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1] 가… 족 같은 관계에 대하여, “빙 사이러스”(Being Cyrus)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 이번 시즌의 영화 구간이 끝이 납니다. 마지막 영화, “빙 사이러스”인데, 특히나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정말 안 중요한데, 이 이야기에서는 제법 스포일러가 꽤 큰 역할을 합니다. 반전에 반전이 반복되는 이 영화의 각종 스포일러가 이 에피소드에 나오고요, “누아르 어바니즘” 책에도 모든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는 스포일러를 먼저 알고 영화를 봤는데요,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줄거리만 듣는 거랑 실제로 영화를 보는 건 다르니까요.

그럼 오늘의 수다, 바로 시작할게요.


영화는 좀 행복행복한 평화로운 음악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요 분위기 아마 많은 분들이 아실 거예요. 전에도 말했듯이, 한국은 스릴러 영화 강국 아닙니까? 한국 영화에 익숙하신 분들, 요 분위기에도 익숙하실 것 같아요. 휘파람 불 것처럼 시작해서는 피가 낭자해지는 그런 이야기.

“빙 사이러스”는 피가 낭자하다고까지 묘사하기에는 피가 그다지 많이 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나 꽤 나온다. 살해 장면이 대놓고 나온다.

하지만, 아무튼, 시작은 행복행복하고 평화롭다.

한때 유명했던 늙은 조각가와 그의 부인이 사는 외딴곳의 집에 사이러스라는 젊은 남자가 침투해 들어갑니다. 극 중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여요.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고, 애인도 없는 듯하고, 부모와 같이 살지도 않는, 딱 그, 혼자 살아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그 나이의 남자로 사이러스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가 처음에 이 늙은 조각가와 그의 부인이 사는 집에 침투를 하는데도, 침투 같지가 않습니다. 앞문으로 버젓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들어가느냐? 그냥 어떤 젊은이가 조각을 좀 배우러 잠시 그 집에서 지내는, 무해한 상황인 것처럼 위장합니다.

그러나 관객인 우리는 이것이 위장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 전체에 사이러스의 내레이션이 드리워져 있고, 그 내레이션은 사이러스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을 처음부터 암시해 주거든요. 그래서 도입부의 행복행복하고 평화로운 음악도 관객인 우리에게는 마냥 안심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인물들인 조각가와 그의 부인은 실제로 사이러스의 무해함을 믿습니다. 얼마나 어이없게 무해하느냐 하면, 이 부인이 사이러스한테 엄청 들이대는 것도 무해한 것처럼 보여요. 이 부인은 참, 부인이라고밖에는 설명하기가 애매한 것이, 하는 일이 없어요. 사실 조각가 양반도 하는 일이 없어요. 조각을 안 하거든요. 그런데 이 조각가 양반은 왕년에는 조각을 실제로 해서 인기도 좀 끌었던 사람이라서 조각가라고 부르는 거고요. 그의 부인은 아무 직업이 없어요. 돈을 받는 직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실제로 하는 일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주장을 하는 듯하는 뉘앙스를 풍기기는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해요. 그래서 이 사람은 아마 이 조각가와 결혼하기 전에는 누군가의 딸이나 누나 혹은 언니, 동생으로 묘사되었을 것 같고, 이제는 조각가의 부인인, 그런 인물입니다. 그 와중에 그런데 그조차 애매하단 말이죠. 왜냐하면, 조각가를 두고 사이러스한테 들이대니까. 그러면 이제는 조각가의 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부인 겸 다른 남자한테 들이대는 사람이라고 이 인물의 타이틀을 불러줘야 하는지. 그런 사람인데, 그것이 무해한 듯 비춰진다는 것이 이 영화가 초반부부터 보여주는 분위기 설정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푼수예요. 굉장히 무료해하고. 조각가였는데 이제 조각가도 아니지만 그냥 뭐라고 부르기 애매한 조각가 남편을 둔 이 여자는 심심해가지고 사이러스한테 들이대는 거예요.

그런데 또 돈은 넘쳐나요. 이럴 수 있죠. 일을 해야 돈이 있다는 생각은 미신입니다. 여러분? 그 망상에서 자유로워질수록 우리에게 유리해집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무료하게 살진 않았으면 좋겠죠. 뭔가 재미난 일을 하면 좋겠지만, 하여간에 일을 괴롭게 많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돈이 많아지는 것은 확실히 미신이고 망상이다. 그것을 이 참 심심해하는 조각가 커플이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점을 제가 이렇게 공들여서 설명하는 이유는요, 이렇게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무료하고 지루하고 그런데 빠져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 영화 메시지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히나 중요한 건,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돈이 없는 상황에서는요. 이야기가 픽션이든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이든, 돈을 탓하기가 쉽습니다. 단지 돈이 없어서 부부 사이가 안 좋다고 여기고, 단지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걸 못 한다고 여기고, 단지 돈이 없어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여기는 거예요. 그러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측면도 있겠습니다만, 절대, 딱 그 돈, 그 액수의 부재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진 않습니다. 그런데도 돈을 탓하기가 쉬워요. 모든 문제를 돈에 탓하는 것이 여러 사회의 패턴인 듯하기도 하거니와, 돈이 없는 것이 마치 선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패턴도 있어서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없는데. 잘 보면,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돈을 들이부어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예요. 예를 들어 돈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관료들이 부패해서 중간에 뇌물을 빼간다든지 말이죠. 돈이 문제인 경우는 없습니다. 돈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에너지예요. 문제가 있다면, 그건 항상 돈을 상대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데, “빙 사이러스”에 나오는 조각가 커플은 돈이 많다. 그런데 돈이 많아도 사이 안 좋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 얘기 들으신 적 없으십니까? 돈이 없어서 부부 사이가 안 좋다고. 그런데 돈 있는 부부도 사이 안 좋아요. 돈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고, 부부가 그냥 사이가 안 좋은 거예요. 돈이 없어도 사이좋을 부부는 사이가 좋습니다. 꼭 돈 액수가 많아야지만 서로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치면 돈이 많은 국가에 사는 부부들은 압도적으로 잘 살고 돈이 없는 국가에 사는 부부들은 압도적으로 사이가 안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돈의 넘쳐남. 그 와중에 이 조각가 커플의 사이 안 좋음. 그리고 그 사이 안 좋음의 양상이 서로를 대놓고 증오하는 것도 아닌 수동공격적 양상이라는 점이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돈이 넘쳐나기 때문에 사이러스가 이 가족에게 침투한 것으로 밝혀지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만약 이 커플, 그리고 나아가 이 커플의 다른 가족 구성원들, 음, 이들이 자식은 없는데, 아버지며 형제, 이런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떠냐 하면요, 대놓고 싸울 예의조차 없는 사람들로 나옵니다. 그래서 아주 그냥 잘근잘근 야금야금 무시하고 경멸하는데, 이것이 참, 이것이 한마디로, 근래에 말하는 “가-족 같은”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 “가-족 같은” 관계가 영화의 핵심입니다.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참 “가-족 같은” 일이 벌어지는지. 가족이 미명이라는 것 자체가 참 이상한데 말입니다. 가족이 무슨 신성한 것처럼 당연시되는 경우가 여러 사회에 걸쳐서 많은 것 같은데, 아마 그래야지 사회가 굴러가서 그런 것 같아요. 이… 존재가 선하다고 여기는 그 사상 때문인지, 이런 얘기도 하잖아요. “가족이 없으면, 애를 안 낳으면, 사람이 안 생기면 망하잖아. 나라가 망하잖아.” 이런 얘기를 실제로 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죠. 근데 망하면 어떤데요? 망하면 망하는 거지. 사람이 생기는 건 상관이 없습니다만, 사람이 그냥 생겨나는 거하고, 안 망하려고 사람을 막 만들어내야 한다고 여기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완전히 달라서, 그렇게 해서 “당연히 애 낳아야지.” “당연히 결혼해야지.” “가족은 당연히 중요하지.” 이렇게 주장해서 어떻게 망할 수 있는지의 한 단면을 이 영화가 보여줍니다.

가족이 싫으면 가족을 안 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건데, 어차피 완전히 숨길 수도 없을 정도로 서로를 경멸하고 무시하면서 가족의 타이틀을 달고 사는 이 인물들이 아주 잘 보여줘요. 영화에 가족사진, 결혼이라는 개념, 그리고 또한 남매, 형제, 자매 등의 개념이 다양하게 나옵니다. 남남끼리 결혼해서 분명히 어느 정도의 선택으로 인하여 가족이 된 경우. 자식이거나 남매이거나 부모라서 선택이 아니라고 주장할 만한 경우의 가족. 그러나 결국에는, 선택이 아니라고 마냥 주장할 것이 아니며,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라고 불렸다 한들, 그것이 ‘나’라는 인물에게 짐이 되면 내가 그 미명을 떠받들어줘야 할 아무 의무가 없는 게 아니냐는 뉘앙스의 엔딩이 나옵니다.

이것이 꽤 혁신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거 말입니다. 뭔가가 그 자체로 좋다고 여겨지는 경우. 가족이라든지. 또 하나의 예시가, 부모입니다. 부모가 신성시되는 경우.

뭐, 대단히 좋은 부모도 있겠죠? 그런데 부모라고 다 좋은 거 아닙니다. 당연히 아닐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생물학적으로 거의 제한이 없잖아요. 이 세상의 대부분의 아무나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부 아니면 모 둘 중 하나가 아무렇게나 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중립이란 게 있다면 그것이 아마 중립 현실일 거예요.

그런데 부모가 무조건 좋다고 여기는 사상이 나쁜 부모보다 더 트라우마적인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요, 예를 들어 아이가 부모한테 학대를 당했어요. 그러면 학대 그 자체도 미칠 노릇인데, 절대 나를 학대하면 안 됐을 사람한테 학대를 당했다는 게 더 트라우마적인 거란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렇다고 부모가 애를 학대해도 된단 얘긴가? 아니죠.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한테 맞는 거보다 부모한테 맞는 게 더 트라우마잖아요. 그건 왜 그럴까? 부모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된다는 억울함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억울할 권리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잘 구분해서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누구한테 공격을 당했을 때, 공격당한 그 자체의 아픔은 어쩔 수 없지만, 나를 공격하면 안 되는 상대한테 공격당했다는 아픔은 꼭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아픔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나를 공격하면 안 되는 상대’가 부모일 경우에 특히나 트라우마적인 게 뭐냐 하면, 아이는 일단 크기가 작죠. 인간 아이들은 전부 부모보다 크기가 작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생존을 의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나를 학대하면 안 되는데 내가 학대당했다’라고 아이가 느끼게 되면, 학대 그 자체보다도 더 큰 문제는, 아이가 이 이야기가 말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잖아요. “저자가 나를 학대하면 안 되는데 내가 학대당했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저자에게 생존을 의존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에 학대당한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됩니까? “내가 뭔가 잘못됐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애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하기 위하여, “나는 잘못된 존재다”라는 이야기를 쓰게 된다고요. 이 요소 요소들이 말이 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학대하면 안 되는 존재, 게다가 내가 생존을 의존하는, 내 세계에서는 신적인 부모라는 존재가 나를 학대했다면, 그것이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나는 학대당할 만한 존재였다는 것.

이것이 실제로 학대당한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빙 사이러스”에서는 사이러스가 고아로 나와요. 그래서 부모한테 직접적인 학대를 받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데, 고아원에서 학대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양면적이에요. 이 “나는 잘못된 존재다”라는 이야기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는가.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그러니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즉, 원래가 부모란 그런 것이고 원래가 양육자란 나에게 그런 야만적인 신 같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인 것이고, 따라서 양육자는 고귀한 게 맞는데, 동시에 나를 때리면 안 되는 존재이지만, 그들이 나를 때렸으니 나는 굉장히 잘못된 존재이되, 그걸 내가 마주하긴 싫으니까 세상은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죠? 요 패턴 한번 잘 따라가 보시면 현실에서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린이 학대가 아니더라도, 회사에서 상사한테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든지, 하여간에 나보다 권력을 많이 쥔 사람이 나를 괴롭힐 때 내가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 패턴 중 하나가 이거에요.

저 사람이 나보다 힘이 많다.

그런데 저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 고귀하다고 여겨진다다. 부모라든지, 나한테 돈을 주는 상사라든지, 기타 등등.

따라서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건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다.

그런데 여기서 갈라질 수 있다는 거죠.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든가. 아니면 그것을 보기가 너무 힘겨우니까 “그럴 리가 없어”라고 하며, 나와 타인에게 벌어지는 각종 폭력이 당연하다고 믿으면서 사는 경우. 남들도 다 부모한테 맞고 사는 줄 안다든지. 남들도 다 상사한테 욕먹으면서 회사 다니는 줄 안다든지. 혹은 그보다는 남들도 다 이러하다고 여겨야지만 결딜 수 있는 경우. 남들도 그런다고 여기지 않으면 내 문제가 된다고 여겨서.

사이러스는 약간… 사이러스의 심리 상태가 영화에서 꿈, 그리고 그의 직접적인 폭력을 통해 드러나는데, 이 여러 이야기들이 뒤섞인 경우예요. 그래서 사이러스는 겉보기에는 평소에는 폭력적이지 않은데, 폭력을 아주 아무렇지 않게 쓰기도 합니다. 뒤에 가서 살인을 할 때, 아주 차갑게 살인을 해요. 그냥 당연하게, 죽이기로 했으니까 죽이는, 그런 계획된 살인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면 사이러스가 그렇다고 폭력을 즐기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이러스라는 인물의 아주 흥미로운 점이에요.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나는 잘못된 존재야”가 사이러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 전체가 사이러스가 “나는 잘못된 존재야”라고 믿는 바람에 생겨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끝에 가서 사이러스가 가족이라는 짐을 던져버린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함으로써, 즉, 사이러스가 스스로에게 한 이야기의 가장 시작점인 “가족은 고귀해야만 해”라는 미신, 그 망상을 떨쳐버림으로써, 그 뒤에 이어졌던 모든 이야기가 다 싸라락 풀려 버리는, 그렇게 될 거라는 암시를 주는 엔딩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왜냐하면, “가족은 반드시 고귀한 거야”라는 생각을 더는 안 하면, 그 부모가 일찍 죽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있는 그것이 없는 내가 잘못된 존재라는 생각도 사라지고, 유사부모인 고아원 양육자들에게 학대받았기에 내가 뭔가 잘못된 존재라는 생각도 사라지잖아요.

이… 이것을 구분을 해야 합니다. 당연히 애를 학대하면 안 됩니다. 아주 머저리인 거죠, 자기가 굳이 이 세상에 만들어놓은 인간을 학대한다는 건. 이건 고아원 직원들의 경우에도 비슷합니다. 고아원 직원들이 직접적으로 애들을 세상에 만들어놓진 않았지만, 애들 상대하는 직업인 걸 모르고 취직했을 리는 없잖아요. 취직하고 봤더니 고아원이었던 게 아니라고요.

그런데도 대부분은 학대하는 부모든 학대하는 고아원 직원이든 애를 때리는 이유가 그러면 뭐라고 주장을 하느냐 하면, 애가 말을 안 들어서 때린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이게 무슨 무논리야. 애가 말을 안 들어서 말이 안 통하니까 때린다? 그러면 어른이 되가지고 그 말 안 통하는 애를 말을 통하게 못 해서 또 그걸 몸으로 때린다? 그럼 애 입장에서도 그러지 않겠어요? 저 어른이랑 말이 안 통한다고. 저런 논리가 통한다면, 애가 어른을 안 때리는 이유는 못 때려서지, 애도 때리고 싶지 않겠냐고요.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애랑 말이 안 통해서 애를 때렸어. 그러면 때린 다음에는 애랑 말이 통하게 되는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주장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a에서 b로 가고 싶은데 한 방에 못 가길래, c를 거쳐서 b로 가려고 했다 라고 하면, 그건 말이 되잖아요. a-c-b하려고 했다. 그런데 c를 했는데도 b에 도달을 못했어. 그래서 c만 계속 해야 해. 그러면 그게 논리냐고요. 아니죠. 차라리 그냥 솔직하게 “네 제가 병신이라서 때렸습니다.” 이러면 뭐… 뭐 어떡하겠어요. 병신이라는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자기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런데 생각이 있는 척을 하니까 어이가 없는 거고, 애도 그게 빤히 보일 테니 원통하겠죠. 저런 게 어른이라고 날 때리다니, 이러지 않겠냐고요, 애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왜냐? 앞서 말했듯이, 저런 존재한테 내 생존이 걸려 있으니까. 겨우 고작 저런 존재한테. 저자가 “겨우 고작”이라는 걸 내가, 아이로서 내가 인정해버리면, 그건 나를 더욱 더 보잘것없고 비참하게 만드니까. 양면적인 거예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는, 어떤… 의도는 나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와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얘는 부모가 없어서 불쌍한 애야.” 아니면 “얘는 부모한테 학대당하니까 불쌍한 애야.” 이런 식으로.

다른 애들 앞에서 “얘들아. 너희와 달리 쟤는 부모가 없단다. 아니면 부모가 있긴 한데 문제가 많단다. 그러니까 불쌍히 여겨야 해.” 아니면 “너희가 쟤를 도와줘야 해.” 이런 식으로. 실제로. 실제로 뭔가… 의도가 나쁘진 않다고 주장할 수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불쌍히 여김. 이… 그냥 불쌍히 여김도 아닌, 디폴트 불쌍히 여김. 자동적으로 내가 불쌍할 거라고 여기는 이 자세가 막상 이 애한테는 어떨까요? 정상적으로 고귀한 부모가 있다고 여겨지는 다른 애들 앞에서, 이 애를 아주 비정상적으로 만든 거예요. 그러면 애가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 남들은 다 갖고 있다고들 하는 그게 없는 나는, 내가 뭔가 잘못된 애구나. 내가 잘못돼서 나한테는 정상이라고 불리는 그 고귀한 부모가 없는 거구나.”

이런 여러 경험을 한 아이의 시각에서 “나는 그런 일을 당해선 안 됐어”라는 생각이 저절로 거기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거 같더라고요. 누가 일찌감치 안내를 잘 해주지 않으면, “나는 그런 일을 당해선 안 됐어”라는 생각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도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건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뜻이야”로 넘어가는 게 너무나 한순간이란 거죠.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주기 위하여, 그 요소 중 하나가 이거 아니냐는 겁니다. 가족은 원래가 그렇게 고귀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거. 가족이 고귀할 수도 있지만, 그거 그냥 무슨 디폴트로 고귀해지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 부모라는 것도, 위대한 부모도 있겠지만, 이… 막 어떤 모성애 부성애가 원래 장착되어 있는 것처럼 아주 오래도록, 그것이 존재는 곧 선이라고 믿는 사회에서, 내지는 농사지을 일손이 필요하고 세금 걷을 인구가 필요한 국가들에서 아주 그냥 세뇌를 했잖아요. 종교도 그렇고. 너의 의무라고. 너는 네가 애를 원하든 말든 낳아야 한다고. 그래 놓고서는 그러면 정말로 사람이 타고나기를 부모만 되면 고귀한가? 아니에요. 아니잖아요. 세뇌예요. 얼마나 세뇌인가? 가족을 구성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사회에서 소외된다든지, 세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든지, 심지어 취직하는 데 불리하다든지, 심지어 더 나아가 지옥에 간다는 세뇌를 해야지만 굴러갈 정도로, 가족을 구성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했으면, 그런 세뇌가 필요 없어야죠.

지금은 온 세계적으로 각종 세뇌에서 깨어나는 시대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가족을 구성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보다 자유로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이것은 가족을 구성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습니다. 아무나 반강제적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거랑, 하고 싶은 사람들만 하는 거랑은, 가족을 구성하기로 한 사람들에게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나는 내가 아이를 낳고 싶어서 너무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아이를 낳았는데. 나라는 부모가 저기 저 애 감금하고 학대하는 저 부모랑 저절로 동급 취급을 당하는 거랑. 아이가 있다는 것이 곧 어느 정도는 나의 책임감과 아이에 대한 나의 어떤 헌신의 징표가 되는 거랑.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족이라는 것이 가-족 같을 수 있다는 점을 온 세계에서 점점 더 인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 걷고 일 시키려고 세뇌를 강행한 국가에 대한 눈 먼 충성이 사그라지면서, 어린이들이 사람으로 대우받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이거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여러분. 온 세계적으로, 애들은 사람도 아니라서 뭐… 반쯤 완성된 유사어른 정도로 여긴다든지,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긴다든지, 이러던 시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당연하지 않게 되어서 존중받게 된 측면이 강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족도, 가족이 당연히 좋은 건 아니라고 여김으로써 오히려 가족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어요. 안 좋을 수도 있는 거였는데 좋다니! 이럴 수가! 이건 정말 좋은 거로구나! 이렇게 된다는 거죠.


하여간에. 가족. 그중에서도 말로만 미명이지, 사실은 남만도 못한 가족이 “빙 사이러스”의 핵심이고, 그것을 좀 더 편리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돈이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가족이 얼마나 역겨울 수 있는지를 계속 지지고 볶고 보여줘야 하는데, 가족 구성원들이 먹고사느라 너무 바쁘면 서로 만날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 조각가 커플, 그렇게 서로 싫어하면서도 어찌나 계속 만날 일이 많은지. 둘 다 아무 일도 안 하니까. 말만 조각가 커플이지, 조각을 해야 말이지, 이 아저씨가. 안 해요, 아무것도. 이 부인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러니까 심심해가지고 망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좀만 더 바빴으면 그냥 잘 살았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마침 돈이 많은 바람에, 아무 바쁠 이유도 없는 거야.

아무튼. 이 조각가의 부인의 이름이 케이티입니다. 이 사람은, 너무 심심한 나머지 사이러스한테 들이대는 것도 모자라서, 사이러스와 짜고 자기 시아버지에게 접근합니다. 조각가의 아버지인 거죠.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학대를 당해요. 할아버지에게 아들이 둘인데, 조각가는 좀 교외에 살고, 다른 아들네랑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살아요. 그런데 그 다른 아들이 이 할아버지를 막 때린다는 거야. 할아버지가 약간 치매의 기운이 있으셔서 잘 기억을 못 하시는데, 이것도 역시나. 가족은 개뿔. 남만도 못한. 왜냐하면, 서로 관심이 없을 순 있잖아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뭐, 에너지가 없을 수도 있고. 사업이 잘 안 풀릴 수도 있고. 그냥 애정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런데 아들이 와서 아버지를 때리는 대단하신 수고까지 들인다고? 이게 무슨. 정말 남만도 못한. 심지어 밥도 안 준대요. 돈이 없는 집도 아닌데. 누구 파트 타임으로 사람 붙여서 밥만 챙겨줘도 될 걸.

그런데 사이러스가 이 할아버지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이 할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나중에는 죽여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앞서 말했듯이, 사이러스가 할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그건 아닙니다. 사이러스도 이 학대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할아버지를 학대하는 그 아늘놈은 어떤 놈인가? 사업하는 녀석인 모양이에요. 그럼 이 녀석과 결혼한 여자는 또 누구인가? 겨우겨우 결혼한 여자래요. 결혼을 하려다하려다 겨우겨우 결혼한 게 이 망나니 아들놈이게 된 여자.

그러니까. 이 모든 설정이. 이 영화 전체의 모든 설정이. 가족은 개뿔. 이렇게까지 결혼해서 뭘 할 건데. 천만다행인 건, 조각가 커플네와 마찬가지로, 망나니 아들 커플도 애가 없습니다. 결혼만 한 것이 천만다행인데, 결혼도 참. 저런 망나니랑 억지로 결혼해서 어쩔 건데. 그런데 이것도 그러니까, 앞서 말했듯이, 결혼을 안 하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있으니까 결혼했겠죠. 이 여자가 사는 현실에서 결혼을 안 하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있다고 여기니까 이런 놈이랑이라도 결혼을 한 겁니다. 즉, 결혼이 선하다. 결혼은 좋다. 결혼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이다. 이 망상을 갖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는 가족이 고귀한 게 아니듯, 결혼도 그 자체로 고귀할 게 하나도 없는 개념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서로를 학대하고 죽이고 사기 치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요, 이들이 자기 자신들에게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정말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있었으면 이렇게 결혼해서 살 수가 없고, 산다 하더라도 ‘아, 내가 나를 모르고 이런 미친 결정을 내렸구나’ 하고 살든가 이혼을 하지, 이렇게 자기가 싫다고 주장하는 배우자하고 서로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펼쳐지는 양상이, 이 영화에서는 답답한 건 아닙니다. 영화 길이가 쌈빡해요. 90분짜리 영화이고요. 전개도 시원시원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막장 드라마는 아니에요. 사이러스가 주인공이고, 그의 내레이션이 차갑고 직설적이라는 점도 플러스입니다. 여기서 만약에 사이러스가 케이티랑 같이 할아버지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해가지고 할아버지를 죽이고 다른 사람들한테 사기 치고 막 이러면서 자기가 어린 시절에 학대당한 것에 대해서 계속 붙잡고 늘어지면, 그러면 정말 지지고 볶는 답답한 막장 드라마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사이러스는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지지고 볶는다고 해서, 그게 겉으로 드러난다고 해서, 그러한 자기의 아픔을 저절로 받아들이게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죠? 막장 드라마에서 대놓고 싸우고 뺨 때리고 이혼하고 뭐 어쩌고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거 대개 아무것도 없죠. 시끄럽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고, 진짜 자기가 문제라고 여겼던 것들을 마주해야지 그게 풀려나간단 말이죠.

그런데 “빙 사이러스”에서 사이러스는 아주 조용히 차갑게 내레이션을 하고, 정교한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다가, 끝에 가서 진짜 시원하게 자기를 괴롭게 했던 망상을 놓아버립니다.

그래서 케이티와 조각가 커플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망나니 아들 커플도 그렇고, 나중에 드러나는 사이러스의 가족도 그렇고, 이 모든 가족들이 정말 혈압 오르는 방식으로 등장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는 아닙니다. 시원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시원해서. 막 그…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할까 말까, 막 이런 것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아주 시원하게. 죽일 거면 죽이고. 피 나올 거면 좀 나오고. 보는 입장에서 아주 좋죠. 끝에 가서 버릴 거 버리고. 그렇게 사이러스는 보다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이 영화에 ‘이웃은 고귀하다’가 얼마나 헛된 망상인지도 나옵니다. 이웃이 좋을 수도 있는데 개떡 같을 수도 있거든요? 아주 개떡 같은 이웃도 나온다.

그리고 또 뭐가 나오냐면, ‘경찰은 고귀하다’가 얼마나 헛된 망상인지도 나옵니다. 내지는 ‘정부 기관은 고귀하다’ 혹은 ‘세금 받는 관료들은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이런 거. 여기 나오는 경찰 녀석이 사람을 패고 다니고, 결혼한 여자한테 치근덕대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이 영화의 핵심이 이거예요. 이 모든 망상들. 가족, 부모, 자식, 이웃, 공권력, 기타 등등이 고귀하다는 이 망상. 이것들이 고귀하기에, 이것들이 나한테 뭔가를 잘못한다면 그건 내가 문제일 거야, 내 존재가 잘못된 것일 거야, 라는 이어지는 망상으로부터 비롯되는 괴로움들. 이것들을 90분 동안 조명하고 끝에 가서 휘휘 털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빠르게 치고 빠집니다. 90분짜리 영화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야지만 이 모든 요소들이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너무 막, 휘몰아치게 빠른가? 그것도 아닙니다. 이야기를 재밌게 볼 수 있는 템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명확했다. 모두가 멸망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사이러스의 내레이션이 그것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답답할 이유가 없었어요. 제일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비유적 휘파람으로 시작하는 영화이고, 코믹 요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언뜻 보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정서에 빠질 수도 있었을 텐데, 엔딩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저는 여겨졌습니다. 타인이란 본디가 지옥인 게 아니고, 지옥인 타인들끼리 모여 있어서 지옥인 것이다. 사이러스가 그런 요소들을 뒤로하고 다시 태어나기로 했을 때는 훨씬 시원해 보입니다.


끝부분에서 밝혀지는 것은, 망나니 아들 녀석과 결혼한 여자가 사실은 사이러스의 누나였다는 점입니다. 네. 사이러스에게 누나가 있어요. 사이러스의 유일한 가족입니다. 함께 고아원에서 자란 누나예요.

아까 잠시 언급했던 디테일이 있는데, 이 누나가 결혼을 겨우겨우 했다는 점입니다. 겨우겨우 결혼을 했는데, 그 상대가 망나니 아들 녀석이었다. 이런 디테일을 보면 뭔가… 이 누나가 되게 불쌍하고? 좀… 자기 존중을 안 하나? 결국 결혼한 게 겨우 저런 놈?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영화의 절반 이상을 이 누나는 그렇게 비춰진단 말이죠. 사이러스의 누나인 게 드러나지도 않고요.

그런데 막상 그것이 드러나자, 이 누나가 완전 무서운 사람이라는 게 밝혀집니다. 계획적으로 그렇게 모자란 척을 하면서 결혼을 한 거예요. 뭐가 모자란가? 일단 결혼을 급하게 해야 하는 척하면서 결혼을 했으니, 시간이 모자라고. 아무래도 그 이유가 돈 때문인 것도 있는 듯하니 돈도 모자라고. 남편이 자기 아버지한테는 막 대해도 아내한테는 혹시나 잘해주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으니 사랑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어떤… 생활의 편안함? 그런 것을 따질 겨를조차 없는, 뭔가… “나는 이 정도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그런 기준도 모자란, 그런 사람으로 이 누나가 위장을 한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편 가족의 돈을 보고 거하게 엿을 먹이려고 계획한 거였다. 사적인 원한이 있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누나는 이 가족을 이런 식으로 말아먹고, 그러니까 할아버지를 죽이고, 그 죄를 조각가 커플에게 뒤집어씌우고, 자기 남편도 죽이고, 그 돈을 자기가 갖는 식으로 말아먹고서는 사이러스에게 다음 타깃 가족을 찾자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진짜 무서운 거죠. 사적 원한이었으면 한 번 작전을 진행하고 끝날 거였는데, 이런 식으로 어떤 가족을 말아먹는 작전을 이 누나는 여러 번 진행할 마음이 있는 거예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조각가네 가족이 그렇다고 뭐 대단히 서로 잘 살았는가? 하면 그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에피소드 초반부에 세세하게 말했듯이, 전혀. 이들은 이미 타인이 지옥이었어요. 가족이라면 타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믿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결국 타인이었기에 더욱 지옥이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사이러스와 사이러스 누나가 벌인 일을 당해야 마땅한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영화 초반과 중반에 걸쳐서 어마어마하게 세세한 방식으로 이 가족의 가-족 같은 면면이 드러났기 때문에, 관객으로서 막 눈물을 흘리고, 이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참. 신기해요. 순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죠? 사이러스가 교묘해요.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하는 사이러스가 우리에게 아주 교묘하게 사건을 펼쳐줍니다. 사이러스와 누나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점은 영화의 마지막 5분에서 사라락 빠르게 드러납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조각가네 가족이 원래가 문제가 많은 가족이었다는 점을 아주 디테일하게 흡수했고요.

그리고 이 마지막 5분에서 드러나는 점 중 진짜 신기한 요소가 뭐냐면요. 이 누나는 다음 가족을 타깃할 의향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타깃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누나가 신문을 보고 있어요. 신문에 구인 광고 같은 게 있어요. 그 내용이 ‘부인을 구한다’예요. 신문에다가 부인 구한다고 광고를 낸 거예요.

그러면 이 영화의 문화권에 사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신문에다가 부인을 구한다고 광고를 내는 건 우리 문화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지금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이 저한테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한 게 아니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통해서 이 디테일이 저한테, 그리고 다른 관객들한테, 필터되어 들어온 거잖아요. 즉, 이 디테일은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뭔가… 실제 세상이 원래 그래서, 그런 식으로 제가 흡수하게 된 게 아니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아주 명확하게 ‘자, 이것을 보시오. 이 여자가 부인을 구한다는 신문 광고에 동그라미를 쳐 놓은 것을 보시오.’ 이렇게 보여준 요소라는 것이죠.

90분짜리 영화의 지난 85분간 이 영화가 말해온 모든 것들은 그러면 이 신문 부인 광고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그것이 다만 이 문화권의 관행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이렇게 결혼해서 뭘 어쩔 거냐는 의미로 해석을 한다고요.

이거 정말… 뭐 하러 결혼을 하지? 뭐 하러…

여러 문화권을 막론하고 제가 발견한 패턴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요. 행복한 사람들은 섣불리 결혼하라고 안 하더라고요. 결혼에 자동 고귀성이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 것 같아요. 특히나, 내가 내 부모와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을 배우자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어떤 자동 해결성? 그런 것을 결혼에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그런 자동 고귀성, 자동 해결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까요. 자신의 정체성이 결혼에 엮여 있지 않으면 나랑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는 저 사람이 나의 무슨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을 안 해도 잘 살고 결혼을 해도 잘 살더라고요. 그리고 남들한테 결혼하라고 안 해요. 제 주변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없습니다.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도 못 들어본 것 같아요. 제 직접적인 주변인들한테. 결혼을 왜 안 하냐고. 결혼을 혹시 조만간 할 거냐고 물어볼 수는 있죠. 그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는 건데. 별로 그다지 제 주변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결혼을 한 사람도 남의 결혼에 관심이 없고 결혼을 안 한 사람도 남의 결혼에 관심이 없어요. 자기 잘 사느라 바쁘지.

아무튼 이 영화에 나오는 사이러스는, 아마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자신의 성장 배경 때문에 결혼이며 가족이며 남매 관계며, 심지어 고아원에서 일하는 자들이며, 경찰이며, 이 모든 요소들에 진절머리가 났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래서인지, 정말, 너무 그… 역치를 넘은 거죠. 그래가지고… 어… 어떻게 보면 “아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했냐, 너무한 거 아니냐. 왜 누나가 시키는 대로 했냐. 왜 누나가 이 가족을 말아먹고, 다음 가족을 또 치자고 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사이러스 입장에서는, 음… 아까 말한 그… “나는 뭔가 잘못된 존재야” 이 망상이 너무 어릴 적부터,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사이러스를 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누나가 하라는 대로 모든 걸 한 것 같아요. 이 누나까지 잃으면 안 되니까. 사이러스는 부모도 없고, 고아원에서 누가 보호해 준 것도 아니고, 고아원에서 그렇게 학대당했는데 계속 있었던 걸 보면 어차피 경찰이 도와주지 않았거나, 도와줬어도 다른 고아원으로 갔었을 거고, 그 와중에 주변 환경에서는 그래도 결혼은 해야 된다는 식으로, 아니, 부인 구한다고 신문에 광고를 내는 식으로 결혼을 꼭 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런 식으로 결혼해서 줄줄이 또, 애도 꼭 낳아야 하니까 꼭 낳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또… 뭐, 계속 반복되는 패턴이었겠죠.

그 패턴만 보이니까, 나는 잘못된 존재라는 그 생각 속에서 사이러스는 누나가 시키는 대로 따랐을 것 같아요. 그런데 조각가네 가족을 죽이고 돈을 충분히 가졌는데도 또 누나가 다음 가족을 치자고 하니까, 그때 사이러스는 누나를 떠납니다.

아마도, 음. 영화에 자세히 나오진 않는데, 차라리 누나가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거라고 사이러스는 여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까 말했듯이, 돈을 탓하면 진짜 편하거든요. “아, 우리 누나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죽이고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이런 일을 벌이는 건, 돈 때문이야. 우리가 어릴 때 너무 힘들게 살아서.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니까. 우리가 돈만 있었으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런 식으로.

근데 아니었던 겁니다. 누나는 돈 때문에 이 일을 저지른 게 아니었어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 누나는 계속 살인 계획을 하고 싶어 할 누나고, 뭔가… 이 누나도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겠죠. “나는 뭔가 잘못된 존재야.” 그런데 이 누나의 경우에는 사이러스보다 조금 더, 이 마음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가족에 침투해 들어가서 그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그걸 즐기는? 그러한 케이스인 것 같아요.

그리고 신문에 난 부인 광고는 어쩌면 이 문화권 전체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사이러스의 누나가 타깃하는 가족들의 구체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어떤 국가나 문화권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결혼을 하진 않죠. 아무리 국가에서 그 어떤 세뇌를 해도 그것대로 안 하는 사람들은 꼭 있습니다. 세상에, 무슨 뭐, 중세 시대 때,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으면 정말 무슨 지옥 가는 줄 알았던 그런 시공간에서도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겠다고 하는 사람들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이러스네 누나가 그런 사람들한테 이런 종류의 사기를 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사기 칠 만한 가족을 고르는 건데,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인가? 부인이라는, 재수가 좋거나 재수가 나쁘면 앞으로 자기랑 평생을 보내야 하는 사람을 신문에다가 구인 광고 내서 구하는 그런 가족의 광고에다가 동그라미를 치는 것이다.

사이러스는 어쩌면 그러한 누나를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이러스가 그걸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아요. 누나를 막 원망하고 그런 게 아니거든요. 사이러스도 누나를 이용해서, “우리는 이 일을 돈 때문에 하는 거야”라고 어느 정도 진실을 가린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역치를 넘기니까 이제 “아, 이 모든 게 망상이었구나” 하며 깨어납니다.


네. “빙 사이러스.” 재밌었다. 그리고 이리하여, 이번 시즌의 영화 구간이 끝이 납니다. 인도 영화에 대한 챕터가 “누아르 어바니즘”의 끝은 아닌데요, 이 뒤에 나오는 챕터들에는 언급되는 영화의 수가 적거나 없으며,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즌, 영화보기는 끝이다. 재밌었습니다. 정말이지 제가 스스로는 볼 생각을 할 수 없었을 영화들을 봤고요. 가장 큰 수확은, 한아임은 인도 영화를 좋아한다. 네. 오늘 다룬 “빙 사이러스.” 그리고 “노 스모킹”과 “돔비발리 패스트.” 무척 재밌게 봤다.

그리고 다음주부터는 누아르 어바니즘 책을 챕터별로 다룰 겁니다. 드디어. 아마 이 에피소드가 나갈 때쯤엔 출판에 가까운 시점일 거예요. 그 세부사항에 대한 안내는 제가 특별 에피소드로, 이번 에피소드 전이나 후에 아마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지난 에피소드에서 설명드렸듯이, 제가 지금 에피소드들을 많이 미리 녹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에 가게 되어서 그리합니다, 여러분. 3개월이나 있을 것인데, 그래서 미리미리 녹음을 하고 있습니다.

네. 아무튼. 다음부터 누아르 어바니즘, 책, 들어갑니다. 드디어! 드디어! 네. 이번 시즌, 시즌 5가 2023년 5월 5일에 시작했는데, 이제 드디어 책에 들어간다. 이제 책 나올 예정이다. 신난다. 범고래출판사의 우리 이혜원 대표님. 여러 가지 프로젝트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드디어 누아르 어바니즘이 나올 것이다.

책을 갖고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도 책 이야기 들으시는 데 지장이 없으시도록 에피소드를 구성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영화 얘기 한 것과 똑같아요. 영화를 보고 에피소드를 들을 수도 있지만, 영화를 안 봐도, 그냥 한아임이 주절거리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들어셔도 무방했듯이, 누아르 어바니즘 책을 안 사셔도 에피소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열 개 에피소드는 책의 각 챕터에 관한 것이라서 인용을 하고 그러겠지만, 책을 보면서 에피소드를 들어야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게 진지하고 본격적인 팟캐스트가 아니죠, 아임 드리밍이. 이것은 수다 팟캐스트입니다. 수다. 아무렇게나 들으면 되는 이야기.

좀 더 본격적일지도 모르는 책의 내용은… 혹시나 어쩌면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 누아르 어바니즘에 얽힌 오프라인 사건들이 벌어질 것 같은데, 그 공지도 확정이 되는 대로 특별 에피소드로 올리겠습니다. 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모든 음악

Opening

  • The Play – Instrumental Version – Eli Benacot

Within episode

  • Ziv Moran – One More Time
  • Ziv Moran – Honey Mood
  • Ziv Moran – Use in Wondering

Closing

  • St. Charles – Mark Yencheske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2024 한아임

소개

✨ 한아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