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4] 현실각성: 득이 되는 도파민과 그렇지 않은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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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 제가 얼마 전에 “도파민 네이션” (“Dopamine Nation” by Dr. Anna Lembke)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애나 렘키 님이 지은 책이고요. 말 그대로, 도파민에 대한 책입니다. 도파민이 과다한 21세기의 문제점에 대해서 주로 얘기하는데, 그런 책은 상당히 여럿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을 특히 좋아해서입니다. 그리고 왜 좋아하느냐.

일단 저자인 애나 렘키 님의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어요. 이분 본인의 중독 경험. 무엇에 중독되셨었냐 하면, 로맨스 소설에 중독되셨었대요. 보통 책 읽기에 중독됐다고 하면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여러분? 책 읽기에 중독되는 거, 게임에 중독되거나 다른 뭔가에 중독되는 거랑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중독은 중독이잖아요. 이분의 삶이 이 중독 때문에 통제가 안 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흥미로운 점이 뭐냐 하면, 이분이 하필이면 이야기에 중독이 되었어서인지, 특히나 글 형태의 이야기에 중독이 되었어서인지, 이 논픽션 책, ‘도파민 네이션’이라는 책 자체가 너무나… 너무나 유기적이에요. 저는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자 본인 얘기를 하실 때나, 환자들과의 대화나 경험을 얘기하실 때, 전혀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논픽션처럼 딱딱한 게 아니라, 유기적이었어요. 이 책 구조 자체가 1자형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이 되었습니다. 뭐냐 하면, 시작에서 끝까지 막 1자로 달리는 그런 게 아니라, 둥글게 둥글게 돌되, 혹은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되, 그렇다고 해서 그럼 뭐 너무 말랑말랑하고 정보가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원래가 사람은 정보에 감정이 붙여졌을 때 제일 기억을 잘하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그냥 아무 랜덤 숫자만 잘 기억하는 경우가 드문 겁니다. 그냥 숫자만 딱 보면 그 숫자에 아무 감정이 없잖아요. 아무 이야기가 없거든요. 그런데 이 책, ‘도파민 네이션’에서처럼 각종 정보에 이야기를 입히고 감정을 덧붙여주면, 그 내용이 오히려 더 기억이 잘 나요.

이 저자분이 소설에 중독될 정도로 소설을 좋아하셨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이 너무 재밌습니다, 여러분. 중독의 경험 자체는 힘드셨겠지만 말입니다. 이 저자분이 소설 쓰신다고 하면 저는 궁금해서 읽을 것 같아요. 이야기의 순서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정보를 전달하는 순서가. 그게 우아하세요.

역시. 픽션을 소비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인 한, 다수의 사람에게 그들이 기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려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아주 무슨 전공 서적이야, 테크니컬한 정보만 나열해도 볼 사람이 있겠지만, 전공자는 매우 소수예요. 자신이 생각했을 때 중요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면 이야기를 입혀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너무나 좋은 예시가 도파민 네이션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또 하나 좋은 점이 뭐냐 하면요. 그냥 ‘도파민을 삶에서 없애라’고 하지만도 않고, 그냥 ‘도파민을 즐겨라’고 하지만도 않습니다. 다만, 좀 선택적인 도파민의 이용에 대해서 얘기해요. 이를테면, 고통이나 제한에서 오는 도파민에 대해서도 언급이 됩니다. 우리가 감기에 걸렸다가 회복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같은 종류의 것 말입니다. 혹은 오랜 기간 풀 수 없었던 수수께끼를 마침내 풀었을 때의 뿌듯함. 흔히 delayed gratification, 보상 유예라는 말을 쓰죠.

이러한 모든 연관된 현상에 대해 저자가 너무나 아름다운 말을 합니다. “Binding ourselves is a way to be free.” 캬. 요거 한국어 번역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대략 “속박은 자유의 한 방식이다“ 정도가 되겠고, 그것도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한 방법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스로.

이게 꽤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속박해야 한다는 거. 사실 남이 속박하면, 그게 뭐 좋은 뜻으로 했든 말든, 알 게 뭐야. 자기가 왜 나를 속박해. 너나 잘해.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데, 스스로가 자신의 장기적인 안녕을 위해 자신을 속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과거와 미래를 기억 내지는 상상할 수 있는 인간만이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이번 시즌의 주제, 시작 툴 키트에 적합한 사상이다.


속박. 음. 닷컴버블이라든지, 부동산 호황기라든지, 등등의 각종 투기와 그것의 좋지 않은 결말에 대한 기록이 2023년 현재에는 매우 세세합니다. 우리는 이제 기록이 사라지는 시대에 살지 않아요. 일부러 없애려고 해도 남아 있는 게 디지털 기록이고, 디지털 기록이 있는 한 그걸 인쇄해서 아날로그 세상으로 가져오는 것 또한 수월합니다.

이제는 인플레이션이든 공황이든, 그거에 대해 몰랐다고 주장하기가 어려워요. 역사가 이렇게 다 남아 있는 데다가, 그 역사를 무슨 전문가들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온갖 크리에이터들이 다시 곱씹어서 소화하기 좋게 내뱉어주고 있는데, 과잉, 막무가내식 팽창으로 인한 폐해를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단 말이죠.

아무리 한쪽에서는 허슬 컬쳐가 유행해도, 그 허슬 컬쳐를 굳게 믿는 사람들조차, 그게 막무가내 과잉이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 거예요. 에피소드 41, 피로사회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요즘에 누가 열심히 많이만 하면 잘될 거라고 여기냐는 말이죠. 열심히 많이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한아임은 존버를 좀 필요하다고 여기는 편이잖아요. 이게 그러니까, 균형이 맞아야 한단 말이죠.

물론 존버를 하면 유리해요. 그러나 존버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며, 물론 열심히 많이 하면 유리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존버라는 걸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존버는 존나 버텨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버틴다’라는 것 자체에 장기적인 관점이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무슨 주식 같은 거 겨우 한 달 전에 사 놓고 안 파는 거 갖고 ‘존버’를 논하는 걸 보면, 그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주식 투자 많이 하잖아요. 이거 사회 초년생 때, 20대 초중반에 시작해서 은퇴할 때, 60세, 65세 때 꺼내 쓰는 시스템이에요. 물론 그사이에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고팔 수 있지만, 그 401k 계좌 내에서 사고파는 거지, 그 계좌를 깨서 거기서 돈을 꺼내려면 페널티가 붙어요. 또한, 아예 401k 계좌 바깥에서 트레이딩 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 번 산 주식 1년도 안 돼서 팔면 일반 세금이 적용됩니다. 주식 1년 갖고 있는 건 존버 축에 속하지도 않는단 얘기입니다. 당장 안 쓸 돈 넣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존버는, 그게 투자든, 업이든, 사랑이든, 최소 10년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버틴다’는 단어에 대해 좀 안 좋은 견해를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신데, 저는 ‘버틴다’를 그렇게 힘들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요거는 살아온 배경이나 취향에 따라 좀 다를 것 같아요. 그런데 원래가 그래요. 단어의 사전 정의가 존재하지만, 당연히 모두가 생각하는 그 단어의 의미는 다릅니다. 사전 정의는 그냥 최소한의 공유 그라운드? 최소한으로 같이 서 있을 수 있는 땅 같은 거고, 그 땅에서 뭐가 자라는지는 사람마다 너무나 다릅니다.

아무튼 저는 존버도 그렇고 버틴다는 단어 자체에 대해 심리적 부담을 갖고 있지 않아서 자꾸 이 단어를 쓰는 건데, 이 단어가 싫으신 분들은 다른 단어로 대체하셔도 좋습니다. 인내심이라는 단어도 있을 거고, 자제력도 괜찮을 것 같고. 장기적 관점. 이런 문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떤 단어를 쓰든, 여러분으로 하여금 ‘지금 당장’이 아닌 최소 10년 후, 길게는 50년 후를 바라보게 하는 그 단어가 있을 거잖아요. 그 단어에 대해 제가 얘기하고 있는 건데, 다만 저한테는 그 단어가 ’존버‘다. 두 음절밖에 안 되어서, 짧아서 좋고요. 저는 이 단어가 재밌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왜 존버 얘기를 하느냐 하면, 아까 언급한, 저자의 명언 때문입니다. “Binding ourselves is a way to be free.” “속박은 자유의 한 방식이다.” 그것도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한 방법이다.”

제 생각에 존버, 인내력, 자제력, 장기적인 관점이 유용한 이유는 전부 다 이것 때문입니다. 보상의 유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유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에.

이것을 때때로 상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칫하다가는 존버, 인내력, 자제력, 장기적인 관점이 도구일 뿐이란 걸 까먹는 수가 있거든요. 버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데, 버티고 즐거움을 제한하고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 자체에 도취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것도… 이것도 아이러니인데, 책에서도 언급이 돼요. 고통에 중독되는 경우. 그러니까 이 도파민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게. 얘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좋은‘ 혹은 ’즐거운‘ 일을 할 때만 분비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신기하죠. 그리고 또한, 도파민이 분비되는 모든 행위를 우리가 제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제한해야 할 필요도 없고, 제한해서도 안 돼요.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도파민까지 제한해야 하거나,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며, 그것을 제한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선택적 도파민 이용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존버 자체에 도취되지 않고, 그것을 도구로서 이용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자유를 만들어내고, 그 자유 안에서 자신에게 득이 되는 도파민에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득이 되는 도파민. 그것은 무엇인가?

저자가 여러 가지 예시를 들어서 설명을 하는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너무 쉬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즉, 평생에 걸쳐서 헌신할 만한 업. 평생에 걸쳐서 헌신할 만한 사랑. 이런 것들은 애당초 쉽게 도파민에 접근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에 중독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뭐랄까, 이것도 중독이라 하면 중독일 수 있긴 하죠. 뭔가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데도 그것을 계속 사랑하는 게. 그런데 좀 철학적으로 가자면, 저는 이 점, 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도 건강한 삶의 근본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천만 원을 벌려고 어떤 일을 하면, 천만 원 벌고 나면 그 목적을 달성한 거잖아요. 그러면 천만 원 다음에는 공허함이 남거나, 천만 원을 이뤘을 때의 그 희열을, 도파민 러시를 느끼기 위해 이천만 원, 삼천만 원, 억대를 새로운 목표로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딱 정해진 목표가 아니라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꼭지점으로 설정하면 문제가 안 생겨요. 이 업을 하는 이유가 본인의 장기적인 성장 혹은 세계의 장기적인 안녕 때문이라든지. 아니면, 아주 아주 단기간으로 가자면, 매일매일을 충실히 살기 위해서 때문이라든지. 이런 식으로요.

이것도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아주 장기적인 관점과 아주 단기적인 관점은 통하는 면이 있어요. 내 인생을 길게 보는 거랑 오늘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게 통하는 면이 있단 거죠. 엄밀히는 끝에 다다를 수 없어서 도파민 러시를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통하는 것 같아요. 인생의 끝을 생각하는 건, 당연히 인생의 끝, 죽음까지 가기 전까지는 다다를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고, 오늘 하루하루라는 개념도, 오늘이란 게 매일 끝나니까 매일 끝에 다다르는 것 같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오늘이 오기 때문에 엄밀히는 오늘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장기적인 관점과 단기적인 관점은 서로 통합니다.

이렇게 끝에 다다를 수 없는 무언가에 기대는 것 역시 중독의 한 양상인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끝이 정해져 있는 목표들에만 기대는 것보다는 건강에 더 좋은 것 같다는 점입니다.

주의할 점은, 여기서도 균형이 필요하단 겁니다.

물론. 천만 원 버는 거, 좋은 목표예요. 그런데 제 말은, 이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면 안 된다는 거죠. 존버가 그저 도구일 뿐이듯이, 천만 원 버는 것도 그저 도구여야 한단 겁니다. 천만 원을 왜 버는지가 중요한 거지, 천만 원 버는 것 자체가 중요하면, 천만 원 벌고 나면 이천만 원 벌고, 억대 벌고, 그러고 나서도 왜 사는지를 모를 거란 말이죠. 돈이 나쁜 게 아닙니다. 돈은 좋은 거지. 그러나 돈밖에 모르면 알코올중독이나 담배중독, 이런 거랑 하나 다를 게 없어집니다. 한 잔 마시면 두 잔 마시고 싶고, 한 개비 피면 열 개비 피고 싶어지는 거랑 똑같아요.

그러니 이… 득이 되는 도파민. 너무 쉽지 않은 도파민. 이걸 이용해야 한다. 도저히 어차피 끝에 다다를 수 없는 거. 그리고 그게 뭔가… 끝에 다다를 수 없어서 불행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애당초 해답이 없는 업이면 좋습니다.

‘내가 얼마얼마를 번다’는 수치로 정할 수 있어서 편리한 점도 있고, 목표를 구체화하는 데에 너무나 좋은 수단이지만,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면 나의 인생에는 정답이 있는 게 되고, 그러면 참… 정답이 있는 인생이라는 게 너무나… 그 정답에 다다르고 나서도 그 인생이 끝나지 않으려면 계속 새 정답을 찾는 패턴으로 갈 거란 말이죠. 더 큰 도파민 러시. 더 큰 정답을 향해서.

이것 대신에, 정답이 없는 목표, 그래서 사실… 그래요, 엄밀히는 목표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래서 ‘꼭지점’처럼 뭔가 좀 더 상징적인 단어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을 향해 가는 게 득이 되는 도파민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도파민 네이션‘의 저자도 이런 식의 풀 수 없는 수수께끼들의 장점에 대해 논하고 있고요.

이게 뭔가… 거창한 꼭지점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정답이 없기만 하면 됩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뭔가를 이루려면 정답이 있는 정류장들을 거쳐 가는 게 유리하지만, 그 여정 자체가 정답을 향해 가는 거면, 오히려 그 정답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새로운 중독에 노출되기 때문에, 정답 없는 거. 이룰 수 없되, 이루지 못하더라도 욕구 불만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안정되고, 충만해지는 거.

이를테면, 돈 얘기를 했으니까. 돈을 벌더라도, 이 돈을 벌어서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 내가 학교를 여럿 짓겠다. 이때 그러면 ’학교 100개를 짓겠다‘가 이 일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의 분명한 목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기저에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가 깔려 있기 때문에, 학교 100개를 짓고 나서도 다른 할 일을 여럿 찾을 수 있단 말이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은 끝나지 않으니까.

학교를 100개 짓고 나면

일자리를 1만 개 창출하겠다

우리 직원들 가족들까지도 이런 마인드셋으로 삶이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자녀들 학비를 지원하겠다

내가 사는 이 도시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더 깨끗하고 안전하게 만들겠다.

뭐. 무궁무진합니다. 끝이 없어요.

사랑도 이렇습니다. 사실. 사랑이 더 이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얘기들이 들린단 말이죠. 일정 기간 사귀었으니까 이제는 결혼해야지. 결혼한 지 얼마 됐고 우리 나이는 몇 살이니까 이제 애 낳아야지. 애 하나 낳았으니까 이제 애 하나 더 낳아야지. 그다음에 얘네 좋은 학교 보내야지. 점수 뭐뭐 따야지. 무슨무슨 대학 가야지. 어디 가서 연봉 얼마 받는 사람 만들어야지. 기타 등등.

레벨 깨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레벨 깨기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넓은 의미에서의 도파민 중독의 하나로 보여집니다. 사회에서 남들 다 한다고 주장되는 이 레벨을 깼을 때 느끼는 안도감의 도파민 러시인 거예요. 그런데 이 레벨 깨고 나면 어떻죠? 다음 레벨 깨야지.

그러니까 애초에 레벨 깨기는 지는 게임입니다. 이 잠깐의 도파민 러시 때문에 이 레벨 깨기에 참여하면, 지는 게임이에요. 같은 행위도 다른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단 말이죠. 좋은 학교에 가는 이유가 레벨 깨기냐, 아니면 다른 어떤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냐에 따라서 이 개개인들의 안녕은 천지 차이일 겁니다.

그런데도 레벨 깨기에 중독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각종 콘텐츠가 나오죠. 책이며 영화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후회하는 10가지. 뭐 이런 내용들이 나오잖아요. 인생의 끝,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존재가 실질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의미에서의 최장기적 시점인 인생의 끝에서 바라보는 지금을 생각하게 해주는 콘텐츠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그런 콘텐츠들에 꼭 나오는 말이 뭐다? 아주 단기적인 시점. 오늘을 충실히 살아라.

이것이 레벨 깨기의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식일까요? 내 인생의 끝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 음. 그렇게 하면 정말 도저히 레벨 깨기가 안 떠오르기는 해요. 오늘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레벨 깨기가 무슨 대수랴.


그러합니다. 존버 자체에 도취되지 말자. 존버는 도구다. 그리고 그것을 도구로 이용하려면 레벨 깨기에 집착을 안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레벨 깨기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자유를 만들 수 있다.

레벨 깨기의 그 각 레벨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입니다.

천만 원 버는 거,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 가는 거,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단, 그것이 그 레벨을 깨고서 느낄 도파민 러시 때문인가, 아니면 진짜 삶의 거대 존재 이유에 필요하다고 여겨서인가.

이 차이로 삶의 안녕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장기적 관점과 초단기적 관점, 그러니까 오늘을 매일매일 충실히 사는 것. 요 두 개의 관점으로 나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유용한 속박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속박’이라는 단어도 ‘버틴다’라는 단어처럼 가끔 좀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긴 한데. 영어로 binding은 더 중립적인 느낌이긴 합니다. Binding에서 bond라는 단어도 나오는데, bond란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끈끈한 소속감을 뜻하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원래가 끈끈한 소속감이란 쉬이 떠날 수 없음을 내포하잖아요. 그렇죠?

그냥 훌훌 떠나버릴 수 있으면 그것은 소속감이 아니죠.

이런 걸 말하는 것 같아요, 저자는.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도 이 점입니다.

레벨 깨기가 그렇게나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그 레벨을 깨고 나면 그걸 뒤돌아볼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제가 이번 시즌에 몇 번 언급하는 게… 요즘에 이곳저곳에서 자꾸만 언급하는 게… 사랑해서 하는 일을 해야 되겠구나.

원래가 사랑한다는 건, 마냥 가볍지가 않습니다. 사랑은 무겁습니다. ‘사랑이 인간을 강하게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최근에 한 생각이 이겁니다. 왜 ‘사랑이 인간을 강하게 한다’는 말이 나오느냐 하면, 사랑이 무거워서, 감정의 웨이트트레이닝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물리적 근육을 키우듯이, 사랑을 하면 감정이 근육질이 돼요. 이걸 지탱할 수 있어야 하거든. 그러니까 인간을 강하게 하지. 완전 말이 된다.

이 무거운 감정을 지탱하기 위해 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은 쉽지 않고, 끝도 없습니다. 한 번 근육 한 세트 만들어놓고 ‘자, 레벨 깼다’ 하는 게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하는 거예요. 사랑해서 하는 일, 사랑해서 만나는 사람, 이런 삶의 요소들은 ‘완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완벽주의’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어요. 완벽주의라는 건 레벨 깨기를 전제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완벽주의의 아이러니는, 완벽주의를 믿으면 믿을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다 연결이 됩니다. 에피소드 42에서 말한 매일 블로그하기와도 연결이 되는 겁니다. 매일이라는 것은 오늘 끝나는 것 같지만, 내일은 내일의 매일이 있을 거라서 매일 블로깅을 하는 겁니다. 모든 사랑은 그렇습니다. 끝이 없으니까 사랑입니다.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것. 그리고 내가 죽는 날까지 그것은 끝이 없어서 영원이나 다름없는 것. 그러면 완벽주의의 존재 자체가 불가해지고, 레벨 깨기도 불가해지고, 끝이 없음의 속박 속에서 나는 자유로워집니다.


그런데, 너무 철학적인 것 같으니까, 실용적인 도파민 제어 방법을 몇 개 공유할게요.

도파민과 관련된 행위 중 저한테 가장 큰 문제는 휴대폰입니다. 망할 스마트폰.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얘는. 사실 얘를 제가 그렇게 스마트하게 쓰지 않아요. 스마트하게 쓰는 경우는 손에 꼽고요. 걍 멍충하게 도파민에 중독되어 스크롤링을 하는 경우가 훨씬 잦습니다.

이걸 멈추는 데에 특효약인 방법 몇 개를 소개할게요. 가장 간단한 것부터.

첫째. 휴대폰 액정이 안 보이는 쪽으로 뒤집어놓으세요. 휴대폰 등 쪽으로.

이거 정말 말도 안 되게 간단해서 안 통할 것 같잖아요? 통합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휴대폰을 아예 끌 상황은 안 될 수가 있잖아요. 전화를 기다리기도 하고, 뭐가 궁금해서 검색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휴대폰을 껐다 켰다 하면 비효율적인 데다가 그 휴대폰 충전하는 데에 쓰는 전기도 아깝고. 나 하나 잘 살자고 그런 전기 낭비가 웬 말이냐.

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정수기에 그런 사인이 붙어있었어요. “네가 휴대폰을 한번 켤 때마다 아프리카에 사는 어린이 한 명이 물 한 잔을 못 마시게 된다?” 아니면 “휴대폰을 열 번 안 켜면 아프리카에 사는 어린이가 물을 마실 수 있다”했나? 하여튼 그런 얘기였습니다. 쓸데없이 휴대폰 만지작거리고, 액정 켜 보고, 그냥 한번 뭐 확인해보고. 이게 우리가 너무나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아서 둔감한 거지, 사실은 소중한 전기인데.

아무튼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 휴대폰을 쓰긴 쓰되, 필요할 때만 쓰고 쓰잘데기 없이 만지작거리려는 욕구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휴대폰을 뒤집어놓는 겁니다.

이것만 해도. 와. 액정만 안 보여도. 저는 현저히 욕구가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휴대폰에 있는 흑백 필터 기능을 켜는 겁니다. 이거 아이폰에는 확실히 있고요, 흑백 필터 기능은 장애가 있으신 분들을 위한 접근성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거라, 어떤 휴대폰이라도 요즘에는 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요 흑백 필터 기능. 이걸 키면, 색채에서 오는 잡다한 도파민 러시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인쇄된 신문을 읽는 기분이 들고, 막,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이런 원색이 사라지면 그 어떤 자극적인 유튜브 썸네일도 평탄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단, 하나 주의할 점은, 흑백 필터를 너무 지속적으로 쓰면 급속도로 우울해지더라고요. 제가 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리고, 익숙하지 않아야 이게 효과가 계속 있을 것 같은데, 흑백 필터가 답답하거든요. 답답해서 도파민을 느끼지 못해서 좋지만, 답답해서 너무 우울한 느낌이 들 수가 있다. 그래서 저의 생각으로는, 내가 확실히 폰을 많이 안 쓰거나, 쓰는 시간이 제한된 동안에는 흑백 필터를 굳이 켤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직장에 가 있을 때는 아무리 폰 중독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폰을 계속 만지작거릴 수가 없잖아요. 그때 잠깐잠깐 보는 용도로는 필터를 안 켠다든지. 혹은, 출퇴근 시간에 웹툰을 볼 때 폰을 쓰는 거면, 웹툰 작품성도 고려해야 하는 데다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리면 폰을 계속 보지 않을 게 확실하니까, 필터를 안 켠다든지.

대신에 집에 와서 띵까띵까 하느라 하염없이 스크롤링을 할 확률이 높을 때만 필터를 켜보자. 그러면 정말. 급격히 흥미롭지 못해집니다, 이 모든 시각 정보들이.

마지막 방법은, 안 쓸 때는 앱을 지우고 쓸 때만 앱을 까는 겁니다. 유튜브나 웹툰 앱 같은 거, 혹은 브라우저까지도, 안 쓸 때는 무조건 지우는 거예요. 저는 이걸 가끔 합니다, 유튜브 앱의 경우에.

유튜브를, 제가 가끔 그냥 하염없이 스크롤링만 할 때가 있어요. 차라리 뭐라도 보면 좋겠는데, 뭘 보진 않고 그냥 스크롤링만 해요. 심지어 영상 하나를 고르잖아요? 그걸 띄워놓고 댓글을 보거나 다음에 볼 걸 스크롤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느껴지는 그 비참한 한심함. 하. 이걸 너무 제가 주체할 수 없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현상이 너무 심해질 때면 유튜브 앱을 지워버립니다, 폰에서. 아예 지워요. 그리고 정말 의식적으로 선택해서 영상을 봐야겠다 싶을 때만 앱을 다시 깝니다. 하루에 영상을 제대로 볼 마음이 10번 들면, 10번 지웠다가 10번 다시 까는 거예요.

그렇게라도 해서 귀찮게 해야, 이… 한아임이라는 작자가 유튜브를 좀 뗄 수 있더라고요. 그걸 좀 며칠 하면, 또 좀 도파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면 유튜브 앱을 그냥 폰에 둡니다. 그러다가 또 다음에 스크롤링이 너무 심해지는 것 같다 싶을 때 앱 지우기를 반복해 줍니다.

요 세 개. 휴대폰 액정이 안 보이도록 휴대폰을 뒤집어 놓는 것. 흑백 필터. 그리고 앱 지우기. 이게 제가 가장 효과를 본 휴대폰 도파민 중독 제어 방법들입니다.

그러합니다. 이렇게 쓸데없이 폰 만지는 시간만 줄여도 시간이 남을 텐데. 이 시간에 잠을 자도 얼마나 건강해질까. 이 시간에 그냥 멍만 때려도 얼마나 건강해지겠어요. 하. 이게 참. 참 그래요. 유튜브 너무 유익하긴 한데, 이 유익한 걸 내가 써먹어야 할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유튜브만 봐. 이게 뭐야. 대체 뭐냔 말이죠. 적당히 봐야지.

제가 구조 조정을 함에 있어서 이 휴대폰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 참… 저는 음… 결국에는. 나중에. 언젠가. 좀 교외에 살고 싶거든요. 심지어 시골에. 나라마다 ‘시골’이라는 게 의미하는 게 다르고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그 단어로 정의하기가 좀 애매하긴 한데, 제가 정말 최근에, 며칠 전에 확실히 깨달았어요.

아, 나는 정말로, 진짜로, 도시가 아무리 좋더라도, 도시를 가끔만 가야지, 도시에서 계속 살다가는 미칠 것이다. 그래서 저는 시골에서 살면서, 나중에 나중에 언젠가 만약에 같이 사는 동반자가 있으면, 일단 제가 혼자 쓰러져 죽을 일은 없잖아요. 아니면 뭐, 막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도움을 청할 전화를 걸 방법이 없다든지, 그럴 확률이 좀 현저히 낮아지니까. 갖고 다녀야 하는 휴대전화가 필요할 일이 낮아지니까, 집에 전화를 두려고요. 옛날 전화. 하. 이놈의 휴대폰.

휴대폰을 쓰는 건 괜찮아. 근데 쓰지도 않을 건데 만지작거리는 게 문제야. 옛날 전화에는 전화 기능밖에 없잖아요. 저는 아마. 제 희망 사항은 계속 대체로 집에 있는 삶을 사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실 별로 상관이 없어요, 옛날 전화만 있어도.

음. 정말. 구조 조정의 약간 연관된 일부로서. 요. 시골집. 요기다 스마트폰 말고 전화기를 두고 동반자랑 살겠다. 진짜. 그러고 싶다. 그렇게 될 거 같은데? 인터넷은 있을 거거든요. 인터넷은 꼭 있어야 해. 그러나 그것은 전부 데스크탑, 랩탑, 혹은 태블릿으로만 쓰겠다.

태블릿 정도만 되어도, 여러분, 사이즈 좀 커졌다고 현저히 불편해지더라고요. 그 불편함 덕분에 저는 태블릿에 중독되진 않았습니다. 중독이 불가하더라고요.

그러합니다. 네. 우리 모두 도파민 중에서 득이 되는 도파민을 잘 이용하고, 정말이지 쓰잘데기 없는 해로운 도파민을 끊어봅시다. 이제 2월 중순인데, 좀 있으면 봄이에요. 오피셜리 봄이 옵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도파민계 대청소를 합시다. 정신의 대청소.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모든 음악

Opening

  • All Things Fade – Jameson Nathan Jones

Within episode

  • Notize – Morning Sun
  • Novembers – Last Train Home
  • Phury – Fifth Avenue

Closing

  • Sugar Colours – Crazy Paris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2023 한아임

소개

✨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