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4] <누아르 어바니즘> 3. 틀라텔롤코: 멕시코시티의 도시적 디스토피아

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오늘은 책 <누아르 어바니즘>의 세 번째 챕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날입니다. 제목: 3. 틀라텔롤코: 멕시코시티의 도시적 디스토피아. 챕터 필자는 루벤 갈로입니다. 이 챕터는, 여러분. 제가 제일 공포스러워한 챕터입니다. 책 제목이 <누아르 어바니즘>인데, 어떤 챕터들에서는 좀 참 뭐랄까, 어떻게 보면 팔자 좋은 관망자로서 즐길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측면이 있고, 실제로 유머가 넘치기도 합니다. 필자마다 글쓰기 스타일도 달라서, 제목이 <누아르 어바니즘>이라고 해서 마냥 다크하고, 막 세상 진지하고, 그런 책이 아니에요.

그런데 챕터 3은 너무나, 너무나 제가 느끼기에는 최고로 무서운 챕터였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오늘의 수다, 시작할게요.


네. 제가 여러 번 예전부터 말했듯이, 저의 가장 주된 공포 중 하나는 떼에 대한 공포 아닙니까? 지금은 진짜 많이 용해되었는데, 이 챕터에 나온 영화가 한몫했습니다. 에피소드 55에서 다뤘던 <붉은 새벽>이라는 영화가 그 영화였고요, 틀라텔로코에서 민주주의 시위를 하던 학생들이 죽임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당시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듯이, 영화는 거의 100% 실내에서 벌어집니다. 이에 따라, 실제로 학생들이 죽임당하는 장면이 대거 나오진 않아요. 시위를 하다가 당국의 공격이 시작되자, 살아남은 학생들이 어떤 가족의 아파트로 피신해 들어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부상당한 학생들이 등장하기는 하되, 그렇다고 막 엄청 피가 철철 넘치는 영화는 아니거든요. 무엇보다 떼가 직접적으로 안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영화를 보고서 떼에 대한 공포를 엄청 용해해서, 카타르시스가 엄청났던 영화였습니다. 어… 제가 비교적 최근에 분명하게 알았어요. 저의 떼에 대한 공포는 실로 엄청났다는 것을. 저는 좀 그것이 특정 집단들에 한정되어 있는 줄 알았고, 유사점이 있더라도 결이 제각각 다르다고 어렴풋이 여기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고, 그냥 떼가 무서워요. 어느 정도냐 하면, 제가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 처음으로 거대 프리웨이의 트래픽을 봤거든요? 막 양쪽으로 8차선 있는 허벌나게 큰 프리웨이였는데, 여러분, 그 정도 사이즈에 차가 빽빽하게 막혀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정말… 저는 그때… 그때 십대였는데, 정말 몸으로, 그때도, 토할 것 같은. 토를 하진 않았어요. 근데 진짜 등골이 오싹하면서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때도. 근데 그때부터 이걸 용해했으면 됐을 텐데 용해를 안 하고 있다가, 2023년부터 이런 각종 것들을 용해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붉은 새벽>을 봤던 당시보다 지금은 진짜… 지금은 좀… 진짜 좀 훨씬 괜찮아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좀 괜찮습니다. 뭐, 좋진 않아요. 그런데 좋진 않은 거랑 공포스러운 건 다르잖아요? 하여간에 저한테 워낙에 떼에 대한 공포가 있는데.

책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렇게 목차를 보면서, 중국에 대한 챕터에서 떼에 대한 공포가 터지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중국 챕터는. 어… 느낌이 완전 달라요. 중국 챕터에 가서 그에 대해 얘기할게요. 오늘도 약간 언급이 될 것 같긴 하지만요. 일단 이 멕시코시티에 관한 챕터. 이 챕터가 너무너무 그… 떼와 관련하여 무서웠던 이유는, 특히나 뭐였냐면, 건축에 대한 챕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챕터 1에서는 우리가 <메트로폴리스>라는 영화에 나온 비교적 허구인 것만 같은 공장과 그곳의 기계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챕터 2에서는 지옥 같은 소리, 소음적 디스토피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챕터 3은 건축에 대한 챕터란 말이죠. 물론 공장도 건축물이고 챕터 2에서도 소음과 관련한 건축의 이야기가 나와요. 사람이란 존재가 건축물과 동떨어져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존재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붕을 필요로 합니다. 실제로도 지붕이 필요하지만, 상징적으로도. 의식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한테 꼭 필요한 것이 집입니다. 특히나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는 집. 그러니까, 공장에 사람이 살지는 않잖아요, 일반적으로. 그리고 소음이 있어도, 집에서 있는 게 가장 화가 나고, 무서울 지경이죠. 이거 어… 챕터 2 이야기할 때, 저번 에피소드에서, 너무나 극과 극의 인용문이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제가 정말 쇼펜하우어 형님을 유머 때문에 좋아하는 바람에 약간 너무 웃긴 얘기만 했나 싶은데, 너무너무 시끄러우면, 그것은 정말로 공포입니다. 사람 수명이 단축되는, 그런 진짜로 영향이 있는, 그런 공포예요. 챕터2에서는 소리의 물성 없음이 좀 다뤄졌는데, 사실 소리에 정말 물성이 없는가 하면, 아니거든요. 소리는 에너지고, 그것은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것도 흔들리게 할 수 있어요. 소리의 진동은 굉장한 힘인데, 아무튼 그 힘을 내가 어떤 환경에서 통제할 수 없을 때 가장 무서운가? 집에 있을 때. 집에서 소음을 어찌하지 못할 때.

이 집. 집이라는 곳. 이것과 챕터 3이 너무나 깊게 얽혀 있기 때문에 무서웠습니다. 진짜 디스토피아란 말이죠. 집은 정말… 내가 월세를 내면서 살아도, 그냥 마음대로 이사를 갈 수 없는 것이 집입니다. 내가 돈이 많아도. 아무리 많아도. 내가 집을 소유를 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러면 더 어려운 측면도 있겠죠. 하우스푸어여 봐요. 그러면 그 집 버리고 못 떠나요. 그런 내 집을. 직접적으로 누가 어떻게 무너뜨리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내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 같은 데에 누가 처들어온다든지. 그것도 무서운데. 세상에 심지어 내 집 앞에 뭘 짓는다든지. 내 집 앞에 있던 걸 없앤다든지. 이런… 이런 거. 이런 게 너무 무섭단 말이죠.

제가 항상, ‘건축가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다’고 하는 이유도. 이것이… 건축은 진짜… 이건 뭐… 이건 너무… 너무 진짜야. 예술적이기도 하지만, 너무 진짜고. 사람이 살고 죽잖아요. 그리고 그것의 아주 디스토피아적인, 심히 누아르한 예시가 챕터 3에 나오는 겁니다.

시작부터 암울해요. 책 왈, “몇 년 전 평론가 프레데리크 루빌루아는 유토피아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20세기의 유토피아와 전체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사색했다. 러시아 혁명부터 독일 국가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를 전면 개편하기 위한 그토록 많은 프로젝트들이 유토피아적 꿈으로 시작되었으나, 결국 역사상 최악의 악몽들을 낳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유토피아는 전체주의의 불길한 예감에 불과한 듯하며, 전체주의는 유토피아적 꿈의 비극적 실행에 불과한 듯하다.”고 쓴다. 최근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리고 전체주의 정부 사이에는 실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요거, 아임 드리밍 듣는 분들… 어… 아임 드리머 분들? 청취자분들에게 익숙한 개념이죠.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고 디스토피아가 유토피아인 측면이 있다. 그리고 정말이지, 어… 개개인이 이러면은 사실, 별로 상관이 없어요. 어차피 당연히 그러면 너의 유토피아는 나의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고, 나의 유토피아는 너의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는 거지, 어쩌겠어요? 그런데 이 유토피아를 집단적으로 가하려고 할 때, 그것이 진짜 가해 행위가 됩니다. 저는 이제는…. 어… 이쯤 되면 약간… 역사적으로… 막 뭔가 단일화된 하나의 집단이 되지 못할 때 그걸 갖다가 막 “우리는 너무 분열되었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경우 있잖아요. 그게 이해가 안 가요. 이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요. 분열되는 게 당연합니다. 당연해요.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요? 어떤 집단의 리더가 한 사람이면, 그럼 그 집단에 있는 사람들이 다 똑같이 생각할 거라고 여기는 건가? 어떻게. 말도 안 되는.

무슨 말이냐 하면, 약간, 추. 이거 진짜 옛날에 언뜻 언급한 것 같은데. 추의 세계. 그런 말 썼었던 것 같은데요. 어차피 왔다가 가는 거란 말이죠. 유행도 왔다가 가고, 또 옵니다. 이 집단이 인기 있다가 또 저 집단이 인기 있어요. 역사를 이쯤 살았으면… 어… 선형 타임라인에서 문자가 생기고 기록되기 시작한 지 수천 년이 됐잖아요. 이쯤 됐으면. 어떻게 아직도 모두의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냐고. 아직도. 이렇게 매번 디스토피아로 끝나는데.

아무튼 책 왈. “가장 가슴 아픈 사례 연구 중 하나는 노노알코-틀라텔로코의 주택 단지로, 멕시코시티에 가장 현대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도시 계획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설계된 기념비적인 프로젝트였다. 틀라텔롤코는 건축가 마리오 파니, 그리고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었던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는데, 후자는 전례 없는 경찰력의 만행, 폭력, 그리고 탄압으로 훼손된 전체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가진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틀라텔롤코의 유토피아적인 꿈은 곧 멕시코시티의 도시 구조에서 최악의 디스토피아적 악몽 중 하나로 퇴보했다. 이 붕괴를 유토피아와 전체주의의 연관성에 대한 루빌리아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챕터에 도시의 건축물을 철거하거나 보존하는 것에 대한 서로 반대되는 입장들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엔. 멕시코시티의 이 특정 경우에는 앞서 있던 건축물을 철거하면서 지어진 새로운 건물들에서 비극이 일어났기 때문에 철거를 찬성하는 쪽이 디스토피아적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철거 혹은 보존은 2차적인 문제 같습니다. 이건 어… 챕터 필자가 “철거를 해서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 그것은 디스토피아가 된다”라고 주장한 건 아닙니다.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마침 멕시코시티의 사례가 그러하여 철거와 디스토피아가 연결 지어지게 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필자가 그런 주장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저도 그게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거 혹은 보존은 2차적인 문제고, 진짜 문제는, 철거를 떼로 한 것. 철거를 하는 쪽이 떼의 유토피아를 실현하려고 했던 것. 그것이 문제고. 만약 마침 어딘가에서 떼의 힘을 잡은 누군가가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모든 건물을 보존을 하자는 쪽이었다면, 그 역시 디스토피아가 되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예전 건물을 철거한 다음에 지은 건물들이 획일적인 건물이 아니라, 이렇게 살 사람은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 사람은 저렇게 살게 해주는 형태였다면, 디스토피아가 안 되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디스토피아려면, 스케일이 커야 합니다. 우리가 개개인이 힘들다고 해서 디스토피아라고 부르진 않거든요. 집단적으로, 그것도 아주 비스무리한 방식으로 고난을 겪어야 그것이 디스토피아입니다. 그런데 건물을 다양하게 지으면 디스토피아가 될 확률이 애초에 좀 줄어들죠. 같기가 어려워지니까.

그리고 개개인은. 저는 개개인은 선명해도 되며 심지어 선명한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주거 형태, 내가 좋아하는 옷, 내가 좋아하는 그 모든 것. 그리고 따라서 내가 싫어하는 영화, 싫어하는 음악, 싫어하는 주거 형태, 싫어하는 옷, 또 뭐 음식, 가족 형태, 심지어 뭐 이불의 폭신한 정도, 매트리스의 폭신한 정도, 신발의 볼이 좁은가 넓은가, 이런 것까지, 개개인이 선명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세상이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단이 하는 역할은, 그렇게 하게 두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집단이 뭘 자기가 시키려고 하면, 그것은 마치 오색이었던 세상을 다 뭉뚱그려가지고 말 그대로, 뭐가 나옵니까? 우리 크레파스를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이런 거 다 섞으면 무슨 색 나와요? 까만색 나옵니다, 결국에는. 누아르 돼요.

그런데 잠깐 첨언하자면요. 저는 universal basic income이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보편 기본 소득. 모두에게 기본 소득을 주는 것. 그리고 이것이 딱 들으면 모순이라고 생각될 수 있잖아요. 개인을 중요시하면서 왜 정부에서 돈을 주는 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기나? 그것은 왜냐하면요. 집단적으로 정부가 개인들한테 뭘 해주려고 할 때 심각한 낭비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 낭비는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인력, 그리고 뭐 전기, 공간, 기타 등등 모든 낭비를 포함합니다.

이것이 한국처럼 모든 정부 서비스가 비교적 재빠른 국가에서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어요.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았던 게, 여권이 며칠 만에 나온다면서요. 아니 세상에. 정부가 그렇게 빨리 일한다고? 믿을 수가 없어. 미국에서 여권 받으려면 일 단위가 아니라 달 단위가 걸려요. 몇 달이 걸린다고요. 여권뿐만 아니라, 하여간에 뭐 하나를 받으려고 하면, 그 사이에 공무원이 공무원이 공무원이 대여섯 명이 줄줄줄이. 저쪽에 가면 이쪽으로 가라고 하고 이쪽에 가면 저쪽으로 가라고 하고. 이것이 정말… 카프카적 세상이라고요. 그 집단에서 뭐가 벌어지는지 그 집단 사람들도 몰라. 왜냐하면 너무 복잡해가지고, 아무도. 정말 아무도. 아무도 몰라.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스피드보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느리고, 심지어 유럽은 더 느리다고 들었는데, 유럽은 제가 최근에는 직접 겪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어떤 그… 유럽적 삶에 대한 로망이 있던 사람들 중, 특히 한국에서 살다가 유럽 가가지고 유럽에 대한 환상 산산이 조각나고 박살난 경우를 목격한 적이 꽤 있습니다.

정말로 정부가 그렇게까지 오래 걸려야 하는가? 정부를 최소화하고 그 돈을 사람들한테 직접적으로 주는 게 낫지 않나? 돈이 줄줄 새어 나가는 것 같단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줄줄 새어나감에 동참하느라 아침 9시부터 5시인지 6시인지를 죽치고 앉아서는 어차피 하기도 싫어하는 그 일을 하는 그 공무원한테 뭐가 좋을까? 정부 이런 데에 어디에 한번 전화를 해보면, 뭘 좀 아는 담당자랑 얘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뭐, 최저임금으로 환산해서 계산을 하고 해보면, 기가 차요. 이럴 거면, 그냥 나한테도 저쪽한테도 그냥 돈을 줘. 그러면 나도 시간 안 쓰지, 저쪽도 시간 안 쓰지, 아무 공간도 안 들고. 전화 충전하는 데 전기도 안 들고. 뭐 하는 건지 도대체. 거대 정부를 보면, 저건 그냥, 어… 존재하려고 존재하는 개체 같다. 저건 일을 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기가 망할까 봐, 사라질까 봐 겁에 질려가지고 없는 일도 만들어서 존재하게끔 만드는 개체 같다. 이거 개인 단위에서도 벌어지잖아요.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일이란 건 시간이 있는 만큼 늘어나게 된다고. 그런데 물론 모든 개인에게 그런 게 아니잖아요? 개인 내에서도 때에 따라 다를 것이고. 그러니 정부도, 정부라고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다만 비대해질 수 있다고 해서 비대해질 수 있는 최대치로 비대해져야 하는가?

그러니까 제가 작은 정부가 좋다고 말할 때는 복지를 없애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정부를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쓰이는 그 돈을 그냥 사람들한테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이론입니다.


아무튼, 아까 인용문에서 나온 마리오 파니. 이 건축가가 철거를 해서 새 건축물을 짓자고 주장한 사람인데, 음… 그렇게 해서 지은 새로운 종류의 건축물이 마침 대형 건축물이었던 것도 결국엔 나중에 문제가 된 원인의 일부일 수 있겠고, 철거를 한 자체도 문제 원인의 일부일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짜 제일 큰 문제는 파니가 철거를 원한 이유와 철거 후에 뭘 지을지를 택한 그… 로직입니다. 그의 논리. 내지는 논리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정말 뭐랄까,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길이었던 그 로직.

파니가 예전 건물들을 밀어버릴 지역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했대요. 책 왈, “그 지역은 폐허가 되었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 건물이 없으며, 그러한 도시 지역을 재건하는 최선의 전략은 그곳을 밀어 없애는 것이라고 말이다. …. 틀라텔로코 현장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거의 2킬로미터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는 500미터였다. 이는 100만 제곱미터의 광대한 지역이었고, 파니는 이곳을 세 개의 슈퍼 블록으로 나눠, 여기에 4층에서 22층 높이의 아파트를 채울 계획을 세웠다.”

그러니까 어… 이 건물은 이렇게, 저 건물은 저렇게 철거를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철거를 해서 하나하나 뭔가 그에 맞는 건축물을 지은 것도 아닌. 애초에 시작부터, “싹 다 밀어버리면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식의 멘탈리티였던 거예요.

심지어 책 왈, “파니가 자신의 가장 야심 찬 주택 프로젝트를 시작할 준비를 할 때, 예상치 못한 발견으로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틀라텔롤코는 콜럼버스 이전의 어느 고대 도시가 있던 곳이었고, 고고학자들은 건설 작업이 지하에 묻혀 있을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을 파괴할 것이라는 이유로 그의 계획에 반대했다. 그의 멕시코식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건설에는 더 강력한 장애물도 있었다. 그 부지에는 16세기에 스페인인들이 수도를 유럽 도시로 변모시키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파괴했던 아즈텍 피라미드의 유적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니는 여기다 짓겠다는 거야. 자기 유토피아를.

그래서 이랬대요. 책 왈. “파니는 홍보의 달인이었고, 성가신 피라미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피라미드를 부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그 주위에 건축하는 것은 허용되었고, 따라서 수십 개의 주택 단지가 피라미드의 표면 주위에 솟아올랐다. 심지어 파니는 피라미드를 현대화하는 방법을, 아니, 그보다는 그 고대 아즈텍 구조물을 모더니즘적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가 틀라텔롤코를 위해 설계한 가장 높은 건물은 피라미드였지만, 이는 모더니즘의 원칙에 따라 온갖 기하학적 화려함을 뽐내며 솟아올라 아즈텍 유적을 내려다보게끔 계획된 것이다.”

근데 거기서 파니의 수난과 승리가 끝났느냐? 아닙니다.

책 왈. “하지만 아즈텍 피라미드만이 과거로부터 귀환해 파니의 모더니즘적 구상의 앞길을 막았던 것은 아니었다. 피라미드 옆에는 16세기 성당과 산티아고 틀라텔롤코 수도원이 있었다. 결국 이 건축가는 교회와 피라미드를 모더니즘 양식의 탑에 둘러싸인 큰 광장 가운데에 배치함으로써 모두를 코르뷔지에식 단지 안에 통합했다.”

파니는 진짜 짓고 싶었던 거야. 정말로다가. 왜냐하면 자기 머릿속에서, 자기는 너무 알거든. 자기 유토피아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음… 이 챕터의 필자인 루벤 갈로가 파니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은 매우 분명한 것 같아요. 파니는 과대망상증이다.

저도 이 챕터에 나온 파니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자면, 실제로 그러해 보입니다. 과대망상증이고, 그보다 더 문제는, 사실은 그걸 안 믿는 것 같아요. 이것을 챕터 5를 얘기하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게 될 것 같은데, 뭐냐면요, 정말로 내가 주장하는 그것을 믿는 사람은 파니처럼 이렇게 남들을 대상으로 길길이 뛸 필요가 없어요. 말을 할 순 있죠, 자기가 원하는 걸. 설득하려고 할 수도 있겠고. 그런데 이렇게 막…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요. 그것은 마치 나의 이름이 한아임인 걸 알아서 누가 ‘너 한아임 아닌데?’ 하면, ‘뭔 소리래?’ 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지금 제가 분량상 짧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 한마디로 파니가 정말로 진짜 진심으로 자기가 유토피아의 신이라고 생각했으면, 이럴 필요가 없었을 거란 얘기예요. 이 사람은. 어… 자기가 두려워하는 게 용해가 하나도 안 됐어요. 자기가 유토피아의 신이 아닐까 봐 무서워서 이러는 거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굉장히 두려움에 쩌들어 있는 인물로 보여집니다, 이 챕터에 나온 내용만 보면.

제가 멕시코를 잘 모르고, 건축도 잘 모르는데, 심지어 책에 이렇게 나와요. “파니의 작업은 멕시코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건축 역사가나 비평가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않았다.”

그리고 파니의 건축물에서 벌어진 비극을 멕시코 정부에서 인정하거나 공개하기를 꺼려 했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그래서 파니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음… 외부인으로서 제가 파니에 대해 뭐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정확하다는 건 또 뭔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챕터에 나온 파니를 보면… 무서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유토피아가 아닌 세상을. 따라서 그는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과대망상증자로 겉으로는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반대예요. 과대한 자기 이미지가 없는 것 같아요. 매우 작은. 아주 작은 존재로 자신을 느껴서 이렇게까지 획일적으로 남들한테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책의 다른 부분에 파니의 인터뷰에 희대의 망언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 에피소드의 끝부분에서 언급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틀라텔로코에 주택 단지가 거대하게 지어졌다.

책 왈, “격정적인 홍보 캠페인에서, 시 관리들은 아즈텍 피라미드, 스페인 수도원, 그리고 모더니즘 계획도시의 이 이상한 결합체를 “삼문화광장”으로 내세웠다. 이는 혁명 이후 집권당이 내세운 이데올로기의 주된 내용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이었다. 그 내용은 현대 멕시코란 과거의 두 문명인 아즈텍과 스페인의 만남에서 탄생한 새로운 메스티조 문화라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책 왈, “파니가 설계한 단지의 마지막 건축물이 완성되고 2년 후인 1968년, 틀라텔롤코는 20세기 멕시코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사태의 무대가 되었다. 10월 2일, 수천 명의 학생들이 시 당국의 탄압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위해 ‘삼문화광장’에 모였다. 지난 몇 달 동안 도시 전역에서 경찰과 학생 간의 충돌이 몇 차례 있었으며, 군대는 멕시코 국립 대학교의 본관을 잠시 점거했었고, 수십 명의 젊은 남녀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1968년 5월 파리에서 있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멕시코 학생들은 점점 더 비민주적인 경향을 띠던 정부에 반대하는 여러 평화로운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 대통령은 경찰과 군대에 이에 맞설 것을 명령했다. 그는 파리를 마비시켰던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멕시코에서 재현될까 봐 두려워했고, 무엇보다도 학생들과 그들의 시위가 10월 12일에 열릴 예정인 올림픽을 위태롭게 할까 봐 겁에 질려 있었다.

수백 명의 시위자와 동조자가 ‘삼문화광장’에 평화롭게 모였으며, 학생 대표들이 연설을 하고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런데 갑자기 군대가 틀라텔로코를 포위했고, 탱크와 헬리콥터가 광장으로 진입해 학생들에게 발포했다. 주택 단지의 모든 입구는 폐쇄되었고, 나중에 한 학생이 회상한 바와 같이, 학생들은 틀라텔롤코가  “마치 쥐덫인 듯” 그 안에 갇혀 있었다. 약 300명의 학생이 죽고 1,0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네. 아까 말했듯이, 건축은 정말로 너무나 대규모의 영향을 미치는 데다가, 심지어 애초에 파니의 논리 자체가, 대규모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대규모 영향을 미친 게 아니고, 이 건축가는 대규모로 어떤… 사람들을 건축으로서 구원하는 게 자기의 결핍이었단 말이죠.

챕터 필자인 갈로가 말합니다. “미셸 푸코부터 기 드보르에 이르는 비평가들이 주장했듯이, 건축은 통제력을 행사하는 수단이다. 모더니즘 양식의 주택 단지, 특히 마리오 파니가 선호하는 형식의 코르뷔지에식 프로젝트들보다 이러한 특성이 더 분명한 경우는 없다.

틀라텔롤코 단지는 거주자의 생활 환경, 여가 활동, 심지어는 움직임까지 통제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단지에는 몇 개의 출입구밖에 없었는데, 누군가의 출입을 막을 수 있도록 몇 초 안에 닫힐 수 있는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곳에는 요새화된 벽이 설치되어 단지에 무단으로 접근하는 것을 방지했다. 파니는 단지를 둘러싼 그 벽을 칭송했는데, 그것이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며 거주자와 방문객이 지정된 접근권만을 사용해서 질서 있는 방식으로 들어오고 나가도록 강제할 수 있는 요소라는 이유에서였다. 군대가 학생들을 단지 안에 가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통제를 위한 건축 때문이었다. 집회가 멕시코시티 시내에서 열렸더라면, 그 활기찬 (그리고 혼란스럽기도 한) 도시 공간의 거리, 골목, 지하철 터널, 그리고 통로를 통해 학생들은 몇 분 내로 흩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이 삼문화광장에 도착하자 그 장소는 역파놉티콘이 되었다. 파놉티콘에서 교도관은 전체 교도소 인구를 살필 수 있는 중심에 서 있다. 역파놉티콘에서는 구조의 모든 지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중심이 있다. 파놉티콘은 교도관 한 사람이 살필 수 있는 반면, 역파놉티콘은 중앙 공간을 지켜보기에 좋은 여러 위치를 허용한다. 틀라텔롤코의 경우, 단지 전체에 걸친 수백 개의 지점에서 광장을 지켜볼 수 있었고, 이 때문에 군인들이 옥상과 발코니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시위대는 단지 내의 모든 건물에서 보이고, 관찰되고, 겨냥될 수 있었기 때문에 쉬운 표적이 되었다. 육군 저격수들은 모더니즘 양식의 건물 위로 올라가 아무 장애물도 없이 학생들을 볼 수 있었고, 학생들은 광장이 쥐덫인 듯 그곳에 갇혀 있었다. 푸코가 파놉티콘에 대해 썼듯이, “가시성은 함정이다.””

그리고 이 함정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붉은 새벽>입니다.

이 영화가 만약 차라리 건물 바깥, 광장의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오히려 덜 무서웠을까 싶어요, 떼에 대한 제 공포에도 불구하고, 또한 실제로 매우 폭력적이었을 그 광경에도 불구하고요. 그런데 그 영화는 집 안에서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은 집에 있는데 집에 있는 게 아닙니다. 아, 물론 <붉은 새벽>에서 다루는 그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삼문화광장 그 자체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광장이에요. 그러니 그 자체로도 호러죠. 그냥 어떤 도심의 바깥에 있는 광장이 아니고, 아파트 단지 내에, 사람 사는 데 안에 있는 데에서 학생들이 모여서 시위하는데, 그냥 정말, 누가 알아요? 지나가다가 그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구경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거기에다가 군대가 와서 사람들을 죽인 거라고요. 이러니 호러죠.

그런데 심지어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시위에 참여도 안 했는데, 따라서 그냥 집에서 무슨 뭐… 라디오 듣고 TV 보면서 자려고 준비하고 있었을 그 사람들. 그 사람들도 자기 집에 있는데, 그냥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나는 내 집에 한순간에 집이 아니게 된 그 공포.

저 밖에는 군대 떼가 있고, 그들은 나를 그들에 대적하는 떼의 일부로 볼 수 있다는 거.

무슨 뭐… 영화에 나와요. 마치 군대가, 학생이 아닌 사람들은 공격 안 할 것처럼. 근데 군대를 구성하는 모든 군인들이 그런 룰에 협조할 리가 없을 뿐더러, 모두가 그렇게 하길 원한다 한들, 그게 그렇게 쉬이 구분이 됩니까? 시위하는 학생은 무슨 막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천사예요? 딱 “안녕하십니까? 저는 시위하는 학생이고요, 그것을 온 만천하에 드러낼 겁니다.” 이럴 리가 없잖아요. 아니면 땅에서 솟아납니까? 도깨비인가? 그럴 리가. 이 학생들 중 여러 학생들이 그냥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애들이고, 실제로 영화 속 가족의 일원인 두 남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피범벅이 돼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나마 얘들은 집이 여기라서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결국엔 집이 여기라서 온 가족이 죽임당했기에 차라리 그 학생들만 따로 죽는 게 나았을 거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에 이… 집. 집에서 겪는 공포. 그게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는 챕터입니다. 파니의 건축관이 공포스러운 아주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그가 누군가의 집을 대규모로 확정 지으려고 했으며 그것에 실제로 성공해서 그러한 집을 지었다는 것이 상당히 무서운 것 같아요. 책 <누아르 어바니즘>에 있는 열 개 챕터 중에 가장 아무 유머 없이 그냥 무서운 챕터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저는.


누군가 개인 혹은 개인들의 작은 무리가 거주하는 집이라는 구조물들이 서로 형성하는 더 큰 구조가 있습니다. 아파트단지일 수도 있고, 거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쩌면 집들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집들이 서로 형성하는 구조는 거의 인간의 육안으로는 체험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할 수도 있고. 이런 집과 집의 관계에 대해서 <누아르 어바니즘>의 여러 챕터에 걸쳐서 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챕터3, 멕시코 챕터에서는, 파니의 획일적인 건축으로 인한, 적어도 일부는 그것으로 인해 생길 수 있었던 비극이 나옵니다. 그런데 챕터6, 중국 챕터에서는, 정부의 획일화된 개발 과정에서 집에서 내몰리는 사람들이 나오되, 그 사람들이 그렇게 힘없이 내몰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이 거주자들끼리의 어떤 조직화된 저항 운동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점으로 언급이 됩니다.

이것이 한국, 그러니까 전 국민의 4분의 1인가가 서울이라는 대도시, 아파트로 특징지어지는 대도시에 살고 있는 한국의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청취자들이 듣는 아임 드리밍에서 생각해볼 만한 지점 같습니다. 어… 세상에서 아파트를 제일 잘 짓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파트를 많이 짓고, 많이 부수고, 또 새로 짓지 않습니까? 실제로 잘 짓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건축적인 기술은 잘 모르는데, 한국 아파트가 웬만하면 좋습니다. 여러분? 어… 서울 아파트값이 비싸도, 다른 어떤 곳들의 아파트가 정말 구린 걸 생각하면, 일단 한국의 아파트들이 웬만큼 괜찮은 측면이 있어요. 진짜 개구린데 정말 저는 전에, 어 이것도 한참 전인데, 그 당시에도 한 달에 렌트가 1500불이던 스튜디오 아파트에 살았는데, 옆방 사람 방구 소리가 들릴 정도로 벽이 얇습니다. 그런 데인데도 지금은 더 비싸겠죠? 그러니까 나는 분명 아파트에 살긴 하는 건데 거의 방 수준인 거야. 근데 렌트가 그당시에, 뭐 10년 전에, 1500불.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이 집을 사면 샀지, 대개는 별로 아파트든 콘도미니엄이든 원하지 않는 이유가, 그… 그 가격에 비해 구려요, 아파트형이나 콘도미니엄 형태의 집들이. 같은 돈이면 그냥 집을 사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이나 뭐랄까, 아시아 전반이 약간 이런 경향성이 있는 것 같은데, 대도시의 삶에 더 익숙한 국가의 사람들은 아파트형 건물을 훨씬 더 잘 짓고, 실제로 아파트형 건물에 삶으로써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혜택들이 있잖아요?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편의점, 그런 공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상가, 문화, 심지어 녹지 공간이나 한강 공원 같은 자연 및 준자연 환경 등등. 그런데 그런 혜택들이 잘 없고 어차피 차 타고 다닐 거고 어차피 저 옆에 사는 사람은 완전히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사람이라 그냥 집을 사는 게 나은 국가들이 있단 말이죠.

멕시코는 어떤 국가인 것인지? 그것이 좀 궁금합니다. 지금 이 챕터에는 잘 나와 있지 않아요. 그런데 중국 챕터에서는 약간 다른 접근이 나오니까, 그리고 한국은 굉장히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의 나라니까, 틀라텔로코의 주택 단지가 획일적이었다는 점이 이 비극이 생긴 유일하거나 가장 강력한 이유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 챕터에서는, 그것도 참 다측면적이었던 것이, 국가가 획일적으로, 대규모로 개발을 하는 바람에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획일적으로 대규모 조직을 하지 못해서 저항할 길이 없었다는 겁니다. 한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그러면 만약에 국가에서 뭔가를 강제하려 한다면, 아파트에서 조직적 활동이 일어날까?

이것은 특히나, 어… 여러분? 스티븐 킹 님의 이야기 중에 Mist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노벨라로도 있고 영화로도 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거기서 정체 모를 안개가 어떤 마을에 내려서, 거기에 막 괴물이 있고,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고 죽고 막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주인공 무리가 피신하는 장소가 마트입니다. 이것이 참 신박한 것이, 다른 어딘가에 피신했으면 하루 이틀 만에 죽었을 수도 있는데, 마트에 피신해 있었던지라 꽤 오래 살아남은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한국의 대형 아파트 단지, 어, 많은 경우에 주상 복합이잖아요. 편의점도 있고 학원도 있고 미용실도 있고 별거 다 있어요. 저는 언젠가 지나가다가 진짜 괴랄한 경우를 봤는데, 어… 아파트였어요, 아파트였던 것 같은데 무슨 거기에… 산부인과가 있고 다른 병원도 있고 장례식장이었나? 장례식에 관련된 무슨 그런 업체가 있었어요. 그래서 지나가면서 친구들이랑, “야, 저기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오는 데인가 보다” 그럴 정도로, 정말 그 아파트 단지에 모든 게 다 있는 거야. 그럴 정도로 뭔가… 진짜 여러분. 한국 외의 다른 데에서 살던 분들은 그게 너무 당연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있지 않은 곳에서 온 사람들은, 아마 진짜 신기할걸요? 저도 매번 갈 때마다, 뭐, 한 3년에서 5년 주기로 간다고 치면, 갈 때마다 저번보다 더 큰 아파트 단지가 있어. 그리고 그 아파트 단지 하나하나가 무슨 랜드마크처럼, 길 이름이 아니라 그 단지 이름을 말하면 택시가 그리로 가. 이거 굉장히 신기해요. 이 세상에 안 그런 데가 훨씬 많을 거예요.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대규모 단지가 있음은 거주자들에게 강점인가 약점인가? 심지어 한국의 어떤 아파트 단지들은 실제로 역파놉티콘 구조잖아요. 아파트들이 놀이터 등의 공동 시설을 둘러싸고 있잖아요.

또한 이 챕터에서 거론되는 점 중 하나가 피라미드 구조에서 벌어지는 통치입니다. 즉, 높은 곳의 유일한 점 하나에서부터 아래에 있는 수많은, 한마디로 아랫사람들을 통치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 그런데 높이에 대한 이 매혹 역시 모든 시공간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서울에 분명히 있죠. 엄청 높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고층 아파트 가격이 그렇게 비싼 거잖아요. 이거 당연한 거 아닙니다. 다른 데에 가면, 아무리 무슨 뉴욕의 이런저런 펜슬 타워다 뭐다 해도, 제가 느끼기에는, 압도적으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런 데에 살기 싫어해요. 근데 서울에는 분명 높이에 대한 매혹이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 혹시나 그렇게 높고, 그렇게 역파놉티콘스러운 측면이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한다고 치면,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어… 현실적으로는 정부보다 아파트 주민 대표가 와서 빨리 사라지라고 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만약에 그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럼 아까 얘기했던 파니의 과대망상증. 그 과대가 진짜 망상인 이유. 그러니까, 사실은 파니도 자신의 과대성을 어차피 믿지도 않을뿐더러, 그 과대성은 파니 본인에게 굉장히 불편한 망상인 이유. 그것에 대해 파니가 직접 이야기해주다시피 하는 인용문들이 이 책에 나옵니다. 굉장한 망언들.

책 왈. “그가 사망하기 얼마 전인 1990년의 한 인터뷰에서 마리오 파니는 틀라텔롤코를 하나만 지을 수 있었음을 한탄했다. 그는 인터뷰 진행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많은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싶었고, 가난한 동네에 살던 사람들을 모두 퇴거시키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더욱더 많은 주택 단지를 짓고 싶었습니다. 나는 틀라텔로코를 대여섯 개 지을 계획이었는데, 300만 제곱미터가 넘는 증축 건물에 200만 제곱미터의 정원, 그리고 66,000가구를 수용할 수 있었을 터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지은 주택 단지 중 하나에서 엄청난 비극이 벌어졌는데도, 자기가 더 못 지은 걸 한탄했다는 거예요.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자기가 좋다고 여기는 그 형태의 주택 단지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 텐데, 그거 못 집어넣어가지고, 그게 한탄스럽다는 거야.

또한 책 왈, “인터뷰에서 1968년의 대학살에 대해 묻자 파니는 학생들을 비난했다. 학살에 대한 디아스 오르다스 대통령의 정당화를 소름 돋을 정도로 연상시키는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비극의 원인은 “각국 정부에 반대하는 좌파적 경향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데 있습니다. …… 멕시코에서는 올림픽을 며칠 앞둔 상황이었기에, 학생들은 가장 큰 스캔들을 만들기 위해 그 시간과 장소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스캔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틀라텔롤코에는 사람들이 살해되는 장소라는 평판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뭐야. 올림픽을 앞뒀으면 시위를 하지 말란 건가? 아니… 시위의 내용이 무엇이든, 시위라는 게 애초에 정부 사정 봐 가면서 일어납니까? 이게 무슨 바보 같은 말이야. 어떤 사람이 어떤 정부를 지지한다 한들, 다른 사람들이 그 정부의 사정을 봐주면서 시위를 벌일 거라고 여기는 게… 이게 무슨… 바봉봉 같은 말이야. 오히려 내가 지지하는 정부면, 저쪽에서 저렇게 스캔들을 만들기 위해 특정 시간과 장소를 골랐다고 치면, 내가 지지하는 그 정부를 나는 지지하니까, 어떤 이유에서든, 그 정부야말로 그 덫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게 오히려 더 논리적이지 않나?

그리고, 저는 사람이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고, 유토피아적 환상을 심지어는 논리스러운 것으로 포장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거대 주택 단지를 건설해 놓고서, 이상한 데서 갑자기 논리를 버리는 게 특이하단 겁니다. 아니 누가 시위를 정부 사정을 봐가면서 해. 정부 사정 안 봐주니까 시위지. 그러니까 하여간에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거잖아요. 그럼 마음에 안 드는 거죠 뭐. 그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갑자기 왜 시위라는 것의 개념 자체를 모르는 사람처럼 구냐는 거죠.

그런데 심지어 또. 여러분? 파니의 대서사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책 왈. “1985년 9월 19일 오전 8시 직전에 멕시코시티는 리히터 규모 8.1로 측정된,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한 지진에 흔들렸다. 120초도 채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십 개의 사무실 건물과 아파트 단지가 무너졌다. 공식 사망자는 4천 명에 이르렀으나, 실제로는 최대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많은 이들이 보고 있다.

지진은 파니의 많은 건물을 무너뜨렸다. 후아레스 다가구 주택의 여러 블록이 무너졌고 (도판 3.2 참조), 틀라텔롤코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 건물 중 하나인 에디피시오 누에보 레온도 무너졌다.

주택 단지들의 높은 거주 밀도는 틀라텔롤코에서 무시무시한 수의 사상자로 이어졌다. 지진 이후 시작된 조사에 따르면, 틀라텔롤코의 건물들은 부분적으로는 잘못된 건축 기술로 인해 무너진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회사는 주택 단지의 건설에 고급 자재 대신 조악한 자재를 사용해 수익을 늘린 듯했다. 건물의 토대는 필요한 만큼 견고하지 않았고, 어떤 경우에는 건물을 지지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적은 수의 기둥이 사용되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홍보했던 필로티의 사용은 멕시코시티처럼 지진에 취약한 도시 지역에는 적합하지 않은 선택으로 판명되었다.

수사관들은 시 공무원부터 도급업자들, 그리고 아마도 파니 본인까지도 촘촘히 얽혀있는 부패의 망을 폭로했다. 틀라텔롤코에 세워진 건물들이 붕괴한 책임에 대해 묻자 파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1985년 지진으로 건물 중 하나가 무너졌을 때를 기억합니다. 구조적 보강재가 골재와 주요 콘크리트 구조물에 제대로 결합되지도 않은 금속 구조물로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관리 감독의 소홀이 있었습니다. 내가 노동자들을 감독하고 건물을 제대로 보강했는지 확인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에 이 중 일부는 내 잘못인 것 같습니다.””

파니 이 사람은 거의 뭐… 이 사람 어… 이 사람한테 왜 이렇게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영혼 레벨에서 분석해서 논문을 써도 될 정도로, 거의 뭐, 건축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폭망을 겪기 위해서 잠깐의 성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질 정도로. 아니. 집 지으려고 했더니 유적 나와. 집 지어놨더니 거기서 사람 죽어. 그러고서 또 그 사건 지나갔더니 그 지역에 지진이 난다고? 세상에.

그런데 이것이 그 사건 속에 있었던 사람들한테 매우 물론 비극인 가운데, 파니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좀 놀랍지 않은 이유가, 이 사람 말 좀 들어보세요. “이 중 일부는 내 잘못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일부만 파니의 잘못인 게 맞습니다. 절대 파니 혼자 모든 책임을 다 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보다는 이 사람의 이… 우선순위가… 너무 빤히 보이지 않아요? 얘는 건물을 지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은 그냥 퓨어 예술 있죠? 순수 예술. 아무 실용성이 없어도 되기에 실용적인 그런 순수 예술. 그거 해야지. 이렇게 막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명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그런 직업을 가지면 안 되는 인간입니다. 의사보다 더해요. 건축가가 가진 영향력은 의사 간호사보다 더하다고요. 의사 간호사는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1:1로 환자를 대하잖아요. 그런데 집을 짓는 사람이 이런 우선순위를 갖고 있으면, 거의 뭐… 어… 이 챕터를 읽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파니에게 끼인 마의 역사를 쫓아가는 것일 정도로, 너무… 너무 특이한 케이스라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과대망상증자로 언뜻 겉보기에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은 과대의 반대인. 매우 작은 자기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아까의 그 인용문은. 자기한테 아무 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인터뷰예요. 이런 거대 건물을 지어놓고서, 거기서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 나갔어도.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니가 막 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기진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뭘 발명하거나 짓거나 만들어냈을 때, 그것을 타인이 어떤 용도로 쓸지 알 수 없고, 책임을 질 수가 아예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칼 만드는 사람이면, 그 칼로 누가 다른 사람을 죽여도,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내가 인터넷의 발명가면, 인터넷에서 누가 사기 치고 다녀도, 어떻게 내가 그걸 다 책임져요.

그러니까 파니가 틀라텔로코 주택 단지를 지었어도, 거기서 사람들이 아무리 죽었어도, 파니더러 무슨 실질적인 책임을 지라는, 그런 건 아닙니다. 질 수가 없어요. 애초에 파니가 그 정도 힘이 있다고 제가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과대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지만, 과대도 없고 그냥 대도 없는 아주 조그마한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비극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 말고도, 파니는 아까 초반에 언급한, 그… 유토피아적 신에 대한 자신의 어떤… 자기도 사실은 잘 알고 있는. 자기가 유토피아적 신이 아님을 아는 데서 나오는 처절함이 있었어요. 그걸 결국 끝까지 용해를 안 하고 죽은 모양이에요. 뭐냐 하면, 파니가 딱 같은 행동을 해도, 이렇게 처절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에너지적으로, 이 사람은 굉장히 작은 에너지, 그래서 건축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작은 에너지를 지녔어요.

제가 건축가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것이 얼마나 막연한 로망인지를 깨우쳐주는, 그런 인물. 그러니까, 정말로 제가 생각하는 그 모든 건축가의 로망의 현현인 건축가도 있을 수 있겠지만, 파니는 그것들이 아니라서, 완전 그 반대의 현현이라서 건축가가 된 거 같은? 마치 뭐랄까, 스스로가 못생겼다고 생각할수록 예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할수록 유식해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건축가라는 뭔가, 남의 주거 지역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은 그런 어떤 결핍의 인물?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 챕터에서 파니가 다뤄지는 방식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고요, 기본적으로 제가 떼를 언젠가는 무서워하진 않게 될 수도 있지만, 좋아하게 될 것 같진 않거든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서 그런지 파니라는 인물이 정말… “왜 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 느낌이 가장 큽니다. 학생들이 죽는 비극까지 파니가 예측할 수는 없고 할 필요도 없지만, 왜 사람들이 저기서… 왜 잘 살 거라고 여긴 거야? 당최가. 차라리 뭔가, 잘 살 거라고 여긴 게 아니라 그냥 최고효율, 최저비용, 이걸 따졌다고 하면, 그러면 뭐, 아, 그럴 수 있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파니는 뭔가… 대단한 의미. 대단한 상징. 그런 걸 바랐던 거예요. 그냥 자기 좋아서 이 건물을 지은 척하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온 세상이 자기를 찬양해주길 바랐어요, 이 건축가는. 그것은 폭망의 길이다.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마리오 파니. 그냥 슈방구 같이 느껴진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텐데 그 중 한아임한테 제일 큰 이유는, 아무 논리도 이성도 아니고, 한아임의 건축가에 대한 로망에 파니가 큰 해를 끼쳐서 슈방구로 느껴진다.

사람이 자기를 다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이 정도로 모르는 건 대단한 노력이 깃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틀라텔로코에 파니가 건물을 지으면서 아주 다방면적으로, 어… 건축적 철학적 논리적 감정적 영성적, 아주 다방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여러 번 계속해서 드러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몰랐다는 게. 심지어. 그냥 인터뷰를 하지 말지. 정말 자기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 인터뷰 따위 안 한다고 해도 뭐, 할 말 없잖아요, 외부인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그걸 또 인터뷰를 했어. 그러니까 이 사람은 하여간에 누가 제발 자기를 떠받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왜 안 해주냐 이거야. 계속. 너무 슈방구고.

제가 기억하기로 <누아르 어바니즘> 챕터 중에 이렇게 한 명의 특정 인물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며, 특히나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마리오 파니의 경우가 유일한 것 같고요. 아임 드리밍 팟캐스트 전체에서도 유일한 것 같습니다. 픽션, 그러니까 기승전결이 있어서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창작자의 입장에서 모든 설명이 깔린 경우에 독자 혹은 관객으로서 얘기를 한 적은 많았지만, 실제 존재하는 사람을 이렇게 실명 거론하면서 저 사람 왜 저래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특히나 실존 인물의 인생을 두고 영혼 레벨에서 이야기한 건 진짜 처음이네요. 정말이지 파니의 삶이. 네. 파니도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이건 집단논리, 어떤 다수의 논리, 대규모 논리, 그런 걸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파니 혼자만이 파니가 뭘 느꼈는지 보고 알 수 있었을 건데, 안 그러고 죽은 것 같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챕터 3, <누아르 어바니즘> 챕터들 중 가장 무서운 챕터로 생각합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모든 음악

Opening

  • The Play – Instrumental Version – Eli Benacot

Within episode

  • Flint – Cloudy Skies – Instrumental Version
  • Flint – Lovewave
  • Flint – Cicada Killer – Flint Remix
  • Flint – Present in the Past
  • Flint – Near the Lights – Instrumental Version

Closing

  • St. Charles – Mark Yencheske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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