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제가 처음에 녹음을 시작할 때 이렇게 침착하게 말을 하다가 뒤로 갈수록 빨라진다고 자꾸만 놀림을 받고 있어요. 사실이기 때문에 놀려도 할 말이 없는데. 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게 처음에 듣기 시작할 때는 그러려니 하면서 듣는대요. 그리고 그냥 끝 끝에 도달해서도 이제 내용이 막 막 내용을 말하잖아요? 그러면은 그냥 그 템포로 말하나 보다 하다가, 이 뭐 저거 팟캐스트 듣는 플랫폼에서 자동 재생으로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갈 때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은 이제 그 전 에피소드의 끝부분에서 말 빨라졌던 거와 다음 에피소드의 첫 부분에서 말이 다시 느려지는 거의 그 대조가 그제서야 이제 너무 웃기다. 참 웃기다. 그런 피드백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처음 부분에 말을 빨리 하자니. 처음 부분에 말을 느리게 하는 이유는 이렇게 이렇게 다른 거 하다가, 다른 거 하다가 이제 팟캐스트 녹음하려고 앉아서 이렇게 있으면은 처음부터 말이 빨리 안 나와요. 빨리 안 나오고. 이렇게 막 이렇게 무슨 저거 온오프 스위치 누르듯이 빨리 안 나오고. 또 뒤로 갈수록 말이 빨라지는 거는 이게 제가 이 에피소드 길이를 1시간 조금 넘어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가라지밴드가 1시간 10 몇 분인가를 넘어가면 지가 알아서 끊어요. 뭔가 그 최대 용량이 있나 봐요. 그래가지고 뒤로 갈수록 이제 할 말이 많은데 이거를 다음 에피소드로 넘기기에는 좀 애매하고 이 말을 다 해야겠어. 그러면은 저거 아주 래퍼가 되어서 랩을 빨리 하는 현상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어 뭘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할 일인지도 모르겠고. 웃긴 거 맞으니까 그냥 웃기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런 상태입니다.
그러한데 오늘 다시 영화 얘기하는 날이고요. 넉넉하게 이번에도 두 에피소드 할 것 같아요. 이것은 이 영화는 <The Great Beauty>라는 영어 제목은 그렇게 번역되어 있고 이탈리아어는 제가 못하니까 그냥 안 읽을게요. 근데 그냥 리터럴 트랜슬레이션인 것 같아요. 더 그레이트 뷰티. 위대한, 대단한 아름다움이라는 이탈리아 제목으로 나와 있는 것을 말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 것이 <The Great Beauty>이다.
이 영화를 <The Shape of Water>를 하고 나서 그거 두 에피소드 했으니까 혹시 <The Great Beauty>는 그러면은 한 에피소드만 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아스트라가 추천한 부문이 사일런스와 미니멀 다이얼로그, 침묵과 대사가 좀 좀 미니멀하다. 하여 <The Great Beauty>를 추천했어요. 1개의 부문에만 추천했고 저번 주와 저저번 주에 했던 <The Shape of Water>는 두 부문이었단 말이죠. 아스트라, 아스트라가 봤을 때 한아임이 관심 있어 하는 부문 측면에서는 저번 주 저저번 주에 했던 영화는 두 개 부문에서 추천할 만하고 요번 주에 할 이 영화는 하나에서만 추천을 했다.
그래서 혹시 한 에피소드로 될까 싶어가지고, 예? 그래가지고 말입니다. 이거를 이 영화를 골랐는데 두 번째 영화로 한 개는 웬걸. 사실 사실 저번에 했던 영화도 뭐 에피소드 네다섯 개 하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짜 뭐 왜 그 영화 학교나 뭐 뭐든지 간에 뭐 문학도 그렇고, 이렇게 이렇게 어떤 코스 수업으로 만들려고 하면은 한 개 갖고 한 학기 사실 얘기할 수 있거든요. 얘기할 수 있는데 그거는 너무 이제 너무 너무 디테일해지고. 너무 이렇게 그 커먼 그라운드, 뭔가 그 공통 분모를 우리가 찾을 수가 없으니까 좀 너무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진짜 두 개의 에피소드 정도는 너무, 너무 해야 되지 않나. 너무 줄거리만 이렇게 이렇게 하거나, 아니면 진짜 진짜 정말 작은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할 게 아니면은 아 2시간 좀 넘어가는 분량은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일단 더 <The Shape of Water>도 길이가 2시간 정도였고. <The Great Beauty>는 2시간 좀 넘어가거든요. 2시간 10 몇 분인가? 20분인가? 끝에 엔딩 크레딧이 거의 뭐 5분인가 되게 길긴 한데. 어쨌든 2시간 10분은 넘어간단 말이죠. 그래서 영화 길이도 길거니와, 아… 할 말이 너무 많고. 지금, 음… 근데 <The Shape of Water>는 그래도 그 형식이 할리우드의 문법, 이제는 할리우드의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좀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은 그런 형식이 있잖아요. 그 형식을 좀 따르는 측면이 있는데. <The Great Beauty>는 너무 안 따라요. 안 따라가지고 이거를 제가 지금 어떻게 잘 말을 해보겠습니다.
아무튼. 스포일러가 있고 항상 있는 팟캐스트입니다, 아임 드리밍은. 그런데 이 영화는 <The Great Beauty>는 줄거리를 요약함으로써 영화를 영화가 요약되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에 어 뭐 스포일러라고 딱히 할 게 없어요. 뭐 스포일러라고 하면은 뭐 태어난 사람들이 죽는다는 정도? 근데 뭐 그거 스포일러라고 하면 우리 인생을 살 수가 없죠. 태어났는데 주변에 태어난 다른 사람들이 죽었더라. 그거 스포일러라고 하면 우리 살기 너무 힘들죠. 그래서 스포일러가 있는 에피소드지만 없다고 또 봐도 사실은 무방하다.
<The Great Beauty>는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고요. 어떤 65세의 남자가 약간 좀 방황을 하다가 방황을 안 하는 것으로, 안 하기로 했다, 식의 결론을 내리면 끝나는 그런 영화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줄거리고요. 아스트라가 사일런스와 미니멀 다이얼로그 부문에서 이 영화를 추천을 했지만 대사가 없기도 한데 또 많아요. 그리고 특히나 대사가 아예 없는 무성 영화는 아니고요. 이 팟캐스트에서 이 영화의 대사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제가 이탈리아어를 못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어 원래 오디오의 영어 자막이 달린 달린 것을 본 것을 토대로 한국어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영화가 처음에 시작할 때 인용문이 나옵니다. 어떤 책에 나오는 인용문인데 한국어 제목으로는 “밤 끝으로의 여행”이라는 소설이고 작가는 루이 페르디낭 셀린입니다.
어떤 인용문이 나오느냐? “여행은 유용하다.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한다. 나머지는 전부 실망과 피로다. 우리의 여행은 전적으로 상상이다. 그것이 바로 그것의 힘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진다. 사람 동물 도시 사물 전부 상상이다. 소설, 단지 허구의 서사다. 리트르는 그렇게 말하며 그는 결코 틀리는 법이 없다. 게다가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냥 눈을 감으면 된다. 그것은 삶 너머에 있다.”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처음에 <The Great Beauty>를 보기 시작하면서 느낀 거는 영화가 웃겨요. 되게 웃겨요. 이 뻘, 좀 뻘한 그런 유머 있죠 약간 왜 그 까마귀 날아가는 효과음 나올 것 같은 그런 어떤 유머의 리듬이 있어요. 그 까마귀가 날아가는 효과음이 나오려면 어떤 뭐 대사라든지 액션이 있은 다음에 약간 그 공백이 있잖아요. 공백이 있고 그 공백에 까마귀가 깍깍 지나가고서 또 공백이 있죠. 약간 그런 어떤 공백의 뻘한 유머가 있는데.
이 진지하고 의미로운 인용으로 시작을 하더니 갑자기 빵 폭탄이 터지면서 각종 조각상, 뭐 갑자기 이탈리아어 억양이 짙은 투어 가이드가 일본어를 하는 모습, 그리고 뭐 생뚱맞은 것 같은 합창단, 막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막 막 파도처럼 밀려와요. 이게 아까 제가 언급한 뭔가 할리우드적 공식하고는 좀 많이 다른, 할리우드는 정말 최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로 쉽게 의미를 전달하려는 어떤 의도가 그래도 있는 것 같아요. 뭐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그린라이트를 뭘 할지 말지 선택할 때 뭐 뭐 뭐 부르는 말이 있는데? four quadrants인가 뭐 그 4개의 이렇게 이렇게 공간을 이렇게 4개로 나눠 둔 게 있는데 뭐 뭐 남자 여자 그리고 뭐 몇 세 이상 몇 세 이하였던가? 그래 가지고 그 4개를 다 타겟하려고 한다, 뭐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식의 어떤 표현의 매체나 그 매체를 사용한 결과물을 보면은 그거를 만든 사람이 절대 이거를 모두를 위하여 만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래가지고 더 더 그 타겟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더 적합한 그런 경우가 있잖아요? 반면에 할리우드는 진짜 좀 좀 너무 제가 지금 퉁쳐서 말하는 거긴 한데 그래도 다른 어떤 분야들에 비해서는 돈이 들어간 만큼 이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줘서 최대한으로 진짜 최대치를 뽑으려고 하는 그런 게 있는데.
<The Shape of Water>, 저번 주에 했던 영화는 그렇게까지 막 무슨 저기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고 한 영화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일단 크리처와의 섹스가 나온다는 거는 웬만하면 미국처럼 정말 아직도, 아직도라기에는 아직도가 아니죠. 어떤 포켓들에는 영원히 청교도적인 측면이 있을 그런 나라에서 크리처와 섹스를 해가지고 모든 모든 타깃 오디언스한테 매력을 뽐낸다는 거는 거의 이제 뭐 불가능한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는 굉장히 친절했단 말이죠. 이거를 이거를 다 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끔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요렇게도 반복하고 저렇게도 반복해서 질리지도 않게 정말 겹겹이, 제가 저번 주에 말했듯이 정말 무슨 케이크 만들듯이 너무 친절하고 달콤하게 겹겹이 레이어를 쌓아줬는데.
<The Great Beauty>는 그런 식으로 레이어를 쌓지는 않고 나중에 다 보고 나서 보면 “아 이게 이것도 케이크였구나, 이것도 달콤한 케이크였구나”라고 알게 되는 건데, 처음에 얘 이 영화가 레이어를 쌓기 시작할 때는 “이게 뭔 무슨 일이래, 이게 뭔 일이래?” 이런 기분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어 이 소설의 매력은 내가 읽어야 할 다음 단어가 정해져 있다는 거잖아요. 무조건적으로 소설은 소설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다음 단어를 읽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영화의 매력은 아무리 아무리 “여기로 여기 보세요. 시선을 여기로 돌리세요”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안 할 수 있어요, 내가. 내가 이거를 이해를 못할 수도 있고, 이해를 애초에 하라고 만든 게 아닐 수도 있고. 그러니까 내가 여기를 봐야 된다는 거를 “꼭 여기를 보세요”라고 감독도 그런 개런티는 없는 거예요. 자기가 여기를 보겠거니 하고 뭐 이렇게 프레임을 정할 수는 있지만, 거기 말고 딴 거 볼 수도 있잖아요. 그 프레임 프레임의 딱 그 포커스 포인트 말고 다른 데 볼 수도 있잖아요, 관객이. 그리고 보는 와중에 소리도 들리고. 그렇잖아요?
이런 가운데 이 영화의 처음 부분에 아까 말한 그 이탈리아인인데 이탈리아어 억양이 짙은 일본어로 일본어, 일본 투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말을 하고 있는 투어 가이드가 있어요. 그 투어 가이드가 처음에 딱 등장을 해요.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투어 가이드니까 “여기 보세요” 하면서 이제 팔을 이렇게 하면서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면은 진짜 거기를 보게 돼요. 왜냐하면 이 영화가 카메라의 움직임이 너무 낯설고 너무 그러니까 할리우드스럽지 않아요. 뭔가 그 나한테 뭘 말해주려고 카메라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카메라는 그냥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그냥 나랑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거기에 어떤 문법이 있는지를 알 수가 없더라고요, 처음에. 그래서 그 투어 가이드가 그 이탈리아식의 일본어로 말을 하면서 “저기 보세요” 하는데 거기를 이렇게 거기라도 보더라고요, 제가. “이게 뭐지?” 그래서 이제 투어 가이드 지나가면 어디 봐야 될지 모르고 좀 그런 느낌인데. 그 느낌이 너무 너무 너무 어렵다, 막 이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저는 되게 굉장히 신선했어요.
그리고 영화를 이제 여러 번 이거 에피소드 녹음하기 전에 여러 번 봤는데. 특히 처음에 볼 때는 “우와” 이거 뭐 약간 놀이기구 처음 타는 놀이기구 탔을 때 이렇게 몸이 막 붕 이렇게 두둥실 뜨는 그런 느낌이었고, 처음 처음 영화 봤을 때. 두 번째 이후에 봤을 때는 이제 내용도 알고 왜 움직이는지 좀 알 것 같고 하면서 계속 몇 번 볼 때마다 계속 레이어가 새로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제가 추측하는 이 첫 시퀀스의 이유는, 그러니까 첫 시퀀스의 이유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유에 다 이유가 있어요. 이 이 첫 시퀀스, 그러니까 진지한 인용문으로부터 빵 하는 폭탄으로부터 별별 조각상으로부터 이탈리아어 억양으로 일본어 하는 투어 가이드와 일본인 관광객으로 넘어오는 이 시퀀스는 이 메인 스토리랑은 관련이 없어요. 제가 맨, 에피소드 맨 처음에 줄거리라고 잠깐 언급했던 그 65세의 남자, 그 65세의 남자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또 이 영화와 내용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볼 수는 없는 이유가, 인용문이 또 나름 의미가 있어요. 처음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이게 뭔 말인가 싶지만 계속 보다 보면 또 의미가 있더라고요. 마치 이 이 관광객들이 일본인 관광객들이 이 인용문에 나왔듯이 여행을 떠나왔잖아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이탈리아라는 나라로 관광을 오려면은 굉장히 오래 걸리죠. 게다가 이 영화 지금 2013년 영화인데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완전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와서. 상상인 줄만 알았던 이탈리아라는 세계 로마라는 도시로 와서. 그 관광객의 가이드를 따라서 보라는 데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보라는 데를 보라는 와중에 안 보고 다른 데로 가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이 죽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영화 처음부터 누가 죽어요. 죽고. 근데 그 죽은 게 무슨 의미를 뭔 의미인지 우리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일본인 관광객 죽은 관광객이 다시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거를 계속 이게 뭐였지? 하고 그거를 계속 머리, 이렇게 머리 한 켠에 이렇게 품고 가는 겁니다. 영화는 계속 가는 앞으로 가는데 아까 그건 뭐였지? 하는 생각을 품고 가는 거예요.
아무튼 이 일본인 관광객들 중에 투어 가이드가 보라고 하는 곳을 본 사람이나 아니면은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안 하고 잠깐 뒤돌아서 다른 곳으로 간 사람이나, 그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서 죽었다고 해서 그게 무슨 보라는 데를 안 봐서 천벌을 받아서 죽었다. 뭐 이런 이런 느낌은 아니고요. 그냥 이러는 사람도 있고 저러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이런 이런 상상도 있고 저런 상상도 있는데, 그 많은 클루들 중에서 우리는 우리도 이렇게 관객인 우리도 이 관광객들하고 다를 바가 없이 지금 영화라는 세계에 들어와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던 데에 있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The Great Beauty>라는 데가 있다고 하는 거야. 마치 일본에서 보기에 이탈리아처럼 나는 그냥 이렇게 살고 있었는데 <The Great Beauty>라는 나라가 있대. 그래가지고 거기에 가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보는데 볼 게 너무 많은 거야. 여기 하늘도 있고 폭탄도 있고 조각상도 있고 조각상 옆에 있는 사람도 있고 일본인 관광객 있고 뭐 관광객들 데리고 온 버스 기사 있고 뭐 갑자기 그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데에서 합창단이 합창하고 있고 막 이래요.
그래서 막 두둥실 뜨는 느낌인데 어… 이것이 낯설 수도 있고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 관광 가이드의 말대로 하지 않고 잠깐 뒤돌아서서 다른 곳을 보고 다른 곳의 사진을 찍고 있던 그 남자. 그 그 그로부터 몇 초 후에 쓰러져 죽는 그 남자는 굉장히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죽거든요. 이것이 정말… 이게 뭔가 이 영화의 이 영화 전체의 써머리고 이 인용문에 나와 있는 인생에 대한 어떤 태도고. 흥미로운 관점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게 뭔가 죽었다고 해서 그래서 되게 비극적이다 그런 느낌은 이 영화에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혼란스럽다 갑작스럽다는 느낌은 있을 수 있지만 죽었다는 그 자체가 굉장한 비극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없는 것 같고. 그보다는 영화가 되게 색깔이 밝거든요. 아주 어두운 장면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어두운 것도 되게 선명해요. 약간 그 대조가 대조가 되게 선명해서 이렇게 뭔가 바랜 어두움이 아니고 엄청 선명한 파란 하늘, 엄청 선명한 노란색, 엄청 선명한 소리 측면에서도 엄청 선명한 클럽 음악 이런 것들이 나오다가 어두우면은, 어둡거나 조용하면은 확 어둡거나 조용한데 그 대조가 되게 선명하고 쨍한 그런 어두움이 나와요.
그래서 이 영화 처음에 시작할 때 나온 그 상상이라는 개념하고 모든 게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상상하기 나름이라는 어떤 의미가 제가 이 영화 보고서 생각하기로는 많이 나오는 것 같고. 그거에 대해서 어 얘기를 할 건데.
아무튼 처음 처음 영화의 소개로는 아무래도 이 혼란, 혼란스러우면서도 두둥실하고 재미난 놀이기구 느낌의 이 편집과 카메라의 리듬이 제일 두드러진다.
되게 음 카메라가 이렇게 비껴가요. 비껴가는, 비껴가는 움직임을 보일 때가 있고 완전 정중앙에 대칭으로 고정될 때가 있는데, 그게 막 대조되면서 거기에 사운드도 되게 생뚱맞게 폭탄으로 빵 시작하니까. 그러다가 합창 소리 나오고 그러다가 일본인들 조금 조금 웅얼거리는 소리 나오고 이탈리아어 나오고 이탈리아인이 일본어 하는 소리 나오고, 막 이러니까 굉장히 이 두둥실한 느낌으로 쭉 가는 그런 영화다.
이 4분 정도 되는 오프닝 시퀀스가 갑자기 또 어떤 여자의 비명 소리로 끝나는데 그 비명 소리가 위험에 처해서 내지른 비명 소리가 아니고 클럽 씬으로 넘어갑니다.
이 클럽씬도 되게 웃겨요. 이게 뭔가 좀 되게 측근하고 아련하면서 웃긴 그런 게 있는데. 사람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카메라가 이들을 비웃는 건 아니에요. 비웃는 건 아닌데 웃긴 게 이들이 너무 심취해 있고. 그러니까 자신들의 그 무브먼트 있죠. 그 댄스 무브에 너무 심취해 있고. 너무 최선을 다하고. 이 영화에 파티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오거든요. 그 파티 장면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거의 안쓰러울 지경으로 너무 춤에, 그러니까 춤을 못 추고 파티를 못 가면은 거의 그 존재할 때 너무 힘들 것 같은 그런 식으로 카메라가 좀 이 사람들을 비추는 것 같아요. 그래서 비웃는 건 아닌데 그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니까 조금 조금 슬프고 측근하고 어… 웃겨요. 근데 이거 웃긴 게, 이제 약간 어떤 방어 기제인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그냥 웃기다고 안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가지고 웃기다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어 그냥 찍은 이 카메라의 움직임도 그렇고 그 숨 쉬는 템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아까 제가 말한 그 비껴가는 카메라랑 갑자기 정중앙에 있는 카메라랑, 뭐 이렇게 움직이는 카메라랑 갑자기 멈춰 있는 거랑, 이 편집의 리듬과 템포가 이 클럽 음악이랑 같이 움직일 때도 있고 따로 움직일 때도 있고. 되게 아무튼 놀이기구 같아요, 정말로.
그리고 구도가 과장된 측면이 있어요. 극단으로 위에서 찍기도 하고 극단으로 밑에서 찍기도 하고. 갑자기 이 시끄러운 시끄러운 파티장에 한 켠에 전시되어 있는 어떤 조용한 구석으로 가기도 하는데, 그 구석에는 말 그대로 이렇게 이렇게 통이 있어요. 그래서 통에 통 안에 전시되어 있는, 유리통 안에 전시되어 있는 댄서가 있어요. 그래서 마치 이렇게 어항같이 되어 있는데 물은 들어 있지 않고 그 안에서 댄서가 춤을 추는 거예요. 근데 그 그 파티장에서 울려퍼지는 그 음악이 댄서가 있는 통 안에서는 안 들리고. 그래서 이제 너무 고요하고. 갑자기 고요한 음악 나오고. 옷소리 사부작사부작거리는 거 들릴 정도로 조용해지고. 막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까 처음에 4분 정도 아까 그 일본인 관광객들이 합창단이랑 막 로마 로마 이렇게 구경하던 거가 나오다가, 그 이후로 또 5분을 넘게 파티장에서 막 사람들이 춤을 추고 막 엄청 많은 사람들이 막 미친 듯이 춤을 추는데.
그러니까 초반 10분 동안에 거의 플롯이랄 게 없어요. 그런데 오프닝 시퀀스에서 누가 의미심장하게 죽은 것 같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클럽에서 그러니까 클럽이라기보다는 파티장에서 카메라며 편집이 의미심장하게 움직이니까 10분이나, 10분이나 되는 길이 동안 계속 계속 저는 계속 봤어요. 그러니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이거는 거의 할리우드적 영화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10분이면 초반 10분이면 거의 뭐 모든 주요 인물들 다 등장하고 막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러려는 의도가 전혀 없이 그냥 혹시나 혹시나 누가 잘못 이해할까 봐 그럴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아주 그냥 아주 그냥 10분 동안 끈덕지게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막 이제 춤과 음악과 술과 아마도 마약에 마약에 이제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데. 이게 그러니까 재미있는 건지 아니면 무서운 건지. 왜냐하면 처음에 비명을 지르는 여자로 시작했고 진짜 좀 무서워 보이거든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막 화장한 것도 막 놀다 보면 막 번지고. 막 사람들 막 다 귀신처럼 눈 다 귀신처럼 하고 있고. 남자들도 화장 안 한 사람들도 막 막 다들 막 땀에 쩔어가지고는 미친 듯이 움직이고. 그리고 좀 좀 범죄같이 보이나? 싶은 그런 모습들도 간간이 보이거든요. 좀 위협스러워 보이는 건가? 싶은 그런 모습들도 있는데.
다들 막 특히 남자들 양복 빼 입고 입고. 그게 뭐 파티장에 갔을 때 여자들이 드레스 입고 있는 거는 서구 사회 어디에 가도 그게 이상한 게 아닌데, 남자들이 저렇게 멋진 옷을 입고 양복을 입고 춤을 미친 듯이 추고 있는 거는 미국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미국 미국에서 남자들이 옷을 잘 입는다는 건, 이성애자 남자들이 옷을 잘 입는다는 건 평균적으로 잘 벌어지지 않는 일이죠. 그래서 이탈리아 남자들 옷 잘 입은 거 보고 세상에 정말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젊은 사람들만 그런 것도 아니고 특히나 이 영화는 나이가 좀 그러니까 반백 년 이상 산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대거 나오고. 주로 나와요. 그 사람들이 다 옷을 세상에 만상에 어쩌면 그렇게 멋있게 입고 있지? 그리고 심지어는 옷에 대한 코멘트도 나오거든요. 많이 나와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많이 나오네요. “저 사람 뭐 입고 있는 거야” 이런 말도 나오고 “당신 그 양복 누구누구네 양복점 가서 맞췄냐”고 이런 얘기도 나오고, 그러네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거를 잘 보이기 위하여, 그게 뭐 뭐 어떤 허영심 때문만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문화 자체가 심히, 심히 아름답다. 미국에 그냥 이렇게 있는 그냥… 정말 아… 조금 한숨이 나오네요. 그 미적 기준이… 미국에 광활한 자연이 있긴 하지만 인간의 미적 기준이 제가 생각했을 때는 국제 기준에서 심히 미달이에요. 미달이고. 그래서 되게 편하기도 한데. 이탈리아 사람들 보니까 진짜 대단하다. 너무 너무 멋있는 옷을 입고 있고.
이러한 10분인데. 제가 이탈리아 배우들을 몰라서 이 많은, 파티장에 이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고. 그러니까 누구를 보여줘도 저 사람이 유명한 배우, 아는 배우면은 저 사람이 좀 이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는 걸 알잖아요. 근데 저는 이제 그 영화 포스터에 나온 주인공 남자, 65세 주인공 남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어 그리고 심지어는 이 영화 포스터만 봐서는 그 사람이 65세인 것도 모르죠. 그래가지고 그냥 그 사람 얼굴 하나 알고 있는 건데, 그 사람이 나오는 데 10분이 넘게 걸리는 거야.
그래가지고 이제 어 어 다른 사람들, 다른 많은 배우들의 얼굴이 파티씬에서 조명되는데, 어 그 그 전에 나왔던 관광 시퀀스와 마찬가지로 어디에다가 누구를 나의 닻으로 삼으면 될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그냥 두둥실 두둥실 있는 거예요.
있다가 드디어 드디어 이제 10분이 돼 가지고 드디어 이제 우리의 주인공이 드디어 등장하는데, 이 미친 듯한 파티씬이 우리 주인공의 생일 파티였음을 우리가 드디어 알게 됩니다. 드디어 이제 아는 얼굴이 나오고 드디어 이제 좀 뭐라고 해야 되나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게 나온 거죠. “아, 이 사람 생일이구나” 이게 10분이 걸려요.
우리 주인공의 이름은 제프 감바르델라고요. 이거를 항상 되게 모든 대사가 그래요. 이탈리아어가 원래 그 음의 높낮이가 있는 언어잖아요. 근데 이 이름을 할 때 항상 굉장히 그 테이크 타임을 하더라고요. 제프 감바르델라, 이렇게 엄청 엄청 그 그 르를 감바라르델라를 강조해서 말하던데. 우리 제프 씨. 젭이라고 부를 때도 있고 쩹, 이럴 때도 있고. 좀 조금 뭔가 뭐에 따라서 억양이 다른 건지는 제가 모르겠어요. 아무튼 근데 제프 혹은 뭐 젭이라고 제가 이번 에피소드에서 부를게요.
이 제프 씨가 등장을 하고 너무 반가웠어요. 이렇게 반가워하는 찰나 갑자기 또 카메라가 가만히 있지 않고 이 화면이 이 아재를 똑바로 보여주다가 빙 돌아서 이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어 우리에게 뭔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안도감을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가운데 그렇다고 또 막 일부러 흔드느냐 하면은 그…런 느낌은 아니고. 그러니까 막 뒤흔들리는 느낌이 아니고 그냥 두둥실한 느낌이에요.
제가 이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를 보고 뭔가 역사적인 그런 이야기가 있나? 뭔가 로마나 이탈리아 전반의 역사. 그러니까 뭔가 아니면 뭐 미술. 이런 것에 되게 집중한 클래식한 영화인가? 그리고 심지어는 고리타분할까? 아트 영화라고 하니까. 아트 영화라고 저는 들었거든요. 그래서 되게 뭔가 자기 자신에 심취해 있을까? 했는데 전혀, 전혀 그런 느낌 아니고. 저는 이게 뭐 아티스틱 하긴 하죠. 근데 아트 영화라고 불러야 될까? 이게 아트 영화라는 말이 너무, 아트하우스 이런 단어가 너무, 무슨 정의인지 애매한 것 같아요. 아티스틱하죠. 다 아티스틱한데. 이 영화가 이해하기 어려워서 아트 영화인가라고 하면 전혀 그런 것 같진 않고요. 이해하기 어렵다기보다는 여백이 있는 것이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막 고리타분하거나 막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따분하지도 않고.
어… 이런 식으로 이제 이 주인공이 소개가 되고서 한 영화 초반에 12분, 13분 정도가 지나서야 이제 심지어는 우리가 이제 드디어 드디어 이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알게 돼요. 이 사람이 글 쓰는 작가다. 그렇게 드디어 알게 된다.
플롯이라고 할 만한 것이 초반에 매우 적은 가운데에도 이해하고 해석할 만한 것은 충분히 넘쳐나고. 반복적이고. 이것도 저번 주에 한 영화처럼 우리를 위하여 친절하게 반복적이고 분명합니다.
그래서 뭐 파티 씬에서, 아까 언급한 구석에 이렇게 통에 들어가서 춤추던 댄서도 그렇고 갇혀 있는 비주얼들이 좀 등장하고 그것이 이전 시퀀스 그러니까 관광객 시퀀스와 합창단 나왔던 그 초반 시퀀스랑 좀 대조돼요. 미친 듯이 춤추는 사람들도 있는데 통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어디 이렇게 여기 보세요 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쪽 다른 데 보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아까 그 일본인 관광객 신에서 합창단은 또 합창단이 갑자기 그 건물에 2층에 이렇게 들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정말 들어 있는 것 같은 그런 화면이 나와요. 그러니까 건물이 이렇게 뚫려 있는 베란다가 있는데. 뚫려 있는데도 이렇게 틀에 액자 같은 틀에 있고 그런 뭔가 갇혀 있는 비주얼? 좀 통에 들어 있는 비주얼? 그런 게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십, 초반 15분 정도가 지나고서 그러니까 두 개의 메이저한 시퀀스들이 나왔죠. 그 내용적으로. 관광객 그다음에 이제 파티. 제프라는 우리 주인공이 등장한 파티. 이렇게 두 개의 덩어리가 나왔는데 그다음 덩어리 약간 인털루드 같은 덩어리로 파티가 끝나고 아침이 돼요. 하면서 갑자기 어린애들이 등장합니다.
근데 그냥 어린애가 아니고 얘네가 입은 옷이 새하예요. 그래서 뭐 수녀인지 수도승인지 여자애들도 있고 남자애들도 있는 것 같은데. 수녀가 되거나 신부가 되려고 하는 애들인지 아니면은 그저 이제 고아원 같은 세팅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어떤 교복 같은 옷이되 종교 시설 내의 어린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서 하얀 그런 옷을 입고 있는 어린이들이 있어요. 얘네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있는 곳이 철창 같은 것 뒤에 서 있거든요. 그러니까 문, 문인데 철창처럼 돼 있는 문 있죠. 그래서 그 뒤에 서 있어요. 얘네가 환하게 웃고 있어요. 그리고 소리도 막 “아” 하면서 이제 까르르르 이렇게 웃어요. 그런데 철창 뒤에 있다. 뒤에 있고 얘네가 있는 곳이 어쨌든 간에 외부와 단절된 측면이 있는 종교 시설 같은 곳 안이다. 그리고 옷도 아무 옷이나 입은 게 아니고 하얀 옷을 입고 있다.
이것이 처음 오프닝 때 나왔던 합창하는 사람들하고도 좀 연관이 되고 이 영화가 제가 음악 얘기는 고막 사람에서 더 많이 할 건데 imdb에 들어가면은 영화에 나온 모든 곡들이 이렇게 나열돼 있잖아요. 근데 그거를 제가 순서대로 들어봤거든요. 들어보는데 들어보는데 너무 웃길 정도로 거의 뭐 조울이라고 할 정도로 성스러운 그런 어떤 성가대적인 음악과 클럽 음악이 계속 번갈아 나와요.
그래서 그거를 좀 듣다가 다시 영화를 보니까 진짜로 영화 내에서도 정말 무슨. 이게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하나도 제가 느끼기에는 티가 안 났거든요. 그거에 그렇게 막 이렇게 이렇게 분명한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그런 음악이 나온다는 걸 알고 영화를 다시 보니까 정말로 그 성가대 합창으로 시작했다가, 아 처음에는 이제 폭탄 소리로 팡 시작하죠. 그러고서는 성가대의 노래가 나왔다가, 엄청 조용한 통 안에 있는 댄서를 배경으로 엄청 조용한 음악이 나왔다가, 갑자기 다시 클럽 음악 나왔다가, 또 성스러운 음악 나왔다가, 다시 클럽 음악 나왔다가, 성스러운 음악 나왔다가, 이런 식인 거예요.
그래서 이 패턴이 종교적인, 종교적인 시설에 있는 어린이들과 합창단이 다시 연결된다고 생각한 그 패턴이 의도된 것 같고 계속해서 이 주인공 제프는 좀 이렇게 뭐랄까 즐기는 삶? 좀 히도니스틱한 그런 삶을 사는 가운데 그가 사는 곳은 로마라는 엄청 엄청 예술과 역사가 오랜 도시고 심지어는 그중에서도 종교 시설들에 되게 둘러싸인 곳에 살고 있다고 대사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게 좀 그 대조가 이 영화에서 말하는 상상이라는 요소와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거는 오늘 말할지 아니면 다음 주에 말할지 좀 더 자세하게 나중에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볼 텐데.
아무튼 요 요 틀 통에 들어 있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뭔가 정처 없이 두둥실 떠다니는 그런 느낌 그것이 계속 대조되고. 그래서 이제 처음에 나왔던 조각상 샷들이라든지 아니면은 종교적인 시설에 있는 이 어린이들의 샷 다음에 나오는 다른 샷들도 이렇게 하필이면 이렇게 나무가 만들어낸 틈새 사이로 찍는다든지. 아니면은 조각상 이렇게 옆에 이렇게 이상한 이렇게 구도 있죠? “왜 거기서 찍지?” 이런 느낌인데 그게 좀 그러니까 틀에 들어 있는 상태에서 다른 거를 이렇게 엿보려고 하는 그런 건 것 같아요.
그러니까 두둥실 떠다니거나 아니면은 여기 어디 이렇게 들어가 있는데 거기서 뭔가 딴 거 보려고 요상한, 이상한 구도로 카메라가, 잘 그러니까 잘 쓰이지 않는 그런 이상하고 불편해 보이는 그런 데서 꼭 카메라가 이렇게 빼꼼하게 보고 있더라고요.
아스트라에게 던져준 형용사들이 7개 있지 않았습니까? Dreamlike, elegant, lush, poetic, romantic, sensory, whimsical. 얘네였는데. <The Shape of Water>에 비하면은 <The Great Beauty>는 판타지 요소가 하나도 없어서 “호, 이게 뭐 어떻게 어떻게 이 기준에 맞을까”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까 너무나 아스트라씨 말이 맞았고. 너무 맞았고. 이 오프닝 인용이 아주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삶이란 게 완전히 상상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인용문이 등장하는 소설은 제가 읽지 않은 가운데 이 영화를 보면 그러니까 그리고 영화에서 하필 이 인용을 고른 걸 보면, 과연. 삶은 완전히 상상이고 이것이 제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완전히 모든 건 다 상상이에요. 망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상상입니다. 망상에 좀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상상보다는 망상이 더 근거 없는 뭔가라는 뉘앙스가 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인생의 모든 거는 다 망상이에요. 망상인데 이제 유리한 망상인가 불리한 망상인가? 이게 가장 큰 차이 같고.
특히나 내가 그 많은 망상 내지는 상상 중에 그 요소들을 선택할 수 없다고 망상하는가? 이게 굉장히 키인 것 같은데. 진짜인 줄 알았던 게 가짜라는 걸 의식적으로 경험하고, 반대로 가짜인 줄 알았던 게 나의 선택 하나로 완전히 진짜가 되는 걸 경험하면, 진짜, 상상이 진짜구나. 진짜 상상이네? 이런 느낌이 드는데. 이게 제가 그래서 요즘에 사는 게 더 재미있어진 이유가 이거거든요. 진짜로 상상의 요소들이네. 그러니까 “진짜”와 “상상”이라는 게 이 세만틱이, 세만틱의 한계가 되게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이 영화에서 이런 것들이 막 이렇게까지 드러내 놓고 나오진 않지만, 제가 지금 말하는 것처럼 드러내 놓고 나오진 않지만, 인용문을 선택한 것, 그리고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 그리고 마지막에 제프라는 이 주인공이 도달하는 결론, 그리고 그 과정, 이런 걸 보면, 너무 제가 좋아하는 세계관이에요. 세계관이고.
특히나 제프가 걸어오는 여정이, 모든 게 상상이기…라는 거를 고려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모든 게 상상이라는 걸 이미 본능적으로 안다는 듯이 약간 니힐리즘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의 그런 태도를 보이거든요.
굉장히, 이 아저씨가 이 배우가 정말 너무 차밍해요. 진짜 정말 그 너무나 잘 정돈된 65세에, 자기가 어떤 옷을 입어야 될지 알고 자기가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는지 아는 그런 사람인데. 그 안다고 여기는 그 안에서 그 틀에서 자기가 되게 괴로워하면서도 그거를 인정하지는 못하지만 본능적으로는 알아서 니힐리즘에 빠진 것 같은, 그런, 좀 그런 결이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배우 이 아저씨가 너무 너무 진짜 너무 멋있고. 그 표정에 아주 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으면서도 되게 나이 든 것 같은 또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어요. 그게 너무나 이 이 영화 전체의 그 아우라와 동일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다시 그, “상상할 수 있다. 상상 선택할 수 있다. 상상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도 상상이다. 그 상상을 선택할 건가 모든 게 다 상상이라면 나는 뭐 지금 뭘 상상하고 있는가?”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의 주인공 젭 씨가 처음엔 좀 니힐리즘에 빠진 것처럼 나오지만, 그게 과연 이 <The Great Beauty>라는 영화가 말하려는 것인가 하면 저는 너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지막에 제프가 도달하는 결론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특히나 영화 같은 매체를 써서 허무주의를 표현한다는 건 아주 의도적으로 비꼬려는 뭔가 비꼬려는, 아니면 아이러니를 형성하려는, 의문을 제기하려는, 그런 게 아니면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거든요.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요? 영화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자원이 많이 들어갑니까? 현존하는 픽션 매체 중에 제일 사람 많이 들고 시간 많이 들고 보험 많이 드는 매체를 꼽으라면 영화일 건데. 하필이면 영화를 통해서 진짜 진심으로 니힐리즘이 세계관이다라고 말하려면 좀 불가할 것 같고.
그보다는 이 영화에서 플롯이 없는 듯이 펼쳐지는 이 모든 것을 왜 그러한가, 무엇을 위하여인가라고 생각을 해보자면. 어차피 상상이니까, 다 가짜니까, 괜찮다. 그러니까 가짜라서 무의미한 게 아니고, 어차피 가짜밖에 없어서 내가 진짜라고 하면 진짜다. 그 상황에서 난 무엇을 볼 것인가. 뭘 골라서 진짜로 만들 것인가. 이 영화의 랜덤한 듯하게 나오는 이 모든 합창 음악, 클럽 음악, 별별 나체들, 행위 예술, 자연, 오래된 건축물, 그리고 뭐 심지어는 뭐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행위 예술가 막 이런 사람들 나오거든요. 이들은 다 뭔가? 그거를 어느 정도 알아서 결정하라고 이렇게 요소들을 던져준 느낌이고. 나름대로 그러니까 “실제 세계”라고 여겨지는 것을 좀 reproduce 하려고 그런 요소들을 고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영화가 되게 비현실적이고 꿈 같아서 더 현실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고, 이것이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처음으로 봤을 때 그러니까 몇 번 봤는데 그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봤을 때 초반 20분까지 느낀 점이고, 그것이 영화를 그다음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봤을 때까지도 계속 유지되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는, 그러니까 제 경우에는 제가 느끼기에는 영화가 굉장히 많은 해석을 할 수 있게끔 공간을 남기는 것 같아도, 처음 봤을 때의 초반 20분의 결론이 그 이후로도 몇 주, 며칠 동안 유지됐다는 거는… 굉장히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아주 분명했던 것 같아요, 영화가. 그래서 뭔가 할리우드적인 공식은 아니지만 굉장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친절했다. 친절했고.
20분이 될 때까지 거의 이제 아스트라 말대로 거의 대사가 없거든요. 근데 20분 이후에 이제 막 대사가 대사가 이제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 20분 이전까지 우리가 이미지들과 음악과 그런 거를 나름대로 조합한 방식이 이미 우리 안에 박혀 있는 가운데, 그러니까 이미 우리가 부여한 의미는 우리가 의식하든 말든 박혀 있는 가운데, 그제서야 이제 대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나오는데.
대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가장 주요한 것들, 처음에 드러나는 가장 주요한 것들은 젭이 작가이되 지금은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일을 주로 하는 작가라는 점이고. 근데 원래 인터뷰 작가였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대사로 분명하게 나오는데 젭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말해주는 대사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말하기를 젭이 “나는 40년 전에 소설 하나를 썼을 뿐이다. 이제는 그 어떤 책방도 그 소설을 팔지 않는다.” 요렇게 말을 해요. 옆에서 누가 “너는 대단한 작가야”라고 말해도 자기는 “나는 이제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그냥 옛날에 그걸 한 번 썼을 뿐이다,”라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러니까 이거를 지금까지 오프닝 25분 동안 중에 드러난 것들을 조합해 보면 이 젭의 이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게 상상이면, 이 삶의 모든 게 상상이면, 젭은 뭘 상상하기로 선택을 하고 있는 건가?
그래서 젭 외에도 젭과 관련된 이제 소위 이제 예술계 사람들이 나와요. 젭이 일하는 잡지의 에디터, 그 에디터를 좋아한다는 시인, 그리고 워너비 배우였는데 이제는 워너비 작가를 할까 하다가 워너비 영화 감독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 뭐 이런 여러 가지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외의 사람들도 다 뭔가 이 상상이라는 것과 얽혀 있는 존재를 되게 직접적으로 영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직업적이지 않더라도 예술을 팔고 사는 행위를 한다든지. 아니면 그런 예술인들 파티에 가서 같이 쑥덕거린다든지. 이런 일을 하는 와중에. 또 어떤 상상을 하냐면은 진짜 이 쑥덕거림. 그러니까 어떤 꼭 이거 뭐 앉아가지고 소설을 써야지, 앉아가지고 뭐 그림을 그려야지, 이런 것뿐만이 아니라, 그냥 이 사람들이 제일 시간을 많이 쓰는 액티비티는 모여가지고 쑥덕거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예요. 저 사람은 저럴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나는 이랬고, 너는 이랬고, 앞으로 이럴 것이고, 예전엔 이랬고. 이거를 주구장창. 그러니까 파티장에서 미친 듯이 춤출 때가 아니면은 계속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초반 20분 동안은 아스트라 말이 맞죠. 완전 맞아요. 사일런스와 미니멀 다이얼로그가 돋보이는 영화인데. 그리고… 그것이 끝까지 돋보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대조가 계속 있기 때문에. 근데 그 20분간의 사일런스 이후에는 미친 듯이 대사가 쏟아지고 그다음에야 다시 조용해지고. 또 미친 듯이 대사가 쏟아지고 다시 조용해지고 약간 이런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그 측면에서 보면 그래도 또 아스트라 말이 맞죠. 왜냐하면 사일런스가 돋보이기 위해서 사일런스 아닌 부분들을 어 아주 아주 의도적으로 넣은 것 같아요. 마치 마치 음악 측면에서 성스러운 그런 성가대 음악하고 클럽 음악이 계속 대조되듯이. 그리고 카메라가 계속 미친 듯이 움직이다가 갑자기 이제 이게 이렇게 딱 고정된다든지. 막 엄청 엿보는 것 같다가 갑자기 이렇게 비껴 간다든지. 이 대조가 업앤다운이 계속 나와요.
그런데 다시 그 대사, 대사로 드러나는 그 쑥덕거리면서 드러나는 것들과 상상이라는 것에 대하여 얘기해 보자면.
이 주인공이 65살이란 말이죠. 처음에 나온 파티가 65살 기념 생일 파티였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이제 이 제프의 동년배예요. 제프보다 좀 어린 사람들도 있고, 제프보다 좀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는데, 대개는 이제 다 반백년을 산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고. 지나가는 어린이들, 아까 아까 언급한 그 철창 뒤에 어린이들 같은 경우는 있지만, 대개는 대개는 이제 인간의 수명이 80세 정도라고 가정하면 중간 이상을 넘어간 사람들이 등장을 한단 말이죠.
근데 그 사람들이 미친 듯이 파티에서, 그러니까 그 어떤 지나가는 젊은이 캐릭터에게도 뒤지지 않게 미친 듯이 춤추고. 미친 듯이 이제 뭔가 뭔가 어떤 어디 닿을 곳을, 닻을 찾는 가운데, 그러한 파티신이 지나가고 나서는 소위 이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죽치고 앉아서 수다를 떤단 말이죠.
수다를 떠는데. 이 자체가 좀 되게 신기한 신기한 선택인 것 같아요. 이렇게 이렇게 50세 이상의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도 드물고. 이렇게 많이 대거 주요 인물들이 50세 이상인 경우가 좀 수치적으로 좀 더 적은 것 같고, 젊은 젊은 20~30대가 나오는 것보다 좀 더 젊은 좀 더 젊대, 젊은 게 아니고 좀 더… 뭐라 그러지? 희귀한 것 같고.
그리고 게다가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뭔가 삶을 드러내 놓고 막 “인생은 이런 거지” 막 이런다기보다는 아직 되게 파릇파릇하게 상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수다를 떨 때 이 사람들의 직업 때문이라고 봐야 하나. 예술인이라는 그런 어떤 뭐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자신을 아이덴티티를 정립해서 그런지 계속 뭔가 상상을 하는데. 이들이 아무리 이렇게 막 쑥덕대도, 쑥덕대는 게 좋은 의미는 아니잖아요, 보통. 근데 그렇게 쑥덕쑥덕 대도 그래도 뭔가 이 세팅 자체가 좋게, 좋은 의미에서 신선했거든요.
왜냐하면 이 꿈꾼다는 거를 좋은 의미에서 볼 수도 있지만 좀 얕보는 의미에서 쓰기도 하잖아요. “너는 아직도 그렇게 dreamer냐, 너 아직도 그런 꿈을 꾸냐” 이런 식으로도 하는데, 마치 그러니까 나이가 들었으면 이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안 되는 것처럼. 되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대중 매체들이 있기도 한데.
이 <The Great Beauty>에 나오는 나이 든 사람들은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요. 여유롭고. 그 여유가 제가 느꼈을 땐 그냥 뭔가 편리하라고, 이렇게 플롯적으로 이 사람들이 쑥덕거릴 형편이 돼야 되니까 편리하려고 모아, 돈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았다는 느낌보다는, 이 사치스러운 여유, 이 상상을 하느라고 모여서 이 60세, 70세 된 사람들이 쑥덕거릴 에너지와 여유. 그리고 자기가 이런 쑥덕거림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대신에 그냥 진짜 정말, 정말 끝도 없이 쑥덕거리는 이 사치스러운 여유? 이게 좀… 저는 이 자체가 이 사람들이 선택한 상상 같거든요.
그러니까 상상하는 삶을 젊은이들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상상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이제 몇 살이라, 뭐 몇 살이든 x, x, age x에 딱 도달해 가지고 “나는 이제는 현실적으로 살아야지” 하면은 선택하는 그 현실도 상상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거 제가 살면서 좀 되게 옛날부터 좀 충격이었던 게 중학생인데 사는 게 고달픈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나이랑 상관없어요. 중학생 때부터 사는 게 힘들었던 사람들이, 사람들을 목격했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이 중학생이라서, 보통은 중학생이라서 힘든 거라고 안 하잖아요. 물론 그 중학생의 학업이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라, 중학생이면은 객관적으로는 인간 인생이 80세라고 하면은 아주 초반이란 말이에요. 4분의 1도 안 지났단 말이에요. 근데 근데도 고달파. 이미. 이거는 그 삶이 그러한 것은 아무 그런 아무 객관적인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럼 그럼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60살이 돼가지고 “나는 이제 고달파”라고 하면 그것은 객관적인가 하면 사실 그것도 아닌 겁니다. 근데 그게 이러한 측면이 드러내놓고 좀 보이는 영화가 저는 이 영화가 처음인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60세 넘은 사람들이 이렇게 부유하고 사치스럽게, 그러니까 좋은 의미에서 사치스럽게 쑥덕댈 권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이거를 스크린에서 본 게 처음인 것 같아요. 처음이고.
뭔가 돈이 논외예요. 여기에 가난한 사람이 안 나와요. 이 영화에 가난한 사람이 안 나오고. 액수 같은 게 언급이 되기는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돈은 큰 이유가 아니에요.
근데 이게 순서를 돈이 많으니까 상상이나 하고 무슨 저기 쑥덕거리고나 있지라고 하는 것이 이제 바깥 세계가 우선이라고 여기는 뷰고. 저는 이제 완전히 그거랑 반대의 뷰를 갖고 있거든요. 세계, 제가 그냥 실제 인생, 실제라고 불리는 제 인생을 살 때 완전 반대의 뷰를 갖고 있어요.
그거를 토대로 말하면은 오히려 반대인 거예요. 이 사람들은 그래도 된다고 여겨서 그럴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예요. 근데 이 영화를 보면은 실제로 이것을 자신에게 허해주고 안 허해주는 것에 따라서 이 사람들의 행복도가 완전히 달라져요.
그러니까 “내가 이래도 된다”라고 여기면서, 그러니까 첫째로는 “내가 이렇게 죽치고 앉아서 수다를 떠는 게 가능하다”라고 여기는 것도 나의 선택이고. 그러한 그렇게 살기로 했을 때 내가 한심한 인간이 되는가 아니면 “내가 내가 이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가도 선택이고. 그것이 선택인 거를 보여주기에 돈이 많은 편이 수월하니까 그거를 선택했…을 측면이 좀 있긴 하지만, 그게 뭔가 제가 느끼기에는 편의주의적인 플롯 선택은 아니었다는 느낌입니다, 이 영화에 있어서.
다만 돈이 없으면은, 돈이 없는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에서는 돈이 굉장히 주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은 관객이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이 라이프 게임을 하러 왔으면은 돈이 너무 없잖아요? 그럼 일단 돈이 있어야지 연명을 할 수 있잖아요. 먹고살 수 있잖아요, 말 그대로. 그래서 그거를 해결하는 데에 플롯이 계속 중심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데.
이런 <The Great Beauty> 같은 영화를 보면은 돈이 너무 논외라서 이 사람들이 뭘 해도 이 사람들 선택인 거예요. 이게 되게 어 이 때문에 이 사람들이 이렇게 미친 듯이 파티장에서 춤을 추고 미친 듯이 뭔가 두둥실 떠다니다가 막 닻을 찾으려고 막 어떻게든 이 모여 가지고 앉아 가지고 쏙닥쏙닥거리는데. 모든 게 상상이고 아무도 누구를 탓할 수가 없는 거야. 왜냐? 이 이 물질 세계의 측면에서 돈이 많으니까, 탓할 수가 없어요. “누구 때문이야 정부 때문이야 누가 나를 나를 돈을 뜯어갔어 누가 나한테 사기쳤어.” 심지어는 제프도 지금 글을 안 쓰고 있긴 하지만 자기 때문이지 누구 때문이겠어요? 심지어는 인정도 다 받았어. 무슨 상도 탔대요. 그러니까 소설을 40년 전에 쓰고 다시는 쓴 적이 없는데 그게 너무 잘 돼 가지고 탓할 사람이 없어.
이 사람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등장하는 이 나이 많고 예술계에 있고 상상할 사치가 있고 권리가 있다는 걸 자기가 어느 정도 인정을 한 이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연민을 가질지언정 이 사람들이 이렇게 드러내놓고 누구를 탓하기에는 되게 애매한 그런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이게 너무나 굉장히 신선해요. 저는 이게 너무 신선하고. 그래서 되게 재미있었어요.
이런 세팅을 해놓으면은. 이렇게 돈이 많고 영향력이 있고 심지어 막 이제 역사 측면에서도 귀족인 사람들, 막 이런 사람들이 나와요. 귀족이고 막 로마의 그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을 접근할 수 있는 키를 갖고 있는데, 그 키가 그냥 비유적 키가 아니고 말 그대로 진짜 열쇠 있죠. 그 건물의 문을 따고 들어가면 거기에 막 다른 사람들은 접근도 못하는 막 로마의 문화유산이 있고. 막 이런 인물들이 나오니까. 이 사람들이 그 많은 상상할 만한 것들 중에서 뭘 선택하느냐?
그러니까 너무나 자기 선택이라서. 그러니까 도저히 이런 상태에서 남 탓을 하기에는 너무 불가한 경우가 많아가지고. 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탓을 하는 캐릭터가 또 나오기도 해요. 그래서 또 그것도 또 대조가 되고. 대조로서 역할을 하고.
해서 굉장히 이 측면에서 되게 흥미롭습니다. 이게 너무너무 제가 생각하는 세계관이고. 저는 저번 주에도 언급했지만은 그 피해자를 “너는 피해자라서 막연하게 끝도 없이 불쌍해” 이게 되게 피해자한테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은 그 피해 사건과 피해자의 정체성을 갖는 게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근데 그 피해자, 피해받은 것이 사건으로만 남고 정체성이 되지 않으려면 제일 좋은 게 나한테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해도 사실이고 있다고 해도 사실이에요. 왜냐? 다 상상이니까. 다 진짜니까. 근데 그런 어떤… 제가 맨날 이렇게 막 말하는, 제가 입버릇처럼 맨날 말하잖아요. 원래 이렇게 사니까. 이게 제 세계관이니까, 원래 이렇게 사니까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거를 영화로 본 적은 좀 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신선한 가운데.
마무리를 이제 좀 있으면 해야 될 것 같은데 어디까지 얘기하고 마무리를 할까? 어 이거 이상 상상이 무엇인가 무엇이 진짜인가 요거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야 될 것 같으니까. 여기서 끊고 아 다음 에피소드에서 과연 이거 1시간 좀 넘게 해서 끝날 수 있을 것인가? 다음 에피소드에서 랩을 좀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음. 영화 재밌어요. 재미있고. 오늘 주로 이제 분위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주가 되는 영화 같아요. 이것을 보고서 내가 삶에서 진짜라고 불리는 이 삶에 나가가지고 이 카메라처럼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은… 재밌습니다.
어 네. 일단은. 여기서 어 이번 에피소드 끝낼게요.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 < The Great Beauty > (La grande bellezza)
- < The Shape of Water >
- “밤 끝으로의 여행”
- Four-quadrant movie (25세 이하 여자, 25세 이하 남자, 25세 이상 여자, 25세 이하 남자)
- 고막사람
제가 이 필명으로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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