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계획홀릭: 줄줄이 사탕 잔잔바리

1: 오프닝

00:00:00-00:03:49

[음악: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먼저, 잽싸게 말씀드립니다.

한국에서 들으시는 분들, 미국에서 들으시는 분들, 일본에서 들으시는 분들, 영국에서 들으시는 분들, 그리고 폴란드에서 들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지금 이 에피소드 녹음 시점에, 아임 드리밍은 무려 5개국에서 듣는 팟캐스트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수는 적지만, 그 범위는 어마어마하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장소들의 점을 이으면 아주 그냥 세계를 다 커버할 수 있을 지경입니다.

이제 아프리카 대륙에서 누구 한 분이 들어주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호주. 호주까지 커버되면, 네. 지구를 아주 잔잔하게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연말 에피소드 했었죠. 제목은 연말연시였는데, 그건 그냥 앞부분 네 글자 제목을 채우고 싶어서. 왠지 마음에 들어서. 언제까지 네 글자 패턴을 유지할 수 있나 보려고. 그래서 연말연시였고요. 내용은 연시에 대한 건 별로 없고, 연말 위주였어요.

이번 에피소드는 연시 에피소드고요. 제목은 계획홀릭입니다. 땡땡 이전에 나오는 제목 부분에서는 네 글자를 유지하고 있어요. 신장개업, 연말연시, 계획홀릭. 이 패턴이 어디까지 가나 봅시다.

아무튼 오늘은, 연시 위주이니만큼, 계획, 다이어리, 그리고 저의 계획이 왜 맨날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게 왜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한번 얘기해보겠습니다.

[음악 끝.]


2: 작심삼일?

00:03:49-00:10:36

이 에피소드가 뜰 때쯤이면, 1월 1일을 얼마 안 남긴 시점일 거예요, 한국 시간으로는. 아닌가? 이미 1월 1일인가? 시차가 있어가지고. 우리 청취자분들은 글로벌하니까 대략 새해라고 칠게요.

아무튼. 어떻게, 좀 계획을 세우셨나요?

저는 계획이 있습니다. 언제나 계획이 있고요. 계획홀릭입니다. 그런데 또, 계획이 오래가지는 않아요. 작심삼일까지는 아니고… 설명하려면 좀 긴데, 작심삼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 만약 작심삼일이라고 하더라도, 작심삼일을 무시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작심삼일이 이틀은 결심한 대로 하고 3일째에 그만둔다는 뜻, 하여간에 결심한 게 3일을 못 간다는 뜻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뭐다? 이틀은 가요.

이틀도 안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심도 안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작심삼일을 연속적으로 하면요, 1년 중 3분의 2는 결심한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이거 꽤 괜찮은 퍼센티지 같아요.

아무튼 저는 언제나 계획이 있기 때문에 새해가 되었을 때 새해라서 새 계획을 세우진 않아요. 계획이 언제나 새롭게 생겨서 새해에 새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새해는 그냥 6월 중순이랑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6월 중순에도 저는 진짜 계획을 너무 좋아해서, 계획을 어마어마하게 세우거든요. 구계획, 신계획, 모든 종류의 계획. 저는 늘 계획이 있어요.

물론, 다 실행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제 경우에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계획을 안 세우는 것보다 결과가 언제나 좋아요. 왜냐하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만큼이나, 계획을 세웠는데도 실행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도 나름 의미롭더라고요.

아무튼 여러분? 저는 계획 시스템 너드입니다. 범생이 같은 거죠. 시스템 홀릭인 거예요. 계획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계획 시스템 자체를 좋아합니다.

종이도 쓰고, 디지털도 씁니다.

체크리스트도 쓰고, 캘린더도 씁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이걸 간간이 바꿔줘야 해요. 제가 이 팟캐스트를 랜덤하게 하는 이유도, 바꿔주지 않으면 그 일정성에 질리기 때문입니다.

잠에 못 드는 것도 일정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매일 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게 좋은 건데, 왠지 이게, 의식적으로 싫은 건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싫은 것 같기도 해요. 무의식적인 게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발견하죠? 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이론이에요.

말이 되는 이론은 물론 아닙니다. 왜냐하면 잠을 잘 자는 일정성이 싫어서 매일 일정하게 잠을 못 자잖아요. 이게 함정이에요. 두 일정성 사이에서 고르라면 잠을 잘 자는 편이 더 좋을 텐데 말이죠.

아무튼 요약하자면, 계획이라는 일정성 내에서 변화를 주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인 것 같아요. 저는 굉장히 일정하게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일정하지 않게 일정합니다. 어이없죠?

그래서 최대한 계획을 실행하려고 하기는 하되, 만약 다른 재미난 뭔가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올 경우 그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유 그 자체를 계획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합니다.


3: 꾸준히

00:10:36-00:16:38

[음악: Cool Cats – Family Kush]

학생 때 숙제를 하고 시험을 보는 패턴이 각자 있잖아요.

숙제를 받았을 때, 숙제를 제출해야 하는 시점이 10일 후면, 9일째 되는 밤부터 숙제를 하는 사람이 있고, 10분의 1씩 매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각자의 방식이 있단 말이죠.

그리고 또한 시험을 보면 100점을 못 맞아서 우는 사람이 있고, 50점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찍어서 괜찮게 맞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숙제를 받았는데 제출 시점이 10일 후면,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에 집중적으로 하고, 아홉 번째 되는 날 한번 훑어서 10일째 되는 날 제출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물론 숙제가 너무 어려우면 처음 의도와는 달리 첫째 날부터 셋째 날만이 아니라 넷째 날, 다섯째 날, 심지어 10일째 되는 날 제출하기 직전까지 해야 할 때도 있었죠.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첫째 날에 반드시 숙제를 시작을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리고 시험을 보면, 100점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뭐, 93점 이상만 나오면 되지. 아니면 뭐 B만 나오면 되지.

다만. 그런 결과가 적당히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던 것 같아요. 왜 확실하게 말씀을 못 드리고 자꾸 ‘그런 것 같다’고 하냐면요. 오래돼서 그래요. 학생이었던 지 오래돼서.

나이는 안 밝힙니다.

[음악 끝.]

하여튼 요지는, ‘잔잔바리로 꾸준하게.’ 이걸 좋아한 지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왜 하는 거냐면요. 이게 현재의 제 계획 스타일과 연관성이 높은 것 같아서예요. 저는 꽉 채워서 뭘 하지 않는 스타일이더라고요. 왜 그, 데드라인 직전에 엄청 부스트를 받아서 밤새워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밤을 안 새워요. 잠을 잘 못 자는데 밤은 안 새웁니다. 어이가 없죠?

대신에 저는 1년 365일 일하는 게 좋더라고요. 좋아서 하는 겁니다. 몰아서 하는 거 매우 싫어해요.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만 합니다. 지금처럼, 몰아서 할 필요 없이 잔잔바리로 맨날 하는 일이 적성에 아주 잘 맞습니다. 그래서 번아웃이 안 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잡생각이 많고 불면증이 있어도 번아웃은 안 온다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몰아서 하는 스타일에 어울리는 직종과 업무도 있죠. 도저히 미리 할 수 없는 일. 당일 날 벌어져야 하는 일. 이를테면 여러 사람을 한군데에 모아야 하는 일. 콘서트. 영화 촬영. 기타 등등.

그런 경우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의 성향이 몇 달 빡세게 놀고 그다음 몇 달 빡세게 일하는 그런 성향이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4: 여행 스타일

00:16:38-00:24:44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Mallets, F maj, lullaby, phrase – Artlist Original]

아무튼. 저는 잔잔바리 꾸준 스타일을 좋아해서, 여행도 장기 여행을 가는 걸 좋아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반나절은 일을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더라고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면, 여행 가서 한다고 뭐가 안 달라집니다. 여행 가서 웬만한 그 어떤 걸 해도 원래 하던 일이 너무 좋아서 여행이 그렇게 더 좋지도 않아요. 여행지에서 어딜 간다고 해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그냥 거기서 앉아 있는 거예요. 뭐 카페에 가서 그 동네 커피 마시고. 그 동네 슈퍼 가고.

슈퍼 가는 게 진짜 신기하고요. 영화관 가는 것도 재밌습니다.

이런 이유로 태국에 갔을 때 영화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태국 영화관에 가면 태국 국가를 듣느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걸 의도치 않게 경험하는 게 여행 가서 할 수 있는 정말로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적도 뭐 다 좋긴 하지만, 예를 들어 서울을 관광하는데 경복궁에 가면… 경복궁 자체는 물론 아름다우나… 정작 거기서 가장 열심히 관광하게 되는 건 다른 관광객들이더라고요. 사진 찍으면 경복궁보다 다른 관광객이 더 많이 나왔던 경험이 저는 있습니다. 서울을 왔으면 차라리 밤에 강남 거리를 돌아다녀 보는 게 서울 사람들을 더 많이 마주치게 되는 환경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서울은 걸어 다니기에 너무 좋은 도시잖아요. 이게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에 가면 무작정 걷습니다. 걸어 다니면 뭔가가 반드시 보이더라고요. 뭐든지 간에.

그리고 서울 가서 또 뭐 하냐 하면. 저는 몇 년마다 아주 오랜만에 가니까 변화가 눈에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문득문득. 오호? 몇 년 새에 맥주 종류가 엄청 많아졌네. 그러면 맥주 마시고. 그럽니다. 저번에 갔을 때는 한강이 너무 좋아가지고. 그냥 가서 별거 안 하고 한강에 앉아 있거나 걷거나 그랬습니다.

한강 정도는 되어야 강이죠. 어떤 나라들은 강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가보면. 하천 같아요. 시냇물.

그런데 한강은 진짜 강 같습니다.

그리고. 해 본 적은 없지만 해 보고 싶은 종류의 여행은. 대자연 여행. 몬태나. 아… 몬태나 너무 멋있어. 몬태나 가고 싶어.

아무튼 제가 1화에서 잠깐 얘기한 적이 있죠. 장기 여행을 가서 일을 거의 안 하고 거의 온전히 쉬어 본 적이 있는데, 진짜 힘들었어요. 잠은 진짜 너무 잘 잤는데 신체적으로 우울증이 왔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무슨 마음의 스트레스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너무 많이 쉬어서 몸에 정체 현상이 와서 너어어어어무 우울했어요. 이게 그, 왜, 일 많이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은퇴하면 건강이 안 좋아진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또 비슷하게, 운동 많이 하던 사람이 갑자기 운동을 관두면 건강이 안 좋아집니다. 그거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게, 서울 갔을 때였거든요. 그러니까 한강이며 거리며 온 사방팔방을 그렇게 걸어 다녔단 말이죠. 거기다가 운동도 했어요. 안 움직이면 더 우울해지니까 운동도 했는데, 그렇게 한두 시간 운동을 하고, 거기에 얹어서 사방팔방 걸어 다녔는데도 우울감이 왔습니다.

네. 잠을 못 잔다고 반드시 우울하지는 않거든요, 저는. 피곤하긴 하지만 저의 불면증이 우울함까지 야기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일을 안 하면 반드시 우울해요.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만약 이 여행 기간 동안 잠을 덜 잤더라도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우울했을 거란 얘기입니다. 잠을 잘 자고 운동을 많이 해도 그런 건강이 일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었을 거란 뜻이죠.

그래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만약 일을 하다 그 일이 힘들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게요?

다른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게, 이, 한 일을 하다 다른 일을 하는 성향이, 결과적으로 제가 이제 예쁜 다이어리를 안 사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5: 다이어리의 마력

00:24:44-00:36:50

[음악: Grin and Skip – No Leads – Bamtone]

다이어리. 그것도 예쁜 다이어리.

연말, 아니 한 10월부터가 되면 각종 소셜 미디어에 다이어리 광고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하. 그러면 저는. 제가 올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저지른 실수 중 하나가 그 광고 중 하나를 클릭하는 거였어요.

다이어리 광고 하나를 클릭했더니 그 이후로 몇 달을 다이어리들이 눈앞에서 아른아른거리는 거예요.

가죽으로 둘러싼 다이어리.

무슨 장인이 한 땀 한 땀 찍어냈다는 종이로 만든 다이어리.

요래조래 속지를 믹스앤매치할 수 있는 다이어리.

얘네들이 막 아른거리는 겁니다. 요즘엔 사진 광고도 아니에요. 비디오 광고예요. 그래서 진짜로 아른거리더라고요. 계속 막 움직입니다.

그런데, 제가 작년에 한 일 중 가장 잘한 건, 이 다이어리 중 단 한 개도 안 샀다는 거였습니다.

[음악이 계속되다가 끝난다.]

여러분. 저는 계획홀릭일 뿐만 아니라 종이홀릭이거든요. 원래는 그렇습니다. 요즘엔 많이 나아졌어요. 왜냐하면, 나무가 정말로 좋으면, 일단 나무를 안 죽이는 게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지털로 할 수 있는 건 다 디지털로 합니다. 전기도 물론 자원이지만, 전기는 쓰고 나면 없어지는 거고, 종이는, 그 산더미 같은 종이는, 계속 쌓입니다.

아무튼, 옛날 옛적, 디지털이 아직 완전히 시작하지 않았을 당시에는, 제가 돌잡이 때 종이와 연필을 잡았습니다. 그 어린 것이 쌀 아니면 돈을 잡아야지. 왜 종이랑 연필을 잡아가지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 종이에 환장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안 사지만, 예전에 사두었던 종이가 집에 엄청 많습니다.

안 쓴 종이.

다이어리. 노트. 낱장 종이. 인덱스 카드. 막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이는 가장 큰 이유가 저의 계획 성향 때문입니다. 일단 계획을 안 세우진 않는다, 이게 가장 중요한 점이고, 계획을 세울 시, 다 이루지 않고 한 90퍼센트에서 95퍼센트만 이룬다는 점. 또한 계획 자체가 아주 유동적이라는 점. 계획에 쉼이 없고, 계속 이어진다는 점.

이런 요소들 때문에 제가 계획을 세우면 다이어리가… 간단하게 말해서, 개판이 됩니다.

1월 1일에 아주 세상 예쁜 글씨로 다이어리를 시작을 해도 1월 10일만 되면 벌써 글씨가 엉망이 되고, 이러는 겁니다.

게다가 심지어 있잖아요. 그거 아세요? 종이로 계획했을 때의 손맛 중 하나가. 계획한 것 중 실행한 것을 박박 긋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때문에 완전히 디지털로 돌아서진 않고 종이를 어느 정도는 쓰게 되는 것입니다. 디지털로 할 수 있는 건 디지털로 한다고 했잖아요? 박박 줄을 긋는 것은 디지털로 아직 못 합니다.

무슨 뭐 그런 여러 펜들, 애플 펜슬, 폰에다가 쓰는 그런 펜 같은 것이 촉감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종이와 연필, 아니면 종이와 펜, 종이와 만년필을 아직 이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튼 종이가 필요하긴 합니다. 그리고 이 필요란, 제가 다이어리에 줄을 박박 그어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면, 저는 필요가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을 더 많이 해요. 이 줄을 긋는 보람감 때문에.

그래서 ‘필요’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그런데 필요한 종이이기는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예쁜 가죽 다이어리, 이런 걸 사면, 어떻게 박박 긁겠어요.

그러니까 그 예쁨에 저의 성향을 맞추려고 계획 취향을 억지로 막 바꿉니다. 100 계획했으면 100을 다 해야지. 오늘은 100%로 살아야지. 이래요.

그런데 뭐다? 그 효과가 10일을 못 간다.

게다가 이게 또. 예쁘고 고급진 다이어리였을 수록 실수가 용납이 안 됩니다. 그냥 제 마음속에서만 용납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이 다이어리의 예쁨과 저의 못생긴 글씨 자체가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냐면요. 다이어리를 다 분해합니다.

진짜 엽기적이지 않아요?

아, 바로 분해하지는 않고, 그… 이미 일그러졌다 싶은 상태에서 다이어리를 좀 써요. 그러다 한 2월 정도 되면 포기하는 것 같아요.

이때 그 예뻤던 다이어리를 분해합니다.

왜냐하면 분해를 하면, 그 앞쪽에 제가 이상하게 망쳤던 글씨들은 이제 하나의 망한 다이어리의 일부가 아니라, 따로따로인 페이지들이 되는 거고, 살아남은 페이지들은 깨끗하게 쓰면 되는 거잖아요.

문제는 이런 경우가 다이어리뿐만 아니라 노트며 뭐며 엄청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 낱장들을 어떻게든 쌓아놓고 써야 합니다. 쓸 겁니다. 다이어리 이제 아무리 예뻐도 안 살 겁니다. 이거 다 쓸 때까지.

제가 뭔가. 예쁘기만 하고 기능은 없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신발이 예쁜데 발이 어마어마하게 아파. 안 신어요.

옷이 엄청 예쁜데 킹 추워. 안 입어요.

그리고 핸드백 이런 거. 모시고 다녀야 되는데 뭐 하나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이즈는 안 돼. 주먹만 해. 킹 쪼꼬매. 그러면 안 듭니다. 그 어떤 비싼 명품이라고 우겨도 상관없습니다. 명품은 무슨. 쓸 수가 없는데.

마찬가지로 다이어리가 어마어마하게 예쁜데 저의 계획 시스템에 장애물이 되면, 처음에는 그 예쁨에 혹해서 사더라도, 결국에는 그냥 안 쓰더라고요.

특히나 요즘에는 계획이 너무 수시로 바뀌는데, 이건 제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세상에 벌어지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가장 최신의 기술적 발전 때문에 당장 오늘이나 2주 후에 할 일이 바뀌지는 않지만, 그래도 빅픽쳐를 수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10년, 20년 후에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일 때문에요.


6: 꼭지점

00:36:50-00:45:16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Harp, F major, singular ascent – Artlist Original]

그리고요 여러분.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태 자체가 싫은 것 같아요. 다르게 말하면, 뭘 하는 상태 자체가 좋습니다.

그리고 뭘 많이 하면 밥을 많이 먹을 수 있습니다.

아까 말했던 그, 서울에서 엄청 걸어 다니고 운동도 많이 했는데 잠 엄청 자서 우울감 왔던 그때 말이에요. 이때 원래 계획의 일부가 맛있는 걸 많이 먹는 거였거든요? 먹을 게 얼마나 많아, 서울에. 그냥 돌아다니면 다 먹을 건데. 그런데 한 게 잠잔 거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운동을 하루에 한두 시간을 했어도 입맛이 없더라고요.

이 부분이 저도 좀 충격이었어요. 몸을 움직였어도 배가 안 고프더라고요.

이게 아마도, 제가 뭐 올림픽 나가는 선수처럼 움직인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운동량 자체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게다가 그런 고급 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뇌를 엄청나게 쓰잖아요. 운동은, 머리가 좋아야 잘합니다. 순발력, 판단력, 그리고 근육뿐만 아니라 그런 머리 쓰는 것들에 대한 지구력, 기타 등등.

그런데 제가 그 당시 여행할 때 한 운동은 뇌를 쓰는 운동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뇌를 쉬는 운동이었으니까. 멍때리고 걷는 거. 그랬더니 진짜. 밥을 못 먹습니다. ‘나 킹 배고파’ 이러고서 막상 먹으면 머저리처럼 쪼끔 먹어가지고 저 자신에게 매우 실망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전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라도. 식욕을 위해서라도. 계획을 세우고. 그걸 이루어나가고. 그게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하고 그걸 실천해나가는 게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랬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그 최악으로 싫었던 상황은, 그 당시의 계획으로 잘 벗어났습니다.

지금은, ‘나의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라는 기준으로 보면 꽤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갑자기 아파질 수도 있고. 다른 게 하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지금 상태에서 딱 맞게 앞으로 100년을 산다고 보장할 순 없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건강적으로, 기타 등등 저 멀리에 꼭지점을 찍어둔다고 생각하고 그리로 열심히 갑니다.

뭐지, 그. 오리가 있는데. 물살이 막 밀려오는데. 오리가 제자리에 있으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계속 헤엄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제자리에 있고 싶은지 앞으로 나가고 싶은지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일단 가만히는 있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꼭지점 말이 나와서.

꼭지점 아시죠? 도형의 뾰족한 꼭지점. 그게 제가 저의 머나먼 목표를 시각화하는 방식입니다.

꼭지점에 도달하려면 직선으로 가는 게 가장 빠르겠죠? 그런데 아마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예요. 돌아돌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꼭지점이 있는 사람도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알겠죠. 꼭지점이 있다는 거. 꼭지점이 없으면 제대로 가는지 아닌지 스스로가 모른다는 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가 [영상 /// 본문], 거기에서 앨리스가 고양이한테 물어봅니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되는지 가르쳐 줄래?’

그러자 고양이가 그러죠.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에 달렸지.’

그랬더니 앨리스가 그래요.

‘난 어디로 가든지 상관없어.’

그랬더니 또 고양이가 이래요.

‘그럼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겠네.’

이때 앨리스가 첨언을 합니다.

‘어딘가에 다다르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거야.’

그러자 고양이가 이럽니다.

‘그거야 간단하지. 계속 가기만 하면 어딘가에 다다르겠지.’

이런 겁니다.

어디로 가는지 정녕으로 진정으로 상관이 없다면 아무 데로나 가도 상관없을 텐데,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말 상관없는 게 아닐 거예요.


7: 각이 나온다는 것

00:45:16-00:55:21

[음악: Never Back – VESHZA]

제가 어디서 이런 말을 들었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많았으면 좋겠는 게 아니라, 돈에 대해 스트레스받지 않고 싶어 한다는 것이 그 사람 주장이었어요.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 유튜브의 많은 비디오 중 하나에서 본 거였는데. 아무튼. 이 사람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돈이 많았으면 좋겠는 거랑, 돈 걱정을 안 했으면 좋겠는 건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전자와 후자를 많이 헷갈려해서, 돈이 너무 많아서 돈 걱정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는 거죠. 이러한 자신의 목표에 대한 오해 때문에, 돈이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는 둥, 그런 더 큰 오해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경우에 처하고 싶지 않습니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는 목표도 좋고. 돈 걱정을 안 했으면 좋겠는 목표도 좋은데, 그 두 개가 같은 거라고 착각했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고 싶진 않아요.

그 두 개는 엄연히 다른 꼭지점입니다.

[노래 끝.]

여러분? 점과 점을 잇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하나의 점이고, 저 멀리 꼭지점 두 개가 있어요. 뭐 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두 꼭지점인데, 그 둘을 A랑 B라고 불러볼게요.

그러면 지금 나로부터 A까지 연결되는 선을 그을 수 있고, 나로부터 B까지 연결되는 선을 그을 수도 있어요. 지금 나는 한 곳에 있기 때문에, 당장 내 코앞 1미터에 있는 그 두 개의 선은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나 자신도 정신을 차려야 알 수 있는 차이고, 주변에서는 전혀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A 혹은 B 둘 중 하나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란 말이죠. 1미터가 100미터가 되고, 2킬로미터가 되고, 50킬로미터가 되면.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가 나게 되고, 점점 그, 두 선 사이의 각이 벌어질 거잖아요. 그런데 이때, 나는 사실 A로 가고 싶었는데 선을 착각해서 사실은 B로 가는 길이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니면 그 반대로, B로 가고 싶었는데 A 선을 잘못 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얼마나 사람이 진이 빠지겠어요.

이 각이라는 것이.

왜 그. 골프에서 OB 나는 것 같은 거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멀리 치시는 분들은, 장타이신 분들은 각이 조금만 틀어져도 왼쪽, 오른쪽 골짜기로 들어가요. 오비 나요. 그러니 가려는 곳으로 최대한 똑바로 가는 게 좋겠죠.

그리고 만약 우리가 장타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오비 날 만큼 거리가 안 나더라도, 이왕이면 거리를 늘리고 싶을 정도로 정확도가 있으면 좋잖아요. 정확도가 없으면 거리 늘려봤자 어쩔 거야. 남들 페어웨이 걸을 때 자기는 막 진흙탕 들어가서 공 찾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또. 이게. 골프가 너무 인생스러운 운동 같아요.

못 치는 사람은 계속 진흙탕 들어가서 진 다 빠지고, 다음 샷도 또 못 칩니다. 잘 치는 사람은 우아하게 페어웨이 걷다가, 온그린해서, 퍼팅 끝내주게 해서, 홀에 쏙 들어갑니다.

물론 A에서 B로 가는 길도 이을 수 있고, B에서 A로 가는 길도 이을 수 있을 겁니다. OB 나도 다시 언젠가는 어떻게든 그린까지 갈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이왕이면, 지금 당장 조금만 생각해서 선택할 수 있는 거라면, 애시당초 A 아니면 B를 자기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게 훨씬 편할 거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심지어 A와 B를 둘 다 버리기로 하더라도, 그게 어딨는지를 알아야 등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꼭지점 옵션들을 알면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계획홀릭인지라. 10년, 20년 후에 벌어질 일 때문에도 계획을 수정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달 계획은 안 바뀔 확률이 높아요. 아직 각이 벌어지지 않는 기간이니까. 그런데 1년 후 할 일은 바뀝니다. 그래서 그 바뀌는 것들에 대해 대처할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만들어 놓는 걸 좋아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저에 대한 저의 이론은, 바로 이런 성향 때문에 제가 몰아서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의 강박적이죠?

네, 그런 거 같아요.


8: 지금 쓰는 시스템

00:55:21-01:04:27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Harp, F maj, full phrase – Artlist Original]

그런데 미래를 생각해도, 너무 생각하는 바람에 생각하는 데 드는 시간이 실천하는 데 드는 시간보다 많아지면 비생산적인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 쓰는 방법이 저한테는 가장 잘 맞습니다.

뭐냐면. 일단 계획을 여러 단계로 합니다. 1차, 2차, 등등.

그리고 어떤 특정한 날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1차 계획을 매일매일 단위로 세우는 게 아니라, 2주 정도 단위로 세웁니다.

그걸 그냥 리스트 형태로 쭉 씁니다. 투 두 리스트 같은 거죠. 그리고 그것을 미루기 쉽도록 디지털로 합니다. 이건 아무 앱에서나 해도 돼요. 복사 붙여넣기만 할 수 있으면 되어서.

이 2주 덩어리를 만들 때 제가 가장 염두에 두는 건 뭐냐면요. 너무 타이트하게 잡지 않는 겁니다. 하루에 24시간이 있고 그중 내가 14시간을 일할 거라고 해서 14시간 치를 다 채워놓으면 저는 반드시 그걸 다 안 할 뿐만 아니라, 좀… 확연하게 덜 합니다.

이것은 제가 수년간 저를 관찰해서 알게 된 것인데, 얘가, 이, 저라는 애가, 어차피 14시간을 일을 하긴 할 건데, 계획이 꽉 차 있으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스스로가 저에게 보상을 해주는 방식이 뭐냐면요, 하루에 8시간만 일한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놓아요. 그러면 시간이 남잖아요? 그럼 이 시간에 제가 놀까요?

안 놀아요. 경험으로 알아요. 심심해서라도 뭘 해요. 그래서 계획을 세울 때는 타이트하게 세우지 않습니다.

이상하죠? 아까는 95%에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해놓고서, 갑자기 계획한 거 이상으로 한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이게 이론으로는 안 되고 저도 저를 관찰하기만 하는 거예요. 그리고 관찰을 통해 저 자신을 어르고 달래고 당근과 채찍을 제공합니다.

이런 특성이 사람마다 각자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결과만 나오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해서, 뭐든지 간에 자기한테 맞는 시스템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 목표가 14시간 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치면, 어떻게 거기까지 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인간은 14시간 치 일을 계획했는데 6시간밖에 일하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다. 또한 나라는 인간은 8시간 치 일을 계획하면 오히려 14시간 치 일을 하는 인간이다.

이렇기 때문에 저는 후자로 갑니다. 이 경우에는, 내가 왜 이런지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 그 답을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또한 그 답을 안다고 해서 굳이 바꿀 필요도 없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아무튼 이런 2주 단위 덩어리들을 앞으로 한 6주 치를 만들어 놔요. 그러니까 덩어리가 3개 있는 거죠.

그리고 6주 이후의 것들은 전부 다 미래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미래 덩어리들을 만듭니다. 크게 두 개. 가까운 미래, 먼 미래.

여기까지가 1차 계획입니다.

그러고서는 2차 계획이 있습니다. 여기서 종이를 써요.

아까 2주씩 끊어놓은 덩어리 3개 있죠? 그것 중 가장 먼저인 덩어리, 그러니까 당장 앞으로 2주간 해야 할 일을 담은 덩어리를 봅니다. 이 중에서 당장 내일 해야 할 일을 정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내일 안 해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일 꼭 안 해도 2주 안에만 하면 되니까.

이렇게 2주를 쭉쭉 살아요. 그 와중에 이 덩어리 안에 있는 할 일들은 줄어들겠죠.

그런데, 말씀드렸듯이 제가 일을 100%를 안 하잖아요. 여기선 또 95% 정도만 합니다. 저 왜 그럴까요?

그러면 이 덩어리 중에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꼭 안 하는 애들이 있어요.

얘네를 다음 덩어리로 미룹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계~속 안 할 때가 있어요. 계속 미루기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뭐 한두 달 후에 걔를 한 번 봅니다.

그리고 생각해봅니다. ‘이거 꼭 해야 하나?’

그리고 그 대답에 따라서, 또 다음 2주 덩어리로 미뤄버리든지, 근미래 덩어리에 넣든지, 먼 미래 덩어리에 넣든지, 아니면 아예 없애 버립니다.

네. 강박적이에요.

따라 하라는 건 물론 아닙니다. 이 모든 건 졸리라고 하는 말입니다.


9: 현상 관찰과 캐릭터

01:04:27-01:11:37

[음악: Café da Manhã – Luc Allieres]

제가 지금 시스템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가, 작심삼일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2주 덩어리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오늘, 내일, 내일모레 안 한다고 해서 실패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유 공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급한 일이 있으면 집어넣을 수 있고요.

제일 중요하게는, 계속해서 미뤄지는 일이 뭔지가 보여요. 그러면 과연 이게 나를 꼭지점으로 데려가 줄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거죠. 어떤 일을 계속 미뤘는데도 내가 잘 살아있으면, 혹시 이거 안 해도 되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이런 방식이 아마 직장 생활을 하시는 분들한테는 적용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회의도 있을 테고, 여러 사람의 여러 스케쥴이 얽혀 있으니까.

그런데 저한테는 이 시스템이 잘 맞고요.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대개 50년, 60년 계속되는 것들이거든요. 저는 뭐가 됐든 계속하는 사람인 것이 아주 큰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뭔가. 번아웃 되지 않으려고 정착하게 된 시스템이 지금의 시스템인가, 생각도 듭니다.

[노래 끝.]

이것도 이론일 뿐입니다. 저는, 제가 왜 무엇을 하느냐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몰라요. 나도 몰라.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발현된 현상만 저도 관찰할 뿐입니다.

짜장면이 먹고 싶은 마음이 들면, 짜장면을 안 먹을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고 일부러 짬뽕을 먹을 수도 있지만, 왜 애초에 짜장면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냐고 물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가끔은 제가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바라봐요. 이게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극에 대한 이론 같은 걸 읽어보면, 글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유가, 인간은 누구나 서사를 갖고 있잖아요. 그것을 서사라고 부르든 안 부르든, 누구나.

나는 누구누구다.

나는 무엇무엇을 하는 사람이다.

나의 목표는 무엇무엇이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내가 잃을 것은 무엇무엇이며.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나에게 이러저러해서 중요하다.

요것만 정해도. 방향성에 너무나 도움이 됩니다. 물론 우리가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생은 편집이 없는 인생이라 극보다는 지루하겠지만, 이런 캐릭터 잡기 비스무리한 것을 통해서 지루함에 이유가 부여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얘기에서 두 가지 종류의 의지가 등장한 거예요. 두 가지 종류의 ‘왜’가 있는 거죠.

관찰되는 행동이 ‘짜장면을 시킨다’일 때.

1차 ‘왜’는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입니다.

2차 ‘왜’는 그보다 더 깊은, ‘짜장면이 왜 먹고 싶은데?’에 관한 ‘왜’입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인 겁니다.

저는 2차 ‘왜’는 알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차 ‘왜’는 알면 편리하다고 봅니다. 2차 ‘왜’는… 자유 의지에 대한 거잖아요. 자유 의지에 대해 얘기하면 얘기가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언젠가. 혹시나. 메이비. 얘기해볼게요.

근데 1차 ‘왜,’ 즉, 자기가 짜장면을 먹고 싶은 사람이란 걸 알면… 좋지.

짜장면은 소중하니까.


10: 새해인 김에 목표

01:11:37-01:15:31

[효과음: ILAN POST-THE NIGHT OF THE BALL Track 1 – Fairy Dreams – Mallets.A1 F maj.01 LOGO – Artlist Original]

이 모든 계획에서 발현된, 제가 개인적으로 올해 더 탐구할 저의 특징은 줄줄이 사탕성입니다.

이 팟캐스트 컨셉에 랜덤성이 들어가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물론. 불면러 분들이 계속되는 잡생각에서 벗어나 잠이 들 수 있으시면 좋겠는 것도 있는데, 동시에,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팟캐스트를 진행해야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윈윈.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항상. 돌아갑니다.

똑바로가 아니라 돌아돌아 간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다른 데로 갔다가도 결국 가려던 길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꼭지점을 중요시하는 건지도 몰라요. 딴 데 한눈을 팔지 않으면 그냥 앞을 보고 잘 걸어가면 되는데, 저는 하도 돌아가느라 방향을 잡아두질 않으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거든요.

아무튼. 랜덤성. 줄줄이 사탕성. 새해여서 생긴 목표는 아니지만 마침 새해인 김에 얘네를 좀 더 포옹하는 것을 목표 중 하나로 삼을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목표가 기록이에요.

그 이유는. 제가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어마어마한 동영상을 봤는데. 모션 그래픽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분이. 혼자서 2분짜리 동영상을 어마어마한 걸 만드셨는데. 만든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그 과정을 다 기록한 거죠.

와.

저는 커서 이런 사람이 될 겁니다. 여러분, 이거 동영상 꼭 봐보세요. 이 코멘트 해주시는 분 말도 되게 재밌어요. 영상 제목이 살짝 어그로성인데, 저는 이 제목 때문에 궁금해서 클릭했다가, 이 유튜버분이 너무나 맞는 말을 해주셔가지고 아주 해피 엔딩의 기분으로 비디오를 끝까지 다 봤습니다. 역시. 제목 짓는 것도. 다 기술인 거 같아요. 어그로는 기술입니다. 저는 전혀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배워야 될 게 너무 많습니다.


11: 마무리

01:15:31-01:17:46

[음악: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네. 오늘은 이쯤에서 ‘급’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그리고요. 아까 말한 ‘기록’ 얘기를 잠깐 계속 이어가자면, 저에게는 ‘간간 소식지’라는 뉴스레터가 있습니다. 인터넷 세계에서 저의 자가 홈인 ‘보관소’를 통해 운영하는 이 소식지가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알리는 데에 가장 기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메일 뉴스레터란, 비교적 오래된 기술인 만큼 믿을 만하고 간단해서 좋습니다.

여러분? 올해, 2022년에, 이루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이루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음악 끝까지.]


모든 링크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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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한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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