다. 최대 폭망이 현상 유지예요.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이런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요즘에는 많이들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처럼 초기 투자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드는 일들을 하니까요. 실제로 많은 대형 유튜버들이 이런 조언을 하죠. 장비 사는 데에 시간과 돈 쓰지 말라고. 그냥 폰으로 찍으라고. 편집 직접 하라고. 누구 고용하고 누구 부르고 해서 일 크게 벌이지 말고, 일단 혼자 좀 하라고.
이것은 폭망을 하더라도 현상 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존버. 존버 중요해요. 폭망을 해도 현상 유지 내지는 약간의 손해만 봐야 다음에 또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큰 사업을 오프라인에서 하는 게 아니라면, 그리고 빚을 지고 시작해서 애초에 실패 가능성을 높인 게 아니라면, 어떤 특정 일이 잘 안됐을 때 은근히… 별로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잘 되면 어떻게 되느냐. 잘 되면. 자칫하다 잘 되면. 일단 그 일을 함께 한 사람들과의 계약 관계가 갑자기 중요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싸움 나고. 소송 가고. 난리가 나는 겁니다.
[Music ends.]
그리고 사람들끼리 골치 아파지지 않더라도, 취미로 시작했던 일을 사업으로 확장하면서 갑자기 세금을 처리해야 하고. 돈의 흐름을 증명해야 하고. 시간이 없어지고.
전반적으로, 만약 성공이란 걸 한다면, 그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잃을 게 많아집니다. 따라서 뺏으려는 자도 많아집니다. 잃을 게 없으면 방어의 필요성이 없어서 공격전만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지만, 1등, 혹은 10등, 혹은 100등만 되어도, 갑자기 방어전까지 해야 한다.
이래서. 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성공에 대한… 두려움은 아닌데. 마냥 우스갯소리로 ‘자칫 성공한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정말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성공을 한다면, 실패했을 시보다 실질적으로 복잡해질 것 같아서 실패 시나리오보다 성공 시나리오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런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복권 당첨된 사람들. 수년 내로 그 돈을 다 잃는 경우가 많고, 예전보다 더 힘들게 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스포츠 스타들 있잖아요. 정말 자신이 노력해서 잘된 경우들인데도, 그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살기 어려워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부상을 입어서 은퇴해야 한다든지. 아니면 선수 생활을 오래도록 하고 나서조차. 그 현금 흐름이 계속 유지될 줄 알았던 겁니다. 그게 아닌데. 그래서 현금 흐름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올라가지 않았을 위치에 올라가서 거기서부터 추락합니다. 킹무섭죠. 가진 게 많을수록 폭망이 험해집니다.
그러니. 빌딩 이름도 지금부터 생각하는 겁니다. 어차피 지금 결론이 안 나올 건데도, 생각은 뭐, 지금부터 하면 된다.
10: 마무리
00:50:40-00:54:00
[Music: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네. 여러분? 좀 어이가 없죠? 그렇지만 여러분도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실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왕이면 부귀영화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기분도 좋고, 하여간에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데 드는 돈은 빵 원입니다.
여행을 다닐 때 프레임을 정하고 가면 여행이 훨씬 풍요로워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뉴올리언스를 방문한다면 여행 컨셉을 마법과 주술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고, 재즈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고, 먹거리 기행으로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셋 다일 수도 있겠고요.
‘뉴올리언스에서 이러저러한 장소를 방문해야지’를 미리 정하는 것보다, ‘어딜 방문하든 이것을 중점적으로 봐야지’를 미리 정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삶이 여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프레임을 잡아 보겠다. 빌딩 이름도 그렇고. 아지트에 넣을 것도 그렇고. 이런 것들을 하루아침에 결정할 수가 없잖아요. 따라서 지금부터 종종 기록을 할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과 이번 에피소드의 녹취록은 제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링크 및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에 관한 링크들을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Music ends.]
모든 링크
- 00:02:35 — 박사장빌딩
- 00:10:12 — King Richard the Lionheart
- 00:20:00 — 기부 건물 이름에 대한 2006년 기사
- 00:28:32 — Fathom Analytics
- 00:29:42 — Plausible Analytics
- 00:32:27 — Vellum
- 00:35:17 — Web Monetization
- 00:35:26 — Stefan Thomas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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