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0] 친구 따라 어디까지 가나 보자, “노 스모킹(No Smoking)”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번 시즌 통틀어서,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제 영화 중에 가장 한아임 취향에 딱 맞았던, 바로 그 영화. “어? 나 인도 영화 좋아하네?” 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영화. 그 영화에 대하여 오늘 이야기 합니다. 제목은 바로, “노 스모킹.”

내용은 음… 사실 진정한 내용은 플롯이 아니에요, 이 영화는. 플롯이 정말 간단해요. 어떤 굉장히 잘생겼고 능력 좋으나 성격이 개차반인 젊은이가 담배를 미친 듯이 펴대는 중독증에 걸렸는데, 그걸 고치려고 재활프로그램에 들어갔다가 심신이 탈탈 털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대체 심신이 어떻게 탈탈 털린다는 말인가? 그 펼쳐지는 방식이 제가 이 영화를 너무나 재밌게 본 이유입니다.

오늘 제가 좀 신이 난 관계로, 이번 시즌 중 가장 랜덤하게 이리저리 토픽을 점프해가며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지체 없이 바로 들어갑니다.


캬. 여러분? 진짜. 아. 너무 오늘 두서없을 것 같은데. 두서없는 것은 두서있는 것과 다른 재미남이 있으니까 일단 그냥 얘기를 시작할게요. 나름대로 다 연결이 된단 말이죠 이게.

일단은요. 여러분. 카프카를 좋아하십니까? 카프카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가 희미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하죠. 프란츠 카프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소설가이고요, 지금의 프라하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독일어로 글을 쓴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대표작으로는 “변신,” “심판” 등이 있습니다.

저는 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정말이지 얼마나 오래됐느냐 하면, 제가 픽션 이야기를 직접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던 때부터, 그리고 팟캐스트 같은 건 존재도 하지 않고 유튜브나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이 존재하지 않던, 정말이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제가 좋아하던 작가였습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 옵션을 잘 몰랐어요. 카프카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데, 그 당시에는 이러한 장르를 쓰는 작가 중 카프카밖에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요. 거기서 더 세부적으로 취향을 가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여러분. 대체 사람들은 유튜브가 없을 때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었을 땐 대체 어떻게 살았던 건지? 검색 엔진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요? 아니, 검색 엔진이 좀 원시적인 경우만 해도 불편하잖아요. 구글에다가 검색하면 오타까지 잡아서 알아서 알아들어 주는데, 그게 안 되고 딱 그 검색하려는 단어의 스펠링이 맞지 않으면 검색엔진이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검색이 굉장히 많은 컴퓨터 파워를 요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이 기술적인 건 잘 모르는데, 하여간에 검색이 쉬운 게 아니래요. 그래서 이렇게 구글 외에는 세계적으로 맞설 검색엔진이 없는 거겠죠?

그러나 좀 더 최근에는 또 챗GPT가 등장했죠. 이제는 검색을 점점 더 챗GPT로 하게 된다던데. 저도 음… 검색어를 뭘 입력할지 잘 모르겠을 때. 그리고 배경 설명을 많이 해야 할 때. 그럴 때 가끔 챗GPT를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할 때 좋더라고요. 챗GPT로 픽션 글 자체를 쓰는 데 도움을 받는 작가들도 있다던데, 저는 그러한 시도를 해본 결과, 챗GPT가 아직은 긴 텍스트를, 특히나 인물이 여럿 나오는 텍스트를 기억을 못 한다는? 그 능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옛날 옛적에 에이아이가 썼다는 해리포터 이야기와 별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잔혹동화 짧게 써줘” 이런 식으로 챗GPT에다가 입력을 하면, 그 이야기가 뭐 취향적으로 좋다 싫다를 따질 수준이 아니더라고요. 아직은요. 저렇게 입력하면 완전히 이상한 이야기가 나와요. 이야기도 아니죠. 처음 중간 끝이 없거든요. 연결이 안 돼요. 저렇게 입력하면, 예를 들어 뭐, “옛날 옛적에 마녀가 살았습니다. 마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마을은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에 사는 소녀가 마녀를 찾아갔습니다. 마녀는 말했습니다. ‘나에게 빵을 주세요.’”

뭐 거의 이런 수준으로 전혀 연결이 안 되는. 근데 뭔가. 얘가 시도를 했다는 건 알겠어. 마치 그… 마치 한 4, 5세 어린이가 픽션을 쓰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어린이가 이렇게 쓴다면 어른들이 그 아이가 어린이기에 ‘아, 귀엽구나,’ 해줄 것 같은? 고렇게 씁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들이 픽션 글 자체에 챗GPT를 어떻게 쓴다는 건지는 잘 상상이 안 가는데, 브레인스토밍은 확실히 잘해줘요. 예를 들어 뭐… “한 사람의 꿈에 다른 사람이 영향을 미치는 게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알려줘.” 하면 그 문제 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대여섯 가지를 알려 줍니다. 그러면 그걸 갖고 제가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브레인스토밍에 쓴다는 작가들 이야기는 쉽게 상상이 가고, 저도 가끔 씁니다. 그러면 가끔은 얘가 정말 “오, 맞네,” 하는 얘기를 해줄 때가 있어요. 그 자체의 정보를 그대로 가져다가 픽션에 쓸 수는 없는 수준이지만, 그런 수준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글은 사람이 쓰면 되니까요. 그걸 아웃소싱할려고 챗GPT를 쓸 거였으면 왜 작가를 하겠어요. 굳이. 다른 일 하지.

마치 이건… 뭐랄까. 챗GPT를 쓸 수 있다는 건 마치 내가 화가인데 사진기가 막 생긴 느낌? 그런 비슷한 느낌 같아요.

사진 자체가 예술이죠. 사진이 같은 사진기를 쥐여준다고 해서 같은 사진이 나오는 게 절대 아니잖아요. 뭐든지 사람한테 뭘 쥐여주면 그 사람한테서 무언가가 나오는 거지, 사진기가 사진기라서 나오는 건 지금까지는 없습니다. 어떤… 인공지능을 가진 사진기가 언젠가 나와서 그 에이아이가 만든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긴 하겠죠.

그런데 또 그게 약간 지금 벌써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잖아요. 에이아이가 사진은 안 찍지만, 그림은 그리죠? 완전히 환상적인, 그, 뭐랄까, 에이아이들 전반의 스타일이 있잖아요. 저는 가끔 나이트카페라는 데에 가가지고 아무 프롬프트나 넣어서 거기서 그림 만들면서 노는데, 아주 그냥 신통방통해요. 근데 그렇게 에이아이 기술이 아직은 뭐랄까, 완전히 자기가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비슷비슷한 결과물을 도출할 것 같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에요. 이… 여러분? 마치 우리가 프린터 같은 걸 쓸 때도, 프린터가 매번 안 되는 사람이 있고요, 프린터가 매번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체 어느 수준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나이트카페 에이아이 그림 같은 경우에는, 에이아이한테 프롬프트를 줄 때 내가 하는 말 자체가 걔한테 영향을 준단 말이죠. 그런데 제가 분명 이렇게 구구절절 말을 끝도 없이 하는 인간이고, 글도 구구절절 쓰는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에이아이더러 알아듣게 말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뭔가 이… 이 프로그램이 잘 이해하는 언어가 있는데, 제가 그걸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만간에 에이아이 프롬프터 작가가 따로 직업군으로 생길 거라는 예측이 저는 매우 맞는 예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프롬프터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결과물들이 생길 거기 때문에, 또한 나중에 심지어 진정한 지능을 가진, 의식을 가진 에이아이가 나온다 하더라도 어차피 각 인간은 인간이기에 자기 것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저는 이런 기술들이 너무 익사이팅하고요.

다시 챗GPT가 약간 사진기 같다는 생각으로 돌아가자면요. 챗GPT를 그대로 쓴다는 건 마치… 사진기가 나왔다고 해서 모든 사진이 같다고 여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근데 그렇지 않거든요. 심지어 인스타그램 같은 앱을 써서 필터를 다 똑같이 해도, 두 명의 사람이 찍는 사람이 같지 않아요. 챗GPT는 아직은 좀 실제로 대답이 요약형이라서, 좀 비스무리 두리뭉술해가지고, 약간은 좀 같은 대답이 나오는 것 같긴 한데, 그림 분야에서 에이아이가 그리는 그림을 보면, 그것이 사람이 어떤 프롬프트를 넣느냐에 따라 너무나 천차만별이 되는 걸 보면, 챗GPT도 조만간 더 발전하지 않을까? 뭔가, 마치 사진기를 누구 손에 쥐여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오고, 사진작가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로 예술이 되듯 말이죠.

이게. 우리가 전부 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잖아요? 전부 컴퓨터를 하고. 전부 팟캐스트라는 기술을 알고 있어도. 그걸로 뭘 하는지는 너무나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저는 웬만하면 언제나, 기술의 발달은 신난다. 이러한 에이아이 툴들을 모아놓은 디렉토리도 많던데, 맨날 가서 좀 놀아야지 하다가도, 또 다른 재밌는 거 많아가지고. 하. 유튜브 너무 볼 거 많고. 아 너무 할 거 많아가지고. 도저히 어… 아 도저히 이건 시간이 아무리 무한해도 이… 하루 24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제 의식이 이렇게 펼쳐지기에는 뭔가 아바타 세상에서는 그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렌즈이려면은, 렌즈로서 기능하려면은, 렌즈 바깥의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렌즈를 씀으로써 좁혀지는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또한 무엇보다, 뭐 그런 기능적인 제한이 실제로 그러한가 아니냐보다, 제가 좀 그 제한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게 너무 많은 건 알겠는데, 그리고 간간이 실제로 그런 걸 다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막상 또… 막상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것도 같다. 왜냐하면 경험 안 하는 것이 또한 그로서 나를 만들기 때문에.

아무튼, 챗GPT가 발달함에 따라 이제는 구글 검색엔진이 최강자가 아니게 된다던데, 진짜로 그럴지? 우리가 지금 검색엔진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잖아요? 왜냐? 카프카 외 다른 같은 장르 작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얘기했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구글 이전의 시절, 아이폰 이전의 시절에는 카프카밖에 몰랐습니다. 왜? 카프카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거의 유일한 이 장르 작가였던 것 같아요. 거기서 혹시 약간 조금 더 가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언급이 됐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런데 아무래도 카프카 이야기가 훨씬 많이 나왔던 이유가, 카프카 작품의 길이가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적합해요. 학교에서 가르치기가. 그리 길지가 않거든요. ‘심판’의 경우 영어 단어수로 49,000자예요. 이렇게 단어수 비교를 해놓은 경우가 영어책이 많은지라, 영어 단어수로 비교할게요. 제가 항상 단어수 비교할 때 쓰는 것이 또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49,155단어라고 어느 웹사이트에서 그러네요. “위대한 개츠비”를 왜 비교에 자주 쓰느냐 하면요, 많은 국가에서 학교에서 어떤 식으로든 언급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기 때문입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26,601단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29,966단어.

그런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어떤가? 122,380단어. 캬. 이러니. 얼마나 힘듭니까? 학교에서 애들이 읽기도 힘들고 교사가 가르치기도 힘들다.

그런데 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135,420 단어인데도 많이 가르치더라고요. 그런데 이 경우에는 제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 것 같아요. 아마 한국에서도 한국의 작가들의 작품 경우에는 좀 길어도 더 많이 가르치는 경향이 있겠죠? 그런데 미국에서 카프카나 마르케스를 가르치려면 번역본이어야 하는 데다가, 마르케스 너무 기니까, 그래서 이왕 긴 거 가르칠 거면 찰스 디킨스를 가르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카프카. 네. 한 바퀴 돌아왔어요, 여러분. 챗GPT가 이걸 못 해요. 아까 했던 그 얘기를 다시 집어서 바느질하는 걸 못 해요. 얘가 박음질을 못 해요. 그냥 앞으로만 질주해가지고, 픽션을 아직… 1000자짜리 마이크로픽션도 못 써요, 아직. 그러나 과연 앞으로는 쓸 수 있을 것인가? 모른다.


하여간에, 카프카. 카프카 얘기 왜 했냐 하면요, “노 스모킹”의 주인공 이름이 K입니다. K는 카프카의 이야기 “심판”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합니다. “노 스모킹”에서는, 어… 이 K라는 동명의 주인공이 심신이 탈탈 털리는 과정에서 형사들도 와서 자네 이름이 K 다음에는 뭐냐고, 뭐… 김K냐, 박K냐, K창민이냐, K윤호냐, 뭐 동방신기님들 이름 같은 뭔가가 있을 것 아니냐, 이렇게 물어보는데, 이 남자가 자기는 “그냥 K”라고 말할 정도로, 또한 영화 자체가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연출을 보여주는 관계로, 카프카를 언급을 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그러한 영화다.

카프카. 하. 음… 그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이 있습니다. 그렇죠? 벌레가 나오고. 형벌을 집행하겠다고 요상한 기계를 만들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참 너무 좋아하는데. 딱 그러한 이야기가 “노 스모킹”입니다. 카프카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 영화에서 카프카적인 이야기를 찾기가 꽤 어렵다고 저는 여겨지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카프카적 요소가 있는 영화는 많지만, 실제로 정말… “심판”을 영화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노 스모킹”은 그런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이런 말이 나와요.

A thousand people stop smoking everyday, by dying.

Smoking kills.

매일, 천 명의 사람들이 담배 피우기를 멈춘다. 죽어서 그렇다.

흡연은 살인마다.

이런 말이 나와요. 영화에 담배가 어마어마하게 나오기 때문에 이런 말을 넣은 것 같고요, 막상 영화 자체는 유머가 넘쳐요. 거기서 좀 카프카의 스타일과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네요. 유머가 넘쳐요. 카프카는 그냥 다크한데, “노 스모킹”은 다크 유머가 있다.

이런 식이에요. 아까 언급한 그 말 다음에 또 다른 말이 스크린에 뜹니다.

To do is to be – Plato

To be is to do – Socrates

Do be do be do – Sinatra

이런 약간… 살짝 고급 아재 개그? 그런 스타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고서 이제 이미지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제가 즐기는, 뭐가 진짜인지 모르지만 진짜라는 느낌이 남아 있긴 한. 그러니까, 너무 다 환상적으로 흩어지면 붙잡는 힘이 너무 없어서 어지러운데, 그런 느낌은 아니고 명백히 스토리가 있되 환상적인. 그런 장면이 펼쳐집니다.

눈이 하얗게 쌓인 평지에서, 바깥에서, 아무것도 없는데 전화 소리가 들립니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내가 TV 화면 속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난데없이 러시아 뉴스가 나오고. 시베리아 군인들 나오고. 사람이 말하면 그 말이 TV에 곧바로 똑같이 나오고. 이것이 연결된 건지 뭔지. 심지어는 말풍선이 떠요. 만화처럼.

이런 식으로 시작을 하는데, 이런지라, 아까 제가 말했잖아요. 심신이 탈탈 털리는 이야기라고.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묘사된 흡연은, 그냥 뭐, 흡연하면 사망합니다 정도가 아닌 거예요. 흡연해서 사망하면 그냥 사망으로 끝인데, 이 영화는 이… 완전 그… 판타스마고리아에 빠지는. 내가 죽었는데 죽은지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는. 정말 사람 미쳐 돌아버리겠는, 그런 연출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담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나와요. 주인공 K는, 실제로 그냥 웬만한 흡연자가 아니에요. 무슨 뭐 점심시간에 동료들이랑 담배 10분 피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이 중독에 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담배 자체가 문제가 아닌 거예요. 이러한 정도의 중독에 걸릴 수 있다는 자체가 이 사람의 존재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줍니다.

네. 중독은 존재와 관련된 겁니다, 여러분.

저는 약간 마일드한 커피 중독이 있는데, 와, 커피 중독 진짜 무섭더라고요. 제가 술을 매일 같이 마실 때도, 그 술을 안 마셨을 때 무슨 금단 증상이 있었던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커피는 매일 한 잔, 아니, 반 잔씩만 한 달을 마셔도, 그러고서 하루 안 마시잖아요? 그러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그런데도 한아임은 어떤가? 커피 맛있다고. 망할 커피 너무 맛있다고. 며칠 막 머리 아파하면서, 안 마시면서 막 괴로워해요. 그러면서 막 스스로 이래요. “그래 나는 완전 중독은 아니야. 나는 유사시에 커피가 없으면 안 마시고도 생존할 수 있지.” 막 이래요. 그러고서 뭐 한다? 다음날 커피 또 마셔요. 완전 이건 뭐, 신체적 중독 중에서는 좀 가볍지만, 심리적으로, 아니… 아니 맛있다고. 커피가 맛있다고. 아주 큰 문제인데.

이렇게 상당히 큰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저의 이러한 상태는 “노 스모킹”에 나오는 K의 중독에다가는 어디 갖다 붙일 수도 없는, 갖다 비빌 수가 없는 아주 미세한 수준이고, 약간… 점점 점점… 뭐라고 해야 되지? 민감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커피를 옛날에는 오히려 아무리 많이 마셔도, 그, 몸이 둔한 상태라 해야 되나? 심신이 둔한 상태라서 그거에 대한 영향을 이 정도로 받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정말, 커피 요만큼, 요만큼 마셔도, 마실 땐 좋아요. 마시는 한 뭐 몇 주간은 좋아요. 그러다가 반드시 뭔가 이런 crash가 오더라고요. 그러면 막 나락으로 떨어져요. 그러면 또 커피 안 마셔요. 안 마시고 막 머리 아파 하막 약간 자괴감과, 나는 그래도 커피를 끊을 수 있지라는 그런, 이상한 그, 뭐라 그래야 돼, 자부심? 이런 거에 취해가지고는 그 상태를 막 왔다갔다 해요. 그런데 그래도, 아, 비교적 정말 미세한 수준인 거죠. 왜냐하면 커피 지금 한 잔, 반 잔 갖고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니까. 그런데 K의 중독은 정말… 이… 담배가 없는 자신을 견딜 수가 없는 중독 상태입니다.

일단 아까 언급한 그 시베리아 벌판 같은, 어딘지도 모를 장소에 있는 상태에서 아침부터 담배를 찾는데, 이 정도면 그냥… 내가 아침에 깨서 의식이 어느 정도 내 통제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담배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인 거예요.

그렇게 담배를 찾다가 찾다가 겨우 찾았는데, 그걸 입에 물고 있는 상태에서 누가 자기한테 총을 겨누는데도 불구하고 성냥을 찾는다든지. 이런 거죠. 아무 정신이 없고 담배 생각만 해요. 거의 정신병으로 나와요.

근데 실제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 금단 현상이 이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있긴 하더라고요. 심지어 무슨 자동차도 사고로 사람을 죽이는데 자동차는 왜 금지 안 하냐. 왜 담배를 금지하냐. 아니면 왜 담배를 마음대로 못 피우게 하냐, 이런 얘기도 나오던데, 그걸 설명해 줘야 압니까?

1차적으로 자동차 운전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마냥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자동차 면허 따야 하잖아요. 그리고 자동차는 차도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 담배를 왜 아무데서나 마음대로 못 피우게 하냐는 게 정녕 궁금한 거면, 그게 궁금한 거 자체가 이상하죠. 담배를 아무데서나 못 피우게 해서 그냥 싫을 순 있어요. 싫은 건 그냥 싫은 겁니다. 아무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논리도 필요 없어요. 내가 담배 피우고 싶은데 아무데서나 못 피우게 하니까 싫은 거 매우 당연한 감정입니다. 그런데 왜 못 피우게 하는지가 궁금하다니. 자동차를 차도에서만 몰듯이 담배를 담배 피우는 데에서 피우라는 건데 그게 어떻게 궁금한가요?

그리고 2차적으로, 담배 피우는 데가 부족하고 담배가 금지되었는데, 그러면 왜 자동차도 사람을 죽이는데 금지를 안 하냐. 이 점이 궁금하다면, 이건 약간 좀 더 궁금할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한데, 이유는 너무 명백하죠. 금지를 하는 그 기관이 국가라서 그렇습니다. 국가 입장에서 지금의 시공간에서 백해무익하다고 판명난 담배를 금지하겠습니까, 수많은 현존 사람들의 생존 및, 그들의 세금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확장주의 국가가 좋아하는 현존 생존자들의 만남에 따른 미래의 인간들의 생산을 돕는 자동차를 금지하겠습니까? 당연히 담배를 금지하죠. 금지할 수만 있으면. 어떻게 자동차랑 담배를 비교해요.

그런데 이런 식의 질문이 “노 스모킹”이란 이 영화에도 나와요.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게 막 악이고 폭력이라고. 한마디로 생활이 불가한 중독 상태다. 내가 담배를 안 피우면 존재를 못 하는데, 그걸 중독으로서 인정도 못 하는데다가, 인정한다 하더라도 중독을 멈출 의향이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노 스모킹”에서는 이 주인공 K가 어느 정도로 양아치냐 하면, 담배를 끊었다는 사람 입에다가 담배를 막 넣으려고 해요. 완전 양아치. 그러고서는 막 자기 엄마랑 아빠가 헤어진 것 때문에 자기는 절대 담배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엄마는 아빠를 버리고 아빠는 엄마를 버렸는데 자기는 담배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정말이지 이 사람한테 담배란 자기 존재의 일부인 거죠.

그런데 이때 중요한 건, 저는 우리가 모든 중독을 끊을 수는 없고 끊을 필요도 없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경우 미화되는 중독이 각종 관계 중독입니다. 가족이 없으면 못 산다든지. 연인이 없으면 못 산다든지. 반려동물이 없으면 못 산다든지. 그런데 이것이 중독이라고 해서 그러면 끊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여기는 이유가, 이러한 중독이 사는 데 별로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정의하는 망상에 해당이 안 돼요. 오히려 이러한 중독은, 아주 특별히 문제적인 관계가 아닌 한, 내 삶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별로 끊을 필요가 없단 거죠. 중독 자체를 피하자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담배는, 다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어떠한가? 중독인 데다가 완전히 내 삶을 말아먹고, 내 삶만 말아먹으면 다행인데 주변인들의 삶도 말아먹는다. 실제 세상에서는 이 주변인의 말아먹음이 좀 간접적이죠. 말 그대로 간접흡연에서 그칩니다. 그런데 “노 스모킹”에서는 어떠한가? 손가락 절단. 무슨 막 배 가르기. 납치. 청력 상실. 이 지경까지 갑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흡연은 살인마라고, 매일 천 명이 담배를 끊는데, 그 이유가 죽어서라고 말하면서 시작을 하긴 하지만, K와 그 주변 인물들이 겪는 일이 너무 정말… 극단의, 광란의, 미친 그로테스크의 수준이기 때문에, 저는 이 영화를 뭔가… 금연 캠페인 영화로 보진 않았습니다. 심각한 중독에 대한 내용인 와중에, 유머가 명백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유머 없이 정말이지 중독에 관한 영화는 저는 즐겨 보지 않습니다. 즐겨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고서 후회해요. 예를 들어, “Requiem for a dream”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레퀴엠”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저는 연기를 보려고 이 영화를 봤다가 후회했다. 연기는 좋았어요. 영화 자체도 아마, 뭐랄까, 영화적으로 작품성이 있다고 평가를 받는 것 같아요. 그런데 플롯이 너무 심각하게 울적하기 때문에, 후회했다.

반면 “노 스모킹”은 명백히 웃긴 측면이 있어요. 난데없는 슬로우모션이 사용되고, 과장되게 드라마틱한 음악과 그에 어울리는 연기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또 계속 그렇게 과장되면 그 과장의 효과가 사라지죠. 그래서 밀당을 하는데, 저는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 및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분의 이미지가 한몫합니다. 저는 이 배우분을 처음 봤고, 처음 들어봤어요. 존 아브라함이라는 분이신데, 너무. 와. 피지컬이 어마어마합니다. 키가 굉장히 크시고 잘생기셨는데, 그래서 처음 봤고 처음 들어봤어도, 그 사람의 이미지가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러한 피지컬에다가 캐릭터를 붙이는데, 이 캐릭터가…  너무 재수가 없는 캐릭터 있죠. 자기애 쩔고. 막 거울 보면서 근육 관찰하면서 담배 피우는. 집에서 아내가 피우지 말라는데 그 얼굴에 대고 담배 연기를 뿜어요.

근데 이 모든 게 웃깁니다. 이것이 만약 진지하게 나왔으면 화만 나는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고, 너무 저는 웃겼어요.


아까 카프카 얘기를 했는데, 사실 “노 스모킹”은 스티븐 킹 님의 단편 소설을 기반으로 했다고 하네요. “Quitters, Inc.” 금연자 주식회사, 요런 느낌이네요.

그 단편 소설에도 “노 스모킹”에서와 같이 어마무시한 방법으로 클라이언트들을 금연시키는 재활프로그램의 지배자가 등장하는 모양인데, “노 스모킹”에서는 그 지배자의 이름이 바바 벵갈리입니다. 강력하죠, 이름이?

영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냐 하면, 다단계처럼, 재활프로그램에 먼저 갔던 사람들이 K를 구슬려서 재활프로그램에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재활프로그램의 헤드쿼터? 본부 같은 곳 바깥, 그냥 도시 곳곳에서도 지켜보는 눈이 있어요. 스파이가 있는 거예요.

이 영화에서 참 어떻게 결정할 수가 없는 부분은, K가 실제로 참 강제적인 재활프로그램이 필요한 인간이긴 한데, 그 재활프로그램이 진짜 잔인하다는 점입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담배를 피워요. 심지어 같이 탔던 사람이 그만 피우라고 하니까 그 사람더러 계단을 쓰라고 해요. 그리고 영화는 또 좀 웃기니까, 그 다른 사람이 실제로 내려요. 웃기죠. 쟤가 담배 피우는데 내가 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나? 그런데 이 영화의 세계관 내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아무튼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병을 병으로 다룬다는 점입니다.

저는 수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알코올중독을 알코올중독으로 다루지 않는 게 좀 충격이거든요. 심지어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뭐, 가장 충격적이어도 대단한 충격은 아니고, 비교적 충격적이라는 건데요, 꽤 최근의 어떤 드라마에서 알코올중독이 병으로 나오는 듯해서 신선했는데, 갑자기 드라마 중간쯤부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돌변하는 거예요. 이 사람은 알코올중독이라 병원까지 다니는 사람인데도, 갑자기 회식하면서 술을 마시더라고요. 술 PPL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처음엔 의아했어요. 이 정도로 술 PPL이 들어갔는데 알코올중독을 알코올중독으로 다룰 수 있다니, 그 회사에 대한 리스펙이 생기려고 했는데, 생기려다 말았다. 뭔가 이… 알코올중독인데 아예 아닌 것처럼 나오는 드라마라든지, 알코올중독이라 문제인데 그걸 해결하는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든지, 이런 경우는 많이 봤는데, 알코올중독을 얘기하다가 그렇게 하찮게 만들어버리는 드라마는 처음 봤어가지고, 어… 그만 봤어요. 좀 충격적이어가지고.

그 중독 때문에 그 주인공 인생이 망해가는데도 갑자기 막 가볍게 PPL 챙기는 그 모습에. 와우. 정말. 그냥 술을 마시는 게 낫지. 그렇게 많이 마시는 게 정상인 줄 알고 마시거나. 아니면 뭐, 양에 상관없이 실생활에 문제가 없을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끊으면 단기적으로라도 더 문제가 생길 테니 끊으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본인도 끊기도 애매하고 끊을 마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다 문제인 것처럼 해놓더니 갑자기 PPL이 치고 들어오더라.

하여간에 그건 그거고.

“노 스모킹”에서는 다행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별 미친 일이 다 벌어지는데 그 일만은 안 벌어진다. 중독을 중독으로 묘사하고 다 밑밥 깔아놓고서는 갑자기 “중독 별거 아님 속았지롱”을 시전하지는 않는다.

K는 결국 부인이 이혼하자고 하니까 재활프로그램에 갑니다. 아까 언급했듯이, 엄마 아빠의 이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던가? 엄마 아빠의 잦은 이혼, 뭐 이혼했다가 다시 결혼했다가 또 이혼했다던가? 그것을 담배와 비교했잖아요. 이 사람의 존재가 담배에 의존해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 점이 확실했던 만큼, K 본인의 결혼이 위기에 처하자, 담배를 끊기로 선택을 하긴 하더라고요. 결혼이랑 담배 둘 중 하나는 끊어야 하는데, 담배를 이 정도로 피우게 된 원인이 엄마 아빠의 잦은 이혼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K는, 적어도 이 점에서는 매우 합당하게 행동을 하는 거죠. 그리고 여기서 합당하다 함은, K 본인의 세계관에 합당하게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아주 명확해요. 결혼이랑 담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결혼을 고르겠다.

그래서 재활프로그램에 들어가는데, 아주 무서운 다단계예요. 새로운 사람을 성공적으로 재활프로그램에 들여보내야지만 원래부터 프로그램에 있던 사람이 자기 손가락을 돌려받는 구조입니다. 네. 무슨 말이냐 하면요, 원래 프로그램에 있던 사람이 금연 약속을 어길 시 손가락이 잘리는데, 그 손가락을 돌려받으려면 다른 녀석을 낚아 와야 한다. 무서운 다단계다. 그런데 무서운 다단계인 와중에, 다단계 중에서도 꿀이득인 다단계가 아닌가? 일단 본인이 필요성에 의하여 중독을 끊겠다고 온 건데, 이왕이면 중독을 확실히 끊도록 해주는 게 재활프로그램 측에서 일을 잘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K가 재활프로그램에 들어간단 말이죠. 그런데 이 연출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K는 평상시에 아내와 함께 굉장히 고급 아파트의 높은 층에 사는데, 재활프로그램은 아주 번잡하고 낙후한 지역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로 지하로 내려가요.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냐고 K가 물어보면, 동네 사람들이 “더 내려가 더 더 더 더”라고 말해줍니다.

이 수직적 공간감, 이… 정말… 자발적으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아름답습니다. 그 지옥으로 떨어지는 가운데에 정교한 균형이 있어서, 위태롭거나 하진 않아요.

게다가 마침내 바닥까지 가면, 어떤 낡은 카펫 공장에 엄청난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관리되는 재활프로그램의 문지기가 등장합니다. 킹좋지 않습니까 여러분? 제가 좋아하는 조합입니다. 매우 낡은 것들과 최첨단의 조화.

이런 식으로, 영화가 아주 극명해요. 대조도 극명하고, 인간군상도 극명하고. 그리고 특유의 리듬이 있는 것 같았어요. 유머러스한 리듬. 빠르게 움직이다가도 뻘하게 웃긴 쉼표가 있고. 옷을 후줄그레하게 입은 사람들 사이의 양복 빼입은 K라든지. K는 엄청 키가 큰데, 그 옆에 뻘쭘하게 조용히 앉아 있는 매우 작은 사람이라든지.

그리고 막 난데없이 비명소리가 들리는데 K가 당황하는 모습이 어찌나 제가 보기에 즐겁던지. 이 녀석아. 얘는 좀. 얘는 좀 이런 재활프로그램이 필요한 게 아닌가.

약간 앨리스 인 원더랜드 흡연판 느낌이에요. 벽에 그로테스크한 조각이 있고.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합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 재활프로그램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와중에, 아래로 아래로, 토끼굴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바바 벵갈리가 계약서라고 가져오는 것이 거대한 책이에요. 진짜로 거대한 책. K의 몸통만 한 책. 그런데 K가 그걸 읽기 싫다고 하니까 그 계약서의 요약 버전을 가져옵니다. 그것은 또 엄청 짧아요. K 이 녀석은 뭘 믿고 몸통만 하던 계약서를 1장짜리로 요약한 데에다 싸인을 해 이 녀석아.

싸인을 요구하는 재활프로그램 측 녀석들도 너무 재밌어요. 마치 손가락 잘라가지고 다단계 협박 치료를 하는 애들이 합법 조직인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계약서고 뭐고 결국에는 막 끌고 간다고요.


이런 영화인데. 아 이 영화 저는 너무 재밌어가지고, 여러분? 보세요. 재밌어요. 지금까지 얘기한 게 영화의 초반 3분의 1 정도였고요, 남은 부분도 재밌습니다. 유일한 단점이 제공처가 많이 없는 듯하다는 점입니다. 저는 구글 영화에서 빌려 봤어요.

아무튼, 영화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또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펼쳐집니다. 예를 들어, 비디오테이프가 가득한 방이 있는데, 그 방에 들어가는 과정에 영화 화면 전체에 알 수 없는 워프가 생겨나요. 이 워프는 이전에도 여러 번 생겨났던 건데, 효과음도 마치 외계인이 지구로 순간이동하면서 등장할 때 나올 것 같은 효과음입니다. 뭔가 이… 녹화된 여러 감시 영상들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영화 자체도 녹화된 감시 영상이라는 느낌도 있습니다. 나도 지금 바바 벵갈리의 수많은 스파이들에 의해 감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이 바바 벵갈리는 담배 피우면 가족을 해하겠다고 K를 협박합니다. 어떻게 보면 바바 벵갈리는 참 정정당당한 녀석이에요. 대놓고 협박하고, 대놓고 계약서 쓰라고 하고 그래요. 심지어 히틀러와 자기는 친구였다면서, 가스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광적으로 당당해요. 고문에 협박에.

근데 여기서 참 신기한 일이 발생합니다. 협박이라는 건, 아직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협박이 성립하잖아요? 근데 그 협박이 실현된 장면을 이미 비디오로 촬영한 것을 티비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런 게 너무 좋아요. 말이 안 되잖아요. 미래를 현실로 가져와서 보여준다는 게. 심지어 그 현재의 순간순간이 지나가면서 미래는 순식간에 과거가 되잖아요. 근데 영화의 연출은 이 말이 안 되는 현상을 너무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너무 웃긴 상황들이 있어가지고, 금연 장려 영화나 흡연자 협박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금연 캠페인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한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요. 누가 금연 홍보 영화 보고 싶어요? 저도 안 보고 싶어요. 저는 금연 캠페인에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냥 제가 담배 근처에 있기 싫은 거지, 이미 피우고 있는 중독된 금연자를 끊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래서 금연 홍보 영화에 관심이 없는데, 영화는 바바 벵갈리의 재활프로그램을 아주 극단적으로 폭력적으로 만들어서, 어이가 없어서 웃길 지경까지 만듦으로써 이 영화가 금연 자체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음을 보여준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음악 선곡이 다 의미롭습니다. 뮤지컬 같은? 발리우드 같은?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춤추면서 노래하는 장면들이 나와서요. 그런데 그것이 극을 전개하진 않고요, 이미 전개 중인 극에 아주 찐한 물감처럼 얹어지는 느낌이에요. 제가 느끼기에 인도풍이라고 해야 하나? 제가 인도 음악을 몰라가지고, 막연하게 인도풍이라고 느껴지는 그런 음악도 나오는데, 영화랑 너무 잘 어울려요. 몽환적이에요.

아무튼. 이상한 재활프로그램에 꼬이게 되는 K. 그리고 K를 꼬신 K의 친구. 이 녀석들 참. 서로서로 친구라는 사람들을 줄줄이 이 재활프로그램에 끌어들이는데, 담배 피울 때도 친구 따라 피우더니, 또한 친구를 따라 피우게 하더니, 재활프로그램에도 친구 따라 들어가고, 재활프로그램의 협박과 실제 공격이 너무 무서워서 담배를 혼자 끊으려니 억울하니까 자기 회사의 모든 직원을 강제 금연시키는 K라는 남자. 정말이지 재수 없는데 아주 일관성 있고, 자신의 세계관 내에서 너무나 말이 되는지라, 격한 비호감을 통해 호감이 되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끝에 가서 K가 모든 걸 잃은 듯한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너무 정말 극단적이고… 극단적으로 한심한데 너무 열심이어가지고 응원하고 싶을 지경인, 그런 한심함입니다. 이 존 아브라함이라는 배우분이 잘생기셔가지고 이 캐릭터가 너무 찰떡인 것 같아요. 허우대 멀쩡한데 왜 그렇게 사냐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전형이랄까. 세상은 공평한 건가, 싶은.

아무튼, 재활프로그램과 한 계약서 상 유일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때가 있어요. 이것도 너무 웃기죠. 무슨 이런 설정이. 하여간에 그 때에 담배를 필 수 있는 공간에 있기 위해 K는 드디어 일반적인 옷을 입습니다. 이전까지는 거의 영화 내내 슈트 차림 아니면 반나체였거든요. 반나체인 경우는 자기가 거울 속 자기 모습에 흡족해할 때고요. 슈트 차림은 거의 무슨 유니폼처럼, 내지는 스파이더맨 슈트처럼 맨날 입고 다니는 옷차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약서에서 말하는 그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시공간으로 가려는 그 미션임파서블을 수행하려는 때에, 드디어 K가 청바지에 스웨터, 캡모자를 쓰고 등장합니다. 어찌나 웃기면서 슬프던지.

그리고 이 시퀀스는 좀 짜릿했어요. 여기에 좀 충격적인 씬이 나와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에 관련하여. 요거 아마 직접 보시는 게 훨씬 더 쇼크 밸류가 클 것 같긴 한데. 아임 드리밍은 어차피 전부 스포일러니까 그냥 말씀드릴게요. 혹시 이 스포일러만큼은 듣고 싶지 않으시면 2분만 넘겨주세요. 자, 갑니다.

무슨 장면이 나오냐면요, 그 시공간에서 K가 담배를 피우는데, 거기에 사람이 많습니다. 일단 K는 바바 벵갈리의 감시자들에게 질린 터라, 약간은 안심이 되죠. 이 군중 속에서 몰래 담배 피우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잖아요. 그런데 담배가 허해진 그 장소에서 담배가 허해진 그 때를 기다리다가 K가 담배를 피우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거예요.

이게 뭐겠습니까. 바바 벵갈리의 미친 재활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 이렇게 많은 거예요. 거의 무슨 흡연도시. 범죄도시가 아니라 흡연도시고. 완전 뭐. 부당흡연. 흡연거래. 흡연자의 기억법. 흡연할 때 떠나라. 흡연자들. 그런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이 연출이 아주 오싹하더라고요 저는. 매우 짜릿했다.


이런 영화입니다. 지난 에피소드의 영화를 보고, 이번 에피소드의 영화에서도 느낀 건데, 역시나 단 하나의 매력적인 주인공이 끌고 가는 강력한 스토리의 힘을 이기기는 어렵다. 인간에게 가장 본능적으로 매력적인 형태의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수 시점인 이야기 말고, 하나의 시점, 하나의 주인공, 하나의 이야기인 경우.

 왜냐하면 우리는 각자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고 싶기 때문에, 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아무래도 하나의 주인공이 끌어가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 같아요.

앙상블 캐스트는 좀 마무리도 어렵고 말이죠. 앙상블 캐스트는 대개 시작할 땐 좋아요. 재밌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사람 중 약간이나마 더 주인공인 캐릭터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만약 정말 누가 이길지 모르겠는, “왕좌의 게임” 같은 형태이면 어떻게 되는가? 대개 끝이 안 나거나, 끝이 뒤죽박죽이다. 창작자에게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형태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앙상블 캐스트는요. 왜냐하면 엔딩의 희열은 주인공의 흥망에 달려 있는데, 흥망할 주인공이 마땅히 없는 거야. 굉장히 어렵죠.

그런데 “노 스모킹”은 명확하다. 극명확. 극비호감. 극호감. 극테크놀로지. 극낙후. 극고층펜트하우스. 극지하층지옥. 이런 식이라가지고. 아, 시원해요.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인 듯한 엔딩이 나옵니다. 근데 이 상황에서도 그 경계선이 분명한 거예요. 뒤섞인 가운데에도 요소요소의 경계선이 분명하더라고요. 그래서 현실과 환상이 섞인 그 자체가 혼란인 건 알겠으나 그 혼란이 막 관객인 우리가 이해를 못 해서 생기는 혼란인 건 아니에요. 혼란이라는 걸 안 혼란스럽게 알아서 생기는 혼란이더라고요.

이것은 맨날 거울만 보던 과거의 K를 현재의 완전히 망가진 K가 반대편에서 보는 장면입니다. 마치 취조실처럼 한쪽만 거울이고 한쪽은 창문 같은 구조의 유리가 있거든요. 그래서 과거의 K는 자기가 몸매 뽐내면서 거울을 본다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K는 반대편이 다 보이는 창문을 통해 그 자신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겁니다.

이런 장면들이 많아요. 꿈 같은 장면들.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도 나오고, 화형에 버금가는 형태의 징벌도 나옵니다. 또한, 꿈에서 몇 번을 깨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이. 꿈에서 깨었는데 또 꿈이더라. 아임 드리밍의 정신에 부합하는 전개가 나옵니다.

아, 그리고요, 영화 끝에 에필로그가 있으니 끝까지 보셔야 합니다.

음… 네. 재활프로그램이 엄청 비싸다고 K가 엄청 화내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거 보면, 돈값 하는 거 같아요. 효과보장 확실해요. 시설이 엄청나요. 그리고 감시 프로그램의 감시자들이 엄청나요. 스파이들이 도시 곳곳에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나 실질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데, 이 정도 돈은 내야 한다.

그리고 좀 랜덤하게, 스모크 챌린지가 생각나더라고요. 혹시 아십니까, 여러분? 스모크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춤을 추는 챌린지가 있었어요. 노래 제목이 Smoke고, 가사에 “내 입김은 태풍”이라는 말도 나오고, “꽁초”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고, 효과음으로 라이터 소리가 나와요. 이런 식으로 명백히 흡연에 대한 노래인데, 이런 가사도 나옵니다. “I’m gonna smoke you up, I’ma smoke you”라는 내용이 나와요. Smoke는 슬랭으로는 저 녀석을 총 쏴 죽여버리겠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 담배이면서도 총이 연상되는 그런 가사예요. 아 춤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개코님 목소리를 워낙 좋아하고요. 영지님을 좋아합니다. 저는 너무… 영지님 여신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멋있어요. 그래서 이 노래를 여러 번 들었는데, “노 스모킹”을 보면서 이 노래가 생각나더라고요. 이 영화에도 분명 담배이면서도 총이 나와요. 불붙는 이미지들과 성적인 연관성도 나오고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씬들이 뮤직비디오 같은데, 이때 난데없이 꿀렁꿀렁 섹시치명 춤을 추는 게 아니고, 영화 내내 이어졌던,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치명성으로 마무리하면서도, 뭐랄까, 참 말 그대로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섹시치명이기 때문에, 아마 관객들이 일찍 영화관을 떠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싶은 그러한 엔딩 크레딧이 나옵니다. 에필로그와 별개로 뮤비 같은 엔딩 크레딧이 있어요.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재밌는 영화였다. 한아임 무척 흡족. 하. 이러한 흡족함은 오로지 재밌는 얘기를 흡수하고 나서만 느낄 수 있는 흡족함이다. 이것은 내가 내 인생에서 뭘 잘해서 느끼는 흡족함과 다르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것을 목격한 흡족함이다. 이건 마치, 여러분? 땀을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더워서 날 수도 있고, 운동해서 날 수도 있고, 사우나 해서 날 수도 있고. 이 모든 방법의 땀은 다 제각각의 매력이 있습니다. 더워서 운동을 안 한다? 더워서 사우나를 안 한다? 상상을 할 수가 없지. 사우나는 사우나고 운동은 운동이고 더운 건 더운 거지. 약간 그런 것과 같습니다.

내가 내 인생 사는 건 내 인생 사는 거고, 픽션에는 픽션만이 줄 수 있는 게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바바 벵갈리의 재활프로그램 들어가고 싶지 않잖아요. 그리고 그보다도 더 무엇보다, K와 K의 무리와 같은 친구들, 하, 정말이지 혼자 죽을 수 없으니까 친구를 아주 바닥까지 같이 끌고 가는 그런 친구와 있고 싶지 않죠. 친구가 없는 게 낫지. 재활프로그램이 낫지. 그러니 픽션을 보면 된다. 재밌다. 매우 추천. “노 스모킹.” 한아임 인도 영화 좋아한다.

다음 주에는 여러분, 이번 시즌의 마지막 영화를 다룰 거예요. 마지막 인도 영화, “빙 사이러스”입니다. 그러면 “빙 사이러스” 다음엔 뭐 할 거냐? 이제 드디어 누아르 어바니즘 책 그 자체에 들어갑니다. 드디어 들어간다. 휴. 처음에 이 시즌 시작할 때는, 책이 더 일찍 나올 줄 알고 뭐 영화랑 책 챕터랑 번갈아 다룬다는 둥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근데 괜히 슈방구처럼 복잡하게 설명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참 내. 전혀 필요 없는 복잡한 설명이었어요.

왜냐하면요. 범고래출판사가 인기 좋습니다. 네. 저번에 얘기했던 미술책, 정확히는 미술 에세이집, <(보이지 않는) 협력자들> 요 책을 범고래출판사에서 낸다고 잠깐 언급했었죠. 그런데 그다음에 또, 협업 제안이 들어와가지고 그 책도 낼 것인데, 이에 대한 확정된 정보는 아직 없습니다. 하여간에 인기가 좋은 범고래출판사이기 때문에 누아르 어바니즘의 출판이 약간씩 밀렸고, 그러면서 우리는 누아르 어바니즘에서 언급된 영화의 적정량을 본 것 같다. 언급된 영화를 다 보려면 내후년까지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다음 주의 “빙 사이러스”를 마지막으로 영화 보기 파트는 이번 시즌에서는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런데 아무튼 누아르 어바니즘은 이제 출판이 됩니다. 다만 제가 이 에피소드를 좀 미리 녹음하고 있는 관계로, 정확한 출판 날짜 등등을 아직 몰라요. 그건 제가 확정되는 대로 미니 에피소드로 올리겠습니다. 이번 에피소드 전에 이미 올라갔을 수도 있고요, 이번 에피소드 다음에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음 에피소드 다음에 올라갈 수도 있고요. 그것은 아직 모른다.

그러면, 제가 왜 이렇게 미리 녹음하는가? 여러분? 제가 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갔던 건 코로나 전입니다, 여러분. 무슨 한 백만 년 지난 것 같은데, 믿기 어렵지만 약 4년 반밖에 안 됐네요.

이번에 한국에 가서 좀 길게 있을 예정이라, 미리미리 녹음하고 있습니다. 누아르 어바니즘 출판과 겹치니, 각종 여러 가지 뭔가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뭔가를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합니다.

일단 다음 주, “빙 사이러스.” 한아임이 좋아하는 인도 영화. 다루겠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 『누아르 어바니즘: 현대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들』

모든 음악

Opening

  • The Play – Instrumental Version – Eli Benacot

Within episode

  • Icarus – Lonely Earth – Instrumental Version
  • Baazi – Dystopia
  • Flint – Cyberia
  • Or Chausha – Void

Closing

  • St. Charles – Mark Yencheske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2024 한아임

소개

✨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