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8] 악역의 비중, “He Walked by Night” + 근황토크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은 영화 얘기를 하고, 뒷부분에서는 근황토크 좀 할게요. 근황토크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 몇 분이 궁금하셔서 저한테 연락까지 했다는 건 혹시, 설마, 만약에 그 몇 분 이상의 분들도 궁금하실까 봐서, 네, 영화 얘기를 한 다음, 근황토크 합니다. 그리고 끝부분에 다음 에피소드 영화 예고를 하겠습니다.

일단 오늘 영화 수다의 씨앗, <He Walked by Night>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제법 클래식한 필름 누아르입니다. 스포일러 있어요. 매우 간단한 스포일러예요. 자, 스포일러 바로 갑니다.

이 영화는 줄거리가 간단해요. 악당이 있고, 그 녀석이 사람을 여럿 죽이고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경찰은 그 녀석을 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가, 결국 잡고, 녀석을 죽입니다. 이게 플롯이고요, 스포일러는 이게 다예요.

그런데 원래가, 서사의 줄거리를 이렇게 극요약해서 얘기하면, 이 세상에 있는 이야기 유형들은 별로 다양하지 않습니다. 나쁜 녀석 잡는,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있고. 커플이 만나서 사랑에 빠져서 잘먹고 잘사는 이야기도 있고. 힘들게 살던 사람이 어마무시하게 성공하는 이야기가 있고. 이런 거란 말이죠.

그래서 플롯의 단순함이 이 영화를 진부하게 만들진 않습니다. 봐도 봐도 또 재밌으니까 이 나쁜 녀석 잡는 이야기 유형이 이렇게 널리 퍼진 것일 거예요. 특히나 이 영화에서는 왜 플롯이 진부하지 않으냐면, 2023년의 제 입장에서 봤을 때는 1948년 작품인 이 영화가 악역을 다루는 방식이 신기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로는 안티히어로를 반영웅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영웅이라는 단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이 정의에 따르면 여기에 지혜 재능 용맹함처럼 뛰어난 성품이 없는 사람은 끼지를 못해요.

그리고 사전에는 안티히어로나 반영웅이 없지만, 위키피디아에는 있더라고요. 위키피디아 왈, 반영웅이란 “”뛰어난 개성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전형적인 히어로(영웅)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영웅처럼 취급되는 인물이다.” 이렇게 나와 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그러면 영웅처럼 취급되긴 하는데 안티히어로는 뛰어난 개성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을 안 한다는 것인지? 뛰어나다는 게 뭔지? 개성이라는 게 뭔지?

이… 영웅이라는 한국어 단어에 도덕관념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영웅처럼 취급된다’고 했을 때, “얘는 잘못된 녀석인데도 영웅 취급을 받는다”는 뉘앙스가 있는 것 같고, “뛰어난 개성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히어로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고 했을 때, 도덕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뛰어난 개성이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도 깔려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영어의 hero는 약간 달라요. 한국어의 영웅과 같은 뜻도 있지만, 아예 그냥 ‘이야기 주인공’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즉, 아무리 안 용맹하고 안 지혜롭고 재능이 없어도, 이야기 주인공이기만 하면 그냥 히어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뭔가 이런… 도덕적 관념에 부합해야지만 히어로인 건 아니에요. 세상 찌질하고 구차해도 이야기의 주인공이면 걍 히어로인 겁니다.

그렇지만 또 동시에, 만약 이야기의 주인공이 무조건 히어로라면, 왜 굳이 안티히어로라는 단어를 만들까? 즉, 안티히어로도 결코 도덕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습니다. 영어로도요 영어 정의는 구글에 검색해 보면 이렇게 나와요. “a central character in a story, movie, or drama who lacks conventional heroic attributes.”

진짜 애매하죠? “이야기, 영화, 혹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관습적인 영웅적 특성이 없는 인물.” 참 애매해요. “관습적인 영웅적 특성”이 뭔지?

이러는 바람에, 안티히어로란 참말로… 참말로 정의가 어렵다. 뭐냐 하면, 아마 요즘 시대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태반이 50년 전에는 안티히어로 취급을 받았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자가 바지만 입어도 죽일 듯이 달려들던 시대에는,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도 모자라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절대 히어로가 아닌 안티히어로 취급을 했겠죠. 미친 사람이라고.

그래서… 신기해요, 이 개념이. 관습이 계속 바뀌니까, 히어로와 안티히어로의 개념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뭔가 <He Walked By Night> 같은 영화에서 나쁜 녀석이라고 등장하는 인물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니까, 그러면 그는 확실히 안티히어로, 내지는 그냥 악역인가?

따져보면 그것도 아니에요. 온갖 서사에서 사람 죽이는 일이 좋은 일로 나오기도 합니다. 약간 순서 따지는 측면도 있죠? 네가 먼저 날 공격했으니, 내가 뭐… 너네 행성을 통째로 폭파해도, 그건 정당방위다, 이런 식의 논리가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순서도 안 따지는 경우도 있어요. 전쟁 영화 같은 경우. 걍 침략하고 그것은 전쟁이었기에 정당화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기는 편이 히어로고 지는 편은 안 히어로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안티히어로 이야기에서 안티히어로가 이긴다고 해서 그 인물이 자신을 히어로로 둔갑시키려는 시도를 하진 않거든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안티히어로와 히어로를 구분 짓는 것은, “나는 관습적인 영웅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인물 본인의 선택인지?

음… 약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하여간에. 참. 굉장히 복잡스러운 개념이다, 히어로와 안티히어로.


그런데 이 영화의 주된 인물은, 이것도 참 흥미로운 것이, 안티든 아니든, 히어로라고 부를 수가 있는가? 이 자체가 좀 의문이에요. 악역인 것은 맞긴 한데, 주인공인가? 이… 악역을 다루는 방식이 참 신기한 것이, 어… 플롯이 굉장히 익숙하고 단순하면서도, 그 플롯이 펼쳐지는 과정이 지금 2023년의 우리가 익숙한 과정은 아니에요.

일단 처음에 영화가 시작할 때, 엘에이가 배경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마치 관광공사 영상처럼 시작합니다. 엘에이 경찰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가에 대해서 얘기하고, 엘에이 얼마나 좋은가, 막 이런 거 보여주고.

그러다가 처음 사건이 터지는 것이, 악당 역할을 맡은 인물이 경관 중 하나를 총으로 쏘는 겁니다. 굉장히 큰일이죠? 경찰이 공격당했다는 건. 공격 막는 역할이라고 세금을 월급으로 받는 집단의 일원이 공격당한 거예요.

그래서 이 사건 및 연관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플롯인데, 어… 경찰 측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완전 막 그… 수로 압도해요. 각종 형사, 경관들이 나오고, 경찰서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경찰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여러 직원들이 있죠. 그들도 막 나옵니다. 거기다가 시민 목격자들까지 여럿 나와요. 심지어 용의자들이 어마무시하게 나와요. 이 과정을 두루두루 보여주는데, 정말이지, 관광공사 영상인가? 이… ‘우리 경찰 이렇게 왕짱 열심히 일해요’ 느낌이 순간순간 듭니다.

반면 우리의 악역은 어떠한가? 그는 혼자 일합니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한쪽에는 수많은 경찰, 형사, 경찰서 직원, 용의자, 목격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악역이 홀로 있어요. 심지어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은 악역에게 개를 줍니다. 악역이 개를 키워요. 심지어 그 개를 잘 보살피나 봐요. 개가 너무 귀여워. 말도 잘 듣고, 똘똘하고, 충성스럽고. 아니 이럴 수가.

그러니까 뭔가 이… 엘에이 관광공사 영상 같은 와중에, 사람한테 총을 쏘긴 하지만 개는 사랑하는 따뜻한 도시 남자 같은 악역이 혼자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 길다 보니까, 혼란스럽더라고요.

특히나, 어떤 사건이 터진 후에 자신의 상처를 직접 꿰매는 범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부분이 상당히 길게 나옵니다. 이 시퀀스 전체가 3분은 되는 듯해요. 아무 대사도 없이, 범인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기만 하는데, 이… 갈피가 안 잡히더라고요, 저는, 감정적으로.

안티히어로라고 주인공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라면, 반대편에 그에게 대항하는 강력한 인물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인물이 없어요. 대사를 치는 형사나 경찰은 수도 없이 많은데, 대사를 치는 목격자와 용의자도 많다 보니까, 악역에 대항할 만한 인물들이 전부 묻힙니다. 그쪽은, 즉, 악이 아닌 선을 대변하는 쪽은, 전부 엘에이 관광공사 영상의 뒷배경처럼 사라져요.

그래서 그 와중에 안티히어로가 부각되는 게 아니라 그냥… 뭐지? 약간… 뭐지? 이런 느낌이 들어요.

이게, 어… 제가 이게 왜 이런가 생각을 해봤어요. 이 영화가 <누아르 어바니즘>에 언급되는 영화라서 지금 다루고 있는 거잖아요? 이번 시즌 테마가 그건데. 당대 영화 업계의 보수주의 및 검열에 대해서 언급이 됩니다. 또한, 이 영화에 대해 검열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졌든 이루어지지 않았든, 당대의 관객들이 보수적이었기도 하겠죠.

2023년 현재에야, 안티히어로가 예삿일이 되었지만, 이 영화가 나왔던 당시에는 누아르 장르가 아니고서야 사람 죽이고 다니는 인물이 이렇게 주목받기도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제작하는 입장에서 너무 범인 편을 들어주는 걸 티를 내면 욕먹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스크린에 올라갈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이것저것 조건을 달던 시기. 정말이지, 마치 스크린에 뭘 선보이면 그게 사실이라도 될 것처럼 통제하던 시기였으니. 그렇게만 됐으면 우리 모두 천사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서 다 천사 됐지. 무슨 스크린에 올리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거 다 따라 할 것처럼.

말도 안 되는데, 지금도 그러잖아요? 예전보다 안 그럴 뿐이지. 무슨 잔인하거나 범죄적인 걸 보여주면 사람들이 따라 한다며. 아이고, 그게 얼마나 인간을 무시하는 생각인지. 참말로. 얼마나 인간을 하찮게 보면,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걸 상상할 수 없다고 여길까? 물론 상상을 못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안 보여주면 상상을 못 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정말이지 놀라운, 극도로 놀랍도록 제한적인 사고인데, 이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아요?

아무튼 요즘에도 이런 사고가 있는 경우가 있다 보니, 1940년대, 더 보수적이었던 사회에서, 혹시, 이 영화의 제작진이 악역을 더 대놓고 밀어주고 싶었는데 욕먹을까 봐 이런 형식으로 만들었나? 싶었습니다. 이건 그냥 제 추측이에요. 악역은 계속 혼자 화면에 등장하고, 경찰 측은 온갖 무리에 묻혀가지고, 굉장히 열심히 일하는데도, 그리고 끝에 가서는 범인을 잡는데도, 그런데도… 안 멋있고. 멋있고 안 멋있고를 떠나서, 관객이 친구 삼을 인물이 없어요. 8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영화인데 너무 경찰 측 인물이 많으니까.

특히나, 악당의 몽타주를 그려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경찰 및 목격자, 그리고 몽타주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 전부가, 선한 편 쪽에서 그들 일을 열심히 하는 와중에, 온 주의가 전부 악당한테 쏠려 있는 거예요. 그럼 관객은 어때요? 가뜩이나 우리가 친숙한 얼굴은 악당 얼굴밖에 없는데, 수십 명의 사람이 이 악당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내겠다고 모여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수십 명의 사람이 착하든 선하든 경찰이든 일반 시민이든, 안 보입니다. 보면서도 다 묻혀요.

거기다가 좀… 아 정말, 엘에이 관광공사스러운 느낌이 왜 또 드냐 하면요, 대사가 있는 인물이 엄청 많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은 중국어를 하고, 두 명은 스페인어를 합니다. 80분밖에 안 되는 1948년 영화에 별별 요소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아마 영화가 처음에 시작할 때 엘에이가 얼마나 대단한 도시인지에 대해 관광공사적인 멘트를 한 맥락에서 이런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건지. 뭔가 그… 토큰 캐릭터라고 할 만한? 뭐냐 하면, 다 남자인데 여자 하나 등장시켜야 할 것 같아서 여자가 하나 나와서 대사 치고 간다든지. 아니면 다 백인인데 흑인 하나 등장시켜야 할 것 같아서 흑인이 대사 치고 간다든지. 이런 캐릭터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게 21세기에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혹시 1948년작인 이 영화에 토큰 캐릭터를 등장시켰나? 이 시대에 뭔가… 다양성, 이런 거에 대한 끼워맞추기 식 PC즘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좀 특이했습니다. 제작사 취향일 수도 있고. 당시의 엘에이 다양성 위원회 같은 데가 있었다면, 거기서 제작비용을 댔는지. 아니면 스튜디오에 있던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배우들을 스튜디오 측에서 뽐내고 싶었는지.

하여튼 여러모로, 범인의 매력이 돋보여요.

그러다가 끝에 가면, 왜 이렇게 많은 인물이 경찰 측에 등장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나옵니다. 악당이 경찰서 라디오 테크니션이었던 사람으로 밝혀지거든요. 즉, 경찰관은 아닌데 경찰서에서 일하던 사람인 거죠. 그래서, 이 범인이 어떻게 조사망을 피해다닐 수 있었는가를 암시하기 위해서 엘에이 전체의 규모, 수많은 경찰, 수많은 목격자, 그리고 용의자를 보여줬나 봐요. 나중에는 우체국 사람들까지 나와요. 여러 명이 나와요. 우편 배달하면서 지나가다가 범인을 봤느냐며.

뭔가 이… 실제로는 이렇겠죠. 실제로는 범인이 하나인데, 이 세상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경찰이 범인을 찾느라 힘들겠죠. 그런데 그 실제를 보여주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너무나 범인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너무 범인이 혼자 뜨는 바람에 안티히어로가 아니라 혼자, 범인 혼자 총도 쏘고 도망도 가고 개도 키운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조용한 영화예요. 총성이 울리는 때가 아니면 거의 계속 조용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경찰이 범인의 거주지를 둘러쌀 때, 한참을 완전히 고요한 상태가 이어집니다. 아마 영화관에서 봤으면 모든 관객이 숨을 죽이면서 재밌었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앗 망했다” 하는 순간부터 음악이 갑자기 나와서, 박진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 마지막 씬에서. 아. 개가 너무 귀여워가지고. 완전 씬 스틸러예요. 범인이 먼저 경찰로부터 씬을 전부 스틸해 가고, 그 와중에 그 씬들에서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가지고.

아무튼, 범인은 결국 하수도 시설에서 잡힙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범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여기서는 진짜 말 그대로입니다. 말 그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요.

경찰은 손전등을 들고 있어서 역광인 데다가 수가 많아서 얼굴이 없는데, 범인은 얼굴이 훤히 드러납니다. 범인의 표정, 범인 얼굴의 땀, 옷에 묻은 얼룩까지 다 보입니다.

결국 범인은 체포 과정에서 총 맞아 죽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사망한 그의 얼굴이 포인트예요. 마지막 씬이 그의 사망한 얼굴입니다. 그러고서 급 끝납니다.

이것이 1940년대의 영화였다. 1940년대 영화 서사였다. 확실히 2023년의 이야기 서사에 비해서 터치가 덜한 것 같아요. 위키피디아 설명에 이 영화에 대해서 “세미다큐멘터리 톤”이라고도 나와 있고, police procedural이라고도 나와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2023년의 police procedural에 비하면 이 영화는 참 서사를 뭔가… 더 극적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덜한 것 같다.

Police procedural은 범죄 장르 중 하나입니다. 범인을 잡는 수사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요. 그런데 이 영화는 엘에이 홍보 역할까지 하니까. 관광공사야. Police procedural이랑 중국어 사용자 및 스페인어 사용자는 아무 관계가 없죠? 그런데 나온다.

그래서 웃기고요, 경찰이 일을 한다고 강조되는 와중에 관객 입장에서는 범인이 일을 다 하는 영화였다. 그 와중에 개까지 범인이 키우니. 얼마나 강아지 이쁘게 키웠는지, 참 나 원. 그러하다.


네, 요렇게 짧게 영화 얘기 해봤고요.

근황토크. 저는 요즘 커피 없이 못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5월 초부터 중순까지 시애틀하고 포틀랜드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전까지는 뭐 커피 마시기도 하고 안 마시기도 하고 괜찮았거든요? 근데 여행 가서 커피를 맨날 마셨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매일 마시고 있습니다.

커피를 하루 정도는 안 마셔볼까? 하고 시도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완전 그 부재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냥 제가 우울한 기분이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중독인 거죠. 그래가지고 그냥 오후쯤 되어서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제가 커피를 엄청 많이 마시느냐? 아니요. 한 잔, 많아야 두 잔인데 이렇더라고요.

그리고 거기다 그러면 커피 때문에 잠을 못 자냐? 놀랍게도, 아닙니다. 여러분? 저는 명상을 시작한 이후로, 그러니까 뭐… 3월 초? 말? ‘시작’이 언제라고 정의하기가 애매한데, 하여간 그쯤 이후로 잠을 잘 못 잔 날이 이틀밖에 없습니다. 150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잠 잘 못 잔 날이 이틀이다. 이건 이제 뭐… 사실 이제 불면증자라고 할 수 없어요.

팟캐스트 제목이 아임 드리밍이니까 계속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라고 하긴 할 거예요. 제가 불면자여야지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하여간에… 불면증이 너무 고쳐져가지고, 약간 당황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왜 그… 항상 머리 돌아가는 거 있잖아요? 계속 뭔가… 계속 뭘 생각하는 거야 하여간에.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 외에 다른 일도 계속 생각하는 거 있잖아요. 지금 내가 뭘 하는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생각이 계속 돌아가는 거. 그걸 이제… 거의 안 해요. 평소에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냥 텅 비어 있어요. 제가 처음에 명상 시작할 때는 ‘그게 어떻게 가능해? 말도 안 돼. 머리가 텅 비어 있다니? 그게 사람이야?’ 했는데, 어… 가능합니다. 가능하고요. 아마 지금 제 상태에서 더 텅 빌 수도 있을 거예요.

아무 생각을 안 해요. 그냥 있어요. 그런데 그러니까 이게, 생각이 없다고 해서 행동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근데 밥 먹을 때 밥만 먹고요, 아임 드리밍 대본을 짠다, 하면 대본만 짭니다. 대본 짜고서 이다음에 뭐 해야지, 생각 안 하고요, 대본 짜기 전에 했던 일에 대해서 생각 안 합니다. 안 하려고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명상 하기 전에 제가 많이 해봤어요. 그때 당시, 생각하는 게 좋았겠어요, 제가? 너무 피곤하잖아요. 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아무것도 해결 안 되거든요? 오히려 생각 안 하면, 알아서 할 일이 떠올라요. 근데 그건 외부에서 나한테 오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알아서 떠오르는 거예요.

아무튼 근데 명상 하기 전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피곤하고 불면증 되니까, 저도 당연히 그게 좋지 않았죠. 그래서 억지로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절대 안 돼요. 뭐든지,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해요. 그래서 제가 ‘명상’이라고 말하는 건, 어… 숨 고르기 연습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숨 잠깐 고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로 해결되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해결이 되면 그때 숨이 알아서 고르게 되더라고요.

뭐냐 하면, 아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많은 종교와 영성과 심리학에서도 말하는 건데, 믿기지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한번 죽을 것 같고 나니까, 즉, 때려치우려고 하다 보니까 된 거예요. 이딴 세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뭣 하러 더 노력을 해? 그래서 아무 노력을 안 하니까 그냥 이렇게 되더라고요.

근데 앞서 말했지만, 행동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행동은 다 똑같이 해요. 겉보기에 지금까지는 뭐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근데 다만 같은 행동을 할 때 힘이 훨씬 덜 드는 거예요. 예전보다 노력을 안 하거든요. 행동을 하는 데 드는 노력은 하지만, 그 행동 전에 했던 것과 그 행동 후에 할 것들을 생각하는 데 드는 노력은 안 합니다. 계획도 안 세웁니다, 거의. 계획이라고 한다면, 아임 드리밍 다음 영화로 이러이러한 걸 봐야겠다, 이 정도 계획. 5초 걸리는 계획. 이런 거 세웁니다.

이런 현상을 아주 짧게 정리해 놓은 책이 아디야샨티 님의 “참된 명상”입니다. 이 책 좋더라고요. 매우 짧고요. 그냥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어요. “억지로 뭐 할 필요가 없다.” 명상도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 무슨 자세, 일정한 시간, 빈도수, 식이요법, 다 필요 없고, 걍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이건 어… 이 단계의 명상은 종교랑 상관없어요. 영성하고도 상관있을 필요가 없어요. 상관있게끔 나중에 될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갈 필요 없습니다. 특정 심리학자의 생각을 지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과학주의도 요즘에는 명상의 이점에 대해 많이 연구하죠? 네. 뭐 믿고 이러기 싫으면, 그냥 여기까지만 하면 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모든 일이 벌어지는 명상. 깨달음 안 얻어도 돼요. 저는 너무 명상이 실용적이라서 명상을 합니다. 얼마나 실용적이야. 불면증 고쳐. 아토피 사라져. 근육 뭉쳐 있던 거 사라져. 그리고 시간이 엄청 많아져요. 머리 뺑글뺑글 돌아가던 거 안 돌아가니까, 아무 생각 없는 텅 빈 상태인데 예전보다 에너지는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제 경우에는, 깨달음? 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것도 그러니까… 깨달으려고 하면 안 된다. 깨달으려고 집착하는 것 자체가 에고예요. 그래서 저는 음… 오히려 그냥 지금처럼 명상을 꾸준히 하려고요. 평소에 텅 빈 상태보다 더 텅 비게 되는 기분이 있어요, 명상하다 보면. 그게 좋고요. 그게 뭐… 의식 확장?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뭐. 누구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걸 뭐 저보다 더 경험 많은 분들도 말로 설명하는 게 다 다른 걸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도 하고. 그리고 확장에도 단계가 엄청 여럿인가 봐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이 “참된 명상” 책에 이론만 가득한 것의 폐해에 대해 나옵니다. 이론 다 좋고 도움 될 수도 있는데, 이론만 가득한 거야. 근데 이게 딱 그러니까 이거예요. 아까 말한. 뭣 하러 노력을 해. 이론 공부만 가득해서 그 노력 다 하고 망하는 게 더 좋겠어요, 걍 가만히 있다가 망하는 게 좋겠어요? 난 그냥 가만히 있다가 망할래.

아무튼 그래서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저처럼 완전 초보자 단계에서도 벌써부터 이… 물질세계에서의 삶이 좀… 비유적 해탈 있잖아요? 진짜 해탈 말고. 좀 뭔가 ‘아 이러나 저러나 상관이 없다’ 이런 여유가 생기는 게 느껴져서, 그래서 저는 명상을 계속 하려고 해요. 사실 극 에고적인 측면에서 봐도 이건 진짜 유리한 카드거든요. 원래 잃을 거 없는 사람이 가장 많이 얻는 거,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단, 에고적 이유로 명상을 하면 있는 그대로 두기가 좀 어렵기 때문에, 될지 안 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또 에고를 버린다? 죽인다? 아니요. 제가 명상을 여지껏 안 했던 이유가, 그런 거에 집착하는 종교인들하고 영성인들이 말이 안 돼서였어요. 가장 치밀한 에고주의자랑 다를 게 없어요. 에고 죽이는 거에 집착하는 거랑 에고가 시키는 대로 사는 거랑 똑같아요. 그래서 제가 바닥 치기 전까지는 안 했는데, 진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게 이런 것인 건가 봐요.

이게 좀 신기한 기분인 것이, 에너지가 많은데 좀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뭐냐 하면, 예전에는 계속 뭘 저항하고 열심히 하고 그러고 있으니까, 굉장히 바쁘게 노력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가만히 있으니까, 그 자체로 약간 힘 빠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기도 해요. 그런데 또 그 상태로 그러면 가만히 있어 보면, 이건 내가 정말 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불안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게 아닙니다. 행동은 하되, 불안의 잔재로 하는 것과 행동만 하는 것이 매우 다르다는 겁니다. 불안하고 뭐 해야 할 것 같고 결핍인 상태에서 행동해봤자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요. 제가 평생 살면서 열심히 한 것 중 그렇게 해서 원하는 걸 얻었던 때조차 그게 좋지도 않았어요. 잠깐 좋았을 순 있는데, 그렇게 뭘 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걸 염두에 두는 데다가, 지금 현재 제가 뭔가… 그래, 내가 만약 머리를 뺑글뺑글 돌려서 뭘 할려고 한다 치면, 그렇다면 내가 뭘 할까? 뭘 어떻게? 언제 어디서 무엇을? 이렇게 물어본단 말이죠, 저 자신한테. 그러면 답은 항상. “몰라. 아무것도 못 해.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이거예요.

팟캐스트 할 거 다 하고, 픽션도 쓰고, 번역도 해요. 그런데 그 외에 뭔가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세상을 이렇게 바꿔야지 저렇게 바꿔야지’ 그게 다… 어… 그냥 관심이 없어졌어요. 오히려 약간 가끔씩 생각이 하나 올라와요. “이게… 이래도 되나?” 근데 그렇다고 해서 불안해지지가 않아요. 옛날에 저는 제가 가만히 있으면 불안했어요. 이래도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첫째로, 말씀드렸듯이, 이래서 될 리가 없다고 믿어서 정말로 이러지 않았을 때, 즉, 가만히 있지 않았을 때, 그 결과로 뭐 잘 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둘째로, 정말로 몰라요. 정말로 뭘 더 해야 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요.

알면 좋긴 하겠죠? 가끔 스스로 물어봐요. 제발 답을 알려달라. 그런데 그 답이 바깥에 없다는 건 이제 알겠더라고요. 밖에, 무슨 구글에다가 검색어 치면 “너 지금 이렇게 하면 돼” 알려주는 페이지는 아무 데도 없어요. 아무리 각종 하우투 도서나 유튜브 영상을 봐도,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왜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떻게서든 계속 문제를 찾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저는 이제 불면증이 없고요. 아마 제 방식대로 명상을 하는 한 불면증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명상. 그중에서도 뭘 어떻게 하려는 명상 말고 그냥 그대로 두는 명상. 이거 불면증자분들에게 강추합니다. 뭘 어떻게 하려고 하는 명상이면, 사실, 그냥 안 하는 게 좋아요. 뭐든지, 우리가 괴로울 순 있지만, 괴로우려고 더 노력을 하진 맙시다. 괴로우면 그냥 괴로우면 돼요. 왜 더 노력을 해서 괴로운 건지. 되게 당연한 말 같은데, 저는 인생의 대부분을 이렇게 살았어요. 기가 막혀요. 유치원 때부터 이랬던 것 같아요. 살려면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고 하는 사회에서 살고, 공교육 비슷한 무언가를 받은 사람이라면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이런 상태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시스템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는, 그 시스템에서조차 괴로우려고 노력을 추가로 안 하는 게 더 유리하다. 잠깐 정신 차리고 내가 너무 시스템 내부에 있는 나를 너무 보지 말고 빅 픽쳐를 잠깐만 보면은, 어렵지만, 그 당시에는 어렵지만 잠깐 보면은 이게 이렇게 아둥바둥할 일이 아니라는 거를 머리로 말고 몸으로 알기도 하더라고요.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잠을 잘 자는 바람에 커피를 자신 있게 열심히 마시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커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뒤늦게나마, 어, sontagreturn님과 James님, 커피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제가 Buy Me a Coffee라는 플랫폼을 통해 후원금을 받고 있는데, 아임 드리밍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 sontagreturn님과 James님이 저한테 커피를 사주셨어요. 제임스 님은 확실히 아임 드리밍을 들으시는 분이에요. 커피를 두 번이나 사 주셨어요. 세상에 만상에. 그리고 우리 괴물이도 읽어주셨대요. 우리 괴물이. 우리 코끼리맨 메릭이가 표지에 있는 괴물성 책을 읽어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sontagreturn님은 확실하진 않은데 아마 아임 드리밍 청취자 아니실까? 추측해 봅니다. 아임 드리밍이 아니라면, 어… 어떤 경로일까? 블로그인지? 고막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두 분이 커피를 여러 잔 사주셔가지고, 매우 감사드립니다.

요즘 커피 필요해요 진짜. 그리고 플랫폼 이름은 Buy Me a Coffee지만, 그것은 그… 후원하는 이와 후원받는 이 사이의 관계를 좀 과한 격식 없게,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한 이름이고요, 저는 지금까지의 후원금들로 뭘 샀느냐 하면, 명상 방석, 명상 벤치, 그리고 커피, 실제 커피를 샀다.

네. 여러분의 후원금은 한아임의 물질세계에 반영이 됩니다. 어떤 추상적인 숫자로 남는 게 아니라, 진짜로다가 제 몸에 닿는 거, 제 몸에 들어가는 일용할 커피, 이런 물질로 둔갑하여, 그것은 또 이런 팟캐스트 에피소드나 픽션 이야기로 둔갑하고, 그렇게, 순환이 됩니다.

그리고 음… 제가 블로그들을 은퇴시켰어요. 명상을 하면서 블로그를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명상을 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네요. 뭘 새로 해야지만 명상에서 떠오른 영감이라고 생각했는데, 뭘 안 해야겠다는 생각도 영감이네요. 영감이라고 해서 뭐 거창한 건 아니고,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안에서 오는 거면 영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안과 밖이라는 개념 자체를 넘어서는 게 영감이긴 하지만, 편의상, 안에서 온다고 말을 해봅니다.

아무튼 블로그를 데일리 업데이트를 거의 1년을 했었어요. 두 블로그 다. 한국어 블로그 영어 블로그. 그런데 약간 그… 그 시대가 저문 느낌? 그런 느낌이고요. 픽션도. 완전히 극명하게 갈려요. 2023년 봄 이전에 쓰는 거랑 출판까지 다 끝난 아이들, 그리고 당시 작업 중이었고 지금도 약간… 림보에 걸쳐 있는 아이들. 그리고 이제 몇 년후면 아예 새로운 아이들이 탄생할 것 같아요.

근데 다시 블로그로 돌아가자면. 그냥 블로그를 갑자기 안 하고 싶더라고요? 그냥 왜인지. 가끔 계속 업데이트를 하긴 할 건데, 데일리 스케줄이었다가 확 빈도수가 줄어드는 것이라서 ‘은퇴’라고 명명했습니다. 원래가, 은퇴한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요? 가끔 일도 하죠? 그런 상태입니다, 이 블로그들이.

그리고 블로그들은 이렇게 은퇴 상태인 가운데, 왠지 모르게… 왠지? 이 Buy Me a Coffee에다가 글을 올리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좀… 올리기 시작해 봤어요. 왜냐하면, 거기서는 비공개 글을 올릴 수 있거든요. 친구끼리. 네. 한아임한테 커피 사주면 친구예요. 친구지 그럼. 오프라인 친구끼리도 커피를 안 사 마시는데. 아니 지금 이혜원 기획자를 오프라인 세계에서 만난 지가 4년이에요, 여러분. 오막 만난 지도 4년이라고요. 그러니 한아임한테 커피를 사준다니, 맙소사. 오프라인 친구보다 더 커피를 많이 같이 마시는 느낌이란 말이죠.

아무튼 이 플랫폼에다가는 비공개 글 내지는 이메일을 올릴 수 있어요. 그래서 약간 이게… 뉴스레터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메일 형태로 받기 싫으면 이메일만 unsubscribe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그냥 포스트에 접속해서 글을 읽을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요걸 좀 더 써볼까? 하는 느낌이? 영감이? 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Buy Me a Coffee는 지금 진짜 그룹이 작아요. 그리고 그 작은 와중에 어… 제가 하는 모든 일의 루트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참 골고루 있어요. 블로그, 팟캐스트, 픽션, 영어, 한국어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아주 골고루 있어요. 그리고 이 그룹의 크기는 그러한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 읽고 듣는 그룹의 크기의 100분의 1도 안 된단 말이죠.

그래서 제가 아임 드리밍에서 이렇게 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다 말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Buy Me a Coffee는 비공개 기능이 있고, 게다가 그… 한국어 영어 막 섞여 있는 게 좀, 제가 만약 제가 모르는 언어를 구사하는 누군가를 서포트한다면, 어… 좀 낯설고 그럴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온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은… 한아임이 되게 좋으신가 보다. 아니면 적어도 한아임이 하는 일이 좋으신가 보다. 그러면 뭔가 내가 좀 더… ‘참 신기하게도 산다’라고 여길 만한 얘기를 더 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영감이 떠올랐는데 아직 그 결과가 이 세상에 없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 도대체 언제 다 쓸지 모르는 작업물의 진행 과정 이야기. 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페이지에 댓글 기능이 있어요. 그래서 이메일 보내기 부담스러우신 분들도 쓸 수 있고요. 이메일을 보내셔도 되고. 이건 뭐, 후원을 하시든 말든 이메일 보내셔도 됩니다. 웬만하면 답을 보내요, 지금 현재에는. 제 모든 웹사이트들에 가보시면 “이러이러한 경우 이메일 보내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그건, 정말로 그런 이상한 경우들이 있어서 그렇게 안내가 되어 있는 거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예를 들어, 이 팟캐스트나 제 영어 팟캐스트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게스트가 일절 없는 팟캐스트들이란 걸 알 텐데, 게스트 받냐고 한다든지. 아니면 무슨 자기가 쓴 글을 읽어 보라고 한다든지. 무슨. 아니 왜. 말도 안 되는. 자기가 썼으면 그냥 출판을 하면 돼요. 그게 가능한 국가에 산다면요. 그게 아니면 출판사를 찾으면 돼요. 나는 출판사도 아니고 아무 그냥… 아무 사람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런 걸 보내. 그래가지고 아마 제가 웹사이트에 이렇게 써놨을 거예요. 나한테 소설이든 뭐든 그런 거 보내면 보내는 즉시 삭제한다고. 약간 그… 마치 할리우드 영화 스튜디오들에서, 에이전트 없이 대본 보내면 안 읽고 파기한다는 안내처럼, 제가 그렇게 써놨어요. 왜냐하면 이러다가 나중에 자기 얘기를 표절했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걸로 딴지를 거니까 스튜디오들이 그렇게 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써놨습니다.

아이러니는, 어… 그런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은 아마 컨택트 페이지의 안내를 안 읽을 거라는 점인데…

뭐 이러나저러나, 만약에 대비해서 안내는 그렇게 해두었어요. 그러나 일반적인 이메일에는 답장을 합니다. 한아임한테 커피를 사줬든 말든. 근데 커피 마시는 그룹 친구들 사이에서는 댓글 기능이 있고, 그러한 기능이 있는 포스트를 이메일로 뉴스레터처럼 받아볼 수 있는 기능도 있어서, 한아임이 혹시나 어쩌면 좀 더… 이상한 얘기를 거기다가 해볼까? 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분도 제가 하는 얘기와 비슷한 얘기들을 댓글로 달고 싶으실 수도 있잖아요? 근데 너무 다 공개적으로 보여지는 거 말고, 조금이나마 좀. 커뮤니티? 진짜 작은 커뮤니티. 여기에 막. 영어 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어 하는 사람도 있고 픽션 읽는 사람도 있고 팟캐스트를 통해 들어온 사람도 있는데 하여간에 다 뭔가… 약간 감은 올 거잖아요? 한아임이 하는 거, 혹은 Ithaka가 하는 거 좋아서 들어온 사람들이 좀 비공개적으로 소소하게나마 댓글 달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 공간이 활성화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좀 채우기를 시작해볼까. 제가 아무것도 안 하면 그 공간은 앞으로도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여간에 음… 이… 두려운 곳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해요. 뭔가 그… 나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 그걸 받아들였다고 착각할 수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벌레를 무서워한다고 하면,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를 받아들이면서도 벌레를 죄다 피하고서는 받아들였다고 착각할 수 있어요. 벌레를 피하는 게 아니라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를 피하는 것일 수가 있단 말이죠. 그래서 착각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벌레가 있을 곳으로 가보는 거죠.

게다가 벌레의 예시는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이라서 착각을 하나 안 하나 진단해 보기가 수월한데, 내면에 있는 건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가 수치 당하는 두려움이 있다면, 수치 당할 곳으로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내가 정말 수치 당하는 나를 받아들였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아니면 더 세밀하게는, 거절당하는 수치를 두려워했다면, 내가 거절당해서 수치 당할 상황에 놓이기 전까지는, 거절당해서 수치 당하는 나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제가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어… 길게는 여기서 설명을 안 할게요. 그런데 요약을 하자면,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가 굉장히 크게 있더라고요. 크게 있는 것 중 하나가 이 두려움입니다. 저는 바로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생각이 돼요. 왜 제가 글을 쓰고 싶었는지를 몰랐는데, 명상하면서 알게 된 것을 토대로 볼 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팟캐스트도 이야기라는 큰 틀에서 보면 할 수밖에 없었고, 번역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그… 어떤 결핍이 크면 그 결핍을 채우기 전까지는 계속 허한 느낌이 들고, 저는 지금 그 허한 상태이지만, 결핍을 아예 모르는 분야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듭니다. 왜냐하면, ‘뭔가가 없는 상태’가 얼마나 개떡 같은지를 자기가 알아야, 그러니까, 그것이 객관적으로 개떡 같아서가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내 세계에서, 이것이 빠진 그 세계는 너무 개떡 같다는 걸 내가 알아야, 그래야 그 빠진 것을 넣을 수도 있고, 그 빠진 것이 채워졌을 때 좋다는 생각이 들고, 또 나 외의 다른 누군가한테 그것이 빠져서 그 사람이 결핍이 느낄 때 “그런 데서 왜 결핍을 느껴?”라고 하는 대신에 그걸 채워주거나, 적어도 “아, 네가 결핍을 느꼈겠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 이게 근데… 결핍된 걸 머리로만 알아서 될 일이 아니더라고요. 진짜 결핍돼야 돼요. 뼛속까지. 그걸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음… 이를테면, “언젠간 잘될 거야” 이건, 거짓말이었더라고요. 그건 긍정이 아니고. 이건 늘 안 돼. 머리로는 이게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제 마음으로 왜 안 되는지 알겠어요. 왜 안 되냐면, 계속 “언젠가는”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누가 내 이야기를 안 들어줘서 개떡 같은데, 계속, 지금 여기의 쭈구리 나는 무시하고, 언젠가 잘될 나를 상상하는 거예요. 그럼 나는 언제까지나 지금 여기서는 부족한 쭈구리가 됩니다. 그래서 안 되는 거였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이걸 몰랐어가지고, 가짜 긍정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 방법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음… 아닌 것 같아. 이건 뭐, 여러분? 이게 참. 그렇죠. 제가 아무리 이렇게 말해봤자.  뭐 증거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니 한아임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몇 년 후에 확인해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일단 지금 제 생각에. 음. 가짜 긍정은 진짜 아무 소용이 없다. “언젠가 잘될 거야” “하다 보면 되겠지.” 이런 거. 언젠가 잘될 수도 있긴 하지. 그리고 하다 봐야 되든지 말든지 하는 건 맞지. 그런데 그러한 결과가 핵심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개떡 같다는 걸 인정을 해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무슨 존재로서 무가치하다는 그런 뜻이 아니고요, 지금 여기의 나를 위로해 준다는 명목으로, 부정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만약에 제가 벌레떼에 뛰어들듯이, 아니면 거절당하는 수치를 느끼러 가듯이,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더 맞닥뜨려서 체험해 보려면, 뭘 해야 하나? 소셜 미디어를 해야 하나? 거기 가면 정말 아무도 아무의 얘기를 안 들어주잖아요. 그걸 좀 뼈저리게 느껴볼까?

아니면 그냥 지금 하는 걸 계속하는 걸로 충분할까?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거든요. 저는 이 결핍이 커가지고. 늘 느껴요. 옛날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무시하고 안 느끼려고 했던 걸 요즘엔 늘 느낍니다. 느껴도 하는 거예요. 행동은.

음… 뭐,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러한 소소한 근황들이 있었습니다.


급격하게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얘기할 영화, <스타 탄생>, 1937년 버전입니다. 전혀 누아르 장르가 아닌데, 영화가 너무 재밌고, 예쁘고, 어쨌든 <누아르 어바니즘>에서 언급이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너무나 재밌게 봤어요. 각자의 거주 국가에서 관람 가능한 플랫폼을 찾아서 봐봅시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모든 음악

Opening

  • The Play – Instrumental Version – Eli Benacot

Within episode

  • Nobou – Memento
  • DoGBeaT – Crime Scene
  • Benno – Cookie

Closing

  • St. Charles – Mark Yencheske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2023 한아임

소개

✨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