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드리밍

잠 잘 자는 특이 취향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 The Favourite > – < Poor Things > – 존재 – 무너지는 경계와 한계 – 생존과 구원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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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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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avourite >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고 혹시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 The Favourite > 하고 그전에 이 감독이 찍은 영어 영화는 < Lobster> 가 있고 더 최근 작품으로는 영어로 된 것 중에 < Poor Things >, <가여운 것들>이라고 한국어로 번역돼서 제목이 나온 것 같은데 <가여운 것들> 제목이 제목 번역이 너무 잘한 것 같아요.

오늘 주로 얘기할 영화는 < The Favourite> 이지만 <Poor Things >를 좀 얘기하고 싶은 게 < The Favourite > 이 영화만 보면은 그냥 아 조금 괴랄하긴 하지만 어 적정 적정선의 소화 가능한 괴랄함이다라고 여겨지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이 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뭐랄까 이 사람의 감독관? 세계관이 그중에서, 제가 본 이 세계의 영화, 영어로 된 란티모스 감독의 세 개의 영화 중에 < The Favourite >이 괴랄하긴 한데 그나마 정상이에요. 말하자면 정상이에요. 그러니까 소화 가능한… 란티모스 것 중에 제일 메인스트림이라고 봐도 될 것 같은 것이 < The Favourite >인데. 

이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해요. 이 < The Favourite > 영화를 좋아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좋아하는데 이 란티모스 감독 거를 보고 싶어 가지고 이제 < Poor Things >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영화관에서 볼 건 아니고 이제 어딘가 어딘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볼 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이제 얼마 전에 아마존에 프라임에 잠시 포함됐던 기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 Poor Things>를 봤어요. 봤는데. 

이것은… < Poor Things >는 진짜 한 번 봤거든요. 한 번 봤는데 한 번 본 걸로는 도저히 얘기를 시작을 어디서 할 수, 어디서부터 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그러니까 난해하긴 한데 제가 느끼기에는 뭐 도저히 이게 뭔지 모르겠다 이런 소위 이제 안 좋은 난해함 이런 건 아니고요. 너무 너무 이게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괴랄하고 신박하다, 이런 느낌의 난해함인데 한 한 두세 번은 더 봐야지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될지 알 수 있는 영화가 < Poor Things >, 이 < 가여운 것들 >인 것 같고. 

반면에 < The Favourite >은… 그냥 재미있어요. 일단 그냥 재미있고 또 별로 그렇게 뭐 난해하다 이런 느낌도 없습니다.

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찍었던 < 랍스터 >가, <랍스터>라는 영화가 말 그대로 랍스터가 되는 그런 그런 내용이었거든요. dj… 무슨 제가 지금 < 랍스터 >를 본 지 오래돼 가지고 정확한 세세한 것들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premise 자체가 영화의 시발점 자체가 싱글로 남는 사람들이 동물로 변하는 그런 얘기였어요. 그러니까 말도 안 되죠. 

무슨 트레일러 오랜만에 봤더니 거기에 이제 남자 주인공이 그 싱글들이 모이는 그런 어떤 뭐랄까… 약간 보호소 느낌의 그런 곳에 가가지고 강아지랑 같이 거기에 들어가서 이제 자기 짝을 찾으러 가는데 그 강아지가 자기 그 동생인지 형인지 브라더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브라더는 브라더는 짝을 못 찾았어. 인간일 때 짝을 못 찾아서 개가 된 거예요.

이 설정 자체가 지금 듣고서 “이게 뭔 말이야” 이러시는 분도 계실 텐데 그 정도로 란티모스 감독이 “이게 뭐야” 이런 내용을 한단 말이죠. 찍는단 말이죠. 

그리고 < Poor Things>도. < Poor Things>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될지 그 그 이야기의 그 초반 줄거리 자체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될지. 그러니까 뭐… 아… 

어떤 미친 과학자 같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자살한 것으로 여겨지는 여자를 이제 데려와서 죽은 상태 거의 죽은 상태로 데려와서 그 여자를 갖고 무슨 실험을 하는데, 그 여자가 이제 뭐 어떻게 되고 뭐 이런 얘기인데. 

< The Favourite >은 진짜 메인 스트림 영화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란티모스 감독 것 중에 < The Favourite >은 초메인스트림. 완전 그 아 저기 블록버스터를 노린, 거의 그런 그런 급의 영화고. 

< Poor Things >는 진짜 난해함의 끝 가장자리까지… 난해한데 그래도 분명 분명 뭔가 그런 난해한 걸 생각하지 않아도 즐길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어요. 많아요. 그래서 제가 이 감독이 너무 이 스타일이 너무 저는 좋더라고요.

그리고 포스터 찍은 걸 봐도… 세 영화 다. < 랍스터 >도 그렇고 < The Favourite >도 그렇고 <가여운 것들>도 그렇고 이상해요. 그러니까. 뭐 이렇게 막 배우를 멋있고 막 이렇게 나오게끔 만든 포스터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거를 막 “나는 되게 난해해” 막 이런 느낌도 아니에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냥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인 거예요. 이 감독이, 이 감독과 이 감독이 하는 이야기가 원래 난해한 것일 뿐이지 이 사람이 막 이거를 더 막 아무도 이해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만들었다는 느낌은 없어요.

그런데 이제 이런 얘기들을 왜 하면서 이 에피소드를 시작하냐 하면 < 가여운 것들 > 영화를 보면… 존재적인 그런 의문이 이 영화, 이 감독의 영화들에 항상 나오는데. 그게 그게 만약에 이 영화들이 난해하게 여겨진다면 그러한 의문, 존재적 의문들이 되게 표면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감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드러나 있기 때문에 난해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 가여운 것들 > 경우에는 만약에 제가 근 몇 년간 막 이렇게 저 자신을 궁금해하는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은 < 가여운 것들 >을 보고 이게 도대체 뭔가 하나도 아예 이게 어디서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되고 뭘 느끼라고 만든 건지 몰랐을 것 같아요. 그냥 이게 무슨, “이게 뭐야.” < 가여운 것들 >을 보고서는 “이게 뭐야” 싶었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해석 가능성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특히나 이 <랍스터>랑 < The Favourite >이랑 < Poor Things> 를, 세 영어로 된 이 감독의 영화를 놓고 봤을 때는 정말로 존재적 의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인 거예요.

근데 < The Favourite > 같은 경우에는 이제 내용이 뭐냐면은 < The Favourite >은 일단 18세기 영국이라는 실존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공간이 배경인 데다가. 실존한 것으로 이제 모두가 지금 이 타임라인에서 납득하고 있는 인물들을 또 기반으로 한 데다가. 그러니까 판타지 요소가 없어요.

그러니까 괴랄하긴 한데 일반적으로 “이것은 환상이다 sf다라고” 말하는 판타지 요소가 없고. 

앤이라는 영국의 여황, 여황이란다. 여왕. 18세기 영국의 앤이라는 여왕. 그 여왕하고 여왕의 친구인 귀족 부인 사라. 그리고 사라의 어떤 사촌인데 먼 사촌인가 본데 몰락한 귀족인 애비게일이라는 이 세 여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 The Favourite >이에요.

그래서 이제 여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군분투하고. 여왕 본인도 도대체 자기가 주는 총애가 뭔지, 이게 이게 뭔지, 뭐 이러한 뉘앙스로 펼쳐지는 것이 < The Favourite >이에요.

제목도 되게 분명하잖아요. < The Favourite >이니까 누군가가 누군가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뭐 이렇게 이차저차 하겠거니, 하면서 이제 줄거리도 줄거리도 간단해요. 사실 스포일러랄 게 없어요. 그냥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여왕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여왕의 총애를 이제는 못 받았더라.

그렇다면 이제 누가 총애를 받나. 뭐 이런 이야기에요.

< The Favourite >은 존재론적 의문이 많고… 난해하다고 보면 난해할 수도 있는데 어떤 내용이 난해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연출이 되게 괴랄하다. 이럴 수는 있는데 표면 줄거리가 너무나 인간이 살면서 많이 접했을 그런 줄거리라서 이제 뭐 존재적 의문이 있다면 “왜 사는가?” “무엇을 하며 사는가?” 이 정도의 존재적 문제인데. 

< Poor Things >를 볼 때는 그 정도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왜 사는가 무엇을 하며 사는가가 의문이 아니라 “누가, 누가 사는가? 삶을 사는 자는 누구인가?” 내지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내가 내가 누구인가를 넘어서서 나는 무엇인가를 건드리는 걸로 저는 해석을 했거든요. 그 < Poor Things> 처음 봤을 때. 

그러니까 거의 제가 해석하기로는 거의 이제 해탈한 자가 나와요. 근데 그 사람이 이제 해탈한 그 경로와 그 사람이 거의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에요. 거기에 나오는 그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고 그러니까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데 그 사람이 겪은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그 사람이 이 세상을 관찰하는 방식과 해석하는 방식이 너무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마치 게임에 들어 있는 아바타인데 아바타가 깨어난 거야. 진짜 말 그대로. 그런…게 해석하지 않고서는 저는 < Poor Things >가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가 없거든요.

근데 < Poor Things >는 지금 아스트라 목록에 들어가 있진 않고요. 아마 너무 최근 영화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Poor Things >가 실제로 훨씬 < The Favourite >보다 훨씬 난해하고… 정말 얘기하고 싶은 영화인데 몇 번 더 봐야 될 것 같아요. 좀 오랜 기간 두고 좀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은 영화예요.

그런데 하여간에 저기 아스트라가 뽑아준 목록에 < 랍스터 >도 들어 있고 < The Favourite >도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아스트라의 기준이 좀 슈방구인 측면도 있긴 했지만 란티모스 감독 거를 제가 원래도 좋아했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아스트라 말이 그 측면에서는 맞습니다. 이게 제가 되게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러한 서사들이 아주 괴랄한데 어 완전 판타지, 이제 반지의 제왕 류 판타지보다 제가 훨씬 좋아하는 식의 판타지 내지는 SF적 이야기들이에요. 왠지 현실 같은데, 현실 같은데 현실이 아닌 것이 < 랍스터 >와 < Poor Things >고 < The Favourite >도 분명 현실이긴 한데… 

만약에 이것이 그 줄거리 자체, 그러니까 그 플롯 자체, 그러니까 이것이 펼쳐진 다음에 다음 사건이 생겨났고 그래서 또 다음 사건이 생겨났고 이런 그것이 중점이 되는 영화가 < The Favourite >이었으면은 저는 막 이렇게까지 막 “어머 이게 뭐야 너무 좋다” 막 이러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근데 < The Favourite >은 실제로 예전에 몇 번 봤을 때도 너무 좋았고 이번에 몇 번 봤을 때도 볼 때마다 볼 때마다 뭐가 새로운 게 있더라고요.

되게 좋아하는 영화고. 되게 웃겨요. 웃긴데 그 웃긴 게 웃긴 순간에는 확실히 웃겨요. 그런데 그것이 항상 슬픔이나 어떤 폭력적인 거의 전 아니면 후에 좀 오는 것 같고.

그래서 그리고 특히 < The Favourite >은 엔딩이 울적해요. 그러니까 < Poor Things >는 엔딩이, 아 저는 < Poor Things > 엔딩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거 스포일을 하자면 < Poor Things >에서 해탈한 자처럼 나오는 그 주인공이 자살한 여자예요. 그 처음에 제가 얘기했던 그 미친 과학자가 어떤 자살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그 여자를 이제 뭐 갖고 실험을 하면서 그 여자가 살아나요. 살아나는데 그 여자로 살아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른 무언가로 살아나요. 그러면서 이제 그 여자가 왜 자살을 했었고 이런 게 이제 끝부분에 가서 드러나는데. 

그 여자를 도저히 사람일 수 없게 했던 그런 정황들이 있거든요. 그 중심에 그 여자의 남편이 있어요. 근데 전남편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그 여자는 이제 그 여자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여자의 기억도 없고 그 여자…의 이야기를 자기가 이해할 순 있지만 그 사람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사실 전남편이라는 것도 되게 애매해요. 그 남편이 내 남편인 적이 없는 거야. 근데 그 남편은 완전 사이코패스고, 그 여자를 단지 그 껍데기가 그 여자의 탈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다시 괴롭히고 다시 가두고 막 그 신체를 훼손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어… 맞아요, 신체를 훼손하려고 해요.

그래가지고 이제 여차저차해서 그 여자가 그러한 운명을 피하고 그 남자를 아주 조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데 제가 좀 걱정했던 게 제목이 < Poor Things >여 가지고 설마 저 새끼를 가엽게 여겨가지고 저 새끼를 또 무슨 불쌍한 중생을 구하고 막 이딴 식으로 끝나나? 했는데 아닌 거예요.

그래서 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들이 그 괴랄함의 선이 있어요.

그러니까 슬프거나 웃프거나 폭력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절대 어떤 패배주의로 끝나지 않고 < Poor Things >의 경우에는… 

그 영화가 이제 미친 과학자가 자살한 여자를 데려다가 다시 살려내고 이런 어떤 프랑켄슈타인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영화 내내 계속 그 어 뭐 개의 몸을 했는데 뭐 닭의 머리를 하고 있는 동물, 막 이런 이런 어떤 그런 키메라라고 하나요? 말 그대로 키메라라고 하나요? 이렇게 이 두 개의 같지 않은 개체를 이렇게 말 그대로 이렇게 바늘질을 해가지고 얘네를 이렇게 붙여놓은 그러한 생명체들이 막 등장해요.

등장하는데 나중에 가서는 엔딩에 가서는 그 전남편도 아닌 전남편을, 걔를 제가 기억하기로는 머리를 잘라다가 염소의 몸에다가 붙여가지고 그 새끼가 염소의 소리를 내면서 풀을 뜯어 먹는 그런 그런 엔딩이, 끝난, 그런 엔딩으로 끝나는데. 

그래가지고 이 그 많은 < Poor Things > 의 난해한 가운데에도 엔딩이 너무 즐거워 가지고 저는 너무 좋았거든요. 아니 저런 새끼를 또 착한 척한답시고 살려놓으면은 저는 그런 영화를 정말 싫어해요. 그런 이야기를 진짜 싫어하는데. 절대로 아 역시 역시 란티모스는 내가 좋아하지. 란티모스 씨는 절대 그딴 엔딩을 하지 않고. 란티모스 씨가 말하는 poor things, 가여운 것들은 그런 그런 의미가 아닌 것으로 일단 일단은 제가 너무 흡족해 하고 있는데. 

하여튼 그 영화는 다시 몇 번 봐야 되고요. < The Favourite >은 그런 정도의 난해함은 아닌 거예요. 그래서 영화의 99% 동안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막 슬프고 웃기고 괴팍하고 폭력적인 게 있지만 아 즐거워요.

그러다가 근데 이제 엔딩이 급격하게, 급격하게 슬프고 급격하게 막 이제 “아 인간은 왜 사는가? 뭐 때문에 사는가?“ 이러면서 이제 끝나거든요.

그래가지고… 좀 약간 지금 이것저것의 영화들을 얘기를 했는데. 

하여튼 란티모스가 좋다 좋고 < The Favourite >은 그중에서 “진짜 이건 너무 메인 스트림이다. 아 이거는 진짜 대중적이고. 아 블록버스터지.” 이런 영화인데 아니나 다를까 엔딩이, 엔딩이 어 슬프게 끝난다.

그러니까 완전 tragic 엔딩 이런 게 아니고 그냥 이렇게 이렇게 막 “엔딩인가?” 이렇게 끝나요.

그리고 또 < The Favourite >이랑 < Poor Things >의 공통점이 < Poor Things >는 완전 주인공이 엠마 스톤. 배우 엠마 스톤이고요. 이 < The Favourite >은 세 명의 여자를 중심으로 하는데 그중 하나가 엠마 스톤입니다.

제가 엠마 스톤을 또 좋아해요. 그냥 그냥 이렇게 그래서 < The Favourite >을 안 좋아하기가 되게 어려운 저한테는 안 좋아하기가 어려운 영화인데. 엠마 스톤을 옛날부터 저기 뭐냐 < Easy A >인가? 그 엠마 스톤 초창기 때부터 좋아했어요. 근데, 그냥 제가 생각했을 때 너무 예쁜 얼굴이에요. 그냥 최고로 제가 너무 예쁘다, 정말 예쁘다라고 생각하는 얼굴인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는데 최근에 알게 된 게 제가 좀 개구리 상을 좋아하더라고요. 엠마 스톤 정말 똘망똘망하고 예쁜 그 개구진 개구리상 느낌이 있는데 그 얼굴을 제가 너무 좋아해가지고, 그냥 사실 그래서 < The Favourite > 같은 영화를 보면 그냥 좋은 거예요. 그냥 그냥 예쁜 사람 보면 그냥 좋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굉장히 저 편견이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 Poor Things >랑 < The Favourite >을 좋아하는 데에는 지극히 편견이 들어가 있고. 

아무튼 그래서 < The Favourite > 얘기를 본격적으로 할 텐데. 사실 줄거리는 진짜 그게 다예요. 그 여왕의 총애를 받는 사라라는 귀족 여인이 있었는데 너무너무 여인, 그 그 사라라는 여인과 여왕은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였던 사이였고 사라의 어떤 친척, 먼 친척 같은 애비게일, 이 엠마 스톤 배우가 연기한 애비게일이라는 여자는 몰락한 귀족이에요.

아버지가… 아버지도 아니야. 아버지라는 탈을 쓴 작자가 어 카드 게임이랍시고 하다가 그거에서 돈을 잃어가지고 15살 때 에비게일을, 15살인 에비게이를 팔았대요. 그래서 이제 귀족도 아니고 뭣도 아닌 거예요. 이제 그래서 영화 내내, 영화 내내는 아니고 영화의 이제 초중반까지 시녀로 나오고 약간 무시당하면서 나옵니다.

어… 그런데 이 세 명의 여자가 주인공인 것과 이런 어떤 귀족이기도 한데 귀족 아니기도 하고 나중에 끝에 가서는 애비게일이 또 다시 귀족이 되거든요. 머리를 잘 굴려가지고. 이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줄거리는 되게 간단한데 그거를 그렇게 여러 번 봐도 재미있는 이유가 너무… 이게 되게 분명한 것 같은 가운데도 하나도 분명한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 신분 신분에 관련된 것 그게 첫 번째 레이어고 두 번째 레이어가 사랑이 뭔가? 사랑이 뭔가가 맨 처음 씬부터 나와요. 이 의문이. 사랑이 도대체 뭐고 사랑의 한계는 어디인가. 

이 여왕 캐릭터가, 그리고 실제로 실존하는 인물을 기반으로 했다고 하는데. 이 여왕이 토끼를 키웁니다. 자기 침실에 토끼를 키워요. 그러면서 이제 자기의 가장 총애하는 사람인 사라더러 토끼들한테 인사를 하라고 하는 게 가장 첫 씬에 나와요.

여왕이 사라더러 “토끼들한테 인사해. 내가 키우는 토끼들한테.” 그랬더니 사라가 안 한대요. 소름 끼친다고. 그래서 이제 처음에 우리는 모르죠. 왜 이게 소름이 끼치나? 토끼한테, 이 귀엽게 생긴 토끼들한테 인사를 하는 게. 그러면서 사라가 하는 말이 “나는 너, 여왕을 사랑하지만 토끼한테 인사를 할 순 없다.”

그러면서 “Love has limits.” 이래요.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 그랬더니 여왕이 “It should not.” 이래요. 사랑에는 한계가 없어야 된다.

이것이 영화 내내 계속 대사로 나옵니다. 누군가가 누군가한테 이게 사랑이야 라고 하고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구한테 이게 사랑이야 라고 하면은, 저 사람은 또 이건 사랑이 아니야 라고 하고. 이… 어떤… 정치극으로 보이는 그러니까 여왕의 총애를 누가 얻나로 보이는 이 이야기에서 이 총애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게 되게 많아요. 이러한 경계가 없어지는 것들이. 이를테면 가장 초반부터 도대체 이 왕궁은 내부랑 외부가 분리가 제대로 된 건지. 좀 되게 미개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왕궁이라고 해도 왕궁 바로 코앞까지 막 흙 흙 바닥이고. 거기다가 막 사람들이 뭐 막 배변을 한대요. 저기 무슨 정치적 커멘터리랍시고 이제 배변을 한대요. 그래서 막 진흙에다가 진흙에 진짜 똥이 섞여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시종들 자는 데도 무슨 사람 넣는 창고 같은 데에서 자고 시종들 씻는 방식도 이게 짐승을 씻기는 건지 사람을 씻기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씻기고.

그렇다면 뭐 귀족들은 뭐 되게 안미개한가 싶으면 그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막 왕국 내에서 오리 경주를 합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오리 중에 누가 빨리 달리나, 누가 1등으로 들어오나, 그런 경주를 하고. 

나중에 후반부에는 그냥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막 그 나체인 어떤 사람한테 과일 같은 걸 막 던져요. 근데 그 그 사람도 무슨 뭐 시종한테 그러는 게 아니고 그 사람도 귀족 같아요. 막 되게 즐거워해요. 그 과일 세례를 받으면서. 귀족 남자들끼리 다른 귀족 남자로 보이는 사람한테 막 뭐 토마토인지 오렌지인지 막 이런 걸 던져요. 그러면서 막 그러고 노는 거예요. 이게 이게 뭐야. 이러고 노는 게 뭐야.

그리고 뭐 음식을 먹을 때도 접시에 이렇게 올려져 있을 때도 있지만 그냥 식탁에 식탁에 막 이렇게 음식이 그렇게 그냥 있어요. 이게 이게 이게 실제로 실제로 그 시대에 그랬다는 건지 아니면 이 영화 전반으로 미루어 보건대 비주얼적으로 그렇게 연출을 하는 것이 적합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고,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것이 강조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런 게 되게 많이 나옵니다. 경계가 없어요. 경계가 되게 분명한 것처럼. 그러니까 신분 때문에 무엇을 했다. 뭐 여왕이기 때문에 무엇을 했다. 뭐 이렇게 나오는 가운데에도 다 아무것도 경계가 없어요.

뭐 바깥에 있는 똥 다 그냥 다 그냥 끌고 들어오고, 신발 이 사람들 신발 안 벗잖아요. 그 집 안에서. 다 그냥 왕궁에 그냥 왕궁이 그냥 다 그냥 다 들어오는 거야. 들어오고. 왕궁에 온갖 짐승들과 온갖 뭐 음식이 뭐 그냥 뭐 저기 저 접시에도 안 올려져 있는 음식이 있고. 

그리고 뭐 이렇게 어디 걸어 다니다 보면은 걷는 데 바로 옆은 그냥 그냥 낭떠러지 같이 그냥 쑥 이렇게 쑥 들어가는 그냥… 엄청 이게 거의 뭐 협곡같이 된 그런 그런 되게 위험한 그런 아 참 현대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미개한 구조들이 있고. 

어… 중간쯤에 이제 좀 되게 슬프게 밝혀지는 사연이 이 여왕이 왜 토끼를 안에서 키우는가 하고 들어봤더니 여왕이 토끼가 17마리가 있어요. 17마리의 토끼를 키우는데 알고 봤더니 이 여왕이 17번 임신을 했는데 17명 애가 다 죽은 거야. 너무 끔찍하잖아요. 그러니까 뭐 유산해서 낳은 경우도 있고 살아서 낳았는데 뭐 금방 죽고 이런 경우도 있다고 이제 여왕이 대사를 치는데. 그러면은 그러니까 그 17명 죽은 애들 때마다 한 마리씩 토끼를 이제 키운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사라가 토끼한테 인사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약간 이해는 가죠. 섬뜩하다 이거야. 사람 대신에 토끼를 놨으니까. 그런데 여왕이 사라더러 토끼한테 인사하라고 한 것도 이해가 가죠. 여왕한테 이 토끼들은 자식 대신이니까. 

그리고 나중에 이제 사라랑 여왕 사이에 애비게일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키 모먼트가 사라는 인사하지 않겠다고 하고 관심도 없던 토끼들을 애비게일은 어여삐 여기는 거예요. 그러면은 여왕이 어떻겠어요? 아니 심쿵하지. 여왕은 심쿵하지. 그리고 무슨 그냥 표면 심쿵이 아니고 이거는 뭐 여왕의 존재 자체에 대한 어떤 인정 아니겠어요? 이 토끼들을 누군가가 예뻐해 준다는 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심지어는 토끼가 토끼인지 사람인지도 경계가 희미한 거예요. 이 토끼가 그냥 토끼는 아니잖아요. 그럼 그냥 토끼라고 하면 여왕은 슬퍼서 죽죠.

그래서 되게 선명한 그 이야기 안에 엄청 막 뭐가 양쪽 둘 다 아닌 그런 것들이 담겨 있어요. 근데 그게 또 막 이렇게 막 희미해 가지고 막 흐리멍덩해지는 그런 게 아니라. 분명 이쪽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고, 저쪽이라고 또 다른 사람은 말한다는 데에서 이제 “경계가 흐릿해졌다”라고 얘기하는 거지, 막 이걸 다 뒤섞어 놔가지고 이게 뭐 재미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이런 느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유머 감각이 있어요, 이 영화에, 대사도 되게 재미있는데. 

남녀라는 틀도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없어요. 그러니까 남자들이 되게 화장을 많이 하고 나오기도 하고 여자가 바지를 입고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제 가장 가장 힘이 센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는 남자 중에 한 명이 어 이제 자기, 애비게일을 꼬시려고 하는 자기 친구한테 가발을 빌려줘요. 그 그 시대 남자들의 그 엄청 엄청 치렁치렁한 가발. 여자보다 더 머리가 치렁치렁하게 나와요, 이 영화에서. 한껏 꾸미고 나와요. 막 화장도 엄청 하고 나오는데. 

그러면서 이제 그 정치인이, 힘이 센 정치인, 젊은 정치인이 애비게일를 꼬시려고 하는 자기 친구한테 가발을 빌려줘요. 그 친구가 이제 애비게일을 꼬시려고 어 한껏 그 친구도 막 치장을 하고 가요.

그런데 애비게일은 약간 그 취향이 아닌가 봐요. 그래서 이제 그 그 남자가 꼬시는 데 실패하고 애비게일 방을 나오면서 자기 그 힘센 정치인 친구한테 “애비게일은 이런 거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힘센 정치인이 그 대사가 너무 웃겨 가지고 제가 정확히 말하려고 써놨어요.

어디다 써놨지? 어. “A man must look pretty.”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이 정치인이. 제일 힘센 정치인 중 하나인 남자가. “남자라면 예뻐야지.” 이런 대사가 이 영화에 나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도대체 도대체 이 이 사람들이 너무 긴박해요. 그러니까 궁중이고 저 여왕의 총애를 받지 않으면 나는 낙동갈, 낙동강, 낙.동.강. 오리알 신세인데 또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뭐 하여튼 이 이런 어떤… 생존해야 되는? 그런 문제를 겪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 경계가 없는데 왜 저거 경계를 저렇게 저거는 저렇게 있다고 하지? 그러면서 되게 좀 의아해요. 근데 의아하다고 해서 이게 이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고 막 그게 말이 안 되고 이러는 게 아니고, 분명 나도 저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되게 강하게 들어요, 이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나도 뭔가 분명히 진짜가 아닌 거를 다른 거는 진짜 아닌 걸 알고 왔다 갔다 경계를 넘나들면서, 뭔가 혹시 내가 넘나들 수 있는데도 안 넘나들…면서 못 넘나든다고 우기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애비게일도 애비게일이 물론 십분 이해가 가는 바입니다. 애비라는 작자가 카드 게임에서 얘를 15살 때 팔아가지고 웬 어떤 남자한테 뭐 강간당하면서 산 거예요. 애비게일이. 그러다가 이제 어떤 경로로 빠져나와가지고 먼 친척인 사라더러 “제발 나를 여기서 좀 일을 좀 시켜줘라” 해서 시종 자리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어… 이 애비게일이 만약에 날 때부터 평민이었으면 배운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이거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왜냐하면 평민이라고 해서 “나는 하찮아서 나는 반드시 귀족처럼 살고 싶어야 돼” 이런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제 만약에 애비게일이 계속 평민이었으면 평민으로 그냥 살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근데 문제는, 애비게일 입장에서 문제는 15살 때까지 온갖 뭐 외국어며 글 읽는 방법이며 말 타는 법이며 대화술이며 막 이런 걸 다 익혔는데 애비라는 놈이 돈을 잃고 와가지고 갑자기 어느 날 몰락해버린 거야, 신분이. 그러니 애비게일은 아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물론 시종으로 기꺼이 일을 하려고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거의 무슨 본능처럼, 본능처럼 포착을 해요. 그러니까 영화를 처음에 볼 때는 애비게일이 굉장히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들지만 다시 보면은 되게 절묘해요.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가 사건의 순서와 그 타이밍이 되게 절묘해요. 그 편집의 타이밍이 이거를 직접 봐야지 저 저 순간에 저 사람이 저 표정을 지었고 저 지나가는 저 찰나의 순간에 결정을 한 건지 본능으로 한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이 있는데, 애비게일이 시종에 불과했던 사람으로부터 다시 귀족 여인의 자리를 꿰차기까지 어 거의 정말 무슨 각인돼 있는 어떤 “나는 이래야 한다”는 어떤 아이덴티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영화 내내 애비게일도 그렇고 사라도 그렇고 여왕도 그렇고 “내가 이러한 사람인데… 뭘 어디까지 버리고 내가 이러한 사람이라는 상을 유지할 건지”에 대해서 대사로 드러내 놓고도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보다 보면 왜 왜 저 경계를 다른 경계는 다 넘으면서 저 경계는 안 넘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또 그게 분명히 내가 저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여기 나오는 사람 중에 그 누구도 멍청한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다 다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이 다 이유가 있어서. 이 이유 있음이 아무리 외부에서 봤을 때 “저게 왜 저러지”라고 해도 자기가 이유가 있으면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거는 우리가 다 살아봐서 알잖아요. 내가 내가 괜히 그러겠어? 항상 이유가 있는 건데. 

이 < The Favourite >을 봤을 때 이 사람들이 뭔가 되게 슬픈 순간이 있을 때도 이게 뭔가 완전히 막 이상하게 꼬이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인물들이 되게 굳게 믿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나는 이유가 있어.”

이게 저는 제가 보는 입장에서는 너무 그게 너무 시원해요. 그 막 자기가 자기의 이유를 인정을 못하면서 다른 인물한테 가가지고 막 이거 이해해 달라고 하면 되게 답답해요. 답답한데. 

이 영화에서는… 고민은 하죠 고민 하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는 고민을 하지만 정작 어떤 액션을 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 “나는 이유가 있어. 내가, 나는 이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했어”라는 것이 되게 투철하고. 애비게일하고 사라가 특히나 투철하고. 

여왕은 사라를 총애했다가 애비게일을 총애하는 그런 플롯을 갖고 있는데. 여왕이 좀 막 이제 진짜로 막 엉엉 울기도 하고 막 이래요.

그리고 여왕이 되게 몸이 아파요. 그런데 하 임신을 17번 했는데 몸이 정상인 게 이상하지 않아요? 여러 가지 이유로 여왕이 아파요. 아파가지고, 이 사람이 엉엉 울거나 이러는 게 뭐 이거는 뭐 이 사람이 그냥 징징대는 게 아니고, 아프죠. 아파서 이 사람도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만약에 유약해 보인다면 이 사람도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자기도 알아요. 자기가 아프고 자기는 17번 애를 임신했다가 태어난 애도 있고 뭐 죽어서 태어난 애도 있고 살아서 태어난 애도 있고. 

그런 데다가 이 여왕이 아무리 아파도 이제 정당들이 와가지고 계속 이제 정치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여왕이니까. 여왕을 관두지도 못해. 왜냐하면 이 여왕은 후사도 없어. 후사도 없어. 그러니까 이거 뭐 완전 그냥 여기 사이에 끼어 가지고 이 여왕도 다 이유가 있어요. 자기가, 자기가… 좀 별로여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여왕도… 인정을 하는 것 같아서 이게 아무리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고 하더라도, 그 불쌍한 가운데 진짜 제일 불쌍한 건 내가 되게 불쌍한데 불쌍한 것도 인정 안 해 주는 게 제일 불쌍한 건데, 여왕은 그렇지 않아요.

여왕도 그렇지 않고 사라도 여왕에 대해서 그러지 않고 애비게일도 여왕에 대해서 그러지 않아요. 그러니까 뭐 여왕을 이용하고 그렇게 할 때에도 여왕을 막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는 거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이용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왕을 제일 잘 이해하고, 여왕도 사라랑 애비게일한테서 얻는 게 있죠. 그런데 그게 막 마냥 막 착취하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되게 분명한 것 같은 플롯 가운데에 너무너무 결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막 사라랑 여왕의 관계도 사라가 여왕을 막 주무르는 것처럼 보여요.

다 정치를 다 하는 것 같아요, 거의 막. 그런데 또 그들은 진짜 친구가 맞아요. 진정한 우정이 맞아요. 우정이자 사랑인 게 맞아요. 그리고 그들의 그 유대관계의 깊이는 저처럼 그냥 웬만큼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정도의 깊이 같아요.

그러니까 막 뭐 예를 들어 사라가 막 여왕을 마음대로 막 하면서 이제 막 정치를 하다가 여왕이 어 여왕이 굉장히 아름다운 걸 볼 때 너무 좋아하다가 급격하게 기분이 안 좋아지는 순간들이 몇 번 나와요, 영화에. 아마 자기가 아름다운 걸 너무 좋아하고 보고 싶지만 나는 너무 추한 존재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가지고 그거를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들면은 급격하게 이게 어떤 자기방어성 화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막 그러한 화를 낸 여왕이 사라를 막 싸대기를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라가 그 싸대기를 맞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여왕한테 괜찮다고 하거든요. 그러고서 이제 둘이 다시 막 이제 웃으면서 다시 즐겁게 막 가요. 근데 이게 되게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데 영화에서 너무 다 하나하나 이해가 가고. 

어떻게 보면은 여왕하고 사라는 결혼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둘이 바람을 피운다고 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다르게 보면은 사라가 결혼한 남자랑의 관계가 바람인 거예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이 여왕하고 사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구해준 그런 사이였고 특히나 사라는 여왕을 말 그대로 계속해서 구원해 주고 있는 사람이나 다름없는데. 이 어렸을 때부터 사랑한 이 두 사람은… 얘네가 사랑하는 사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예요. 만약에 어… 그런 어떤 한 사람 대, 1 대 1, “1 대 1 사랑 관계가 사랑이다”라고 봤을 때는 이 사람들이 사랑하는 거고 여왕이 왕이 있었겠죠? 임신을 했었다고 하니까? 여왕이 왕과 맺고 있던 관계랑 사라가 사라 남편하고 맺고 있는 관계는 그 관계가 바람인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누가 누구랑 바람 피웠네“ 이런 생각이 안 드는 이유가 애초에 그런 개념으로 결혼한 게 아닌 것 같아요.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은 게 아닌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하고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러니까 만약에 남녀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원한다고 해서 딱 그 사람이랑 결혼할 수 없는 세계관이잖아요. 그러니까 뭐 뭐 어떤 정치적 이유로 결혼을 하겠죠. 그런데 심지어 여여 커플이면은 어차피 결혼을 못 하는 거란 말이에요. 이 이 세계관에서 이 이 시공간에서. 그러니까 이거는 뭔가 이 사람들한테 “너는 왜 남편을 두고 바람을 펴?” 이런 이게 저는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바람이라는 개념은 내가 자의로 누구랑 1 대 1로 어떤 관계를 맺기로 했는데 그거를 내가 사기치고 그 계약을 위반했을 때 그게 바람인 거지. 그런 관계가 전혀 아닌, 그게 먹히지가 않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도 이게 뭔가 “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이랑 저러지?” 막 이런 생각이 안 들었고요.

심지어는 1 대 1이라는 개념이 그냥 진짜 아예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라가 자기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 남편도 사랑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은, 그리고, 아 그리고 여왕이 그거를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사랑의 정의는 그냥 뭐 “결혼해서 1 대 1이면 끝이지” 이게 애초에 아니었던 것 같고. 

그리고 그게 이 영화의 맨 처음부터 제기되는 의문이기도 하니까. 도대체 사랑이 뭐고 그것의 한계가 무엇이냐. 이게 그냥 겉으로 가장 드러나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의문이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답을 하자면 사람의 수로 한계가 정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이 여왕도 그렇고 사라도 그렇고 애비게일도 그렇고 이게 뭔가 어떤 서류상의 무슨 관계라고 해서 이게 사랑이 되지도 않고 그걸로 국한되지도 않고 얼마든지 그냥 아무랑이나 사랑할 수 있는데. 

주요 의문점은 얘네가 하는 게 사랑이 맞긴 한가 그게 좀 의문이에요. 그러니까 본인들도 좀 의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계속 서로 질문을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들이 이렇게 경계를 많이 넘나들면서 진짜 하나 못 넘는 경계가 생존이라는 경계 같거든요. 이 사람들 지금 남녀 옷도 막 바뀌고, 동성애였다가 이성애였다가 하기도 하고, 결혼한 사람이랑 사랑했다가 결혼 안 한 사람이랑 사랑했다가 하기도 하고, 하여튼 뭐 신분도 바뀌고, 도대체 외부랑 내부의 경계는 있는 거지, 있는 건지, 왕궁에서 뭐 별의별 짓거리 다 하고. 

그러는 와중에 내가 생존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이 사람들이 하는 사랑이 항상 자기들, 자기들 느끼기에도 뭔가 이게 성에 안 차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싶고. 이게 이 < The Favourite >만 봤을 때는 “그런 건가?” 생각에 그냥 그쳤는데 < Poor Things >를 보고서 좀 더 “그게 말하고자 하는 바인가“ 싶은 추측이 됩니다.

< Poor Things >를 보면은 그 미친 과학자가 데려와서 다시 살려낸 그 자살한 여자, 그 여자가 진짜 해탈… 사람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가 그 사람은 이미 한 번 죽었었고 자기가 이미 한 번 죽었다는 기억이 없을 때에도, 아직 기억을 못할 때에도… 그러니까 사실 기억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내 얼굴을, 내 형상을 한 그 여자가 살았다는 걸 본 증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이 여자가 정말 자기 안에서 막 옛날, 자살하기 전의 기억이 막 샘솟아가지고 그거를 자기가 이렇게 막 이렇게 퍼즐 조각을 맞춰가지고 그걸로 자기가 서사를 구성해서 기억을 하는 그런 게 아닌 느낌이거든요, < Poor Things >에서. 

그렇지만 ”내가 옛날에 다른 나로 존재했구나“라는 자각이 있고, 그 자각이 있기 전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실험체, 프랑켄슈타인 같은 실험체인 그 여자는 살아 있는데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요, 정말로. 

그러니까 아바타인데 아바타계에서, 그러니까 게임 아바타가 게임 세계에서 다른 아바타들은 막 막 무슨 전쟁 전쟁 게임이야 전쟁 게임이라 가지고 막 아바타들이 막 서로 죽고 죽이는데, 이 한 아바타만 ”잠깐만, 나 이거 해야 돼?“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살지 않아도 되니까 얘가 되게 계속 살아나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자살해서 사는 건가? 싶은 그런 게 있거든요, < Poor Things >에서. 

근데 < The Favourite >에서는 그거랑 반대로 너무 살아야 되는 거야. 너무 살아남아야 되니까. 그리고 애비게일은 그게 생존하고 완전히 직결돼 있다는 걸 본인도 알아요. 그러니까 나는 15살 때 아버지라는 새끼가 나를 팔아먹었어. 그래가지고 나는 강간당하면서 살았고, 지금 여기 왕궁에서 어떻게 하지 않으면은 나는 다시 이제 길바닥에 나앉아가지고 자기가 대사로도 말해요. 어디 어디서 또 몸 팔면서 어떤 저기 성병이나 옮으면서 그러고 살겠지. 그러니까 너무너무 생존하고 직결돼 있고. 

사라는 좀 더 자기가 뭐 국가를 위해서? 뭐 여왕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게 너무 자기 아이덴티티이기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으려면은, 그러니까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이러이러 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있고. 

여왕도 되게 생존하고 직결돼 있어요. 아니 이 여자는 17번 출산을 했으면은 어… 그 출산만도 넘어서서 그로 인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파요. 그냥 살아있는 게 고난이고. 본인도 말해요. 그냥 그냥 다 suffering이에요.

이 여왕은. 아파요. 그러니까 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뭘 하든 안 하든 너무 그냥 아프니까 살려고 하는 거라가지고. 

이 사람들이 그거를 넘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살려면 이거를 해야 돼”라는 거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그런 경계인가 봐요.

– – –

아무튼 연출의 타이밍이 아주 맛있는 영화고. 그래서 직접 보시면은 더 쾌감이 클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 번 볼 때 쾌감이 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놓쳤던 타이밍이 저기 있었다는 걸 발견하는 게 되게 쾌감이고. 

경계가 희미해진다. 그러나 엄청 분명한 경계는 생존. 그러니까 생존과 사랑이 같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되게 정형화된 틀이었을 수도 있었는데 나머지들이 다 무너지기 때문에. 이게 뭐 예를 들어 뭐 여왕을 간호하는 건지 섹스를 하는 건지 경계가 희미하고. 정치인지 연애인지도 희미하고. 이게 질투인지 학대인지도 희미하고. 배신을 했다면 누가 먼저 한 건지도 희미한데. 

이 희미한 게 양쪽이 다른 해석을 하니까 희미한 거지 “실제로” 희미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뭐 그러니까 내가 뭔가를 하면서 “어 나는 내가 뭐 하는지 모르겠어” 이런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이 영화가 그래서 진짜 아 한아임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과 캐릭터들과, 자기가 뭘 왜 하는지 알아요. 고민은 하지만 뭘 했을 때 “어 근데 그거 나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 막 이 진짜 저는 정말 너무 싫어하는데 그런 게 없어요. 하나도 없고. 다 이유가 있고. “너는 그렇게 이해했지만 나는 그거였어”라는 게 굉장히 확실해서. 

희미한 건 내가 모든 걸 관찰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게 뭐가 뭔지 모르겠다”인 거지 이 내부의 인물들은 너무너무 아주 쌈박하게 살고 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생존하려고 막 이것저것을 하는 게 되게 낙관적이에요.

이 영화가 막 17번 출산했는데 애들이 다 죽었다고? 그리고 뭐 애비게일 아빠가 애비게일을 팔아넘겼다고? 그리고 뭐 이제 사라가, 사라가 제일 되게 평탄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사라도 바빠요. 잠도 못 자고 정세를 이렇게 살피나 봐요. 여왕도 아프니까 사라가 되게 대신하는 게 많고. 나중에는 이제 애비게일이 사라를 엿먹이는 바람에 사라 얼굴에 엄청 큰 흉터가 생겨요. 그래서 사라도 이렇게 막 편하지만은 않아요.

근데 그런 어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의 낙관이 엄청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것은 이게 이게 정말 전쟁 영화 내부의 아바타가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낙관 같고 < Poor Things >를 보고 나서는 더 그러니까 < Poor Things >를 보고 나서 < The Favourite >을 다시 보니까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그 < Poor Things>에 나왔던 주인공은 게임에 있는데 게임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근데 그러면서도 < Poor Things >의 주인공도 그 저기 해탈 좀비가 된 게 아니고 오히려 자기가 이거를 다 관찰하는 입장이라가지고 아주 아름다움을 아주 깊게 느끼고 슬픔도 아주 깊게 느끼는 캐릭터였어요. 그 < Poor Things >에 나온 주인공이. 굉장히 정말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인데 그 < Poor Things >가. 

근데 < The Favourite >도 약간 연결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직접적인 플롯 상의 연결은 아니지만 같은 탈을 쓴 엠마 스톤이 < The Favourite >에서 하는 행동과 < Poor Things >에서 하는 행동이 굉장히 달라서 그거를 보는 맛도 있고. 

어… 도덕성에 대한 아이디어가 무너진다는 것도 되게 시원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도덕성은 어 가짜예요. 그게 자기가 생각하는 도덕이 있는 거지. 예를 들어 현실 세계에서도 누가 무슨 일을 하면은 그게 가족에 불명예스러워서 죽이는 게 도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죠? 그거 도덕입니까? 근데 그냥 자기한테만 도덕인 거지. 사실 도덕성은 절대적인 게 아니고 가짜란 말이죠.

그래서 그런 거를 이 캐릭터들이 무너뜨리는 걸 볼 때 되게 시원해요, < The Favourite >에서.  왜냐하면 생존, 만약에 정말 극명한 게 있다면 생존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넘어설 수 있는 건 맞는데 그거를 넘어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명해서. 

그러니까 아니 아바타가 게임에서 로그아웃 하면 끝난 거잖아요. 그거는 의심의 여지가 없잖아요. 도덕성이랑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제 뭐 애비게일이든 사라든 누구든 도덕성을 버리고 “자기가 누구인가”를 유지하려고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게 아주 시원해요. 많은 것들이 무너지기 때문에 시원해요. 

그리고 거의 마지막 하나 남은 것 같은 게 생존인데, 생존이 안 무너지는 거는 좀… 이해가 너무 가고. 그러니까 특히 이 캐릭터들의 배경을 봤을 때. 

그래서 아마 < Poor Things >에서 해탈한 것으로 나오는 캐릭터가 한 번 죽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 번 죽지 않고서는… 이게 뭐 말 그대로인 것으로 < Poor Things >에는 나오지만 정말 리터럴리 죽으려고 했는데 못 죽은 걸로 나오지만.

못 죽은 것도, 못 죽은 거라고 볼 수가 없는 게, 그 기억이 없어요. 그러니까 같은 탈을 쓰고 있는데 그 기억이 없어서 죽은 거… 죽은 게 맞다고 볼 수도 있고. 그런데 죽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기 때문에 < The Favourite >에 나오는 사람들이 죽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물론 이해가 갑니다.

어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이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사랑에 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내가 뭐 이거를 사랑하고 한계가 여기까지고라고 말을 하더라도 어… 한계를 넘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엔딩이 아까, 엔딩이 되게 “하 이게 무슨 엔딩이지?” 싶은 엔딩이라고 했잖아요. 그게 무슨 엔딩이냐면은. 

일단 어떤 상태냐면은 애비게일이 성공적으로 사라를 엿먹여서 사라는 쫓겨났어요. 사라가 궁중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사라 남편이 여왕을 위해서 이제 뭐 전쟁에도 나서고 그랬는데, 전쟁을 심지어 이기고 돌아왔는데, 정치 싸움에서 져서 사라랑 사라 남편은 이제 추방당하게 생겼어요. 다른 나라로 추방당하게 생겼어요. 

그 와중에 이제 애비게일은 완전히 여왕 옆에서 여왕을 주무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고 여왕은 엄청나게 아파졌어요. 그러니까 여왕은 이제 막 얼굴이 막 다 마비되고 이렇게 사지가 거의 마비되고 눈도 거의 안 보이고 막 이런 상태인데. 

그 상태에서 애비게일이 여왕의 침실에서 여왕은 침대에 누워 있고 애비게일이 책을 읽으면서 여왕의 토끼들 중 하나를 발로 이렇게 밟는 장면이 나와요. 근데 죽일려고, 죽을 만큼은 아니고 토끼가 아파서 끽 소리를 낼 만큼 밟다가 그만 밟아요.

근데 이게 애비게일이 처음에 토끼를 귀엽다고 했을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거짓이 아닌 것 같은 표정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애비게일이 토끼를 귀여워하는 사람에서 토끼를 밟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사이에 애비게일이 결정하는 씬이 나와요. 애비게일이 대사로 말하는 씬이 나와요. 나는 내 모럴리티를, 내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 어떤 생존을 희생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는 장면이 대놓고 나와요. 그래서 그러니까 초반부의 애비게일은 후반부의 애비게일이 아닌 것처럼 나오는데. 

그거를 그 소리를 여왕이 들어요. 토끼가 끽 하는 소리를. 여왕이 그 토끼 밟는 애비게일을 본 것처럼 나와요. 근데 막 아주 명확하진 않아요. 그 상태에서 여왕이 침대에서 나오다가 떨어져요. 여왕은 몸을 못 움직여요. 잘 못 움직여요 혼자서. 

그래서 이제 애비게일이 놀라서 여왕을 도와주러 오는데 여왕이 이제 막 화를 내요. 그런데 여왕이 애비게일한테 뭐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은 경멸하는 건지, 토끼를 괴롭히니까. 그런 거는 분명하지 않아요. 그리고 여왕이 앞서서 너무 여러 번 갑자기 화를 낸 장면들이 많았어서 그러니까 여왕이 이유가 있어서 화를 내는 건지, 그냥 이제 존재 자체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화를 내는 건지 분명하지 않은데.

그 상태에서 마지막에 여왕이 애비게일더러 자기 아픈 다리를 이렇게 “주물러라” 이렇게 시켜요.

그게 끝이에요. 근데 이제 연출이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되냐면은 여왕 얼굴하고 애비게일 얼굴하고 토끼들이 오버랩이 돼요. 그리고 여왕이 중심을 못 잡으니까 “잡을 게 필요하다” 하면서 그 자기 앞에 이렇게 무릎 꿇고 있는 애비게일 머리채를 잡거든요.

그러니까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해석은 이거죠. 여기서 밟히는 사람이 누군가. 방금 토끼 밟았던 애비게일은 머리채 잡혀 있고. 여왕은 아프고. 정말로 아프고. 애초에 여왕이 토끼를 키운 이유는 17번이나 출산을 했는데 그중에 살아남은 애가 하나도 없어서. 그건데. 

그래서 이게 엔딩이, 엔딩이 너무… 그 나머지 나머지 영화에 비해서 극히 비관적이구… 급격하구… 되게 막 어… 뭔지 모를 것 같은 게 이 엔딩이 유일한 것 같아요. 

그래서… 참 메인스트림이지만 결국에는 결국에는 란티모스였고. 

참 엔딩 엔딩의 뉘앙스가 영화를 많이 결정 짓나 봐요. 왜냐하면 < Poor Things > 그렇게 난해했다가도 엔딩 때문에 진짜 시원했는데 < The Favourite >은 너무 재미있게 보다가 엔딩이 너무 슬프니까. 

애비게일도 불쌍하잖아요. 애비게일이 얼마나 여러 번 밟혔는데. 그리고 영화에서 제일 신체적으로 고통받는 게, 뭐 사라도 얼굴에 엄청 큰 흉터가 생겼으니까 어 고통을 받지만 사라는 강간당한 적은 없어요. 그게 뭐 참 그거를 기준으로 삼기에도 참 슬픈데. 하도 영화에 강간 얘기가 많이 나와요.

그리고 뭐 어느 정도냐면은 애비게일 꼬시려고 했던 그 남자 있죠, 남자 귀족. 그 귀족이 애비게일 방에 쳐들어왔을 때 애비게일이 그냥 물어봐요. ”강간하러 온 거예요? 유혹하러 온 거예요?“ 물어봐요.

근데 그게 어떤 그거를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기보다는 그게 너무 자주 벌어지는 사건이라서, 오히려 그 덕분에, 참 덕분에라고 하기도 진짜 엿 같은데, 그것 덕분에, 하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서 애비게일이 자기 잘못이라고 여기질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 자기 아버지의 탈을 쓴 작자가 자기를 팔아 넘겨서 자기가 강간당하면서 살았던 게 자기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하도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지니까, 그냥 무슨 병 걸리는 거랑 비슷하게 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여튼 간에 애비게일은 엄청 신체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이거든요. 많이 그 리터럴리 말 그대로 밟히면서 살아온 앤 거예요. 그리고 막 영화에서 막 누가 계속 밀치고 넘어지고 막 이래요. 그래서 애비게일이 토끼를 밟아서 애비게일이 나쁘다고 하기에는 되게 난감합니다. 물론 토끼는 불쌍하지만, 토끼가 아팠던 것보다 애비게일이, 그거 비교를 하자면, 애비게일이 너무 훨씬 아팠기 때문에, 애비게일이 저 정도 정신줄 붙잡고 사는 것도 용하고, 여왕이 정신줄 붙잡고 애매하게나마 있는 것도 용하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끝나요. 이게 영화가 이렇게 끝나는데. 그래서 보면서 참 재미있는 영화고. 앞으로도 몇 번 계속 다시 볼 것 같아요. 생각날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엠마 스톤을 좋아하는 이유도 크고. 그냥 너무 예쁜 얼굴 같고. 

자기가 자기를 무엇으로 생각하는지가 깊게 박혀 있는 영화 같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어… 생존을 어떤 식으로든 소화를 안 하면, 그러니까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소화를 안 하면은 어 이런 어떤 뭐 우정적 사랑이든 섹스적 사랑이든 정치적 사랑이든 이거를 잘 이 게임을 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이거를 되게 제가 랜덤하게 요즘에 저기 얼마 전에 “데블스 플랜”을 보면서도 생각했는데. 이게 진짜, 지금 내가 살려고 하면 살기가 되게 좀 힘들어지나 봐요. 그런 게 영화에 있고. 

되게 슬픈 이 엔딩을 좀 그 offset 할 수 있는 요소 중에 하나가… 란티모스 님이 패브릭을 좋아하나 봐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옷이 의상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옷이 도저히 그거는 정말 18세기 영국을 딱 기반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은 게 아주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많이 나오고 흑백의 옷이 나와요. 그 흑백이 마치 그 시즌 궁중에서 유행한 것처럼 나와요. 모든, 거의 모든 옷이 흑백 아니면은 이제 나중에 가서는 그 정당들이 빨간색과 파란색을 이제 극명하게 반대되는 색깔을 입고 나오는데, 옷이 너무 아름답고 그 패브릭이 스치는 소리가 아주 ASMR입니다.

< Poor Things >도 오프닝 크레딧부터 오프닝 크레딧이 천이에요.

그러니까 오프닝 크레딧 글자의 배경이 천이에요. 천 그 약간 약간 비단스러운 그런 천이 나오는데. 

이… < The Favourite >도 그렇고 < Poor Things >도 그렇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이 감독은 되게 괴팍한데 투박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들이 이 사람과 사건과 배경의 모든 것들이 깨질까 봐 정말 가여워서, 가여워서 패딩이 두둑히 들어간 그 천을 여기다 여기저기 이렇게 깔아놓은 느낌이에요.

그게 < Poor Things >에서는 말 그대로 나와요. 그러니까 미쳤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이제 정신 정신병원 같은 데에 들어가서 그 왜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지 말라고 이제 바닥이랑 벽 같은 데 패딩 같은 거 해 놓잖아요. 그게 말 그대로 < Poor Things >에서는 나오는데. 

< The Favourite >에서는 그렇게 나오진 않아요. 그 엄연히 이제 나름대로 현실 세계에 기반으로 한 영화니까 그렇게까지 나오지는 않지만 이 귀족 여인들이 신분이 올라갈수록, 그 애비게일 특히나 시종 신분에서 귀족이 될수록 점점 더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고. 그게 뭔가 정말로 뭐 그냥 그냥 천에 들어갈 돈이 많아서, 부자가 돼서 천을 많이 쓸 수 있어서, 그런 것만이라기보다는, 보호 장비가 필요한 것 같은 느낌이 좀 들고. 얘가 넘어지면은 얘 궁뎅이를 보호할 옷이 필요해서 그런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 옷이 되게 예쁩니다. 그 흑백의 기하학 무늬가 들어간 옷들이 아주 예뻐요. 그래서 아주 보는 맛이 있고. 

참 신기해요. 그냥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18세기 영국 궁중 배경이 막 나무 금 초록 초록색 나무도 있고 갈색깔 그 장판 장판 장판이라고 하나? 벽이나 이런 데에 있는 나무도 있고. 그리고 금색 액자 이런 거? 그리고 뭐 유리. 크리스탈. 이런 게 있는데. 거기다가 현대적인 흑백 기하학 무늬 들어간 옷을 드레스를 하면 이상할 것 같기도 한데 되게 그 진짜 체스판 느낌 나고 클래식하고 멋있습니다.

그래서… < The Favourite > 얘기를 해봤습니다. 진짜 재밌는 영화고. 어 생존을 생존을… 하면 좋은데. 아니 생존을 사실 아예 안 할 거면 그냥 지금 죽어야 되잖아요? 근데 안 죽는 이유가 있잖아요? 그게 뭔가? 그것은… 이 영화에 답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재밌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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