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7] 포부포화: 끔찍한 혼종인가 싶은 미르메콜레온 square](https://aimdreaming.imaginariumkim.com/wp-content/uploads/2022/08/아임-드리밍_S3-3-Ep.-27-square-1792x1792.jpg)
1: 오프닝
00:00:00-00:09:27
[Music: Eternity Clock – Shahead Mostafafar]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이번 시즌의 약간 공포스러운 주제가 오늘도 계속됩니다. 오늘은 공포 중에서도 정말… 기괴 그 자체. 뭔가, 무서운 기괴함을 넘어선, 생뚱맞아서 충격적인 기괴함.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 상상 속의 생명체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여러분, 사자, 아시죠? 동물의 왕이라고도 하는 사자.
그리고 개미, 아시죠? 엄청 여러 마리가 모여서 여왕개미를 모시고 사는 자그마한 개미.
네. 얘네가 평화롭게 사자는 사자로서, 개미는 개미로서 살고 있었는데, 옛날 옛적, 유럽에서, 참말로 취향이 기이한 사람들이, 기이한 상상을 해냈다고 합니다.
바로, 미르메콜레온[myrmecoleon]이라고 불리는 존재입니다. 이 미르메콜레온은 포르미칼레온, 미르미키오레온 등으로도 불린다고 하는데, 이름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개로 갈린 듯하지만, 하나 확실한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머리는 사자고 몸은 개미라는 점입니다.
아니.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끔찍한 혼종 아닙니까?
제가 이 기괴한 생명체, 미르메콜레온이라는 녀석에 대해서 알게 된 이유는 이에 관련된 전시가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이라는 이름으로 2022년 8월 12일부터 8월 21일에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작년에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전시에 ‘가족’ 키워드로 참여하셨던 오선영 작가님과 ‘북한’ 키워드로 참여하셨던 박도환 작가님이 참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출판에, 출판에 우리 이혜원 기획자가 운영하는 범고래출판사가 참여했습니다. 네. 전시는 끝났지만, 책이 나옵니다, 여러분. 게다가 각종 굿즈가 제공되는 텀블벅 펀딩을 9월 30일까지 진행합니다. 이 괴상한 사자개미, 개미사자 컨셉의 스티커, 떡메모지, 노트, 리서치북, 전시 도록, 맨투맨까지!
엄청나지 않습니까?
여기 텀블벅 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미르메콜레온이 어쩌다가 사자개미, 개미사자가 됐는지에 대하여.
“헤로도토스와 플리니우스 또한 이 미르메콜레온이란 존재에 대해 기록하였는데, 그들의 묘사에 따르면 미르메콜레온은 사자와 개미의 교배로 태어났다. 이들은 사자가 땅에 떨어진 개미의 알에 정액을 뿌리면 태어나는데, 앞부분은 사자의 머리이지만 뒷부분은 개미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며, 두 동물의 생리적 습성을 모두 몸에 지니고 있다. 사자는 고기만 먹을 수 있고 개미는 곡물만 먹을 수 있기에,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결합된 미르메콜레온은 그 무엇도 먹지 못하고 결국은 굶어 죽는다.”
충격. 완전 충격. 이게 뭐야. 누가 이런 상상을 하죠? 옛날 유럽 사람들은 왜 이랬대요? 누가 개미의 알이 땅에 떨어져 있는데 사자가 지나가다 정액 뿌리는 상상을 하냐고요. 완전. 완전 이상하죠?
아무튼, 제가 이 프로젝트에서 특히나 흥미롭게 생각한 지점은 이겁니다.
이 텀블벅 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다원예술 기획 프로젝트 <미르메콜레온>은 … 사람들마다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심리와 그 상태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사람들마다 내재된, 혹은 인지하고 있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상태’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또한, 이런 설명도 나와 있습니다. “중세시대 철학자들은 미르메콜레온을 우유부단함과 위선에 대한 풍자로 사용했으며, 구스타프 플로베르는 이 미르메콜레온을 자신의 작품인 <성 앙트완느의 유혹>에 등장시킨 바 있다.”
즉, 단순히 옛날 옛적 사람들의 상상 속에 존재했던 생명체에 대한 프로젝트인 것이 아니라, 현대인에게서 나타나는 심리적 경향성에 대한 은유인 겁니다.
이거 너무 슬프지 않나요? 너무 기괴하죠. 밥 못 먹어서 죽는 생명체. 우유부단. 위선. 가능성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상태. 이 모든 것은 옛날 옛적 유럽인들에게만 흥미로운 은유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시의적절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이라는 전시에 참여하신 분들이 흥미로운 해석을 하셨을 텐데, 저도 이번 에피소드에서 이 전시를 통해 알게 된 미르메콜레온에 관한 여러 생각을 다뤄보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Music ends.]
2: 우리 모두는 요즘 것들이다
00:09:27-00:17:38
미르메콜레온. 이 녀석의 탄생 시점이 저는 좀 의외입니다. 옛날 옛적 유럽 사람들이 미르메콜레온이라는 존재를 은유적으로 쓸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해서요. 옛날 옛적 유럽이라고 하면, 옛날 옛적의 여느 장소와 마찬가지로, 아들은 아버지가 하던 일을 물려받아 하고, 여자들은 일을 하지도 못하던 시대 아닙니까? 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당시에도 미르메콜레온을 우유부단함과 풍자로 사용했다는 게 신기합니다.
이것이 제 생각에… 이것이 뒤돌아보는 역사의 맹점 중 하나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요즘 것들이지 않았습니까? “요즘 것들은 말이야, 이이이이이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라고 정신적으로 늙으신 분들이 말할 때 쓰는 바로 그 “요즘 것들.” 네, 이게 정신적으로 늙은 게 맞는 것이, 고등학생은 중학생더러 요즘 것들이라고 하고, 60대는 50대한테 요즘 것들이라고 하고, 그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제가 상당히 쓸모없는 개념, 사실 개념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편의성 뭉뚱그리기에 가깝다고 여기는 단어 중 하나가 요즘 것들입니다. 우스갯소리로나 재밌지, 이 개념의 존재를 실제로 믿는다면 스스로를 상당히 제한하는 행위가 될 겁니다.
왜냐하면.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요즘 것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면 마치 우리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요즘 것’인 것처럼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죠. 그럼 우린 뭔가요? 옛날 건가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아까 말한 그 ‘뒤돌아보는 역사의 맹점’이 나옵니다. 우리가 서서히 요즘 것들에서 옛날 것이 된다면 과거 사람들도 언젠가는 전부 요즘 것들이었을 테지만 아니라는 생각에 빠진단 말이죠. 그러면 그들 시대에는 그들 나름대로 바삐 살고, 다 복잡한 문제가 있었을 텐데도, ‘현대인’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뭔가… 할 일이 없었다고 여긴다든지, 심심했을 거라고 여긴다든지, 심지어 바보 같았을 거라고 여기는 일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저도 ‘현대인’이라는 범주를 씁니다. 편의성으로. 그런데 쓰면서도 항상 궁금해요. 내가 ‘우리 현대인들은 이러하다 저러하다’라고 말을 할 때마다, 그 말을 50년 후에 듣는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옛날이야 어떤 무언가를, 그것이 글이든 영화든 비문학이든 시든 게임이든, 있는 그대로 50년 후에 직접 소비를 할 사람들이 적었을지 모르겠는데, 요즘에는 그게 아닌 것 같거든요. 팟캐스트 피드가 공개 상태로 있으면 그냥 100년 후에도 어떤 학자나 공무원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지금 현재와 똑같게 들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외계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외계인들도 지금 현재 여기서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를 소비할 수 있게 될 텐데. 그 수많은 유튜브 영상들, 웹소설들, 기타 등등에서 ‘우리 현대인’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때마다 외계인들은 저자가 누구였는지, 어디 살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건지. 이러한 현재와 미래의 상황이 과거에 문헌들이 실종되고, 막 글씨가 비에 젖어서 지워지고, 불에 타서 증거가 사라지고, 이러던 때와 너무 다르잖아요?
그래서 가끔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면 100년 후에 너무 이상하게 들릴 것 같다. 그냥 2022년 사람들이라고 말을 해야겠다. 네, 제가 지금 여기서 말하는 현대인들은 2022년 즈음에 살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현대인들’이 당연히 2022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100년 후에는 2122년 사람들이 현대인일 거고, 100년 전에는 1922년 사람들이 현대인이었을 텐데.
그리고 이 모든 시공간의 사람들은 다 저마다 제각각으로 할 일이 산더미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논리적으로는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르메콜레온이라는 개념을 옛날 옛적 유럽 사람들이 상상해냈다는 걸 신기해하는 제가, 참, 신기합니다.
당연한 걸. 그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바빴을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것이 실제로 하게 되는 것보다 너무 많아서 더 우유부단하거나 위선에 빠지기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현대에 인터넷이 있고 스마트폰이 있고 메타버스가 온다고 하고 난리난리라서 우리만 바쁜 게 아니라, 그때 그 사람들은 세탁기 없으니 빨래 하느라 바빠, 냉장고 없으니 허구한 날 장 보느라 바빠. 땔감 구해야 해. 동물을 사냥해야 해. 그 와중에 정말 목숨 걸고 전쟁도 해야 해. 그게 일상이야.
그렇다면 참… 그들에게도 미르메콜레온은 상상 속 존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유용한 은유였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3: 행동 없는 말
00:17:38-00:23:47
[Sound effect]
그리하여 미르메콜레온이 우유부단함과 위선에 대한 풍자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가능성에만 머물러 있는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러한 상태에 놓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가능성에만 머물러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가능성밖에는 고려하지 못해서 가능성이라도 고려할 때. 둘째. 가능성을 실현화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능성에만 안주하는 상태.
아마도 제 추측으로는 미르메콜레온이라는 은유를 가져와서 누군가를 우유부단하고 위선적이라고 할 정도면 이 두 번째 경우일 것 같습니다. 그렇죠? 가능성을 벗어날 수 있는데도 벗어나지 않는 것. 현실 세계에서 실현을 시킬 수 있는데도 시키지 않는 것.
왜냐? 실패할까 봐. 혹은 성공 다음에는 또 다른 가능성을 품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혹은 상상은 잘하는데 실제로 실행하기에는 게을러서.
이유가 여럿일 것 같은데…
이유야 어쨌든, 나타나는 현상으로서는, 음, 정신과 의사가 아닌 제가 전혀 의학적이지 않은 제 개인 의견으로서만 말하건대, 말과 행동 사이의 차이를 관찰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맨날 글 쓰고 싶다고 말만 하고 다니면서 2022년 같은 시대에 출판 경로를 알아보기는커녕 글도 안 쓴다든지.
살 뺀다고 말만 하고 운동도 안 하고 식사량도 줄이지 않는다든지.
뮤지션이라고 말은 하고, 자기는 잘 될 거라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작업실에서 엉덩이 붙이고 일한 시간은 일주일에 채 다섯 시간도 되지 않을 때.
제가 말과 행위의 차이를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이겁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꿈이 있어요. 그런데 타인에게 그 꿈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꿈이 정말로 이루기 어려워서 꿈인 상태로 남아 있는지, 아니면 당사자가 꿈을 간직하고 있는 그 가능성의 상태를 좋아해서 그게 꿈으로 남아 있는 건지를 타인이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일단 자기 꿈에 대해 말하고 다니면. 그것도 지속적으로. 그런데 그것도 자신의 찬란한 미래에 대한 꿈은 커. 그런데 실행은 안 해. 계속 그냥 꿈만 꾸는데, 또 꿈 얘기를 계속해.
이러면 가장 근본적으로 뭘 알 수 있냐면, 이 사람에게 사실은 꿈을 좇을 시간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행할 시간이 있었는데 실행 대신 말하고 다니기만 한 시간이 많다는 걸.
이렇게 되면 저는 타인이 ‘아, 이 사람의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구나’라는 판단을 내리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마음이 바뀌는 경우도 있겠죠? 이런 경우가 미르메콜레온이라는 경우가 아닙니다. 마음이 바뀐다면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다니지 않겠죠. 글을 쓰려고 관심을 가져 봤는데 별로라서 글을 이제 별로 안 쓰고 싶으면, 글을 실제로 쓰는 작가가 될 거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죠. 만약 말하고 다닌다면, 그건 미르메콜레온 증후군이 아니라 다른 어떤 심리 상태일 것 같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뭔가를 원한다고 주장하고 다니는 상태.
이런 경우가 아닌, 정말 똑같은 미래를 ‘꿈’이라고 부르며 말하고 다닐 정도로 시간이 많은데 실행은 안 하는 그 상태. 제 생각에 이것은 극명히 미르메콜레온적 상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경우에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어도 이 당사자의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쉬이 판단할 수 있습니다.
4: 병이 되는 긍정
00:23:47-00:34:19
[Music: Ziv Grinberg – The Battle in the Castle]
제 개인적인 경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하니까 그 얘기를 할게요.
제가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실제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24시간 하는 건 물론 아닙니다. 저도 밥을 먹고 샤워도 하고, 목욕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잠도 자고, 그럽니다.
그러나 분명, 정말 이거 하나는 확실해요. 제가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시간보다 이야기를 실제로 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실제로 하는 시간’에 제가 두 개의 언어와 두 개의 필명으로 진행하는 팟캐스트들, 블로그들, 뉴스레터들, 그리고 픽션에 들어가는 작업을 포함합니다. 더 넓게는 한아임 이름으로 하는 번역도 포함합니다.
저보다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돈 잘 버는 사람도 엄청 많고, 유명한 사람도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는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걸 꽤 다 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유가, 남는 시간에 잠을 잤으면 잤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라고 하고 다니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제가 늘 이랬던 건 아닙니다. 저는 이야기하기에 있어서 미르메콜레온으로 남아 있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 상태의 근본에는 대강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아이러니하지 않은 위험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 위험 요소는 바로 긍정병이었습니다. 지나친 긍정. 눈먼 긍정. 병 수준의 긍정. 사실 긍정도 아닌데 21세기 현재, 마치 신흥 종교처럼 부상하고 있는 가짜 믿음.
어… 이것은 뭐…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바로 이 긍정병의 위험성 때문에, 뭔가를 하려고 할 때 그 뭔가에 관심이 없는 주변인을 두는 것보다 그 뭔가에 관심 있다고 말만 하는 주변인을 두는 것이 훨씬, 훨씬 악영향을 끼칩니다.
즉. 여러분이 살을 빼고 싶으면 살 빼는 데 관심 없는 사람보다 살 빼야 되는데, 빼야 되는데, 빼야 되는데를 습관적으로 말하고 다니면서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서도 또 언젠가는 살 빠질 거라고 막연하게 긍정적인 사람을 곁에 두는 게 더 악영향을 미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면 노래 잘 부르는 거에 관심이 없는 사람보다 가수 지망생이되 연습을 하나도 안 하면서 자기가 언젠가 잘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을 주변에 두는 게 더 안 좋아요.
대놓고 부정적인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르메콜레온이 그래서 무서워요.
만약 여러분이 살을 빼고 싶은데 옆에서 지인이 ‘살을 어떻게 빼? 살 빼봤자 뭐 어떻게 할 건데’라고 하면 그냥 그 사람을 안 만나면 됩니다. 여러분한테 도움이 안 될 게 너무 티 나잖아요.
가수 지망생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가수 지망생인 여러분에게 ‘네가 무슨 가수가 돼’라고 하면, 그 사람 안 만나면 됩니다.
그런데 미르메콜레온이 무서운 이유는 이거입니다. 본인은 긍정적이에요. 포부에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이 밝아. 미래가 너무 밝고. 나는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않을 거지만, 바로 그로 인해 영원히 가능성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테니, 언젠가 다 잘 될 거야.
다 말뿐이고. 다 허상인 가능성뿐인 상태인 겁니다. 그것도 대단한 긍정의 탈을 쓰고.
이런 경우를 알아보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본인 스스로도 속이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즉, 이 당사자가, 본인에게 꿈이 있다고, 자기는 잘될 거라고, 언젠가는 할 거라고 말하는 당사자가, 실제로 그걸 믿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실제로 본 케이스는 예전에 알던 지인이었습니다. 한 3년 정도 알았던 사람이었는데, 그 3년 정도 간에는 진짜 자주 만났습니다. 둘 다 글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워크숍에서 만나서 친해졌단 말이죠. 그런데 그 3년 동안, 이 사람이 저를 뭐 거의 2주에 한 번 계속해서 만날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만나서 외식을 할 정도의 금전적 여유가 있었고, 건강상의 문제도 별달리 없었는데 그 기간 동안 이 사람이 워크숍에서 다루는 짧은 글 외에 글을 얼마나 썼는 줄 아세요?
한 자도 안 썼습니다.
제가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나한테 거짓말을 했나. 혹시 나한테 글을 안 보여주고 싶은 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글을 썼는데 안 썼다고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건가?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이건… 어… 미르메콜레온은 아닌데 문제가 있긴 하죠? 뭐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하면서 저를 만납니까? 이상하죠.
게다가 최종적으로 제가 아무래도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결론 내린 이유가, 거짓말이기에는 너무… 진짜 병적 거짓말쟁이가 아니고서야, 너무나 글을 쓰는 거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는 겁니다. 써야지, 써야지, 난 언젠가 쓸 거야, 다 잘 될 거야, 난 긍정적이니까, 나는 꿈을 안고 살아야지, 꿈이 있는 한 다 언젠간 이루어져. 시간도 있고. 돈도 있고. 건강도 괜찮은데. 말만.
그리하여 이 사람이 앞으로도 말로만 글을 쓰고 한 자도 실제로 쓰지 않을 거라는 걸 저는 3년이 지나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안 만났습니다.
그러자 실제로 글을 쓰고 실제로 세상에 내놓는 사람들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그들이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건 그들이 자기들이 글을 얼마나 쓰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남들을 설득하느라 돌아다니는 데 자원을 낭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할 일 하느라 바빴던 겁니다.
네. 이런 위험성이 분명 있습니다. 제가 상상의 가치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게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상상이 단지 상상만으로 그칠 때, 실제로 남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만 하는 거에 익숙해지고, 그게 실제로 긍정을 대변한다고 착각하는 순간, 일평생을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꿈을 다 날릴지도 모르게 됩니다.
이 지인이 참 긍정적이었거든요. 언제나 꿈이 많았어요. 언제나 꿈을 꿨어요. 근데 꿈만 꿨습니다.
저도 이 상태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칫했다가는.
5: 분명한 기준
00:34:19-00:39:53
[Sound effect]
그래서 측정 가능한 목표들을 세우면 좋습니다.
요리사가 되고 싶으면 양파 써는 법을 하루에 10분씩 연습하는 계획을 세운다든지. 일본어를 잘하고 싶으면 매일 일본어 단어를 다섯 개씩 외운다든지. 기타 등등.
이런 목표들은 긍정이라든지, 포부의 크기라든지, ‘꿈’이라는 그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모호한 것의 존재 혹은 부재로 정의되지 않지 않습니까?
목표를 지켰거나, 지키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외부 기준을 세우지 않는 편이 특히 처음에는 좋은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미르메콜레온 지인이 아마도 약간 무서워했던 것 같아요. 글을 썼는데 글이 안 팔릴 수 있는 것.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것. 돈이 안 벌릴 수 있는 것. 누가 비난할 수도 있는 것.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 혹은 유명해질 수도 있는 것.
그래서 꿈만 꾼 겁니다.
저는 이게 무서워서 외부 기준을 세우지 않고 외부 기준을 어… 누가 뭐 들이민 적은 없습니다만, 들이민다고 해도 어… 장기하 님의 노래 있지 않습니까? ‘부럽지가 않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왜냐하면 제 생각에 저한테 실패는 딱 하나거든요. 돈 못 버는 것도 아니고, 책 못 파는 것도 아니고, 유명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딱 하나. 내가 글 쓰겠다고 하고서 글 안 쓰는 거. 나아가, 이야기하겠다고 하고서 팟캐스트도 안 하고, 블로그도 안 하고, 뉴스레터도 안 하고, 번역도 안 하고, 하여간에 뭐든지 간에 누가 뭐라고 하고 안 될까 봐 안 하는 거.
그것은 실패입니다. 완벽하고, 부정할 수 없는, 근본적인 실패.
저는 이게 제일 무섭습니다.
불면증의 일부는 이것 때문입니다. 이게 무서워가지고. 할 얘기가 산더미 같은데 내일 죽으면 개억울하겠다. 이거 언제 다 하고 죽냐. 영생을 해도 모자라겠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오디씨 번역한다고 시즌 1에선가 얘기했었는데 그거 못 할 거 같아요. 그때도 번역하는 거 보장 안 한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진 않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까지 못 할 것 같아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뭐가 하나가 끝나면 빈 공간이 생기는 게 아니라, 다른 새로운 게 밀고 들어옵니다.
단, 다행인 건, 제가 계속 오디씨 번역한다고 수시로 말하고 다니진 않는다는 거죠. 만약 제가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할 거야’라고 수시로 말한다면 그건 약간 미르메콜레온적이지 않습니까? 그거 말할 시간에 번역을 하겠다. 근데 실제로 말하고 다닐 시간도 없었고, 그래서 안 했습니다. 하… 당시 에피소드로 오디씨를 알렸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그 번역은 안 하는 걸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번역할 게 이 세상에 너무 많아요. 쓸 오리지널 얘기도 너무 많고. 저는 죽기 전에 이걸 다 못 하고 죽을 겁니다. 그게 확실해요. 그래서 지금은 미르메콜레온이 될 시간이 없다. 그런데 될 뻔했다. 되는 게 무섭다. 되지 않을 거다.
6: 범고래출판사와 번역서의 향방
00:39:53-00:46:49
[Music: Maya Belsitzman & Matan Ephrat – Chaplin – Scene 2]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미르메콜레온이 아닌 주변인이 있으면 정말로다가 좋습니다. 가족이 미르메콜레온이 아니면 정말 좋을 것이고, 친구가 미르메콜레온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미르메콜레온이 아닌 사람하고 작업하면 작업 속도 자체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작업이 아니라 작업에 대해 말하느라 시간을 낭비해가지고 실제 작업을 못 하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우리 이혜원 기획자가 제가 본 사람 중에 정말로다가 미르메콜레온이 아닌 것 같은데.
여러분? 잠깐 친구 자랑 좀 하겠습니다.
우리 이혜원 기획자. 회사 생활을 하면서 우리 혜원이 친구가 번역도 해. 출판사 사장도 해. 얼마 전에 네마프에서 발표도 했습니다. 수건과 화환의 이예현 기획자님과 함께 네마프에서 발표를 했어요. 제목: “전시공간의 태도적 가치/난파선의 구경꾼: 동시대 시각 예술 기획자의 경험과 관찰.” 캬.
그 와중에 우리 혜원이 친구. 얼마 전에 몽골 여행도 갔다 왔습니다. 인스타에 올라왔으니까 말해도 될 것 같아요. 몽골 가서 말도 타지. 독수리 사냥도 하지. 뭐… 못하는 게 없어.
이런 비미르메콜레온적인 이혜원. 추진력이 장난이 아니에요. 어쩌면 이렇게. 멋있는지. 참 나 원. 그렇습니다.
그래서, 추진력이 장난이 아닌 이혜원 기획자라서, 미르메콜레온 프로젝트의 출판 협력을 범고래출판사가 맡게 되었다.
그래서 이 텀블벅 페이지에 범고래출판사 소개도 있습니다. 그것을 일부 제가 읽어볼게요.
“범고래 출판사. 재밌어 보이는 일을 하는 출판사. ‘바다의 무법자’ 범고래처럼 천적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출판 생태계를 교란하겠다는 근자감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부터 멋있죠? 얘는 미르메콜레온이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 음. 페이지 내용을 좀 건너뛰고 다음 부분을 읽을게요.
“범고래출판사는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미르메콜레온’이라는 기이한 신화 속 괴물을 표상으로 삼아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중독된 현대인의 심리를 하나의 문화질병으로서 주목하는 〈미르메콜레온 프로젝트〉 (2022)에 출판 협업으로 참여한다. 또한 현재 현대 도시들에서 나타나는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관련 도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네. 여러분? 다음 책. 한아임이 참여하는 다음 번역서. 디스토피아라는 주제가 될 겁니다. 책 제목 자체는 아직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이, 계약이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여름이라서 저쪽 담당자가 휴가를 가면 몇 주 지연되고, 또 누가 휴가를 가고, 이 사람이 가고, 저 사람이 가고, 이런 일들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뭐 결국에는 계약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디스토피아. 저는 워낙에 디스토피아라는 주제를 좋아해요. 제가 제일 처음 쓴 영어 책. 지금은 아무데서도 안 파는! 제가 남들 말 듣고 시리즈로 기획하고, 남들 말 듣고 아웃라인하고, 하여간에 남들 말 듣고 썼다가 학을 떼고 접은 바로 그 책. 2권 쓰기 싫어서 1권을 없애버린 그 책. 걔가 디스토피아 장르였습니다. 근본적으로 저는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라고 생각을 해요.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유토피아가 있다면 그 자체가 디스토피아고, 현실적으로 없을 것이기에 유토피아의 허상을 들이미는 것 자체가 디스토피아라고.
그래서 디스토피아에 관심이 많고, 우리 이혜원 기획자의 범고래출판사의 포부에 걸맞는 멋진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환율도 계속 오르는데. 환율 완전히 미쳤죠? 완전… 저희는 좀 기다리면 환율이 다시 떨어질까 했는데, 점점 더 광적인 일들이 벌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계약이 빨리 마무리됐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그러합니다. 아마도 다음 번역서는 디스토피아에 관한 것이 될 거다.
7: 마무리
00:46:49-00:52:19
[Music: So This Is It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네. 여러분? 미르메콜레온 프로젝트의 텀블벅 페이지에 가시면 사진 자료가 풍부합니다. 리서치북 사진도 있고, 본인이 미르메콜레온 증후군인지 아닌지를 직접 측정해볼 수 있는 자가진단 설문지의 사진도 있고, 전시 정경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가서 구경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 우리 모두 미르메콜레온인 상태에 대해 경각심을 갖되,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섭잖아요? 정말로. ‘난 안 될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 실천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난 엄청 대단하고 가능성이 풍부해’라는 포부의 포화로 인해 실행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네. 경각심을 가집시다. 부정과 긍정은 참 많은 다른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모호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이루고 싶은 목표라면, 초반에라도 측정 가능한 기준을 두고, 그 누구도, 그 어떤 외부 요소도 뒤흔들 수 없는 내면의 핵을 지키며, 그 일과 목표를 이루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래서 잡식이 좋다. 초식 동물인데 육식을 해야 되서 죽고 육식 동물인데 초식을 해야 되서 죽는다니. 너무 불쌍. 너무 충격. 아사, 익사, 갈사, 동사, 분사, 기타 등등 중에 아사는 너무… 하,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더 무서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르메콜레온을 알아보기까지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너무 오래 걸리니까 적절한 비유인 것 같아요. 미르메콜레온은 굶어 죽는다.
우리 모두 굶어 죽지 맙시다.
밥을 꼭 챙겨 먹고 물도 잘 마십시다.
꼭꼭 씹어 먹자. 소화도 잘해보자.
가능성만 품는 게 아니라 가능성을 실현시키려면, 잘 먹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Music ends.]
모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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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 프로젝트 <미르메콜레온>
텀블벅 펀딩: https://www.tumblbug.com/myrmecoleon
2022년 9월 30일까지 진행!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2022 한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