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8] 비환기를 통한 환기, “소요에 맡기다(Unknown Pleasures)”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지난 에피소드에 이어서, 우리는 중국에 있습니다. 네. 몸은 다른 나라에 있을지언정,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중국 영화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중국에 있네요. 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중국은 저에게 참말로 생소한 나라인데, 기나긴 다큐였던 “철서구”에 이어서 이번 에피소드의 영화, 자장커 감독의 “소요에 맡기다”를 보고 나서도, 그 생소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소하다고 해서 뭔가 안 좋은 의미인 건 아닙니다. 생소한 건 그냥 생소한 것뿐이다.

아무튼, “소요에 맡기다”는 무슨 영화인가. 다음 영화에 나온 줄거리에 스포일러가 거하게 들어있습니다.

“절친한 친구인 샤오 지와 빈빈은 무직자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샤오 지는 갱의 여자친구인 차오 차오에게 접근하고, 빈빈은 군대를 통해 탈출을 꿈꾼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이들은 현실과 단절시키고, 둘은 은행을 털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오타가 좀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섹션에도 오타가 좀 있는 것 같네요. 그냥 읽을게요.

“2001년, 중국은 WTO에 성공적으로 가입하고 2008년 올림픽의 개최국이 되는 등 세계에 성공적으로 편입해 들어가는 반면 공장 실직자들은 자신이 다니던 공장을 폭파해 버린다. 초현실적으로 돌아가는 현재, 여기 19살 청년 샤오 지와 빈빈에게 위와 같은 사실은 그저 뉴스에 불과할 뿐 그들은 인생의 목표를 잃었다.

장자의 글에서 인용된 현재 중국 신 신세대의 애창곡인 임소요는 모든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이며, 그들은 임소요의 세대다. 챠오 챠오는 홍보 도우미를 하며 성공을 꿈꾸지만 창녀로 전락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샤오 지에게 돌아오는 건 죽음의 위협이다.

지아 장커의 세번째 작품인 <임소요>는 신세대를 다루었던 <소무>의 후속편으로 보이지만 휠씬 유쾌해진 방식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웃음 뒤에 더 큰 슬픔이 오는 법. 현재 중국 사회의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 버린 삶을 세세히 잡아 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경지의 수준이다. 지아 장커의 현재 최고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영화.”

손소영님이 2002년 7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쓰신 글인 모양입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다음 영화에.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트레일러와 영화 자체를 비교해 보시면요, 트레일러에 영화의 익사이팅한 부분이 매우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영화 끝부분에 사건이 급격하게 벌어지면서 등장하는 씬들이 트레일러에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줄거리에 스포일러가 나와 있는 것도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트레일러에 끝부분이 돌아다니는데요 뭘.

그런데 트레일러에 끝부분이 나와도 상관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 동의를 했기에 이러한 트레일러가 탄생했겠죠?

이 영화의 주된 분위기는 “철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나긴 지루함입니다. 영화가 재미없어서 지루한, 그런 지루함이 아니고요, 극 내용 자체에서 인물들이 겪는 환경이 지루합니다. 그러나 픽션이기에, 즉, 기승전결을 창작자가 보다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는 매체이기에, 끝에 가서 급격한 전개가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음… 중국 영화. 참. 지난 에피소드에 이어서 뭔가 이 영화들에 대해 많이 할 말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영화들을 보고 싶었고, 에피소드를 하나씩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 기회가 아니면 볼 생각조차 못 했을 스타일의 영화라서요. 그리고 그러한 중국 영화의 특성, 그러니까, 뭔가… 전반적으로 미국 영화의 영향을 자유로이 받은 타국 영화들과 달리, 중국 영화는 정치경제적 특성상 멀찍이 떨어져 있는 느낌이란 말이죠. 그래서 볼 생각조차 못 했을 텐데, 이번 시즌을 계기로 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할 말이 없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들을 해야 할 것 같았고, 그 결과로, 지난 번에 짧지 않은 에피소드를 했잖아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항상 그래서, 어… 안 될 것 같아도 하면 돼요. 매우 자주 그렇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모든 걸 다 하는 건 아니지만, 감이 와요. “아, 이건 안 될 것 같지만 하면 될 녀석이다.” 이번 에피소드와 저번 에피소드가 그러합니다. 주절주절 얘기를 하다보면 연결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연결이 돼요.

제가 녹음을 하기 전에 대본 작업을 하거든요. 다 써요. 그런데 제가 쓰는 방식이 그냥 의식의 흐름이에요. 그렇게 써 놓고서는 읽으면서 녹음을 합니다. 읽으면서 빼는 부분도 있지만 더하는 부분은 거의 없고요. 어…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편해서 이렇게 합니다. 언젠가는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질지,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임소요” 혹은 “소요에 맡기다.” 생각지도 못한 스타일의 영화였다. 평소에 안 보던 걸 보는 것만으로도 좀 환기가 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주변이. “임소요”라는 이 영화의 내용은 환기 아닌 것인데 말이죠. 반환기까지는 아닌 것 같고, 비환기는 확실한 것 같아요. 에피소드 초반에 말씀드렸듯이, 이 영화에 출연하는 인물들이 극도로 매우 많이 지루해한다. 그 지루함이 너무 뼈저려요. “철서구”에서는 그래도, 다큐인지라, 사람들이 자기 삶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약간 뭐랄까, 아닌 척? 척이라고 하면 좀 안 좋은 뉘앙스가 있는데, 꼭 그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내가 내 삶이 싫다고 하면서도 너무 싫어하면 내가 견디기가 힘드니까 웃는, 그런 면이 있었어요. 애써 웃는 것도 아니에요. 너무나 당연하게 습관화된, 그러나 또 “망상대리인”에 나온 것처럼 거기다 막 의미 부여를 하면서 “삶은 원래 이런 거지”를 하지는 않는, 그런 뭔가… 오픈된 아닌 척? 그런 게 있었어요.

그런데 “임소요”는 다큐멘터리적 스타일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픽션이거든요. 영화 크레딧을 보면 감독, 각본이 자장커입니다. 각본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지루함은 매우 적나라합니다. “철서구”보다 오히려 지루함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꽉 막혀서 전혀 환기가 안 되는, 비환기의 상황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환기가 되는 게 느껴졌단 말이죠. 그 느낌이 참 이상했어요. 영화 내용은 참 답답한, 아, 정말, 콱 막힌, 숨 못 쉴 것 같은 그런 상황에 대한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환기의 감정이 아주 이상한 사치라고 여겨졌는데, 환기라고 해서 희열이 느껴지거나 뭔가 “저들과 같은 상황에 있지 않아서 감사합니다”라는 의미의 환기인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느끼는 게 좋아서 환기가 된 게 아니고요, 다만 정말이지 평소에 느끼던 것과 완전히 달라서 환기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어… 환기가, 꼭 탁한 공기와 맑은 공기가 서로 순환되어야지만 환기인 것이 아니라, 그냥 예를 들어… 레몬 냄새가 나는 공기와 솜사탕 냄새가 나는 공기가 서로 섞여서 순환되어도 환기일 수 있는, 그런 느낌?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약간 뻘쭘한 다큐 느낌이에요. 요 뻘쭘함은 이 젊은이들의 어떤, 사회의 일부가 아직 아닌, 그렇다고 일부가 아니지도 않은, 그런 애매한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애들이 약간 비어 있어요. 약간 어설퍼요. 그리고 아, “철서구”에 이어, 왠지 저를 매우 슬프게 하는 그 내용이 나옵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원한 테마 두 개: 짝짓기와 업 찾기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짝을 지으려고 고군분투를 해요. 짝이 없는 것은 견딜 수가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의 이유 중 일부는 지루함 때문인 것 같아요. 그나마 짝을 짓는 게 덜 심심할 것 같은. 그리고 이게 단지 뭔가… 이들의 심심함은 정신을 가다듬어가지고 감내할 수 있는 그런 심심함이 아니고, 진짜 정말 아무 데도 못 가는 그런 심심함인 거예요. 그래서 아마 이들이 짝을 찾는 모습을 보고 제가 너무 슬픈 것 같아요. 업찾기는 그래도… 음… 업이라고 하면 제게 느껴지는 뉘앙스는 직업보다 더 운명적인 것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많은 경우, 좋든 나쁘든, 업을 찾는 것으로 시작을 하더라도 결국엔 어떤 직업이든 되는 대로 갖는 경우가 많고, 그것에 대해… 별로 슬퍼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슬퍼하지 않음이 좋든 나쁘든 말이에요. 남들도 그런다고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나 짝짓기는 어떠한가? 짝은, 아무나랑 만나는 것인데도 아무나랑 만나는 게 나 자신한테도 들키면 안 되고 저 상대한테 내가 이런다는 걸 들키면 안 되고, 혹시 저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저 상대도 나한테 그걸 안 들켜줬으면 하는? 그런 뭔가… 그런 슬픔이 있어요. 저는 이게 무척 슬프게 느껴집니다. 이… 그냥 아무나랑 만나는 건 안 슬픈데, 이… 뭔가… 아무나인 건데 아무나가 아니어야만 하는 그 느낌. 그게 슬픈 거예요. 사실은 아무나인데. 사실은 그냥 내가 아무 데도 다른 데를 가지를 못해가지고 반경 10미터에 있는 사람을 만난 건데. 물론 그걸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느낌이 들면 그게 운명인가요?

이거 좀 아이러니하죠? 내가 저어어어엉말 다 해봤는데도 이 사람이어야 할 때 그게 더 운명 같나요, 아니면 어차피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그 사람밖에 없는 게 더 운명 같나요? 전 전자 같거든요? 근데 중요한 건, 운명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단 말이죠. 뭐 꼭 운명이어야 할 필요 있나요? 그런데 그, 왠지 그, 운명 아닌데도 운명이길 바라는 그런 느낌?

왜 그런 느낌이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전체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인 지루함, 답답함, 빠져나갈 수 없음, 그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랑 사귀는 저 사람이 엄청나게 특별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우리는 둘 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는 거야. 그나마 우리 사이를 특별하게 하는 건 우리가 2인 1쌍의 연애 구조를 믿는다는 거야. 우리가 서로에게 유일하다는 거. 그것뿐인 거야. 근데 인정하고 싶진 않지. 내가 절대 이 반경 10미터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해서 너를 만나는 거라는 걸.

근데 그 와중에 그러면 이 인물들은 반경 10미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운명이라고 여기며 그 자체를 승화하나? 연애 이외의 분야에? 그건 아니에요. 그래서 이… 미스매치가 있어요. 연애는 운명이었으면 좋겠는데 그 외 여기서 벌어지는 건 부정하고 싶은 분위기. 그러니 사실은 연애도 부정해야 차라리 자유로울 수 있는 건가? 싶지만, 로맨스라는 개념을 익힌 이 젊은이들은 연애만은 부정하고 싶지가 않다. 운명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가 않아.


아무튼. 35분을 넘게 젊은이들이 짝을 지으려 하고 업을 찾으려 하다가, 동네에서 폭탄이 터집니다. 사람이 죽고, 실종되고, 테러리스트의 짓이라고 뉴스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폭탄 터지는 사건이 드라마틱한 건 아니에요. 영화의 지루함은 깨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지루함이 더 심화해요. 왜 그런 지루함 있잖아요. 사건이 벌어지긴 하는데 그 패턴이 너무 일정해서 더는 충격적이지 않은 지루함. 오히려 사건이 벌어질수록 더 지루해지는 희한한 현상.

이 영화가, “임소요”가, 참 이런 아이러니들이 많은 것 같아요. 비환기를 통한 환기가 있고. 운명 아닌 것이 운명이었으면 좋겠는 마음, 그러면서도 운명 아닌 걸 아는데 그걸 나도 다른 누군가도 안 들켰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고. 어떤 사건이 발생해도 그것이 지루함의 일부로서 스며드는 현상.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루함의 일부가 되는 사건 중, 우리가 전 세계 영화 및 다른 형태의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 많이 접해서 잘 알고 있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의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가 아픈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못 받아요.

이것은 사실은 굉장히 심각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러한 일이 너무 많으니까, 뭐, 이 여자 주인공뿐이겠어요? 너무 많으니까, 이것이 그냥 지루함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타인에게도 많고, 이 여자에게도 이 일이 생겨난 지 너무 오래된 거예요. 이 여자가 누군가를 챙기기 위해서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이러저러한 대우를 감내하는 게 너무 오래된 거예요. 그래서 이게 정말 오히려 그것이 뭔가 충격적이고 눈물을 쏟아내고 막 사람들이 ‘이것은 옳지 않다’고 부르짖는 것보다, 이것이 사실은 뭐랄까. 참 아이러니하게 충격적인? 충격이라기보다는… 쓰라린?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충격이었어야 하는 게 정상이 된 쓰라림.

공산주의의 가장 큰 의문이에요. 왜 공산주의인데도 돈이 없어서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를 못 받나? 이해가 안 갑니다. ‘공산’의 사전 정의는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소유함”이라고 나오는데, 분명 병원 지을 돈은 있는데 왜 이 환자는 공동으로 치료를 못 하는지? 알 수 없다. 여러모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이 패턴들이다. 우리는 아마 다 알지 않습니까? 설마 아임 드리밍의 이번 에피소드가 태어나서 최초로 듣는 오디오 매체인 분은 없겠죠? 만약 그렇다면 엄청난 영광인데, 너무 확률이 적으니까 그럴 일은 없는 걸로 치겠습니다. 우리는 아마 여러 군데에서 많이 봤을 거란 말이죠, 이런 패턴을. 매우 슬픈 일, 매우 충격적인 일이 정상화되어서 이제 눈물도 안 나는 그런 패턴을. 그런 패턴의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임소요”는 그런 패턴의 청춘드라마입니다. 청춘이 처한 상황이 아주 그냥 개떡 같다. 청춘은 힘이 없다. 이런 식으로 그려집니다. 이 외에도 청춘드라마의 패턴을 따르는 점은, 질 나쁜 남자놈이랑, 소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남자가 여자 하나 두고 싸우는 구도입니다. 이 구도가 주된 구도로 나오진 않지만, 이야기의 일부로서 등장하고요, 청춘의 힘 없음, 갇혀 있음, 어찌할 바를 모름을 더욱 강조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초반부터 계속 오페라를 잘못 따라 부르는 혼란한 이웃이 등장합니다. 미쳐서 오페라를 부르게 되었다는 설정인데, 음도 틀리고 가사도 틀리니까 영화의 처음부터 계속 “내가 지금 헛것을 듣나?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이 들어요.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던 사람이 미쳐서 이제는 오페라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혼란함을 더 악화하기만 한다.


이번 시즌에 여러 영화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영화라는 매체 특유의 측면보다는 플롯으로서 드러나는 스토리에 더 집중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임소요”를 보면서는 프레임의 구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가 너무나 온몸으로 말해주거든요. “나는 여기 갇혀있다!”라고 주인공이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영화가 말해줍니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 나와요. 아까 말한, 가족의 병원비를 대야 하는 여자 주인공이 있었죠. 그리고 또한 아까 말한 질 나쁜 남자 놈이 있었죠. 이자가 이 여자의 고용주입니다. 여자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에요. 행사가 열리면 행사 무대에서 춤을 추는, 그런 사람이에요. 중국 전통 무용 같은 춤도 추고, 좀 더 현대적인 춤도 춥니다. 그런데 돈이 필요하거니와, 춤추는 걸 그리 싫어하진 않는 것 같아요. 아주 최악은 아닌 것 같아요. 할 만한 일 중에서. 그러니 이 질 나쁜 놈한테서 못 빠져나오는 거예요. 이놈은 동네 건달 느낌? 뭔가… 완전히 위험한 축에도 못 끼는 마피아 옆에서 실실대는 돈 좀 버는 놈 느낌? 이런 느낌입니다. 자기가 직접 누구 패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아주 저급. 뭐, 아무리 요상하나마 건달의 가오, 이런 게 있는 놈도 아니고, 그냥 저급인 놈인데. 이놈이 이 여자를 완전히 성적 노예 취급을 하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습니다. 다음 영화에 나온 줄거리에는 ‘창녀’라는 단어가 언급되는데, 완전히 몸 파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약간 비유적인 것 같아요. 이 남자하고의 관계에서 그렇다는 거지, 실제 직업이 창녀라기엔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무튼 이러한데, 이 여자랑 남자가 버스에 타고 있어요. 버스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남자는 서 있는 상태예요. 여자는 문 가까이의 좌석에 앉아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와 문 사이에 있어요. 여자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가 말도 안 하고 여자를 도로 밀쳐서 자리에 앉혀요. 세게 밀치는 것도 아니고요, 딱 그 재수 없을 만큼, 딱 그 필요한 만큼 밀칩니다.

여자는 다시 발딱 일어납니다. 다시 나가려고 해요. 남자가 또 밀쳐서 도로 앉혀요. 여자가 또 일어나요. 다시 나가려고 해요. 남자가 또 밀쳐서 도로 앉혀요. 서로 한마디도 안 해요. 이걸 20번은 한 것 같아요.

이 상황이, 하. 이 20번에 걸쳐서 펼쳐진 이 상황이 서서히 제 안에서 깊은 빡침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남자가 이 여자한테 말로 “야, 나가지 마” 하거나, 아니면 뭐 여자를 막 구타하거나, 이것보다 더 빡쳐요. 물론 구타가 더 최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여자가 죽을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건, 이 씬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에서 보여주려는 건, 얼마나 안 때려도 어차피 갇혀 있을 건지를 보여주려는 거예요. 이 남자가 이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세게 밀칠 필요도 없는데, 팰 필요는 뭐가 있겠어요. 안 때려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심지어는, 여자가 수십 번의 시도 끝에 결국에는 나갑니다. 그런데 나간다고 뭘 어쩔 것인가? 이 버스에 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른 버스에 타야 할 텐데, 이 남자가 시키는 대로.

그래서 이 영화는 “철서구”랑 같은 메시지인 것 같으면서도, 연출의 명확성 측면에서 메시지가 더 분명합니다. 사실 같다고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철서구”는 좀 더 다큐멘터리적이라서, 글쎄요, 만약 다른 날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찍었다면, 집단으로서 그 영화에 나온 사람들이 다른 메시지를 던졌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임소요”는 매우 명확해요. 왜 이렇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문 사이에 서 있는 구도가 연출되었는지.

또 하나의 두드러지는 장면은, 오토바이 장면입니다. 이것이 참 묘한 게,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인물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내용임은 확실한데, 그들의 모습이 일정한 형태로 프레임에 잡혀 있는 바람에 아무 데도 안 가는 느낌을 주는 프레임입니다. 이것이 눈앞에 그려지시나요? 이 모습이.

오토바이가 운전해 가서 시공간을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방법에는 아주 여러 가지가 있죠. 오토바이를 카메라가 따라갈 수도 있고. 카메라는 가만히 있고 오토바이는 프레임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갈 수도 있고. 아주 여러 가지가 있죠. 그런데 “임소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오토바이 장면에서는 오토바이가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분명 엔진이 켜져 있고 오토바이가 이동 중이긴 해요. 그런데 카메라와 오토바이 사이의 간격과 서로간의 위치가 계속해서 일정하게 유지돼요. 그래서 아무리 오토바이 뒤의 배경이 바뀌어도, 오토바이에 탄 인물들의 크기가 일정하고, 그들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특수 효과나 줌인 줌아웃을 해서가 아니고요, 날것의 상태로 보이는, 매우 다큐스러워보이는 렌즈로 이들을 찍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와 오토바이 사이의 간격이 일정해서 이 인물들의 크기가 커지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이동의 느낌이 없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데도 이동의 느낌이 없어요. 움직이는 내용이 확실한데, 인물이 프레임에 일정한 크기로 담겨 있어서 속도감도 느껴지지 않고, 인물의 표정도 전혀 시원하지 않습니다.

이 오토바이 씬 다음에 이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다”는 말에 대한 겁니다. 그런데 참. 영화란 것이. 그리고 이야기라는 것이 전반적으로. 나아가 아바타 세상의 삶이란 것이. 뭐가 앞에 왔는지가 지금 여기만큼 중요해요. 그렇죠? 우리가 아무리 내면 작업을 해서 지금 여기로 돌아와라 돌아와라 해도, 정말 우리가 지금 여기에만 있잖아요? 그러면 아바타 세상에서 기능을 못 해요.

너무 깨달아서 기능을 못 하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실제로. 예를 들어 바이런 케이티란 분이 계시는데, 잘 알려진 미국의 영성가이시래요. 이분은 정말 잘 안 풀리는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은, 정말 특이 케이스이신데, 진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는데 온 세상이 달리 보였다는 거예요. 막 그… 소유 재산이 뭔지 모르게 되고. 내 집이 네 집이고 네 집이 내 집이 되고. 나의 이름도 무의미해지고. 나의 남편? 나의 자식이라는 개념들도 다 사라지고. 그래서 이분이 다시 아바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이런 개념들을 익히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정말로 완전히 깨달아가지고 모든 게 하나 되는 상태로 가면 아바타 세상에서 기능을 못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지금 여기에 대해 얘기를 해도, 우리가 정말 산에 들어가서 다시는 속세로 안 올 게 아니면, 지금 여기가 전부이긴 하지만, 개념으로서 전과 후를 알고는 있어야 한단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 정말로, 점점 더, 이야기. 이야기야말로, 그러니까, 이야기를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까, 참 너무 무궁무진해서 어렵긴 한데, 전후가 있는 어떤 엮여진 점들. 기승전결이 있고, 앞뒤가 있고, 플롯이 전부일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있는 이야기가, 이것이 우리가 아바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열쇠다. 이런 생각을 저는 합니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종이라는데, 이것이 어떤, 그냥 말로만 그렇거나 단지 역사적으로 아니면 겉으로 드러난 표면상의 어떤 그런 게 아니고, 정말 매우 깊은 곳에서부터 우리는 이 세상으로 오면서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의 방식. 시간이 담아내는 이야기의 방식.

비슷한 맥락에서 음악도 흥미로운데. 음악도 시간을 담아내는 매체죠. 음악은 시간이 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신기한 매체죠. 그림은 시간이 가지 않아도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음악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음악의 박자. 음악의 쉼표. 그런 걸 생각하면 끝도 없이 존재랑 연결 지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이러한데, “임소요”라는 영화에서 오토바이가 아무리 달려도 달려도 프레임 속에 갇힌 듯 일정한 크기로 남아 있던 그 씬 바로 다음에 인물들이 아무리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한들, 어떻습니까? 그들에게 자유가 있는 것 같습니까? 오히려 반대죠. 반대니까 순서를 이렇게 한 거죠. 차라리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다”고 하는 그 씬 다음에 오토바이를 탔으면 괜찮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만약 그랬더라면, 적어도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는 그걸 정말 믿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오토바이 다음에 이 말을 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하는 그 순간에 이들은 이 말을 믿을까요? 안 믿는 것 같아요, 저는. 완전히 저 세상 이야기로 남습니다. 자기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정도 슬픈 지루함으로 벌써 지쳤냐는 듯,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오래 살아봤자 뭐 하냐. 네.

이 비슷한 주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많이 얘기했죠. 존재는 그 자체로 좋은가? 그리고 아임 드리밍 내에서의 명료한 결론은 이거죠. 아니. 존재는 그 자체로 좋지 않다. 나쁘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다. 존재에 선악이 뭐가 있겠습니까. 존재에 선악이 붙는 순간 조건이 붙는 거고, 그거야말로 존재를 하찮게 만들지 않나 싶은데, 이 영화에서는 아임 드리밍에서랑은 좀 다른 뉘앙스로 오래 살아서 뭐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경우에는 사는 게 너무 슬프고 지루해서인 것 같아요.

돈이 널려 있는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강도가 됐을 거라고 말하는 인물이 나올 정도로, 이 인물들은 너무나 지루해합니다. 군대에 가고 싶어도 아파서 군대에 못 갈 정도예요. 이거 얼마나 화나요? 아니 군대에 가겠다고 내가. 내가 군대에 가겠다니까? 근데 난 아파서 못 가. 맙소사. 그런데 그 인물이 화라도 냈으면 좀 그 인물한테 시원할 텐데, 화도 안 내요. 그냥 그 반응이 너무나. 오히려 거의 뭔가… “그럼 그렇지”의 느낌이에요. 와. 얼마나, 얼마나 이 프레임 안에 갇힌 오토바이 같은 상황에 익숙하면, 이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려고 결심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했는데 심지어 그 군대에 못 간다는 검사 결과를 받고서도 격하게 분노하지를 않는가.

이러한지라, 놀랍게도, 진짜로, 이들이 은행을 털려고 폭탄을 준비하는 장면이 영화의 끝부분 10분 정도부터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드디어 다음 영화에서 말하던 유머가 저는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얘네가 뭘 하는구나. 하, 정말 너무 답답했는데. 그러니 이 인물들은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저는 방에 앉아가지고 언제라도 이 영화를 끌 수 있는데도 답답했는데, 이 인물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바로 이 은행을 터는 장면이 트레일러에 떡하니 나옵니다. 끝부분 10분인가에 나오는 장면이 트레일러에 나오니, 스포일러고 뭐고 할 게 없죠. 그런데 게다가 이 은행털이 계획이 잘 되나? 아니요. 오히려 은행 털려다가 거기 있는 경비? 공안? 그런 인물한테 한 소리 듣습니다. 허접하다고. 그것도 뭐, 엄청난 빌드업이 있고 그다음에 클라이맥스가 쾅! 들어오는 그런 게 아니고, 진짜 허접스럽게. 진짜 막 무슨 5분 내로 상황 종료. 이렇게 끝나요.

심지어는 이제는 오토바이가 드디어 고장 나가지고 길 한가운데에 멈춰 서게 되는. 진짜. 아 너무 빡치겠다. 너무 비참하다. 그냥 내가 잘나가나다가 오토바이가 멈추는 게 아니라 인생 전체가 멈춰 있는 느낌인데 오토바이가 멈추니까 비참한 겁니다. 아까는 그냥 프레임에 갇혀 있는 듯 보이기만 했다고 주장할 수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오토바이가 진짜로다가 멈춘 거야.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실제로 흘리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약간 울었다. 그리고 그 큰 이유 중 하나가, 놀랍게도, “임소요”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가 이번 시즌에 다룬 여러 다른 영화들과 대조되게, 제가 언급한 온갖 상황에서도, 이 영화 내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질 않습니다. 그래서 뭔가 제가 더… 계속 봤던 거 같아요. 물론 이 불쌍히 여기지 않음이 약간 마비성? 너무 힘드니까 더는 힘듦을 느끼고 싶지 않은?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저라도 그럴 거 같아요. 그리고 주변이 하도 다르질 않으니까, 본인들과. 불쌍해봤자 뭐하나, 이런 느낌도 있는 것 같고요. 하여간에 이 사람들은 확실히 “나만 불쌍해”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 거예요. 너무나 아니어가지고, 제가 막, 아 정말. 왕킹답답하겠다. 정말 어떻게 너무 답답해서 저 젊은이들이 당장 몇 년 내로 심장이 멈춰도 놀랍지가 않겠다. 답답해서 심장이 뛸 수가 없겠다. 이런 느낌으로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시원한 느낌을 주는 건, 기차역 같은 곳에 있는 대기실 공간이에요. 당구대도 있고 그런데, 거기에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들어올 수 있어요. 그리고 밖으로 문이 열려 있어서 전부 통해 있는 느낌이에요. 이 공간이 유일하게 트여 있는 공간인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뭐다? 주요 인물들 중 누구도 이 공간을 이용하여 어딜 가진 않아요.

아까 그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간 인물의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 여자친구는 이 도시를 떠나서 큰 도시의 대학을 갔어요. 그런데 그 여자친구가 자전거를 타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남자는 가만히 앉아 있어요. 그냥 앉아 있어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어요. 그런데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 군대에 갈려고 하는데 못 갔다니까요. 이 사람 뭐,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 사람도 모르겠으니까 그냥 앉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전반에 걸쳐진 아이러니의 분위기가 또 이어진다. 왠지 환기가 될 것 같은데 또 이 영화 내에서 환기가 안 되는 현상이 펼쳐진다.

그리고 여러분? 비환기는 비환기로서 확실하게 느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옛날부터 긍정주의에 반대를 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 더 명확하게 알았어요. 비환기가 비환기로 느껴지니까 환기가 환기로 느껴지는 것이라서입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아바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래요.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습니다. 내가 있기에 네가 있어요. 그래서 아까 언급한 바이런 케이티 같은 분이 우리의 세상에서 기능을 못 하는 겁니다. 지금은 돌아다니시면서 강의하시고 그러는 것 같은데 처음에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는, 그 상태로는 아바타 세상에서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모두가 진짜 레알로다가 전부 다 나로 보이면, 경계가 없어가지고, 어… 죽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것 같은데. 로그아웃돼요. 실제로 그분이 그 급격한 깨달음 현상 이후로 남의 집에 막 들어가고 그랬대요. 그런데 그분이 사시는 그 지역이 막 사람이 많고 그런 곳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곳이었다면 어떤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깨달을 목적이 없잖아요. 어… 일단 저는 없어요. 저는 이 게임 로그아웃될 때까지 신나게 놀다 갈 겁니다. 그래가지고 로그아웃 되기 전에 게임에서 어쩔 줄을 모를 정도로 뭘 깨닫고 싶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뭔가를 생각을 하는데, 우리 세상은 다 이렇단 말이죠. 내가 있으니까 네가 있다. 환기가 있으니까 비환기가 있다. 그리고 나쁜 게 있으니까 좋은 게 있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다 좋다? 그러면 좋은 것도 없는 거예요. 매우 명확해요 이건. 그래서,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긍정병에 걸리면 답이 없는 것이었다. 즉, ‘현실이 이래서 긍정병은 안 좋다’ 이런 게 아니에요. ‘현실’이 어떻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단일 현실이 있어가지고, ‘망상대리인’에 나오는 최대 망상꾼인 그 형사가 막 자기 인생이 얼마나 엿 같은지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그걸 어떻게든 좋게 해가지고 자기가 막 현실주의자라서 사실은 제일 책임감이 있고 어쩌고저쩌고 뭐 이런 소리를 하는 그런 게 아니고요. 나의 현실은 오로지 나만의 현실인데, 그 나의 현실에서 내가 좋은 걸 경험하려면 반드시 나쁜 게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임소요”를 보면서도 “철서구” 때와 같게, 이 인물들이 자기들 인생이 너무나 엿 같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감독의 의도가 참으로 명확한 것 같은데, 이것을 청춘의 아름다움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인물들이 자신들이 싫은 것을 매우 싫어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다행이라고 여겨졌는데, 다만 너무 마비되어서, 너무 이 지루함에 익숙해져서, 도무지 다른 옵션을 꿈꾸지도 못하는 상태로 가는 것 같아서, 그것은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아무튼, 이러나저러나, 너무 명확하게, 이들의 인생이 아름답다고 해석하고 싶진 않다. 영화에는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인물들의 인생이 그걸로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이거 참 신기해요 근데. 예를 들어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연쇄살인마의 삶을 아름답다고 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 그런데 뭔가 ‘남들도 다 이래’ 내지는 ‘세상은 이렇지’ 중에서도 희망이 없고 돈이 없고 건강이 안 좋은 인물들에 대한 영화에 대해서는, 그 인물들의 삶이 아름답다고 하는 경우들을 적지 않게 봤습니다. 그 인물들이 희망 없고 돈 없고 건강 안 좋아서 너무 싫다고 하는데도 아름답대요. 그래서 저는 의문이 드는 겁니다. 인물이 아름다워서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닌가. 연쇄살인마는 아름다우면 안 된다고 여겨서 안 아름답지만, 희망 없고 돈 없고 건강 안 좋은 것에 대해 어떤 로망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닌가. 네. 실제로 있는 것 같아요, 이 로망이. 비단 이러한 픽션 소감에뿐만 아니라, 세상의 특정 취향층에 이 로망이 있는 것 같아요.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네. 여러분? 저는 엿 같음을 본격 받아들이고서 훨씬 좋아졌어요. 이거를 근데 여러분, 내가, 우리 개개인이, 잘 분간을 하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해줄 수가 없는 측면인데요, 그게 뭐냐면요, 내가 엿 같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 받아들이는 줄 알면서 사실은 매우 싫어하고 있는 건지를 분간해야 합니다. ‘망상대리인’의 그 형사가 받아들이는 줄 알면서 사실은 자신의 상황을 거의 뭐… 그 경우에는 제가 봤을 땐 혐오라고 보여지는데, 혐오하는 아주 좋은 예시고요. “임소요”에 나오는 인물들은 잘 모르겠어요. 이 인물들은 그냥 너무 힘든 것 같아요. 힘이 없는 것 같아요. 슬픈 것 같아요.

하여간에 엿 같음을 본격 받아들이는 걸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노력을 할 필요가 점점 없어지는 겁니다. 긍정적인 척을 하지 않고, 긍정적이게 되거나, 긍정적일 필요가 없으니까 부정적이게 됩니다. 그냥 부정적이면 부정적이면 되는 겁니다.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런데 그 긍정과 부정을 모두 아우르는, 뭐랄까, 캔버스 같은 배경 자체가 점점 ‘나’가 되면서, 그 아우른다는 자체만으로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는 느낌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저는 요즘에 여겨집니다.

그리고 제가 지지난 에피소드에서 말씀드렸죠. 제 MBTI가 바뀌었다고.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그러니까, 긍정 부정, 내향적 외향적, 뭐 그런 각종 특성에 따라 행동하는 게 덜해지고요, 내 안에서 내가 해야 하는 거라고 여겨지는 게 있는데 필요한 행동이면 그걸 하게 됩니다. 약간 소소하게 초월하게 돼요. 대단히 초인이 되는 건 아니고요, 일단 저는 아니고요, 근데 확실히 소소하게 초월하게 된다. 저는 아임 드리밍 2년 하는 동안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이 꽤 바뀌었거든요. 거의 뭐 이건, 나중에 혹시나 누가 무슨 이런 조사를 하고 싶다. 인류학적 목적으로다가. 그러면 아임 드리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토픽 이런 걸 분석하려면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드러나는 양상이 꽤 바뀌었어요. 아임 드리밍을 한 것 자체가 그 바뀜의 시기의 초반에 나타난 행동 변화였고, 이제는 INTJ에서 ENFP로 거의 완전히 뒤바뀐 지경이다. 그런데, 요 N, intuitive의 N인가? 얘는 아마 안 바뀔 거예요. 점점 더 직관으로 행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도, 실제 제가 경험하는 건 어떻냐 하면요, 더 직관적이라서 더 감각적이게 돼요. 감각적이 직관적의 반대거든요, MBTI 세상에서. S가 감각이고 N이 직관인데, 직관적이라서 덜 감각적인 게 아니라 실제 제 삶에서는 직관적이기에 아주 마음놓고 감각적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테스트의 특성상, 네가 결정을 어떻게 하니? 네가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하니?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렇기에 N이 계속 나오는 것 같아요. 감각을 기반으로 결정을 하거나 행동을 하진 않거든요. 근데 직관으로 행하니까 그 행함 내에서 예전보다 더 감각적이게 됐어요, 저는. 간단한 예시로는,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떡볶이를 먹고, 실제로 먹을 때는 그것을 만끽하는 겁니다. 킹좋습니다. 아주 맛져요. 태어나서 지금이 가장 인생이 맛진 시기인 것 같은데, 심지어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확실하다.

아무튼  “임소요” 같은 영화를 보면, 오, 네, 저는 실제로 환기가 되더라고요. 안 보던 걸 봤다는 그것만으로도. 그리하여 그대로 두려 한다. 이 주인공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답답하구나. 너무 답답해서 은행을 털고 싶구나. 그조차도 못했구나. 엿 같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룰 영화, “돔비발리 패스트”입니다. 우리 이제 인도로 갑니다. 그런데 인도 하면 발리우드일 것 같지만, 발리우드가 아니다. 그 스타일이 아니다. “누아르 어바니즘” 책에 나온 영화들 다루고 있는데, 에피소드 59, 혹은 시즌 5의 에피소드 11에서 다룬 “스타 탄생”이 아마 아무리 봐도 누아르가 아닌, 유일한 예외였던 것 같아요. 그 영화 외에는 각국의 누아르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돔비발리 패스트”도 누아르의 한 결로서 책에 등장합니다. 이 영화 재밌더라. 발리우드가 아닌 인도 영화가 생소해서 뭐 아무것도 무엇을 기대해야 하나 모르고 봤는데, 이번 시즌에서 다룬 영화들 중 가장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대적으로도 비교적 요즘 영화이거니와, 한국은 도시 누아르, 스릴러, 추격전, 이런 종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강국이잖아요. 그 강국의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비슷하게 익숙한 영화가 이 “돔비발리 패스트”인 것 같아요. 요거, 각자의 거주 국가에서 관람 가능한 플랫폼을 찾아서 봐봅시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모든 음악

Opening

  • The Play – Instrumental Version – Eli Benacot

Within episode

  • Ikoliks – Big City Lights
  • Aves – Nothing More – Instrumental Version
  • Clara Kamil – Hyper Pegasus
  • Ben Fox – Come Through – Instrumental Version

Closing

  • St. Charles – Mark Yencheske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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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