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포장매직: 속까지 맛난 너

아임 드리밍 [Ep. 6] 포장매직: 속까지 맛난 너

1: 오프닝

00:00:00-00:02:35

[음악: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이것은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잠에 대한 압박감을 잊고, 적당히 남의 딴생각을 하다가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팟캐스트입니다. 랜덤성이 핵심입니다. 랜덤해야 열심히 머리를 굴리지 않고, 머리 굴리는 걸 깔끔하게 포기하니까요.

오늘은 뭐에 대해 얘기할 거냐면요, 포장입니다. 지금까지 추상적이었던 경향과 달리, 오늘은 정말, 진짜로, 완전 그냥 포장. 만져지는 포장. 겉에 드러난 포장. 그것에 대해 얘기할 겁니다.

제가 최근에 포장에 관해 아주 감동적인 일이 생겨가지고요. 네. 그런데 이 얘기가 음식과 얽혀 있기 때문에, 배가 고파지실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감안하시고, 여러분의 밥 스케쥴에 따라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음악 FADE OUT.]


2: 실버 라이닝

00:02:35-00:12:49

여러분?

코비드 때문에 전 세계가 정신이 없는 가운데, 제가 살고 있는 엘에이 주변 지역은, 놀랍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더 좋아지는 면이 꽤 있었습니다.

일단, 별로 드넓지 않았던 슈퍼의 통로들이 꽤 드넓어져서, 카트 끌고 장을 보기에 아주 쾌적해졌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제가 사는 여기가 행정상으로는 ‘도시’이긴 한데, 이… 서울이나 뉴욕이나 뭐 그런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보면 코웃음 칠 정도의 도시거든요? 이 ‘도시’라는 것의 기준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요. 도시라니. 서울도 도시고 엘에이도 도시인데, 엘에이만 해도… 그 드넓고, 차 없으면 돌아다닐 수도 없는 곳을, 그냥 행정상 큰 뭉텅이를 하나의 도시로 지정해놨다고 해서 도시가 되는 건지. 하물며 제가 사는 곳은 엘에이 시도 아니란 말이죠. 엘에이 변두리입니다. 그러니 이 동네는 정말이지 말은 도시인데, 도시라고 하면 진짜 도시들한테 미안한, 그런 사이즈의 도시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도시인들의 유연함이 없습니다.

눈으로… 길을 보고 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하도 자기 주변에 뭐가 없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그냥 앞만 보고 다니는 거예요.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도시인에 비해서 그렇단 거예요. 도시 사람들 왜. 서울에서 지하철 타면. 정말 그 바글거리는 와중에서, 뭐 너무 바글거리면 어쩔 수 없이 부딪히긴 하지만, 아주 출퇴근 피크 시간대가 아닐 때는 모든 공간이 꽉 찬 것 같으면서도 그 사이를 사람들이 아주 우아한 물고기들처럼 스윽스윽 헤엄쳐서,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잘 다니잖아요. 그런 스킬이 계속 넓은 데에 살다보면 없단 말이죠. 그래서 그냥 길을 걸어갈 때도, 길이 엄청 넓은데, 그 넓은 와중에 또, 와서 부딪혀요. 그 어려운 걸, 그들이 해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슈퍼 통로가 어정쩡하게 좁은 거예요. 아무리 통로를 넓게 만들어도 원래는 두 카트가 함께 지나갈 정도 이상의 너비로는 안 만들었단 말이죠. 그런데 코비드가 오면서 그 이상으로 넓어진 슈퍼들이 저희 동네에는 있었습니다. 게다가 원래는 부딪히던 사람들이 눈을 장착하고 다니기로 했나 봐요. 그래서 너무 좋은 거죠. 이건 아주 상당한 실버 라이닝입니다.

그런데 이 실버 라이닝은 그냥 부가적인 것이고요. 오늘의 주제, 포장하고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게 좋아진 점은, 배달 음식입니다. 머나먼 옛날, 제가 미국에 왔을 때는, 음식을 시켜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지금도 도시라고 할 만한 자격이 있는 도시에 살지 않고 그전에도 음. 정말 도시라고 할 만한 곳에 살았던 건 아주 잠깐이었어요. 그 외의 도시들에서는 시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딱 두 가지였어요.

피자, 중국 음식.

미국에 너무나 중요한 음식들입니다.

여러분? How I Met Your Mother라는 드라마에 나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누가 그래요. ‘미국 사람들이 먹는 음식 있잖아!’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다음에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아, 중국 음식.’

그 정도로. 중국 음식은, 그러니까 미국화된 중국 음식이죠, 한국에 한국화된 중국집이 있듯이. 미국화된 중국 음식은 코비드 훨씬 이전부터 미국의 배달 문화에 피자만큼이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둘은 아주 유일한 양대 산맥이었단 말이죠.

[Music: Mr. FreeZ – Stephen Hicks]

그런데. 코비드 이후로.

정말 배달 음식의 다양성이. 미춰버렸어요.

이제는 배달이, 없는 게 없습니다. 인도 음식. 일본 음식. 멕시코 음식. 태국 음식. 정말 별별 식당들이 Grubhub 같은 앱을 통해서 배달을 한단 말이죠. 우리 팟캐스트가 상당히 글로벌하다 보니 부가 설명을 드리자면, 그럽헙은 배달 앱인데, 식당에서 직접 배달부를 고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그럽헙 드라이버들이 돌아다니고 오더를 받아서 배달하는 형식입니다. 우버랑 비슷한 것 같아요. 차이는 이겁니다. 우버는 사용자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는 것까지 하는데, 그럽헙은 배달물을 식당부터 사용자 거주지까지 가져다주는 일을 하는 겁니다.

아무튼. 이런 그럽헙, 포스트메이트, 도어대시 등등의 서비스들이 꽃피우는 바람에, 저는 요즘 태어나서 가장 다채로운 배달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너무 좋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배달 음식의 로망. 한국에는 너무 많은 거. 한국인은 하루에 한 마리씩 먹는다는 루머가 돌아다니는 그 음식. 그것이. 그럽헙 앱에 있는 게 아니겠어요?

바로. 치킨입니다.

[Music FADES OUT.]


3: 미국화의 미스테리

00:12:49-00:19:48

그것도 치킨 중에 비비큐 치킨이 있는 거예요, 그럽헙에. 여러분. 비비큐 치킨은. 아마 제가 어렸을 때, 한국에 살 때 제일 처음 시켜 먹어본 치킨이 아니었나 싶어요. 지금은 치킨 브랜드가 엄청 다양해졌다고 들었는데, 제가 경험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는 거의 비비큐가 유일했던 것 같아요. 만약 다른 브랜드가 있었어도, 그래도 저희는 비비큐만 시켜 먹었거든요.

거기다가 좀 비교적 최근에, 광희님이 비비큐 측이랑 네고왕을 찍은 걸 봤어요. 이 유튜브 영상을 쇼노츠에 링크할 테니까, 여러분 시간 나실 때 한번 봐보시면 좋겠습니다. 일단 광희님이 말을 너무 잘하시고요. 이런 콘텐츠에서 중요한 것은 광희님 만큼이나 또 상대 사장님 아니겠습니까? 이 네고왕이라는 프로가, 광희님이 여러 회사 사장님들이랑 네고를 해서 혜택을 받아내는 형식이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비비큐 편이 있었단 말이죠. 여기에 아주… 충격적인 비주얼의 회장실이 나오는데, 저는 그때도 생각했습니다. 아니, 이 회장님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면, 회장실에 저렇게… 회장실에, 여러분, 닭이. 닭이 그냥 곳곳에. 살아있는 닭 말고. 닭 형상들이. 이거 저는 너무 기괴해서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제 얘기를 듣다가 주무시고, 내일 일어나셔서 영상을 한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회장님의 회장실을 근래에 보았던 비비큐가. 비비큐 브랜드가. 우리 동네에 지점이 있는 거예요. 미국에. 상호가 그냥 비비큐가 아니라 비비 쩜 큐, 비비 닷 큐로 바뀌었더라고요? 아무튼 뭐. 그래서 옳다구나! 시켰죠. 막 두근거렸어요. 이것이 과연 내가 기억하는 그 엄청 맛난 추억의 치킨 맛일까. 아니면 혹시 미국화되어서 맛없어진 거 아닐까.

[Music: Mad Crows – Ian Post]

이게. 여러분. 이건 정말 제가 ‘미국화’라고 불러도 미국한테 안 미안합니다. 미국이 좋은 점도 많고, 저는 그 좋은 점이 특히 취향에 맞아서 미국에 삽니다만, 그래도 그렇지. 어떤 브랜드가 한국과 미국 두 곳 모두에 있을 때, 미국 버전이 지금껏 백이면 백 더 맛이 없었습니다. 맛만 없는 정도가 아니라 청결 상태가 의심될 정도로 이상한 경우가 꽤 있어요.

가장 어이없는 예가 서브웨이입니다. 서브웨이가 한국 드라마를 통해 그렇게 피피엘 하는 거 보면 무슨 젊은 층 사이의, 그래도 좀 힙하고 나이스한 브랜드인 줄 알겠어요. 미국에서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지금껏 미국의 여러 주에서 여러 서브웨이 매장을 보아 왔거든요? 서브웨이는 항상 왜 그렇게 매장이 어두컴컴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슬퍼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국은 일단 드라마상에서는 아니잖아요. 이래서 피피엘이 무서운 겁니다. 아주 한국 드라마만 보면 서브웨이 가면 사랑이 싹틀 것 같잖아요? 네… 전혀. 미국 본부장님은 서브웨이 가지 않아요. 본부장님. 이사님. 선배님. 다 안 갑니다.

[Music ends.]

참고로 여러분? 저는 여기서 샌드위치는 저지 마이크스에서만 먹습니다. 저지 마이크스 얘기는 이따 좀 다시 하기로 할게요.


4: 4차 치킨 혁명

00:19:48-00:29:13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Mallets, F maj, lullaby, phrase – Artlist Original]

아무튼, 치킨을 시켰단 말이죠. 일단 냄새가 영롱했어요. 아아주 현기증 일으키는 냄새. 아주 그냥. 네. 맛난 냄새. 배가 꼬르륵거리는 냄새. 이것이 1차 감동이었습니다. 냄새.

그다음, 일단 박스를 열었어요. 이때 2차 감동이 왔습니다. 아름다운 자태. 이것을 보고.

이… 치킨이. 후라이드 치킨이. 나라마다 또 다르잖아요 맛이. 기름진 정도도 다르고, 튀김옷도 다르고. 그런데 그… 추억의 맛. 치킨이라면 이래야지 하는 맛. 그 맛의 비주얼적 에센스가 아주 느껴지는 그런 비주얼! 먹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그 비주얼! 그렇게 생긴 치킨이 아주 푸짐하게 박스에 앉아 있더라고요.

이… 나라마다 평균적으로 기대하는 슈퍼 생닭이나 식당 닭요리의 크기와 퀄리티가 다를 거라서, 한국에서는 가성비가 어떤지 모르겠으나, 미국의 다른 슈퍼 및 식당의 닭과 비교했을 때, 이 비비큐의 닭은 아주 양질의 닭이고, 크기도 제법이더라고요. 비슷한 퀄리티와 크기의 닭을 집에서 튀겨먹어도,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비비큐에서 시켜 먹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그래서 저는 미국 비비큐의 가격이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시켜 먹는 게 아깝지 않아요.

아무튼 이 자태를 보고, 얼른 이 엄청 맛나는 냄새를 풍기는 치킨을 입에 넣었습니다. 이때 3차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어요. 하… 제가 기억하던 그 맛이더라고요. 어쩜 이렇게. 올리브 후라이드 치킨. 진짜 냠냠… 너무 왕킹짱 맛있어서 너무나. 너무나 정말. 아… 오래 살길 잘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유명한 말이 있죠? “기름, 튀김, 탄수화물, 술, 등등을 안 먹으면 오래 산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네. 십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른 데는 돈 안 써도, 먹는 건 좋아해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저한테는 살면서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언제 한번 탄수화물 얘기도 할게요. 탄수화물… 너무 좋아해요. 제가 면순이에요. 칼국수 파스타 라면 라멘 짜장면 짬뽕 다 좋습니다. 그리고요. 골프 치기 전에는 면을 먹어야 해요. 저는 밥 아무리 먹어도 소용없더라고요. 빵도 소용없어요. 피자도 소용없고. 밀가루 면. 파스타. 그거 먹으면 네다섯 시간 거뜬합니다.

아무튼. 다시 치킨 얘기로 돌아와 보자면. 1차 감동 냄새, 2차 감동 비주얼, 3치 감동 맛이 왔단 말이죠. 이것에서 끝났어도 저는 너무나 만족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활자중독 아닙니까?  치킨을 열심히 먹으면서, 배달이 온 박스를 한번 무심코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

박스가 또 영롱한 거예요. 저는 4차로 감동했습니다. 1차, 2차, 3차로 충분할 거 같았는데, 4차 치킨 혁명이! 온 거예요.

박스에. 텍스트가. 여러분. 일단 박스 하나 보고 왜 이렇게까지 감동하는지, 이 동네의 다른 배달 음식들은 어떤지 좀 부가 설명을 드리자면요. 일단 뭐, 아무 브랜딩도 없는 그냥 박스들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식당들이 대형 브랜드가 아니고 개개인이 하는 식당이다 보니, 로고도 색깔도 없는 박스를 씁니다. 뭐, 나름대로 깔끔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미국에서 중국 음식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때는… 인도 음식을 시키면 중국 음식 브랜딩이 되어서 와요. 그러니까, 쌀은 인도식 쌀, 그… 인도식 양념이 된 길쭉하게 생긴 쌀인데, 그게 Chinese Food라고 빨간 글씨로 쓰여 있는 흰 박스에 담겨서 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까 뭐냐하면, 아마도, 제가 추측하건대, 아무 글씨도 없는 박스보다 Chinese Food라고 쓰여 있는 박스가 더 싼 거야. 그래서 인도 음식을 시키면 중국 음식이라고 오는 신기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가 시켜 먹는 인도 식당 음식은… 진짜 맛있거든요? 인도 음식용 박스 공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아니면 그래도 좀 그냥 아무것도 없는 박스를 쓰면 좋겠는데. 음식이 너무 맛있는데. 저는 카레도 좋아하고. 탄두리 치킨도 좋아해가지고, 인도 식당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중국 음식 박스를 쓰면 안 될 것 같아요. 옆집이 중국 식당인가? 박스를 공짜로 줬나?


5: 영롱한 박스

00:29:13-00:42:34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Harp, F major, singular ascent – Artlist Original]

아무튼 여러분. 이제 박스 디테일 설명을 해볼게요. 사진도 보관소 녹취록에 올려놓을 텐데, 아무 예쁨 효과도 없는 사진이거든요? 뭐 필터 그런 것도 없고, 그냥 막 찍었습니다. 혹시 가서 구경하실 거면요, 내용을 봐주세요, 내용을. 그렇지만 가서 사진 안 보셔도 됩니다. 제가 지금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설명을 드릴 거니까요. 상상을 해보세요.

[Music: Warm Up – Stefano Mastronardi]

정직한 사진술로 찍은 박스 윗면. 양념치킨 개봉 전.

일단. 박스 윗부분은, 뭐, 평범합니다. 후라이드 치킨 닭다리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고, 흰색과 빨간 배경이 입맛을 돋구는, 그런 전형적인 음식 박스 디자인입니다.

보통은 말입니다. 거기서 끝이란 말이에요. 음식물 박스가 음식 따뜻하게 깨끗하게 담고, 맛있어 보이게 하면 됐지. 뭐, 더 바라지도 않습니다. 바랄 생각이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 비비큐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박스 옆구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단, 박스에 옆구리가 네 면이 있을 거잖아요. 그 네 면 중 놀고 있는 면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게 충격이었는데, 제1면부터 제4면까지, 설명을 해볼게요.

역시 왕킹 아무 필터도 없는 제1면.

일단. 제1면. 여기에 써 있어요. Chicken University.

아니 이럴 수가. Chicken University? 치킨 대학? 나중에 저의 동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치킨 대학이면 치대네 치대?” 네. 여러분. 비비큐는 그냥 기업이 아니라 치킨 대학이 있나 봐요. 저는 몰랐어요.

아무튼 Chicken University 아래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bb.q has a R&D sector with over 30 researchers who make their best efforts to optimize the flavors and execution of product”

네. 놀랍습니다. 연구진이 30명으로 구성되어 있대요. 이분들은 그러면 명함에, “치킨 대학 연구원.” 이렇게 쓰여 있을까요? 너무 궁금합니다.

빛 반사되고 난리 난 제2면.

자. 제2면로 넘어갈게요. 여기는 또 카리스마 있게 검은색이 좀 많이 들어갔는데, 뭐, ‘구매 후 바로 먹어라.’ ‘남은 치킨은 냉장고에 넣어라.’ ‘닭 뼈를 동물에게 먹이지 말아라.’ ‘치킨이 덜 익었거나 뭔가 불만 사항이 있으면 즉시 반품해라.’ 이런 안내가 쓰여 있습니다. 뭐, 당연한 말들인데…

[음악이 갑자기 끊긴다.]

왜 여러분, 그… 맥도날드 커피 컵에 ‘뜨거우니 조심하시오.’ 이게 쓰여 있는 이유가. 어떤 사람이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1992년에 어떤 사람이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샀다가 그걸 쏟아서 화상을 입었는데, 무려 3million dollars, 300만 불에 달하는 위자료? 네. 하여간 보상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쳤죠? 네. 쇼노츠에 링크한 설명을 보시면, 뭐, ‘커피가 보통 뜨거운 게 아니었다. 이 소송 건 사람만 다친 게 아니었다.’ 이런 설명이 구구절절 나오는데. 네. 참… 이제 뭐… 커피를 식혀서 팔아줘야 하는… 네. 그러니까, 커피를 바로 마시면 입이 데일 정도의 온도로 왜 팔았냐 이걸 따진 겁니다, 이 사람이. 근데 커피를 바로 마실 수 있는 온도로 팔았으면 커피 왜 식었냐고 따지지 않았겠어요? 대단합니다.

제가 세상이 넓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예요.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 아무튼 그런 나라에서 비비큐가 장사를 하려니까, 치킨을 구매 후 바로 먹어야 한다는 것까지 알려주는. 그러니까, 바로 먹지 않더라도 혹시나 누가 배탈 났을 때 소송 걸까 봐, ‘우린 바로 먹으라고 했는데?’ 하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아야 하는. 그러기 위한 안내문들이 요 제2면에 있습니다.

[아까 그 음악이 다시 시작.]

우리 팟캐스트 만큼이나 글로벌한 제3면.

제3면에는요. 지도가 있습니다. 와우 비비큐. 글로벌해요. 네. 뭐 곳곳에 많다, 이런 겁니다.

대망의 제4면!!!

그리고 이제, 대망의 제4면.

아아, 여러분. 이것은 정말. 영롱한 메시지였습니다.

[Music FADES OUT.]

일단 제4면의 제목이 이겁니다. “Global Franchise group bb.q’s History & Vision” 오케이. 좋아요. 아주 분명합니다.

그러고 그 아래에 여러 다른 정보와 함께 두 개의 줄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줄이라 함은, 여러분, 왜 그, 연도순 표시할 때, 좌측에서 우측으로 줄이 죽 그어져 있고, 거기에 눈금처럼 연도를 표시하잖아요. 그런 형태의 가로줄 두 개가 위에 하나, 아래에 하나 있어요. 위쪽 가로줄은 1995년부터 1999년을 가리키는 줄이고, 아래쪽 가로줄은 2003년부터 2025년을 가리키는 줄인데, 이 줄 두 개의 거의 모든 부분이 흰색인 반면, 이 2025년,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무슨 색인 줄 아세요? 빨간색.

그리고 아까 제목 말했잖아요. “Global Franchise group bb.q’s History & Vision.” 여기서 앞부분, 그러니까 “Global Franchise group bb.q’s History &” 부분까지, 요기는 흰색이에요. 근데 Vision은 무슨 색이게요?

빨간색!

[Music: Awake My Soul – Salt of the Sound]

그러니까 1995년부터 2003년경은 History고, 2025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Vision이라는 거예요. 깔맞춤을 한 거예요, 빨간색으로.

누가 이렇게 깜찍하고 유용한 생각을 했을까요? 왜냐하면요 여러분. 깔맞춤에서 또 끝난 게 아니에요. 이 디자인에 내용이 엄청 많아요.

이… 1995년부터 첫 번째 줄이 시작한다고 했잖아요. 요기에, 맨 좌측에는, 달걀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줄의 중간 부분인 1996년에 해당하는 곳에는 병아리 그림이 있습니다. 그다음, 1999년, 즉, 첫 번째 줄 우측 끝에는 병아리와 닭의 중간 단계, 그러니까 중닭이라고 하나요? 중닭이 있어요. 그러니까,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비비큐라는 기업이 알에서 탄생해서 중닭 단계까지 갔다, 이거죠.

그다음에 아랫줄이 2003년으로 시작하는데, 거기에 성체 닭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빨간 부분. Vision, 2025년, 미래. 거기에는 무려… 닭 패밀리가 있어요. 아니, 그림에 닭 두 마리와 병아리들이 있는 겁니다.

이건 그러니까, 글을 못 읽는 사람도 제4면에 있는 비비큐 측의 메시지를 알 수 있는 거예요. 색깔과 그림의 조합으로 인하여, “아, 비비큐의 비전은, 달걀에서 시작하여 닭 패밀리를 일구어내는 것이구나.”

[Music ends.]


6: 감동의 메시지

00:42:34-00:45:46

비비큐 디자이너 여러분들. 저는 이게… 저는 정말 진심으로 감동했어요. 이런 포장 박스 공간은 안 쓰면서 엄한 데에 마케팅 예산 엄청 써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비비큐. 이렇게. 종이 어차피 쓰는 거. 박스에 어차피 치킨 넣는 거. 그 노는 공간에 이렇게 메시지를 넣어서. 깔끔하게. 이거 정말 진짜 너무나… 너무나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치킨이 맛있었고. 하… 양념치킨도 먹었는데. 추억의 맛. 이 양념이야말로. 정말 입맛 차이란 말이죠. 저는 이 한국식 양념 맛이 익숙해서 미국에 있는 다양한 다른 국가들의 방식으로 만든 양념치킨은 안 먹었거든요. 그런데 비비큐… 일단 한국식 코어를 갖고 있는 와중에, 또 그중에서도 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여기까지 와서… 사업해주시고. 정말… 여기 이 제4면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미래 부분.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비비큐 측의 야망에 대해 글씨로도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전 세계에 오만 개의 매장을 여는 것이다.”

그 야망, 응원합니다. 비비큐 왕킹짱 맛있습니다. 정말… 맨날 치킨 시켜 먹으시던 분들은 뭐 저런 거 갖고 좋아하나 싶으실 거예요. 그런데 저는 한국식 치킨을 집에서 앉아서 시켜 먹는 게 정말… 십 년 만에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십오 년일 수도 있어요. 감동. 또 감동. 하… 역시 배달은 치킨이지. 킹왕짱맛.

치대 연구진들의 노고에 정말… 감사합니다. 번창하세요, 비비큐.


7: 마이크와 피터

00:45:46-00:53:44

[Music: Still On – Ziv Moran]

아까 잠시 언급했던, 제가 즐겨 먹는 샌드위치 브랜드 저지 마이크스 말입니다. 여기도. 참. 포장이 아름다워요.

그러니까 여러분, 미국에는 뭔가 투박한 그런, 중국 식당 아닌 데에서 중국 음식이라고 적힌 포장을 버젓이 써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그런 면도 있지만요. 또, 포장 잘하는 브랜드들은 매우 잘합니다. 저지 마이크스가 그 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일단 제가 생각했을 때 포장을 잘한다 함은, 포장이 내용물보다 과하면 안 돼요.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큰 거고, 무엇보다 낭비. 그… 어마어마한 낭비. 여러분, 미국은 재활용을 잘 안 합니다. 재활용을 하나하나 따를 정도로 사람들을 통제를 못해요. 그래서 저는 기업 차원에서 아예 안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저지 마이크스가. 샌드위치 샵이란 말이죠. 그런데 저는 이 브랜드가 필요한 만큼만 포장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샌드위치, 팔뚝만 한 샌드위치를 감쌀 종이 같은 게 필요하잖아요. 그게 일단 한 겹 들어가 있고요. 그 바깥으로 겉종이. 저지 마이크스 로고가 들어간 종이가 있고요. 샌드위치를 여러 개 먹을 경우, 그 모든 샌드위치들을 통틀어 담아주는 재활용지, 그… 갈색 종이로 만든 봉투가 또 있습니다. 요 봉투에. 저지 마이크스의 역사가 담겨 있어요.

[Music ends.]

이… 마이크 씨가 처음에 만든 샌드위치 집이었다. 무려, 1956년에. 당시 뭐, 처음으로 사람들이 차도 타고, 시간도 생기면서 이동성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따라서 관광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이때 집을 떠나 관광을 온 굶주린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했다. 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또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끝날 일인데,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던 14세 소년, 피터 캔크로라는 사람이 있었다 합니다. 이 소년이 17세 때, 즉,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 어머니의 격려와, 자신의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이자 은행가였던 어른의 도움을 받아서.

[Music: Simply Easy – Ziv Moran]

무려. 이 17세 소년이. 돈을 모아서 이 샌드위치 가게를 샀대요. 너무 놀랍지 않나요 여러분?

그런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이 소년이 오늘날까지 저지 마이스크의 오너이자 CEO입니다.

이거 너무… 감동적이지 않나요?

하… 제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저는 포장에 이런 얘기가 쓰여 있는 걸 정말 너무너무 좋아하고, 정말로 다 읽습니다. 이런 거 안 읽는 사람들은, ‘이거 누가 읽어?’ 싶을 수도 있는데요. 누가 읽냐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읽습니다.

아니 어떻게 14세 소년이 알바 하다가 3년 후에 가게를 사서 지금까지 경영을 하고 있을 수가 있죠? 이거 뭐 영화인가요? 소설이에요? 무슨 이런 감동 실화가 있죠?

참나…

저는 이거 영화 만들면 볼 거예요. 저지 마이크스 영화. 샌드위치 킹. 킹 오브 샌드위치.

[Music ends.]

심지어 저지 마이크스 샌드위치 너무 맛있어요. 샌드위치 중에 제일 맛나요. 왜 그… 클럽 샌드위치. 정말 샌드위치계의 정석. 기본 중의 기본. 그것이. 어쩜. 너무 상큼하고. 심지어 짜지도 않아요. 또한 내용물이 엄청 많아가지고, 샌드위치를 몇 개 사서 거대 봉투에 넣으면 마치 아기 하나를 들고 다니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샌드위치 팔뚝만 한 거가 하나당 600, 800그램 나가고 이래요. 네. 재봤습니다, 하도 무겁길래. 그러니 이런 샌드위치를 여러 개 시키면 정말로 아기 하나의 무게가 나옵니다.

네. 저지 마이크스도 번창하세요.


8: 마무리

00:53:44-00:55:59

[음악: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여러분? 제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가 한 시간 정도예요. 적당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요 정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치킨 대학 박스 사진이 거기 있을 겁니다.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더 자세하게 궁금하시면, 저의 홈페이지 ‘보관소’에서 ‘간간 소식지’를 구독하시면 됩니다.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음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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