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8] 흡수소화: 흔들리는 불멍 속에서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 시즌의 끝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음 시즌 얘기 및 시즌 마무리 얘기들을 할 겁니다.

지난번에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아임 드리밍이 이제 구조를 바꾸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특히나 이번 시즌 4가 끝나고 나서, 5에서는 제가 이혜원 기획자와 함께 요즘에 번역하고 있는 책, 누아르

어바니즘에 등장하는 여러 영화 중에 제가 구할 수 있는 영화를 보고, 그거에 대해 얘기하는 구조로 가게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이 구조에 매력이 있습니다. 흡수하고 소화하는 구조. 그것을 비공식적인 2차 창작물로 세상에 내놓는 구조. 그러니까, 뭘 라이센싱을 공식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재소화하는 구조.

저는 변호사는 아닙니다만, 이것은 유구한 아카데미아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그 밖에서도 그렇고, 불법이 아닙니다. 연극을 보고 나와서 연극에 대해 얘기하는 거, 불법 아니에요. 저작권법에 위반되거나 그러지 않고요. 만약에 연극을 촬영을 해서 유포를 하면 그건 불법이겠죠.

또한, 그 왜, 요즘에 미키마우스 얘기가 좀 나오더라고요. 미키마우스 중… 일부 초기 미키마우스 영화던가? 그것들이 이제 저작권법 보호를 더는 받지 않게 된다고. 너무 오래돼서. 그런데 디즈니가 그렇게 유명하다면서요? 무슨 일본의 어느 학교 운동장엔가에 미키마우스를 그려놨더니 디즈니 측에서 없애라고 소송을 걸었다나. 하도 어이가 없는 얘기가 많아가지고,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무인도에 갇혔으면 미키마우스를 그리면 디즈니가 소송 겸 구조를 하러 올 거라는 소리까지 들었고. 그래가지고.

아니,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일본의 학교에 그려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미키마우스 캐릭터 자체를 복사한 것도 아닌데 소송이 가능한지? 이렇게 세세한 저작권법의 판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웬만하면, 영화 보고 영화를 재유포하는 건 불법이지만, 영화 보고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건 합법이 아닌가. 다시 강조하지만, 저는 변호사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대체 세상 어느 바보 영화사가 자기네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거에 딴지를 걸겠는가.

음.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 같은 게 가장 논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시는 일반적으로 너무나 짧은데, 그중 한 줄이라도 인용하려면 전체의 너무 큰 퍼센트를 차지하니까요. 그래서 시를 다루기가 가장 꺼려지고. 가사 같은 것도 사실. 혹시나 뭐라 할까 봐 꺼려지는데, 누아르 어바니즘에 나오는 영화들은 일단 완전 요즘 영화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카데미아에서 작품을 인용하는 건 당연히 허용이 되며, 심지어 범고래출판사가 누아르 어바니즘 번역권을 사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그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에 대해 얘기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게 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을 했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겁니다. 공식적이면 더 마음 편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허용되는 비공식적인 2차 창작이 얼마나 정신 건강에 좋은가.


왜 정신 건강에 좋은가 하면요, 여러분. ‘작품’이란 것은 ‘현실’이라는 것과 달리, 하나의 틀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는 것은 모델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험에 쓰이는 모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뭐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불확실성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미 한 번 누군가에 의해 걸러져서 작품이 된 것들은 그것이 논픽션이든 픽션이든, 틀에 담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아르 어바니즘의 경우, 이 세상에 여러 영화들이 개봉이 됐고, 책도 출판이 됐는데, 그것들을 여러 작가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한 번씩, 자신들의 시점으로 걸러서 모으되, 심지어 그 시점들을 하나의 테마, 즉 누아르 어바니즘, 어두운 도시라는 테마라는 틀에 모아 좀 더 흡수 및 소화가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봤으면 하나의 테마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몰랐을 수 있는 점들이 이미 이어져 있어요.

또한 만약에 작품이 픽션이면, 더욱더 닫힌 틀에 담기게 됩니다. 픽션의 경우에는 아무리 픽션 이야기 시작 전의 before와 그 이후의 after가 있어도, 이야기 그 자체는 그 자체로서 시작과 끝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18세기 귀족들 이야기다, 하면, 21세기에 가서 귀족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졌다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12세기 이전에는 귀족이라는 개념이 18세기 때와 달랐다는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픽션 이야기 속 인물들, 설정들, 극이 중요한 거지, 전후 혹은 바깥의 것들은 고려에서 제해도 됩니다.

이러한 틀들이, 그리고 그것을 흡수하고 다시 비공식적인 2차 창작물로 내놓는 과정이, 정신건강에 좋다, 이 말입니다. 왜냐? 불확실한 세상에서, 감당할 수 있는 틀에 든 무언가를 그냥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더욱 잘게, 다른 누군가가 또 흡수하고 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놓는 것이, 마음에 꽤 예측 가능한 보람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네. 구조 조정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잖아요. 제가 이번 시즌에 별일이 다 있었고, 별생각을 다 했습니다. 구조를 새로 디자인하고, 결국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 대체 뭐가 필요한가, 다방면에서 생각해 봤어요. 몸 관리도 중요하고, 정신 관리도 중요하고. 그러한데, 그중에서도 제가 요즘에 특히나 관심을 갖는 개념이 초연함입니다.

그런데 이 초연함이 뭔가… 이걸 해석하는 방식이 다양하더라고요. 간혹 초연함을 ‘자포자기’에 가까운 뭔가로 해석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초연함은 그런 것보다는 좀 더… 충만한. 그런 초연함이에요. 필요한 걸 포기해서 생기는 초연함이 아니라, 충만해서, 더는 필요한 게 없어서 생기는 초연함.

그런데 소위 말하는 현실 세계에서 필요한 걸 다 갖기란 좀 어려울 수 있단 말이죠. 당장에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간을 빠르게 가게 할 수도 없고, 느리게 가게 할 수도 없으며, 내 겉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고.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초연함을 좀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이때 생각이 든 겁니다. 제가 원래 꽤 잦은 빈도로 하던 거. 비공식적 2차 창작. 책을 봤으면 책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를 봤으면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음악을 듣고도 메모를 남겨 보는 등의 행위. 이 행위들은 타인의 1차 창작물이 없으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또한 내가 직접 뭔가 행하지 않으면 생겨날 수가 없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정말 훨씬 많은 위로가 되고, 뭔가… 내가 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나는 아주 조금만 나의 생각을 공유하면 되는 것이고, 다른 누가 1차 창작을 하느라 대부분의 노력을 이미 다 해놨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뭐랄까, 틀에 담김으로써 ‘현실’이라는 것보다는 모델에 가까워진 이 내용을 내가 흡수하고 소화함에 있어서 부담이 덜하고. 그만큼 뿌듯함을 빨리, 자주 느끼기도 쉽고, 따라서 구조 조정처럼 큰 변화들이 있을 때 에너지를 재충전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요것을 시즌 5에 할 것이다. 영화를 보고, 그거에 대해 얘기를 할 거다.

음… 초연함.

이거에 대해 많이 찾아봐요, 제가 요즘에. 왜 태어나서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아가지고. 그런데 왜 태어나서 왜 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다만, 그런 의문이 떠오를 때 초연함이 도움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의견이 모이는 것 같아요.

어떤 종교나 어떤 사상을 들여다봐도, 전부 기본적으로 초연함의 상태로 가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명상이나 기도도 그렇고, 아주 현대적인 듯한, 건강을 위한 운동법의 경우에도, 예를 들어 달리기를 하는 가운데에 느끼는 초연함, 그러니까 뭔가, 세상의 다른 것들이 더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느낌에 대해 얘기하고. 수련을 목적으로 하는 요가가 아닌,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요가에서도 마음의 평화에 대해 얘기를 하고. 사실 수련과 미용을 분리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음. 저는 요가에 대해 전문적으로 아는 건 아니라서요.

단식을 할 때도, 신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가벼움을 위해서도 단식을 하고, 한아임도 단식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생각할 거리가 하나 줄어서란 말이죠. 이… 한 끼를 안 먹어도 불안한 게 아니라 내일 또 먹을 게 있을 거란 걸 아는 상태는 어마어마한 럭셔리입니다. 럭셔리한 초연함의 끝판왕인 것 같아요, 단식은, 사실은.

내일 먹을 게 있을 걸 알아서 안 먹어도 되는 초연함. 이런 상태를 인생 전반에 만들고 싶은데 말이죠.

뭔가. 소비도. 돈이 없어서 안 사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게 없어서 안 사는 걸 인지하는 상태를 만들고 싶어요. 사실 저는 지금 물질적으로 그다지 필요한 게 없거든요. 옷을 더 많이 사서 딱히 좋을 것도 없고, 종이를 더 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피스 기기를 더 사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제가 스스로 초연함만 찾으면 기분이 더 좋을 텐데, 초연함을 왜 찾지 못할까.

초연함뿐만 아니라 이 기분이라는 것도 참. 기분이 막 좋고 싶은 건 아닙니다만, 기분을 좀 일정하게, 말 그대로 초연하게 유지하고 싶은데. 이것은 어떻게 하면 되는가.

약간 치트키 같은 것은 뭐냐면, 핑크색을 보는 겁니다. 저는 핑크색을 보면 진짜로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이것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파란색을 너무 많이 보면 우울해지는 건 확실하지 않나요? 하늘도 너무 많이 보면 좀 울적하던데. 그렇다면 반대급인 핑크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약간 근거가 있는 느낌 아닌가.

하여튼 간에. 기분이란 좋아서 나쁠 게 없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다가 아닌가 싶어요. 기분이 좋아야 돈이 많거나 건강해도 좋지. 아무리 밖에서 객관적으로 돈이 많고 건강하다고 나한테 말해줘도, 내가 기분이 나쁘면 돈이 안 많고 건강이 안 좋은 거랑 다름없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요즘에 많이 하고요.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굴러 들어오는 거 다 넙죽넙죽 받으면 안 되겠구나. 그리고 그 넙죽넙죽 받지 않는 것을 뭐랄까, 너무 세상에 대한 거절로 발현하는 게 아니라, 감사하되, 나에게 맞지 않음을 재빨리 인지하려면, 평소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제가 여러 분야에 대해 좀 더 세세히 리스트를 만들고 있어요, 요즘에. 내가 이 분야에서 원하는 건 뭔가, 저 분야에서 원하는 건 뭔가. 이것도 초연함에 기여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장기적으로.

왜냐하면, 뭔가… 마치 계속 기회의 창구를 열어두면 굉장히 더 오픈마인드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뭔가가 굴러들어오기 전에 미리 생각을 해두는 게 가장 확실한 것 같거든요. 뭐냐면, 어떤 옷이 필요한지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쇼핑을 가면, 옷가게에서 모든 옷이 다 예뻐 보여요. 예쁘겠죠, 뭐. 누군가가 예쁘라고 디자인하고 만든 옷들인데. 누군가는 그 모든 옷들을 입고 예뻐 보이겠지. 그러나 나는 어차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저장 공간이 많아도 그 많은 옷 중 일부만 입어보고 죽을 수 있으며, 따라서 어차피 선택을 해야 한단 말이죠.

그러니 어차피 선택할 거, 옷을 사러 가기 전에 무슨 옷이 필요한지, 어떤 옷이 좋은지 알고 가면, 그냥 어쩌다가 나의 눈앞에 굴러들어온 옷을 얼결에 ‘어? 이 옷이 나한테 좋은 옷인가?’ 하고 충동구매 하지 않게 된다고요.

그리고 인생의 다른 방면도 비슷한 게 아닌가. 특히나, 미리 생각을 해두지 않고 수많은 옵션을 마주했을 때 초연함을 잃을 것은 좀 당연하지 않나. 그렇다면 초연함을 위해, 미리 나의 리스트를 작성해 두는 게 좋지 않나…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


참말로 어렵습니다. 원하는 것을 위해 갈구하며 열심히 사는 것과, 그런 노력의 결과에 개의치 않으며 초연해지는 것. 이 밸런스를 완벽하게 맞출 수 있으면 위인이 되는 건가 봐요. 그러나 한아임은 위인이 아니다.

핑크색 보기, 이런 치트키에 기댄다. 단식은 좀 더… 지속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고. 오디오를 너무 많이 듣지 않는 것도, 초연함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영상도 그렇고요. 뭐든지, 남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게 좋진 않은 것 같아요. 나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데 남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알아서 뭐 하나. 그 남은 아나? 본인이 어떻게 사는지.

뭔가를 소비하더라도, 하나라도 좀 깊게 소비해서, 나를 거쳐 간 그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끔 해서, 그 얘기를 세상에 내놓으면, 그 또한 초연함에 도움이 된다.

음… 그러합니다. 한아임은 욕망이 많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초연한 상태이고 싶다. 그러면 오히려 그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시즌의 끝이잖아요? 우리가 원래 시즌이 끝날 때마다 청취 국가들을 나열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오늘 할 겁니다. 그런데 이번 시즌까지만 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앵커에프엠, 즉, 아임 드리밍 팟캐스트를 호스팅하는 플랫폼에서 기간별로 국가를 필터링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역대 청취 국가를 다 뭉뚱그려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국가는 점점 많아지되, 시즌도 점점 많아지는데, 그걸 시즌별로 볼 수는 없는 거야.

그래서 이번 시즌에 마지막으로 국가 읽기를 할 겁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그리하여

대한민국, 미국, 베트남, 슬로바키아, 네덜란드

독일,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캐나다, 중국

멕시코, 대만, 핀란드, 브라질, 스웨덴

인도네시아, 태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스위스,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루마니아, 홍콩

스페인, 영국, 폴란드, 인도, 덴마크

우즈베키스탄, 아일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쿠웨이트, 리투아니아, 파라과이

시즌 4 졸업사진 ❤️

와아아 39개국이 지금껏 아임 드리밍을 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디서 오또케 찾아서 들어주시는지, 참 신기방기해요. 특히나, 머나먼 나라들에서 들어주시는 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말로 우리를 이어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김영하 님의 ‘오직 두 사람’이라는 단편 소설을 아십니까? 김영하 님의 단편 소설집 제목이기도 하고, 거기에 실린 첫 단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 가장 첫 부분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보고 싶은 언니에게

어제는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읽었어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언니는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스탈린 치하를 피해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난 수십 명 중 하나예요. 뉴욕에서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은 언니네가 전부예요. 고향에서는 러시아어가 표준어가 되었고, 언니네 언어는 이미 소멸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와요. 하지만 언니네가 정착한 뉴욕은 달라요. 수백 개의 화석 언어들이 아직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어요. 고향에서조차 잊힌 말을 그대로 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뉴욕을 언어의 박물관이라고도 한대요. 하지만 자식들은 영어로만 소통하고 처음에 같이 고향을 떠나왔던 사람들은 하나둘 세상을 등져요. 마침내 오직 언니하고 다른 한 명만 남아요. 둘은 어쩌면 전 세계에서 이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들일지도 몰라요. 그러던 어느 날 이 둘, 최후의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의절을 해요. 그러곤 수십 년 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요. 저는 생각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서요. 이제 그만 화해하지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말다툼. 만약 제가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자가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면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수십 년 동안 언어의 독방에 갇힐 수도 있을 테니까. 그치만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라니, 그게 웬 사치품이에요?”

캬…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임 드리밍과 이것을 들어주시는 분들은 이 소설에 나오는 이런 설정과 약간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 국가 리스트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찾아서 들으셨길래, 이렇게 다양한 국가에서 들으시는 건지. 미국이나 한국처럼 한국인 혹은 한국계가 많이 살고, 한국어가 활발히 사용되는 지역에 살지 않으시는 분들은 한국어로 된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신지.

아무튼. 이번 시즌에도 다양한 분들이 들어주셨다. 우리는 정말로 고무고무하다. 정말로다가 대단하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팟캐스트 업로드 주기를 바꿀 거예요. 이번 시즌 끝나고서는 지금까지처럼 쉬는 기간을 가지고, 5월 5일에 돌아올 겁니다. 그러고서는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올리는 구조로 바꾸려고 해요. 즉, 시즌 사이사이에 쉬는 기간 없이, 그냥 죽 2주마다 올리는 구조로요. 격주 업로드.

그러면 시즌 길이도 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12 에피소드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시즌이라는 개념을 유지하면 좀 좋을 것 같긴 합니다. 랜덤한 가운데에 약간의 주제적 일정성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아마 첫 영화는 메트로폴리스가 될 것 같아요. 하. 메트로폴리스. 거의 뭐, 그 어떤 식으로 영화사에 대해 얘기를 해도, 안 빠지고 등장하는 메트로폴리스인데, 이 녀석이 2023년에 미국에서는 퍼블릭 도메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퍼블릭 도메인에 얽힌 사연이 참 구구절절해요. 국가마다 다르고. 미국에서도, 뭐, 어디 무슨 판권사에 팔렸다가, 또다시 퍼블릭으로 나왔다든가? 하여간에 복잡해요.

그러나 미국에서는 2023년에 이제 진짜로다가 퍼블릭 도메인으로 나왔다고 작년부터 웅성웅성했었단 말이죠. 그런데 게다가 저희가 번역하는 책이 누아르 어바니즘이잖아요. 어번, 도시다. 그런데 메트로폴리스 제목이 말 그대로 메트로폴리스인지라, 누아르 어바니즘 챕터 1에 메트로폴리스가 나옵니다.

그런데 5월 5일 에피소드에서 다룰 건 누아르 어바니즘 책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라, 제가 메트로폴리스를 볼 때… 어, 한아임은 뭘 봤나, 그거에 대해 얘기할 겁니다. 같은 영화를 봐도 사람마다 무엇에 주목하는지는 제각각이니까요. 누아르 어바니즘에 나오는 영화들을 다루면서도, 누아르 어바니즘, 어두운 도시가 제가 주목하는 지점은 아닐 수도 있어요. 책 얘기는 나중에 언젠가 따로 할 테니까, 오히려 좀 안 겹치는 얘기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일부러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하진 않겠다. 그렇다고 일부러 똑같은 얘기를 하려고 하지도 않겠다.

5월 5일까지, 메트로폴리스를 구할 수 있으신 분들은 한번 봐 보시면 좋겠습니다. 흑백영화예요. 영화계의 시조새 같은 영화. 퍼블릭 도메인이긴 하지만, 중간중간에 광고를 넣은 형태로 스트리밍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퍼블릭 도메인인 거와 별개로 스트리밍 자체에 자원이 들어가기도 하니까 그런가 봐요.

그, 왜, 위대한 개츠비나 그 이전에 나온, 퍼블릭 도메인 소설들도, 그 소설들이 아무리 공짜여도 그걸 묶어서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으로 팔지 않습니까? 네. 퍼블릭 도메인을 따로 검색해서 무료로 보기보다는, 돈을 내고 원하는 리딩 기기에 딱 바로 도착하는 걸 선호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것과 비슷하게 퍼블릭 도메인 영화도, 그걸 어디 파일을 찾아서 어찌해서 저찌해서 보는 것보다 광고 몇 개가 끼워져 있더라도, 편하게 보는 걸 선호하는 관객들이 있는 거겠죠.

아무튼 이제는 메트로폴리스를 볼 수 있는 옵션이 너무 많아서, 다양한 여러분의 거주 국가에 따라 검색해 보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른 영화들은, 요즘 영화라고 볼 순 없되 그래도 메트로폴리스보다는 너무 요즘 것이라서, 저도 그때그때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특히나, 스트리밍 사이트들에 특정 영화들이 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고 가는 영화들도 있단 말이죠, 계약 조건에 따라. 그래서 지금은 볼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나중에 봤더니 없어진 영화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따라서, 미리미리 찾지 않겠다. 그때그때 보겠다.


이번 마무리 에피소드에는 음악만 나오는 부분을 많이 넣어봤습니다. 초연함에 음악도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촛불. 촛불이 정말 도움이 돼요. 촛불은 확실히 주의를 집중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촛불의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왜, 불멍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죠.

물멍은 좀 울적해질 위험이 있다고 저는 생각이 드는데, 불멍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현대인이 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불멍 중 가장 쉬운 불멍은 역시 촛불이다. 우리가 장작을 패서 모닥불을 피기에는 좀 어려우니까요. 촛불은 얼마나 간단하게 우리에게 따스함을 가져다주는가.

다른 불은 다 끄고, 촛불만 켜면, 흔들리는 것이 내가 아니라 불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것이 물멍의 원리와도 같은 것 같고, 대도시에서, 사람 많은 공원이나 카페에 앉아서 즐기는 고요함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흔들릴 때 나만 있는 데 가면 더 흔들려요. 저는 그래요. 나만 있는 데 가는 거는 좀 덜 흔들리는 단계에서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면 세상이 뒤집어지는 수가 있어요. 저는 그래서 인류라는 종 중 꽤 유의미한 비율이 대도시에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잖아요. 도시에 뭣 하러 사나? 비싸고, 아무래도 시골보다는 공기가 안 좋고, 때로는 더럽고, 사건사고도 많은데, 왜 도시에 사나?

흔들리는 게 내가 아니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가 아무리 누아르해도, 그게 나 때문이 아니라 도시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어서.

누아르 도시든, 물멍이든, 불멍이든, 다른 흔들리는 것을 봄으로써 내가 그리 많이 흔들리고 있진 않구나, 하는 단계를 거친 다음에,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아서 내 흔들림이 두드러지는 곳으로 가야, 타격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충격 요법이 좋을 때도 있긴 하지만, 너무 얻어터지면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단 말입니다. 적당히 얻어터져야 다시 일어나서 링에 올라가지,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패면 다시 못 일어나요. 그리고 남은 나를 패도, 나는 나를 패면 안 된다.

네, 여러분. 5월 5일까지, 스스로를 패는 것을 금지합시다. 그럴 시간에 초를 켜고 불멍을 해보자. 음악을 좀 들어보고. 음악도 너무 울적한 거 말고, 적당한 걸로다가. 좀 들어보고.

건강을 챙기고. 신체가 건강해야 정신 챙길 생각도 들죠. 정신을 챙기려면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이 첫 번째 단계로 누누이 언급되는 게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수명이 짧아도, 그 짧은 수명이 언제 끝날지 몰라서, 가야 할 길은 늘 멀어요. 내일 죽게 되더라도 오늘은 내일 죽을 걸 모르면 오늘은 긴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지금껏 온 길이 길게 느껴져도, 그것은 과거이기에, 오늘 또 매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 시작부터 힘들지 않도록, 초연함을 좀 장착해보자. 그리고 그 장착도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왜냐하면, 너무 열심히 하는 순간 초연함에 위반되는 거니까. 적당히 대충. 존버하되 너무 심각하게 하지 말고. 되는대로 하되 방향을 잃지는 말고. 꼭지점으로 가보자.

이것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곳으로 향해가기 위한 마음 상태가 아닌가. 이것이 결론인가? 대체 결론이 뭔가?

결론 없습니다. 네. 결론이 없어요. 결론을 알면 한아임은 교주가 되어 있겠죠. 결론도 없는 자들이 교주 대우를 받아가지고 문제가 많은 모양이더라고요. 저는 넷플릭스의 그 다큐멘터리를 보진 않았어요. JMS? 그거 다큐멘터리. 왜 안 봤냐면, 봐봤자 빡만 칠 거기 때문에 안 봤습니다. 물론 그 다큐멘터리를 만드신 분들이 만든 그 자체는 너무나 필요한 행위지만, 한아임이 그것을 보고 싶진 않다. 안 봐도 알겠어요. 무슨 그… 특정 범죄 행위를 제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기에, ‘안다’고 함은 특정 범죄 행위를 아는 게 아니라, 어… 답 없는 이 세상에서 답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답 준다는 미친 자에게 혹해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지, 안 봐도 알겠다… 이런 뜻입니다.

답이 없다는 게 답입니다. 답 준다는 사람한테 혹하지 마세요. 생각을 아무리 해도, 특히나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모든 단서를 갖는 게 불가합니다. 어떻게 모든 걸 알겠어요, 인간이. 남의 속사정은커녕, 자기 속사정도 몰라서 초를 켜고 내가 흔들리나 안 흔들리나 봐야 하는 게 인간인데.

저는 생각이 많은 편인데도, 생각을 오히려 안 해야겠다는 쪽으로 요즘에 계속 생각을 합니다. 어이가 없죠? 생각을 안 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한다. 왜냐면, 생각으로 안 되는 게 너무 많거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단서가 있으면 단서를 있는 대로 모으고, 생각할 거 빨리 생각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생각은 깊게 하는 거지, 길게 하는 게 아니라고. 저는 십분 동의합니다. 길게 생각하는 거 생각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깊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길게 생각하는 거, 그냥 길게 생각하는 거예요. 오히려 길게 생각 안 하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을 요즘에, 길게는 아니고 짧게 자주 합니다.

그러합니다. 어.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여러분? 메트로폴리스, 기회 되시면 한번 봐보세요. 5월 5일에 메트로폴리스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건강 챙기시고, 이를 통해 우리 정신도 챙깁시다. 앞으로 갈 길이 창창합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모든 음악

Opening

  • All Things Fade – Jameson Nathan Jones

Within episode

  • Yoav Ilan – White Waltz
  • Francesco DAndrea – Sur Le Manège
  • Charlie Ryan – An Ivory Tower
  • Yoav Ilan – Waltz for Lulu

Closing

  • Sugar Colours – Crazy Paris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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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한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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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