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인간포장: 그 이후의 삶

아임 드리밍 [Ep. 7] 인간포장: 그 이후의 삶

1: 오프닝

00:00:00-00:02:33

[음악: Sarah Kang – Make You Mine – Instrumental]

안녕하십니까?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의 본 이야기에 앞서, 여덟 번째 국가가 추가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여러분, 인도가 합류했습니다. 미국 브라질 일본 영국 폴란드 독일 한국, 그리고 이제 인도.

네. 환영합니다. 역시 세상은 넓고 특이 취향자는 많은가 봐요.

오늘의 랜덤한 주제는요. 또 포장입니다. 네. 저번 주에는 정말 말 그대로 겉에 드러난 포장에 대해 얘기했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특이 취향자들을 위한 팟캐스트니까요, 너무 표면적인 것만 얘기하면 섭섭할까 봐, 오늘은 좀 추상적인 얘기를 할 겁니다. 특히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소셜 미디어,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얘기가 많을 겁니다.

그럼,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음악 FADE OUT.]


2: 그 순간엔 진짜였어

00:02:33-00:11:55

이, 포장이란 게. 음식에 관해서는 잘만 하면 낭비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번 주에 얘기했었죠. 음식 포장이 꽤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거. 특히나 활자중독인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음식 포장에 쓰이는 스토리텔링은 어떤 때는 너무나 감동적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포장은 어떤가요?

인간계에서의 포장은 뭔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뜻에서 그런 것 같은데, 저번 주에 얘기한 비비큐치킨이나 저지 마이크스를 생각하다 보면, 포장이란 마냥 진짜가 아닌 것인가? 좀 의구심이 든단 말이죠. 어째서 음식물 같은 것을 포장할 때는 포장이 중립적 의미를 가지는데,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되는가.

일단 ‘진짜’가 무엇이냐는 의문은… 뭐, 누구도 확실하게 답해줄 수 없는 거대한 난제이기도 하거니와. 글쎄요, 이게. ‘진짜’가 대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은 너무나 순간순간, 다른 무언가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진짜’가 이전 순간에 무엇이었든, 다음 순간에 어차피 변할 것이고, 그렇다면 진짜를 정의해봤자… 그래도 소용이 있는 건가요?

이… 인간의 지속적 변화라는 개념이, 제가 인간이라서 이런 인간 중심적 한계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나요? 인간은 계속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지 않나요?

특히나 요즘에는 인간 개체 각각이 태어나고 죽는, 그 ‘인생’이라고 불리는 기간 동안에도 거대한 변화가 여러 번 일어나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단순히 수명이 길어져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같았으면 수백 년 걸렸을 혁명적인 일이 요즘에는 십 년 단위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사의 어떤 지점까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기대되어졌는데, 이제는 아니잖아요. 부모가 하던 일을 자식이 물려받는 시대는 이제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거의 지나갔습니다. 그 시대가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지금은 계속해서 지나가는 추세인 것 같아요. 물려주기는커녕, 한 개인이 자기가 하던 일을 평생 하기에도 버겁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옛날에 살던 인간들은 변화를 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어쩌면 변화 자체가 인간의 본질인 거예요.

예를 들어, 닭은. 닭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정해져 있잖아요. 뭐, 그래요. 초원에서 살 수도 있고. 닭장에서 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닭은 자신의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체온이 유지되고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죽습니다.

닭뿐만 아니라 북극곰. 얼룩말. 코뿔소. 고양이. 강아지. 전부. 심지어 식물은 더하죠. 야자수는 야자수 자라는 데서만 자라고, 침엽수는 침엽수 자라는 데서만 자랍니다.

물론, 식물들의 뿌리 구조가 서로 얽혀 있으며, 따라서 각각의 식물 개체가 지상에서 보이는 것만큼 한 자리에만 뿌리박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있기는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보기에는 서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나무들이 사실은 땅 아래에서 뿌리로 얽혀 있어서 소통을 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무는 자신이 나무가 아니게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저는 인간이 스스로 더는 인간이 아닌 지점까지 갈 수 있는 시대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SF적인 근미래를 논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도, 인간은 변화에 적응하는 동물이었습니다. 너무 추운 곳에 있다면, 얼어 죽기 전에 그래도 털옷을 입어보기라도 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고, 너무 더운 곳에 있다면, 탈수로 죽기 전에 털을 밀든 물을 찾아 나서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토록 변화가 본질인 인간이라면, 따라서 ‘진짜’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동일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인간이라면, 포장 역시 본질의 일부가 아닌가 싶은 겁니다.

옷이라는 포장, 털이라는 포장. 그리고 갖가지 도구로 생산해내는 더 거대한 포장, 그러니까 집이라든지, 난방 냉방 시스템이라든지, 이런 걸로 인간은 갖가지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도구들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부여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포장이라고 부르지도 않을 거예요. 필요하니까. 유용하니까.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미관적으로 좋다’라는 좀 더 선택 사항적인? 왠지 좀 더 안 해도 될 것 같은 목표를 위한 포장이 언급되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의미가 점점 더 가미됩니다.

신기하죠? 왜일까요?


3: 꾸밈의 목표

00:11:55-00:23:19

[Music: Beauty Inside – Soundroll]

저는 습관적으로 생각하기를, 아름다움을 위한 ‘포장’ 내지는 ‘치장’은 왠지 좋지 않다는 느낌이 있는데, 왜 그런 이상한 생각이 습관적으로 들었는지는 알겠어요. 저 자신은 시각적 드러냄, 그러니까 SNS에 셀카를 올린다든지, 회사에서 옷을 차려입는다든지, 하는 것에 극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 인간은 왜 몸이 이렇게… 이렇게 생겼을까요. 몸뚱아리에 이렇게 팔다리가 삐죽삐죽 나와 있고, 거기에 손발이 달려있어가지고, 발에는 발 옷. 다리에는 다리 옷. 팔에는 팔 옷. 손에는 손 옷. 몸통에는 몸통 옷. 머리에는 또 머리카락 혹은 머리 옷. 얼굴엔 또 얼굴대로, 아주 포장할 게 많습니다. 저는 이게… 좀 귀찮거든요.

새 옷을 입으면 나는 새 옷 냄새, 그리고 뭐 색채, 옷감의 촉감, 이런 건 좋은데, 그걸 맨날 지속적으로 신경 쓰는 게 귀찮은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제가 하는 일이 전혀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일이라서 그런 면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저랑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들이 드러내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를 원한다면, 그러면 거기에 맞춰서 포장을 적절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Music ends.]

게다가 일적인 이유 때문으로 하는 포장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데에는 뭐 딱히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다면 예쁘게 차려입는 게 좋은 사람들이 옷, 향수, 헤어스타일에 자원을 쓰고, 나아가서 차나 집 같은 것에도 자원을 쓰는 것이 뭐 그렇게 나무랄 일인가? 싶습니다. 포장을 하는 그 자체는,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본질인 변화의 일부가 아닌가 싶기도 하거니와, 자기가 좋다는데 뭐.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면, 그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여러분? 인간을 극의 캐릭터처럼 보면 선명해집니다. 네. 저는 이것이 단순화가 아니라 선명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에 어디서 인터넷 돌아다니면서 봤는데… 어떤 사람이 포럼 같은 데다가 푼 썰이에요. 그 사람이 이랬어요.

‘얘들아 있잖아.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와가지고 나한테 묻는 거야. 책에 나오는 건 다 가짜인데 어떻게 책이 실제 세계보다 재미있을 수가 있냐고. 얘 완전 머저리 아님? 얘는 감히 지가 햄릿보다 선명한 줄 착각하고 있어!’

네. 실제 인물이 햄릿보다 선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극을 소비하는 인간들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증류주 좋아하세요? 책에 나오는 건 다 가짜인데 왜 책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이들은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 거냐면요, 물 탄 맥주가 도처에 널려 있는데 왜 위스키를 찾느냐고 묻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네. 극은 선명하기 때문에 극을 소비하면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물 탄 맥주에서 알코올 분자를 찾는 건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위스키를 마셔 보면 선명함을 알 수 있다고요.

어떤 캐릭터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왜 가졌는지 알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잃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잃으면 왜 나쁜지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이왕 극 얘기를 한 김에 드라마틱하게 가보자면.

캐릭터의 목표: 폭탄 해체 장치를 찾는다.

왜 이것이 목표인가?: 그래야 폭탄이 터지는 걸 멈추니까.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잃는 것은?: 여의도가 날아간다. 여의도 어딘가에 폭탄이 숨겨져 있어서.

여의도를 잃으면 왜 나쁜가?: 여의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 여의도에서 못 빠져나오고 있다.

대략 이런 겁니다. ‘여의도를 구한다’는 목표가 아닙니다. 그건 목표에 도달함으로써 얻는 것이고, 애초에 너무 추상적이에요. 목표란 물성이 있으며, 구체적이고, 목표를 이뤘으면 이뤘다는 게 확실할수록 좋습니다. ‘여의도를 구한다’를 목표로 세우면, 구하고 나서도 내가 구한 게 맞는지, 구함의 정의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야 해요.

반면 ‘폭탄 해체 장치를 찾는다’는 어떤가요? 그걸 일단 손에 쥐면 그걸 찾았다는 게 확실하죠. 목표를 이뤘다는 게 확실합니다.

아무튼. 이건 예시고요. 만약 어떤 인물이 움직이는 원동력에 ‘미’가 어떻게든 포함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의 포장은 당연하게 됩니다. 미가 목표 자체에 얽혀 있을 수도 있고, 목표를 이루면 얻는 것이 미일 수도 있고.

몇만 원 하는 음식물에도 아름다운 포장이 붙음으로써 가치가 높아지는데. 만약 수천만 원이나 수억 원, 수백억 원이 오가는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이 그들이 갖고자 하는 내용물이라면, 포장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잘할수록 좋을 것 같아요. 뭔가… 포장 디자인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시청촉후미. 제가 맨날 글 쓰면서 하는 생각입니다. 시청촉후미.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이 시청촉후미를 다 건드려주면 얼마나 효과가 어마어마할까요.

아름다운 시각적 외모. 우아한 목소리. 부드러운 옷감과 피부. 향기로운 냄새. 그리고 미각은,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게 상당히 후각과 얽혀 있다던데, 그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나아가서 걸음걸이, 표정, 화술 같은 특징도 있겠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기에 효과를 갖는 추상성을 걸칠 수 있겠죠. 옷 브랜드. 가문. 학벌. 지인 네트워크. 등등.

이렇게 생각하면, 포장, 게다가 실용적 포장뿐만 아니라 ‘미’가 얽힌 포장을 아예 하지 않는 인간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체 틀의 공통점을 찾다 보면, 우리가 ‘실력’이라고 여기는 것과 ‘겨우 고작 외모’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의 패키지고, 브랜딩이고, 인간은 야망이 있든 없든, 포장을 많이 하든 덜 하든, 본질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기 어렵고 따라서 어찌 보면 포장에 비추어 본질을 유추하는 게 더 수월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4: 인간 비포장

00:23:19-00:32:22

[효과음: ILAN POST-THE NIGHT OF THE BALL Track 1 – Fairy Dreams – Mallets.A1 F maj.01 LOGO – Artlist Original]

그런데 반면에. 포장을 안 하고 싶을 수도 있죠.

포장하고 치장한다고 나무라는 것 만큼이나, 안 포장하고 안 치장한다고 나무라는 것도 신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남들이 납득할 수 있는 ‘좋은 차’를 안 몰면 포장이 부족해서 그 개인이 뭔가… 까발려진? 밑천이 드러난 느낌을 갖고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든지. 옷을 시즌별로 새로 사 입지 않으면 돈이 없어서 그런 줄로 지레짐작한다든지.

그런데 이게… 너무나 신기하단 말이죠.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개인적으로 시각적 포장에 관심이 없어서. 차라리 치킨을 사 먹지. 그러면 아니면 돈이 남으면 투자를 하든지, 그러거든요.

돈 중에 제일 아름다운 돈은… 아직 안 쓴 돈이에요. 아직 어디에든 쓰일 수 있는 돈. 영롱한 가능성.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을 더 하긴 해요. ‘포장을 하면 시간이 절약되는구나.’ 제가 생각했을 땐 이거, 시간 절약이, 점점 더 저의 포장의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어렸을 때, 애기들은요. 아무거나 입어도 이뻐요. 갓난애기들도 그렇고, 어린아이들도 그렇고, 청소년까지도. 웬만해서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어도 그 애기성있잖아요. 아직 스무 살이 안 되어서 노화가 시작되지 않은, 세포의 노화보다 성장이 더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그런 인간 개체의 젊음. 자연이 선물한 스타터 키트가 아직 다하지 않은 개체들. 거기다가는 뭘 걸쳐도 그냥 예쁩니다. 그 개체들 본인들은 여러 가지로 자신의 외모에 불만이 많을 수도 있겠고, 또 인간이라면 앞으로 그 스타터 키트가 다했을 때의 암울함을 예측할 수 있으니까 불안하겠지만,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현재 이 순간에 그들에게 함축된 예쁨은 더 노화한 개체에 비하면야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화한 개체라 함은. 스무 살 이후의 개체들입니다.

네. 인간은 그렇다 하더라고요. 스무 살 이후부터 나락이에요. 암울하죠.

아무튼 스무 살 이후부터는 적절하게 포장을 하면 시간이 절약됩니다. 왜냐하면 뭘 구구절절히 설명할 이유가 없어지거든요. 자신이 어떤 업계에서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에 따라 이 ‘적절한 포장’이라는 기준은 달라지겠지만, 여하튼 간에 뭐랄까, 잘 보이고 싶다? 라고 하기보다는. 네. 시간 절약이 정말 제일 적절한 말인 것 같아요.

일례로, 후줄그레한 차림으로 백화점을 갔는데 불친절했던 직원이, 잘 차려입고 다시 갔더니 갑자기 깍듯해졌다더라. 이거는 꼭 상대방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더라도, 정말, 단순하게 말하자면 ‘있어 보이게’ 하고 다니면 ‘있는’ 줄 아는 경우가 있긴 하더라고요. 그러니 명품을 찾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저야 방구석에서 이야기를 하니까 명품이 필요가 없는 거지만,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한순간에 압도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게다가 그 압도해야 하는 대상이 명품을 알아. 알아야 통하잖아요. 만약 그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명품이 투자 가치가 있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포장이란 어떤 때는 거의… 장착? 무기 장착? 감옷… 갑옷 장착? 이런 느낌으로 바깥세상에 나가기 전에 해야 하는 치밀한 준비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포장이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떤 포장이든 그렇습니다. 여러분?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같이 왔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죠? 그런 겁니다. 과자를 포장해서 파는 데에는 아무도 불만이 없잖아요. 과자를 먼지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과자 브랜드 마케팅도 해야 할 것이고. 브랜딩이 잘 되어 있으면 소비자도 좋습니다. 그러나 과자를 샀는데 과자 봉지에 과 자를 보호하기 위한 질소가 들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실수로 딸려 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대 포장이 되어 있다면. 그러면 불필요한 거잖아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포장을 했을 때, 그것이 과해지는 시점이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그런데 과자와 달리 인간은… 자기만 알 것 같아요. 그것이 정말로 과한지 아닌지. 그리고 이것은, 아까 말했던 그 극 중 인물의 목표 세우기. 고거를 스스로 테스트를 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 목표가 비싼 차를 사는 그 자체인지. 그게 아니라면 비싼 차를 삼으로써 누구에게 잘보이려고 하는 것인지. 타인인지. 나인지. 만약 나라면. 나는 왜 비싼 차가 없는 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여기고, 비싼 차가 있으면 달성했다고 여기는가. 등등.


5: 소셜 미디어

00:32:22-00:37:37

[Music: Shadow of Beauty – Yoav Ilan]

인간 사회의 포장을 논하려면 소셜 미디어가 빠질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소셜 미디어 자체가 포장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포장을 위해 쓸 수도 있지만, 뭐, 여러 가지 용도로 쓸 수 있어요. 시간을 때울 수도 있고, 오프라인 친구들이랑 놀 수도 있는 거고,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저는 유튜브로 배우는 게 정말 많거든요. 진짜 유튜브 아니었으면 저는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소셜 미디어를 쓰는 개개인 중에서는 포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 중, 저는 개인이 개인 계정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논하지 않을게요. 개인이 어떤 비싼 명품을 걸치고 저기 계정에 사진이든 비디오든 뭐든 올리든, 남들이야 무슨 상관이겠어요.

반면 안 좋은 포장이라고 볼 수 있는 건, 남의 계정에 가서 벌이는 행위입니다. 어떤 행위냐면요. 남의 계정에 가서 댓글 하나 띡 다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너무 좋은 포스트네요. 우리 소통해요.’

네. 아직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었던 시절, 저는 이런 사람들 다 블록했습니다. 스팸이거든요.

인스타그램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많은 부분이 스몰 토크 감성과 비슷합니다. 아주 표면적이고, 빈말뿐이며, 쓸 데가 없어요. 밥 한번 먹자고 하고서 평생 안 먹는, 딱 그 정도의 가벼움입니다. 그리고 팔로워 팔로잉 카운트를 두고 벌이는 과대망상은 그 정도가 상당히 놀랍습니다.

예시를 들어볼게요.

귤이 포도를 팔로잉 했는데 포도가 맞팔을 안 하면, 귤들 중에 이런 귤들이 있어요. ‘포도가 연예인병에 걸려서 나를 맞팔을 안 하는구나.’

음… 아니죠. 뭐 연예인병에 걸린 포도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맞팔하기에는 귤이 올리는 콘텐츠가 취향에 안 맞아서 맞팔을 안 하는 거겠죠.

또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사과가 바나나를 팔로우했어요. 바나나는 사과를 맞팔을 안 했어요. 그러고서 사과가 바나나를 언팔했어요. 이때, 바나나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바나나들이 있습니다. ‘사과가 팔로워 수를 늘리려다가, 내가 맞팔을 해주지 않자 언팔을 했구나! 간사하기는!’

[Music ends.]

음. 물론 그럴 수도 있긴 한데… 그보다는… 그냥 사과가 바나나 콘텐츠가 재밌어 보여서 팔로우를 했다가, 뭐 어떤 계기로 바나나의 콘텐츠가 생각보다 별로여서 언팔한 거 아니겠어요?

누가 더 간사한가요? 맞팔 할 것도 아니면서 누가 자기 팔로우했다가 언팔했나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는 바나나가 그냥 팔로우 했다가 언팔한 사과보다 더 간사하지 않나요?


6: 속도 속 멍함

00:37:37-00:50:08

[효과음: THE NIGHT OF THE BOWL, Harp, F maj, full phrase – Artlist Original]

메타 컴퍼니 말고 다른 소셜 미디어 얘기를 계속해 볼게요.

전에 제가 틱톡 플랫폼 자체는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빠르게 움직이는 템포 자체가 제 취향은 아니더라고 말했었잖아요. 4화에서 얘기했었네요. 파트 6: 미래적 신체. 그런데 틱톡이 오가닉 리치가 엄청나다고 해서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써봤더니, 정말로 그렇더라고요. 제가 빠르게 움직이는 걸 안 올렸는데도 뷰가 나오더란 말이죠.

물론 제가 말하는 ‘뷰가 나온다’ 함은, 제 계정이 워낙 하찮기 때문에, 수백, 수천 뷰 정도를 말하는 겁니다. 근데 여러분, 메타 컴퍼니 회사들, 즉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같은 데에서 이 정도 뷰를 가지려면, 돈을 내거나 엄청 유명해야 돼요. 그러니 틱톡은 정말 밑져야 본전, 공짜인데 뭐 뷰 측면에서는 한번 써볼 법한 도구인 것이죠.

그리고 초반 인상은, 틱톡이 지금껏 봤던 소셜 플랫폼 중 가장 비포장적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필터 같은 걸 쓰더라도, 그 필터가 너무나 티가 나서, 필터를 쓴다는 걸 숨기려는 의도로 쓰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이것도 포장이라고 명명한다면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왜 그… 꾸안꾸 있잖습니까? 꾸안꾸. 이게 “꾸민 듯 안 꾸민 듯”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인가? 틱톡이?

그런데… 한 일주일 써보니까, 아, 틱톡에서 어떤 포장이 벌어지는지, 왜 문제인지 느낄 수 있더라고요. 틱톡에서는 인스타그램과 달리, 뭔가… 시각적으로 포스트가 보기에 좋아서, 잘 짜여진 피드 디자인이라서, 혹은 누가 와서 ‘나 좀 팔로우해주세요, 소통해요, 하하 호호 불쉣 긍정긍정’ 이래서 포장이 벌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틱톡의 포장 문제는 더 깊습니다.

[Music: Morning Sunbeams – Yehezkel Raz]

틱톡 플랫폼은 수도 없는 반복을 기반으로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놀랐어요. 틱톡이, 저도 틱톡을 좀 많이 써보기 전에는 ‘템포가 너무 빠르다, 화면이 너무 빨리 바뀐다, 정신이 없다’ 이런 이미지였는데, 실제로 써보면요…

엄청나게 느려요. 이게 아이러니인데,  나무늘보급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이 매우 분주한 이미지의 움직임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이 챌린지들이… 반복적이니까 챌린지가 성립되는 거예요. 챌린지가 한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그걸 모두가 다 따라 합니다. 그리고 챌린지뿐만 아니라 틱톡 플랫폼 전체가 ‘모두의 반복’을 유도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어요. 트렌딩 사운드, 트렌딩 노래, 트렌딩 해시태그. 이런 정보가 다른 소셜에도 있긴 합니다만, 틱톡은 그것을 아주 앞부분, 그러니까 유저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놓아둡니다.

따라서 틱톡에서 유명해지고 싶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트렌딩하는 것에 자신도 참여합니다.

[Music ends.]

그래야 그 앞부분에 자기가 등장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무언가가 트렌딩하기 시작하면, 똑같은 게 무한히 반복되더라고요. 그러니, 이 반복되는 부분부분들이 아무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들, 그 분주함 자체가 반복되면 어떻게 느껴지겠어요?

느려요.

비유를 해볼게요. 휴대폰이 있어요. 진동이 한번 바르르 울려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죠? 문자가 왔구나. 전화가 왔구나.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휴대폰이 만약에 계속 진동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계속 바르르 울려요. 그러면 어떻겠어요? 뭐 미약한 안마기 정도로 쓰겠죠. 계속 진동하니까. 더는 자극이 자극 같지도 않은 상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틱톡을 쓰면서, 놀랍게도, 그… 뇌가 멍한 상태 있죠? 자극이 많으면서도 없는 느낌. 뭐가 눈앞에서 계속 움직이고, 요즘 트렌딩한다는 노래가 계속 반복되는데, 전혀 그것을 내가 소화할 필요는 없는 느낌. 왜냐하면, 새로운 정보이면서도 새로운 정보가 아니니까 소화할 필요가 없는 거죠.

여러분. <화씨 451>이라는 디스토피아 SF 소설에 자주 언급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세상이 아주 말세라서, 길 건너는 사람이 있든 말든 차들이 과속하는 거예요. 그냥 뭐 보지도 않고 그냥 액셀을 밟는대요. 마구 달리는 거예요, 마구마구.

[Music: Game Over – 2050]

그런데 여러분, 정말 빨리 달리는 차, 기차 이런 거에 타면 기분 어때요? 나는 빠른데 빠르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 움직이는데 나는 자칫하면 멍해져요. 심지어 평온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소름 돋게도 틱톡의 반복 문화에서 이걸 느꼈습니다. 이것은… 아… 뭔가, 나이가 어린 층이, 새로운 것을 찾고, 그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이것은 저는 좋을 수도 있는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봤을 때 틱톡은 그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호기심이 아니고, 반복이고, 멍함. 마비. 무력감.

그걸 젊음과 가짜 빠른 템포로 포장한 겁니다.

아무튼 다시 챌린지로 돌아가 보자면. 챌린지들의 유행은, 무한히 반복되어 사람을 멍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도 위험해 보이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에 다다를 수도 있는 챌린지가 유행하니까요. 그렇대요.

이런 챌린지에 참여하는 것이, 팔로워 때문일까요? 음…

그런 말이 있죠? 목표보다 여정이 중요하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제일 중요하고, 특히나 목표를 모르는 것을 여정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포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뭔지 모르는 것과 여정을 중요시하는 건 별개예요.

그리고 제 해석으로는 위험한 챌린지의 유행이 딱 목표를 모르고 여정만 중요시한다고 포장해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7: 챌린지 이후의 삶

00:50:08-00:59:35

왜냐하면. 설마 챌린지 자체가 인생 목표인 사람은 아마 그 수가 적을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목표로 향하는 길에 챌린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왜 이 길로 가야 한다고 여기는지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오히려 목표를 무시하니까 길도 정해지지 않는 거예요. 챌린지에 참여하면 뭐… 기부니가 좋은가 보죠? 혹은 순간을 즐긴다고 여겨지나 보죠?

이것이 요즘에 벌어지는 아주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포장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 기부니를 챙겨라. 순간을 만끽해라. 여정이 중요하다.

음. 물론 기분 챙기는 것도 중요하고 순간을 만끽하면 좋고 여정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대포장이 되는 경우가 있단 겁니다.

왜 과대포장이냐면요… 이게… 너무 당연한 말인데요. 미래에 자신이 목표를 이룰 확률을 가장 높도록 하는 방법은 살아남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틱톡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들은 목표도 없고. 챌린지 다음도 없는 거예요. 챌린지할 때 기부니만 좋고. 순간밖에 안 살고. 뭐… 여정? 여정까지는 갈 시간도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 중요한 말이 나왔네요. 챌린지 다음. 여정도 좋고 목표도 좋은데, 사실 우리가 목표를 세우고 여정을 떠나는 이유는 목표 그 이후 때문입니다.

[Music: Simple Man – Instrumental Version – Assaf Ayalon]

어쩌면 이 때문에 목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오해가 생기는 걸 수도 있겠어요. 목표는 점처럼 보이고 그 전후는 점이 아닌 선이며, 선은 이어지고 길고 따라서 그 긴 부분을 중요시하라는 뜻에서 여정을 강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조차. 목표 이후의 삶, 그 계속되는 여정도 목표를 이정표 삼아야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지 않아도 살아지긴 하지만, 목표가 목표 이후의 삶을 얼마나 더 좋게 해주는지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어요.

여러분. 영화 주인공의 목표가 폭탄 해체이면, 폭탄 해체 성공! 하고 영화 끝나지 않아요. 반드시 뭐가 나옵니까? 폭탄 해체를 해냄으로써 사람들이 살아남는 장면. 우리의 주인공이 칭찬을 받는 것. 인정을 받는 것. 행복한 것.

스포츠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는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는 건데, 영화 마무리는 어때요?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가족들과 행복하게 재회하는 것. 좋아하던 사람과 이어지는 것. 뭐, 그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심지어 전국 대회에서 져도, 지고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이 목표는 중요치 않고 여정이 더 중요했다? 이게 메시지가 아니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목표의 존재와 성공 유무는 별개예요.

목표의 존재란 미래에 대한 어마어마한 낙관의 상징입니다. 그 과정이 험난하든 성공하든 말든. 그런데 이… 가짜 포장인 순간에 머물기 유행. 가짜의 긍정으로 인하여. 그 미래에 대한 어마어마한 찬사의 상징인 목표가 사라진 유저들이 틱톡에 모여서 죽음의 챌린지를 하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챌린지 외의 목표도 없고. 그 목표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도 없어서.

이것이 저의 이론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죽음에 다다를 수도 있는 챌린지에 왜 참여할까요?

[Music ends.]

네. 화씨 451에 나오는 그 막무가내 과속의 멍함을 직접 느껴보고 싶으시면 틱톡을 한번 써보세요. 공포물 좋아하시는 분들 틱톡, 아, 이거는. 무서워요. 그 어떤 피 튀기는 슬래셔 영화를 봐도…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동일한 것에 동일하게 계속해서 끝도 없이 영원히 반복하고, 아무도 새로운 거 하지 않고, 아… 이게 호러예요.

그 이야기 속에서도 과속하며 온세상의 존재를 잊는 그 운전자들은 깔깔 웃습니다. 그게 강조돼요. 깔깔 웃고. 행복해요 그들은. 너무나 즐거움이 중시되는 사회라서. 즐거움 외의 목표까지 가는 과정에서는 당연한 고통과 고뇌를 범죄시하고, 자신들이 순간순간을 즐긺으로써 아주 현명하다고까지 착각합니다.

겉보기에 스피드, 위험을 사랑하는 것으로 포장된 그 과속 행위는, 마치 틱톡처럼 거대한 허무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 나머지 전후가 없어지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중요시하다가 그 순간마저 소멸되는 경험을 틱톡을 통해서 하실 수 있습니다.


8: 추의 세계

00:59:35-01:03:24

[Music: The Racer – Piano Version – Tristan Barton]

얘기가 좀 암울해졌습니다만.

저는 세상이 추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액션이 있으면 리액션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움직이면 반동이 있어요.

그래서 순간을 즐겨라 순간에 살아라 이런 말이 유행처럼 번진 것 같습니다. 사실 참고 기다린다고 해서 잘 풀리는 세상이 아닌 게 맞는 말이긴 하잖아요? 직장에서 평생 책임 안 져줍니다. 아무도 아무것도 책임 안 져줘요. 그러니까 너무 미래를 걱정하거나 너무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현재에 머물라는 말이 그 자체로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세상이 어쩌면 과하게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보류하라고 요구하던 액션에 대한 적절한 리액션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틱톡 챌린지 같은 걸 보면 그 리액션 역시 극단에 치닫았나 싶습니다. 이제 또 반대 리액션이 오겠죠?

[Music ends.]

무엇보다, 지금 틱톡 챌린지가 가능한 이유는 극단의 중앙화 때문이잖습니까? 틱톡 밑 지금의 인터넷 세계가 얼마나 중앙화되었는지에 대해 다음 에피소드에서 얘기할게요. 탈중앙화 방안에 대해서도요.

아무튼, 이 극중앙화에 대한 리액션으로 저는 탈중앙화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 이걸 듣고 있는 여러분은, 저와 함께 목표 달성 이후의 삶도 생각합시다. 그리고 목표도 생각합시다. 거창한 목표일 필요 없어요. 다만, 오늘만 살 것처럼 살다가는 내일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9: 마무리

01:03:24-01:06:42

[음악: To the Moon and Back – Ty Simon]

네. 여러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아까 말했었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우리는 미래를 도모합시다. 저는 지구 멸망을 예측하고, 밝은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 어떤 멸망 시나리오를 예측해도, 준비를 하면 밝아질 수 있습니다. 멸망을 고려해야 미래가 밝아요. 멸망이 없는 걸로 포장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적당한 포장을, 대형 플랫폼에 휩쓸리지 않고 각자 알아서 하는 삶을 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더 자세하게 궁금하시면, 저의 홈페이지 ‘보관소’에서 ‘간간 소식지’를 구독하시면 됩니다.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음악 끝.]


모든 링크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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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한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