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야기하는 자, 한아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특이 취향 불면자들을 위한 약간 이상한 꿈자리 수다,’ 아임 드리밍을 듣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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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에 <The Great Beauty>라는 영화에 나오는 상상의 선택, 그 사치와 여유로움, 권리 등등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끝났는데 바로 거기서 픽업하기 위하여 영화에 맨 처음에 나오는 인용문을 다시 읽어볼게요.
“여행은 유용하다.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한다. 나머지는 전부 실망과 피로다. 우리의 여행은 전적으로 상상이다. 이것이 바로 그것의 힘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진다. 사람 동물 도시 사물 – 전부 상상이다. 소설, 단지 허구의 서사다. 리트르는 그렇게 말하며 그는 결코 틀리는 법이 없다. 게다가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냥 눈을 감으면 된다. 그것은 삶 너머에 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그냥 인용문을 말만 갖다 쓰는 게 아니라 제가 느끼기에는 진짜로 진짜로 그 세계관을 표현을 해 온, 대략 30분, 40분 동안 지금까지 표현을 해온 그 영화가 그다음에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저번 주에 얘기한 그 돈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예술적으로도 성공한 사람들이 심지어 사회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그런데 심지어는 또 직접적으로 역사적으로 혜택을 받아서 귀족이거나 귀족들과 친구거나 연관이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 하필이면 하는 상상이 무엇이냐? 제법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에 쌓여 있는 그런 상상을 합니다.
저번 주에 얘기했던, 정말 죽치고 앉아서 수다를 떠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이 제가 저번 주에 전달을 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에요. 아니 남이사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앉아서, 죽치고 앉아서 뭐에 대해서 얘기하든 아무 상관없죠. 내가 뭐 그러겠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근데 키 포인트는 다른 사람이 와서 이 사람들한테 뭐 한심하다든지 뭐 “돈도 많은데 왜 그러냐” 이러는 게 아니고 본인들이 본인들이 굉장히 불만족하는데, 다만 그것이 굉장히 우아한 방식으로 우아한 카메라 움직임과 서사로 그리고 극 중에서도 우아한 옷을 차려 입고 빛나는 부와 예술에 둘러싸여 있는 바람에 잘 티가 안 날 뿐이지.
처음에 나왔을 때는 제가 좀 긴가민가했어요. 처음에 이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할 때는 그냥 얘기하는 걸로 보였어요. 뭐 남이사 뭐 파티를 하고 나서 얘기를 하든 전에 얘기하든 맨날 얘기하든 이틀에 한 번씩 얘기하든 1년에 한 번씩 얘기하든 알 바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얘기하는 씬인 줄 알았단 말이죠.
근데 이러한 씬들이 여러 번 나오기 시작하고, 파티 씬들도 여러 번 나오기 시작하면은 그 마치 맨 그 영화의 초반 10분 정도에 나왔던 파티씬에서처럼 춤을 추는데 즐거워 보이지가 않고 어느 순간이 되면은 힘들어 보이고 약간 진짜 측은해 보이고 저렇게까지 춤을 춰야 되나? 저렇게까지 맨날 파티를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가운데 이제 초반 한 20분 정도는 대사가 좀 많이 없다가 대사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이것이 그냥 보는 사람의 느낌이 아니라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어느 정도는 일부임이 드러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캐릭터들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스스로도 한심한 거예요. 스스로 한심하다고까지 말을 대놓고 안 하더라도 이를테면 이런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이 돈 많고 죽치고 앉아가지고 어떤 특정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어 무슨 얘기를 하느냐? 무엇이 진실이라고 상상하느냐면은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요즘 젊은 애들은 하는 일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이제 50 몇 살 됐거든요. 아 근데 이거만큼 한심한 게 또 있을까?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없이 죽치고 앉아서 노닥거리는 사람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하는 일이 없냐고, 하필이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이 세상의 그 많은 상상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하필이면 믿는 게 그거라고?
그러니까 어… 그러한 발언으로부터 이제 캐릭터들 간의 약간 말다툼은 아니고요. 그냥 “너도 찌질하지 않냐” 약간 그런 “우리 찌질한 사람들끼리 보듬어 줘야 되지 않냐” 뭐 이런 이런 센티먼트들도 나오는데, 그것도 너무 신기한 생각인 거예요.
그러니까, 물론 그래 뭐 어느 정도 겸손이라는 걸 해가지고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까 뭐 남 탓하지 마라 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 엮는 것이 특히나 우리 우리의 주인공 제프 씨가 엮는 것이 뭐냐면은 “너도 부족하고 나도 부족하니까 부족한 사람들끼리 우리 이렇게 부족하게 있자”는 식의 그런 뉘앙스인 거예요.
그래서 이것도 제가 너무 너무 이상한데, 그냥 나의 느낌인가? 그러니까 이 한아임이 한아임 같은 사람이라서 이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가? 라고 했는데 제가 나중에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젭이 생각해도 자기가 그러고 있는 게 한심하다고 말이 나와요. 아예 아예 대사로 나와요.
왜냐면은 이건 겸손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심한데 나랑 같이 한심한 사람들이랑 같이 있어서 우리가 다 함께 한심하자? 이거는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진짜 피차 시간 낭비인데 젭이 딱 그 말을 하는 게 나오거든요. 이것이 시간 낭비였다는 걸. 근데 이제 다만 다만 영화가 너무나 우아하고 그러니까 이런 캐릭터들이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에 빠져 있을 때도 이 영화가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에 빠진 건 아니라고 저는 보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또 재미있는 건데… 그렇지만 캐릭터들은 이러하다. 그러니까 선택할 수 있는 그 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이런 류를 선택한다. 그러니까 요즘 애들은 뭐 하는 게 없다, 뭐 요즘 사람들은 뭐 뭐 뭐 이렇게 뭐 어떤 의무감? 의식 국가에 대한 애국심 뭐 이런 게 없다. 나중에는 뭐 다른 캐릭터들은 뭐 이러한 누구 트레이너 트레이너랑 누구누구가 사귄다더라. 뭐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아니 저렇게 시간이 많고 맨날 파티하고 저렇게 돈도 많고 영향력도 많은 사람들이 저거밖에 못한다고? 이런 생각이 진짜 좀 드는데.
그러는 와중에 좀 특이점이 뭐냐면은 하필이면 이 캐릭터들이 이렇게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하는 이 내용이 요즘 애들이 하는 게 없다로부터 시작해서 약간 no pain no gain 멘탈리티 있죠. “나는 이렇게 희생하는데 요즘 애들은 하는 게 없다.” 이런 것에 대해서 이제 좀 왈가왈부를 하는 거예요.
이게 그러니까 되게 좀 저는 좀 무섭더라고요. 이 영화에서 좀 주된 개념 중에 하나로 나오는 게 좀 희생? 이런 숭고한 희생? 이런 콘셉트인데. 저는 제 세계관이 아주 확고하게 no pain no gain 운운하면 반드시 pain 없이는 절대 gain이 없을 것이라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제 세계관이 맞아서가 아니고 본인이 그걸 택해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의 세계에서 내가 내가 세계관을 택할 수 있는데 no pain no gain으로 하기로 했어. 그러면 어떻게 pain 없이 gain이 나올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그러한 불리한 걸 믿으면은 절대 반드시 불리해진다.
너무 당연하게 들리죠. 항상 제가 이거 이런 거 말하면서 웃는 이유가 너무 너무 그냥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를 설명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내가 no pain no gain을 믿으면 no pain no gain이다. 이게 너무 당연한데, 이거를 당연한데도 자기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때가 있고,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거의 뭐 영화의 대부분 동안 우리 우리 주인공 제프 씨도 그렇고 다른 캐릭터들도 그렇고 자기가 자기를 얼마나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혐오하는지를 몰라요.
그러니까 젭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거를 완전히 인정한 적이 없고 아주 끝에 가서야 인정하는 그런 모습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이러한 인물들이 no pain no gain. 그리고 뭐 희생은 숭고하다 이걸 믿잖아요? 이거를 뭐 영화 속에서도 믿고 ‘실제’라는 그 게임 플레이에서도 믿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숭고하려면 반드시 희생해야 됩니다. 자기가 gain을 얻으려면 반드시 pain이 있어야 되고. 자기가 세팅한 게임의 룰이에요.
근데 그러는 와중에 이 캐릭터가 말하는 걸 보면 어때요? “요즘 애들은 하는 일이 없어. 너무 한심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가 하는 거를 보지 못하니까, 그리고 자기는 보더라도 자기가 너무 희생양인 거야. 나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요즘 애들은 왜 안 힘드냐 이거야. 이렇게 희생이 숭고한데. 그러면서 이제 요즘 애들도 숭고해야 된다고 하는 건데. 이게 너무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세계관이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를 보여주죠.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가 자기 세계관이 마음에 들었으면 남이사 희생을 하든 말든 “내가 최고로 많이 희생해서 최고로 많이 얻어야지!” 막 이러면 됩니다.
진짜로 자기가 no pain no gain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면 아싸 pain이 있을 때마다 “아싸 pain이다. 그럼 gain이겠지?” 막 이러면서 이제 좋아해야 정상이죠. 근데 자기가 그러니까 이렇게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이 있을 때는 본인의 세계관이 본인의 세계관 안에서 붕괴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지, 결코 밖에서 누가 젊은 애들이 어떻든 늙은 애들이 어떻든 누가 뭘 해도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는 거죠. 그게 되게 드러나고 그렇게 말하는 이 사람을 우리 주인공인 제프가 “우리 모두 이렇게 모자란데 왜 너 혼자서 잘난 척이냐” 이러면서 “우리 모자란 사람끼리 보듬어주자”라는 마치 좋은 메시지인 것처럼 말을 하지만 사실은 젭도 다를 게 없어요. 이게 이게 다를 게 없다는 게 나중에 젭이 하는 행동과 대사로 드러납니다.
이게 마치, 제가 만약에 여기서, <The Great Beauty>라는 이 영화가 만약에 여기서 여기서 이렇게 제프의 디벨롭먼트가 끝이 났으면은 아, 극히 실망했을 거예요. 이게 끝이라고? 희생, 숭고한 희생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한테 제프가 “야 우리 모두 이렇게 희생양인데 다 같이 희생양끼리 불쌍히 노닥거리자” 이런 걸로 끝났다면은 아… 일단 2개, 에피소드 2개 안 나왔을 거고요. 매우 실망했을 텐데 전혀 이 영화는 전혀 전혀 그런 영화가 아니고 여기가 중간 포인트도 안 돼요. 그러니까 영화 전체가 2시간 10분, 20분 정도인데, 이러한 이 싸움 싸움 아닌 싸움 신 말다툼 씬이 나오는 데가 60분도 안 되는 지점이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제법 이렇게 초반인 거죠. 제법 초반 3분의 1? 이쯤에 나오는데, 그래서 영화가 너무 아름답고 처음에 나오는 인용문에서 절대 멀어지는 법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모든 게 상상인데 ‘실제로’ 희생이 숭고한 게 어디 있어요? 내가 선택한 그냥 상상의 일부인 거지. 나의 삶의 여정에서 하필이면 나는 그걸 선택하기로 한 거야. 그리고 이 시점의 그 캐릭터도 그렇고 이 시점의 제프도 “우리는 이렇게 불쌍하고, 우리는 이렇게 혐오스러운데 불쌍하다” 이거 되게 이게 되게 제가 내면 작업하면서 제가 저도 스스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놀라는 부분이 이거예요. 이렇게 자기를 혐오하면서 이렇게 자기를 불쌍하게 여길 수가 있는가. 이게 이게 되게 말이 안 되는데. 말이 안 되니까 불만족스러우니까 자기 내면에서 세계관이 붕괴되니까 본인도 불편한 거거든요. 이거를 그러니까 불편해도 한 번 보고 나면 이게 점점 없어져요. 일단은 이걸 봐야 되는데.
말하자면 <The Great Beauty>가 제프라는 이 65세 할아버지가 드디어 65세가 돼서 드디어 이거를 보기 시작하는 거에 대한 내용인 거예요.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은. 그러니까 40, 40년 동안, 40년 전에 소설을 써서 잘 됐는데 40년 동안 다음 소설을 한 번도 못 썼고. 오히려 그 소설이 잘 되는 바람에 오히려 지금 이렇게 상상할 여유와 사치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가지고 스스로를 대놓고는 탓하지 못하는데 사실 속으로는 되게 탓하고 있는. 요 상태. 이 상태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이 요 상태에 머물러 있고. 몇몇 캐릭터들은 약간 마치 마치 젭보다는 축복받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사는 캐릭터들도 사실은 그 사람들이 훨씬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세계관을 알고 있고 그 안에서 행복하거든요.
근데 정말 젭은, 젭이 나중에 대사로 말해요. 자기는 로마에 왔을 때 너무 잘 되고 싶었고 그냥 파티에 참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파티를 make or break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파티의 성, 성공,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그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고.
그러니까 이 사람이 처음에 소설을 썼을 때는 그 소설에 대한 코멘트도 영화에 많이 나와요. 소설이 정말 좋았다. 소설을 쓸 당시에 당신은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게 확실하다 뭐 이런 여러 가지 호평과, “왜 소설을 쓰지 않았냐?” 이런 것들이 나오는데 제프가 그거를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반 이상을 거의 뭐 그냥 이렇게 능글맞게 그냥 이렇게 이렇게 피해가거든요.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직접적인 대답을 피해 가는데.
피해 갔다 하기도 애매한 게 자기도 몰라서 그래요. 자기도 답을 몰라요. 그 영화의 절반 이상이 지날 때까지도 자기가 몰라요. 왜 못 쓰는지. 그런데 이제 후반에 가면서 알게 되는 거죠. 자기가 원했던 걸 젭이 가졌어요. 그러니까 그 영향력 있는 그 위치도 가졌고 성공도 가졌고 돈도 가졌고 그 많은 멋진 양복과 이렇게 65세 나이에 정말 웬만한 젊은 사람 갖다 놔도 이 아저씨가 더 매력적일 정도로 너무나 잘 빠진 중년 내지는 노년. 뭐 요즘에는 수명이 점점 길어지니까 이렇게 이렇게 에너제틱한 삶을 사는 이 사람을 과연 이제 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러는데 이제 이 사람이 점점 이제 느끼는 과정이 있거든요. 내가 노인이구나. 그러니까 노인이라고 말을 대놓고 안 하더라도 내가 늙었구나, 라고 ‘실제로’ 그래서가 아니라 자기가 드디어 인정을 했다는 것으로 저는 해석을 합니다. ‘실제로’ 나이가 많은 나이는 없어요. 제가 저번 주에 얘기했죠. 중학생인데 인생 다 산 것 같은 사람이 있다고. 중학생 때부터 그러는 거예요. 14살 때부터 그러는 거예요. 그거는 ‘실제’가 아니고 멘탈리티의, 그 상태의 대변이고, 이 제프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에너제틱한 삶을 살았지만 65세가 되도록 어떤 면에서는 너무너무 늙었고 어떤 면에서는 그 스물몇 살 때의 그거를 아직도 놓지 못해서 자라지를 못한 거예요. 그래서 되게 양면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거를 영화가 굉장히 아주 우아하게 보여줍니다.
저번 주에 얘기한 그 모든 대조적인 것들 있죠. 성스러운 음악과 클럽 음악의 대조. 비껴가는 것처럼 스르륵 움직이는 카메라가 갑자기 정중앙에 딱 대칭이 맞는 프레임에 고정된다든지. 뭐 이런 것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의 그런 대조할 만한 것을 보여주면서, 이 캐릭터들도 그러니까 되게 혐오스러운데, 그러니까 본인이 혐오스러운데, 본인이 또 되게 불쌍해. 요런 것들이 심어져 있어요. 심어져 있는데. 아주 드러내놓고 완전하게 말로 이런 지점을 다 짚어주지는 않는 측면이 또 있어서, 저는 너무 재미있었는데 혹시 이런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면은 되게 수수께끼 같을까? 그런 생각도 좀 들기는 했어요.
근데 수수께끼 같으라고 의도한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러한 걸, 이러한 걸 발견을 만약에 한다면 그거는 보는 사람이 그런 걸 상상하기로 해서 본 것이고 굳이 영화가 이렇게 모든 걸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처음에 인용문도 그렇고 이 내용 자체도 그렇고 모든 요소 요소가 좀 수수께끼 같아도 그러려니, 라고 여겨집니다.
어… 아무튼 우리 젭은 아주 아주 능글 맞아요. 이 이 노닥거리는 씬에서 그 한 캐릭터가 “사람들 왜 이렇게 한심하냐” 이렇게 했을 때도 그 사람이 그거를 인정을 안 하니까, 젭이 이제, 이해를, 그 그 사람이 이해를 못하니까 “왜 그러니까 왜 우리가 그렇게 다 불쌍하다는 거야? 왜 왜 뭐 왜 그런 말을 해?“ 이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젭이 굉장히 능글맞게 하나하나 그 사람의 잘못된 생각을 다 꼬집어 주거든요.
”너 너가 무슨 희생을 했냐. 뭐 너는 돈도 많고 무슨 뭐 집에 뭐 요리사도 있고 베이비시터도 있고 자식들이라고는 낳아놓기는 했는데 걔네랑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랑은 사이 좋은 척하는데 걔는 남편은 게이고, 네가 무슨 희생을 했냐” 뭐 이러면서 이제 설명을 하나하나씩 해줘요. 근데 해주는 게 해주는 방식이 되게 그 suave한 거 있죠? 되게 능글맞고 젠틀하면서 할 말은 다 하는데, 그러면서 마지막 결론이 “우리는 이렇게 다 같이 불쌍하고 서로를 연민해야 된다” 이런 식의 결과가 나왔는데.
어… 참 아이디얼하지 않은 상태죠. 그러니까 서로… 저는 좀 놀랐어요. 젭이 되게 되게 이렇게 우아한 인물이고. 스스로 잘 가꾸고. 부지런하거든요. 그러니까 옷을 입는 것도 되게 부지런하잖아요. 그… 어쩌면 그렇게 어쩌면 진짜 그렇게 산책을 가더라도 양복을 쫙 빼입고 가는지. 심지어 친구 집에 잠깐, 방 하나 빌려서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도 양복을 그냥 위아래로 모자까지 쫙 빼입고 가는데 이거 굉장히 부지런한 거잖아요. 부지런하고 자신을 가꾸는데. 그래서 제가 좀 놀랐어요. 이렇게 자기 연민이 있는 인물이구나. 이 젭이. 정말 아이디얼하지 않은 상황이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왜냐하면은 스스로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이렇게 계속 죽치고 이야기하는 게 정말 아이디얼하지 않은데.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그 현상 자체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죽치고 얘기하는 거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 그럴 수도 있죠. 근데 본인이 이게 비정상인데도 정상이라고 상상하기로 했다는 게 키 포인트인 것 같아요.
어… 그런데 이 영화가 요런 어떤 막연한 불만족스러움의 젭에게 이 차밍, 정말 charm을 주었어요. 너무너무 차밍한 남자고. 영화의 수려함. 그리고 정말 끊임없이 계속 주어지는 생각할 거리 그리고 아주 원초적인 볼거리들이 많거든요. 나체도 많고. 막 괴로워하는 모습들도 중간중간에 나오고. 굉장히 생뚱맞게 막 깔깔거리는 소리도 나와요. 저 좀 되게 기괴하게 갑자기 막 깔깔깔깔깔 이러는데 그게 왜, 그 사람이 왜 웃었는지 아무 아무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고.
그래서 영화가 어… 영화는 자기 연민을 하지도 않고 자기 혐오를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어… 그리고 아름다움에 너무 목매달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의 제목은 <The Great Beauty>고 나중에 젭이 말하기를 자기는, 그러니까 본인의 어떤 삶의 ‘실패’라기보다는 삶의 이런, 이렇게까지 성공했는데도 성공을 성공으로 여길 수 없이 계속 막연하게 불만족스러웠던 원인으로, 원인이라고 말은 안 하지만 원인임을 아는 것 같은 씬에서 자기는 그레이트 뷰티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소설을 못 썼다. 이런 식의 말이 나오는데. 요 러한 젭과 대조되는 사람으로 “나는 아름다운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 캐릭터가 나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래서 영화가… 굉장히 밸런스가 좋은 것 같아요. 균형이 너무 잘 잡힌 것 같고 그래서 이렇게 카메라가 와 막 이렇게 두둥실 두둥실 막 이렇게 움직이거든요. 진짜 무슨 구름이 막 붕붕 떠다니듯이 움직일 때도 있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뭔가 균형이 막 흔들리는 그런 느낌이 안 드는 게 요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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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서포팅 캐릭터인데 플롯적으로 제법 중요하게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하나가 완전 광인이라고 볼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니까 어 이 삶은 전부 상상이다, 허구다, 소설이다라고 말하는 인용문으로 시작한 이 영화가 광인을 보여준단 말이죠. 이 광인은 도대체 무엇을 선택한 사람인가? 심지어 이 광인은 특히나 좀 부자인 사람의 자식으로 나오거든요. 젭의 여자 지인 중에 과부가 된 사람이 있는데 굉장히 돈이 많다고 처음에 아예 말이 나오는, 대사로 나오는 여자가 있어요.
그 여자의 아들이 이제 광인, 정말 완전 미친, 어 막 몸에 막 시뻘건 페인트를 칠하고 막 집에서 다 큰 남자가, 막 30살 된 남자가 다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그래가지고 그 젭의 지인인 그 여자 부자가 막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을 짓는 그런 장면들이 나와요.
그런데 이 이 광인이 왜 이런 걸, 왜 이러고 있느냐. 왜 왜 집에서 그 돈 많은 그 그 영향력 많은 그 시간 많은 그 사람 중에 한 명인 그 광인이 왜 그러고 있느냐? 하필이면 그 사람이 이제 책 작가들을 언급하거든요. 이런 그런 유명한 작가들을 언급하면서, 이 작가가 세상이 무너질 거라 그랬고 세상이 멸망할 거라 그랬고 뭐 죽음이 나를 쳐다본다고 그랬고. 뭐 이런 이런 종류의 말들을 하는 거예요.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 나고 그게 중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포인트는, 제가 생각했을 때 중요한 포인트는 이 광인이 이렇게 자기한테 주어진, 그러니까 객관적이라는 게 있다면 객관적으로 주어진 자원이 이렇게 많은데 그 자원으로 한다는 게 하필이면 책을 사도 자기가 생각했을 때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막 죽음이 자기를 노려본다고 하는 그런 책들을 골라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기로 했다는 거예요.
근데 이게 뭐… 미쳤으니까, 이 사람이 정말 정말 이 사람은 클리니컬리 미쳤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병원에 가면 정신병이라고 이제 본인과 사회에 해가 되니 어떻게 여기 있어야 된다, 이렇게 할 정도로, 정말 미친 정신병자라고 볼 수 있는데. “미쳤으니까 그런 걸 믿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이 영화의… 구조나 이 영화의 요소들을 보면은 그 말을 하려는 것보다는 반대의 말을 하려는 것 같아요. “이런 걸 믿으니까 미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병이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왜 시작하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는 영화가 디테일하게 나오지 않고요. 이 인물은… 두 번 세 번? 아. 뻘겋게 시뻘겋게 칠한 모습. 그리고 뭐 자기가 무슨 책을 읽었고 뭘 믿는지 말하는 레스토랑 씬 모습. 그리고 이제 마지막에 이제 이 사람이 죽기 직전의 씬. 요렇게 해서 아마 3번 나온 것 같아요. 그 정도 나온 것 같은데.
그 세 번의 씬의 그 타이밍과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봤을 때… 하필이면 한다는 선택이 이거였다는 점. 근데 이제 뭐 그래서 이 사람이 “너는 가진 것도 많은데 왜 그러냐” 이런 메시지가 영화의 메시지라기보다는 “너한테 이만큼의 힘이 있는데 이런 선택을 했군” 정도? 요런 느낌이에요.
이게 정말 지금 몇 주째 계속 제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까 영화들이 그런 메시지가 좀 있네요. 뭔가 희생자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을 막무가내로 불쌍해한다고 해서 되는 게 없다는 말을 제가 지금 몇 주째 계속하고 있어요.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그걸로 끝난다고 하는 거는 그 사람의 그, 인간으로 태어난 그 사람에게 되게 누가 될 지경이라고 저는 어떤 경우에 따라서 생각하거든요.
당연히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뭔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거는 그냥 본인이 그렇게 결정하거나 사회가 자꾸 그 사람한테 그렇게 믿으라고 해서 그렇지. 이 지금 영화에 나오는 이 광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저는 믿을 수가 없고요. 본인이 정말 그 씬들과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보면 본인이 얼마나 그걸 믿고 싶어 했는지… 정말 그런 기분이 들 정도예요.
어 이거랑 관련돼서 제가 최근에 어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지 않습니까? 제가 원하는 프라이빗 그룹에 들어가고 싶어 가지고 거기에 들어가려고 이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만들어서 이제 들어가서 이제 그룹에 있는데. 굉장히 진취적인 그런 사람들이 있다가도 거기에 이제 anonymous post를 할 수 있거든요. 일단 그룹에 들어오고 나면은 그 그룹 어드민들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알지만은 이제 전체 그룹에다가 내가 글을 올릴 때 실명 내지는 뭐 이제 자기 그 프로필 이름으로 올릴 필요가 없고 anonymous로 올릴 수가 있어요.
거기서 어떤 사람이, 작가 그룹인데, 어떤 사람이 막 “나한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어떡하냐?” 이렇게 질문식으로 “어떡하지?” 이런 식으로 올렸는데 사람들이 이제 다 이제 얘기해 주는 거예요. “그런 거는 괜찮다. 그런 일은 다른 작가들한테도 있다.” 아니면 뭐 “힘들겠지만 무시해라. 그 힘들다고 여겨지는 그 원인을 무시하고 그냥 새로 넘어가라.” 뭐 여러 가지 그런 조언들이 있었어요.
근데 한동안 그 어노니머스 포스트를 올린 사람이 어떤 행동을 보였냐면은 그러한 조언을 보여, 이렇게 주는 사람들한테 “그럴 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분명 이렇게 제가 그 문제를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자기가 “나한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어.” 뭐 약간 “작가로서 뭔가 정신적 내지는 실질적 타격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 이러한 사건이 나한테 있었어. 어떡할까?“라고 물었는데 사람들이 남들한테도 그런 일이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괜찮다 이러 이렇게 하면은 뭐 해결을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다 해주는데 반응이 그랬다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다고. “괜찮을 리가 없다. 남들도 이런 일을 겪을 리가 없다.” 거의 진짜 정말로. 이게 약간… 이제 이거를 관찰을 외부에서 하지 않으면은 그럴 수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실제로 진짜 그러한 일들이 펼쳐져요. 그러니까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하고 ‘실제로’ 그러니까 말하자면 객관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있다면 실제로도 이러이러한 스텝을, 과정을 거치면은 해결이 되고, 하는데 이 사람은 너무나 너무나 이게 되게 양면적인 거죠. 괜찮다는 말을 들으려고 이 그룹에 왔을 텐데,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막상 들으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근데 이게 여러분 진짜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실제 생활에서도 그렇고 본인 혹은 타인이 얼마나 이거를 많이 하고 있는지 보면, 항상 말하지만 처음엔 빡치다가 나중엔 웃겨요. 이게 너무 너무 웃기잖아요. 그래서 원하는 게 지금 뭔지도 모르는 거예요. 지금 그래서 괜찮다고 말해 주길 바라는 거야? 아니면 진짜 실질적 조언을 바라는 거야? 아니면 진짜 세상이 멸망할 거니까 넌 이제 망했다라고 말해 주길 바라는 거야?
이게 이게 본인 내에서도 본인도 몰라요. 본인도 모르고. 뭐만 아냐면은 “나는 무척이나 불쌍한 존재인데 무척이나 혐오스럽다.” 그러니까 뭔가 문제가 진짜 나한테 있는데, 문제가 있다고 누가 나한테 하면 그건 싫어. 내가 인정을 안 했으니까. 근데 나는 너무 불쌍해. 이게 계속 이제, 가장 가장 이게 제 생각에는 기저 망상 중에 기저 망상에 가장… 가장 내가 어딘가에 갇혀 있다라는 그런 망상이 들 때 이게 거의 항상 이거더라고요.
나는 나는 뭔가 내가 인정하지 않은 혐오스러운 게 있는데 그렇게 혐오스러운 내가, 내지는 혐오스러운 걸 인정하지 못하는 내가 나는 무척 불쌍해.
이거가 이렇게 뒤섞여가지고, 뭘 원하는지 본인도 몰라요. 그래서 누가 나를 공격해도 마음에 안 들고. 누가 그 공격을 괜찮다고, 그러니까 그 공격한 사람이 나빠, 너가 불쌍하다라고 말해줘도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는 누가 공격을 아예 가서 막아줘. 막아줘도 마음에 안 들고. 이런 거예요.
근데 이 영화에 나오는 광인. 이 30살인데 정말 정신병 수준으로 미친 이 광인도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이러 이러이러한 작가들의 이러이러한 책이, 책을 읽었는데 세상이 멸망할 거고 죽음이 자기를 노려 본대. 노려본다는 말을 그 말을 젭한테 해요.
그럼 젭은, 젭도 자기가 자기가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완전히 이렇게 자각한 게 아니란 말이죠, 영화의 대부분 동안에. 그러니까 이 젊은 남자가, 자기보다 나이 한 절반 정도 되는 남자가 와가지고 레스토랑에서. 그날은 또 이렇게 멀쩡한 옷을 입고 있었어요. 멀쩡한 옷을 입고 있으니까 젭은 좀 약간 대수롭지 않고, 않게 여기면서 또 젭이랑 데이트하는 여자가 같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젊은 남자한테 “왜 그런 얘기를 듣냐. 그런 거 아무도 그런 거 이해 못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줘요, 그 남자한테. 그랬더니 그 남자가 “당신이 이해 못한다고 아니면 뭐 누구누구가 이해를 못한다고 해서 이거를 아무도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남자가 대답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남자가 딱 그 상태인 거예요. 이 세상이, 되게 심각한 상태인 거죠. 제가 예시를 든 그 페이스북 상태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인 거죠. 세상이 멸망하고 죽음이 자기를 어딜 가든 노려볼 것 같은데, 그거를 어떤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라고 말해주는데 “아니 진짜 완전 딱 진짜 그게 진실이고 그게 진짜 현실이고 니가 그걸 이해를 못하면은 그거는 네가 이해를 못하는 거지, 네가 이해를 못한다고 해서 남들도 다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니고 나는 그걸 이해를 한다”는 뜻이잖아요. 그 광인 입장에서 “나는 이 작가들의 말을 이해한다”는 뜻이잖아요.
세상이 멸망하고 죽음이 전부야. 죽음이 나를 막 노려봐. 이걸 자기는 이해하니까 여기에 얼마나 그 짧은 순간에 인간의 대부분이 한 번쯤은 겪는 이 완전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세계관 있죠. “나는 되게 고귀한데 되게 희생을 하고 있고 이렇게 힘든 나. 이렇게 숭고한 나는 굉장히 힘든데.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니들은 이해 못하지?” 요게 되게 슬프지만 영화에 있어요.
근데 이제 만약에 젭이, 주인공인 젭이 이랬으면 우리가 보면서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왜냐면은 내가 그런 상태에 있어도 그걸 지켜보는 게 힘들고. 내가 그런 상태에 안 있어도 안 있다 보면 오히려 저걸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요. 본인이, 본인이 해야 돼요. 왜냐? 본인한테밖에 힘이 없기 때문에 다른 누가 가서 도와줄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사실 그 본인의 힘을 가져가는 거기 때문에. 아니에요, 본인이 해야지, 그 누구도 이 이 인 광인 캐릭터를 대신해서 세상에 그런 것만 있지 않다고 말해 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거를 보면서, 만약에 그게 만약에 주인공이 주인공이었다면 “이거를 왜 보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 이 광인은 세 번인가의 씬 밖에 안 나온단 말이죠. 아마 토탈 스크린 타임이 5분도 안 돼요. 언급, 잠시 언급? 포함해서 5분도 안 되고. 이 광인은 그러니까 마지막 마지막 씬에서 이 사람이 처음 등장할 때는 온몸에 시뻘건 페인트칠을 하고 엄마 앞에서 나체로 있고. 두 번째 씬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젭을 만나는 신인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기론 요 세 씬이거든요. 그리고 세 번째 씬이 이제 이 사람이 어 차에 있는데 다른 건 안 나오고 차 내부에서 그 사람 얼굴 정면만 보여주는데 차가 엄청 과속하는 그 소리, 소리로 과속이 표현되면서 그 사람이 눈을 감거든요.
그러고서 이제 그 사람이 장례식이 나오는 거예요. 죽은 거예요. 아마 자살을 했겠죠? 차를 뭐, 다른 사람을 친 것 같지는 않아요. 본인이 이제 어디다 들이받고 죽은 것 같아요.
그 모든 걸 통틀어서, 그러니까 처음에 돈 많은 여자가 등장을 하고 나중에 그 여자가 그 자식 걱정을 하는 거, 뭐 이런 이런 거를 다 포함해서 5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장례식 씬이 조금 더 길긴 한데 그래봤자 이 광인 남자가 언급되는 씬이 10분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2시간 10분, 20분 되는 영화에서 10분 길이이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이게, 이러한 인물이 주인공이었으면은 아 이거는 정말… 이러한 상태는 살기도 힘들고 보기에도 힘든 상태예요. 그리고 본다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볼 필요가 없다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뭐 이거는… 뭔가 그게. 불쌍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계속 볼수록 그 사람은 그냥 계속 불쌍하게 있어요. 그래서 그거를 만약에 내가 어떤 힘들어하는 사람을 접근하는 방식이 불쌍해서라면은 안 접근하는 게 낫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근본적으로는 안 불쌍하니까 접근을 한다면 모를까, 정말 그 사람이 불쌍해서라는 이유면은 나는 끊임없이 그 사람을 계속 불쌍함에 그냥 가둬놓는 거기 때문에 굳이 볼 필요가 없다는 주의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다행히, 다행히 우리 젭이 그런 사람은 아니고. 우리 우리 관객 입장에선 그게 너무 다행이죠. 왜냐하면 안 힘드니까. 젭은 너무나 suave한 잘 빠져 있는 그런 양복을 입은 65세 할아버지고.
이러한 젭이 이제 영화 중간 정도에서 드러내놓고 말을 합니다. 이런 대사가 나와요. “65세가 되고서 며칠 후에 내가 깨달은 건 더는 내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에 시간 낭비를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런 대사가 나오니까. 이게 드러내놓고 나오니까 제프가 멀쩡히 잘 살고 있는데 누가 가서 “너 왜 시간 낭비하냐” 이게 아니고요. 제프가 느끼기에 본인도 시간 낭비를 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시간 낭비라서가 아니라 본인이 “이것은 시간 낭비다”라고 생각했다는 대사가 나오고. 오히려 영화의 맨 끝부분에 모든 걸 이렇게 움켜쥐었다가 놓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시간 낭비였던 것도 시간 낭비가 아닌 것 같이 되는 고런 모먼트가 있거든요.
어… 그러합니다. 그래서 참 삶이 다 상상이라면, 그러니까 말로만 상상하는 게 아니라 상상이 이루어지는 것도, 상상한 걸 삶의 일부로 만들면 그만인데 이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어쩌면 그저 관성에 의해서 우리 젭은 하기 싫은 걸 해온 거예요. 그리고 이제는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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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영화를 완전히 시간 순서대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까 그 광인 플롯 라인, 광인 플롯 라인을 지금 좀 시간 순서 뒤죽박죽하게 얘기했고. 어… 맞는 순서. 영화에 나오는 거랑 동일한 순서는 뭐냐면은 젭이 이제 “시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하고 나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젭이 소설을 썼을 무렵으로 추정되는 그 당시에 사랑했던 여자인 엘리자의 남편입니다. 그 남편이 젭을 찾아와서 전하는 소식이 “엘리자가 죽었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이 남자가 혼자 있기 싫다고 젭더러 같이 있어 달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 저기 엘리자는 남편인 자기가 아니라 평생 주인공인 젭을 사랑했다고. 그걸 어떻게 아느냐? 엘리자가 죽고서 이 남편이 자물쇠가 달려 있는 엘리자 일기장을 봤대요. 자물쇠를 깨버리고서는. 어 근데 거기에 남편 얘기는 두 줄밖에 안 써 있고. 심지어는 “뭐 좋은 친구다” 뭐 거의 뭐 이런 식으로 써 있고 젭을 그렇게 평생 동안 좋아했다고 써 있었다는 거예요. 그럼 너무 너무 비참하잖아요.
근데 젭이 알기로는 젭을 떠난 건 엘리자란 말이죠. 그런데 어… 이 일 이후로 젭이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뭐 이러는데, 어… 이게 뭔가, 이게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젭이 처음에도 그렇고, 처음에 그 엘리자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렇고, 엘리자가 자기를 좋아했다고 했을 때도 그렇고, 엘리자랑 자기가 왜 헤어졌는지 모르더라고요.
심지어 나중에는 이 남편을 다시 찾아가서 물어봐요. “엘리자는 왜 나를 떠났대요?” 남편이 모른대요. 남편이 어떻게 알아요? 뭐 일기장을 그렇게 열심히 읽진 않았나 봐요. 그리고 일기장에는 엘리자가 젭을 계속 좋아한다고 써 있었으니까. 헤어지는 거에 대해서 안 써 있었나 봐요.
이거 굉장히, 그러니까 이 정신 상태 측면에서 봤을 때 굉장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게 자기가 젭이 40년 동안 엘리자를 계속 이렇게 그리면서 간접적으로 너무너무 사랑하면서 있었는데, 그 여자가 자기를 왜 떠났는지 몰라요. 왜 떠났는지 모르고. 어 그렇게 중요한 그 여자가 자기를 왜 떠났는지도 모르는 상태인 것이 젭이 하는 모든 선택에 좀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은 이제 마지막 순간에 아까 제가 잠깐 언급한 젭이 모든 걸 움켜쥐었다가 놓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고 했을 때, 그때 그 그 순간에 잽이 움켜쥐는 게 뭐냐면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이거든요.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을 말할 때 젭이 차마 말을 잊지 못하는 장면들이 그 앞전에 많이 나왔었는데, 마지막, 거의 맨 마지막 끝에 가서는 그 여자의 그 기억을, 우리한테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그 부분을 마치 움켜쥐는 것처럼 자기가 드디어 상기할 허락을 해 주는 거예요, 본인한테. 그러고서는 이제 확 놓아버리면서 지금까지 시간 낭비 같았던 것도 시간 낭비가 아니게 되고, “드디어 정말로 글을 쓸 수 있겠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면서 이제 영화가 끝이 나는데.
그거를, 그 미래를, 그러니까 영화 타임라인 상에서 그 미래를 알고 생각해도 그렇고, 그걸 모르더라도, 이 중간 부분까지만 영화를 봤더라도 굉장히 이상한 정신 상태인 거예요. 그러니까 정신 상태라는 건 뭐 젭이 그 아까 그 아까 말한 그 젊은이처럼 완전히 미쳤다는 게 아니고, 되게 뭔가 이상하다는 건 나한테 되게 불리하고 뭔가 뭔가 내가 불쌍하면서도 혐오스러운 정신 상태라는 거예요.
내가 누구한테 차였으면 나를 왜 차는 거냐고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거 왜 못 물어봐요? 어차피 쟤가 나 찾는데 뭐 잘 보일 게 뭐가 뭐가 있어요?
근데 젭은 40년 동안 이 여자를 좋아하면서 왜 헤어졌는지를 하나도, 처음 듣는 얘기처럼. 그러니까 이 여자가 일기장에 자기 얘기를 쓴 거를 정말로 몰랐던 것처럼. 그러니까 도대체 젭이 아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젭도 몰라요. 젭도 모르고. 그게 좀 약간 이 영화 중간 포인트에 나오는 젭의 그 자각의 시작인 것 같아요.
처음 시작은 이제 “65세 생일 이후 며칠 며칠이 지나고서 깨달은 건 시간 낭비하는 일인 것 같은 건 이제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소설을 다시 쓸 거라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엘리자가 자기를 좋아했다고? 이럴 수가. 그녀는 나를 떠났는데? 어떻게 나를 계속 좋아했을 수가 있지? 우리는 애초에 왜 헤어졌지? 이런 이런 질문을 40년 된 질문을 이제서야 하면서, 이제서야 이제서야 정말 무슨 이거는 사춘기도 아니고 오춘기도 아니고 65세가 돼서 드디어, 이제 드디어 삶이 시작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어… 이러한 가운데 굉장히 특이한 장면이 나와요. 보톡스를 하는. 보톡스 시술을 비밀리에 하는 듯한 그런 설정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마치 패션쇼와 은행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장면으로 나와요.
지금 제가 이렇게 말을 하면 “뭔 뜻이야” 싶으실 거예요. 왜냐하면 보톡스 시술을 패션쇼랑 은행을 섞어 놓은 데서 한다고? 이게 상상이 잘 안 가실 것 같은데. 진짜로 패션쇼처럼 이렇게 사람들이 패션쇼 포맷으로 이렇게 앉아 있고, 클라이언트들이. 맨 앞에 이렇게 은행처럼 정말 돈 세는 기계 같은 거 갖다 놨을 것처럼. 정말 카드 기계 이렇게 갖다 놓고 은행처럼 번호를 불러주면서 굉장히 유명한 뭔가 보톡스의 신 같은 캐릭터가 나와 가지고는 그 많은 사람들을 보톡스를 놔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게 이게 또 <The Great Beauty>에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이미지 중 하나예요. 주름과 어린이. 주름, 굉장히 자글자글한 주름과 주름 하나 없는 아주 그냥 완전 애기. 요런 대조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걸 보면 그러니까 아스트라가 이 영화 왜 골랐는지 알 것 같아요. 이, 이런 이런 보톡스 쇼를 보면은 <The Great Beauty>가 <The Shape of Water>보다 훨씬 unreal한 느낌이 있고 우리 주인공 젭도 그 보톡스 쇼에 있지만 오긴 했는데 아마 그 많은 은행 고객들 같은 그 사람들이 수술받는 걸 보고 약간 점점 얼굴이 약간 어두워져요. “아니 이게 이게 뭐람?” 이러면서 이제 아마 아마 그 시술을 안 받고 집에 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시술 장면 전과 후의 젭은 얼굴이 똑같거든요. 똑같고.
이 영화에 아동 학대로 보이는 장면도 나옵니다. 지금 여기 예술하는 사람들이 주인공 주변에 즐비한 영화잖아요. 그런데 그중에서 자기 자식을 행위 예술가로 팔아먹는 부모가 나오는데, 애는 하기 싫다는데 애가 이제 막 울면서 하는 거예요. 애를 막 끌어다가 팔을 잡고 끌어다가 애가 비명을 지르는데 가서 걔를 던져 놓다시피 해서 애가 쇼를 하거든요. 말 그대로 쇼를, 쇼를 해요. 행위에서 쇼를 해요. 강제적으로.
이게 약간 그 예술이라는 분야를 선택한 이유도, 상상할 권리? 상상할 사치? 여유?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어떤 현대 예술이야말로 좀 놀림받기도 하지 않습니까?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다 예술 된다고. 근데 정말 이 꼬마가 당하는 그런 일을 보면은,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자기 해석을 갖다 붙일 때 영화라는 걸 보고서 갖다 붙이잖아요. 영화는 보라고 만든 거잖아요. 거기다가 내가 해석 갖다 붙이는 건 내 마음이잖아요. 예술품도 그렇죠.
근데 이 영화 안에 있는 이 꼬마. 얘는 얘의 영화 내 삶이 있는 건데 얘로 인하여, 얘를 이용해서 의미 갖다 붙이기를 하는 게 얼마나 역겨울 수 있는지 좀 보여주는 그런 사례인 것 같고. 이 꼬마가 행위 예술하는 장면에서 어른 개체들, 인간 어른 개체들이 얘를 넋놓고 지켜보는데, 되게 그 떼 같아요. 쌍디귿 ㅓ ㅣ. 떼. 떼로 몰려다니면서 이렇게 돈 될 만한 아트가 뭔지 찾아다니는 고런 어떤 자기 혼자의 존재로서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 어른 개체들이 보여집니다.
근데 그 와중에 젭이랑, 젭이 드디어 옛날 사랑을 잊고 사랑에 빠지는 듯한 여자가 있었으니, 그 여자가 이 행위 예술 꼬마가 있는 파티에 같이 온 여자거든요. 근데 이 여자가 저 꼬마애 울고 있다며, 다른 어른 개체들은 이제 걔가 울든지 말든지 눈치도 못 채는 것 같은데, 그 여자는 저 꼬마가 울고 있는 것 같다고.
이때 또 젭이 되게 능글 막 “뭔 소리 하는 거야 쟤 쟤 엄청 돈 엄청 벌어” 이러면서 이제 그 특유의 중요 포인트를 못 잡고, 이 사람이 차밍해서 그렇지 사실은 사실은 되게 본인도 불행한 그런 그런 언어를 구사하거든요. 지금 저 여자애 운다는데 걔가 돈을 많이 벌든 말든 뭔 상관이야. 근데 젭은 한다는 말이 그건 거예요. 쟤는 돈 엄청 번다고.
그러면서 이제 그렇다고 해서 젭이 또, 젭은 젠틀맨이니까 여자가 있기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데리고 나가요. 데리고 나가면서 가는 곳이 너무너무 고대의 것이라서 거의 뭐 이제 저 꼬마에 비하면은 죽은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는 오래된 건축물과 예술품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이 주인공과 여자가 같이 가요.
근데 그 꼬마 행위 예술 장면을 보고 나면 이게 되게 마음이 놓여요. 왜냐하면 살아있는 건축물이 아닌 데다가, 너무 옛날의 것이라서 지금 살아 있어도 죽을… 거의 뭐 이제 죽는 능력도 상실했을 것 같은. 거의 뭐 이쯤 되면 “지금까지 살았으면 앞으로도 안 죽겠지.” 거의 그런 어떤 안도감을 주는 오래된 돌, 석상, 건물. 요런 것들이 나오는데.
어… 굉장히 이게 이러한 대조가 영화가 배려심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힘들지 않게. 너무 그… 너무… 광인이라든지 아니면 그 학대당하는 꼬마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길 바라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모든 게 상상이라면은 이 영화가 하는 상상도 그것이 현실이라서 그것만 봐야 된다는 건 결코 이 영화가 선택한 상상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아까 언급한 그 광인이 죽고요. 그 사람의 장례식이 나와요. 장례식이 나오고. 젭은 “장례식은 무대에 오르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도 그러니까 무대에 오르는 것 같기에 거기서 울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웁니다. 거기서 울어요. 그러니까 이 젭의 캐릭터는 40년 동안 차곡차곡 가려온 자기의 뭔가 부정해 온 측면이 있지만 또 되게 소년 같은 면이 있어요. 그래서 너무 매력적이고. 아저씨 참 차밍하고.
젭이 이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이 여자, 이 여자랑 함께 젭의 침실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전까지는 제비 혼자 수영장에 있을 때, 수영. 아이고. 스포일이 됐네. 이게 스포일이네요. 제비 혼자 침실에 있을 때 수영장이 아니고 침실에 있을 때. 침실의 천장이 마치 수영장 내지는 바다의 물처럼 보였거든요. 근데 그게 어 상상이겠거니 하면서도 그게 화면에 실제로 그 CG 처리처럼 돼 가지고 실제로 하늘색 물이 물결치는 천장이 나왔어요. 그런데 이 여자랑 같이 침실에 있는데, 아침에 같이 침실에 있는데 “천장에 저거 물 보여?” 이렇게 보는데 “어 보여”라고 여자가 말하지만 그때 천장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드러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CG 처리가 됐었던 천장에 CG가 없어지고 그냥 맨 천장, 베이지색 천장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젭이 선택한 상상이었던 거죠. 그 물 바다 수영장 및 물이라는 거는. 바다 수영장 및 물이라는 거는 젭이 계속 자기가 사랑했던 엘리자와 좀 연관지었던 이미지들이거든요. 그런데 엘리자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자가 나오자 젭이 ”저기 저 물 보여?”라고 물었지만 실제가 드러났다. 그러니까 저 저 천장에 아무 물도 없었음이 젭한테도 드러나고 우리 관객한테도 드러났다.
드러났는데. 그러고서는 바로 이 여자가 죽어요. 진짜 제가 이것도 참 웃겨서, 웃겨서 웃는다기보다는 무슨 진짜 방어 기제인가 봐요. 너무 이게 너무 허무하잖아요. 뭐 이런 게 다 있어? 젭도 막 친구한테 얘기해요. 아니 지금 내 주변에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자꾸 죽어 나간다고. 근데 이게 진짜 웃프잖아요.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근데 이런 일이 있는 거예요, 젭한테는.
그러니까 젭을 보면 젭이 선택한 상상의 코어가 “나는 이거 가질 수 없지만 아름답게 승화시킬 거야”라고 여기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름답긴 해요. 그 그레이트 뷰티를 찾아 헤맸다잖아요. 헤매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봐요. “그런데 나는 가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이 아름다운 것들은 지나갈 것이거나 아니면은 저 앞에 있거나. 내가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그러니까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상관없고, 그건 중요하지 않고, 나는 이걸 가질 수 없을 거야.” 그래서 그냥 영원한 노스텔지아의 림보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인물이고. 그래서 이제 뭔가를 대놓고 추구하는 걸 못하는 사람? 그러니까 자기는 그레이트 뷰티를 찾았다고 하는데, 못 찾는 거야. 왜냐하면 추구한 적도 없어.
그러니까 엘리자도 엘리자가 그렇게 좋았으면 “너 왜 나를 싫대? 나는 너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너는 왜 나 싫대?” 이렇게 물어볼 수 있잖아요. 이거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이 세상의 모든 그런 연인 관계와 사랑에 대한 모든 실제라고 불리는 이 현실 세계에서 펼쳐지는 일과 모든 소설과 영화에 어 차인 사람이 “왜 나를 차?” 이렇게 말하는 게 얼마나 많아요. 근데 젭은 40년 동안 그걸 못 한 거야. 그 여자가 죽을 때까지. 그래놓고서 지금 이제 막 “사람들이 왜 왜 다 죽죠?” 막 이러고 있는 건데. 되게 슬픈데… 너무 젭이 그럴 줄 알았을 것 같은 그런 인물이라 가지고. 이 젭의 세계관에 너무 말이 되는 그런 전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뭐 심지어는 죽지 않더라도 친구가 갑자기 이사를 한다든지. 이런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데. 좀 하염없이 아쉬워하는 스타일? 그 아쉬움이 아름답긴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이거든요. 차라리 아쉬움이 얼마나 이렇게 어글리한지를 인정하면 그렇게 이 이런 오해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너무너무 아름다움에, 그러니까 영화는 아름다움에 매달리지 않지만 젭은 진짜 아름다움을 찾다가 아름다움 하나도 못 찾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요. 진짜 65세에도 그러고 앞으로 한 20년 그렇게 살다가 죽을 뻔했는데.
어 극중에서는 다행히도 젭, 젭 주변에 이제 엘리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고 오는 그 엘리자 남편. 그리고 광인도 죽고. 행위 예술가는 아동 학대 당하고. 좋아할 수 있었을 것 같았던 여자는 또 죽고. 이 사람들 막 죽고 친구 떠나고 뭐 막 노닥거리던 모임에서의 그 사람이랑은 뭐 말싸움 같은 거 하고. 뭐 막 이러고 있는 거예요. 책은 소설은 못 쓰고.
이러고 있으니까 이제 제이 65세가 돼가지고 이제 막 뭔가 이제 안 하던 생각을 하는 거죠. 안 하던 생각도 하고. 보기 싫었던 거를 보고 그러는데.
우리 젭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 거야”라고 여기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제 이 엘리자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그 엘리자 남편을 찾아가는데 그 남편이 엘리자가 죽었을 당시에는 너무너무 슬퍼했단 말이죠. 막 울었단 말이죠. 그 남편이랑 젭이랑 같이 막 울었어요. 슬프니까. 엘리자 죽었으니까. 사랑하던 엘리자가 죽었으니까.
근데 젭이 다시 찾아갔을 때는 그 남자한테 여자친구가 생겨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가 되게 행복해 보여요. 왜냐하면 엘리자는 그 남자를 남자로서 사랑한 적이 없는데 그 새 여친은 사랑하나 봐요. 사랑한다고 본인이 느끼나 봐요. 행복해 보이거든요.
근데 그 모습을 본 젭의 그 표정이 정말 정말 아이같이, 너무너무 아이같이 꽃피는 그런 모습이 나오고. 그러니까 행복이 뭔지 알고. 행복이 다른 사람들한테 찾아왔을 때 굉장히 좋아해줘요. 그래서 다만 이제 자기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기가 그거를 겪지 못할 거라고 여겼던 것 같은데, 남이 잘 되면 되게 기뻐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되게 되게 좀 더 깊게 들어가고 더 뭔가 더 이 영화가 막 이 사람을 괴롭힐 생각이었으면 되게 좀 보는 입장에서도 힘들었겠다 싶은 측면이 있지만, 너무 차밍해요. 진짜 얼마나 귀엽습니까? 자기 자기랑 헤어진, 자기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의 남편이 여친이 생긴 걸 보고 너무 기뻐하는 우리의 젭. 그거를 보면은 되게 되게 귀여워요. 이 삶이 막, 삶이 막 힘들다고 여기는 그런 사람은 아니고. 본인이 뭔가 본인에게 허하는 그런 행복의 정도? 그게 좀 희한할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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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젭. 우리의 젭은 거의 영화의 맨 초반부에 이런 말을 해요. 자기 친구들이 자기들 다 젊었을 때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 뭐냐? 삶에서 제일 좋은 게 뭐냐? 물어봤을 때 친구들은 여자 밝힐 때 자기는 대답을 이렇게 했대요. “나이 든 사람들이 사는 집의 냄새.” 그게 좋다고 했대요.
뭔가 이 젭은 항상 약간 새싹을 보면서 새싹 다 자라고서 나무가 나이 들어가다가 죽을 걸 기대하는 사람 같은. 막 지금 있는 거 다 지나갈 거라고 굳게 믿는. 앞으로 올 걸 기대는 하는데 그게 막상 오면은 어 즐기지 못하고. 계속 지나가고. 노스텔지아에 빠지는. 그런 인물인 것 같은데. 심지어는 이제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대놓고 대사로 하기도 하고. 그래서 영화가 모호하진 않아요.
이 영화에 물이 엄청 나오고 다리도 많이 나오는데, 이 젭이 마치 흘러가게 둔다고 여기면서 사실은 붙잡으려고 하지만 붙잡는 것도 인정을 못 해서 붙잡은 적도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어… 뭐를 이렇게 명확하게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야 아까 제가 말한 그 엘리자를 떠올리면서 확 붙잡다가 확 놓아버리는 것 같은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드디어 물이 드디어 진짜로 흘러가는 것 같은 좀 시원한 그런 장면이 나오거든요.
어… 그 이러한 모든 사건에 대해서 젭이 의식적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엔딩이 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런 엔딩에 도달하기 전에 젭의 친구 중 하나가 젭을 ‘제피노’라고 불러줘요. 그랬더니 젭이 “그거는 어릴 때 말고는 아무도 나를 그렇게 부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말을 해요, 깜짝 놀라면서. 그랬더니 친구가 이제 말하는 거죠. “친구면은 나의 친구를 위해서 그 친구가 어린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가끔은 줘야 된다. 그래서 제피노라고 불렀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하, 또 빨리 빨리 해볼게요. 빨리 해볼 건데. 영화에 이 여러 레이어가 있고 해석도 다양하겠지만 가장 겉에 드러나는 요 플롯이라고 할 만한 게 회춘. 동심. 이런 영화인 것 같아요. 이렇게나 사라지는 것들, 죽어가는 것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것의 비율은 정말 생각해 보면 정말 적고, 그러는 와중에 항상 태어남이 밑에 깔려 있는 영화예요.
그래서 이를테면 왜소증이라서 60년간 어린이의 키였던 여자가 나오고. 의자가 너무 높아서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바람에 어린아이처럼 다리를 공중에 흔드는 수녀가 나오고. 또 수영장에서 튜브 속에 애처럼 이렇게 쏙 들어 있는 여자가 나오고. 태어났을 때부터 하루에 사진을 하나씩 찍었는데 지금은 성인이 돼서 그 모든 사진을 전시한 남자도 나오고.
이런 요소 요소들이 처음에는 그냥 그냥 지나가는 이렇게 구름처럼 풍선이 이렇게 날아서 지나가듯이 이렇게 지나가는데, 끝에 가서 보면은 다 그 말을 하려고 등장했구나 싶고. 심지어는 그 패션쇼 겸 은행 보톡스 사건도 이 아주 오래된 주름진 얼굴들 사이에 싱싱한 탱글탱글한 얼굴들이 나오되 그중 자연적인 것도 있고 인공적인 것도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나온 건가 싶고. 어… 사람들이 진짜 막 쓰러지고 떨어지고 땅에 들어가 있고 그러는 가운데 또 미친 듯이 춤추고 살아있고 너무 너무 정말 말 그대로라서, 그러니까 모든 그런 죽음과 삶의 대조가 말 그대로라서 오히려 더 시적인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심지어는 진짜 이렇게 다들 섹스를 많이 하는 와중에 절대 섹스 안 하기로 한 종교인들도 대거 등장하고 이런 어떤 대조들 있죠? 그리고 뭐 로마의 건물과 귀족이라는 예스러운 개념이 등장하지만 또 시시각각 계속 휴대폰 카메라 아니면 일반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계속 사진을 찍어요. 심지어는 이제 귀족 중에 몰락한 귀족도 나오고. 그들이 마치 물건처럼 대여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든지. 그러니까 나는 귀족이니까 귀족인 내가 당신의 저녁 식사에 참여해 주면 나한테 돈을 줘라. 이런 이런 게 나온다든지.
해서 뭐 어 고풍스럽다고 볼 수 있는 거랑 천박하다고 볼 수 있는 게 뒤섞여 있고 나중에는 뭐가 고풍스러운지 뭐가 천박한지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다 과거도 현재가 되고 미래도 현재가 되고 어 막 엄청 엄청 organic한 것 같은 그런 비주얼 가운데 갑자기 cgi 동물들이 등장한다든지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어… 아스트라가 영화를 대사가 많이 없다는 식으로 뽑았는데 그 대사 없는 부분을 밸런스 해주려고 대사가 미친 듯이 나오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대사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러나 다른 영화에 비해서 대사로 좀 표현을 안 하는 부분이 있기는 한 것 같고. 초반 20분 동안 거의 우리에게 대사로 설명해 주는 게 없다는 게 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이제 막 사람이 말을 거는데 대답을 안 하는 씬이 나올 정도로 어떤 때는 대사를 진짜 정말 대사를 버려버리는. 대사를 아예 없애버리는 그런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도 있는 가운데.
이제 제프는 아까 말한 그 꽉 움켜줬다가 확 놓아버리는 그 씬. 엘리자를, 엘리자에 대해 떠올리지 않았던, 차마 떠올리지 않았던 그 장면을 꽉 잡았다가 확 놓는 것처럼 끝납니다. 영화가 끝납니다.
마지막 대사로 이제 “소설을 이제 정말로 시작하리라” 하면서 끝이 나고.
어 끝에 가서 좀 생각이, 든 생각은 이 사진 찍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 요것도 좀 생각해 볼 만한 것 같아요. 이 첫 시퀀스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계속 사진을 찍고. 하필이면 죽은 사람이 사진 찍다가 죽었으니까.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수녀 관광객들이 대거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사람들도 그렇게 사진을 열심히 찍어요. 그리고 영화 내내 나오는 여러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어떤 때는 드러내놓고 결핍적인 이유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지만 다른 때는 정말 소중한 기억을 유지하려고 사진을 찍거든요. 그래서 이제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는 카메라가 정말 무슨 혼령처럼 움직였구나, 싶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확실히 영화 문법이 좀 다른 나라 말 같고. 이게 이게 이탈리아어라서가 아니라 이러한 어떤 다른, 제가 익숙하지 않은 국가의 영화적 문법 자체가 다른 언어처럼 느껴졌고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매우 재미있는 영화였고. 두 개의 에피소드에 그래도 얼추 얼추 두 개 끝난 것 같다. 끝난 것 같은데.
제가 다른 프로젝트들이 있잖아요. 2025년에 좀 더 의식적으로 하기로 한 프로젝트들이 있으니까. 그거를 다음 주에는 그거를 한번 터치베이스를 하고 그다음 주에 영화 에피소드 다시 하겠습니다. 어떤 영화 할지는 다음 주에 정해서 에피소드에 공유를 하겠습니다.
<The Great Beauty>. 젭 감바르델라인가? 감바르디아인가? 어 아무튼 어려운 이탈리아어 이름을 가지신 젭 아저씨. 정말 차밍하고 영화도 너무 차밍하고 아름다우니까 한번 보시면, 좀 여러 번 보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두 번은 보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각종 토픽들 중 링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쇼노츠에 올려놓을 거고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녹취록을 보실 수 있는데, 그 링크 역시 쇼노츠에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특이 취향 친구가 있으시면, 이 팟캐스트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그럼, 아직 깨어 계신 분들도, 잠드신 분들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아임이었습니다.
모든 링크
- < The Great Beauty > (La grande bellezza)
- < The Shape of Water >
- “밤 끝으로의 여행” (인용문이 나오는 책)
제가 이 필명으로 하는 모든 일은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2025 한아임
