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9] 머리카락: 가장 클래식한 동양적 공포

[Ep. 29] 머리카락: 가장 클래식한 동양적 공포

1: 오프닝

00:00:00-00:04:11

[Music: Eternity Clock – Shahead Mostafafar]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시즌 3, 공포 주제의 시즌입니다. 오늘은 납량 특집을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다뤘던 ‘신체’ 테마하고도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그렇다고 ‘신체’와 함께 다루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신체’라고 하면 뭔가… 좀 살성? 뼈? 피? 이런 것과 관련이 있는 느낌이 드는 반면, 오늘 다루려는 이 요소는 뭔가… 살, 뼈, 피가 아닌 건 확실하며, 그래서 신체와 떨어져서도 존재할 수 있되, 신체의 연장선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이상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입니다. 그래서 따로 분리해 봤습니다.

얘를, 오늘 다루려는 이 요소를, 공포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동양에서는 두드러지는데 서양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객 및 독자로서 제 생각에는, 이야기 내에서 이 요소의 중요성 정도에 따라 동양적 공포와 서양적 공포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동양 전반의 문화와 서양 전반의 문화 역시 갈리는 것 같아요.

이 요소가 무엇이냐?

바로 머리카락입니다.

동양 납량 특집에서는 도저히 빠질 수가 없는 요소 아닙니까? 약간 흐트러진, 머릿결이 좋진 않은 긴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귀신이 하나 정도는 나와 줘야 동양의 공포죠.

이것을 다루기 위해 오늘 언급될 공포물로는 여고괴담 시리즈<장화, 홍련>이 있는데, 여고괴담 스포일러는 없고, <장화, 홍련> 스포일러는 있습니다. 엄청 많아요.

그럼 머리카락에 대한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Music ends.]


2: 납량 특집과 추위

00:04:11-00:07:05

제가 얼마 전에 납량 특집의 어원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납량 특집, 납량 특집이라고 그냥 습관적으로 말하면 이상한 점을 별로 못 느끼는데, 일단 ‘특집’이라는 단어를 빼고 ‘납량’만 고려해 보기 시작했더니 단어가 특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납량이라고 하니까 꼭 납의 함유량을 말하는 것 같잖아요. 무슨 그… 청량음료에 납이 들어갔다는 건가, 그런 느낌도 들고.

그래서 찾아봤더니, 일단 납이랑 납량 특집 할 때 납량은 전혀 관련이 없더라고요. 나무위키에 이렇게 나옵니다. 납량은 “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서늘함을 들이다’ 이다.” 그래서 ‘피서’라는 단어와 뜻은 비슷하다고 하네요. 즉, 원래의 뜻은 공포물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0년대 방송사들에서 ‘납량 특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각종 공포물을 방송하는 것이 유행이 되자, 마치 원래부터 뜻이 ‘공포 특집’이었던 것 같은 뉘앙스를 띠게 되었다고 해요.

저도 이 당시 이런 프로그램들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막… 프로그램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게스트를 불러다가 무서운 집? 폐건물? 이런 데다가 들여보내고, 놀래키는 걸 촬영하고 방송에 내보내는 거.

그런 프로그램이든, 귀신의 집이든, 동양의 공포에는 꼭 머리카락이 등장합니다. 천장에서 갑자기 뱀처럼 꾸물거리는 머리카락이 스르륵 내려온다든지. 머리카락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게 발목을 붙잡고 안 놓아준다든지. 위에서 오든, 아래에서 오든, 그리고 뭐, 옆에서 오든, 내 안에서 오든, 밖에서 오든, 머리카락이 안 나오는 동양 공포를 찾는 게 입이 덜 아플 정도로 많이 나옵니다.


3: 동서양의 머리카락

00:07:05-00:13:20

[Sound effect]

그런데 서양, 특히 유럽계에서는 오히려 머리카락이 로맨틱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역사물을 보면 잘 나옵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머리카락 끝을 조금 잘라서 그… 똑딱이처럼 여닫을 수 있는 목걸이 안에다가 넣어서 몸에 지니고 다닌다든지, 하는 장면이. 그 머리카락에다가 리본을 예쁘게 묶기도 하고.

서양에서도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그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미신적 의미를 품고 있기도 했지만, 이것이 마냥 공포적으로 풀리기보다는, 내가 내 머리카락을 누군가에게 줌으로써, 특히 오래도록 서로 못 보게 될 이별의 순간 직전에 줌으로써, ‘나와 너는 몸은 떨어져 있지만, 나는 너와 계속 함께할 거야’라는 로맨틱한 방향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더 잦은 것 같단 말이죠.

기독교적 영향 때문에 그런지, 남의 머리카락을 잘라다가 주술을 부리는 건 오컬트 장르의 이야기에서만 특정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주술을 배제한 채 뭔가… 저절로? 동양 영화에서처럼 누가 딱히 주술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도 한이 맺히면 귀신이 되는 경우에 대한 언급도 덜합니다.

‘한’이라는 개념 자체가 서양에는 없잖아요. 이 단어가 한국어에만 있는 단어라고 하기도 하던데, 그 점은 제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서양, 특히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엔 ‘한’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던데. ‘한’이란 종교가 아니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살아생전에 한이라는 감정을 믿어서 귀신이 되는 게 아니라, 한이란 건 맺히면 귀신이 되는 겁니다.

남아메리카에는 풍부한 주술의 전통이 가톨릭교와 공존할 뿐만 아니라 그곳 거주자들의 삶에서 종교와 토속신앙이 실제로 공존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뭔가… 한국에 비해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 비하면 사후세계, 그리고 그곳의 영들이 살아 있는 우리와 접촉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뭐랄까, 비종교적으로, 게다가 비미신적으로 개방적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우리도 뭔가… 가위에 눌린다고 하면 그게 우리가 미신을 믿어서는 아니잖아요? 그냥 가위에 눌린다는 표현을 다들 아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한… 5년 전인가? 그리스계 미국인이 자기한테 기똥찬 영화 아이디어가 있다며 sleep paralysis를 마치… 마치 새로운 발견인 것처럼 얘기한 걸 들었어서, 그때 참 신기했습니다. 아예 그 귀신한테 가위눌리는 장르가 동양에는 있다고 하니까 좀 실망하는 눈치더라고요. 이 사람은 가위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나 봐요. 그래서 저도 놀라고, 이 사람도 놀라고, 그랬다.

아무튼, 서양—특히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와 동양에서 보는 귀신. 영. 사후세계. 종교. 미신. 등등의 의미가 많이 다른데, 머리카락이란 것도 그래서 서유럽 및 북아메리카에서는 비교적 영적 의미가 제해진, 단순 로맨틱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대개는 역사극 같은 데서 ‘내 일부를 너에게 주겠다’는 자발적인 의미로 쓰인단 말이죠. 뭐, 머리카락을 주술적 목적으로 쓰려고 했다가 걸리면 종교 감시대한테 처형당할 게 두려워서였을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문화에서는 ‘한’이란 것이 맺혀서 비자발적으로 귀신이 된다든지 하는 생각을 일상생활에서 좀 덜하는 것 같아요.

타문화권에서보다 서유럽 및 북아메리카에서는 선이 분명하게 그어져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귀신이 들어올 자리가 별로 없어요. 귀신 머리카락을 무서워할 틈도 별로 없고.


4: 현실적인 차이

00:13:20-00:21:13

[Music: A Phantom Serenade – Kyle Preston]

여기다가 왜 서양에서의 머리카락은 좀 덜 무서운가에 대한 좀 더 실용적인 이론 하나를 추가로 제안해 보겠습니다. 머리카락 공포물에 익숙한 동양인이 서양에 가도 서양인의 머리카락이 덜 무서울 듯한 이유를 말하는 겁니다.

일단 백인들은 머리카락 색깔이 너무 다양합니다. 금발도 있고 갈색도 있고 붉은색도 있고, 거기다 검은색도 있고, 머리가 하얗게 세면 모든 머리카락이 희게 되고. 그래서 동양, 특히 동아시아에서 생각하는 ‘귀신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라는 하나의 거대 의미를 품지 않고, 서양에서는 머리카락이 당사자 개개인의 신체와 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로맨틱한 의미를 담는 것도 가능한 거겠죠. 연인이 머리카락을 목걸이에 담아 줬는데, 그 나라 다른 남녀와 머리카락이 완전 똑같게 생겼어. 그럼 무슨 의미겠느냐, 이 말이죠.

또 하나, 서양의 머리카락이 동양의 머리카락보다 덜 무서운 이유는, 유럽계 백인들의 머리카락이 대개 동아시아인들의 머리카락보다 가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요즘 영화에서 보신 적 있을지도 모르는데,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거에서 커플이 막 비를 맞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러면 한국 영화에서는 비를 맞아도, 아무리 맞아도 숯이 정말 많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머리의 무게감이 살아 있단 말이죠.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진짜 백인 배우들의 머리가 찰싹. 두피에 찰싹 붙어 있어요.

[Music ends.]

동양 서양 양쪽 다 스태프들이 배우들을 멋있고 예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거야 똑같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백인 배우들의 비교적 얇은 머리카락이 두피에 찰싹 붙어 있는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정말 현실적으로… 예를 들어 머리카락이 피범벅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치면, 동아시아 귀신의 머리카락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지면서도 두꺼워서 그 피를 거의… 뭐랄까… 이겨 먹는? 느낌까지 있는 반면, 백인들의 머리카락은… 그 같은 느낌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피에 묻힐 거고. 겁에 질린 주인공이 물만 조금 뿌려도 풀썩 풀이 죽을 거란 말이죠.

이 매우 현실적인 인종 간의 차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귀신이 무섭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길게 길어도 같은 머리 기장의 동양 귀신보다 머리가 덜 무거울 거거든요. 나풀나풀거려요. 무서울 게 하나 없어요.

그래서 동양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는 나라에서 한국인이 아무 미용실에나 가면 혼쭐이 나는 겁니다. 머리카락은 정말 인종 간에 차이가 나요. 펌을 해도 그 머리카락의 두께에 따라 펌 시간이 다를 텐데. 그 특정 머리카락에 펌을 해본 사람한테 펌을 받아야지. 염색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커트도.

그래서 흑인들은 흑인들이 주로 가는 미용실에 가고, 황인들은 황인들이 주로 가는 미용실에 가고, 백인들은 백인들이 주로 가는 미용실에 가고, 이 밖에도 여러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이 자기네 미용실에 가는 겁니다. 현실적인 차이 때문에.

서양 귀신이 머리 좀 길러서 나풀나풀한다 한들… 안 무서울 것 같아요. 특히나 한여름에 그 귀신이 나타나서 긴 머리를 뽐낸다 해도 섬뜩하지 않을 이유는, 그 머리카락이 동양적 머리카락만큼의 보온이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 머리카락 진짜, 특히 숯 많으신 분들. 저는 숯이 많은 편인데. 무겁고. 더워요. 따뜻해요. 그러니 제가 만약 귀신이 돼서 발목까지 머리카락을 기르고는 한여름에 등장한다고 하면, 제 몸이 얼마나 차가운지, 체온이 얼마나 낮은지, 즉, 제가 얼마나 산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인지에 대한 반증처럼 작용할 것 같단 말이죠.

반면 서양 유럽 귀신은… 모르겠어요. 따뜻한가? 많이 더운가? 저는 여름에 정말 덥거든요. 제 머리가 긴데, 좀 짧게 자를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거 아시죠? 짧은 머리가 더 관리하기 어려운 거. 제 동생님만 해도. 제 동생님이 남자인데. 그 짧은 머리에 왜 이렇게 손 가는 게 많아. 맨날 잘라야 돼. 안 자르면 지저분해지잖아요 짧은 머리는.

그러니 제가 완전히 커트를 할 게 아니면 긴 머리가 더 편합니다.


5: 코드화된 헤어스타일

00:21:13-00:32:42

[Music: cdHiddenDir.- Out of Flux]

거기다가 어… 서양에서의 머리카락 색은 대체로 모두가 검은 머리를 갖고 있는 동양에서보다는 다양할 수 있으나, 서양, 특히나 미국에서는 머리카락의 스타일이 굉장히 코드화되어 있습니다. 패션의 코드화가 아니라, 의미의 코드화입니다.

여러분, 어… 여러분은 미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신지 모르겠는데, 할리우드가 미국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지는 뉴욕의 무슨 극단, 갤러리, 이런 곳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미국의 평균이 아닙니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미국의 평균적인 사람들은 패션에 대해 1도 관심이 없습니다. 유럽인의 반의반의반 정도의 관심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왜 그… 이탈리아에 가면 옷을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는다면서요. 저는 전해 듣기만 해서 직접 겪어본 적은 없으나, 제가 알기로. 정말. 어. 조금 챙피한데. 미국인만큼 옷 못 입는 국적이 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어요. 실제로 살면서도 우스갯소리로 들었고, 유튜브 이런 데에 문화 비교를 유머로 풀어낸 영상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데 가도 수도 없이 나옵니다.

미국인들은 새것은 많은데 옷은 못 입어. 옷이 넘쳐나. 새거야 다. 근데 그걸 못 입어.

그런데 그게 완전 편견인 게 아니라, 어… 솔직히 맞습니다. 맞고요. 불행 중 다행인 건, 제가 아는 한, 미국인들이 옷을 잘 입으려고 엄청 노력하는데도 못 입는 게 아니고요. 실제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Music ends.]

서울에 가면 보이는 그… 선남선녀. 하. 정말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아름다운 편입니다. 실제로 미용 산업이 거대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미용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시간 낭비라고 여기지도 않고, 심지어 필수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래서 한국에 가끔 가면… 솔직히 후달립니다. 하. 사람들 너무 아름다워가지고. 미국에서 후줄그레하게 있다가 갑자기 막 진짜 블링블링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 섞이려니까 엄청 힘들어요.

제가 사는 미국의 이 동네는 뭘 입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쓰거든요. 옷을 안 입어도 신경 안 쓸 마당에, 뭐 좀 아무렇게나 입는다고 평균적으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냥 제각각 갈 길 가는 겁니다.

아무튼, 미용에 대한 관심도 때문인지, 한국인의 머리카락은 대개 검지만, 머리스타일에 대한 해석은 한국이 훨씬 더 다양한 것 같습니다. 즉, 미국에도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있으나, 거기에 대한 해석이 코드화된 반면, 한국에서는 좀 더 취향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한국에서 여자가 머리를 짧게 했다고 해서 동성애자냐고 하진 않잖아요. 아, 오히려 동성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성이 있어서 그런 건가?

아무튼 미국에서 여자 머리가 너무 짧으면 동성애자인 줄 아는 머저리들이 진짜로다가 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에요. 실제로 팝 컬쳐적으로 존재하는 스테레오타입입니다. 동성애자 여자는 머리가 짧다. 머리가 짧은 여자는 동성애자다.

그리고 요즘에야 남자가 핑크색 좀 입는다고 해서 게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도 얼마 안 됐습니다. 요즘엔 뭐, ‘진짜 남자는 핑크를 입지’ 이런 말도 유머로 하는데, 이것도 웃긴 거예요. ‘진짜 남자’가 뭔데. 뭔 소리야. 뭔 소린지 모르겠어.

참고로,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봐 말씀드리는데, 코드화된 미용 문화를 거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이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그 코드화된 문화 중 자기 마음에 드는 걸 취하면 되고, 마음에 안 들면 안 하면 돼요. 동성애자이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이성애자이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동성애자여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성애자여야 한다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전에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각자의 연애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계약 위반 같은 걸 하지 않는 한, 둘이서 사귀든, 그 사귀는 자의 젠더가 뭐든. 셋이서 사귀든. 더 여럿이서 사귀든. 돌아가며 사귀든. 하여간에 성인들이 서로 동의하에 무슨 일을 벌이든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건, 선택이란 개개인들이 하는 건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마치 코드에 따라 행동한다고 착각하는 머저리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겁니다.

여기서 코드화란, 컴퓨터 코드만을 말하는 게 아니지만, 진짜로다가 인간이 컴퓨터 코드가 박제된 상태로 태어나는 줄 아는 듯한 자들이 있다고요.

동성애자 여자가 마치 짧은 머리를 장착하고 태어나는 줄 안다든지. 무슨 레고처럼. 레고 머리 아시죠? 레고는 머리에다가 똑딱이로 헤어스타일을 붙일 수 있잖아요? 마치 그것처럼. 그리고 이성애자 남자들은 핑크색 옷이라는 아이템을 득템할 수 있는 옷 가게에는 접근이 불가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하여간에 미국에서 머리카락 스타일 및 패션에 대한 젠더 관념은 굉장히 매우 엄청나게 코드화되어 있습니다. 미국 문화 자체가 매우 다양한 듯하지만 상당히 코드화되어 있단 말이죠. 어느 나라나 다양한 방식으로 그렇겠지만, 뭔가… 미국이라고 하면 아주 자유분방한 줄 아는데, 아닙니다. 여기 아직도 대통령이 취임식 할 때 성경 들고 하는 나라입니다. 상당히 보수적인 측면이 있고, 코드화된 의미들이 쉬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 코드에 맞게 다양한 측면이 있는 거지, 갑자기 없던 코드 만들겠다고 하면 다른 나라와 다를 바 없이 싫어합니다. 이미 있다고 메인스트림에서 여겨지는 코드를 싫어하거나 부인하기도 하고. 코드를 받아들이되 그게 사회가 얼추 정한 편의성 개념이란 걸 잊거나 아예 모르고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현실이라고 믿는 자들도 있고.

이자들이 너무 틀리게 단순해서 기가 차지만, 실제로… 제가 아는 미국 이성애자 여자들의 99%는 머리가 깁니다. 저는 미국의 중부와 서부에서 살아 봤고, 총 15년 이상을 살았는데, 제가 본 미국 거주 이성애자 여성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단발도 드물고, 커트는 거의… 거의 없습니다. 미국 문화에 더 깊게 들어가 있을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합니다.

어… 이 주제, 미국에서의 코드화된 다양성의 문화, 특히 젠더 문화란 너무 광범위해서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더 깊게 다룰 수 없겠습니다만. 하여간에 한아임이 머리가 긴 이유 중 하나가 실제로 이거라는 점. 저는 귀찮은 게 정말 싫거든요. 근데 실제로 저한테, 저는 머리가 긴 적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절더러 동성애자냐고 물어본 적은 없지만, ‘왜 동성애자 여자들은 머리를 자르냐’ 이런 식으로 말을 실제로 진짜로다가 하는 머저리들이 레알로다가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머저리와 엮이는 일을 단 한 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한아임은 그냥 머리를 기르겠다.


6: 두발 규제, 변태성, 인공 지능

00:32:42-00:48:14

[Music: Machine Code for Beginners – SAINT-SAMUEL]

이렇게 서양계 이야기에서의 머리카락의 역할과 동양계 이야기에서의 머리카락의 역할이 현실적인 차이 때문에 다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얘기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 차이 외에 머리카락에 관해 온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있으니, 바로…

두발 규제입니다. 특히나 학교에서의 두발 규제.

이것은 특정 국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곳곳에서 종교적 이유로, 혹은 정치적 이유로, 교육적 이유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한 규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근본은 저는 비슷비슷하다고 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딱 머리카락만 규제하는 게 아닙니다. 의복도 함께 규제합니다. 이에 따라 생활 습관까지 규제합니다. 사람이 무슨 프로그램이 아니고 물리적 몸에 들어 있는 한, 하나가 규제되기 시작하면 다른 부분이 완전히 독립적일 순 없거든요.

예를 들어 머리를 길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사회가 있다고 친다면, 일단 머리가 긴 그 사람은 머리를 감는 데에 본의 아니게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며, 그리로 영양분을 빼앗기는 게 현실입니다. 그 긴 머리를 휘날리면서 다니기에 불편하니까 머리 묶는 도구도 필요할 거고, 빗도 필요할 거고. 모자가 필요할 수도 있고. 물리적 신체에 들어 있는 인간의 머리가 길다는 건 게임에서 아이템으로 긴 머리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잇단 결과들을 가져옵니다.

머리가 짧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를 박박 밀라고 하는 규칙이 있는 사회가 있다고 친다면, 일단 두피가 햇빛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으니 모자가 필수일 것이고. 추운 곳이라면 시려울 테니 체온을 빼앗길 것이고. 이 때문에 머리를 박박 밀어야 하는 집단에 속하지 않는 자들은 밖에서 생활할 때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 거란 말이죠.

또한 이렇게 머리카락, 나아가 의복을 통제한다는 것은 명백히 성적인 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온 나라의 역사상, 머리카락, 특히나 여성의 머리카락의 길이, 스타일, 그것의 드러남과 가림을 성과 연결 지어 통제하지 않은 문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머리카락은 너무나 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일단 털이란 것 자체가 2차 성징과 너무 깊게 얽혀 있다는 점 때문에 그럴 것이고, 에피소드 초반에 말했듯이, 머리카락이 인간의 신체 중에 가장 신체인 듯 신체 아니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위라는 점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적, 사회적, 문화적 어필 혹은 통제를 위해 누군가의 살을 도려내고 뼈를 갈기는 매우 힘듭니다. 피를 쏟아내는 것도 힘들어요. 그러나 머리카락은 당사자 혹은 타인을 살려 두면서도 당사자 혹은 타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신체인 겁니다.

그래서 긴 머리카락의 결이 좋도록 관리함으로써 나의 경제적 위치를 드러낼 수가 있게 되는 것이고. ‘내 여자’라는 꼬리표로 속박하며 머리를 가리게 하는 거고. 내 아랫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자들의 머리카락을 내 마음대로 통제함으로써 힘을 과시하는 겁니다.

이래서 제가 각종 두발 규제 및 의복 규제를 변태 같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특히나, 학교에서 나타나는 두발 규제.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규제입니다.

어… 일단, 애들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왜 애들이 특정한 머리를 하면 야하다고 하는지. 진짜 개변태 같습니다. 머릿속에 뭐가 든 건지.

그리고 치마 길이를 규제하는 것도, 보호 명목하에 벌어지는 너무너무너무너무 변태 같은 행위입니다.

세상에는 여자 발목만 봐도 야하다고 하는 문화들도 있습니다. 또한, 얼마 전에 무슨 기사에서 봤는데, 진짜인지 거짓인지, 일본의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 속옷 색깔을 규제한다고 하던데.

제가 보기에는 이런 문화들이랑 애들 치마 길이, 머리 스타일을 규제하려고 하는 문화랑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인 거지, 그 근본은 같습니다. 애당초 왜 그걸 규제하느냐는 말이죠.

[Music ends.]

대개는 학업 성취도를 높이려고 한다는 이유를 드는데. 어… 그렇게 해서 공부를 잘하면 뭐 하나요? 오히려 사회에 나와서 적응을 못 할 겁니다. 아니면 사회 전반을 그렇게 통제하자는 주장을 하는 건지.

물론, 무작정 노출을 허용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건 순전히 병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성기 노출. 이건 병을 옮길 수 있어요. 그리고 뭐, 침 흘리고 다니는 거. 이런 건 안 되는데, 그건 ‘학업 성취도’ 같은, 마치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듯하지만 사실 하등 쓸모없는 메트릭보다 훨씬 실질적인 보건상의 문제로 그런 겁니다.

학업 성취도는 실제로 쓸모없는 메트릭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토익을 만점 맞아도 원어민이랑 영어를 못하는 겁니다. 또한 원어민은 영어 시험 문제를 다 맞히지 못하는 겁니다.

다른 과목도 비슷합니다. 수치, 점수로 잴 수 있는 성취도만으로 인간을 평가한다는 건, 편의상 어느 정도는 불가피할지도 모르겠으나, 상당히… 네, 상당히 쓸데가 없습니다. 마치 특정 대학교의 철학과 학위가 없으면 철학 없이 사는 줄 알거나, 특정 요리 자격증 시험을 보지 않으면 요리를 못 하는 줄 알거나,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학업 성취도고 뭐고. 병이 전염될 수 있는 수준의 노출이 아닌 한, 솔직히 나머지는 그냥 다 살덩이거든요? 자꾸 이상하다고 하니까 이상한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머리에 음란 마귀만 들어가지고 공부를 더 못하겠죠. 자기 심신을 수련해야지 왜 남의 머리나 옷을 탓해. 자기가 범죄 저지른 것도 남의 옷을 탓할 겁니까? 내가 남의 야한 옷차림 때문에 공부를 못 했듯이, 남의 야한 옷차림 때문에 스토커가 되고, 강간을 저질렀다고?

마치 수치화된 능력을 맹신하듯, 이 코드 자체를 믿게 될 위험이 있는 겁니다. 내가 점수가 높으면 똑똑한 줄 알듯이, 십 년을 넘게 학교에서 옷차림에다가 온갖 음란 마귀를 갖다 붙이라고 배웠으니, 그게 진짜 그런 줄 알 위험이 있다고요. 학교를 벗어나면 누가 그 코드 업데이트 안 해주잖아요 이제. 그러니 그냥 그 상태로 사회에 나가서 계속 착각하면서 살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게 틀렸는데도.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의 외모를 갖고 규제하는 것도 어마어마합니다. 제가 실제로 여러 번 본 장면인데, 애가 삭발하면 선생이 시위하는 거냐고 뭐라 하고, 머리를 기르면 또 양아치냐고 뭐라 하고. 왜 애들 머리에다가 자기네가 이렇게 코드화된 의미를 부여하느냔 말이죠.

애가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 그때까지 주입된 사상을 이겨낼 수 있으면 다행인데, 안 그럴 수도 있는 겁니다. 특히나 표면상에 드러난 삭발 혹은 장발에 대한 사상은 극복할 수 있으나, 그 기저에 깔린, 이상한 게 아닌데 뭔가를 자꾸 이상하게 보려고 할 뿐만 아니라, 남의 취향을 갖다가 틀렸다, 잘못됐다, 바꿔야 한다, 사회 부적응자다, 기타 등등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상을 과연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가 의문인 겁니다.

사람이 삭발을 하면 뭘 알아챌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이 삭발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그 어떤 코드도 다 자기가 갖다 붙이는 의미 부여입니다. 시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고. 양아치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스님일 수도 있는 거고. 어떤 문화에서는 전사들이 머리를 밀기도 하겠죠? 아니면 패션 때문에 삭발을 할 수도 있는 거고.

뭘 거기다가 정해진 코드가 있는 것처럼 의미 부여를 하느냔 말입니다.

애가 무지개색 머리를 하든. 드레드록을 하든. 미국에서도 문제가 많습니다. 흑인 학생 헤어스타일을 보고 이래라저래라하라고 해서. 백인들 머리는 이렇게 정상적인데 흑인인 네 머리는 왜 이렇게 비정상적이냐며. 정상에 속할 수 없으면 짧게 자르라고. 그랬대요. 그런 경우가 있대요.

무슨 뭐… 오히려 비즈니스라면 이해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특정 식당을 차리고 싶은데, 그 이미지에 맞게 직원들이 우주복을 입고 서빙을 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직원과 사장의 계약 관계에서 우주복을 입기로 동의를 하면 되는 것이기에, 의복을 제한해도 문제가 없단 말이죠.

혹은 뭐 외계인 컨셉의 식당이야. 그런데 외계인들이 삭발을 하는 컨셉이야, 심지어는. 그러면 삭발에 동의하는 직원만 고용하면 된단 말이죠.

그런데 지금 공교육을 논하는 거잖아요. 어차피 공교육 받기 싫다고 해서 안 받게 해줄 것도 아니면서. 그런데도 거기서 애들 옷, 머리, 기타 등등 진짜 지식 혹은 앎과 하등 상관없는 걸 규제한다고?

계속 규제하면 규제할수록 규제 없는 곳에서 자유로이 생각을 뻗어나간 사람들과 경쟁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저는 정말 궁금해요. 앞으로 인공 지능이 더 발달하고, 수많은 직종들이 각종 프로그램 및 인공 지능에 의해 대체될 텐데, 획일화된 코드에 부합하도록 양육된 세계 곳곳의 아이들이 거기에 어떻게 적응할지.

정답이 있는 걸 기계가 인간보다 잘한 지는 한참 됐습니다. 이제 조만간 기계가 정답 없는 것도 잘할 마당입니다.

‘다음 중 이 소설의 주제를 고르시오’를 사지선다, 오지선다로 선택해본 적만 있으며, 소설을 읽고 뭘 느껴볼 시간은 없었던 인간이 그런 기계를 상대로 뭘 할 수 있을지.

자기 머리카락 길이조차 스스로 결정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그들은 실제 코드로 쓰여 있기에 코드화된 의미에 그 어떤 인간보다도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기계들을 상대로 어떤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지.


7: 규제의 집합점과 슬픔

00:48:14-01:00:10

[Sound effect]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외모에 대한 규제, 특히 두발에 대한 규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동양인의 머리카락의 특성이 있습니다. 대체로 검다. 서양인의 머리카락에 비해 두껍다. 머리카락만 갖고서는 개개인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이 두 요소, 즉, 장소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를 두고 벌어지는 두발 규제와 동양인의 머리카락의 특성을 합하면 탄생하는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머리카락 귀신이 등장하는 동양적 공포.

그 가장 투명한 예로 여고괴담 시리즈가 있습니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한국 공포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어… 이 시리즈의 영화가 여럿 있는데, 그것을 여고괴담이라는 제목과 테마로 묶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이러한 설정이 이렇게나 오랜 시간과 여러 영화에 걸쳐 유효했던 이유는 제 생각에 이겁니다.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기만 한 게 아니라 끝까지 간 십 대 후반 미성년자들에 대한 규제가 가장 극심하며, 그들을 모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고등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를 벗어나면 더는 이 아이들한테 어떤 머리를 해라, 어떤 옷을 입어라, 할 수가 없거든요. 이 아이들이 나이를 들어 벗어나면 그러할 뿐만 아니라, 이 아이들이 이 나이 그대로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겉보기에는 고등학생인지 성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물리적 환경 자체가 공포인 겁니다. 밖에 나가면 자유로울지도 모르는데, 이 안에 있는 한 나와 몸 크기도 비슷하고, 때로는 겉보기에 나이를 분간하는 것조차 어려운 성인들이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남고에도 규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이 굳이 여고를 택한 이유는 좀 더 여럿일 수 있겠습니다. 처녀 귀신이란 존재는 한국의 공포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인물이라는 점이 하나일 것이고. 아무래도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어떤 물리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체적으로 방어가 불리하다는 점도 요인일 수 있겠고. 동시에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 비해서는 고등학생 정도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다 컸다’고 할 순 없다는 점도 요인일 수 있겠습니다. 겉보기에도 말이죠. 남성, 여성 모두 만 16, 17세쯤이 되면 신체적으로 많이 자란 상태이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하니까요. 저는 중학교 때 키가 지금 그대로거든요. 고등학교 때랑 신체적으로 거의 바뀐 게 없습니다.

그러니 이… 신체적 성장이 어느 정도 다 끝났으나 제한된 틀 내에서 생활해야 하는 아이들이 모인 극단의 공간이 여고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란, 모든 성별을 통틀어서, 왠지 어른들이 하는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못 하는 딱 그 나이입니다. 이건 법적으로도 그렇고, 사실 신체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겉보기엔 다 큰 것 같아도, 뭐, 일단 남학생들이라면 방금 말했듯이 실제로 키가 더 클 확률도 꽤 높고, 성별과 관계 없이 인간은 뇌가 이십 대 중반까지도 완전하게 발달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이 겉보기엔 다 자란 듯한 느낌. 그러나 다 자라지 않은 뇌. 그런데 난 왠지 자란 것 같아. 그러나 누군가가 내 의복을 규제하고 있고. 특히나 밖에서는 마음대로 기르고 자르고 펌하고 염색하고 꾸밀 수 있는 폭이 상당히 넓은 그 머리카락을, 거기에 한이 맺힐 만큼 누군가가 관리를 하는 공간.

여고.

귀신이 안 나와도 무섭습니다.

음… 고등학생이면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되니까, 공간적, 시간적 둘 다. 시공간을 지배당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지배당하는 시공간 속에서의 나 역시 지배당하게 되는 것. 심지어 그 지배가 나에 대한 보호 명목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잦다는 것.

이 마지막 부분이 다른 공포와 좀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어, 성인이 되어도 제한은 계속 받잖아요? 성인이 된다고 하고 싶은 걸 다, 혹은 반이라도 하고 사는 게 아니죠. 다만 가장 큰 차이가 이 점일 겁니다. 성인이 하고 싶은 걸 못 하게끔 하는 건 보호 명목이라고 뭉뚱그리기가 좀 더 어렵다는 거.

그런데 학생 때는 별별 일이 보호 명목으로 일어난다.

그러니 여고라는 환경에서 공포가 펼쳐질 때, 그것이 한 맺힌 귀신의 형태로 풀리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것이 픽션적으로 말이 되니까 이런 장르가 발달하는 겁니다.

만약 두발 규제가 없고, 교복이 없고, 학생들이 늦은 오후 시간에라도 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현실이었다면, 이 장르는 발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마침 두발 규제가 있고, 교복도 있고, 야자는 해가 지고서도 한참 후까지 계속되고, 그게 아니라면 학원에 가고, 그다음에도 대학교, 그다음에도 취업, 그 다음에도 결혼, 출산, 기타 등등이 끝도 없이 기다리고 있는 그 현실에서 여고란 아…

무서운데 노스탤지아를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있어서, 이 장르 특유의 슬픔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여고괴담 시리즈도 그렇고, <장화, 홍련> 같은 이 나이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에는 슬픔의 정서가 가득합니다. 극 중 상황이 끔찍해도 이게 최선일 수도 있어서, 라는 게 제 추측입니다. 이때 이 끔찍한 게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어서, 그래서 가장 박수 칠 때 죽은 거면 어떡해.

비슷하게는 공포는 아닌데, 일본 애니에 나오는 고등학교의 감성이 있지 않습니까? 마치 고등학교 이후의 삶은 없는 것 같은 감성이 있어요. 그때가 지나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이… 글쎄요. 동양에서 고등학교가 차지하는 코드화된 위치가 서양에서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공립학교에서의 교복의 유무가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일 겁니다. 실제로 극도로 규제된 공립학교 제도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 제도를 떠나고 나면 혹시 그 제도를 그리워하게 되는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누가 대신 선택해주던 시절을 미화해서 기억하게 되는 측면인 거죠. 원래도 늘 하던 선택이면 선택에 부담이 없을 것을, 안 해도 되던 선택을 갑자기 한꺼번에 다 해야 하니까. 과부하가 오는 측면이 있는 게 아닌가.

아무튼 그리하여, 서로 충돌하는 감정들. 공포. 노스탤지아. 미화. 순수한 그리움. 우정. 사랑. 규제에 대한 분노. 규제로 인한 안도감.

이 모든 게 뒤섞였기에, 다른 물리적인 공포 장르보다 환경이 훨씬 더 큰 역할을 하며, 서사마저도 압도하는 것이 동양적 머리카락 공포 장르가 아닌가, 합니다. 또한 그 뒤섞인 이야기를 소비하는 주요 계층이 바로 저 이야기에 나오는 귀신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을 확률이 거의 뭐, 99%에 육박하기에, 같은 삶의 과정을 겪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에, 여타 국가나 장르에서 적용할 수 없는 생략도 돋보입니다.

여고괴담은 몇몇 무서운 씬들 말고는 상당히 고요한 시리즈입니다. <장화, 홍련>도, 하, OST가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즉, 음악으로 소리의 공백을 채울 기회가 많은, 고요한 영화입니다.


8: 장화, 홍련 스포일러 구간

01:00:10-01:15:41

[Music: Alone in the Dark – G-Yerro]

자,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장화, 홍련> 스포일러. 줄거리 설명은 안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실 테고, 안 보신 분들은 스포일러를 듣고서도 영화를 재밌게 보실 수 있으실 거거든요. 저는 스무 번을 봤는데도 볼 때마다 또 새롭습니다.

제가 <장화, 홍련>을 정말 좋아해서, 스무 번은 본 것 같습니다. 원래가 ‘아 무서운 거 보고 싶다’ 하는 날이 많아요. 이 영화가 2003년에 개봉한 이후로,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정말 1년에 한 번은 본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갖게 된,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학교 세팅이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공포 영화 역시 요 나이대 아이들이 나오는 다른 영화들과 비슷하게 규제, 그리고 보호를 명목으로 한 성인들의 방만, 심지어는 학대를 주제로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대가 너무 습관이 돼 있어서 당연한 줄 아는 자가 나의 유일하게 남은 보호자일 때, 자기방어로라도 미쳐 도는 주인공에 관한 얘기라고요.

왜냐하면, 여기 나오는 아버지가 진짜로다가 너무 무책임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는데, 그 모든 해석에서 공통적으로 누구나 인정할 부분이 이 아버지 캐릭터, 김갑수 님이 맡으신 캐릭터의 무책임함일 겁니다.

한마디로 임수정 님이 맡으신 수미 역할은 미쳤는데, 수미의 이 미침을 해결한다는 보호의 미명하에 이 아버지가 하는 일들, 그리고 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너무나 거의 뭐, 미친 수미보다 더 미쳐서, 바로 그 이유로 이 영화의 대부분의 미스테리가 생긴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또한 ‘미치다’라는 개념이 얼마나 유행에 따른 편의주의적인 측면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경우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요즘 입는 반바지를 입고 중세 시대에 잘못 돌아다녔다간 미쳤다고 끌려가서 종교적으로 탄압받다가 사형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2022년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린 반바지 입는 걸 정상이라고 하잖아요.

[Music ends.]

이것처럼, 이 아버지가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죽은 친엄마나 아직 미성년자인 딸들에게는 없는, 미쳤는데도 불구하고 정상인 행세를 할 수 있는 무기가 여럿 있습니다.

일단 이자는 돈을 벌죠. 또한 딸들에게 특별히 신체적 학대를 가한 것은 아니기에 아직 친권을 갖고 있습니다. 거기다 가장 가까운 주변인들이 전부 다, 이자가 상당한 색욕이 있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그걸 저지할 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한 협소하되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이 아버지 캐릭터는 자신이 미친 짓을 벌일 환경을 외딴 시골로 설정합니다.

일단 친엄마가 살아 있는데 다른 여자를 집에 들인 것 자체가 살짝 미친 기를 보입니다. 이것 때문에 미친 건 아니고, 결혼이라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언제든 자기가 하겠다고 한 걸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자라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네. 저는 둘이서 사귀든 셋이서 사귀든 성인들이 동의하에 뭘 하든 상관이 없다고 보지만, 이런 일방적인 계약 파기는 명백한 극혐 행위입니다. 계약, 쌍방 합의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 저쪽에서 위반해서 내가 소송 걸 수도 있어요. 한번 결혼하면 무슨 일이 생겨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게 전혀 아닙니다.

다만 이런 겁니다. 여러분? 일단 결혼은 수많은 국가에서 수많은 혜택을 주는 계약입니다. 그 어떤 로맨스가 가미됐다 한들, 근본적으로 계약이란 말이죠. 여기에 재산 분할, 세금, 상속, 병원에 입원할 시 방문 권리가 있는 사람, 식물인간이 됐을 시 호흡기를 뗄 권리가 있는 사람, 이런 게 다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뭐, 로맨스까지 추가하면 결혼이라는, 특히나 여럿이 엮이지 않고 단 두 명만 포함된 결혼 약속을 어기는 건 그 약속을 어김 당하는 쪽에게 어마어마하게 손실이겠죠. 그렇잖아요. 사람 열 명이서 그룹 결혼을 했으면 그 열 명 중 나 빼고 아홉, 그 아홉 중 하나가 이탈해도 뭐. 모든 심리, 사회, 금전적 등등의 손실이 적을 텐데, 이 영화에서는 이놈이 일대일로 결혼하는 척하고 내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딴 여자를 만날 뿐만 아니라 그 여자를 집안에 들인 거야. 우리의 딸들이 버젓이 보고 있는데.

이 부분은 좀 미친 것 같아요. 딸들 앞에서 이런다는 게. 자기가 이 세상에 있게 한 자들 앞에서, 그 있게 한 행위를 함께한 자를 배신하는 광경, 계약을 파기하는 광경을 대놓고 보여준다는 게. 심지어 그 아이들이 미성년자인데.

이게 무슨 경우죠? 저는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플래시백은 수미의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 보거든요. 그러니 그 플래시백이 전부 다 사실이라면 이자가 미쳤다고 본다, 이 말이죠.

그러니 자, 일단 불륜남. 살짝 미친 기가 있음.

그 불륜을 애들 앞에서 함. 응. 미친 거 맞음.

여기다 더 결정적인 건 이겁니다. 자신의 그 배반 행위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사건으로 인해 딸이 충격을 받을 걸 마치 몰랐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즉, 이 아버지는 하도 자기가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협소한 주변 환경을 외딴 시골에다가 만들어 놓은 나머지, 아마도 미치기 전에는 학교에 다녔을 수미를 비롯한 그 두 딸이 접한, 보다 큰 사회 풍속을 모르는 것 같아요.

이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일단 이혼부터 해야겠다는 상상조차 안 해본 자처럼 행동합니다.

이자의 광기에 대한 일련의 이런 반증들 때문에, 플래시백이 나오고 나서는 영화 내내 고구마 천만 개에 목이 멜 것만 같았던 이자의 답답한 행동, 혹은 무행동이 납득이 가게 됩니다. 미쳤으니까 이러는 거지.

아까까지 말한 걸로 끝난 게 아니죠.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버젓이 집안에 들인 다른 여자가 있고. 심지어 그 여자의 동생 내외를 집안에 불러들였고. 그걸 그 딸들은 봤고. 그 집에서 아내가 옷장에서 자살했고. 그걸 발견한 둘째 딸이 엄마를 꺼내려다 옷장에 깔려서 죽었는데.

심지어. 또. 이 미친 아버지는. 바로 그 일들이 벌어진 그 집에, 마찬가지로 미친 첫째 딸인 수미를 다시 데려오고. 불륜녀의 동생 내외를 불러서 수미가 미쳐서 불륜녀 행세를 하는 걸 지켜보게 하고. 수미를 혼자 두고. 미친 수미가 호수인지 강가인지에 가도 그냥 두고. 가끔 약이나 먹으라 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꾸 모른다고 하고. 이게 진짜 증거죠. 자꾸 무슨 일인지 모른다고 하는 거. 이 아버지가 자기 아내가 자살했고 둘째 딸이 죽은 걸 모르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수미한테 자꾸 왜 그러냬.

왜 그러겠냐. 니가 아빠니까 그래.

수미가 안 미치는 게 이상합니다. 미친 자가 정상인 척하고 자꾸 자기한테 미쳤다고 하니까 수미가 미친 거예요. 게다가 그자가 보호자야. 날 보호하겠대. 내 엄마를 죽인 거나 다름없는 자가 딴 여자랑 놀아나면서 날 막 불쌍히 여겨. 수미가 안 미치겠습니까?

다만 새엄마에 대한 어린 분노로 인해 아버지에게 화살이 돌아가지 않았을 뿐인 겁니다. 제가 보기에 이 아버지가 지능적 광인이기 때문에, 그걸 교묘히 조장합니다. 지 살라고.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계약 파기범은 이 아버지입니다. 같이 불륜을 저지른 여자도 뭐, 잘한 건 없지만, 그 여자는 누구한테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약속한 거 없잖아요. 약속 및 계약을 어긴 건 이 아버지라고요.

그리고 아버지와 달리, 수미는 이제 사회적으로 ’미쳤다’고 낙인찍힌 상태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사회에서 허용하는 미침이 있고 허용 안 하는 미침이 있는지라, 이 아버지라는 작자가 한 짓은 보호의 미명 아래 허용되고, 돈, 커리어, 기타 등등에 가려 보호받는 반면, 수미는 사실 자해 말고는 한 게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아버지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줬는데, 이 아버지가 한 짓에 비하면 수미가 한 건 새 발의 피입니다.

그런데도 수미만 정신병원에 갇힌다.

영화에 머리카락 늘어뜨린 귀신, 물론 나옵니다. 그 주체할 수 없는 머리카락의 에너지만이 이 남자를 보호자 및 배우자로 두고 있었던 죽은 영들의 분노와 한, 후회,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정신병원에 있는 수미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공포 영화가 아닌 영화에서도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다는 건 세상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물의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아… 네,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완전 막장 스토리인데, 영화는 재밌습니다. 해석이 다양할 수 있는 여지가 워낙 많아서 특히 재밌습니다.

아무튼 한아임의 해석의 포인트는 이거다. <장화, 홍련>은 무책임한 보호자의 학대에서 비롯한 미성년자의 자기방어성 광기에 대한 영화다.


9: 마무리

01:15:41-01:18:50

[Music: So This Is It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에 대한 전혀 무섭지 않은, 희망적인 미래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머리카락으로 바다의 유해 물질을 걷어내는 매트를 만드는 공학자분들이 있습니다. 매트 있잖아요, 집 문 앞에 두고 신발 닦으라고 두는 매트 말입니다. 그걸 만들어요. 그 과정에 대한 영상을 쇼노츠에 링크하겠습니다. 엄청납니다, 여러분.

1kg의 머리카락을 엮어서 만든 매트가 기름을 5kg이나 흡수한대요. 이걸로 바다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공학자란… 참말로… 무한 리스펙트입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Music ends.]


모든 링크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Ep. 29] 머리카락: 가장 클래식한 동양적 공포 (세로)

© 2022 한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