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6] 근접컬트: 별로 안 외딴 곳에서 나타나는 틀의 붕괴

[Ep. 36] 근접컬트: 별로 안 외딴 곳에서 나타나는 틀의 붕괴 square

1: 오프닝

00:00:00-00:06:22

[Music: Eternity Clock – Shahead Mostafafar]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은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어느새 또 그렇게 시간이 갔습니다. 참말로. 시간이란 정말. 이제 2022년이 거의 끝나가지 않습니까? 두 달도 안 남았어요. 언제 또 이렇게 됐냐 이 말입니다. 희한해요 정말.

아무튼 그리하여 오늘은 시즌 주제에 따라 공포 얘기를 한 다음에, 각종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몇 달간 저에게도, 또 세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얘기들을 좀 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할게요.

오늘의 공포 포인트는 컬트입니다. 저는 컬트라는 개념에 상당히 관심이 있는 편입니다. 컬트, 사이비 광신도 집단, 뭔가에 미친 듯이 현혹된 사람들의 무리에 속해 본 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매료되는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 컬트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위 ‘정상적인’ 사람들도 거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즉, 이 세상에서 ‘괴물성’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많은 파생 개념들이 나와 타자를 분리하는 데에 의존을 하지만, 컬트는 그 분리의 장벽을 허무는 측면이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괴물’이라는 단어 자체가 괴물 아닌 것과 괴물을 분리하는 데 쓰이잖아요. 정상인과 비정상인. 인간과 괴물. 나와 타자. 그리고 꽤 잦은 빈도로, 그 장벽은 없앨 수 없는 거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신체적 장애를 고칠 수 없다고 주장된다든가, 외국인은 절대 내국인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없게끔 아예 시스템을 디자인한다든가.

그런데 컬트라는 건 그 장벽을 허문다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나와서 돈 많이 버는 스펙 좋은 사람도 어느 한순간 취약점이 보이면 컬트에 빠질 수가 있어요. 정상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도 어느 한순간 비정상에 속할 수 있단 거죠. 이렇게 되면 정상이나 비정상이란 어떤 절대적 개념이라기보다는, normal이라는 단어의 가장 근본적인 뜻. 통계적으로 norm이다. 그저 다수다. 라는 뜻을 더 강하게 갖게 됩니다. 즉, 가치 평가가 아니라, 그냥 수세 비교에 불과한 무언가가 되며, 따라서, 장벽이라기보다는 스펙트럼의 좌우나 상하로 움직일 수 있는, 보다 유동적인 개념이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래서 컬트가 흥미로워요. 논리적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들이 왜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지. 그리고 특히나 컬트 중에서도 제가 관심이 있는 컬트는 가까운 곳에 있는 컬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레퍼런스로는 영화 Hereditary, 한국어 제목, <유전>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많습니다. 그냥 아예 영화를 보고서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Music ends.]


2: 미드소마와 유전

00:06:22-00:09:06

<유전>은 혜원이 친구가 추천해준 영화인데, 완전히 제가 역대로 본 영화 중 가장 재밌게 본 탑 10위에 드는 듯합니다. 아리 아스터 감독의 2018년 영화고요, 이 같은 감독을 2019년에 나온 ‘미드소마‘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가까운 곳의 컬트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미드소마보다 유전이 더 좋았습니다. 짧게 설명을 드리자면, 미드소마는 주인공이 외딴 어느 컬트 마을에 가서 벌어지는 얘기고, 유전은 그냥 사람 사는 평범한 동네처럼 보이는 곳, 그러니까, 애들 다니는 학교도 있고, 사람들이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는 모임이 열리는 커뮤니티 센터? 그런 곳도 있고, 각자 다 일도 하고 일상생활도 하는, 그런 동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미드소마가 펼쳐지는 배경 같은 곳은 솔직히… 컬트 만들라고 판을 펼쳐놓은 배경 같아요. 그렇게 외딴 데에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 모여 있으면, 그런 미친 컬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기네들만의 이상한 의식 같은 것을 구축하는 것이 예측 가능하단 말이죠.

그러나 유전은 다릅니다. 유전은 컬트랑 상관이 없을 수도 있었는데 상관이 있어진다는 게 제 생각에는 가장 큰 공포 포인트입니다. 미드소마가 펼쳐지는 동네는 그냥 스스로가 안 가면 돼요. 처음에 주인공이 그리로 가는 건 강제된 게 아니었거든요. 뭐든지 컬트가 컬트이려면 그렇게 강제해서는 사람 심리를 파고들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유전은 어떤가. 유전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컬트를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게 아닌가.


3: 가족

00:09:06-00:14:24

[Sound effect.]

영화 유전은 사망 기사로 시작합니다. 이 짤막한 문단이 검은 화면 위에 흰 글씨로 떠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나이 많은 여인이 죽었다. 평범한 사망 기사답게, 그 여인의 가족 관계가 기사에 나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데 영미권은 자주 이러더라고요. 사돈의 팔촌까지 아주 그냥 신상을 신문에 다 냅니다. 결혼하고서도 자기 결혼했다고 신문에 내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신문 그거 누가 본다고 내는지 모르겠고, 둘째로, 신문을 누가 본다 해도 세상에 신문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종류별로 다 낼 게 아니면 뭣 하러 하나에라도 내는 노력을 들이는지 모르겠고, 셋째로, 오히려 신문을 사람들이 많이 보면 볼수록, 뭣 하러 자기 신상뿐만 아니라 온 가족에 사돈의 팔촌 신상까지 다 스스로 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리하여 이 기사에 가계 정보가 포함됐는데, 내용은 이러합니다. 죽은 여인에게는 딸이 있다. 그 딸은 살아 있다. 그러나 죽은 여인의 남편과 아들은 이미 죽었다. 죽은 여인에게는 손주가 둘 있는데, 그 이름은 피터와 찰리이며, 사위도 있다.

처음에 이 내용을 보면, 사실 뒷 이야기와 연결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게 왜 그… 책에서 글씨로 된 정보를 읽고 뒤에 나타나는 글씨 정보와 연결하는 것과, 영화에서 글씨로 된 정보를 읽고 뒤에 나타나는 영상 정보를 연결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전자의 경우에는 둘 다 글씨 정보니까 연결이 더 수월하고, 후자는 하나는 글씨 정보인데 다른 하나는 영상 정보니까, 얘가 걔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저는 문자로 된 정보를 좋아하고, 또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제가 손으로 쓰거나 적어도 타이핑하는 걸 좋아해서, 영화 내에서 사람 이름이 매우 특이하거나, 플롯적으로 중요하거나, 또는 자주 사용되는 경우가 아니면, 인물들 이름이 아니라 배우 얼굴로 인물을 기억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 유전을 처음 봤을 때는, 이 사망 기사를 그냥 안 읽다시피 했어요. 사실 책 읽을 때도 그래요. 저는 책 시작할 때 앞에 무슨 인용문 나오는 거 이런 거… 읽긴 하는데, 읽고도 잘 모릅니다. 그건 두 번, 세 번 읽을 사람들을 위한 거지, 사실 초행길의 독자를 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 사망 기사 글자들이 스크린에 떴을 때, 처음에는 그냥 읽는 둥 마는 둥 했고, 영화를 두 번째 봤을 때 다시 자세히 봤습니다.

그렇지만, 대충 읽어도 알 수 있는 점은 사망 기사가 영화 제목과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유전.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전달되는 것. 그리고 어떤 노인의 사망. 그리고 그 노인의 살아남은 딸과 그 딸의 자식들. 게다가 이 영화가 공포 장르의 영화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뭔가 이상한 것이 핏줄을 타고 흘렀겠구나.


4: 틀

00:14:24-00:24:26

[Music: Dark Blood – Jimmy Svensson]

그 핏줄이라는 개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안팎, 혹은 그것과 비스듬하게 걸쳐진 각도에서 우리는 수많은 다른 틀들을 봅니다.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워낙에 틀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이잖아요. 특히나 영화는 모니터 혹은 스크린이라는 딱 눈에 보이는 틀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이야기 안에 있다기보다는 목격자라는 자각이 더 두드러지게 듭니다.

이 점에서 책과 좀 다른 것 같아요. 아니면 제가 책을 읽는 방식이 특이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책은 아무리 순서대로 사건이 펼쳐져도, 브라우징이라는 게 가능하잖아요. 펼쳐둔 책 페이지 내에서 눈알을 요리조리 굴려서 속독을 할 수도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른 속도로 읽는단 말이죠.

그런데 영화는 그 정해진 틀 내에서 감독이 걷는 속도로 우리가 걸어야 합니다.

[Music ends.]

물론 프레임 내에서 눈알을 요리조리 굴려볼 수는 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항상 영화는, 제가 눈알을 굴리려 해도, 일단 그림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중심으로 시점이 모여지는 힘이 대개는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움직이는 인물이나 물체에 따라 시선이 저절로 옮겨가는 걸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차가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씬이 있다고 치면, 제 눈은 그 차를 쫓지, 괜히 반항심이 들지 않고서야 화면의 위나 아래를 굳이 보진 않거든요. 그리고 그 차가 오른쪽 끝에 다다랐을 때, ‘아, 영화는 틀 내에서 벌어지고 있구나’는 자각이 책을 읽을 때보다 심하게 듭니다. 영화는 이미지고 책은, 뭐, 책도 글자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되, 화면이라고 할 만한 게 머릿속에서 펼쳐진다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책은, 글자로는 ‘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고 쓰여 있을지라도, 제 머릿속에서는 그 차가 영원히 오른쪽으로 무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영화는 그렇지 않고, 그래서 더욱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며, 특히나 이 영화, 유전은 틀에 대한 영화라고 저는 해석을 했기 때문에, 그 틀성이 더 두드러졌습니다.

수많은 틀에 대한 이미지들이 처음부터 나옵니다. 프레임들. 창틀. 문틀은 기본이고요.

인형의 집이 나옵니다. 아까 언급한, 사망 기사에 등장한 늙은 여인의 딸의 직업이 인형의 집? 미니어처 모델하우스 같은 걸 만드는 거예요.

자, 앞으로 이 딸을 주인공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이 주인공의 시점에서 다른 인물들을 부를 거예요. 이 주인공의 이름은 애니입니다. 애니에게는 사망 기사에 등장한 남편인 스티브가 있고, 마찬가지로 사망 기사에 등장한 피터와 찰리라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피터는 아들이고, 뭐, 한 열여섯쯤 된 것 같고, 찰리는 딸이고, 열셋입니다.

애니의 직업이 인형의 집을 만드는 것인데, 이 때문에 작업실에는 수많은 틀들이 있습니다. 그냥 우리 삶에서 실제 크기로 보면 틀일 줄도 모를 장면들이 미니어처화됨으로써 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애니의 작업실에는 햇빛이 들어오지만, 전등도 따로 켜요. 미세 작업을 해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 이 전등으로 인해 밝혀진 구간이 또 희미한 틀을 형성합니다.

우리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애니의 수많은 인형의 집 중 하나, 피터의 방에 클로즈업합니다. 점점 더, 점점 더 클로즈업해서 이윽고 그것이 화면을 다 채우게 되자, 그 클로즈업이 현실 세계와 연결됩니다. 즉, 클로즈업이 한순간에 와이드 샷으로 변모하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이렇게 틀이 있다가 틀이 갑자기 무너지는 이미지가 등장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혼란이 옵니다.

틀이라는 것은 벗어나야지 벗어나야지 생각하면 감옥 같지만, 사실 우리 삶에서 필요한 개념이거든요. 틀이 아예 없으면, 예를 들어 우리 몸을 외부와 분리하는 피부가 없다면, 우리는 다 무슨 그 찐덕이 몬스터처럼, 형태가 불분명한 괴물처럼 땅에 붙어서 찐덕찐덕하게 흐물흐물하게 움직였을 거란 말이죠. 또한 물체가 있으면 그것이 물체로서, 다른 물체들과 분리되어야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이 유지가 되고, 더 근본적으로는 시각은 시각으로서, 후각은 후각으로서, 미각은 미각으로서, 이렇게 분리가 되어야 우리가 미치지 않고 살 수 있잖아요.

감각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LSD 같은 약물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반응을 일으키는지만 봐도, 틀이란 게 얼마나 위안을 주는 개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극단적인 반응은 실제로 약을 해서 생기는 반응이 아니라, LSD에 대해 듣기만 해도 그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우들이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LSD성 약물을 선택적으로 쓰는 게 의학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뭐든지, 특히나 과학이나 의학처럼 자기네가 통계를 내서 엄청 논리적인 척하는 쪽에서 뭘 하지 말라고 하면 저는 일단 미심쩍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주장에 반하는 통계를 과학이 아니라고, 의학이 아니라고 통계를 아예 못 하고 연구를 아예 못 하게 해놓고서는 비과학적이라고, 비의학적이라고 하는 행태를 저는 좋아하지 않아서, LSD, 버섯, 기타 오랜 전통을 가진 세계 곳곳 네이티브들의 약물 문화가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과민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은 아닙니다.

틀이 필요할 때가 있고, 틀의 장벽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을 때가 있는데, 문제는 틀인 줄 알았던 게 막무가내로 허물어지거나, 장벽이 없을 줄 알았는데 누가 임의로 장벽을 세우는 게 문제인 겁니다.


5: 틀, 계속

00:24:26-00:31:02

[Music: Blood Meridian – SPEARFISHER]

녹음하고 있는 와중에, 여러분, 오늘 여기 비가 옵니다. 드디어 겨울 폭풍이 왔어요. 말은 폭풍이지만 엄청난 건 아니고요, 비만 좀 오면 winter storm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비가 왔다 갔다 하는데, 빗소리가 오디오에 좀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희 집 지붕에 비가 엄청난 소리로 충돌합니다. 네. 방 바로 위가 지붕이에요. 위에 다른 아파트, 다른 방 없고, 바로 위가 지붕이고, 아래층 창에도 다 창에 달린 미니 지붕이 있어서, 어디서 녹음해도 비소리가 들리는 관계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일도 비가 온대요. 그래서 그냥 녹음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그래도 빗소리니까 괜찮겠죠? 빗소리는, 어… 일부러도 넣는 소리니까. 듣기 좋은 소리니까요.

아무튼 다시 영화 얘기를 할게요. 초반에서는 틀이 좀 답답하게 느껴져요. 틀이란 역시 나쁜 것인가? 생각이 듭니다. 카메라는 애니의 인형의 집에 클로즈업했다가 그것을 한순간에 와이드 샷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지만, 이 이야기의 인물들은 그렇게 자유롭지 못합니다. 클로즈업됐다가 와이드 샷으로 변모한 피터의 방에 있는 피터 본인은 자기 방에 있고, 피터 동생 찰리는 찰리대로 트리하우스, 나무 위에 지은 오두막 공간에 있고, 애니는 차 안에 있습니다. 이 첫 시퀀스에서 유일하게 집 안팎을 돌아다니고 틀 안팎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사람은 애니의 남편입니다. 스티브요. 스티브는 참…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인 것 같은데, 이 집의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다 자신의 틀 안에만 있어요.

심지어 스티브가 나중에 이야기 속에서 아들한테 Love you라고 하는데, 사랑한다고 하는데, 이 아들 녀석, 피터는 ‘나도 사랑해’라고 안 하고 그냥 웃고만 있습니다. 스티브가 좀… 불쌍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불쌍해요.

[Music ends.]

아무튼 이 가족이 그래서 사망한 애니의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는데, 딱, 처음 보이는 게 할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입니다. 이 액자가 마치, 이 사람의 령을 그나마 틀에 박제해 놓은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액자예요.

그러고서 애니가 조문객들을 상대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애니가 말합니다. 어머니가 매우 private한 사람이었다. 사생활을 중요시했고, 비밀이 많았다.

그런데 잘 보면, 이야기 처음부터 애니도 그렇고, 피터도 그렇고, 찰리도 그래요. 이 가족에서 스티브만이 틀 안을 왔다 갔다 한단 말이죠. 죽은 할머니의 핏줄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전부 다 비밀이 있습니다. 비밀이 뭔지 스스로 모를지라도, 비밀이 있어요.

그리고 심지어 스티브도 경계를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 이 남자가 ‘자, 신발 벗자’ 하는 씬이 나오거든요. 이건 백인 가정에서 흔하지 않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신을 벗는 청결함이라니. 흔하지 않은데, 이 가족은 그렇게 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남자가 틀의 존재를 모르는 건 아닌데, 다른 가족 구성원과의 차이는 이겁니다. 이 남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서로 좀 더 자유로이 공유하고, 감정을 받아들이고, 챙겨주길 원하는데,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경계를 더 중요시하는 겁니다.


6: 동심원 순서의 파괴

00:31:02-00:38:15

[Music: My Darkest Hour – Jimmy Svensson]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족의 울타리도 있고 나의 경계도 있어서 틀이 이중으로 있는 게 딱 보면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모르고, 실제로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으나, 애니, 피터, 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이들이 독립적이거나 타인과의 연결고리를 찾길 원치 않아서 개인적으로 장벽을 쌓는 게 아니에요. 이들은 연결고리를 원해요. 이해받기를 원하고, 누군가에게 닿길 원해요.

그런데, 어… 왜 우리 안에 코어가 있다고 이미지화를 해봤을 때, 그 코어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그 중심으로부터 그릴 수 있는 동심원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중심은 같고, 지름이 점점 커지는 여러 원. 그러면 가장 안쪽 원은 나, 개인일 것이고. 그 바깥쪽 원은 부부라든지 가족일 거란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스티브는 그렇게 삽니다. 스티브 개인에게도 비밀이 있겠지만, 그건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고, 아마 그 이유는 아내인 애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에서 스티브가 생각했을 때 가족이 뭉쳐야 하는 시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스티브가 막 들이대는 게 아니라, 자기 가족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도 주고, 공간도 주면서 가족이 좀, 물리적으로 뭉치는 일차원적인 게 아니라, 다차원적으로 서로 지지해주자, 이런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애니, 피터, 찰리는 그게 아닌 겁니다. 스티브와 공유를 안 하고, 자기들끼리도 별로 공유를 안 하는 와중에, 그럼 정말로 동심원 중 가장 안쪽 원인 자기 개인 내에서 감정을 해결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Music ends.]

그래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작은 원에서 더 큰 원으로, 자기 코어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게 가장 안정적인 방향인데, 생뚱맞은 외부 원을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어요.

처음에는 이게 별로 티가 안 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찰리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데, 그 그리움의 정도가 좀 이상하게 심한 것 같긴 하거든요. 엄마보다 할머니를 좋아해요. 엄마가 집에 없던 게 아니었는데도. 그런데 뭐, 열세 살 아이가 죽음을 처음 가까이 직면한 거니까, 놀랐을 수도 있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본인도 통제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거든요.

뒤에 가서야 이 반응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가 나옵니다. 애니가 찰리를 낳았을 때 할머니가 찰리를 데려가서 대신 우유를 먹였다는 얘기도 나오고. 할머니와 찰리의 관계가 너무 가까웠다는 얘기도 나오고. 아무리 할머니도 가족이라지만, 엄마가 있고 엄마가 애를 챙겨주고 싶어 하는데 할머니가 그사이에 끼는 건 코어를 중심으로 한 점점 커지는 동심원 구조를 파괴하지 않습니까? 밸런스가 깨진다고요.

여기서부터가 문제의 시작인데, 너무 희미한 암시라서 뒤에 가서야 이상하다는 점이 드러나고요.

좀 더 대놓고 드러나는 문제점은 이겁니다. 애니가 어머니와의 자신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상실감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인 스티브와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스티브한테는 혼자 영화 보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모임에 갑니다.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

이런 모임에 갈 수는 있습니다, 물론. 왜 그, 가까운 사람에게 못 하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거짓말을 하고 갈 정도라는 겁니다. 애니는 성인이잖아요? 그러니 피터나 찰리는 뭐,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치더라도, 애니는, 이쯤 되면, 남편한테 자기가 왜 거짓말을 하고 혼자 모르는 사람들하고 얘기를 해야지만 될 정도인지를 알거나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기피해요. 자기 안에 코어가 어딘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코어가 가장 안정적인 동심원들을 형성하지 못하고, 심지어 코어가 이리저리 움직여서, 개인, 부부, 가족, 더 큰 집단에 소속되었을 때, 그것들을 어떤 구조로 배치해야 가장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7: 소리와 빛

00:38:15-00:42:27

[Music: Hope and Heisenberg – SPEARFISHER]

그런데 뒤틀린 틀 얘기를 계속하기에 앞서, 이야기의 다른 공포 포인트들을 잠시 언급해 볼게요. 이게 말로는 공포감이 설명이 안 되는지라, 설명은 짧게, 그리고 여러분이 체험은 직접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직접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우선, 어린 딸인 열세 살 찰리가 입으로 자꾸 소리를 내는 습관이 있습니다. 똑, 똑, 이런 소리를 내는 강박증이 있는데, 이것이 아주… 그 자체로도 거슬리는데, 타이밍이 아주 무섭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서도 안 울었다는 얘기가 잠깐 나오는데, 그 억압된 모든 게 이 똑똑 소리로 발현되는 건지.

또한, 빛의 움직임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전혀 시끄럽거나 요란스럽지 않은 고요한 빛이 공포를 나타냅니다.

왜, 그… 빛이 들리는 것 같을 정도로 요란한 빛의 움직임이 있잖아요? 각종 영화의 파티 장면 같은 걸 보면 조명이 막 사이키델릭한 때가 있는데, 그걸 보면 눈으로 보는데 귀로 소리가 들리는 듯한 요란함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 유전에 나오는 빛은 그런 빛이 아니라, 오히려 우아할 정도로 고요한, 그러나 빠른데 아름답기까지 한 빛이 등장합니다.

그 빛이 인물들의 눈동자에 비치기도 하고, 인물들을 스치고 지나가고, 빛이기에, 형태에 갇혀 있지 않고 실제로 눈에 보일 정도로 모양이나 속도가 바뀌기도 한다는 게 이 영화의 공포 요소 중 하나입니다.

[Music ends.]


8: 다시, 틀

00:42:27-00:52:38

아무튼 이 가족은 뭔가가 억압되어 있어요. 처음부터 뒤틀린 틀 내에 있었고, 아버지이자 남편인 스티브만이 유일하게 그 영향을 덜 받는 것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스티브가 외부에 있다가 가족의 틀에 합류한 인물이기 때문이겠죠. 그는 애니에 비해 안정적인 성장기를 보낸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 이 가족 안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있는 피터와 찰리는 어떠한가. 힘들죠. 힘든데 왜 힘든지 애들이 말로 잘 표현을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힘들다는 걸 부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남들도 다 이럴 거라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찰리는 아예 다른 사람들하고 인터랙션을 거의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도 시험 문제를 안 풀고 딴 짓을 하는데, 그걸 참 조용하게 해요. 자기 안으로만 매몰된 아이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유일한 창구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반면, 오빠인 피터는 그나마 외부와 좀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해요. 친구들과 어울리려고도 하고, 파티에도 가려고 하고. 이 경우에는 제 생각에는 동심원이 뒤틀린 게 아닙니다. 청소년기의 사람들이 대부분 또래 집단을 찾는다는, 통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피터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느끼기에도 자기가 속한 가족이라는 틀이 뭔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애니나 스티브는 가족 틀에 문제가 있으면 그걸 고칠 책임이 있는 자들입니다. 애니나 스티브가 이 가족을 만든 거예요. 둘이 만나서 애 둘을 낳았잖아요. 그럼 자기들이 그 가족의 틀을 고쳐야지. 그래서 스티브는 자식들을 챙기고, 애니도 챙기잖아요. 그런데 애니는 남편한테 영화 보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른 상담 모임에 나간단 말이죠. 이건 자기 스스로가 만든 가족이라는 틀을 뒤트는 행위예요.

그러나 피터는, 뭐, 애가 정확히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열여섯 정도라고 쳐보자면, 얘가 가족의 뒤틀림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엄마 아빠 사이 좀 좋아지라고 해볼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피터는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가족이 아닌 친구를 찾는 겁니다. 저는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피터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영화가 이런 컬트물이 아니었다면, 만약 현실 세계였다면, 피터 같은 아이들은 대개 실제로 친구 무리 중에서 안정을 찾든가, 뭐, 실패하더라도 계속 시도함으로써 나중에 자기가 타고난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가족을 만듭니다. 이게 실제로 결혼을 해서 가족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결혼 안 하고 중요한 동반자를 찾는 것일 수도 있고, 요즘에는 chosen family라고도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가족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가족 집단. 이런 것을 만들기도 한단 말이죠.

즉, 피터가 뒤틀린 생물학적 가족의 틀을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리려는 건 지극히 논리적이고 감정적으로도 말이 됩니다. 자기 코어를 점점 더 확장하는 동심원을 구축하려는 거예요.

그러나 애니. 애니는. 물론 애니도, 어머니가 정상이 아니었어요. 사망 기사에 나왔던, 이미 죽은 사람들이 애니의 아버지와 오빠인데. 아버지는 미쳐서 스스로 굶어 죽었고, 오빠는 조현병에 자살을 했는데, 죽으면서 엄마 때문에 죽는 거라고, 즉, 애니의 어머니 때문에, 처음에 사망 기사에 나온 그 늙은 여인 때문에 죽은 거라고 했대요. 애니는 그래서 죽은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았대요.

그러니 애니도 얼마나 뒤틀린 틀의 가족 안에서 자란 겁니까? 애니도 안타깝긴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제 새 가족을 만들었으니.

그런데도 자기 가족의 틀을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 대신에 남한테 자꾸 책임을 전가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영화의 모든 실질적인 문제를 현실화하는 행동을 합니다. 바로, 오빠인 피터에게 여동생 찰리를 데리고 파티에 가라고 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심지어 이 애들이 너무 착한 게, 엄마가 가란다고 또 가요. 찰리는 가기 싫은데 가고, 피터도 별 투정 안 부리고 동생을 데리고 가요. 이 나이대 십 대들이란, 친구 많은, 인기 좋은 동생도 안 데려가겠다고 우길 수도 있는데, 피터가 참 착해요. 손 많이 가는 외톨이 동생을 실제로 데리고 간다고요.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찰리에게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찰리가 파티 장소에서 뭘 잘못 먹고 호흡 곤란을 겪는 겁니다.

그러자 피터가 이 열세 살 아기, 뭐, 아기죠, 아기를 고이 안고 급하게 파티 현장을 떠납니다, 병원에 가려고. 영화 배경상, 열여섯 정도면 다 운전하고 다닐 수 있는 데라서, 직접 운전을 해서 갑니다.

이 오빠가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그런데 병원에 가는 길에 찰리가 숨을 못 쉬겠으니 창밖으로 머리를 내밉니다. 이때, 피터가 길에 있는 장애물을 피하느라 차 핸들을 확 틉니다. 이때, 찰리의 머리가 전봇대에 충돌해 그대로 잘립니다. 죽은 거죠, 찰리는.

그런데 이걸 갖고 나중에 애니가 피터를 나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니가 문제 있는 집안에서 자란 건 안타까운데, 그걸 또 피터한테 다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겁니다.

아니, 파티 가기 싫다는 찰리를 억지로 파티에 가게 해놓은 게 애니인데.

게다가 피터는 착해가지고 또 그 동생을 데리고 갔어.

그런데 찰리가 원래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어. 그러면 그 알레르기 약을 엄마나 아빠가 챙기지, 피터가 챙깁니까? 미성년자 아들이?

그러고서는 애니는 또 자기 작업실에 틀어박혀가지고는 찰리 머리가 몸에서 잘려 나간 사고 장면을 인형의 집 형태로 만듭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컬트고 뭐고, 슈퍼내추럴이고 뭐고, 그 훨씬 전부터, 애니는 정상이 아니에요.

이 사람은 뭘 틀 안에 둬야 하고 뭘 틀 밖에 둬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들한테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사고 현장을 머릿속에만 둬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당연히 몰라요. 왜냐면 자기 안에 코어가 어딨는지도 모르고, 그 코어를 중심으로 친구 집단이나 직업 집단, 가족 집단은 물론이고 자기 개인조차 견고하게 장벽을 쌓아 본 적이 없는, 굉장히 장벽이 높은 것 같지만 사실 그 장벽이 너무나 위태롭고 흐물흐물해서 어디서 본인이 시작하는지 끝나는지도 모르는, 그런 인물입니다.


9: 틈새

00:52:38-01:02:55

[Music: Blood Orange Dawn – When Mountains Move]

이렇게 틀이 무너진 애니를 중심으로, 아무래도 가족이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까? 스티브는 외부인입니다. 남편이자 아버지이긴 하지만, 오히려 스티브의 동심원들은 너무나 안정적이라서 외부인일 수밖에 없어요. 스티브는 온전히 스스로 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죽은 찰리와 피터는 미성년자이고, 애니는 성인을 넘어서서 중년인 것도 모자라 자기가 자식을 둘이나 낳아놓고서도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코어가 너무 불안정적으로 바뀌어요. 그래서 자기가 항상 중심이 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바깥 상황을 읽지 못하고, 바깥이 밖인 줄도 몰라요. 그냥 계속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미니어쳐화합니다. 마치 그것들이라도 틀에 박제해 놓으면 자신의 그 불안정한 코어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그런데 당연히 안 그렇죠. 아무리 많은 틀들이 있어도 애니는 자기가 어디에 속하는지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속하지 않아요.

여기서 틈새가 생겨납니다. 이 영화를 언뜻 보면, 가족이라는 틀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게 공포 같지만, 제 생각엔 더 자세히 보면, 그 가족이라는 틀이 더 견고했으면 공포가 펼쳐지지 않았을 겁니다. 가족의 틀이 견고했어야 했는데 무너져 내리고, 계속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내부에는 거짓말을 하는 습관이 쌓이고 쌓여서 틀이 무너져 내린 겁니다.

심지어 애니가 아들한테 “네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고 하고, 유산하려고 했었다는 말도 합니다.

그런데 또 그 발언 장면이 꿈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이제 현실과 꿈의 경계까지도 허물어지는 거예요.

그 와중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내던 방문이 열려 있고, 어머니의 무덤이 파헤쳐졌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경계, 틀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갑자기 누가 그걸 허물고 다니다니. 그런데 갑자기가 아닌 거죠. 견고했어야 했던 틀이 무너지는 현상은 아주 오랜 세월, 애니의 어머니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즉, 이 어머니도 가족이라는 틀에 외부인을 들여서, 그 외부인으로부터 정답을, 해답을 얻으려고 해서 이런 공포가 발생한 겁니다.

[Music ends.]

가족이 있으면 가족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게 있잖아요.

커플이 있으면 커플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것도 있고.

국가도 그렇고, 각종 회사도 그렇고, 심지어 나 자신도 그렇습니다.

경계에 한번 뭔가를 들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유전은 그런 걷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얘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족에 대한 신뢰가 원래도 좋지 않았는데 외부인이 끼어들기 시작하니까. 문제가 안 생길 수 없죠.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서 말씀드리는데, 이건 가족의 틀을 깨야 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 중 누가 학대를 한다고 하면, 가족의 틀을 깨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는 그 틀을 깨려는 의도를 갖고 외부인을 들이는 겁니다. 경찰을 부르든지, 옆집 사람을 부르든지, 누굴 부르든 간에요.

그런데 지금 이 영화나 현실의 많은 다른 경우들에는 대개 가족의 틀을 깨고 싶지도 않으면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밖에다 나불대고 다니는 경우가 있거든요?

즉, 제 말은, 자신이 속한 틀에 불만이 있는 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불만이 있고 불만을 표현하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뭐,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딴 거 아니에요. 당사자가 집에서 맞고 있어서 가족에 대한 불만이 있는지, 외부인은 모릅니다. 거기다 긍정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 돼요. 불만이 있어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가족이나 회사나 애인이나 그 어떤 다른 틀을 떠나고 싶지 않으면서 그 내부의 비밀들을 나불대고 다니는 경우입니다. 이건 그러니까, 시간이 좀 흘러야 알아요.

정말 집단을 떠나고 싶으면 밖에 도움을 요청하고 밖에 알리면 돼요. 그런데 이 집단에 남고 싶고 속하고 싶고 집단을 보존하고 싶으면, 집단 내부의 문제는 대개 집단 내부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집단 밖에서 갑자기 누가 무슨 비법 아니면 해답을 들고 와서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집단 내부의 것을 밖에 알리면 알릴수록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단은 와해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현실에서 많습니다. 꼭 집단에 한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실제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것이 해결이 안 되면 그 상황이나 사람들을 벗어나야 하는데, 기피만 하는 경우. 그 관계가 제 풀에 무너질 때까지. 그러고서는 참을 때까지 참았다고 주장하는 경우. 코어에서 뭘 원하는지 모르고, 주변에 주어진 대로 사는 겁니다. 집단에 속하는 게 아니라 속하게 됐다고 여기고, 집단 밖에 집단 내부의 것을 발설한 게 아니라 그냥 얘기할 기회가 돼서 그렇게 한 거라고.

그런데 모든 집단은 집단 보존 그 자체가 존재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건 꼭 떼가 아니어도 그래요. 집단의 소속원들이 집단을 보존하고 싶어 할 거라는 것이 집단의 대전제 중 하나란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집단이 아닌 건데, 애니는 그러니까, 집단에 속할 수가 없는 자입니다. 가족 집단을 벗어날 수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가족 집단이 애초에 집단이 아니었던 게 문제예요.

애니의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자기 가족을 컬트에 팔아넘기고 있었다는 게 이야기 후반에 가서 밝혀집니다. 그리고 애니는 그 팔아넘김의 시초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그것의 지속을 계속 돕고 있었던 겁니다. 가족을 신뢰하지 않고, 가족이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스티브가 바로 자기 곁에 있었는데 스티브에게 거짓말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인형의 집이나 만드느라 견과류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찰리를 미성년자 아들 피터랑 억지로 파티에 보냈던 것. 심지어 그러고서 피터더러 너 때문에 네 동생이 죽었다고 한 것.

반면, 이 가족을 잠식한 컬트 집단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자신들 집단의 비밀을 끝까지 철저히 지켰기에, 말하자면 “이긴” 형국이 됐습니다.


10: 몇 가지 변화

01:02:55-01:07:58

[Sound effect.]

그러합니다. 유전은 그런 영화입니다. 저는 너무 재밌게 봤고, 은근히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서운 척 분위기 잡느라 느린 영화가 전혀 아닙니다.

아무튼, 시즌 마무리에 앞서 한아임 소식 몇 개 빠르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유튜브 채널을 접었어요. 아임 드리밍 유튜브 채널이 있었는데, 그냥 팟캐스트 파일을 그냥 그대로, 아무 이미지 없이 올린 형태였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유튜브 하나가 팟캐스팅 전체보다 훨씬 큰 거 아십니까? 이건 영미권 팟캐스트 시장에서도 그래요. 사실 팟캐스트 시장은 탈중앙화되어 있는 편이라서, 2022년 현재처럼 빅테크가 지배하는 인터넷에서는 시장이라고 부르기 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이즈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에 오디오-온리 팟캐스트를 올리자 너무 효과가 미미해서, 그냥 접었습니다.

댓글 남겨주셨던 분들, 극소수정예분들,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메일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빅테크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들의 프로토콜에만 의존해선 안 됩니다. 이메일, 유서 깊고 안정적인 툴이에요. 2022년 현재, 이메일 보내시면 스팸성 이메일 빼고는 답장 다 해드려요. 왜냐하면, 우리는 소수정예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1주일 내로 답장합니다. 만약 제가 답장을 안 한다면 그건 스팸으로 잘못 간 겁니다. 저랑 얘기하고 싶으시면 이메일 보내시면 돼요. 홈페이지에 다 있습니다.

그리고 시즌 3 마무리 스샷을 녹취록에 넣겠습니다. 총 33개국! 빠르게 읽겠습니다. 많이 들은 국가 순으로,

  • 한국
  • 미국
  • 베트남
  • 슬로바키아
  • 독일
  • 네덜란드
  • 캐나다
  • 중국
  • 멕시코
  • 핀란드
  • 콜롬비아
  • 대만
  • 브라질
  • 스웨덴
  • 인도네시아
  • 태국
  • 러시아
  • 프랑스
  • 일본
  • 호주
  • 로마니아
  • 영국
  • 폴란드
  • 인도
  • 덴마크
  • 우즈베키스탄
  • 아일랜드
  • 튀르키예
  • 남아공
  • 이스라엘
  • 룩셈부르크
  • 오스트리아
  • 쿠웨이트.
시즌 3 졸업사진 ❤️

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대륙 섭렵. 대륙을 나누는 방법은 다양한데, 7개로 나눈다고 했을 때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 지역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남극 지역 빼고 다 있어요. 그렇죠? 맞죠? 어떡하지? 하. 소수 정예인데도 불구하고 폭넓은 이 인기란. 새로운 국가 여러분, 환영합니다. 어… 이러면… 다음 시즌부터 스샷 없이 가야 할까요? 너무 많은 국가를 읽게 되니까. 국가 리스트가 점점 길어지니까. 새로 합류한 국가만 읽을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완전 부르주아예요. 가진 게 너무 많아. 어떡하지?

온 세계 곳곳에서 들어주신 여러분들, 듣고 계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11: 마무리

01:07:58-01:19:01

[음악: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네, 여러분. 살다 보면 내가 속한 집단의 틀들이 전부 다 무너지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 때문일 수도 있고, 타인 때문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타인을 전부 컨트롤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 개인의 코어는 간직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정답을 어떤 타인이 줄 거라고 여기지 맙시다. 그러면 컬트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어요. 절대적 위안도 정답의 한 유형이고, 뭐, 상담 그룹 같은 것에 참여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내 주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하면서까지 해야 한다면, 내가 택한 동심원들은 동심원들이긴 한지, 아니면 찌그러진 원들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답을 얻는 대가로 내부 사정을 폭로하는 것은 특히 위험합니다. 내가 건강하고 괜찮은 상태면 오히려 모를까, 내가 취약할 때일수록 무턱대고 누굴 맹신하면 안 됩니다. 컬트는 그렇게 우리를 잠식합니다. 우리가 가장 취약할 때 드러낸 약점들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우리를 둘러싼 틀의 장벽들을 무너뜨립니다.

틀을 좀 유연하게 세팅하는 것도 한 방법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애니의 문제 중 하나는, 가족 말고는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기대지 않을 때 기댈 곳이 아주 랜덤한 상담 그룹밖에 없었고, 그래서 거기서 컬트는 애니에게 접근할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컬트의 기본 조건은 타깃을 주변과 분리시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애니는 이미 스스로 하고 있었어요. 스스로 모든 틀을 붕괴했고, 자기가 선택한 가족인 남편, 스티브한테마저도 거짓말했습니다.

영화 <유전>은 이렇게 끝납니다. 마지막에 피터의 몸에 찰리가 빙의되고, 컬트는 그녀 혹은 그를 페이먼, 악마 중 하나라 부르며, 그 이름을 칭송합니다. 그 끝 씬이 다시 틀처럼 화면 내에서 프레임됩니다. 다시 인형의 집 모드, 클로즈업 모드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 되찾은 틀의 안정감이 저로서는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차라리 컬트가 이긴 게 마음의 안정을 줄 지경이었어요. 애니가 스스로 틀을 붕괴하는 모습이 너무 파괴적이었어서 말이죠.

이렇게 되는 게 진정한 공포 아닌가. 정말. 공포의 가해자가 이기는 게 차라리 마음의 평안을 주게 되면 정말 컬트가 이기는 게 아닌가.

하. 아무튼 이 영화는 워낙에 심어놓은 단서들이 많아서, 너무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은 여기서 마무리를 할 것이나, 다음에 언젠가 공포 주제를 또 하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6주 치를 쉴 건데, 다만 다음 주에는 안내 에피소드가 짧게 나갈 겁니다. 제가 시즌 4로 돌아오는 날짜는 12월 30일입니다. 올해의 끝자락에, 돌아옵니다.

이 시즌제의 틀을 앞으로도 잘 유지해 보겠습니다. 그 와중에 랜덤성의 정신도 잃지 않겠습니다. 이번 시즌에 공포, 특히 영화 얘기를 좀 많이 하긴 했는데, 그 와중에도 꽤 다양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어, 여러분? 일론 머스크가 드디어 트위터를 사지 않았습니까? 트위터에서 대거 이탈한 이용자들이 제가 영어 필명으로 주로 노는 탈중앙화 플랫폼들에 입주하고 있습니다. [한아임 블로그; Ithaka O. 블로그; write.as] 저는 블로그를 하는데, 거기가 페디버스 액티비티펍이랑 연계가 되어서, 전에 설명한, 트위터랑 기능이 거의 같은 Mastodon에 사람들이 유입되고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저는 구경합니다. 이 추세가 앞으로 1, 2년 동안 계속될지, 궁금합니다.

또한, 메타의 마켓 밸류가 73% 떨어졌다는 소식입니다. 거기다가, 지금까지 광고 수익에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구글 및 메타 및 다른 광고 기업들과 차별성을 두었던 애플이 이제 광고계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아니 그럴 거면 애플을 뭐 하러 비싸게 돈 주고 사는지. 일단 저는 앱스토어에 그리 자주 가지 않아서, 그리고 애플 티비 유아이가 너무 구려서 애플 티비를 안 쓰니까, 별로 타격이 없는데. 요즘 자주 이런 얘기들이 나오더라고요? 돈 내고 쓰는 유료 사용자에게도 광고 보여주겠다고. 스포티파이도 자기네 내부 광고를 유료 사용자에게 보여줘서 약간 짜증 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러게 광고 제도가 굉장히 뭐 대단한 시스템인 것처럼 수년간 생각되었지만, 그 틀이 붕괴될 때가 아닌가?

그리고 이 경우에는 붕괴됐으면 좋겠어서 제가 이 얘길 하는 겁니다. 사실은 좋은데 얘기만 하는 게 아니고요,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머저리 같은 빅테크의 수익 제도는 붕괴되어야 한다. 메타 보세요. 마켓 밸류 73% 하락이라니. 내년이면 망할까요?

어떻게 되든지 간에, 틀이 깨지는 시기임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뭐다? 우리 안의 가장 작은 원. 우리 개인의 코어를 중심으로 한 원을 타이트하게, 뭐, 이왕이면 신체적으로도 타이트하게, 코어 힘을 기릅시다. 그래야 우리가 속한 다른 원들이 사라지거나 새로 생성되어도 우리가 그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틈새를 주더라도 우리가 선택하는 때에 선택하는 방식으로 외부 자극을 들일 수 있는, 막돼먹은 컬트에 굴하지 않는 특이 취향자가 됩시다.

아임 드리밍의 이번 시즌에 등장했던 음악이 궁금하셨던 분들은, 제가 만든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서 그것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부디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Music ends.]


모든 링크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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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한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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