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드리밍 [Ep. 5] 연애감정: 진짜와 가상](https://aimdreaming.imaginariumkim.com/wp-content/uploads/2022/05/5_아임-드리밍-커버-1568x1568.jpg)
1: 오프닝
00:00:00-00:04:40
[음악: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이것은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잠에 대한 압박감을 잊고, 적당히 남의 딴생각을 하다가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팟캐스트입니다.
오늘 내용에 앞서, 또 하나의 국가 대표가, 우리의 수는 적지만 범위는 드넓은 팟캐스트 클럽에 추가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네. 지금 팟캐스트 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관계로 청취자 수가 아직 적기 때문에, 지금 들으시면 아임 드리밍 클럽에서 국가 대표가 되실 수 있어요.
새로운 국가는요, 브라질 대표님! 네. 앵커에서 보고 있습니다. 저번 회차에서 앵커닷컴이라고 불렀었는데, 그게 아니고 이름은 그냥 앵커고, url은 앵커닷에프엠이더라고요, 이 팟캐스트 호스팅 서비스하는 데 이름이요.
네. 브라질. 환영해요. 어떻게들 찾아서 팟캐스트를 들으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신기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저번 주에 ‘물성’에 대해서 좀 얘기를 했는데, 이번 주에는 그것과 관련해서 연애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대체로 정상 사회에서 연애가 언급되면 기대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아마… 얘기를 안 할 거예요. 이 팟캐스트는 특이 취향자들을 위한 겁니다. 성적 취향이 특이하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뭐, 성적 취향이 특이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정상 사회에서 얘기하는 뭐, 가슴이 콩닥콩닥? 이런 거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뭐 콩닥거리겠죠. 그런데… 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만, 앞선 에피소드들을 들으셨던 분들은 대강 감이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랜덤하고 추상적인 것에 대해 얘기한다는 거예요. 각자의 실제 연애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저는 그보다는 추상적인 측면에서의 육체, 정신, 기타 등등에 대해 얘기할 겁니다.
19금은 아닙니다.
자,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음악 FADE OUT.]
2: 살덩어리와 번뇌
00:04:40-00:12:51
네. 여러분?
19금 아니에요. 기대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음. ‘섹스’라는 단어를 말한다고 해서 야한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성적 경험이 없으신 분들. 그러니까 나이를 불문하고, 꼭 육체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섹스라고 말만 하면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음란마귀가 씌인 생각을 하시는 분들. 그분들은 이번 에피소드에서 실망하실지도 모릅니다.
이건 19금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음악: The Swan (Saint-Saëns) Yael Kareth]
우리에게는 성이 있고, 그것이 무성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삶에서 성을 아예 논외로 하기엔 어렵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성에 얽혀서 태어났어요. 실험실에서 양을 만들어도 성이 얽혀 있습니다. 종의 존속 자체가 성에 얽혀 있기 때문에, ‘섹스’라는 단어만 듣고 웃음이 터진다? 혹은 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 그렇다면, 왜 섹스가 그 개인에게 그런 우습거나 야한 의미를 갖게 되었나, 궁금합니다.
오히려, 여러분. 자꾸만 살덩이를 보면, 야하지 않게 됩니다. 이게 딱히 더 좋거나 나쁜 건 아닌데, 그냥 현상이 그렇더라고요.
왜 이걸 아냐면요. 저는 어린 시절에 라이프 드로잉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라이프 드로잉이란, 살아 있는 실제 모델이, 사람의 경우라면 대개는 나체 상태로 방 가운데에 서 있고, 그 주변을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빙 둘러싼 형태로 진행되는 수업을 말합니다.
아무튼, 그때 그 시절에 수업을 진행하던 강사가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을 보고 모델에 관해 말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저것은 고기란다.”
[음악이 계속되다 끝난다.]
이것은 비하의 뜻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당시 학생들이 고등학생 나이대였거든요. 이 어린 학생들이. 나체를 보고. 갖가지 상상을 할 수 있잖습니까? 특히나, 섹스에 대한 불필요하게 복잡한 관념을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적이지 않게 가르치는 어른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서 자랐을지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 강사가 그런 말을 한 거였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러 온 거라고요.
그리고 그림은, 점, 선, 면, 나아가서는 덩어리를 보고, 매체로 옮기는 일인 거라고요.
그런 뜻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실제로. 고기가 어때서요?
신체란—인체 역시—살이고, 뼈이고, 피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빈 곳이 있고, 이 강사의 말뜻은 아마 그런 거였을 겁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그리라고. 있지도 없지도 않은 네 머리의 잡생각에 집중하지 말고. ‘중생이여, 번뇌에서 벗어나라,’ 이런 거였겠죠?
네. 그렇습니다.
번뇌가. 저는 참 번뇌가 많은데. 뭐, 아시겠죠? 이런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줄줄이 얘기하는 것만 봐도 번뇌가 많잖아요. 게다가 저 개인적인 경우에는 불면증의 이유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이니까. 그것도 걱정도 아니고. 막 신나는 생각. 앞으로 뭐 할까. 세상이 어떻게 될까. 이런 것들 말이죠.
라이프 드로잉을 할 때는 그냥 앞에 있는 덩어리를 보면 되는데, 불면증의 경우에는 참… 잠자려고 누워 있을 때는 정말 번뇌를 없애기가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이 팟캐스트는 번뇌를 ‘꿈자리 수다’라는 형태로… 나름… 어떻게든 유용하게 승화 비슷한 걸 시킨 겁니다. 무용한 걸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 요즘 트렌드이지 않습니까? 혹은 무용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유용하게 만드는 행위.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트렌드라고.
무용한 걸 무용한 대로 두라는 게 컨셉이어도, 그 컨셉을 통해 사람들이 그 컨텐츠를 찾을 수 있으면, 그게 무용의 유용화라고 생각해요. 아이러니하지만, 그렇습니다. 무용을 무용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유용해지지 않았던가요? 그러면 무용이 유용한 거겠죠.
3: 꼼수 및 분량
00:12:51-00:16:51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Mallets, F maj, lullaby, phrase – Artlist Original]
사실 이 연애라는 주제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이걸 좀. 짧게 해보려고. 에피소드를.
여러분. 저의 줄줄이 사탕성을 제가 아무리 올해 좀 더 포용 및 포옹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참 이게… 모르겠어요. 잘하는 걸 더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렇게 분량 조절을 못 해도 되는 건지.
처음에 팟캐스트 할 때 45분에서 1시간짜리 에피소드들을 만들 거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한 시간을 다 훌쩍 넘게 되는 거야.
그래서 이 연인에 대한 부분을 저번 에피소드에서 떼어서 가져온 거예요. 저번에 물성에 대해 얘기했잖아요. 그리고 물성과 성은 포유류에게 떼어놓기 어려운 개념들이라서 연애 토픽을 저번 에피소드에 넣을까 했었는데, 정말 너무 길어져가지고. 에피소드가 두 시간이 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로 분리한 겁니다.
그런데 이게 또 아이러니한 것이… 어떻게 보면 ‘육중물성’ 에피소드에서 ‘연애’ 파트만 떼어내어서 주제가 작아진 건데, 어떻게 보면 또 확장입니다.
그냥 저번 에피소드에 합쳤으면 쳐내고 쳐내서 분량을 줄였어야 할 얘기를, 이번 에피소드로 가져와서 아예 확장해버려서 이렇게 또… 주절주절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분량을 좀 적당히 맞춰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에 부려본 꼼수입니다.
1시간 반짜리 에피소드도 뭐, 물론 좋지만… 뭔가…
좀 여러분이 계획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불면증자도 계획이 다 있잖아요. 가뜩이나 잠이 계획대로 안 돼서 화나는데 이 팟캐스트 에피소드까지 막 너무 분량이 뒤죽박죽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되도록 그래도 1시간에라도 맞춰보는 걸로. 1시간 반은 넘지 않는 걸로.
노력을 좀 해보는 걸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4: 그래도 끈덕진 것
00:16:51-00:26:45
[음악: Sauce Castillo – Phil David]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는 19금은 아닌데, 그래도 아무래도 연애 얘기를 하려다 보면, 끈덕진 것들에 대해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생물학적인 거라고 생각하면 개념들에 대해 음란마귀적이지 않게 얘기할 수 있을 거예요. 생물학, 기술, 역사, 이런 거 얘기할 겁니다.
그런데 그전에, 단어 얘기부터 해볼게요. 연애감정이라고 제목에 썼는데, 그렇다고 해서 로맨틱해야 한다거나 로맨틱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섹스든, 성이든, 연애든, 똑같은데, 뭐가 똑같냐 하면, 사람마다 그 단어들을 쓰는 의미가 다 다르고, 상황마다 또 다르다는 점이 똑같습니다.
극을 보면 자주 나오죠? 어떤 사람이 바람은 오지게 피우고 다니면서, 자기 배우자가 맞바람을 피우면 경기를 일으킵니다. 이것만 봐도, 자신에게 허용되는 섹스, 성, 연애와, 타인에게 허용되는 섹스, 성, 연애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뭐, 하나의 극 안에서 정략 결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연애 결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연애 결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상대는 정략이었다는 둥, 영원할 줄 알았는데 1년 만에 각방을 쓴다는 둥, 뭐, 이 세상에는 별의별 형태의 섹스며 성이며 연애가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 에피소드에서 말할 것은 아주 중립적인? 개념들입니다. 추상적인 것들. 각자의 성생활은, 각자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음악이 계속되다 끝난다.]
그.러.나. 그 모든 규정을 피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놀랍게도 일정한 것은, 그 모든 다양한 성에 얽힌 개념들이 끈덕진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물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체액 같은, 아주 어떻게 보면 1차원적인 요소들부터, 좀 더 우리 눈에 안 보이는, 냄새 같은 것까지 말이죠.
사실 체액이든 냄새든, 그것들에 끌리는 것은 호르몬 같은 구성 물질 때문일 거란 말이죠. 그러니 체액도 냄새도 끈덕진 물성이 있는 건데, 차이는 체액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진다는 것이고, 냄새는 기체 중에 흩어져서,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냄새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조차 알기 어렵다는 것이겠죠.
현대 사회에서 그렇단 얘깁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왜 그, 여러 실험들을 했잖아요. 뭐, 몇몇 남자더러 며칠 동안 같은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게 하고, 이후 몇몇 여자들에게 아무 티셔츠나 골라보라고 했더니, 자신과 유전학적으로 가장 다른, 그러니까, 번식에 가장 유리한 남자가 입었던 티셔츠를 골랐다더라. 이런 실험이 있었죠. 그런데 이걸 의식적으로 생각해서 ‘아 번식할 때 유리해야지’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이게 본능이었다는 거예요. 이 끌림이.
옛날 시대에는 아마 더… 이곳저곳에서 성적 냄새가 풍겼던 것 같아요.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일화가 유명하죠. 이게 진짜인지 그냥 전해지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을 때 이렇게 편지를 보냈대요. ‘조세핀, 씻지 말고 있어라.’ 음. 네. 조세핀 냄새가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조세핀은 씻을 수는 있는 환경에 있었던 모양이란 말이죠. 씻을 수 있으니까, 씻을지도 모르니까 씻지 말라고 했겠죠? 그런데 당시 프랑스 평민들은 어땠을까요? 아마 씻는 옵션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겠죠? 뭐 시냇물 같은 데서 목욕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일단 전구를 자유자재로 못 쓰잖아요. 그러니 밤 시간에는 목욕을 못 했을 것이고, 겨울에 추우니까 못 했을 것이고. 또, 세탁기 없죠. 식기세척기 없죠. 냉장고 없죠. 그러니 얼마나 바빴겠어요.
여러분 진짜, 집안일은. 끝도 없어요.
끝도 없고. 승진도 없고. 휴가도 없어.
그래서 적당히 해야 돼요.
아무튼 그런데, 나폴레옹이 조세핀한테 보냈다는 이 편지가, 말이 되는 것 같아요. 냄새란 건 거의 순간이동법에 버금갈 정도로, 한번 맡으면 거기에 기억이 봉인되지 않나요?
그러니 나폴레옹이 집에 돌아왔을 때 조세핀 냄새를 맡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그… ‘향수’라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향, 아주 그냥 마성의 향을 향수 형태로 담기 위하여 그로테스크한 일을 벌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원작은 책이고, 영화로도 나왔었습니다. 과거 시대가 배경인데, 최근에는 다시 어댑트되어서, 현대를 배경으로 한 독일 미니시리즈도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에도 있어요. 다 쇼노츠에 링크할게요.
5: 바라만 보아도
00:26:45-00:31:39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Harp, F major, singular ascent – Artlist Original]
아무튼 그런데. 이렇게 냄새며 체액이며를 생각하다 보면, 포유류의 성이란 건 굉장히 물질적인 것 같지만, 우리가 또 포유류끼리의 감정적 연결을 논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는, 전혀 물질적인 것 같지 않단 말이죠.
바로. 눈빛입니다.
[음악: Lactam – Leroy Wild]
눈빛 교환. 아주 클리셰죠. 대개는, 클리셰이다 보니, 운명적이어야 하니까, 두 명의 사람만 교환에 참여합니다. 두 사람, 한 쌍요. 이 둘이, 뭐, 파티 같은 데를 갔는데, 큰 방이 있다고 쳐봅시다. 거기에 사람이 막 바글거려요. 이때, 우리의 주인공들 두 사람은 서로 방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뭐, 각자 술을 홀짝여요. 파티가 막 지루해요. 내가 여기 왜 있나 싶어요.
그러다가 눈길을 쓱 돌렸는데, 웬걸. 방 건너편에 서 있는 운명의 상대와 눈이 마주칩니다.
이런 클리셰.
살과 살이 닿지 않았는데도 연결되는 무언가.
이게, 물질이 관여되지 않았다는 그 뉘앙스 때문에 더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걸까요? 플라토닉하다고 생각되어서?
[음악이 계속되다 끝난다.]
그런데, 모르겠어요.
눈빛이라는 것도 결국엔 뇌에서 발생하는 것일 텐데, 그러면, 뉴런은 만질 수 있는 물질인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눈빛도, 마치 냄새가 줄어든 현대 사회에서의 호르몬적 체취처럼, 우리가 의식적으로 물성을 갖고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그저 물질의 작용인가요?
이 토픽이… 유구한 사이언스 픽션의 역사에서 언급되는 그 주제와 얽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몸은 정신과 분리할 수 있는가.
몸이 정신인가?
정신이 몸인가?
정신을 다른 몸에 넣을 수 있는가?
몸이란 것이 그저 원소들의 집합체라면, 다른 원소들로 비슷한 기능을 하게 하면 정신이 그 몸을 돌아가게 할 수 있는가? 혹은 그 몸이 그 정신을 지탱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들.
나아가서는, Her 같은 영화. ‘그녀’로 번역되었나요, 한국어로?
아무튼, Her에서처럼. 형체가 없는 누군가와, 목소리만 듣고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6: 그자 목소리
00:31:39-00:40:24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Harp, F maj, full phrase – Artlist Original]
저는. 제 개인적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목소리만 듣고요. 특히나 대화를 한다면요.
뭐냐하면, 만약 AI가 있다고 쳐볼게요. Her에 나오는 AI 같은 무언가가.
그런데 그 AI가 몸이 없고 목소리만 있잖아요. 그 상태에서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건, 제가 심히 오디오 위주의 인간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활자 중독이기도 합니다만, 이 활자 중독이라 함은, 활자를 봄으로써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석하는 데 익숙하다는 뜻이고요. 활자의 물리적 요소들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저번 에피소드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종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을 활자와 별개로 좋아합니다. 이야기를 읽음에 있어서는 종이라서 읽는 경우는 없어요 이제. 그러니까, 내용과 물리성을 분리한다는 겁니다. 잉크 냄새가 좋아서 이야기를 읽는 것도 아니고요. 특정 폰트라서, 특정 폰트 크기라서 활자에 중독된 것도 아닙니다.
활자가 불러일으키는 내용물에 중독된 거예요. 종이, 잉크, 폰트가 아닌, 알파벳의 배열이 나의 뇌 속에서 일으키는 일련의 이벤트.
그러니까, 시각적인 것이기 때문에 활자를 좋아한다고 보기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영상이나 정지된 이미지를 아주 좋아하진 않습니다. 물론 영상과 이미지를 많이 소비합니다만, 그건 이야기 때문인 게 더 커요, 제 경우에는. 영상미 때문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저는 그게 아니란 거죠.
그래서. 제가 이런 사람이라서 그런지. 목소리 듣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나 Her에서는, 목소리가 너무나 사람 목소리잖아요. 그냥 전화 통화하는 느낌일 것 같단 말이죠. 만약 그 목소리가 로보트 피규어 안에 들어 있었으면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형체는 없고 목소리만 있어서 그 영화의 주인공도 그 목소리에 사랑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만 있으니까, 어디든 같이 갈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상상은 무한하니까요. 얼마든지, 사람들은 빈칸을 채웁니다.
그런데 심지어, 거기까지 안 가도 돼요. 그렇게 미래나 공상적으로 가지 않아도 되고, 우리 주변에 꽤 흔히 보이잖아요?
장거리 연애.
장거리라 함은, 대개는 거리 때문에 자주 못 본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따라서 평소에는 전화 통화, 영상 통화만 할 것인데, 영상 통화가 아무리 좋아졌어도, 직접 보는 것과 같은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전화는. 물론 실제 목소리와 좀 다르겠지만. 그래도. 영상과 실제 비주얼의 차이보다는, 전화와 실제 오디오의 차이가 좀 더 작지 않나,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궁금한 건, 세상이 참 넓단 말이죠. 그리고 저는 이게 점점 더 넓어지고 무한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질의 제약을 덜 받는 바람에.
따라서 제가 궁금한 건, 보다 넓은 세상이 왔을 때 포유류 인간의 성, 섹스, 연애가 어떻게 변화할까라는 점입니다.
지금 현재, 21세기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고 있는 요… 대강 요 시점. 이때 이전에는, 거의 뭐… 포유류의 성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것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생물학적 번식 말입니다.
그런데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요?
음. 두 사람이 사랑을 하려면 시공간이 일치해야만 하는 시절이 엄청 길었단 말이죠. 인터넷은 물론 없고. 전기도 없고. 심지어 글도 없던 시절. 그때는 당장 내 옆에 있는 같은 종의 개체와 번식을 했을 겁니다. 뭐… 옆집 철수, 옆집 영희랑 그냥 짝짓기 하는 거예요. 다른 선택 사항이 없습니다. 태어나서 한 곳에서 계속 살다가 거기서 자손 번식을 하고, 거기서 죽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시공간이 일치하지 않고도 서로의 존재와 영향을 피력할 수 있는 시대라면 성의 형태는 어떻게 변할까요?
7: 연인, 가상, 진화
00:40:24-00:47:36
[음악: Premonition Evgeny Bardyuzha]
여러분. 이제 좀 있으면 가상 현실에서 죽은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죽은 가족들을 재현해낸 것, 정말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 무언가가 ‘진짜’ 죽은 가족 구성원인지, 아닌지는 얼마나 중요할까요?
저는 이 답을 모르겠습니다.
그 재현된 버전의 가족 구성원을 보며 좋아하는 것을 정신 승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럴지라도, 한 개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건, 그 자체로 존재가 증명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만약 죽은 내 연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물성까지 재현해낼 수 있다면. 그 연인의 실제 몸은 썩어서 흙이 되었더라도, 가상 현실에서의 그 연인이, ‘실제’라고 불리는 몸을 갖고 있는 타인보다 더 좋을까요?
저는 궁금합니다.
[음악이 계속되다 끝난다.]
동시에 그런데 저번 에피소드에서도 말했던 요소가 있죠.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라이브의 가치는 높아지는 것 같다.’ 음원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콘서트가 가치 있어지는 형태로 말이죠. 그러니까, 음원이 가치가 없다기보다는, 음악을 들어야 뭐 콘서트를 가고 싶을 거 아니겠어요? 일반적으로 모르는 가수 콘서트를 가진 않잖아요. 이렇듯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짐과, 시공간의 제약이 더욱 가치 있어짐은, 서로 반대에 놓여 있거나 동시대에 공존하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저번 에피소드에서도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점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거죠. 어떤 점이냐 하면, 앞서 왔다고 해서 진화가 덜 되었기에 나쁜 게 아니고, 뒷서 왔다고 해서 진화가 더 되었기에 좋은 게 아니라는 점. 나아가서, ‘진화’라는 개념 자체가, 옳고 그름, 좋고 나쁨과 별로 상관이 없다는 점.
[음악: On a Summer Day – Tommy Jervidal]
여러분. 생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생쥐 무리가 살고 있는 하수구가 있어요. 평화롭던 생쥐 나라에서는, 덩치 큰 생쥐들이 덩치 작은 생쥐들보다 먹이와 짝을 얻는 데에 유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수구 어딘가가 막히는 바람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생쥐들은 살아남기 위해, 평소에 안 가던 길들을 서둘러 탐색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마침, 탈출구가 발견되었어요. 그런데 이 탈출구가 아주 좁다고 쳐볼게요. 덩치 큰 생쥐들은 통과를 못 해요. 덩치가 작은 생쥐들만 갈 수 있는 거예요.
이리하여, 물이 계속 차오르는 와중에, 덩치 큰 생쥐들은 죽고, 자그마한 생쥐들은 살아서 빠져나왔다고 쳐볼게요.
그리고 그 자그마한 생쥐들이 모여서, 새로운 생쥐 나라를 건국하여, 작은 생쥐들만 있게 되었다더라.
대략 이런 겁니다.
작은 게 옳아서 작은 생쥐들이 살아남은 게 아닙니다.
작은 게 절대적으로 좋아서 살아남은 것도 아니고요.
그냥 이번에는 그렇게 된 거고요. 다음엔 또 모르죠.
[음악이 계속되다 끝난다.]
8: 나와 너의 리얼리티
00:47:36-00:57:04
아무튼.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가상으로 옮겨가고 있는 와중에, 뭐라도 하나 물성을 띤 요소를 인간 개개인의 삶에 남겨야만 한다면, 그것은 연인, 가족, 친구들이 될까?
네.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런데 사람마다 다른 점을 떠나서, 저는 이 선택 사항,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개개인이 좋고 나쁘다고 생각하여 결정하는 선택 사항의 범위가 미래에는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언가가 외부에서 말하는 ‘진짜’가 아니더라도 나한텐 진짜일 수 있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류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예전에 비해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고 있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더라도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즉, 인류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점점 더 ‘남에게는 진짜가 아니며, 남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데, 나에게는 존재하고, 나에게는 진짜이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둘러싸여 가고 있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인류를 둘러싼다’는 게, 인류 전체를 하나로 둘러싼다는 게 아니라, 인류 개개인이 각자의 버블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알고리듬만 봐도 그렇죠?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도 하잖아요? 어떤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 유튜브 추천 영상 리스트를 보라고. 그러면 그 사람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이 정도로 우리는 이미 ‘나의 리얼리티’가 ‘타인의 리얼리티’와 분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어요. 개개인의 리얼리티는 점점 더, 그 개개인들이 각자 좋아하는 것들로 구성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했을 때는, 좋아하는 것과 옳은 것을 구분해야 하는 아주 큰 이유입니다.
개인이 좋아하는 건,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어요. 그것이 좋다는데 어쩌겠어요? 대개는 ‘좋아한다’는 게 자유 의지를 넘어선 좋아함일 거예요. 그게 약간… 좋아함의 정의 아닌가요?
왜 그… 고수 있잖아요. 실란트로. 그걸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은 그냥 좋은 거고, 싫어하는 사람은 그냥 싫은 겁니다. 거기엔 옳고 그름이 없어요.
그런데 실란트로 예를 들으면 대개는 이 점에 동의를 할 텐데, 스스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좋아함과 옳음을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옳음을 주장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저번에 말씀드렸죠. 저는 개인적 절대주의자고, 제가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에는 제가 좋아하는 것도 포함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포함돼요. 그런데 다만. 그 둘을 혼동해서 남들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옳기에 똑같게 여겨줄 거라고 생각하면, 저도 그런 착각을 하긴 합니다만, 그런 착각이 소용이 없단 거예요.
특히나, 좋아하는 걸 떠나서 옳으니까 남들도 옳다고 여길 거라는 착각. 네. 이게 착각이더라고요. 세상에는 정말 놀랍게도 다양한 옳음이 있어서, 물론 타인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 설득이나, 그 설득의 효력이 딱히 별로 당연한 건 아니더라고요.
[음악: Don’t Be Stupid – Anthony Vega]
일례로, 제가 사는 동네는 다른 모든 동네와 마찬가지로 자기 집 앞 길은 자기 소유가 아니라 공동 소유거든요? 그래야 사람들이 차도 타고 걸어서 지나가겠죠. 이건 법에도 그렇고 커뮤니티 동의서에도 그렇게 써 있고 상식적으로도 그렇고 옳은 거고 좋은 건데도. 그런데도 어떤 미친 사람들은. 네, 정말 미친 거 같아요. 이 땅이. 자기 집 앞 땅이. 자기 집 앞이니까 자기 거래요.
너무 신기하죠? 아니 그러면 자기 집 밖의, 앞에 있는 땅이 자기 거면, 그 바로 앞 땅도 같은 원리로 자기 건가?
그러면 무슨 그…
[음악 갑자기 끝난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음악 다시 시작.]
이런 식으로… 지구 다 땅따먹기 하겠네?
네. 옳고 그름이. 좋고 싫음이. 아, 제 개인적인 기호가. 그런 걸 아무리 들이대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 절대주의자로 삽니다. 이 땅따먹기주의자한테 뭘 설명해요?
[음악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끝난다.]
9: 진짜란?
00:57:04-01:09:23
그래서 이 옳고 그름, 좋고 나쁨과 관련하여 제가 정말 신기하다고 여기는 점은, 지금 막 생기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현대인들의 반응입니다.
이게 정말… 이런 논의들을 제가 찾으려고 인터넷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단 말이죠. 그러면, 그러다 보면, 참말로… 혼동이 많아요.
그래서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 기술들에 대해 얘기한다고 해서 이 기술들이 좋다는 게 아니에요. 나쁘다는 것도 아니에요. 이 기술들이 신기술이라서, 저 개인적으로도 아직 잘 모르겠고요, 인류 전체에 좋을지 나쁠지는 당연히 모릅니다. 그걸 알았으면 팟캐스트에서 주절대는 게 아니라 뭐 대선에 출마하든 종교 지도자가 되든 그러고 있겠죠.
아무튼 지금 막 생기는 새로운 기술들이라 함은, 이런 겁니다. 메타버스. NFT. 가상화폐.
이것들을 아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주 열렬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양쪽 다 아니고, ‘적당히 관심 있는 쪽’ 정도인데, 이 양쪽 진영의 대체적인 옳고 그름, 혹은 그들이 생각하는 이 기술들이 인류에 미칠 좋은 영향 혹은 나쁜 영향 같은 것들은 이 에피소드와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구체적으로 관련이 있는 포인트는 이거입니다.
이 메타버스, NFT, 가상화폐가 진짜냐 아니냐.
이 부분, ‘진짜’라는 부분이 놀랍게도 양쪽 진영에서 꽤 중요한 포인트인 모양이더라고요.
저는 이게 너무 신기합니다. 아, 그러니까, ‘진짜’가 논의되는 그 자체가 신기한 건 아니고, 그 점이 이제 와서야 논의되는 게 신기하단 겁니다.
왜냐하면… 일단, ‘진짜 돈’이라니.
근대에 들어선 은행들을 기반으로 한 돈은 진짜인가요? 금본위제. 금.본.위.제. 아 힘들어. 금본위제는 사라진 지 오래됐잖아요. 그리고 온 세계에서 사람들이 진짜가 아닌 돈을 자기 것처럼 씀으로써 빚을 집니다.
그리고 또한, 이게… 나라마다 법이 있을 거예요. 존재하지 않는 돈을 얼만큼씩 빌려줄 수 있는지. 은행에서 돈을 빌려준단 말이죠. 실제로 그 돈이 있어서 빌려주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은행에 두었던 돈을 동시에 빼가지 않을 거라는 가정하에 은행을 굴리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줍니다.
이 모든 것, 있지 않은 돈을 빌리고, 빌려주고, 갚으라 하고, 갚지 않고, 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돈의 사이즈를 불려가는 과정에서 몇 번의 경제 위기가 세계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궁금한 거예요.
‘진짜 돈’이라니.
가상 화폐가 가짜라면 지금껏 있었던 돈은 그러면 진짜일까요?
그리고 NFT도 비슷합니다.
일단 저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NFT의 그 측면은 잘 모르겠고요, 제가 NFT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이 도구가 앞으로 불필요한 중간자들을 제거하고, 각종 계약 과정을 간결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나 싶어서 관심이 있는 겁니다.
아무튼 그러면, NFT가 가짜라고 쳐볼게요. 그런데 종이 계약서도 가짜라고 하면 가짜일 수 있지 않나요? 그런데 종이 찢으면 계약 무효화되나요?
컴퓨터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으면 유효하죠. 아닌가요? 음…
그렇다면 어차피 컴퓨터 내지는… 시스템 어딘가에 있는 것이… 현대의 ‘계약’이라는 개념… 아닌가요?
나아가서, 여러분 혹시 주변에, 아니면 픽션 극 중에서, 돈을 매트리스 아래에 숨겨놓고, 이 지폐 내지는 동전만이 진짜 돈이라고 믿는 인물을 본 적 있나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은행 계좌에 찍혀 있는 숫자는 가짜고 지폐는 진짜인가요? 아니면 둘 다 진짜일까요? 아니면 둘 다 아닌가요? 그렇다면 물물 교환만이 진짜인가요?
음… 옛날 옛적에, 사진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때, 어떤 사람들은 사진을 찍히면 자기 혼이 빨려 나간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진이 사악한 것이라고 생각했대요.
무엇보다, 진짜가 아니라고 여겼겠죠. 진짜 ‘나’는 여기 있는데, 저 사악한 사진이 가짜 ‘나’를 담았다고 여긴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진짜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여기 있고, 사진은 사진인 건데, 뭐가 진짜냐고 따지자면 ‘나’일 거란 말이죠. 그런데 ‘나의 사진’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나’라는 존재를 떠올릴 수 있고, 연관 지을 수 있으면, 사진은 그래도 가짜인가요?
그리고… 과연 가상 세계가 올까요?
왜냐면 지금, 메타버스가 온다고 말은 많은데, 뭐, 안 올 수도 있나? 음…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인류가 계속해서 가상화되었다고 생각하긴 하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가상화된 버전이 나타날 거라고 여기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인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음악: Fire Loop – The Original Orchestra]
제가 대공황 이전의 미국의 1920년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그때 사람들은 대공황이 올 걸 몰랐잖아요. 정말 그 당시 뉴욕 같은 대도시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보면… 얼마나 세상 다 가진 것 같았겠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도시에 모여, 마시지 말라는 술 마셔대고, 전기는 밤새 들어오고, 기차로 대륙을 횡단하고, 부, 어마어마한 부. 당시 사람들이 겪어본 적 없는 부.
그것이 넘치고 넘치다가, 웬걸. 대공황이 왔네.
이게 너무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시대에. 조만간 대공황이 올까요?
이 대공황도 메타버스처럼, 온다고 한 지는 꽤 됐는데. 마치 캘리포니아의 지진처럼. 언젠가 올 것 같긴 한데. 언제 올지는, 모릅니다.
[음악이 계속되다 끝난다.]
10: 자극 신호
01:09:23-01:16:04
아무튼. 사진을 보았다.
사진에 인물이 있다.
나의 뇌는 그 인물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우리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매일같이 겪는 현상입니다.
또한 오디오로도 이 비슷한 현상을 겪죠.
누군가 전화를 했다.
나는 전화로 그 사람과 통화를 한다.
그 사람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는 마치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하고, 전화를 끊는다.
시각. 청각. 요 두 가지가 지금까지 인간 사회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주요 감각들이었어요.
그런데 드디어 다시 연애로 돌아와 보자면.
후각. 그러니까, 아까 말했던, 나폴레옹과 조세핀 같은 커플 사이의 체취.
그리고 그에 얽힌 미각. 네. 냄새만 맡았겠어요? 여기저기에 혀를 썼겠죠.
그리고 세상이 오감으로 나뉘어져있다고 생각해보았을 때, 마지막 남은 다섯 번째 감각, 촉각.
이… 후각, 미각, 촉각이. 아직 시공간을 뛰어넘기가 어려운 감각들이라고 봅니다.
향수라는 것을 우리가 쓰긴 하지만. 정말 그… 아까 언급했던 책 내지는 영화 내지는 드라마 ‘향수’에 나왔던 그런 그로테스크한 방법을 쓰지 않는 한, 자기 연인의 냄새를 시공간을 넘어 전달하기엔 어렵단 말이죠. 어떤 그로테스크한 방법인지는, 너무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더 자세히 말하지 않을게요.
아무튼 그래서… 이… 만약에… 만약에 후각, 미각, 촉각까지 시공간을 뛰어넘어 저장되고 전달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것들이 전달되는 그 세계는 진짜인가요?
[음악: Footsteps In Mars – Skygaze]
음… 이런 세계를 실현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온몸을 덮는 슈트 같은 걸 입어서 그걸로 촉각을 전달하고, 향수와 비슷하게 후각 분자를 공기 중에 뿌리고, 혀에다가 뭘 놓아서 미각을 느끼는 방법이 있겠죠. 직접적인 방법.
그런데 간접적? 아니면 또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직접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두 번째 방법은, 뇌에 자극을 직방으로 보내는 방법입니다. Neuralink 같은 회사들이 있잖아요. 머리에다가 직방으로 정보를 쏘는 기기를 만드는 회사들. 기기인지 칩인지. 뭐 하여간에.
만약에 어떤 식으로든 자극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장거리가 더는 장거리이게 될까요? 아니면 AI에게 느끼는 연애 감정이 가짜라고 불릴 수 있을까요?
죽은 배우자가 AI에 의해 재현되어서, 내가 그 사람이 풍기던 냄새를 맡고, 그 사람과 먹던 밥을 먹고, 그 사람과 자던 침대에서 똑같은 온기, 똑같은 움직임을 느끼며, 똑같은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심지어 그 사람을 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건 진짜인가요, 가짜인가요?
매우 궁금합니다.
네. 이렇게. 연애에 대한 에피소드, 그러나 연애 얘기만큼이나 추상적인 것들이 언급된 이번 에피소드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습니다.
[음악이 계속되다 끝난다.]
아마 실제 연애 생활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될 겁니다.
11: 마무리
01:16:04-01:18:17
[음악: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아니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여러분이 이걸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면, 이런 내용을 좋아한다는 뜻일 테니까, 부디, 이런 주제들에 관심이 있는, 취향이 맞는 자를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자가 육신에 들어 있는 자든, 가상의 존재든, 뭐든지 그것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으로 해둡시다.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 전혀 뭐 별로 안 짧네요. 네. 그래도 1시간. 1시간 정도에 맞추려고 앞으로도 노력은 해볼게요.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더 자세하게 궁금하시면, 저의 홈페이지 ‘보관소’에서 ‘간간 소식지’를 구독하시면 됩니다.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음악 끝.]
모든 링크
- 00:14:20 — 물성을 언급했던 저번 에피소드 (S1-4)의 녹취록
- 00:22:10 — 티셔츠 실험
- 00:23:12 — 나폴레옹과 조세핀
- 00:26:05 — 향수
- 00:31:16 — “Her” (그녀)
- 00:40:40 — 죽은 딸을 VR로 만난 엄마
- 01:01:25 — Bank Run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이유
- 01:04:48 — 사진을 처음 접했을 무렵, 그것이 영혼을 훔친다는 믿음이 존재했던 예전의 Native American 사회
- 01:13:30 — Neuralink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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