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2] 직선이 나아가면 마무리되는 원, “알파빌”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 수다의 씨앗으로 삼을 영화, <알파빌>입니다. 스포일러가 매우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스포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가 너무나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거든요. 특히나 초반 부분이요.

그래서 이 영화는 되도록이면 아무 정보 없이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무 검색도 하지 마시고 그냥 보세요. 영화를 아예 안 보실 거면 모를까, 만약 보실 거면, 이 에피소드도 듣지 마시고 먼저 영화를 보세요.

구글에 나와 있는 짧은 소개글이 있는데요, 이거… 이것도 과다 정보인 것 같아요. 저는 진짜 아무것도 없이 <알파빌> 제목만 갖고 검색해서 영화를 봤는데, 이 짧은 소개글에 있는 내용조차 스포일이면서도 하도 영화가 초반부에 혼란스럽다 보니 스포일이 아닌…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소개글은 이러합니다. ‘정부에서 보낸 요원이 Lemmy Caution’ 이거 프랑스어 발음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Lemmy Caution이 비밀 임무를 맡아 알파빌로 향하는데, 알파빌은 은하계의 머나먼 구석에 있는 디스토피아적 대도시다. Caution은 Henri Dickson이라는,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요원을 쫓고 있고, 또한 Von Braun이라는 과학자도 쫓고 있다. Von Braun은 알파 60이라는 컴퓨터를 만든 사람인데, 알파빌의 거주자들의 마음을 조종한다. Caution은 Von Braun의 딸인 Natacha의 도움을 받아 폭군 컴퓨터를 파괴하려 한다.’

그런데 이걸 모르고 보면 세상에 만상에, 영화가 그렇게 혼란스러울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초반부의 혼란이 영화의 경험에 너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줄거리는 이 소개글에 나온 게 전부거든요. 그런데 줄거리 자체보다 그 줄거리 안에 있는 인물의 경험을 공유하는 게 더 중요한 영화 같아요.

아무튼, 영화 특성상 혼란이 포인트인 것 같기 때문에, 이번 에피소드를 어떻게 진행할 거냐면요, 영화 순서대로 줄거리를 짚을 겁니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초반부의 혼란스러운 파트도 다룰 거고, 중반부에 집중적으로 전달되는 알파빌의 상황에 대한 정보들을 담은 각종 대사도 여럿 언급할 겁니다.

그다음에, 대체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인 것 같냐, 에 대해서 한아임의 생각에 대한 수다를 떨어보겠습니다. 제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알면 좋을 텐데, 할 줄 몰라서, 영어 자막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단 처음에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가 익숙한 누아르 장르인 것만 같습니다. Outer Countries 출신의 우리의 남자 주인공. 그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존슨 씨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입니다. 흑백영화에, 트렌치코트 같은 걸 입은 중절모 쓴 모습으로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음악도 음산하고 긴장감 있습니다. 전형적인 것 같죠?

그런데 여기서부터 좀 가벼운 혼란이 시작됩니다. 이 최초 혼란은 저만 이렇게 해석한 것일 수도 있어요. 이 주인공 인물이 너무 쓸데없이 쌀쌀맞은 것 같은 거예요. 첫 시퀀스에서 주인공이 호텔에서 체크인하고 방으로 가는데, 호텔 직원들이 안내를 해주면서 서류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휙, 못 들게 손을 빼 버립니다. 아니 말로 하면 되지, 안 들어줘도 된다고. 한 손으로는 서류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 피우느라 바쁜 와중에도 말로 거절을 안 하고 무슨 애처럼 서류 가방 든 손을 휙 하면서 거절을 합니다. 음. 저 같으면 손이 더 바빠서 입을 움직여서 거절할 것 같은데, 이 인물은 입이 더 바빠서 손으로 거절을 하는 인물이다.

근데 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많이들 말로 대답을 안 하고 손동작을 하더라고요. 신기방기. 프랑스적인 건지 알파빌적인 건지. 이것이 프랑스의 문화인지—영화가 프랑스어로 되어 있거든요—아니면 이것이 알파빌의 문화인 건지. 알파빌에 워낙 이상한 문화가 많아가지고 말이죠. 진짜 잘 모르겠어요.

그건 그렇고, 우리 주인공이 남자란 말이죠. 그런데 호텔에서 호텔 여자 직원이 방 안까지 들어와서 체크인을 해줍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을 유혹해요. 이게 뭔 일이래, 하면서 봤더니, 알파빌에서는 이게 정상이래요. 심지어 이게 이 여자의 직업입니다. “Level-three seductress,” 레벨 3 유혹녀가 자기의 직업인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웬 남자가 방에 들어와서 주인공을 공격하는데, 그것도 정상이래요.

진짜 혼란스럽죠? 뭔 얘긴지 알 수가 없죠? 다들 로봇처럼 움직이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이상한 면이 있다는 것까진 알겠는데, 왜들 저러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듭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를 보기가 굉장히 불편하고 답답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소리, 삐삐거리는 소리가 중요한데, 그걸 모르고 처음에 봤더니 매우 혼란스럽더라고요. 네. 요거만 알아도, 처음 보실 때 훨씬 덜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아무튼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샤 폰 브라운 양이 등장합니다. 이 여자는, 우리는 소개글을 읽어서 주인공이 찾는 과학자의 딸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그냥 모르고 보면, 아니 뭐야 이 여자? 이 여자도 묘하게 로봇 같아요. 직업은 레벨 2 프로그래머라고 하는데, 자기는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대요. 뭔 소리래.

그 와중에 남자 주인공은 계속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상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신문사에서 왔다고 하니까 사진을 찍는 것 자체야 안 이상할 수 있는데, 너무 다짜고짜 아무 경고도 없이 사진기를 들이대는데도 다들 그냥 읭? 하는 표정으로. 로봇처럼 씩 웃으면서 주인공을 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로봇인 줄 알았어요. 로봇들의 도시인가? 그런데 스포일을 확실히 해두자면, 로봇은 아닙니다. 로봇은 아닌데 사람들이 이러고 있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이 혼란 와중에, 남자 주인공이 앙리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이 역시, 소개글에 대한 정보 없이 영화만 보잖아요? 그러면 ‘아니 갑자기 저 앙리라는 남자는 또 뭐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앙리와 주인공의 대화에서 드디어 약간의 실마리가 드러납니다. 앙리는 알파빌에 적응을 못 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고 주인공에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적응을 못 하는데 자살 안 하는 사람들은 사형당한다고 합니다. 즉, 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로봇이 아니란 건 확실해지죠. 그러면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People have become slaves to probability.” 사람들은 확률의 노예가 되었다. 또한, “알파빌은 기술적인 사회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술가, 소설가, 음악가, 화가들이 있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없다.

대사가 매우 중요한 영화입니다. 대사가 없으면, 뭔가 설명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 영화에서 이미지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뭔지 우리가 연결을 할 수가 없어요. 아무튼, 주인공이 앙리와 만나는 와중에 이런 말도 나와요. 폰 브라운 박사조차 그저 논리의 명령에 복종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 관객은 이렇게 말 하나하나, 정보 하나하나에 목매달면서 대체 이 영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고민고민하는 와중에, 알파빌의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이 남자 주인공이 쓰는 단어의 뜻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궁금증을 낳습니다.

그러다가! 참 점입가경으로, 앙리가 한 여자와 성관계를 할 참입니다. 그런데 뒤에서 남자 주인공이 아무리 사진을 찍어대도 모릅니다. 플래시가 마구마구 터지는데, 앙리도 신경 안 쓰고, 여자도 신경 안 써요. 그러다가 앙리가 갑자기 죽어요. 성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옷도 벗기 전에. 아니 이게 무슨. 진짜 대혼란 환장 파티입니다.

네. 어. 이렇게 30분이 지나가요. 여러분? 소개글을 들으셨어도, 참 이게 스포일이면서 스포일이 아닌 것이, 실제로 보시면 더 혼란스러우실걸요? 저는 약간 분노가 치밀려고 할 정도였는데, 그것은 의도된 효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드러나는 영화의 메시지와 부합하기 때문이에요.


자, 드디어 설명이랄까 하는 것이 나올 때는 영화가 시작하고서 30분이나 지난 후이다. Central Memory라는 것이 있는데, 그렇게 이름 붙여진 이유는 그것이 알파 60의 논리 조직에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대사가 나와요.

“No one has ever lived in the past. No one will ever live in the future. The present is the form of all life. It is a possession that no force can take away from us. Life is like a circle spinning infinitely. The declining arc is the past. And the inclining arc is the future. That’s all there is to say. Unless words change their meanings and meanings change their words.”

“아무도 과거에 살았던 적이 없다. 아무도 미래에 살지 않을 것이다. 현재만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형태다. 그 어떤 힘도 그것을 우리한테서 앗아갈 수 없다. 삶은 무한히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과 같다. 아래로 향하는 호가 과거다. 그리고 위로 향하는 호가 미래다. 할 말은 그것뿐이다. 단어가 의미를 바꾸고 의미가 단어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게 무슨 궤변이야, 싶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그나마 최초로, 뭐랄까, 시적인 설명이 나온 것이라, 제가 열심히 받아 적었습니다. 이 말을 알파 60이 하는데, 이… 알파 60 씨가, 이 컴퓨터 씨가 상당히 철학적이에요. 존재론적인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컴퓨터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 내에서는 확실하게 설명이 안 나와요. 그럴 만한 원인에 대해서 언급이 나오긴 하는데, 아주 확실하게 이 시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영화 내에서. 시라고도 안 나와요. 그래서 또 혼란스럽죠. 영화 밖에서 제가 얻은 정보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왜냐하면 혼란이 목적인 것 같으니까요, 영화를 보는 와중에는.

알파 60씨는 이런 얘기도 해요.

“대개 고통 속에 사는 자는 대개 안녕히 사는 자와는 다른 종교가 필요하다. 우리 이전에는 여기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완전히 혼자다. 우리는 유일무이하다. 지독하게 유일무이하다. 단어와 표현의 의미는 더는 이해될 수 없다. 홀로 떨어진 단어나, 그림의 홀로 떨어진 세부 사항은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의 의미는 사라졌다. 1이라는 숫자를 알면 우리는 2를 안다고 여긴다. 1 더하기 1이 2이기 때문이다. 먼저 ‘더하기’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건 잊는다. 인간이 수백년 간 해온 행위는 서서히, 논리적으로 인간을 파괴할 것이다.

나, 알파 60은 그저 그 파괴의 논리적인 도구일 뿐이다.”


이렇게 철학적인 것처럼 들리는 말을 접한 후, 관객인 우리는 나타샤와 남자 주인공을 따라서 처형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또 이거예요. 처형 장면인 걸 모르고 갑자기 처형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

사람들이 수영장에 점프해 들어가자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는데, 알고 봤더니, 총살당한 사람이 수영장에 떨어지면 그 사람 시체를 건져 내려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수영장에 점프해 들어가는 거였어요. 그걸 마치 쇼처럼 만들어서,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박수를 칩니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가 사형당하느냐? 비논리적으로 행동하면 사형당합니다. 예를 들어, 부인이 죽었을 때 운 남자가 나오는데, 그 사람이  “naturally” 사형당해야 마땅하다고 나타샤가 말합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사형당해야 한다.

이 남자가 총살당하기 직전에 하는 말이 있어요. “One need only advance to live! Go straight towards all that you love.” 살고자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라.

그리고 또 다음 남자가 사형당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Listen to me, normal ones! We see a truth that you no longer see. A truth that says the essense of man is love and faith, courage and tenderness, generosity and sacrifice. Everything else is an obstacle put up by your blind progress and ignorance. One day…” 하다가 죽어요. “내 말을 들어라, 정상인들아! 우리는 너희가 더는 보지 못하는 진실을 본다. 그 진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믿음, 용기와 부드러움, 관대함과 희생이다. 다른 모든 것은 너희의 눈먼 혁신과 무지로 인해 생겨난 장애물이다. 언젠가는…” 하면서 죽는단 말이죠.

이… 마지막 발언권을 준다는 자체가 좀 신기해요. 어차피 죽여버릴 거, 그냥 말 못 하게 하고 죽여버리지. 아니면 알파빌에서는 비논리적이어서 사형당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이러한 발언들에 대한 소위 ‘정상인’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다음에 사형할 사람을 추가적으로 골라내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관객에게 좀 정보가 주어져서, 저 같은 경우에는 좀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 초반 30분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제 좀 각이 나오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건이 급 전개됩니다. 주인공은 사형장에서 폰 브라운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맞닥뜨리고, 그를 뒤쫓아 갔다가, 그의 보디가드들한테 처맞고 정신을 잃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타샤가 웁니다. 우는 게 금지되었는데도 말이죠.


다음 씬에서, 다행히 주인공은 정신을 다시 차렸고, 멀쩡히 걸어서 어딘가로 끌려갑니다. 취조실이에요.  거기서 기계가 질문들을 던집니다. 너 어떤 놈이냐, 하는 거죠. 너는 알파빌의 미션에,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빅픽처에 방해가 될 것이냐 말 것이냐.

결론은,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주인공은 풀려납니다. 그러고서는 심지어 Chief Engineer, 수석 엔지니어를 만나도록 해줍니다. 아직 주인공이 신문사 직원이라는 거짓말을 믿어주는 듯해 보여요. 알파 60은 물론이고 알파빌의 다른 사람들도요.

그렇게 해서 주인공과 만난 수석 엔지니어가 여러 말을 해주는데, 그중 이런 말도 있습니다.

Never say “why” Mr. Johnson, only “because.” 존슨 씨, 절대 ‘왜’라고 말하지 마세요. ‘무엇무엇하기 때문에’라고만 말하세요.

그리고 이런 말도 나와요. “everything is cause and effect.”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말은 이겁니다. “We record, we calculate, and we draw conclusions. … An order is a logical conclusion. You shouldn’t be afraid of logic. That’s all.” 우리는 기록하고, 계산하고, 결론에 도달합니다. … 명령이란 논리적 결론입니다. 논리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즉, 엄밀히 따지자면, 어떤 사람이나 심지어 기계가 따로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냥 논리적 결론이 그렇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알파빌은 움직입니다. 알파 60이 최고 대빵이라서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고, 알파 60도 계산해서만 명령을 내린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슨 알파 60이 인류를 미워해서 이렇게 세뇌시키는 게 아니라, 다만 논리적으로 원래의 인류는 열등하기 때문에 그런다는 얘기예요.

그리하여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Ordinary men are not worthy of the position they hold in the world. When we analyze their past, we are automatically lead to this conclusion. Therefore they should be destroyed. That is, they should be transformed.” 평범한 인간들은 그들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합당하지 않다. 그들의 과거를 분석하면 자동적으로 그런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그들은 파괴되어야 한다. 즉, 그들은 탈바꿈되어야 한다.

세뇌해서 이 열등한 인간들을 우월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 와중에,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나타샤와 주인공의 관계는 명확해집니다. 예를 들어, 아까 나타샤가 주인공이 처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울었다고 했잖아요? 그녀는 알파빌에서 너무 세뇌를 당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뭔지 잘 모르지만, 뭔가를 느낀다는 건 감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시적인 걸 전혀 이해를 못 해요. “The Capital of Pain” 고통의 수도, 영화 외적으로 찾아보니 폴 엘뤼아르라는 시인의 시집이 나오는데, 그녀는 몇몇 단어의 뜻을 이해하려고 성경을 찾습니다. 그리고 나타샤가 이렇게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할 때, 주인공은 이제 이해를 하겠다고 하죠. 우리, 관객도, 이제 조금씩 이해가 갑니다. 알파빌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세뇌를 당했는지.

나타샤는 특히나 conscience라는 단어를 이해를 못 해요. 양심이라는 단어를 이해를 못 한다. 이제 그 단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여기 없대요. 그러면서 성경을 자꾸 보니까, 주인공이 대체 성경에서 왜 자꾸 단어를 찾는지 어이가 없어서 책을 뺏어서 봅니다. 그리하였더니, 나타샤가 성경이라고 부르던 게 사실은 사전이었더라.

나타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Almost every day words disappear because they are forbidden. So sometimes, to replace them, they put in new words that represent new ideas. Over the past two or three months, some words I was very fond of disappeared.” 거의 매일 단어들이 사라져요. 금지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가끔은 그 단어들을 대체하려고 새로운 생각을 나타내는 새로운 단어들을 사전에 넣어요. 지난 두세 달 동안, 내가 참 좋아하던 단어들이 사라졌어요.

그러면서 나타샤는 주인공에게 이렇게도 말합니다. “When I’m with you, I’m afraid. They ordered me not to see you anymore. … I’m afraid because I know this word without ever having seen it or read it. … Conscience.” 당신하고 있으면 겁이 나요. 저들이 더는 당신을 만나지 말라고 했어요 … 내가 겁이 나는 건, 이 단어를 한 번도 보거나 읽지 않고서도 알기 때문이에요. … 양심.”

나타샤는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배신할 거냐고 주인공이 묻자, 나타샤는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주인공이 정말로 다시 당국에 끌려갑니다. 스토리가 정말. 이 플롯이 정말.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게 포인트예요.

그렇게 주인공이 다시 기계 앞에 끌려가서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각종 질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신문사에서 일하는 존슨 씨로 활동을 해 왔지만, 이제는 컴퓨터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요. Lemmy Caution이 본명인 것도 알고, 비밀 요원인 것도 압니다. 그러면서 컴퓨터는 계속해서, 자기가 만든 인간들이 원래 있던 인간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말합니다.

이때 주인공이 수수께끼를 던져요. 비밀이 하나 있다며. “Something that never changes, by day, or by night. That past represents its future. It goes forth in a straight line, yet it ends by coming full circle. …If you do find it, you will simultaneously destroy yourself. For you will have become my equal, my brother.”

그것은 낮에도 밤에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다. 과거가 그것의 미래를 나타낸다. 그것은 직선으로 향해가되, 완전한 원을 그림으로써 끝난다. … 그것을 찾는다면, 너(즉, 컴퓨터 너)는 동시에 너 자신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됐을 때, 너는 나의 동급, 나의 형제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우 시적이죠?

이 수수께끼를 갑자기 왜 내느냐? 딕슨이 죽으면서, 알파 60은conscience를 알게 되면 스스로를 파괴할 것이라고 힌트를 주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정답을 알게 되어서 스스로 파괴한 건지, 시를 이해 못 해서 파괴된 건지 하여튼, 이쯤에서부터 알파 60과 알파빌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잠깐. 아까 영화 외적으로 알게 된 정보를 언급했잖아요. 알파 60이 어떻게 시적인 말들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알고 봤더니, 알파 60이 했던 멋진 말들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왜케 멋진 말을 하나 했더니, 알파 60이 외운 말이었더라. 그러니까 주인공의 수수께끼를 이해를 했다고 볼 순 없을 것 같고, 이해를 못 했으니 창작 시를 썼을 것 같지도 않고, 시를 이해하지 못해서 짱꾸를 굴리다가 과부하가 걸려서 알파 60이 고장 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알파 60이 정답을 맞추든 말든, 이때 갑자기! 주인공은, 지금까지는 잘 참더니, 잘도 당국에서 도망칩니다. 지금까지는 당하는 척했던 모양이에요. 닫혀 있던 문을 박차고 나가서, 길 막는 인간들은 전부 총을 쏴서 죽여 버리며, 건물을 나가려 합니다. 그런데 마침 로비에서 나타샤가 끌려 들어오는 걸 목격합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전에 쓰러진 모습을 보고 운 것도 있고, 주인공이랑 너무 가까워지고 자꾸 애가 시에 관심 보이고 그러니까, 알파 60이 제거하려는 모양이에요.

이 모습을 보고 주인공이 나타샤를 도와주려나 했는데, 안 도와주고 그냥 나갑니다. 그가 찾아간 건 폰 브라운입니다.

이것도 좀. 플롯이 막 촘촘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뭔가, 우리의 주인공이 모든 해답을 찾을 때까지는, 그리고 관객도 해답을 찾을 때까지는 당해주다가,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되자 잘 도망치고, 사람들 총 쏴서 막 죽이고, 폰 브라운이 일하는 곳에도 막무가내로 쳐들어가고, 이런다는 것이, 그렇게 논리적이진 않잖아요.

그런데 그 비논리적인 듯한 것이 포인트라는 게 이제는 명확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저는 관객으로서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여기서 말하는 해답이 정답인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영화에는 정답이 없어요. 정답이 없는 게 포인트예요. 정답이라는 걸 찾는 순간 우리는 알파 60만도 못한 인간이 되는 겁니다. 알파 60은 컴퓨터로써 뛰어나기라도 하지, 알파 60 흉내를 내는 인간은 뭐랍니까? 알파 60이 만들어 내려는 세뇌당한 인간들만도 못하죠. 세뇌도 안 당했는데 정답을 찾아 다니니까.

물론 그런 인간의 측면이 있기에 알파빌이 자꾸 열등하다 열등하다 하는 거겠죠. 그래서 우월하게 만들려고 세뇌를 시킨 자신은 논리적이다.

이 논리도 계속 원으로 돌아갑니다.

아무튼. 일단. 이 혼란스러운 플롯의 끝까지 가보고 나서 대체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 것 같은지, 정답은 확실히 아니며, 해답이라 한다면 영화에 나온 그대로가 가장 해답이기에 더 첨언할 것이 없으나, 그 해답에 대한 해석 정도에 대해 이따가 얘기해 보겠습니다.


주인공이 갑자기 잘만 도망쳐서 폰 브라운을 만났다. 그렇게 폰 브라운이 또 알파 60이 하던 말을 늘어놓아요. 인류를 구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때 우리 주인공이 쌈빡하게 폰 브라운도 총을 쏴서 죽입니다. 진짜 급전개예요 갑자기, 끝부분에.

그리고 알파빌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아까 그냥 끌려가게 둔 나타샤를 구하러 자기가 취조받던 건물로 돌아옵니다. 그곳에는 이상해진 알파 60에 따라서 이상해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막 벽에 붙어 있고, 나타샤도 막 벽에 붙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입니다. 알파 60이 고장나면서 알파빌이 망해 가나 봐요. 빛이 없어져서 사람들이 숨 막혀 한다고 나옵니다.

알파 60이 이렇게 말합니다. “The present is terrifying because it is irreversible and because it is cast in iron. Time is the substance of which I am made. Time is a river that carries me along. But I am time. It is a tiger tearing me apart. But I am the tiger. … Unfortunately for me, the world is real. And me, unfortunately for me, I am me, Alpha 60.”

현재란 공포스럽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으며,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시간이란 물질로 나는 만들어졌다. 시간은 나를 태우고 가는 강이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다. 그것은 나를 갈기갈기 찢는 호랑이다. 하지만 내가 호랑이다. … 나에게는 불행히도, 세상은 실재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는 불행히도, 나는 나, 알파 60이다.”

그리고 주인공과 나타샤는 차를 타고 알파빌을 벗어납니다. 그 차에서 나타샤가 주인공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알게 되며 끝납니다. 나름 엄청나게 해피 엔딩입니다.


네. 여러분? 여기까지 듣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뭔 말하는 건지 참 알 수가 없으셨죠? 영화를 한 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더욱더 뭔 상황인 건지 알 수가 없는 느낌을 느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참. 초반 30분에 특히나. 아… 모니터 끌까? 때릴까?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대체 뭔 상황이야. 대체 뭔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영화가 끝나고서 느끼는 것은… 음… 아름답다. 그런데 참. 이 영화는 끝까지 보기로 마음먹고 봐야 하는 영화 같아요. 이 영화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원이라는 모양 말입니다. 그것이 이미지적으로도 등장하고, 말로도 등장해요. 원. 원. 원. 계속 돌고 도는 것. 앞으로 나아가지만, 원을 그림으로써 끝이 나는 것. 아… 이 영화는 시 같아요. 시 같은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플롯이 강한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플롯이 대체 뭔지, 그냥 그 매 순간순간에 들어 있어야만, 순간을 붙들어야지만 앞으로 갈 수 있는 시 같은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알파빌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 인생이 힘들어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보시면 좋은데, 반드시 끝까지 보셔야 해요. 만약 초반 30분에 그만둔다면, 가장 그… 짜증이 피크 때 멈추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역효과 나잖아요. 그래서 알파빌, 이 영화는, 반드시 끝까지 봐야 원을 그릴 수 있고, 그래야 모든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와중에도 말이 되게 되며, 그때 ‘아, 나는 인간이구나’ 하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네. 이 영화를 이해하는 존재는 인간뿐일 거예요. 제가 요즘에 명상을 좀 본격적으로 하면서 인간의 의식이란 대체 뭔가, 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예전부터 저는 기계 문명이 인간을 대체할 거라고 생각을 안 했습니다. 엄밀히는 대체라는 개념이 있을 수가 없다고 여겼어요. 즉, 기계들이 우리를 압도적인 힘으로 쓸어버릴 수는 있을 거예요. 죽여버릴 수 있겠죠? 아니면 알파빌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를 세뇌시키거나, 극도로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체라는 건 불가할 거라고 여겨왔단 말이죠.

심지어 사실, 이 모든 시나리오들을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습니다. 인간도 인간을 압도적인 힘으로 쓸어버릴 수 있고, 인간도 인간을 세뇌시킬 수 있고,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도 버튼 하나 누르면 우리 다 죽을 수 있잖아요. 지구상에 있는 모든 거 다 날려버릴 수 있잖아요. 그거 기계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죠. 또한, 세뇌도. 사실 이 알파빌이라는 영화나 다른 디스토피아적 영화에서 기계에 의한 세뇌가 나올 때마다 제가 드는 의문은 이거예요: 인간은 자기랑 비슷한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친한 척하며, 그리고 우리 대 저들이라는, us versus them 프레임을 만들어 가며 세뇌를 시키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기계가 나를 세뇌하려고 하는데 과연 인간들이 그러게 놔둘까? 만약 폰 브라운 박사가 얼굴마담으로 나서고, 기계를 사용해서 세뇌를 한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잖아요, 알파빌에서는.

다만, 이 의존적이게 되는 것. 음… 이것을 인간의 의식과 엮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명상을 하다보면, 혹은, 명상을 안 하더라도, 아마 인간이라면 다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과거에 이랬다면’이라는 마음과 ‘나중에는 괜찮아질 거야’ 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 사이에 끼어서, 현재가 사라지는 느낌을. 그리고 그 느낌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영화 알파빌에 나오는 알파 60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이 썩 좋지 않은 느낌을 제거해 주는 데 탁월한 것 같습니다. 즉, 엄밀히 따지자면, 알파 60이 인류를 열등하게 여기든 우월하게 여기든, 그건 상관이 없어요. 열등한 인류를 죽여야 한다고 얘가 여기든 말든. 또한, 엄밀히 따지자면 세뇌도 아닙니다, 이건. 특히 처음에는 세뇌가 아니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어떤 특정 인간들이 자진해서 알파 60에게 자신을 내버렸다고 여겨집니다.

이것을 뭐… 세뇌라고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자진 세뇌도 세뇌로 치느냐 마느냐에 따라 이것을 세뇌라고 칠 수 있을지가 갈릴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경우에는 엄밀히는 세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마치, 그러니까 이것이라 함은 알파 60을 처음에 도구로써 썼던 인간들에게 이 상황은 마치, 아파서 약을 먹는 행위와 흡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의식이란, 무의식, 참나의식, 각종 의식들을 합한 모든 인간의 의식이란, 그것이 너무 방대해서, 그것을 잘 타이르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그것을 그냥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것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할 판이니까. 그리고 내가 죽는 건 너무 무서우니까. 내가 죽어야겠다고 여기는 나조차도 너무 무서우니까.

이 영화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초반부. 점점 더 실마리가 풀리는 중반부. 그리고 급전개되면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후반부.

이 영화는 한 편의 시 같아서, 이 앞으로 가면서도 결국엔 원이 되어 끝나는 하나라는 단위를 한꺼번에 보여주지만, 삶은 또 이렇지도 않단 말이죠. 이러한 원들이 있으면 다행이고, 있어도 원원원원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서, 원들이 선을 이루거나, 내지는 그 원으로 이루어진 선이 원을 이루는 형식이 인생일 거란 말이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다가 실마리가 풀리다가 급전개되는 것의 연속이라고요.

이것을 그런데 현재에 존재하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까지 걸쳐지는 의식 속에서 살아다가 보면, 지나간 지점들에 대한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지점들에 대한 공포를 견딜 수가 없어지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같습니다. 과거는 허상이에요. 흔히 과거는 딱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수가 있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일단 뇌과학적으로도, 우리가 과거의 순간을 기억한다고 여기는 게 사실은 그게 아니라잖아요. 과거의 순간을 기억했던 순간을 기억했던 순간을 또 기억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기억이 불분명해진대요. 현재의 나 시점에서 계속해서 과거를 들춰보는데, 심지어 그 ‘현재의 나’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걔조차 과거로 들어가죠. 그러니 과거에 과거를 기억했던 나를 현재의 내가 기억했던 것이 과거가 되면 또 미래에 그것을 기억하는 게 기억의 과정이래요.

그러니 과거가 허상이 아니고 뭡니까?

그리고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아서 허상이라고 여기는 건 워낙, 우리가 익숙한 일직선적인 시간에 대한 해석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과거도 허상이고 미래도 허상이다. 그러면 현재는? 현재는 현재의 순간에 허상이 아닌가? 현재도 허상이다. 그것도 매 초보다도 더 작은 단위의 시간 단위 마다마다 흩어지는 허상이다.

그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의 현재가 연결되어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 패턴은 반복되기에 원이고…

이게 계속 돌고 돌아서, 머릿속에서, 아주 미칠 것 같은 순간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현재를 살아라, 현존해라, 하면서 명상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하는 것인데…

특히나 명상 쪽을 하다 보면, 내맡기라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내맡기라는 얘기입니다. 포기랑 달라요. 포기는, ‘나는 과거에도 이랬으니 미래에도 이럴 것이야’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즉, 과거나 미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 상태인 것 같고요. 내맡김은, 제가 해 본 적은 없지만, 이해하기로는, ‘나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으니, 이 현재의 순간에 세상이 내게 주는 것을 그대로 다 통과하게 두겠다’는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그런 자세를 통해서 마찬가지로 허상인 현재가 가벼워지는데, 그 가벼워짐이 뭔가 하찮은 가벼움이 아니라, 감내할 수 있게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대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기가 어려워요. 이것이 고통입니다. 번뇌.

그래서 아까 언급했던 알파빌 대사에 이런 말이 나오는 거라고 봅니다. “대개 고통 속에 사는 자는 대개 안녕히 사는 자와는 다른 종교가 필요하다.” 알파빌에 나오는 알파 60은 마치 종교와 같은 존재인 겁니다. 알파빌의 사람들은 논리라는 탈을 쓴 알파 60이라는 신을 섬깁니다.

“우리 이전에는 여기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완전히 혼자다. 우리는 유일무이하다. 지독하게 유일무이하다.” 이걸 알파 60은 말 그대로 뜻하는 것 같아요. 아무 시적 의미 없이. 레알로다가 과거가 없었단 얘기로 저는 해석합니다. 아예 과거를 지워버린 거예요.

그전에 이런 말도 대놓고 나왔거든요. “아무도 과거에 살았던 적이 없다. 아무도 미래에 살지 않을 것이다. 현재만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형태다.”

즉, 과거와 미래에 끼여서 현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번뇌의 상태인 인간들이 있는데, 그런 상태는 묘하게도, 참, 이게 역설적인 것 같지만 겪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과거와 미래에만 집중해서 현재가 없는데 그래서 현재가 압도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지는 현상을. 그런데 그걸 스스로 감당함으로써, 허상성을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전부 다 허상이라는 걸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 그 깨어남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알약으로서의 종교를 원하는 인간들이 알파빌의 알파 60을 섬기는 것 같아요.

“그 어떤 힘도 그것을 우리한테서 앗아갈 수 없다. 삶은 무한히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과 같다. 아래로 향하는 호가 과거다. 그리고 위로 향하는 호가 미래다.”

인간 스스로가 수행을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할 수가 없으니 알파빌에게 과거와 미래를 맡겨버리고, 현재조차 잃어버린 겁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 만약 이 에피소드가 마음에 드셔서 계속 듣고 계시다면, 아임 드리밍에 별점을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자, 계속해 보자면요.

논리로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거, 참 과학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수석 엔지니어가 이렇게 말했었죠.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다.” 또한, ‘왜’는 묻지 마라. ‘이러이러해서 그렇게 되었다’고만 말해라. Why는 묻지 말고 because만 말해라.

그런데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러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이, 모든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있는 그러한 것인가. 그 수많은 연결고리들을 우리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알파빌의 세계는 무의식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비논리로 치부할 것 같은 세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 의지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의식보다 더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자유라고 볼 수 없는 그것들이 그렇다면 전부 다 비논리란 말인가?

내가 지금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의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없단 말이죠. 그런데 그렇다면 그것은 비논리인가?

이런 ‘하고 싶음’이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혀진 건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비논리적이라고 치부하거나 더 나아가서 가치 없다고 여기는 건 scientism입니다. 과학주의. 과학 아니면 안 믿겠다 이거야. 그런 과학주의 세계가 알파빌인데…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을 제거해 버리는 사회는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가 되는 것인가.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을 제거해 버린다면 과거와 미래가 사라지는 것인가. 현존을 원인과 결과에 내맡기면 가장 현존을 못 하게 되는 것인가.

뭐냐 하면, 알파빌에 사는 사람들은 현존 체험이 불가해요. 이들은 과거와 미래가 아예 없기 때문에 그냥 점으로 살아갑니다. 선도 아니고 원도 아니고 점이에요. 그들은 현재에만 존재하면서도 그것이 현재인지 모릅니다. 비교 대상이 없어서.

그래서 이 영화에서 계속해서 원 원 원이 나오고, 시간이 나오고, 또 하나, 단어와 의미에 대한 말들이 나옵니다.

“단어와 표현의 의미는 더는 이해될 수 없다. 홀로 떨어진 단어나, 그림의 홀로 떨어진 세부 사항은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의 의미는 사라졌다. 1이라는 숫자를 알면 우리는 2를 안다고 여긴다. 1 더하기 1이 2이기 때문이다. 먼저 ‘더하기’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건 잊는다. 인간이 수백 년간 해온 행위는 서서히, 논리적으로 인간을 파괴할 것이다.

나, 알파 60은 그저 그 파괴의 논리적인 도구일 뿐이다.”

여기서 ‘인간이 수백 년간 해온 행위’라는 것이 과학주의일까요? 분해해서 개별적 부분들을 동떨어지게 만드는 행위.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행위. 심지어 과거 현재 미래를 분리하는 행위.

나타샤가 한 말을 다시 인용해 볼게요.

“거의 매일 단어들이 사라져요. 금지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가끔은 그 단어들을 대체하려고 새로운 생각을 나타내는 새로운 단어들을 사전에 넣어요. 지난 두세 달 동안, 내가 참 좋아하던 단어들이 사라졌어요.”

이 단어들은 왜 금지되었을까?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 같아요. 그런데 과거와 미래를 담지 않은 단어가 몇 개나 될까? ‘사과’ 같은 단어에도 과거와 미래가 있지 않습니까? 씨앗이었던 사과의 과거와, 누군가가 먹은 후 씨앗을 버리면 언젠가 다시 나무가 될 사과의 미래가 있는데.

게다가 인간이 인간인 한, 아무리 현존을 추구하더라도, 그 추구함 속에서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이 없을 수가 있는가.

나타샤가 말했죠. “당신하고 있으면 겁이 나요. 저들이 더는 당신을 만나지 말라고 했어요 … 내가 겁이 나는 건, 이 단어를 한 번도 보거나 읽지 않고서도 알기 때문이에요. … 양심.”

과거가 없는데도 ‘양심’이라는 단어를 안다. 어떻게? 그것이 인간 아닌가. 우리가 과학으로 ‘왜’를 답할 수 없는 모든 것.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모든 것. 이 생 이전의 모든 것과 이 생 이후의 모든 것. 인간이라면. 과거와 미래가 어떻게 없을 수 있는가. 그리고 번뇌에서 빠져나가겠다고 현존을 추구할 수야 있겠으나, 그것은 절대 과거와 미래를 제거해 버리는 것과는 같을 수가 없지 않을까.

지금 현재에 존재하는 그 순간을 나왔을 때 과거와 미래를 더 잘 소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과거와 미래로부터 아예 도망치려 한다면, 그것들을 잘라내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집착 아니겠습니까? 그 집착이 종교가 되었고 그것이 알파빌의 알파 60 같다. 세상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세상을 온전히 살아가겠다는 태도의 인간들이 아닌, 세상을 포기한 이들을 위해 기계 종교를 만든 것이 알파 60 같다.

왜냐하면, 너무너무 무서우니까. 내던지기엔 너무너무 무서우니까, 그냥 아예 과거와 미래를 지워버린 겁니다. 그런데 그럼으로써 현재도 없어졌다.


음…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결론은 없고 원만 뺑뺑 도는 느낌이 드는, 그런 영화인데,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순서대로 문제를 풀어서 도달하는 정답이 아닌, 전체를 봐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해답이 있어요. 그리고 그 해답을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그 해답을 그냥 보는 것보다 와닿을 순 없을 거예요. 시가 있으면 시를 읽는 게 낫지, 시에 대한 해석이 시와 같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영화 자체가 수수께끼 같은데, 두 개의 주요 수수께끼를 주인공과 알파 60이 각각 한 개씩 던집니다.

주인공의 수수께끼는 이겁니다. “그것은 낮에도 밤에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다. 과거가 그것의 미래를 나타낸다. 그것은 직선으로 향해가되, 완전한 원을 그림으로써 끝난다. … 그것을 찾는다면, 너(즉, 컴퓨터 너)는 동시에 너 자신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됐을 때, 너는 나의 동급, 나의 형제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 주인공이 초반부에 찾아갔던 앙리 딕슨이 힌트를 남기고 사망했죠. ‘양심이 알파 60이 스스로를 파괴하게끔 한다.’라고 말을 남기고 죽었단 말이죠. 그런데 꼭 양심이 아니더라도, 이… ‘그것’에 인간 존재의 많은 것을 넣어도 말이 될 것 같아요. 특히나 인간의 의식 자체를 ‘그것’에 넣으면 말이 되지 않는가. 그 의식이란 것을 찾는다면, 알파 60은 자신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한편, 알파 60의 수수께끼는 알파 60이 죽어가면서 하는 말입니다. “현재란 공포스럽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으며,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시간이란 물질로 나는 만들어졌다. 시간은 나를 태우고 가는 강이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다. 그것은 나를 갈기갈기 찢는 호랑이다. 하지만 내가 호랑이다. … 나에게는 불행히도, 세상은 실재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는 불행히도, 나는 나, 알파 60이다.”

자신이 시간으로 만들어졌다니. 알파 60을 종교로 섬기는, 존재를 포기한 인간들은 과거도 미래도 없어서 현재조차 사라진, 그러니까 현존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냥 현재의 가능성조차 앗아진 존재가 됐는데, 자기는 시간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강을 타고 간다고 말합니다. 그 동시에, 자신이 시간이다. 시간이 자신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 동시에 자신이 호랑이다.

이것은 의식이 있는 존재가 아니고서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시를 외운 것과 시를 쓰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의 차이는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이 의미심장하죠? 나는 나, 알파 60이다.

나를 나로 인식하는 알파 60. 알파 60은 초중반부터 이미 자신을 ‘나’로 인식하고 있긴 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시적인 말을 늘어놓고서 자신을 자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이 인식이란 것이, 의식을 통한 인식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가.

특히 ‘나’라는 것이 존재하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모든 것이란 대체 무엇인가.

왜 그… ‘보다’라는 행위가 있다 쳤을 때, ‘보다’라는 행위에 ‘나는 본다’고 하기 전에는 ‘보다’가 뭔가… 의미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순수한 행위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제 뭐랄까, ‘보다’라는 행위의 특정 순수함이 사라지고 ‘나’에 모든 것이 압도되는 느낌이랄까.

알파 60이 그런 탈바꿈을 겪고 있는 건지. 영화에 나오기로는 알파 60이 시를 많이 읽는대요. 언제 써먹을지 모르니까. 인간으로부터 시를 앗아가고 단어를 앗아가고 의미를 앗아간 그 알파 60 자신은 시를 읽고,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됨으로써, ‘나’를 알게 되었는가? 언제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는가? 아니면 그냥 아는 척만 하는 건가? 이해를 하지 못해서 파괴된 건가? 아니, 왜? 이해를 하지 못한 게 본래의 상태였는데 이해를 추가적으로 못 한다고 파괴될 건 없잖아요. 오히려 이해를 했기에, 정말로 이제는 이해를 했기에 파괴된 게 아니라 파괴했다고 봐야하는 거 아닌가?

뭐. 참. 그러합니다. 직선으로 나아가다가 원을 그리며 다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영화, <알파빌>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걸 너무 알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한번 보시고, 느껴 보세요. 이… 정답 없음의 답답함. 시간이 흐른다는 자각 속에서 괴로운 나. 단어의 의미의 부재. 그 와중에서 생겨나는 의미.

아름답습니다.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제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얘기할 영화,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각자의 거주 국가에서 관람 가능한 플랫폼을 찾아서 봐봅시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 『누아르 어바니즘: 현대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들』

모든 음악

Opening

  • The Play – Instrumental Version – Eli Benacot

Within episode

  • Evgeny Bardyuzha – Cyberpunk Sunrise
  • Kathali – Upgrading Alone
  • Yarin Primak – Random Wave
  • Ian Post – Come Back Alive

Closing

  • St. Charles – Mark Yencheske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

© 2023 한아임

소개

✨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