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2] 매일매일: 다른 누가 아닌, 나를 위한 기록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Seth Godin 님을 잠시 언급했었습니다. 마케팅계의 능력자라고 소개를 해드렸고, 이분이 The Practice라는 책을 썼으며, 그 책에서, 그리고 평소의 습관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의미에서 언급을 했었어요. 이분이 블로그를 매일 하신 지 10년이 넘었거든요. 그 블로깅을 뭔가 다른 목적을 갖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블로그를 매일 하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The Practice, 즉, 매일의 행함의 일부로서 그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왔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도 언급했습니다. 자신이 블로그를 매일 하는 이유는 무슨 기똥찬 할 얘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내일이 왔기에 그곳에 새 포스트가 있는 것뿐이라고.

이 매일 하는 블로깅에 대해 오늘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볼 겁니다. 왜냐하면, 이번 시즌의 대주제가 시작 툴키트이며, 한아임이 시작에 대한 여러 소주제들, 그러니까, 마음가짐이라든지, 신체 관리라든지를 다루는 이유는, 구조 조정 때문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러한 거대 변화들을 좀 수월하게 해주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변하지 않는 요소들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변화란 알 수 없는 결과를 수반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통째로 알 수 없는 결과에 내던져지는 것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두려워합니다. 이건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없으면 아무 변화나 쫓아다닐 테니까요. 그건 비효율적이고, 무엇보다 불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하고 싶은 변화들이 있을 겁니다. 그게 아마도 삶에서 행함 직한 변화라는 신호겠죠. 그러니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여러모로 매우 유용하며, 심지어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기까지 한단 얘기입니다. 이 나침반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고 주장하는 게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인지 잘 모를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가치 있는 것들은 두려움을 수반합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말입니다. 저는 아름다움에 파괴성이 곁들여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예쁘장한 걸 갖고는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좀 귀여운 걸 갖고는 아름답다고 하지 않아요. 아름다움은, 그게 너무 아름다워서 파멸에 이를 수도 있어서 아름다운 겁니다. 뭔가 위험성, 리스크, 나 자신의 파괴가 가능해야, 즉, 실제로 위험하거나 리스크거나 파괴되진 않더라도 그 잠재성이 있어야 아름답다고 하는 거 같아요.

굉장히 수려한 사람을 보면 막 심장이 두근두근하잖아요. 거기에는 그 사람이 보기 좋아서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뿐만 아니라, 잘 관찰해 보면 복합적인 감정이 있을 겁니다. 특히나 파괴적인 요소들이. 몇 가지만 나열해 보자면, 저 사람보다 나는 모자란다는 자괴감, 다만 저 사람을 봄으로 해서 이렇게나 기분이 좋아지는 나 자신의 단순함에 대한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 비판, 내가 저 사람을 보고 저렇게 좋아하는데 저 사람이 나를 개무시한다면 내가 느낄 모멸감,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상상이 내재되었을 수 있고요.

박물관에 가서 위대한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 할 때도, 그냥 얕게 기분이 좋아서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저 작품을 그린 화가가 수십 년 쏟았을 인내의 수련 시간에 대한 고찰, 그 화가는 죽었으나 작품은 남았으니 삶이 얼마나 부질없으면서도 부질있는가에 대한 숙고, 또한 이제 이 작품을 뒤로하고 박물관을 나가면 이런 아름다움은 잊고 다시 또 하루하루의 바쁜 일상 속에서 무덤덤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갈 나 자신에 대한 씁쓸함. 뭐. 별의별 것들이 다 있단 말이죠.

아름다움이란 이런, 뭔가… 파괴성이 있어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우리 안의 뭔가를 뒤흔들어서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야 아름답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삶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이 이렇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거예요.

그리고 또한 두렵다면, 그것이 나침반이 아닌가. 두렵지 않은 변화는 과연 쫓을 가치가 있느냔 말이죠. 마치 파괴성을 내포하지 않은 겉면의 미가 아름다움이 될 수 없듯이.

아무튼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피해야 하는 것이며 나쁜 거라고 여기진 않는다. 그리고 두려움은 다양하니까, 모든 두려움을 나침반 삼을 필요는 없지만, 그중 몇몇을 골라 그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특히나 어떤 두려움을 고르면 좋을 것 같으냐 하면, 자꾸만 떠오르는 두려움.

뭐냐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뱀을 두려워할 겁니다. 그것도 엄청 큰 구렁이. 독을 품은 구렁이. 이건 본능이죠, 뱀을 두려워하는 건.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독사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진 않습니다. 두려워하긴 하겠지만, 그게 나침반으로서 작용할 만큼 독사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 필요가 있는 환경에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일단 자연에 둘러싸여 있어야 할 테고, 지구상 특정 지역에 있는 자연이어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독사에 대한 두려움을 나침반 삼아 살기는 좀 비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자꾸 떠오르는 두려움 있잖아요. 그게 나침반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될까 봐 계속 안 하는 모든 행위들, 즉 실패가 두려워서 하지 않는 모든 행위들. 심지어, 내가 너무 하고 싶은데 잘 되는 바람에 내 삶에 너무 큰 변화를 가져올까 봐 계속 안 하는 모든 행위들, 즉, 성공이 두려워 하지 않는 모든 행위들.

이를테면 오디션 응시, 이직, 취직, 개업, 사업 확장은 물론이고, 각종 창작, 즉, 글쓰기, 노래하기, 춤추기, 등등등.

이런 두려움은 왜 계속 우리 곁에 머무느냐 하면, 우리가 아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두려움만 잘 길들이면 어떻게 시작해볼 수 있는 행위인데 내가 안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안 하니까 계속 두려운 상태로 남는 거예요.

만약 독사를 맞닥뜨리면 두렵다 하더라도 독사를 죽이든 쫓아내든 피하든 하기 위해 더는 두려움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독사가 아닌, 우리가 살면서 두려워하는 다른 것들도 비슷합니다. 일단 시작하면, 그게 두려운 와중에도 두려움에 집중하지 못할걸요? 약간의 훈련은 필요하겠지만, 이를테면 노래를 하는 와중에 노래에 대한 두려움에만 집중할 순 없다는 뜻입니다. 노래를 일단 시작을 하면 두려움이 있을 순 있지만, 노래하는 거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에 대한 집중이 분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점점 익숙해지면서 두려움을 길들이고 노래를 할 수 있게 되겠죠.

아무튼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까지가. 쉽지만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이때 정말 유용한 게 매일 하는 행위라는 겁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 내가 언제나 늘 유지해온 것. 그런데 그중에서도, 세수하거나 밥을 먹거나 월세를 내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가 아니라, 약간은 좀… 럭셔리인 것. 약간의 존재적 사치인 것.

그중에서도 한아임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추천해드릴 존재적 사치는 매일 하는 블로깅이라, 이 말입니다.


한아임은 현재 한아임 필명으로 매일 블로깅을 합니다. 또한 영어 필명, Ithaka 이름으로도 매일 블로깅을 합니다. 그러니까 매일 블로그 포스트를 두 개 올려요.

한아임의 블로깅 역사는 이렇게 매일 블로깅하기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매일 올리는 블로그가 아닌 블로그를 했던 건, 그리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블로그를 했던 건 십 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아임이 세상에 뭔가를 내놓은 최초의 것이 블로그였어요. 당시 티스토리 블로그를 했었는데, 티스토리 아십니까, 여러분? 그걸 했었고, 거기다가 애드센스, 그러니까 유튜브에서 광고 나오면 수익 창출하는 시스템 있죠? 그것의 영상이 아닌 텍스트 버전, 그 애드센스를 붙여서 많지는 않지만 수익을 내는, 그런 블로그를 했었습니다.

블로그는 정말이지, 거의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전기가 있고, 인터넷이 있고,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기기가 있고, 그 기기에 있는 타이핑 기능이든 따로 산 키보드든이 있고, 마지막으로 생각이 있으면 블로그는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어디 살든. 심지어 영상이나 음악보다 데이터도 안 들어요. 문자는 가장 저렴한 정보 형태입니다, 지금까지도. 영상 하나 업로드하고 다운로드 하려면 인터넷 안 터지는 데서는 엄청 오래 걸리잖아요. 그런데 문자는 웬만해서는 타인이 올린 것을 보기에도 수월하고, 내가 올린 것을 타인이 보게 하기에도 수월하다.

그 당시에 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는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납니다. 아마 그냥 뭐, 뭐라도 하고 싶어서 했었던 거겠죠. 그런데 그렇게 오래 하진 않았어요. 1년? 2년쯤 했나? 그때는 제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입니다.

그러니까, 글씨야 저도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읽고 썼는데,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은 그거랑 별개로 했거든요. 2012년 4월 4일. 이날.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최초의 티스토리 블로그는 그것보다 더 전에 존재했었어요.

그리고 그로부터 십 년 이상이 지난 2022년 여름쯤에 한아임과 그녀의 다른 필명, Ithaka는 다시 한번 블로그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블로그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하지 않았어요. 자주 올리긴 했는데 ’매일‘이라는 규칙은 없었고요. 늦여름인가 가을부터 매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좀 더 분명했어요. 일단 뭔가 분출구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살면서 하는 모든 생각이 다 책이나 팟캐스트에 적합하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살면서 하는 대부분의 생각을 세상에 내놓지 않을 이유도 또 없습니다. 이거에 대해서는 이따가 좀 더 자세히 얘기할게요.

일단은, 블로그를 시작한 두 번째 이유는, 중앙화 시스템들이 아닌 곳에서 온라인 집을 구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다가 내 메인 활동터를 짓는다는 것은 정말… 정말 제 생각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언제나 계정을 정지할 수 있고, 심지어 정지하는 와중에 내 데이터를 이동시킬 수도 없게 합니다. 정지되면 그냥 정지되는 거예요.

유튜브에서 이번에… 어… 이게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영미권에서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했다고 해요. 무슨 정책이냐면, 영상의 최초 15초에 욕설이 들어가면 해당 영상을 수익화를 못 하게 하는 정책이래요. 그런데 이게 너무 어이가 없는 게, 유튜버 당사자가 수익화를 못 하는 것뿐이지, 광고는 그대로 붙인다는 거야. 그러니까, 유튜버 니가 욕을 해도 니 구독자들이 짜증 나는 광고는 그대로 봐야 하는데, 다만 너한테 돈이 안 간다. 제가 듣기로는 그렇다는 거예요. 심지어, 그 정책이 시행된 이후부터 업로드된 영상뿐만이 아니라, retroactively, 즉, 예전에 업로드됐던 것에도 다 적용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심지어 또, 뭐다? 유튜브 얘네 시스템이 그걸 제대로 잘 잡지도 못해. 그래서 초반 15초에 욕이 안 들어가도 수익화가 취소되는 사례들이 있더라고요. 그러한 영상들이 유튜브의 이러한 새로운 정책을 욕하는 영상이었을 경우, 유튜버들은 또 어떻습니까? 바로 sarcastic한 후속 영상 올려야죠. 욕 하나도 안 하고 겁나 친절하게 유튜브를 돌려 까는 영상.

이게 어… 여러분? 여기에 모든 생업이 걸려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유튜브를 쓰지 않으면 완전히 망하는 상상.

그러니까, 중앙화된 툴을 쓰는 건 당연히 괜찮아요. 유튜브가 잘 나가는 지금 시대에 유튜브 쓰면 좋고, 인스타그램 쓰면 좋습니다. 그런데 유튜브가 인터넷인 게 아니에요. 인스타그램이 인터넷인 것도 아니고요. 페이스북, 레딧, 틱톡, 기타 등등, 하여간에 이런 개별적인 기업들은 인터넷이 아닙니다.

인터넷은 그 밖에도 있어요. 다만 중앙화가 안 되어 있으니, 내가 가만히 앉아서 추천에 뜨는 것만 클릭하고 있을 일이 없는 겁니다. 저는 이… 기업이든, 정부든, 종교든, 중앙화된 것에 홀려가지고 그게 전부인 줄 아는 사상을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그래서 팟캐스트를 하고, 그래서 개인 웹사이트가 있고, 그래서 제 책을 한두 군데가 아닌 올릴 수 있는 모든 데에다가 다 올리고, 그래서 블로그를 합니다.

물론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쓸 수 있는 다른 툴을 찾지 못해서 인스타그램도 하고요. 유튜브에 적합한 기획이 있다면 유튜브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만 한다? 그것은 한아임 사전에서 말도 안 되는, 정말 인터넷 세상이 멸망 근처까지 가서 유튜브랑 인스타그램 말고는 작동하는 시스템이 없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유튜브가 무슨 정책을 내든, 아니면 인스타그램에서 또 고막사람이나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계정을 정지를 하든 말든, 그래도 한아임과 Ithaka가 실성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변화하지 않는, 우리가 컨트롤하는 작은 코너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한아임이 지금 쓰는 블로깅 툴은 뭐냐면, write.as라는 툴입니다. write.as에 쓰이는 소프트웨어 자체는 오픈소스래요.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가 설치해서 쓰는 건 무료라는 뜻이래요. 저는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서 이에 대해 뭐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냥 돈을 내고 씁니다. 5년에 240불을 내고 블로그 1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랜을 돈을 내고 써요. 5년에 240불이면 킹 싸죠.

write.as에 기능이 많은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 제한된 기능의 깔끔함 때문에 write.as를 골랐고요, 무엇보다 read.write.as라고, write.as 유저들의 피드가 있습니다. 알고리듬 없고, 그냥 시간 순서대로 올라오는 피드인데, 참여를 승낙한 사람들의 글만 올라오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

이 read.write.as 피드는 물론 유저가 엄청 많은 플랫폼의 피드보다 느리고, 별 내용이 없어요. 왜냐하면, 피드 업데이트가 느리다, 즉, 그렇게 정보량이 방대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플랫폼을 굳이 돈 주고 쓰는 사람들 중에 참여를 승낙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고요. 피드에 별 내용이 없는 이유는 여기다가 광고할 사람도 없고, 또한 홍보성 글만 올리는 사람은 이 피드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홍보만 하러 올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별 내용이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게 아니고요, 이곳 사람들이 어떤 목적성을 갖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냥 다 제각각 사는 얘기를 하고요. 솔직히 사는 얘기인데도 스팸성인 블로그도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경우에 그냥 무시하면 되는 겁니다.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쓸데없는 추천을 무시하는 데에 들이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read.write.as에 올라오는 글 몇 개 무시하는 데에 들이는 에너지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굉장히 심플한 블로깅 툴이 write.as인데, 얘는 정말이지 글을 쓰기 위해서만 만들어졌어요. 광고 말고. 홍보 말고. 남한테 라이크 받거나 쉐어되거나, 그런 목적 말고. 다만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서.

그래서인지 저는 write.as로 블로깅을 하고서 블로그 글을 쓰는 데에 막혀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써요. 이 인터페이스가 뭔가… 매직이 있는 것 같아. 그냥 쓰는 겁니다. 그리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냥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 글이 제 취향에 맞든 안 맞든, 그 사람들이 쓰고 싶은 걸 맘대로 쓸 권리는 당연히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read.write.as는 훑어만 보고, 마음에 드는 블로그들은 rss 피드를 따로 팔로우합니다. 그러면 제 피드 리더에는 제가 선택한 블로그들밖에 없으니까 전혀 필터링을 따로 할 게 없습니다. 그리고 이 피드 리더에는 write.as 블로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블로깅 툴을 쓰는 사람들의 피드도 포함됩니다.

이 점을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블로그를 어디 가면 볼 수 있어?’ 이러는 겁니다. 유튜브처럼 유튜브를 가면 어떤 계정을 찾는 것인 줄 아는 거예요. 중앙화된 인터넷에 익숙해져서.

write.as의 경우에는 read.write.as가 있어서 그리 가서 블로그를 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블로깅 디렉토리들이 다양하게 있어요. 전화번호부처럼. 그런데 엄밀히는, 블로그는 어디 다른 데로 가서 그 블로그를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바로 그 블로그로 가야지만 볼 수 있는 겁니다. 통합된 중앙 알고리듬이 추천을 던져주는 게 아니에요. 그런 알고리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어도 찾을 수 있으니까 블로그를 하는 겁니다.

인스타그램 계정 없이 인스타그램에 누가 올린 거 보려고 하면 인스타그램이 계속 노티피케이션 띄우죠? 계정 만들으라고. 블로그는 그런 게 없는 겁니다. 누가 관리해주는 게 없어요. 누가 통제하는 게 없고. 뭐 write.as에 돈 주고 쓰는 경우에는 정말 심각한 hate speech를 한다면 쫓겨나겠지만, 그조차도, write.as의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깔아서 자기가 블로깅하겠다고 하면, 아무도 안 막습니다.

알고리듬이나 중앙화된 어떤 관리자가 없는 경우에는 풍경이 다 평평해요. 중앙에 거대한 산이 없습니다. 누가 위에서 뭘 뿌려주지 않고, 밑에서 누가 위로 뭘 나르지도 않습니다. 제가 링크를 찬양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겁니다. 링크는 모두가 똑같게 평등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뭐랄까, 투표 같은 거랄까?

그래서 블로그는 바이럴되가지고 떡상하고, 그럴 확률이 매우 적습니다. 물론 블로그를 누가 트위터나 어디 다른 데에서 멘션을 하면 트위터 알고리듬을 통해 바이럴이 될 수는 있겠지만, 블로그 자체는… 그냥 블로그가 있잖아요? 혼자서? 그러면 영원토록 평생 아무도 그 블로그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어요. 마치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오두막처럼.

그런데 홀로 서 있는 오두막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이죠, 경우에 따라서. 왜 누가 꼭 봐야 하느냔 말입니다. 뭐, 봐주면 좋은데, 좋고 고마운데, 꼭 시그니엘 탑층에 살아야 하냐 이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write.as 같은 분위기를 별로 안 좋아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에피소드는 write.as나 기타 중앙화되지 않은 매체들에 대한 건 아니기 때문에, 한아임이 쓰는 블로깅 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블로깅 그 자체에 대해 더 얘기해보겠습니다. 특히나, 매일 하는 블로깅.


매일 하는 블로깅. Seth Godin님의 말처럼, 이것의 목적은 대단히 기똥찬 뭔가를 생산해내는 게 아닙니다. 다만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되었기에 새로운 포스트가 세상이 볼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매일 블로깅의 정신입니다.

이것을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변화하지 않는 무언가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두려운 변화가 닥칠 가능성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으니까요.

블로깅 툴 선택 측면에서는 ‘변화하지 않는 무언가’가 대체 무엇이느냐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아까 말한, write.as 같은 플랫폼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중앙화된 곳의 블로깅 툴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돈도 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네이버 블로그 같은 경우에는 무료잖아요. 그 무료의 대가로 데이터를 가져가고, 언제든 내 블로그를 셧다운할 권한을 네이버가 갖는 거고요. 거래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거래할지 결정하면 돼요, 블로깅 툴을 선택할 때는.

그런데 ‘매일 쓴다’는 측면에서는 그 어떤 블로깅 툴을 써도 정신이 같습니다. 이 정신은, 나 자신을 필터링하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매일 행하는 겁니다.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도자기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 그룹은 오로지 도자기 작업의 양으로 점수를 받을 것이고, 다른 한 그룹은 오로지 도자기 작업의 질로 점수를 받을 거라고.

학기가 끝나고 점수를 매길 때가 되자, 결과가 어땠을까요? 가장 질이 좋은 도자기들은 전부 양으로 점수가 매겨진 그룹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질을 따지면서 도자기를 만든 사람들은 질도 별로고 양도 별로였는데, 양을 따지면서 도자기를 만든 사람들은 양도 많았는데 심지어 질도 좋을 확률이 높았다고요.

이게 매일 블로깅을 하는 가잘 실리적인 이유일 겁니다. 실제로 얻는 게 있어요.

간혹가다가, 누군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을 보고 그걸 ‘배설’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이 표현이 정말 미스터리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자신이 내놓는 것을 보고 ‘배설’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미스터리한 거예요, 저는. 대개는, 뭘 많이 하면, 즉, ‘많다’는 그 모호한 기준에 들어맞게끔 뭘 많이 하면, 그걸 배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 거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것은 마치, 많이 안 하고 적게 하면 배설이 아닐 거라고 암시하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느끼는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아니. 그래. 만약 누군가가 세상에 내놓는 게 똥이라고 쳐봅시다. 그러면 그 똥은 많이 싸서 똥입니까? 아닐 건데 말이죠. 적게 싸면 똥이 똥이 아니게 되나요?

반대의 경우에도 미스터리입니다. 똥의 반대가 금이라고 쳐봅시다. 그러면 뭔가를 적게 하면 그것은 저절로 금이 되나요?

제일 궁금한 건 이겁니다. 뭔가를 많이 하는 행위를 배설한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그런 자신의 표현이 배설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그것이 똥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심지어 금이라고 생각할까? 황금? 이거 엄청난 자신감인데. 자기가 내놓는 게 금이라서 내놓는다는 확신을 갖는다는 게.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똥이 아니니까 내놓는다고 확신을 갖는다는 거잖아요. 자신이 그것을 판단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거죠.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

저는 좀 궁금한데. 많이 궁금하진 않아요. 왜냐하면요. 그 사람이 제가 하는 걸 똥이라고 생각하든 금이라고 생각하든 솔직히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무언가가 똥이든 금이든, 그것을 많거나 적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연금술을 통해 변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거든요. 만약 제가 하는 게 구리다면 그걸 덜 한다고 덜 구려지거나 더 탁월해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제가 하는 게 탁월하다면 그걸 더 한다고 더 구려지거나 덜 탁월해지지 않는다고 여긴단 말입니다.

음, 이건 좀 덜 분명하지만 결은 비슷한 예시라서 말씀드립니다. 제가 팔로우하는 Dean Wesley Smith라는 할아버지 작가님이 계십니다. 할아버지 70 몇 세이신데, 미국에서 traditional publishing밖에 없을 때부터 지금의 indie publishing이 꽃피우기까지, 수십 년을 글을 쓰고 출판을 하신 분입니다. 이분이 동료 작가들 썰을 얘기할 때가 있는데, 그 얘기들 중 하나였어요.

이분이 그러십니다. 어떤 이야기를 쓸까를 두고 몇 달을 고민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런데 그걸 두고 Dean 본인이나, 오래 활동한 작가, 즉, 그냥 수십 년 전에 책 한 권 냈는데 그 책이 하나 유명한 작가 말고, 어제도 썼고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쓸 예정인, 활동하는 작가들은 다 뭐라고 하는지 아냐고. 뭐라고 하냐면, ’그거 고민할 시간에 그 얘기도 쓰고 다른 얘기도 써.‘

이게. 매일 행하는 자는, 이게 정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뭘 고민을 해요.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면 되지. Dean이 말을 상당히 곧이곧대로 하는 편이고, 저는 그래서 Dean을 좋아하는데, 어, 이분이 이메일 답장도 잘해주시고, 굉장히 친절해요. 지금 저는 한국어로 ‘분’이라고 부르지만, 영어로는 그냥 Dean이라고 부를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식으로 나이 따지면서 공경하면 굉장히 싫어할 것 같은 그런 할아버지입니다.

아무튼 Dean이 하는 말 중에 이것도 있어요. 어떤 식이냐면, 네가 어린 작가이면 작가일수록, 그러니까 나이가 어린 게 아니라 경험이 어린 작가이면 작가일수록, 뭔데 네가 좋은 글감 안 좋은 글감을 아냐고. 그것도 써봐야 아는 거지. 그런데 안 쓰면 평생 모른다.

이게… 어느 정도 양을 채우고 나면 질을 따질 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양도 안 채우고 질 따지면 질 절대 못 높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험공부를 안 한 학생이 시험 보는 동안에 곰곰이 생각하기만 하면 시험을 잘 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바이올린 연습 10시간 한 사람이 바이올린을 잘하는 것에 대해 고심만 하면 바이올린 잘하게 될 줄 아는 거랑 같아요.

그런데 더 중요하게는, 어, 우리가 모두 글을 잘 쓰는 게 목적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즉, 글 자체의 양이나 질을 올리는 게 목적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블로깅을 매일 하는 행위는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돈도 비교적 안 들고 자리도 비교적 안 차지하고 시간도 비교적 안 드는 이 행위가 삶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엄밀히 말하면 ’양을 채우면 질이 좋아진다‘라는 어떤 목적성이 아니라, 우리가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로깅에서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다른 분야에서도 이러한 정신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양을 채우면 질이 좋아진다고 해서 양을 채우면서 질을 생각하면, 엄밀히는 양을 채우는 그 정신에 위배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양을 채우는 척하면서 사실은 질을 채우는 거죠.

그런데 양을 채우면서도 양을 채우는 걸 생각조차 안 하면 그 덫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매일 뭔가를 한다’가 중요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뭘 매일 하든지는 상관없어요. 그것이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선택 사항이 아닌 일만 아니면. 그러니까, 약간의 존재적 사치이기만 하면, 정확히 그 행위가 무엇인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블로깅이 돈, 자리, 시간이 비교적 안 드는 행위라서 저는 블로깅을 추천드리는 겁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글만큼 돈, 자리, 시간이 안 드는 행위가 없으니까. 다른 것들은, 예를 들어 내가 바이올린 하는 사람인데 바이올린 연습량을 채우려면, 일단 소음을 내도 되는 연습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밤에는 연습을 못 할 테니 연습 시간이 제한될 수도 있고, 악기 자체는 닳지 않더라도 줄은 연습할수록 닳으니까 그거 갈아야 하고, 보우의 hair도 갈아야 하고, 기타 등등, 들어가는 장비가 많습니다. 연습 장소까지 이동해서 가야 할 수도 있고, 그러면 이동 시간, 차비, 뭐 많아요.

미술은 더해요. 미술은 종이 들지. 물감 들지. 많이 그리면 그릴수록 그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지.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든지 간에 글을 매일 쓰는 게 그렇게나 매력적인 행위일 수 있는 겁니다.

바이올린 하는 사람이면 바이올린 하는 것에 대해 쓰면 돼요. 미술 하는 사람이면 미술 하는 것에 대해 쓰면 돼요. 바이올린이나 미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이올린이나 미술을 이해하진 못해도, 바이올린이나 미술을 하는 사람이 겪는 환희나 어려움의 결을 이해할 순 있으니까요.

심지어 바이올린에 대해 쓰고 미술에 대해 쓰면서 바이올린과 미술을 더 잘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연습량도 안 채우면서 질만 추구하는 거랑 결이 다르죠. 연습을 다 하고서, 혹은 연습할 여건이 안 될 때 글을 쓰는 겁니다.

바이올린이나 미술에 대한 글이 아니어도 됩니다. 바이올린이나 미술 하는 사람도 밥 먹을 거잖아요. 밥 먹는 거에 대해 쓰면 됩니다. 아니면 운동할 거잖아요? 운동하는 거에 대해 쓰면 됩니다.

운동을 업으로 삼으시는 분들은 음악을 취미로 듣는 거에 대해 쓰시면 됩니다.

글은. 못 쓰는 글 없어요. 아무거나 쓰면 돼요.

상상 시나리오여도 되고. 꿈이어도 되고. 과거의 이야기여도 되고. 미래의 이야기여도 됩니다. 지금 현재 여기 없는 것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데에 가장 쉬운 방법이 글입니다. 말보다 글이 더 쉬워요. 왜냐하면 ‘바깥’이라 하면,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에게 시공간을 넘어서 전달하기에 글만큼 간단한 게 없습니다. 목소리조차, 그걸 녹음해서 남들에게 들려주려면 용량이 커지거든요. 그러면 돈이나 시간이 들어요. 그래서 팟캐스트 호스팅을 개인이 웹사이트에 하려고 하면 복잡해지는 겁니다. 저도 그래서 팟캐스트 호스팅은 제가 직접 하려고도 안 하잖아요. 귀찮으니까. 스포티파이라는 중앙화된 곳에서 소유한 앵커에프엠이라는 팟캐스트 호스팅 플랫폼에다가 팟캐스트를 올리고 있습니다. 다른 데로 호스팅 이동할 때 잘 해준다고는 하던데, 뭐, 아직 안 해봐서 모르겠어요.

아무튼지 간에. 글은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다. 그 어떤 업이든. 나이가 몇 살이든. 사는 곳이 어디든. 글로써 표현 못 하는 건 없다.


‘바깥‘이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냥 아무거나 쓸 거면 일기를 쓰지, 왜 굳이 블로그에다 올리냐. 아까 오두막도 괜찮다고 하지 않았냐. 아무도 있는지도 모르는 벌판의 오두막처럼 일기를 쓰면 되지 않냐.

그런데 이 점이 약간. 어. 제가 이전 시즌에서 다뤘던 ’교집합‘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음… 흔히 돌아다니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SNS는 시간 낭비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그냥 SNS에서 알고리듬이 시키는 대로 깔짝깔짝 추천물이나 클릭하고 앉아 있을 거면, 시간 낭비 맞아요.

그런데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 한 사람이 무슨… 축구 감독이랬나?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축구 감독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일단 요즘에 감독인 사람이면 뭐, 40세는 넘었겠죠? 그리고 축구계에 오래 있었겠죠? 그리고 이 사람이 어렸을 시절에는 SNS라는 게 존재도 안 했겠죠. 그리고 요즘이라 하더라도 이 사람이 팬을 모으는 종류의 업에 있는 건 아니죠. 축구선수가 아니잖아요. 축구 감독은 감독 고용해주는 사람들이랑만 통하면 되죠. 뭐, 수치가 말해주는 능력치도 있을 거고, 감독을 고용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을 거고.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 상황에 맞게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2023년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있지 않을뿐더러, 있고 싶지도 않을걸요? 현재 많은 사람들은 평생직장이라는 것의 존재를 믿지 않을뿐더러, 직장이 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조차 확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설령 직장에 취직하려 한다고 해도 SNS 검사를 당하거나, 자발적으로 SNS를 포트폴리오로 제공할 마당이에요.

교집합을 얘기하면서 제가… 어…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무슨 라면 얘기, 이런 거 했었을 거예요. 한아임은 진라면에 달걀 하나를 넣어서 먹는다. 그때도 제가 그랬어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냐고. 별거 아니라는 사람은 별거 아니라고 하겠죠? 그런데 진라면에 달걀 하나 넣어 드시는 분들은 지금 ’어, 나도 그러는데?‘ 하셨을 거란 말입니다.

이런 별거 아닌 것들을 세상에 내놓아서 수백, 수천, 수만 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데, 소위 말하는 ’아무 내용이 없는 블로그 글‘이라고 해도 어떻게 혼자 쓰는 일기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게 최고의 잣대는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알아도 괜찮은 거면 내놓는 게 실리적으로도 이득이거니와, 여러분, 이거 굉장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블로그를 해보시면, 얼마나 아무도 여러분에게 관심이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좋은 거예요.

아까 말한 양과 질의 아이러니 측면에서도 그렇고, 그걸 떠나서, 여러분이 하려는 일이 양이 많든 질이 좋든, 그 행위를 계속 행하는 멘탈 관리에 좋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에게, 저에게, 디폴트로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이건 좋은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이 뭐 하기만 하면 막 관심 가져봐요. 얼마나 귀찮아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세상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웬만하면 아무거나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이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란 것을 많은 부분 제거해 줍니다. 내가 생각하는 변화가 사실 그렇게 두려운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매일매일 무의식에 각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또, 그러다 블로그가 점점 팔로워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 관심은 또 관심대로 좋은 겁니다. 아까 말한, 진라면에 계란 하나 넣어 먹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예요.

그러합니다. 네. 제가 블로그 두 개를 매일 하는 것을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면 무슨 다른 계기가 있을 수도 있고, 이번 구조 조정 끝나고 또 다른 구조 조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지만 일단은 제가 구조 조정의 필요성을 깨닫기 몇 달 전에 블로그를 시작해둬서 그것이 뭔가… 꽤 든든하고, 좋다는 점. 그리고 혹시 여러분도 삶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블로깅 같은 약간의 존재적 사치에 투자를 해둔다면 정신적으로 득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 에피소드를 해봤습니다.

심지어 신체적으로 득이 될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이 그렇듯, 글도 몸으로 쓰는 거니까. 습관적으로 타이핑을 하는 행위는 충분히 신체적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변화 사이에서 굉장히 위안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 2023년을 아직 새해라고 불러도 괜찮은 이때. 아직 2월이 약간만 시작한 이때. 어떤 블로깅 플랫폼을 쓰시든. 여러분에게 원하는 걸 주는 그 플랫폼에 가셔서 작은 사치를 누리는 걸 고려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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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ing

  • All Things Fade – Jameson Nathan Jones

Within episode

  • Guy Mar – Tony Party
  • I AM A DUO – Smile (aka Chillie Willie)
  • iTMR – Cant Be Jenny – Instrumental Version
  • Kicktracks – I Need Your Touch – Instrumental Version

Closing

  • Sugar Colours – Crazy Paris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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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한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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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