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5] 신년운세: 요즘 세상 점

[Ep. 25] 신년운세: 요즘 세상 점 - 네모

1: 오프닝

[Music: Eternity Clock – Shahead Mostafafar]

00:00:00-00:04:32

안녕하십니까?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 여름입니다. 그리고 아임 드리밍의 새로운 시즌, 시즌 3이 시작하는 날입니다.

요즘에 온 세상이 불에 타오른다던데. 그리고 몇몇 곳은 찜통 같기도 하다던데. 시원한 무언가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시즌에는 공포스러운 것들과 약간 얽혀 있는 주제들을 다뤄볼까 합니다. 슈퍼내추럴하거나, 디스토피아적인 것, 기타 섬뜩한 것들, 이상한 것들, 잘 생각해 보면 괴이한 것들. 원래부터 좀 괴한 팟캐스트였기 때문에, 아마 들으시는 분들께 괜찮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귀신이 나오는 무서운 얘기를 할 건 아니고요, 만약 한다고 하더라도 그 무서운 얘기에 ‘대한’ 얘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많이 공포스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얘기는 없이, 순전히 이론적인 측면에서 공포스러운 주제들을 다뤄 보겠습니다.

특히나 오늘은 시즌이 시작하는 날인 만큼, ‘처음’과 자주 연관 지어지는 주제를 골랐습니다. 이번 시즌에서 가장 안 무서운 주제 같아요. 바로, 점입니다. 신년운세. 사주. 토정비결. 타로. 기타 등등. 넓은 의미에서의 점.

저는 워낙에 미래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점을 좋아합니다. 다 믿진 않고요. 좋은 말만 믿습니다. 나머지는 다 무시합니다. 어이가 없죠? 이렇게 점을 골라서 믿으니까 사실 점을 안 믿는 건데, 어… 그래도 재밌어서 가끔 봅니다.

지금 2022년이 된 지 많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음력으로도 2022년이 된 지 좀 됐어요. 즉, 신년운세가 맞았나 안 맞았나를 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기가 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년운세에 대해 좀 얘기할게요.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Music ends.]


2: 운명과 자유 의지

00:04:32-00:13:45

네. 한아임은 점을 재미로 가끔 보는데. 뭐, 산에 가서 누구 용한 사람을 찾아가고, 이런 적은 없습니다. 대체로 무료 점만 봐요, 폰으로. 타로점을 친구들이랑 타로 카페 같은 데에 가서 본 적은 있지만, 그것도 뭐… 당시 가격으로 만 원? 이런 가격의 점이었고요. 거금을 투자해서 미래를 점쳐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이런 걸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이걸 맹목적으로 믿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점이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요. 대체적으로 저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될 때 점으로 그 결과를 알려고 하진 않습니다. 즉, 저의 투두리스트가 있지 않겠습니까? 할 일의 목록. 거기에 할 일이 뚜렷하게 남았는데 미래가 궁금하진 않아요. 궁금할 건덕지가 없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그거 다 해야지. 일단 해야 할 일이라고 정했으니까 그걸 다 해야 뭐가 궁금하든지 말든지 한 기분이 든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상태에서 제 미래는, 누가 점쳐줄 필요도 없이, ‘투두리스트에 있는 것을 다 하는 한아임,’ 혹은 ‘다 하려고 노력하는 한아임’인 겁니다. 누구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거나, 다 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시점에서, 이제 남은 건 외부의 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 때, 그때 궁금해지는 겁니다. 정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나를 어떻게 하려나? 이런 궁금증.

그리고, 저는 점의 결과를 골라서 믿지만, 제가 골라 믿든 아예 믿지 않든 존재하는 거대한 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종교를 믿지 않는데,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만든 각종 권위가 싫어서고, 인간 너머의 힘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닙니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그게 운명인지 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것은 자유 의지에 대한 제 의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 일단 투두리스트가 있다고 했잖아요. 제가 할 일을 어딘가에 적어놓을 정도로 명확하게 결정을 했다는 뜻입니다. 매일을 이렇게 살아요. 할 일이 있고. 거기에 시간을 할당합니다.

20분 단위로 할당을 해요. 노는 시간도 스케쥴링을 합니다. 안 그러면 또 그 시간에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뭐, 요즘에는 잠을 더 많이 자고 스케쥴링을 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막연하게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떤 프로젝트가 있으면 보통 그게 몇 주는 가잖아요. 프로젝트라고 부름 직한 무언가라면 그게 하루 안에 끝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몇 주, 몇 달 동안 뭘 했고 뭘 안 했는지를 기억하려면 메모를 한단 말이죠. 그러면 그중 일부가 어쩔 수 없이 투두리스트가 되는 겁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저의 자유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가. 일단, 제가 계획 세우기를 좋아해서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게 된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태어난 겁니다. 예전에 얘기했었죠. 돌잡이 때 종이하고 연필을 잡았다고. 이게 뭐, 그러고 싶어서 했다기엔 너무… 1살이잖아요. 얘가 무슨 생각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대체 왜 나는 그때 종이하고 연필을 잡은 이후로 그냥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고, 진짜로다가 물리적 종이하고 연필에 둘러싸여 있든가, 비유적 종이하고 연필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도. 10년 반 정도 전, 어느 날,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2012년 4월 4일. 제가 100% 고른 날짜라고 볼 수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직접적으로 선택한 측면이 있는지라 진정한 생일로 보는 날짜가 4월 4일입니다. 네. 저는 10살이에요.

아무튼 그런데, 이야기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시작한 건 10년 전이지만, 무의식적으로 한 건… 제가 기억하는 한,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어렸을 때 인형을 갖고 놀 때, 그 인형을 앉혀 놓고는 걔의 삶을 상상했는데, 그 상상하는 방식이 지금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좀 평행우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얘가 과학자도 되고, 가수도 되고, 뭐 여러가지가 되는데, 그것이 다 동시다발적으로 뭔가… 다 될 수 있다는 점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확실히 좋아했던 게 맞는 것 같단 말이죠.

그러니 어렸을 때 투두리스트를 적어 두진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에는 프로젝트가 하나 혹은 몇 개 안 되어서 적을 필요가 없었을 뿐인 거지, 제 머릿속에 ‘해야 할 일’이라고 결정된 아이템들은 전부 사실 제가 뭔가 통제를 해서 해야 할 일이라고 결정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투두리스트를 적든, 그게 머릿속에 있든, 저는 제가 결정해서 투두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한편으로는 여기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여기에 제 자유 의지가 들어가 있긴 한 건가, 아주 근본적인 수준에서? 그런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만약 아주 근본적인 자유 의지라는 게 있긴 하다면, 그건 정말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양육의 영향인가.


3: 조기교육, 후기교육

00:13:45-00:19:23

[Sound effect]

약간은 조기교육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케이스도 있긴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 엄마님이 제가 어렸을 때 책을 엄청나게 읽어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들은 거예요, 이건. 엄마님이 책을 그냥 읽어준 게 아니라, 제가 그걸 너무 좋아해서 엄마님 목이 쉴 때까지 읽어줬다고 친척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실제로 어렸을 때는 집에 항상 종이책이 수백 권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디지털화되고, 뭐, 컸으니까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는 거고, 세상이 변해서 ‘책’이라는 형태로 되어 있지 않은 텍스트가 정말 많은데, 당시에는 어린이가 볼 수 있는 텍스트는 책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용 책만이 아니라 그냥 책이. 온 집안이. 책. 아니면 악기. 아니면 책상이었습니다.

지금도 여행을 가거나 할 때 엄마랑 제가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는 책상입니다. 책상이 아니면 식탁이어도 괜찮고요. 의자가 딸린, 무언가를 읽거나 쓰는 데에 쓸 수 있는, 표면이 납작한 가구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책상과 식탁, 이 둘 중 어느 것도 없는 호텔방이나 에어비앤비가 가끔 있습니다. 아무리 방이 좋든, 크든, 비싸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상이 아예 없고 그냥 화장대 비스무리한 것 혹은 도저히 쓸 수가 없는 아주 낮은 탁자 같은 것밖에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어. 아주 답답한 기분이 듭니다.

읽지 않고 쓰지 않는 삶을 영위하도록 디자인된 공간이라니. 당최. 이것이 무슨 방이냐. 지금 저는 저 혼자서 책상 4개를 씁니다. 필요해요, 책상이.

아무튼, 이러한 조기교육의 영향이 분명 있기는 하겠지만, 제가 정말 미스터리하다고 생각하는 건, 대체 제가 왜 이걸 이렇게 아직까지도 필요로 하느냐는 겁니다. 제 생각에 제가 노력해서 책상을 싫어하기로 마음먹는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것 같거든요?

제가 정말 1도 관심이 없는 분야도 정말 많은데 말이죠. 공으로 하는 스포츠가 정말 미스터리하다는 얘기를 예전에 했었죠. 특히 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스포츠. 아니, 불쌍한 공이 가만히 있는데 그걸 왜 자꾸 차고 손으로 던지느냐는 말이죠. 그런데 그러한 스포츠를 하시는 분들은 공이 있으니까 그걸 차고 손으로 던지고 싶은 마음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본능적으로, 운명적으로 느껴지셔서 어렸을 때부터 그걸 하지 않으시겠어요?

이게 신기하단 말이죠. 조기교육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조기교육 다음에는 후기교육도 있겠지만. 그러한 갖가지 이유들이 아닌. 정말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는 무언가가 있다고요.

예를 들어, 저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는데, 이분은 책을 안 읽어요. 우리 엄마님이 저한테만 책을 읽어준 게 아닐 텐데도, 저는 이렇게 됐고, 그분은 그렇게 됐습니다. 그분은 다른 걸 잘합니다. 다른 걸 좋아하고.

왜 이러느냔 말이죠. 대체 왜. 운명인지 운인지 교육인지 자유 의지인지.


4: 점의 자리

00:19:23-00:30:27

[Music: Clear Escape – Harbor Fate]

이렇게 논리로 설명이 불가능한 개개인의 특징이 있으니까, 2022년, 자율 주행차가 생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에이아이가 번역과 내레이션 분야를 건드리는 이 시대에도 점이 자신의 확고한 입지를 박탈당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옛날 것이 다 사라질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 옛날 것을 일부러 옛날 것이라서 찾는 사람들도 있고, 옛날부터 있긴 했지만 전혀 옛날에 속한다고 볼 수 없게끔 현재에도 굳건한 입지를 자랑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점이 이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 앱 스토어에 가 보시면, 점, 혹은 운세, 이런 키워드로 검색하면 앱이 어마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사람들이 미래를 정말로 궁금해 하나 봐요. 연애운, 직장운, 재물운, 건강운, 보려고 하는 점의 종류도 다양해요.

그리고 점 보는 앱들의 디자인을 관찰해 보면, 이게 요즘 사람들에게 통하는 스타일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요즘에 굉장히 깔끔하게, 흑백을 기본으로 해서, 예쁜 일러스트레이션을 곁들인 운세 앱들이 나오더라고요.

이는 이런 운세 앱을 만드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이 앱들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저들이 왜 이 앱들을 쓰려 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이 깔끔함. 이 단아함. 이 정확함. 요즘에는 심지어 수치로 하루하루의 점수가 나오더라고요. ‘오늘은 97점짜리 하루가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Music ends.]

아무리 과학적인 점을 봐도, 솔직히 96점짜리 하루랑 97점짜리 하루가 뭐 그렇게 다를 리가 없는데, 그래도 이런 앱들에서는 꽤 높은 빈도로, 적용이 불가능할 것 같은 수치들이 적용이 된다.

이것이 오늘날의 앱 유저들이 너무나 수치에 익숙해서인지? 즉, 어떤 앱에서 수치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 수치의 부재 때문에 자신의 판단에 영향이 간다고 의식적으로 자각하진 않을지라도, 왠지 알게 모르게 다른 앱으로 이탈하게 된다는 걸 이러한 운세 앱들이 알아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치를 갖다 붙이는 건지?

일례로, ‘점신’이라는 앱이 있는데, 거기에는 입장하자마자 별별 수치가 다 나옵니다. 일단 저는 오늘의 운세가 60이래요. 음. 별로인 하루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오늘의 운세에서 시간대별 운세를 볼 수 있는데, 그러면 오전, 오후, 밤 이렇게 분리해서 점수를 줍니다. 저는 오늘 오전은 60점, 오후는 65점, 밤은 55점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오전에는 오전 운세 풀이만 볼 수 있고, 오후가 되어서야 오후의 세부 운세 풀이를 볼 수 있습니다.

머리 잘 굴렸죠? 사람들더러 계속 앱에 다시 들어오게 하려는 작전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점수들과, 여기 그래프도 있거든요? 바이오리듬 그래프도 보여줍니다, 심지어는. 이쯤 되면, 어… 뭔가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주는 통계다. 실제로 통계라고 하니까. 그런데 사주는 통계일 수 있으나, 이런 바이오리듬 그래프를 보고 있으면 머리로는 이런 반응이 나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이 앱이 제 바이오리듬을 어떻게 압니까? 말도 안 되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프가 보기에 좋습니다. 디자인을 너무 잘했어요. 디자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가서 구경하시면 눈여겨볼 만한 요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점을 안 믿어도 운세 앱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건 많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소원 담벼락’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냥 가서 소원을 쓰는 건가 봐요. 무려 이용자 수가 90만 명에 달한다고 여기 또 수치가, 아주 그냥 과학적으로다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 너무 귀여워요. 이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뭔가를 적는 행위 자체가 나의 욕망에 좀 더 물성을 주는 건 저는 사실이라고 보거든요. 맨날 뭐 하겠다고 말만 하고 다니는 거, 혹은 생각만 하고 다니는 것보다, 그걸 종이에 적거나, 폰에 적거나, 하여간 적어서 형태를 주는 게 효과가 있음은 현대의 자기 계발서에도 끊임없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에 대한 연구 결과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연구 결과가 얼마나 과학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직접 해보면, 욕망을 쓰는 게 안 쓰는 것보다 욕망을 더 잘 실현시켜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이에요.

그러니 소원 담벼락이 뭐,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줄 순 없겠지만, 이 담벼락을 쓰는 사람들이 소원을 씀으로써 뭔가… 마음의 짐을 던다든지, 자신의 소원을 좀 더 구체화했다고 느끼게 된다든지, 한다면, 얼마든지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이 점신 앱에서 어디 세부 점을 보러 들어가면, ‘오늘 점신으로 점을 확인한 사람수’ 하면서, 제가 확인했을 당시 1만 1천 851명이라는 수치가 떴습니다. 정말로 만 명씩이나 점신을 쓰는 걸까요?

그런데,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점신이 제 생각엔 일단 이름을 너무 잘 지은 것 같습니다. 간단하면서도 포부가 있지 않습니까? 점의 신 같다는 것 같잖아요. 그리고 디자인도 너무나 깔끔하고, 예쁩니다. 그냥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점을 안 믿더라도, 기분이 좋은 건 확실히 기분이 좋은 거니까요.

아무튼 그리고, 회사 내부 사정을 제가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이러한 앱들이 돈이 되나 봅니다. 무료 버전으로 나온 앱에는 대개 유료 옵션이 있고, 그렇게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예쁜 일러스트레이션도 매년 업데이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매년 업데이트되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운세만 업데이트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을 새로 단장하는 것. 뭐, 소의 해면 소 그림이 막 들어가 있고, 호랑이의 해면 호랑이 그림이 들어가 있고.

사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는 것을 좀 명확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측면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운세 앱을 왜 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예쁘잖아요. 신년 인사 카드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5: 말투

00:30:27-00:35:33

[Music: Spring Sprouts – Annie Zhou]

제가 운세 앱에서 특히나 재미있어하는 점은, 말투입니다. 여기에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하나는 예스러운 말투고 다른 하나는 기상 예보 말투입니다.

예스러운 말투의 예는, 이런 겁니다. 점신에 나온 제 토정비결 2022의 일부를 읽어드릴게요.

일단 한자가 나와요.

야우행인 진퇴고고

신수불리 구지부득

삼춘지수 횡액조심

막탄곤액 연말해지.

‘점신’의 한아임 토정비결 중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비해서, 아래에 해석이 나옵니다.

밤비 속을 걷는 이가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는구나.

신수가 좋지 않아,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구나.

1, 2, 3월 중에 횡액이 끼었으니 조심해야 한다.

곤고함과 액운을 탄식하지 말라. 연말에는 해결 될 것이다.

‘점신’의 한아임 토정비결 중

한마디로 2022년이 망했다는 뜻 같은데, 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말씀드렸죠? 이런 운세가 나오면 저는 그냥 무시한다고. 좋은 운세가 아니면 그냥 금방 까먹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1, 2, 3월에 횡액? 그게 끼었다고 하는데, 제가 1, 2, 3월이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꽤 괜찮았어요. 이때가 작년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때였고, 아임 드리밍 시즌 1이 진행 중이던 때였는데, 괜찮았거든요. 즉, 틀렸다. 점이 틀렸다. 이래서 신년에 신년운세를 얘기하는 것보다 신년이 구년이 되고 나서야 얘기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확실히 알거든요, 당시에 미래였던 지금의 과거를.

아무튼, 이러한 예스러운 말투, 한자를 많이 쓰는 말투,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뭐, 점 보는 재미가 있는 말투가 있고요.

[Music ends.]

다음으로 기상 예보스러운 말투가 있습니다.

이 말투가, 예전에 비해 점점 더 기상 예보처럼 변해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 에피소드를 쓴 날의 제 재물운을 읽어드리겠습니다. ‘한동안 구멍 난 자루를 끌고 다니는 듯 하겠습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 저기 새는 구멍이 많이 생겼습니다. 당최 노력을 해도 모이는 것이 없으니 걱정이 태산 같겠지만, 우선은 자산관리 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완전히 뭐… ‘오늘은 전국에 비가 오겠습니다. 오후에는 맑겠습니다.’ 이런 말투 아닙니까?

그런데 마치 기상청의 예보와 같게, 이 예보 또한 틀렸다. 일단 저는 걱정이 태산 같지가 않고요, 새는 구멍이 없습니다.

점신은, 가만 생각해 보면, 다 틀려요. 그런데 뭐다? 예쁘다. 재밌고 귀엽다.


6: 사주

00:35:33-00:39:47

[Sound effect]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사주는 통계라고 하니까, 그래도 사주는 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또한, 오행이란 게 있잖아요. 이 오행이 동양에서는 오행이라고 불리고, 서양에서는 뭐, 4원소설? 그런 비슷한 방향으로 풀렸는데, 물론 이 세상 모든 게 네 개, 혹은 다섯 개의 원소로 나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저는 고대 사람들이 세상을 이렇게 보았다는 데에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세상이 훨씬 더 많이 복잡해졌고, 주기율표에는 네다섯 개보다 훨씬 많은 원소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인간이 생눈으로, 현미경 없이, 망원경 없이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은 여전히 이 오행 혹은 4원소설의 시스템으로 나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행은 나무, 불, 흙, 쇠, 물.

4원소는 물, 흙, 불, 공기. 그리고 나중에는 에테르가 추가됐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지금까지도 인간에게 본능에 가까운 의미를 내뿜는 개념들입니다. 언어에도 이런 게 너무나 많아요.

성격이 불같다.

물 흐르듯 흐른다.

공기처럼 흩어진다.

사람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성이 이 오행 혹은 4원소, 그리고 비슷한 시스템들에 다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가 그… 뉴에이지 철학파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이것도 뭐… 따지자면 맞아요. 우리는 다 우주의 어떤 입자였고, 그것이 이렇게 저렇게 뭉쳐서 지구가 됐고, 그것에 어찌저찌 물과 해와 공기가 형성되어서 미생물이 생겨났고, 그것이 진화해서 지금의 우리가 됐다고 한다면, 우리가 모두 별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특히나 이런 뉴에이지 철학에 사용되는 스토리텔링이 저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이… 우리가 모두 별이라고 함으로 해서 이들은 아주 오래된 고대의 점성술은 물론이고 현대 과학까지도 연결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저는 그 자체로 놀랍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세상을 해석하는 깔끔한 패러다임을 누군가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그걸 원한다면, 뭐 딱히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7: 한아임의 사주와 오행

00:39:47-00:49:13

[Music: Depths of Sky – Harbor Fate]

그래서 한아임 운세 중에 맞는 건 없는가.

음. 제가 맞다고 믿고 싶은 내용은 있습니다. 제가 어디서 점을 보더라도 거의 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은, 저한테 가장 안 좋았던 시기가 10대이며, 말년운이 좋다는 겁니다.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제가 앞으로 살면서의 최악을 이미 경험했다는 뜻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은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말년운이 좋을지는 살아봐야 확인할 수 있겠죠.

그리고 오행은. 음… 일단 점신에 따르면, 나무의 기운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상한 게. 분명히 제 기억으로는 어디서 뭘 봤을 때 물의 기운이 많다고 했거든요? 이게 뭔지. 왜 그런 건지. 사주는 바뀌는 게 아닌데.

아무튼. 점신에 따르면 사주 오행 8개 글자 중 나무가 무려 3개고요, 물이 하나, 쇠가 둘, 흙이 하나, 불이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처럼 잘 모르는 단계에서의 오행이나 사주는 약간은… 음… MBTI 같아요. 끼워 맞추기 나름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항상 물 근처에서 살았거든요? 강 아니면 호수 아니면 바다 근처에서 살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차 타고 삼십 분 거리 내에 항상 물이 있었어요. 그리고 물에서 먼 곳에 있으면 답답한 기분이 듭니다. 기분이 이상해요.

이것이, 제가 사주에 물이 많다고 생각했을 때는 ‘내 사주에 물이 많으니까 내가 물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점신 버전의 사주 오행을 보고는 이러는 겁니다. ‘내 사주에 나무가 많아서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라고 물을 필요로 하는구나.’

아니 근데 왜 사주가 다른 거지? 이상합니다. 왜 오행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리고 산 아니면 바다를 고르라고 했을 때, 어렸을 때는 바다를 골랐는데, 이제는 산을 고를 것 같습니다.

제가 한강뷰를 컴퓨터 배경 화면으로 해 놓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파란색이 너무 울적해서 일주일도 안 돼서 숲 사진으로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 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좋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돌이 좋아져요. 예전에는 돌을 왜 모으나 그랬는데, 요즘에는 그… 왜… 미국의 아리조나, 유타, 이런 데 있잖아요? 붉고 거대한 돌들이 있는 곳. 그런 데가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런 건 왜 그런 건지. 그냥 늙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Music ends.]

아 그리고, 생년월일을 다 말하면 제 사주가 털리니까, 아주 작은 부분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자시에 태어났습니다. 멋있죠? 제가 고른 시간도 아니고 엄마가 고른 시간도 아닌데, 밤 11시 45분, 하루가 저물고 다음 하루가 시작된다고 예로부터 여겨지던 그 시간에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거 뭐라고 하지. 대운. 10년마다 바뀌는 거. 제가 대운이 바뀌는? 들어오는? 그게 조만간 바뀔 시기예요. 1, 2년 남았는데, 이 대운은 실제로 좀 이거에 따라 큰 변화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국가를 옮겨 이사를 가거나, 국토를 가로질러 이사를 가거나, 그런 일들이 지금껏 이 시기에 맞게 일어나긴 했습니다.

그런데 사주가 아니더라도 이런 이론들은 있어요. 예를 들어, 7년 이론이라는 게 있는데. 대표적으로 seven-year itch라는 문구로서 사용됩니다. 결혼생활이나 장기적인 연인 관계에서 그 관계의 질이 7년이 지나면 떨어진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꼭 이렇게 질의 하락에만 사용되는 건 아니고요, 0세부터 7세, 즉,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나이, 이런 예로도 쓰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자립해서 애가 돈을 벌 건 아니지만, 7세면 밥도 자기가 혼자 먹고, 몸도 자기가 혼자 씻고, 옷도 혼자 갈아입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걸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서 7세부터 14세는 부모로부터 자립이 계속되고, 뭐 14세부터 21세는 사춘기고, 등등.

심지어 미국에서 의사가 되려면 7년이 걸린다는 예를 드는 것도 봤습니다.

이 모든 건 그러니까, 사주든, 7년 싸이클 이론이든, 동양이든 서양이든, 인간이 불확실한 삶에서 패턴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하게, 저는 이게… 좋은 것 같아요. 운세라는 도구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정리를 합니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두서없어서, 아마 미칠지도 모릅니다. 일례로, ‘일주일이 가고 다음 일주일이 온다’는 개념이 정리입니다. 1주일이란 건 사람이 만든 개념이잖아요. 그리고 양력 음력도. 달력이 두 개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 정리를 위해 만든 개념이기에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정리를 하고 있고, 인생을 10년 단위로 보든, 7년 단위로 보든, 3년 단위로 보든, 아니면 오늘만 살고 내일은 내일만 살든, 어떻게든 우리는 시작과 끝맺음을 계속해서 하고 있고, 그러지 않으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화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8: 마무리

00:49:13-00:52:20

[Music: So This Is It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2022년 신년이 된 지 양력으로 어언 9개월. 음력으로는 7개월쯤. 여러분의 신년 운세는 지금껏 어떻게 맞아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든, 이왕이면 도움 되는 것만 믿고,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건 안 믿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앱이 어떻게 압니까? 바이오리듬을. 말도 안 되죠.

그냥 디자인이 예쁘고 재밌으니까 운세를 점쳐보는 정도로 두는 것이 실제로 일을 할 시간을 비워두는 길 같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Music 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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