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4] 모르는 것도 모르고, 아는 것도 모르는 빛, “아키라”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 얘기할 영화, “아키라”예요. 누아르 어바니즘의 해당 챕터 저자가 말하기를, “어쩌면 일본에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애니메이션 영화일지도 모른다possibly the most important animated movie ever made in Japan.”

그리고 제가 영화를 봐봤더니, 그렇게 여길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제가 좀 편견이 있어요. 제가 애니를 좋아하나 봐요. 네. 아임 드리밍 이번 시즌 하기 전에도 제가 매우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들이 여럿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이번 시즌을 하면서 저의 반응을 보니까, 음… 누아르 어바니즘의 그 어떤 챕터보다 이 챕터, 일본의 파멸 문화에 대한 챕터 5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그중에서도 특히나 애니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그…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일단 제가 좋아합니다. 일본 애니이긴 한데 이 배경이 지금 우리 우주의 일본은 아니거든요. 존재하지 않는 일본이죠. 미래에 어떻게 될지야 모르지만. 아무튼 그래가지고, 그… 한아임이 좋아하는, 우리 우주와 닿아 있긴 한데 실존하진 않는, 즉 우리 우주와 비슷할 거 다 비슷하면서도 스토리텔링 목적을 위해 특정 요소들만 비튼 그런 것이 일본 애니에 있고, 음… 그러면서도 장엄해요. 이것이 뭔가… 이것이 어떤 여러 이유에서 국가마다 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 같아요. 우리 우주와 닿아 있되 특정 요소만 비튼다는 공통점이 있어도, 국가마다 좀 다른 양상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국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사신, 사후세계가 잘 등장하잖아요. 이거 굉장히 특이해요, 그 장르가. 전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 서울, 혹은 서울이라고 딱 이름 붙여지진 않았지만 서울인 걸 우리가 알게 모르게 아는 그 대도시에서 사신이 돌아다닌다? 사후세계 귀신들이 돌아다닌다? 당일 배송도 모자라서 반나절이면 별별 것들이 배송되는 연결의 세계인 21세기 서울에서 이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술만으로도 모자라서 사후세계까지 연결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호러, 오컬트로 풀리는 게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 그러니까 캐릭터끼리의 연결의 끝판왕급인 스토리에 사용된다? 굉장히 신기한데.

일본 애니 중 우리 우주와 닿아 있되 특정 요소만 비튼 그런 애니에는, 장엄함이 있어요. 거대한 뭔가가 있어요. 로맨틱 코미디로 풀리는 경우는 저는 본 적이 없는데, 그게 그냥 제 취향이 그래서 제가 그렇지 않은 걸 골라 본 건지, 그거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하여간에, 장엄함이 있는 일본 애니들을 많이 봤고, 그 캐릭터 하나하나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들도 있는 것 같아요. 거대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 우주를 이용하되, 바꾸고 싶은 부분만 바꾼 세계가 캐릭터에 초점을 너무 많이 맞추지 않고 선보여지는 겁니다.


영화 “아키라.” 장엄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아포칼립스 장르 특유의 장엄함. 한아임은 요런 느낌 좋아한다. 영화가 시작부터 폭발로 시작하고요, 아, 정말 그… 애니라는 매체에서 창작자가 신이 될 수 있음을, 정말 무엇이든 보여줄 수 있음을, 그렇다고 해서 제작비가 더 들지도 않고 사람이 촬영하다 죽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도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가… 세련됐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 제목이 ‘아키라’라고 나오는데, 폰트까지 세련됐고요. 컷 편집도 세련됐어요. 그리고 인물들이 오토바이 같은 것을 모는데, 지금 우리 우주에 있는 오토바이와 흡사하면서도 조금 다른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극 중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빛이 있어요. 그 빛의 패턴과 잔상이 특히 세련됐고, 음악도 세련됐어요. 하나도 촌스럽지가 않아서 저는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그런데 이 빛 말이에요. 이 빛이 결국에는 이 영화의 메시지의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우연히 처음부터 영화의 빛 묘사에 끌려가지고 그 위주로… 어… 영화를 관람보다는 거의 약간 구경? 와 저 빛 봐라, 이러면서. 무슨 불나방처럼. 빛이 너무 예쁘다, 하면서 봤는데, 빛이 점점점 중요해지더니, 나중에는 영화에 빛밖에 안 남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실 때, 딱히 다른 끌리는 요소가 없으시다면, 빛 위주로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빛. 이 빛의 움직임이 처음부터 너무 멋있어요. 예를 들어, 오토바이나 자동차에서 뿜는 빛이 동그란 풀을 생성하는데,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여러 대니까, 그 동그라미 동그라미들, 때로는 정동그라미, 때로는 타원인 그 원들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춤을 춥니다. 이 덕분에, 오프닝 시퀀스에 폭주족이 각종 파괴를 자행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빛을 아름다워하면서 봤습니다.

그리고 피의 표현도 흥미롭습니다. 피가 빛과 만나면 특히 예뻐요. 피와 빛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이것만 관찰해도 너무 재밌습니다.

총에서 총알이 발사될 때의 빛.

유리에 반사되는 빛.

차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가 직선이며 역광일 때의 빛.

그리고 빛이 전기로 인해 생성된 것일 때와 불, 그러니까 화재로 인해 생성된 것일 때의 차이. 너어어어무 예뻐요 영화가. 너무 예쁘다. 거기에 초능력스러운 요소까지 초반부터 더하니까, 한아임은 너무 재밌었다.

플롯이 있고, 인간들이 등장하지만, 그것 외에도 이… 덩어리덩어리짐. 그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 인물들이 살이 찐 게 아닌데도, 팔다리에서 뭔가 살성이 느껴지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이 늘 그런 느낌을 주는 건 아니거든요, 저한테는. 어떤 때는 애니나, 움직이지 않는 만화나 웹툰의 그림이 납작하고, 그 납작함이 아름다울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아키라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2D이면서도 살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 갑자기 생각났는데요. 제가 맨날 이 얘기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아직 안 한 거 같아요. “그날 죽은 나는”이라는 웹툰이 있습니다. 제가 이 웹툰이 너무 재밌어가지고 미친 듯이 봤었는데, 그러다가 그… 실시간 연재를 기다려야 하는 시점이 왔어요. 왜 그, 있잖습니까. 웹툰이 이미 100화가 나와 있어가지고 100화까지 미친 듯이 달렸어. 그런데 그때부터는 이제 다음 주를 기다려야 하는 거야. 매 화. 찔끔찔끔. 제 경우에는 그럴 때 패턴이 어떻냐면, 그만 봐요. 왜냐면, 아니, 어떻게 그걸 매주 조금씩 기다려. 그래서 그때 어떤 웹툰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다른 웹툰을 또 막 달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런 패턴일 경우 문제가, 까먹어요. 내가 “그날 죽은 나는”을 미친 듯이 재밌게 봤었다는 걸 까먹어요. 그러다가 항상 애니메이션, 만화, 그림 스토리 전반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이 “그날 죽은 나는”이라는 웹툰이다.

흑백 웹툰인데, 그림이 너어어어무 예쁩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 스토리는 정말, 말 그대로, 레알로다가 그 세계에 빠질 수 있는 게 너무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날 죽은 나는”의 스토리는 제가 읽은 그 지점까지는 상당히 우울했는데, 이 그림체와 너무 잘 어울리고, 참… 뭐랄까. 그림이 늘씬하다. 여리여리하면서 선이 예쁘게 빠졌다. 그래서 그냥 컷을 이렇게 봐도. 그냥 그 컷에 뭐… 내용상으로는, 플롯상으로는 별것이 없는데, 그냥 나무 묘사나. 아무 뭐… 캐릭터 옆모습이라든지. 그런 것이 나오면, 그냥 예뻐요. 그래서 그 그냥 예쁨, 그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예쁨에 빠져가지고 미친 듯이 봤는데, 실시간 연재를 기다려야 하는 시점까지 다다르자 한아임은 까먹고 이 웹툰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이 흑백의 그림이 예쁜 웹툰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시 아키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림 묘사만 눈여겨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영화입니다. 빛, 피, 캐릭터의 살성 외에도 두드러지는 묘사가, 안개 같은 구름이 자욱했는데, 그것을 헬리콥터가 바람으로 휩쓸어 버리는 장면, 덩어리가 흩어지는 장면입니다.

만질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것의 묘사가 예쁘다고 요약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만질 수 없는 빛, 만질 수 있는 피, 만질 수 있는 인물 피부의 살성,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자욱하지만 만질 수 없게 흩어지는 안개구름 같은 것이 실사 영화보다 더 진짜 같아요. 정말 그래요.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아무리 찍어도, 거기에 생명이 들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2D 캐릭터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얼마든지 생명이 더 많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정말… 이것이 크리에이터의 혼인 것인가? 이것은 정말 스고이다.

그리고 기괴함. 그것이 나오니까 또 한아임이 ‘아키라’를 좋아했다 이 말입니다. 초반부터 어린아이 사이즈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합니다. 벤자민 버튼 같기도 하고, 보스 베이비도 생각나는 비주얼이에요. 이러한 인물의 등장 때문에 플롯상으로도 확 흥미가 생기죠.

색감도 너무 예쁘고. 사운드도 되게 특이해요.

상당히 폭력적인데, 비주얼적으로 생명이 깃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플롯적으로 너무나 장엄하고 거대해서 오히려 이 폭력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아키라’는 어떤 한 캐릭터에 몰입하는 플롯은 아니에요. 장엄함. 거대함.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리고 가뜩이나 포스트인데 다음 아포칼립스 또 오나? 그런 의문이 플롯의 중점에 있고, 인물들은, 그 시각적 묘사에 아무리 생명이 깃들어 있어도, 플롯상으로는 좀… 플롯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있죠.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인간의 형상을 한 인물이 아니고, 이… ‘아키라’라는 관념 자체예요. 아키라는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 인간 형상의 인물이었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인간이 아닌, 그런 어떤… 정말 관념이에요. 어떤 인간 아바타 개체를 넘어선 존재.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빛과 연결이 된다.

일단은 다시, 폭력성. 폭력성이 그렇게 폭력적이게 안 느껴지는 이유는,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이, 플롯상, 개별적 아바타 개체로서 조명을 받지 않아서다. 거대하고 장엄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 이리 저리 치이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떼 씬도 많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씬. 군대가 떼로 몰려다니고, 통제할 수 없는 군중이 떼로 몰려다니고. 그 와중에 빛과 피가 너무 예쁘니까. 피가 막 터져도, 와, 피. 너무 예쁜 피.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피 묘사가 다양합니다.

그리고 환각의 표현도 너무나 흥미로워요. 네. 환각까지 나와요. 한아임이 좋아하는 요소 다 들어 있어요, 이 영화에. 환각이 너무나 아름답다. 예를 들어, 토끼 인형과 곰돌이 인형이 거대해져서는 사람을 공격하는 기괴함. 그리고 그것들이 흩어지는 모습.

또한, 발아래의 땅이 꺼진다든지. 내 몸의 내장이 나와서 그걸 주워 담으려는데 알고 봤더니 환각이라든지. 손가락이 조각상처럼 깨지고 건물이 무너지는데 사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든지. 깨어나서 충격받아서 소리 지르는데 천장의 전등이 깨진다든지.

한아임이 좋아하는 거. 너무 좋아.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의 비주얼 묘사에 대한 또 하나의 찬사할 만한 요소는, 얼굴의 다양성입니다. 왜 그, 그림 이야기 중에, 분명 플롯상으로는 캐릭터가 스무 명 나오는데, 스무 명이 얼굴이 똑같은 경우가 있어요. 심지어 남녀 주인공이 나오는 로맨스 플롯인데, 남자는 여자가 여자여자해서 좋다고 하고 여자는 남자가 남자남자해서 좋다는 플롯인데도 불구하고 남녀 얼굴이 똑같애. 그냥 솔직히 똑같고, 헤어스타일이랑 옷만 바꿔치기 한 느낌인 그림 이야기가 분명 있어요. 그런 이야기의 경우에는, 저는 무슨 생각이 드냐 하면, “와, 정말, 사람들이 ‘남자는 이러이러하다’와 ‘여자는 이러이러하다’라는 관념이 얼마나 세면, 이렇게 똑같이 생겼는데 이걸 남녀 로맨스 플롯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고, 그 측면에서 또, 그것이 기괴해서 흥미롭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니, 얘랑 쟤랑 근본적으로 하나도 다를 게 없는데, 여자 혹은 남자라는 스티커를 얘랑 쟤한테 붙였더니 갑자기 얘랑 쟤한테 없던 특성이 생겨나는 거예요. 이거 잘 생각해 보면 굉장히 놀라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하여간에, 영화 ‘아키라’는 그렇지 않다. 얼굴이 상당히 다양해요. 성에 따른 다양성뿐만 아니라, 나이에 따른 다양성, 표정에 따른 다양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아키라’를 보면서는, 약간 마음이 놓이는 느낌도 들었어요. 내가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관습적이며 관성적이고 습관적이며 하여간에 아무 의식적 자각이 없는 무의식의 산물인 관념들을 가져와서는 캐릭터에다가 갖다 붙일 일이 좀 적겠구나. 갖다 붙인다고 하더라도, 캐릭터의 묘사가 다양하기 때문에, 내가 아예 착각을 하고 있다면 영화의 신들인 크리에이터들이 알아서 묘사해서 조정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걸 전부 다 한 땀 한 땀 그렸을 텐데 말이죠. 세상에나 만상에나. 이 시대에는, 이거… ‘아키라’가 1988년 영화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1988년이면… 이게 언제야. 이게 대체 언제냐 이 말입니다. 이걸 다 그렸다고? 도대체… 아니 도대체 누가 애니메이션을 처음에 만들 생각을 했을까? 누가 10분짜리 단편도 아니고 장편 영화를 애니메이션으로 한 땀 한 땀 만들 생각을 했을까? 줭말 미친 것 같다. 줭말 멋지다.


네. 이렇게. ‘아키라’는.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나요. 그런데 심지어 플롯이 장엄하니까 더욱 왕킹 재밌다.

아까 잠깐 언급했듯이, ‘아키라’는 관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왈, 관념이란:

「1」 어떤 일에 대한 견해나 생각.

「2」 현실에 의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

「3」 『불교』 마음을 가라앉혀 부처나 진리를 관찰하고 생각함.

「4」 『심리』 사고(思考)의 대상이 되는 의식의 내용, 심적 형상(心的形象)을 통틀어 이르는 말.

「5」 『철학』 어떤 대상에 관한 인식이나 의식 내용.

이렇게 다섯 가지 정의가 있는데, 이 중 3번, 불교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정의만 제외하면 다 해당되는 것 같아요. 영화 ‘아키라’에 나오는 ‘아키라’는 어떤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캐릭터 이상의 관념입니다. 이 영화의 상황에 대한 견해나 생각이며, 이 영화 내 현실과 완전히 닿아 있진 않은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이기도 하고, 아키라가 무엇인지 아는 이에게도, 아직 모르는 이에게도 자신들의 다양한 심적 형상 및 의식의 내용을 갖다 붙일 수 있는 사고의 대상이고, 그 인식이나 의식 내용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 하필이면, 무엇에 대한 인식이나 의식 내용인가? 인식과 의식 그 자체. 그러니까 아키라가 관념인데, 관념에 대한 관념입니다. 아까 영화에서 빛의 묘사가 두드러진다고 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식은 좀 더 약간 생물학적인 측면이 있는 단어라고 여겨지는데, 의식은 그 너머까지 연결되는 느낌이잖아요. 그렇죠? 의식은… 의식은 만질 수 없는 것의 끝판왕이면서 모든 만지는 것을 나오게 하는 그것. 그런 것인데, 의식이 대체 뭐냐에 대해서는 뭐, 여러 가지 말이 있죠.

그런데 그중에서 우리가 아마 많이 들어서 알고 있을 이야기가,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이 보게 되는 빛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자기가 빛을 봤다는 얘기란 말이죠. 그런데 아키라에 그런 것이… 직접적으로 나오기도 하고, 그 너머까지도 암시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엔딩이 그냥 딱 결론이 지어지는 엔딩이 아니고, 이 장엄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스토리 너머에 우리가 모르는 더 큰 의식이 있음을 암시하면서 끝나는데, 그것이 뭔가… 회피성 엔딩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정말 이… 이 의식의 끝에 가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나온대요. 그래서 수많은 종교 및 영성 전통에서, 그 끝에 간 사람들한테 “이보쇼, 대체 거기에 뭐가 있소?”라고 물어보면 다들 입을 다문다고 하잖아요.

이 영화, ‘아키라’에 나오는 또 하나 흥미로운 요소가, 컬트예요. 사이비 종교.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다른 데에서도 그렇고, 사이비 컬트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가 궁극을 안다고 하거든요? 자기가 정말 그… 인간 의식으로 알 수 있는 끝판왕을 안다고 해요.

저는 어… 옛날에는 그게 그냥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완전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궁극에 간 건 당연히 아닌데, 제가 거기에 안 가도, 그 궁극에 대해 나불나불대는 게 궁극이 아니라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어요. 아니 일단 논리적으로도, 의식의 끝이라는 정의 자체가 의식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는 건데, 거기서 뭔가를 인식해서 의식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또 의식의 영역이 되잖아요. 그래서 그 차원에서도 말이 안 되고요. 조금만 꺼풀을 하나씩 벗겨봐도, 이것이 점점 모름을 아는 영역으로 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약간 뭐냐면… 아까 그… 그림 이야기인데 모든 인물의 얼굴이 똑같고 거기다가 남자 여자 레이블만 때려 붙였더니 독자들이 남녀에 대한 자신들의 관념을 저절로 가져와서 빈칸을 채우는, 그런 현상을 언급했잖아요. 그것과 반대의 느낌이에요.

그 레이블들을 다 치우고, 그것들에 대한 내 관념을 한 꺼풀씩 벗기면,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제 말은, 이렇게 저처럼 표면에서만 놀아도 이 정도인데, 더 깊게 더 멀리 가서 궁극을 봤다는 자가 궁극이 이렇다 저렇다 나불거리는 자체가 궁극을 못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이비 컬트에서 궁극을 봤다는 자들, 그러니까 영화 ‘아키라’에서도 나오듯이, 막 세계가 멸망을 한다는 둥, 아키라 신께서 뭐 심판의 날을 불러오셨다는 둥, 이러는 애들은, 어떤 종교 영성적 배경에서 왔든지 간에, 아… 하수 중 하수. 그냥 어… 이런 의식이나 인식에 대해 1도 관심 없는 귀엽고 예쁜 강아지보다 하수다. 이것이 그래가지고. 정말 예전에는. 그냥 웃겼는데. 이제는. 얘네는 그냥 틀렸구나. 이게 무슨 의견이 아니구나. 그렇게 여기게 됐어요. 나를 덮고 있는 꺼풀꺼풀 중 하나만 벗겨도 모르는 걸 알게 되는데, 그리고 거기서 조금만 더 벗겨도 모름. 모름으로 가요.

그런데 단, 그런 나불거림이 아닌, 임사 체험자들이 말하는 빛이 있단 말이죠. 그 빛은, 어… 저는 임사 체험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빛’이라는 단어를 왜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 그렇게 공통적으로 쓰는지 알 것 같아요. 그 ‘빛’이라는, 뭔가… 별로 섬세하지 않은 듯한? 별로 특정하지 않은 듯한. 그냥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빛. 그걸 봤다는 그 말이, 그 어떤 무슨 궁극을 깨달았다는 나불거림보다 더 말이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모름을 알게 되는 그 모름이 어떤 차가운 모름이 아니에요. “흥, 나 몰라. 세상은 어차피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는 데니까 아무렇게나 돼라” 이런 모름이 아닐 거라고, 아무리 깊게 멀리 가도 그건 아닐 거라고 저는 추측을 해봅니다. 왜냐면, 그 모름을 알게 되면서 어마어마한 따스함이 있어요. 정말이지… 겉껍질에서 놀아도, 아무것도 꼭 그래야 되지 않음에서 오는 따스함이 있어요.

이러한지라, 특히나 무슨 종말이 온다는 둥, 이러다가는 나라가 망한다는 둥, 무슨 뭐 하여간에 그런 각종 말 있잖아요? 그런 어떤 두려움에서 오는 모든 사이비 컬트 정치 과학 사회학 영성 종교 모든 것이, 그것이, 아… 정말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것이 진짜일 수 없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 ‘아키라’에, 아키라라는 관념을 갖고 두려움 놀이를 하는 컬트도 나오고, 정부도 나오고, 개개인도 나옵니다.

그리고 아예 대놓고 이에 대한 대사도 나와요.

“아키라의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영화가 ‘아키라의 힘’이 무엇인가, ‘아키라’가 무엇인가를 정의해 주진 않거든요. 오히려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정의가 됩니다. 즉, 제가 이렇게 참… 안다고 하는 것이 모름의 증거라고 하면서 그 모름을 알리려고 설명하는 웃긴 일을 지금 하고 있는데, 이 영화도 그러니까… ‘아키라’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데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아키라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모름으로써 아키라가 아키라가 돼요.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키라의 힘을 가진 사람 하나가 우주에도 갑니다. 아무 보호 장비도 없이 지구별을 이탈해요. 그리고 이 영화의 특징상, 그것이 상상인지 진짜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고, 게다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데다가, 우리한테도, 지금 우리 여기 아바타계에 실존하는 우리한테도, 이 캐릭터가 ‘진짜’로 우주에 보호 장비 없이 갔는지 안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 영화 ‘아키라’가 우리를 저 너머로 데려갑니다. 모름을 아는 세계로. 심지어 아는 것도 모르는 세계로.

그게 참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지만, 뭘 아는지도 사실 잘 몰라요. 제가 최근에 니나 키리키 호프만Nina Kiriki Hoffman이 쓴 “The Silent Strength of Stones,” 번역하자면, “돌의 고요한 힘”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실제로 돌이 고요한 힘을 갖고 있는지라, 직역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한국어 버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마법적인 요소들이 나오는데, 마법적인 것보다 더 마법적인 게 뭐냐면, 안 마법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상처를 입으면 내 몸이 알아서 내 상처를 치유하는 것. 이거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나는, 내 표면의식은 내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모르는데, 또한 나는, 내 무의식은 내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알아. 너무 잘 알아.

그러니까 우리는 모르는 것은 당연히 모르지만, 아는 것도 몰라요. 내가 상처를 치료할 줄 아는 걸 알지만, 동시에 모르고, 상처를 치료하는 그 방법도 알지만, 동시에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모르는데.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지조차 모르는데. 뭘 안다는 거야. 무슨 궁극을 만나고 무슨 신을 만나가지고 세상이 멸망한다는 둥, 지옥에 갈 거라는 둥, 나라가 망한다는 둥—다 헛소리예요. 뭐, 그 사람 세계에서는 그게 진짜겠지만, 나머지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만약 궁극을 정말 만났다 하더라도 겨우 고작 세계 멸망에 대한 앎을 가져온 자는 그렇지 않은 자들의 삶과 하등 아무 관계가 없다.

그리고 ‘아키라’에서는, 어… 정확히 무슨 의도로 그런 씬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아키라 신을 섬긴다며 시끄럽게 구는 자와 그 떼가 죽어 나가는 씬이 나옵니다. 네. ‘아키라’의 창작자들이 정확한 의도가 뭐였는지 제가 모르지만, 아주 논리적으로도, 정말 표면 논리상으로도, 이게 맞다. 왜냐? 아키라라는 관념에 뭔가… 신… 궁극이라는 레이블을 갖다 붙여 놓고서는 그것에 대해 자기가 ‘안다’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그것을 두려움의 극강, 세계 멸망과 연결한 자와 그 떼는 절대 네버 그것을 진짜 알 리가 없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영화에서 정확히 ‘아키라’가 뭔지, 그리고 ‘아키라의 힘’이라는 게 뭔지 말해주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이 궁극의 뭔가와 관련이 있을 것이고, 궁극의 무언가라면 한계가 없으며 모름의 영역까지 가기 때문에 당연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한아임의 추측입니다. 단, 영화에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쓰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점이 나옵니다. 이것은 뭐, 꼭 어떤 대단한 힘이 아니더라도, 어… 제가 칼 예시 몇 번 들었죠. 누구는 칼을 쥐여주면 요리를 해서 사람을 먹여 살리고, 누구는 칼을 쥐여주면 그걸로 뭔가를 찔러 죽여요. 그런데 그러고 보니 동시에 그 둘은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네요. 식물이든 동물이든 뭔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살리는 측면도 물질계에서는 분명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데 칼이 그냥 칼로서 아무 좋고 나쁨도 없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상이며, ‘아키라의 힘’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더라.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이 주어져도, 누군가는 그것을 아주 그냥 말아먹는다.

여기서 또 잠깐 연결을 해보자면. 인간계에는 돈이란 게 있잖아요? 돈이 무엇인가에 대해 돌아다니는 여러 말 중 제가 ‘정말 그렇다’고 동의했던 말이 무엇이냐 하면, ‘돈이란 그것을 가진 자가 무엇이든 그것을 증폭하는 것이다.’ 네. ‘돈이란 그것을 가진 자가 무엇이든 그것을 증폭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갖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정의가 가장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로또 당첨자의 대부분이 그 돈을 다 잃게 되는 겁니다. 심지어 예전보다 더 못 살게 되죠. 왜냐? 원래가 빈곤한 마인드셋이었는데, 거기다가 아무리 표면상의 돈을 갖다 들이부어 줘도, 그 원래의 빈곤함만 배가 되지, 절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겁니다. 이런 현상이 ‘아, 돈은 나라에서 발행하는 화폐이며’ 어쩌고저쩌고, 아니면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어쩌고저쩌고, 이런 정의를 아무리 갖고 와도, 이런 현상이 설명이 안 되거든요. 왜 수십억을 한꺼번에 들이부어 줘도, 그 수십억만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서 거기서 더 마이너스가 나냐고. 대체 어떻게?

이거예요. 제가 느끼기에 가장 간결하고, 가장 근본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과학적 사회학적 내지는 논리적 이성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돈에 대한 정의가. ‘돈이란 그것을 가진 자가 무엇이든 그것을 증폭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도 사람 죽이고 다닐 사람이었으면, 돈을 쥐여주면 사람을 더 죽이고 다닙니다. 원래도 사람 살리고 다닐 사람이었으면, 돈을 쥐여주면 사람을 더 살리고 다닙니다. 원래도 빈곤한 마인드였으면 돈이 많을수록 더 빈곤할 것이고, 원래도 풍요로운 마인드였으면 돈이 많을수록 더 풍요로워질 뿐입니다.

돈은 그러니까…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제가 관찰하기로는 실제로 세상이 이런 것 같던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아무튼. 영화에 나오는 아키라의 힘이라는 게 제 이 돈에 대한… 제가 들었던… 이 가장 흥미로운, 맞는 것 같은 정의와 같은 듯 보입니다. 그 힘은 누구나에게 있다고 하는데, 그걸 의식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이며, 어쩌다 이용하게 된 사람 중 누군가는 그걸 갖다가 아주 그냥 말아먹어요. 그런데 이 힘 때문에 말아먹게 된 게 아니에요.

마치, 이 물질세계에서, 돈이 갑자기 많아진 사람이 막 허우적댈 때, “봐라, 역시 돈은 악의 근원이다” 이러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럴 리가. 말도 안 되지. 그런 말은 마치 칼이 악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과 같고, 아키라의 힘이 악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영화 내에서 아키라의 힘을 갖고서도 말아먹은 녀석은, 처음부터 슈방구였어요. 아주 그냥 루저성에 찌든 놈이었어요. 예를 들어, 자기 같은 루저를 그래도 좀 좋아해주는 듯한 여자한테 입 닥치라고 하고, 심지어 그 여자가 겁탈 당할 뻔할 때도 지 오토바이에 신경 쓰고. 물론 그 여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얘 근처에 오는 걸 보면 뭐 하는 여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말씀드렸듯이 ‘아키라’라는 이 영화가 어떤 특정 캐릭터에 몰입을 하게 되는 플롯이 아니라서, 이 여자도 그렇고, 아키라의 힘을 말아먹은 녀석도 그렇고, 그들이 플롯에서 의미하는 바의 상징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아키라의 힘이 없어요. 내지는, 뭐, 아키라의 힘이 누구한테나 있다는 게 영화의 설정이니까, 이 여자는 아키라의 힘이 있긴 한데 그게 발현이 안 됐어요. 그러니까 이 여자는 아무리 하찮아도 그 하찮음으로 인하여 끼칠 수 있는 폐도 하찮아요. 하찮은 게 그 자체로 부끄러울 일은 아니죠. 우리 모두 다 하찮은 면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데 이 루저 녀석. 아키라의 힘이 발현이 됐는데 그걸 갖다가 말아먹은 이 녀석은 그 루저성이 원래도 어마어마한 데다가 아키라의 힘이 마치 돈처럼 그 루저성을 확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자기 그 힘을 주체를 못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거예요. ‘아키라’라는 영화는 실제로는 없는 미래의 어떤 포스트 아포칼립스 도시에서 펼쳐지지만, 지금 여기의 세계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도 관찰할 수 있는, ‘아키라의 힘’과 가장 흡사한 관념체는 돈이다.

돈이 그냥 자기 혼자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 돈이 종이화폐든 동전이든 계좌의 숫자든. 걔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런데 그래서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따라서 그것을 가진 자가 무엇이든—바보든, 천재든, 살인마든, 사람 살리는 자든—그 무엇을 증폭한다.


이 영화는 정말… 얘기하라면 끝도 없이 얘기할 수 있을 그런 영화입니다. 정말 많은 것의 비유와 상징이 될 수 있고. 참말로 역작이다.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체로 좋아하는 것 같긴 해도 아주 많이 봤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누아르 어바니즘 책의 해당 챕터 저자와 동의합니다. “어쩌면 일본에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애니메이션 영화일지도 모른다possibly the most important animated movie ever made in Japan.” 네. 어쩌면. 애니를 다 본 건 아니니까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럴 것이고, 가장 중요한 애니가 아니더라도, 탑 순위에 들 것 같다.

하나 더 흥미로운 점이, 영화에 나오는 기술과 육체의 혼합입니다. 예를 들어, 아키라의 힘을 갑작스럽게 갖게 된 루저 캐릭터가 더는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할 때, 몸에서 전선이며 칩 같은 게 돋아나는 동시에, 근육 조직과 핏줄 같은 것 역시 자라납니다.

이 자라나는 패턴이나 시기에 어떤 룰이 정해진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뭐냐면, 이… 이 캐릭터나 주변 다른 캐릭터들의 반응으로 봤을 때, 이 현상이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현상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제가 해석하기로는, 아까 말했듯이, 이 녀석에게 벌어지는 일은 이미 이 녀석 안에 있는 것을 확장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이미 이 녀석 안에 있는 것’이 뭘까? 남들한테도 있는 거. 얘가 사는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한테 그냥 흔하디흔하게 있는 거. 왜냐? 얘가 의식적으로 뭔가를 택하고 창조할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애가 아닌 거 같으니까. 마치 아까 얘기한, “얼굴은 똑같은데 남자 여자 레이블을 붙였더니 똑같은 얼굴을 한 애니 캐릭터가 남자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되기도 하더라”라는 그 이야기에서 남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 있잖아요? 어떤 사회에서 “당연히 그러하다”라고 여겨지면서 떠도는 그런 관념들. 그런 랜덤한 것들의 집합체 같은 거예요, ‘아키라’에 나오는 이 루저 캐릭터가.

그래서 얘는 자기 배경에 있는 조잡한 것들을 그냥 막무가내로 아무렇게나 확장하는 겁니다.

기술이 발달한 사회라서 전선이며 칩이 돋아나고.

육체야 원래 인간은 육체가 있는 세계니까 근육조직과 핏줄이 자라납니다.

그런데 그러한 관념들이 원래도 이 녀석 안에 있었는데 지금까지 발현이 안 되다가, 플롯상의 우연으로 인해, 즉 어, 말하자면 로또를 맞은 거예요. 아키라의 힘을 갖게 되는 로또를 맞았는데, 그로 인해 기술과 육체에 대한 이 녀석의 관념들이 급속도로 발현되고 폭주하게 됩니다. 정말이지… 집단 무의식에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힘이란 이런 거지’가 발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얘는, 아키라의 힘까지도 필요 없어. 만약 그냥 물질 로또, 그냥 10억을 주는 로또에 당첨됐어도, 비슷하게 폭주했을 거예요. 왜냐면 원래 그거밖에 안 되는 애라.

근데 물질 로또도 아니고 아키라의 힘 로또를 맞게 되가지고, 민폐가 세상 이런 민폐가 없어. 장난이 아니다.

아무튼 이런 상태에서 그런데, ‘아키라’라는 이 영화가 대놓고 의식에 대한 영화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이 민폐 녀석이 이 힘을 갖기 전에 아키라의 힘에 근접하게 된 캐릭터들이 나와요. 이번 에피소드 초반에 언급한, 벤자민 버튼 같기도 하고 보스 베이비 같기도 한 어린이들이 그 캐릭터들입니다. 이 어린이들은 어린이인데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어요. 정부에서 얘네한테 실험을 한 거 같은데, 뭔가가 잘못된 모양이에요. 즉, 제가 해석하기로는, 이 주름진 얼굴이나 기타 애들한테 생긴 문제는 이 애들 내부에 있던 무언가가 아키라의 힘으로 인해 확장된 것이 아니라, 정부 실험으로 인한 조작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냥 뒀으면, 그러니까, 정부 실험, 혹은 비슷하게 두려움과 연관된 통제로 인해 얘들을 이렇게 감금? 관리?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됐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그런데 이런 애들이 셋이 있습니다. 루저 녀석이 폭주할 때, 이 어린이 셋이 모여요. 그러고서 얘들이 뭘 하는지 아세요? 명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분명, 아주 드러내놓고 의식에 대한 영화예요. 폭탄도 터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피가 낭자하지만, 그것은 의식 상태가 외부로 발현된 것일 뿐임을 영화가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는 뜻입니다. 이 아이들은 폭주한 놈이 자기네를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결연해요. 그러고서 결국에는 집어삼킴당하지 않게 되는데, 이것도 그 자체로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얘네가 명상을 하는 와중에 집어삼켜질 뻔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냐? 아키라가 돌아옵니다. 아키라 본인이. 영화 내내 사람들이 아키라 아키라거렸는데, 그 아키라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아키라가 등장했다고 해서 아키라의 힘의 범주가 더 정의됨으로써 제한되진 않는다고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에 텔레파시 비슷한 것도 나오고, 사람 생각을 읽는 것도 나오고, 엄청난 물리력은 물론이고, 순간이동, 물 위를 걷기, 등등의, 우리가 초능력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죄다 나와요. 그것이 기술의 결과인 듯 나오면서도, 기술은 설명할 수 없는, 기술의 한계 너머의 힘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이… 벤자민 버튼 보스 베이비 초능력 아이들 셋이 나중에는 누군가를 구하려고 어마어마한 빛에 뛰어들거든요. 빛인데, 죽음의 빛이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한 피날레가 나와요. 여기서 죽음이라 함은, 육체가 썩어가는 그런 죽음이라기보다는, 모든 관념의 죽음 같은 느낌이에요.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게 죽는 그 빛을 말합니다. 제가 상상하기에 임사 체험자가 봤을 것 같은 그 빛. 내가 이 아바타가 사라지면 끝인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 관념조차 버리게 됐을 때 보는 그 빛. 왜냐하면, 이 초능력 아이들 셋이 두려움에 떨면서 빛에 뛰어드는 게 아니에요. 극 중 세계관에서, 얘네는 알아요. 저 빛이 무서워할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얘네는 육체가 죽는 걸 죽는 거라고 여기지 않고, 심지어 태어난 적 없음을 아는 애들처럼 나옵니다. 이번 생이 끝났다고 할 만큼 시작한 적도 없음을 아는 것처럼. 그리고 저 빛에 뛰어듦으로써 서로 영영 못 보게 되는 게 아님을 아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이 피날레에서 영화가 점점 더 의식에 관한 세계관을 확장합니다. 뭐냐면, 이상한 뭔가가 과학자들의 기기에 잡힙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대사가 이거예요. “이것은 새로운 우주의 탄생인가?”

우주가 뭔가에 대해서 말하려면 또 한도 끝도 없을 텐데, 영화에서는 그 단어가 등장함으로써 의미를 확장할 가능성만 던져두고 끝납니다.

아,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음… 여러분? 미국 아마존 북스토어 카테고리 중에 visionary & metaphysical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 아마존 북스토어 카테고리를 언급하는 이유는, 미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파는 데가 아마존이기 때문이고, 아마존이 미국 기업이라 그런지, 미국 북스토어 카테고리가 가장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은 영화나 다른 매체와는 달리, 책은 그냥 쓰면 돼요. 책은 그 어떤 거대한 것을 담고 있어도 보험도 필요 없고 투자자도 필요 없어요. 그래서 책의 카테고리는 영화의 카테고리보다 훨씬 더 다양합니다. 왜냐하면, 엄청 특이한 영화 하나가 나왔다고 해서 그 영화 때문에 카테고리를 만들진 않잖아요. 그런데 책계에서, 글계에서 visionary & metaphysical 카테고리가 따로 있을 정도면 그 수가 상당하고, 그 장르를 찾는 사람들이 꽤 된다는 걸 알 수 있죠.

Metaphysical은 형이상학적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면 간단한데, visionary는 뭔가… 선지자적? 네. 그런데 이 단어는 비즈니스에서도 쓰이고, 종교영성적으로도 쓰여요. 하여간에 뭔가 만질 수 없는 관념들에 대한 장르가 아예 따로 있다.

그리고 영화 ‘아키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인 동시에 요 visionary & metaphysical 장르에 속하는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가 대개 이 장르에 속하는 것 같아요.

그리하여, 빛이. 처음부터 두드러졌던 빛이.

가로등과 오토바이 빛의 형태로도 등장하고, 태양 등의 자연광의 형태로도 등장하던 그 빛이, 끝에 가서는 완전 인간 의식의 그 빛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사가 이거예요. “나는 테츠오다.” 테츠오가 루저 녀석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대사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엄청나게 다양한 해석이 있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이제 테츠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아까, 과학자들이 새로운 우주의 탄생을 발견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테츠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 말고 만화로도 있는데, 거기서 테츠오가 보여주는 캐릭터 아크가 좀 추가적으로 있더라고요. 그래서 특히나 해석이 다양하게 갈릴 것 같아요.

저는 오로지 영화만 보고서는,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그냥 원래 있던 한아임의 상태로 ‘아키라’를 추가로 본 것 외에 아무 사전 정보 없이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보자면 원래도 테츠오한테는 테츠오의 우주가 있었을 텐데, 그걸 이 영화의 창작자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모르겠어요. 뭐냐면, 아키라의 힘이 있기 전에도 테츠오한테는 테츠오의 우주가 있었습니다. 마치, 돈이 있기 전에도 누구에게나 자기의 우주가 있는 것과 같아요. 그 상태에서 아키라의 힘이 쥐여지면서 테츠오의 우주가 타인도 관찰하기에 더 수월한 형태로 겉잡을 수 없이 확장된 것이지, 없던 우주가 탄생한 건 아닐 거라고 저는 여깁니다.

한편, 이 마지막 대사, ‘나는 테츠오다’는 테츠오의 지금까지와 모습과는 좀 달라요. 많이 달라요. 테츠오는 지금껏 자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꺼풀들을 입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남는 건 ‘나는 테츠오다’뿐이에요. 자기 이름을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일까?

제가 ‘나는 한아임이다’라고 아무리 해도, 한아임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한테 그 문장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 필명을 처음에 택할 때도, 한아임이라는 단어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어요. 어떤 표면적인 목적은 있었죠. 얘를, 이 이름을 영한 번역할 때 써야겠다. 그러니까, 저한테 ‘한아임’이라는 이름은 ‘영한번역함’과 다를 바가 없는 단어였던 때가 있었어요. ‘I am I am’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도, 그냥 대충 지은 거예요, 그때는. 무슨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었단 말이죠.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단어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기한테, “얘야, 봐라. 이것이 사과야.”한다고 쳐볼게요. 그 ‘사과’라는 소리의 조합은 애한테 사과를 이렇게 보여주면서 자, 이게 사과다, 하기 전까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나는 테츠오다”할 때 테츠오가 대체 뭔지. 다만 약간 고무고무한 것은,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던 테츠오가 끝에 가서 할 말이 “나는 테츠오다”라는 것밖에는 없었다는 점이 좀 고무고무하달까? 테츠오가 무엇인진 모르겠고, 내가 테츠오라는 인식만 남은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더 간다면 “나는”만 남을 텐데, 그러진 않았다. 심지어 더 간다면, “는”만 남을 텐데, 그러진 않았다.

즉, 내가 무엇인진 모르고 내가 있다는 상태로 가진 않았고, 내가 있는 것조차 모르고 그냥 있다는 상태로도 가지 않았다.


이 엔딩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 엔딩 자체보다는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달려 있을 것 같아요. 마치 정말… 하. 정말. 얼굴은 똑같은데 남자라는 관념, 여자라는 관념을 독자가 갖고 와서 갖다 붙여가지고는 이해하게 되는 그러한 애니 인물처럼. 정말이지 얼마나 그 관념이 허상인지, 그런데 허상인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힘이 있기에 또한 물질적으로 실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관념이란 것이 얼마나 진짜인지를 볼 수 있는 예시가 그런 애니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와는 확연히 다른 이유는, ‘아키라’는 에피소드 초반에 제가 찬사를 했듯이,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운, 최고봉의, 정말 시각적으로 역작인 데다가, 이 엔딩은 의도된 메시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테츠오다’에서 ‘테츠오’가 관객에게 의미하는 바는 뭔가. 테츠오가 지금껏 보여줬던 모든 것과 이 엔딩 때의 상태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르다고 여겨지는가. 그리고 테츠오가 아니더라도, 빛, 빛이 너무나 포인트잖아요.

일본어로 아키라라는 의미가 “밝게 빛나라”라는 뜻의 이름으로 쓰인대요. 나무위키에 그렇게 나와 있네요. 즉,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빛. 빛. 빛. 그러니까 그렇게 처음부터 빛 묘사가 아름다웠구나. 보라고. 이 빛 보라고. 관객 여러분, 빛 좀 보세요! 이러면서 처음부터 빛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우연히 빛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으나 끝에 가서는 그 빛이 영화의 전부더라.

다음 에피소드에서 또 애니 얘기할 겁니다. 이번에는, “망상대리인”입니다. 이것도. 하. 제목이. 너무나 제목이가 좋다. 망상을 대리하는 인이라니, 세상에나. 애니메이션 시리즈고요, 영화 “아키라”보다 더욱더 열린 엔딩으로 끝이 나더이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모든 음악

Opening

  • The Play – Instrumental Version – Eli Benacot

Within episode

  • idokay – The Colors Began to Fade
  • Curtis Cole – Warzone
  • Evgeny Bardyuzha – Abductor

Closing

  • St. Charles – Mark Yencheske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2023 한아임

소개

✨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